영웅본색 OST
behind back of god, between heaven and earth
질투
전화로 그린 이엠일 EM1 1922년
1923 년 전례가 없는 유형의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기계로 제조 된 에나멜 사진"
모홀리 (Moholy)는 간판 공장에 세 장의 그림을 전화로 주문했습니다.
완성 된 3 개의 그림은 바우 하우스의 모홀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는 다음 해 베를린의 Der Sturm 갤러리에서 전시했습니다.
동일한 구성을 공유하면서 소규모 (EM 3), 중형 (EM 2) 및 대형 (EM 1)의 점진적 크기로 확장되었습니다.
전화로 그들에게 명령 한 것은 현대 예술가의 급진적 인 개념을 아이디어의 생산자로 제시 한 것이지,
반드시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이 레디 메이드 조각품을 발명 한 것처럼
모홀리의 전화 그림은 '예술'이라고 불릴 수있는 역사를 바꿔 놓았습니다.
전화 영상의 선견지명과 대담성은 제작 된 지 거의 1 세기가 훨씬 더 앞섭니다.
모홀리나기 László Moholy-Nagy(1895~1946)
라즐로 모홀리나기는 1895년 바치보르쇼드에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부상하여 요양중 회화로 전향하였다.
비엔나를 거쳐 베를린에 온 모홀리나기는 1920-23년에 다다이즘과 구성주의의 중간에 위치하는 콜라쥬와 포토몽타쥬 작품을 제작하였다.
1922년 시인 카사크와 공저로 [새로운 예술가의 책]을 간행했고 이 해부터 1928년까지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초빙되어 예비반과 금속 아틀리에를 담당하였다.
1922년부터 1930년까지 각고 끝에 대형 모빌 '빛-공간 변조기'를 제작하였다.
바우하우스를 떠난 후, 베를린, 암스테르담을 거쳐 런던에 정착해 2년간 체류하며 '공간의 변조기'를 발표한다.
나치의 압박으로 1937년 도미, 시카고에서 디자인 연구소를 창설하였다.
광선과 조형의 관계를 추구하여 회화, 플렉시글라스 조각, 키네틱 아트의 작품, 디자인, 디스플ㄹ레이, 영화,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 끊임없는 호기심을 보이며 참구작업을 벌였다.
모홀리나기는 실험적 작품으로 키네틱 아트, 옵 아트의 새로운 연구 방향을 열어 주었다.
저서로는 [새로운 시각](1946), [운동에서의 시각](1947)이 있다. 모홀리나기는 1946년 시카고에서 사망했다.
behind back of god, between heaven and earth 1925년
'관련인물 > 모홀리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로디자인] -김민스, 그린비, 2007 (0) | 2017.08.06 |
---|---|
모홀리나기 (0) | 2016.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