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론타이의 자유연애론을 목숨처럼 신봉하는 듣보잡 들이 나타났으니 이름하여 조선 콜론타이다.
조선에 영향[편집]
콜론타이의 자유 연애론은 1920년대 조선에도 소개되었다. 일본의 페미니스트들의 자유 연애론에 공감하던 조선의 페미니스트들은 그의 자유 연애론을 적극 수용하였다. 김일엽과 나혜석은 미국과 일본, 프랑스의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견해를 받아들인 반면, 사회주의 성향의 페미니스트였던 허정숙은 콜론타이의 이론을 적극 받아들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조선의 페미니스트 허정숙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여성 해방 사상을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으로부터 받아들인 자유주의 페미니즘과는 또다른 형태의 사회주의와 결합한 형태의 페미니즘 사상이었다.
허정숙은 "연애는 사사다"라는 콜론타이의 구호를 실제의 삶에서 구현한 지식인 여성이었다. 동아일보의 여기자이자 여성동우회와 근우회, 청총간부로 맹렬히 활동했던 허정숙은 남편 임원근이 옥에 갇혔을 때 냉정하게 이혼장을 가지고 찾아갔으며, 나이 30세 이전에 애인을 세 번 가졌고, 애인과 사귈 때마다 아이를 낳았다는 개인사를 빌미로 대중매체의 가십꺼리가 되었다.[23]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콜론타이의 사랑론을 설파하였으며, 그 외에도 여러 남성과 자유롭게 사귀었다.
콜론타이만큼의 확고한 계급적, 젠더적 자각 속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영위하였다고 하더라도, 조선에서 급진적인 콜론타이 연애론의 실행은 격렬한 반발과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23] 콜론타이의 삼대의 사랑에서 재현된 여성의 자유분방한 성의식과 가족의 부적은 유교적 습속이 강고하게 유지되던 20세기 초 조선에서는 뿌리내릴 수 없는 공상적 가설에 가까웠다.[23] 그러나 허정숙은 자유 연애를 감행하였고, 오히려 유교가 종교적, 도덕적인 핑계로 여성의 성과 자유를 억압 통제한다며 오히려 유교 사상과 가부장제의 비인간성을 지적, 질타하였다. -- 위키백과
자질구레한 유언 나부랭이로 말미암아 칠십년 공든 탑을 무너뜨렸고 허울 좋은 일생에 가실 수 없는 흠집을 하나 내어 놓고 말았다.
李箱선생 왈 톨스토이 별명이 Leo-Cheka 교황비밀경찰이란다.
고놈의 명예 돈 욕심 때문에 자식과 아내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고 사회를 위한다는 깜냥으로 내핍생활을 하며 톨스토이主義敎를 창설해 친히 교황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러시아 정교회에 속하지 않은 4,000명에 달하는 이교도들을 미국에 이주시키기 위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부활'을 발표하였다는데, 그것 이야말로 미국에 스파이를 보내려는 작전이었나 보다. 별명이 Leo-Cheka 교황비밀경찰이라고 한 것을 보면.... Cheka는 훗날 KGB가 된다.
세네카 그는 인간은 자연사로 죽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톨스토이를 보니 정말 그렇다.
늙어 공명심은 나를 죽인다. 李箱 철학의 요지이다.
나는 일개의 교활한 참관인 자격으로 그런 우매한 성인들의 생애를 방청하여 있으니 내가 그런 따위 실수를 알고도 재범할 리가 없는 것이다.
거울을 향하여 면도질을 한다. 잘못해서 나는 생채기를 냈다. 나는 골을 벌컥 냈다.
그러나 와글와글 들끓는 여러「나」와 나는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각기 최선을 다하여 제 자신만을 변호하는 때문에
나는 좀처럼 범인을 찾아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체로 어리석은 민중들은「원숭이가 사람 흉내를 내이네」하고 마음을 놓고 지내는 모양이지만
사실 사람이 원숭이 흉내를 내이고 지내는 바 진짜 지당한 옛 선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오호라! 일거수일투족이 이미 아담 이브의 그런 충동적 습관에서는 벗어난 지 오래다.
반사운동과 반사운동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잠시 실로 전광석화만큼 손가락이 자의식의 포로가 되었을 때
나는 모처럼 내 허무한 세월 가운데 무심하게 버려있는 요상한 바위 같은 네 콧잔등을 좀 만지작만지작했다거나,
고귀한 대화와 대화 늘어선 쇠사슬 사이에도 확실히 순간적 타이밍을 허용하는 들창이 있나니
그 서슬 퍼런 칼날이 자의식을 걷잡을 사이도 없이 살을 베는 순간
나는 내 거울같이 맑아야할 지극히 보배인 두 눈에 혹시 눈곱이 끼지나 않았나 하는 듯이
적절하게 주름살 잡힌 손수건을 꺼내어서는 그 두 눈의 만지작만지작 했다거나
ㅡ 내 혼백과 두루 뭉실 점잖은 태만성이 그런 사소한 불똥 같은 것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보고 와서)
내 총괄되는 처소 뇌세포에 일러바쳐야만 하는 그런 아주 급한 행동을 나는 이루 감당해 낼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내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산호편을 자랑하고 싶다.
「쓰레기」「우거지」
이 구질구질한 단어의 분위기를 여러분은 충분히 이해하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이 기독교 감리교식으로 결혼하던 날 교회 식장 통로(웨딩로드nave and aisle)에서
이「쓰레기」「우거지」에 비슷한 감흥을 맛보았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과연 그렇지는 않으십니까.
나는 그런「쓰레기」나「우거지」같은 오색종이 테이프를 (내 종생기 곳곳에다 가엽게 심어 놓은 자잘한 순서를 따라 진행하기 위하여)
뿌려 보려는 것인데ㅡ 다행히 짝이 맞는다. 以上이상
「치사한 소녀는」
「해동기의 시냇가에 서서」
「입술이 꽃이 지듯 좀 파래지면서」
「살얼음 밑으로는 무엇이 저리도 움직이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이 숙이고 있는데」
「봄 운기를 품은 훈풍이 불어와서」
「스커어트」아니 아니,
「너무나」아니, 아니,
「좀」
「슬퍼 보이는 붉은 털을 건드리면」그만. 더 이상 진한 말은 안 된다.
나는 한 마디 가련한 어휘를 첨가할 성의를 보이자.
「나붓 나붓」
이만하면 완비된 장치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내 종생기의 첫 장을 꾸밀 그 소문 높은 珊瑚鞭산호편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실체적인 것으로 나로서는 너무나 과감히 치사스럽고 어마어마한 세간살이를 장만한 것이다.
그런데ㅡ 혹 지나치지나 않았나?
천하에 똑 소리 나는 관찰력이 없지 않으니까.!
너무 금색 칠을 아니 했다가는 섣불리 들킬 염려가 있다. 그러나ㅡ 그냥, 어디! 이대로 사용해보기로 하자.
나는 지금 가을바람이 자못 퉁소 소리로 감아드는 내 구중중한 방에 홀로 누워 終生종생하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의 충고에 의하면 나는 추호의 틀림도 없는 만 25세와 11개월의「紅顔美少年홍안미소년」이라는 것이다.
그렇건만 나는 확실히 늙은이다.
그날 하루하루가「인생은 짧고 예술은 기다랗다」하는 엄청난 평생이다.
나는 날마다 목숨이 끊어졌다.
나는 자던 잠(이 잠이야말로 언제 시작한 잠이더냐.)을 깨이면 내 뼈에 사무치는 생애가 시작되는데 청춘이 여지없이 탕진되는 것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웠지만 역력히 보인다.
나는 늙어옴에 가난한 식사를 한다.
12시간 이내에 終生종생을 맞이하고 그리고 할 수 없이 이리 궁리 저리 궁리 유언다운 글이 어디 유실되어 있지 않나 하고 찾고,
찾아서는 그중에 의젓한 놈으로 몇 추린다.
그러나 고독한 만년 가운데 한 구절의 짧은 풍자시도 얻지 못하고 그대로 처참히 나는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일생의 하루ㅡ
하루의 일생은 대체(우선) 이렇게 해서 끝나고. 끝나고 하는 것이었다.
자ㅡ보아라.
이런 내 분장은 좀 과하게 치사스럽다는 느낌은 없을까? 없지 않다.
그러나 위풍당당하게 일세를 풍미할 만한 새롭고 정갈한 맛이 비교가 안 되는
햄릿Hamlet (妄言多謝잘난체 해서 죄송)을 하나 출세시키기 위해서는 이만한 출자는 아끼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없지 않다.
나는 가을이고. 소녀는 봄 해동기
어느 때나 이 두 사람이 만나서 즐거운 소꿉장난을 한 번 해보리까.
나는 그해 봄에도ㅡ 부질없는 세상이 스스러워서 눈서리 같은 위엄을 갖춘 몸으로
싸늘한 심정에 불쌍한 나날을 맞고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美文 美文 曖牙애하! 美文
(美文아름다운 글. 美文멋진 문양. 曖牙스케치해 놓은 美文멋진 문양)
미문이라는 것은 지극히 조처하기 위험한 수작이니라.
(美文멋진 문양이라는 것은 지극히 관리하기 위험한 손의 작업이다.)
나는 내 感傷아픈 마음의 꿀방구리 단지 속에 청산 가던 나비처럼 痲醉昏死 꿀에 너무 취해
혼절하기 자칫 쉬운 것이다. 조심조심 나는 내 맵시를 고쳐야 할 것을 안다.
나는 그날 아침에 무슨 생각에서 그랬던지 이를 닦으면서 내 작성 중에 있는 유서 때문에 끙끙 앓았다.
열 세 벌의 유서가 거의 완성해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을 집어 내 보아도 다 같이 서른여섯 살에 자살한 천재 빈센 반 고흐가 머리맡에 놓고 간 蓋世,逸品(세상에 떨칠만한 뛰어난 작품)의 흉내 내기에서도 한 발짝도 나서지 못했다.
( Vincent van Gogh 1853.3.30 ~ 1890.7.29)
내게 요만 재주 밖에는 없느냐는 것이 다시 없이 분하고 억울한 사정이었고 또 초조한 마음의 근원이었다.
미간을 찌푸리되 가장 고매한 얼굴은 지속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리고 계속하여 끙끙 앓고 있노라니까.
(나는 일시일각을 허송하지는 않는다. 나는 없는 지혜를 끊이지 않고 쥐어짠다.)
속달편지가 왔다.
소녀에게 서다.
선생님! 어젯저녁 꿈에도 저는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꿈 가운데 선생님은 참 다정하십니다. 저를 어린애처럼 귀여워해 주십니다.
그러나 白日밝은 햇살아래 정처없이 떠도는 선생님은 저를 부르시지 않습니다.
비굴하다 라는 것이 무슨 빛으로 되어 있나 보시려거든 선생님은 거울을 한 번 보아 보십시오.
거기 비치는 선생님의 얼굴빛이 바로 비굴이라는 것의 빛입니다.
헤어진 부인과 삼년을 동거하시는 동안에 너 가거라. 소리를 한 마디도 하신 일이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유일의 자만이십니다 그려!
그렇게까지 선생님은 인정에 苟苟구구하신가요.
R과도 깨끗이 헤어졌습니다. S와도 절연한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된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믿어 주시는 바지요?
다섯 달 동안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의 청절을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최후까지 더럽히지 않은 것을 선생님께 드리겠습니다.
저의 희멀건 살의 매력이 이렇게 다섯 달 동안이나 놀고 없는 것은 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이 아깝습니다.
저의 잔털 나스르르한 목 영한 온도가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선생(先生)님이어!
저를 부르십시오. 저더러 영영 오라는 말을 안 하시는 것은 그것 역시 가신적 경우와 똑같은 이론에서 나온
구구한 인생변호의 치사스러운 수법이신가요?
영원히 선생님「한 분」만을 사랑하지요.
어서 어서 저를 전적으로 선생님만 의 것을 만들어 주십시오.
선생님의 전용이 되게 하십시오.
제가 아주 어수룩한 줄 오산하고 계신 모양인데 오산치고는 좀 어림없는 큰 오산이리다.
네 딴에는 제법 든든한 줄만 믿고 있는 네 그 안전지대라는 것을 너는 아마 하나 가진 모양인데
그까짓 것쯤 내 말 한 마디에 사태가 나고 말리라,
이렇게 일러드리고 싶습니다. 또ㅡ 예끼! 구역질나는 인생 같으니 이러고도 싶습니다.
삼월삼일 날 오후 두 시에 동소문 뻐스정류장 앞으로 꼭 와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나요.
내 징벌을 안 받지 못하리다.
만19세 2개월을맞이하는 貞姬정희 올림
李箱선생님께 물론 이것은 죄다 거짓부렁이다.
그러나 그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用心法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법 특히
그중에도 結尾마지막 부분의 비견할 데 없는 청초함이 壯,疾風迅雷 굉장히 날쌔고 과격함을 품은 듯한 명문이다.
나는 까무러칠 번하면서 혀를 내어둘렀다.
나는 깜빡 속기로 한다. 속고 만다.
여기 이 이상선생님이라는 허수아비 같은 나는 지난밤 사이에 내 평생을 經歷경력했다.
나는 드디어 쭈굴쭈굴하게 노쇠해 버렸던 차에 아침(이 온 것)을 보고 이 키!
남들이 보는 데서는 나는 가급적 어쭙지않게 (잠을)자야 되는 것이거늘, 하고 늘 이를 닦고 그리고는 도로 얼른 자버릇 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또 그럴 세음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짐짓 기이하기도 해서 그러는지 驚天動地(하늘이 놀랄 만큼)의 육중한 경륜을 품은 사람인가보다고들 속는다.
그러니까 고렇게 하는 것이 내 시시한 자세나마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의 비결이었다.
즉 나는 남들 좀 보라고 낮에 잔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고 欣喜雀躍(참새가 날아오르듯) 좋아서,
나는 蓋世의 經綸(잘난 채 하는 것이나 체면 같은 것)과 유서를 정리하는 고민을 깨끗이 씻어버리기 위하여 바로 이발소로 갔다.
나는 여간 아닌 호걸답게 입술에다 치분을 허옇게 묻혀가지고는 그 현란한 거울 앞에 가 앉아
이제 화려하게 개막하려 드는 내 終生존생을 유유히 즐기기로 거기 해당하게 내 맵시를 수습하는 것이었다.
위선 그 鵲巢雷名(제비집이라는 별명)까지 까지 있는 산발한 머리를 썰어서 상고머리라는 것을 만들었다.
五角鬚(양볼 코 턱수염)은 깨끗이 도태해 버렸다.
귀를 후비고 코털을 다듬었다.
안마도 했다.
그리고 비누세수를 한 다음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니 품있는 데라고는 한 귀퉁이도 없어 보이는 듯 하면서 또한 태생을 어찌 어기리요,
좋도록 말해서 라파엘전파前派 고전파 일원같이 그렇게 淸楚白面書生(말숙한 책만 읽는 사람)이라고도 보아줄 수 있지 하고 실없이 제 얼굴을 미남자거니 고집하고 싶어 하는 구지레한 욕심을 속으로 탄식하였다.
나는 내 그런 여간 이만저만하지 않은 풍모를 더욱 더욱 이만저만하지 않게 변화를 주기 위하여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고다지 알맞은 단장을 하나 내 손에 쥐어 주어야 할 것도 때마침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綾織 - 날실과 씨실을 몇 올씩 건너뛰어 만나게 함으로써 빗금무늬가 나타나게 짜는 방법
별수 없이ㅡ 오늘이 즉 3월 3일인 것이다.
나는 점잖게 한 30분쯤 지각해서 동소문 지정받은 자리에 도착하였다.
貞姬정희는 또 정희대로 아주 정희답게 한 30분쯤 일찍 와서 있다.
정희의 입상은 제정러시아 때 우표딱지처럼 적잖이 슬프다.
이것은 아직도 얼음을 품은 바람이 땅을 녹이는 머리답게 싸늘해서 말하자면
정희의 모양을 얼마간 침통하게 해 보일 탓이렷다.
나는 이런 경우에 천만 뜻밖에도 눈물이 핑 눈에 그뜩 돌아야 하는 것이 꼭 맞는 원칙으로서의 의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저벅저벅 정희 앞으로 다가갔다.
우리 둘은 이 땅을 처음 찾아 온 제비 한 쌍처럼 잘 앙증스럽게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걸어가면서도 나는 내 두루마기에 잡히는 주름살 하나에도 단장을 한 번 휘젓는 곡절에도 세세히 조심한다.
나는 말하자면 내 우연한 終生을 감쪽스럽도록 찬란하게 느껴보기 위하여 내 살얼음을 밟는 듯한 포ㅡ즈를
아차 실수로 무너뜨리거나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굳게굳게 명심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면 맨 처음 발언으로는 나는 어떤 奇絶,慘絶,警句절묘하고 멋진 말을 내어 놓아야 할 것인가,
이것 때문에 또 잠깐 머뭇머뭇하지 않을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대이고 거 어쩌면 그렇게 똑 제정러시아적 우표딱지같이 초초하니 어쩌니 하는 수는 차마 없다.
나는 선뜻
「설마가 사람을 죽이느니」
하는 소리를 저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그런 가라앉은 목소리에 꽤 명료한 발음을 얹어서 정희 귀 가까이다 대이고 지껄여버렸다.
이만하면 아마 그 경우의 최초의 발성으로는 무던히 성공한 편이리라.
뜻인즉, 네가 오라고 그랬다고 그렇게 내가 불쑥 올 줄은 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는 꼼꼼한 의도다.
나는 아침 반찬으로 콩나물을 삼전어치는 안 팔겠다는 것을 교묘히 무사히 삼전어치만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미끈한 쾌감을 맛본다.
내 딴은 다행히 노랑 돈 한 푼도 참 용하게 낭비하지는 않은 듯싶었다.
그러나 그런 내 청천에 벽력이 떨어진 것 같은 인사에 대하여 정희는 실로 대답이 없다.
이것은 참 큰일이다.
아이들이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하고 노는 그런 암팡진 수단으로 그냥 단번에 나를 어지러뜨려서는 넘어뜨려버릴 작정인 모양이다.
정말 그렇다면!
이 상쾌한 정희의 確乎(굳굳한 부동자세)야말로 엔간치 않은 출품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내어 놓은바 급소를 찌른 말은 그만 즉석에서 분쇄되어 가엾은 잘못된 작품으로 내려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고 나는 느꼈다.
나는 나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손짓 발짓을 한번 해 보이고 이윽고 낙담하였다는 것을 표시하였다.
일이 여기 이른 바에는 내 포ㅡ즈 여부가 문제 아니다.
표정도 인제 더 써먹을 것이 남아 있을 성싶지도 않고 해서 나는 겸연쩍게 안색을 좀 고쳐가지고 그리고
정희! 그럼 나는 가겠소, 하고 깍듯이 인사하고 그리고?
나는 발길을 돌려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 파란만장의 생애가 자잘한 말 한 마디로 하여 그만 타다 남은 재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나는 세상에도 참혹한 풍채 아래서 내 終生을 치른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그럼 그럴 성싶기도 하게 단장도 한두 번 휘두르고 입도 좀 일그적 일그적해 보기도 하고 하면서 행차하는 체해 보인다.
5초 ㅡ10초ㅡ12초 ㅡ30초ㅡ1분 ㅡ결코 뒤를 돌아다보거나 해서는 못쓴다.
어디까지든지 사심 없이 패배한 체하고 걷는 체한다. 실심한 체한다.
나는 사실은 좀 어지럽다.
내 쇠약한 심장으로는 이런 자약한 체조를 그렇게 장시간 계속하기가 썩 어려운 것이다.
묘지명이라.
일세의 귀재 李箱은 그 일생의 대작「終生期一篇 종생기 1편을 남기고
서력기원후1937년 3월 3일 오후 3시 여기 밝은 태양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하다.
향년 만25세와 11개월
鳴乎 오호라! 상심하리라.
허탈이야 잔존하는 또 하나의 李箱
구천을 우러러 통곡하고 이 북망산의 한 돌판을 세우노라.
애인 정희는 그대의 죽음 후 수삼인의 비첩이 된 바 있고 오히려 장수하니 지하의 李箱아! 바라건댄 편히 눈을 감으시라.
그리 칠칠치는 못하나마 이만큼 해 가지고 이꼴저꼴 구지레한 흠집을 살짝 숨기기로 하자.
고만 실수는 여상의 묘기로 겸사겸사 메꾸고 다시 나는 내 반생(半生)의 틀에 후일에 관해 차근차근 고려하기로 한다. 以上
역대의 풍자시와나라가 기울어지는 것과의 관계는 어길 수 없는 굳은 규칙이 모두 내게 있어서는 내 위선을 몰래 감추는 한 스무드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역대의 풍자시는 나라가 위태롭거나 사회가 혼란 할 때 많이 나타나는 하나의 규칙이다.
그러나. 한 두 편의 풍자시로 내가 애국자요 하는 것은 위선을 감추는 하나의 구실일 뿐이다. 행동하는 지식이 필요할 뿐이다.)
실로 나는 내 목숨을 잃음의 자리에서도 임종의 합리화를 위하여 프랑스의 화가 Corot
(1796~1875)코로처럼 복숭아색의 팔렛을 볼 수도 없거니와
톨스토이처럼 탄식해 주고 싶은 쥐꼬리만 한 금언의 추억도 가지지 않고 그냥 난데없이 다리를 삐어 넘어지듯이 스르르 죽어 가리라.
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1875 French
그는 독신으로 살았다.
"코로처럼 복숭아색의 팔렛을 볼 수도 없거니와" = 여성과의 교제는 그의 생애에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으며,
그는 전생애를 그림에 바쳤다.
거룩하다는 칭호를 휴대하고 나를 찾아오는「연애」라는 것을 응수하는데 있어서도
어디서 어떤 노소간의 의뭉스러운 선인들이 발라먹고 내어버린 그런 유훈을 나는 헐값에 걷어 들여다가 제련. 재탕해서 다시 써먹는다.
(내가 이런 얄팍한 수법을 써 먹)는 줄로만 알았다가 또 내게 혼나는 경우가 있으리라.
나는 찬밥 한 술 냉수 한 모금을 먹고도 넉넉히 일세를 위압할 만한 苦言고언을 가려내어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지혜의 실력을 가졌다.
그러나 자의식의 절정 위에 발돋움을 하고 올라선 숨이 끊어질 때 내뱉는 짧은 비명의 소리와 같은 비결을 보통 밤 시장 국수버섯을 팔러 오신 시골 아주머니들에게 서너 푼에 그냥 넘겨주고 그만두는 그렇게까지 자신의 에티켓을 미화시키는 겸허의 방식도 또한 나는 흔들림 없이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탄탄한 틀을 짜놓을지어다. 以上
亂麻복잡하게 뒤얽힌 어지러운 세상과 같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얼마간 비극적인 自己探求.
이런 흑발 같은 남루한 주제는
문벌이 버젓한 나로서 채택할 신세가 아니거니와
나는 서양의 에티켓으로 차 한 잔을 마실 적의 포ㅡ즈에 대하여도 세심하고 세심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휘파람 한 번을 분다 치더라도 네 극비리에 최선의 선율을 골라서 감춰진 옛 가락을 지켜가야만 한다. 그런 다음이 아니고는 나는 희망 잃은 황혼에서도 휘파람 한 마디를 마음대로 불 수는 없는 것이다.
동물에 대한 고결한 지식?
사슴, 물오리, 이 밖의 어떤 종류의 동물도 내 동물의 왕국에서는 낙탈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수렵용으로 귀엽게 가엽게 되어먹어 있는 동물 外에 동물에 언제든지 無可奈何막무가내 고집을 부림으로써 지혜가 없다.
또ㅡ 그럼 풍경에 대한 방만한 처신법?
어떤 풍경을 묻지 않고 풍경의 근원, 중심, 초점이 말하자면 나 하나
「도련님」다운 소행에 있어야 할 것을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강조한다.
나는 이 맹목적 신조를 두 눈을 그대로 딱 감고 믿어야 된다.
自進한「愚昧」「歿覺」이 참 어렵다. (스스로 무식한척 하기가 참 어렵다.)
보아라. 이 自得자득하는 愚昧우미의 絶技절기를! 歿覺몰각의 絶技절기를
白鷗는 宜白沙하니 莫赴春草碧 하라.
흰 갈매기는 흰 모래가 제격이다. 프른 풀밭에 앉지마라
李太白이는 전후만고의 으리의리한「華族화족」
나는 이태백을 닮기도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하여 오언절구 한 줄에서도 한 字 가량의 태연자약한 실수를 범해야만 한다.
현란한 문벌이 풍기는 가히 범할 수 없는 기품과 세도가 넉넉히 古詩 한 구절쯤 서슴지 않고 상처를 내어 놓아도 다들 어수룩한 체들 하고 속느니 하는 교만한 미신이다.
곱게 빨아서 곱게 다리미질을 해 놓은 한 벌 속옷에 깜박 속는 깨끗한 정조처럼
그렇게 아담하게 나는 어떠한 넘어지고 자빠짐에서도 거뜬하게 얄미운 미소와 함께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니까ㅡ 오늘날 내 한 氏族이 분명치 못한 소녀에게 섣불리 딴죽을 걸려 넘어진하다기로서니 이대로 내 오래 전부터 지니고 있는 희망의 호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終生을 한 방울 하잘 것 없는 오점을 내이는 채 숟가락 집어 던지 듯해서야 어찌 初志처음 품은 꿈의 만분의 일에라도 응답할 수 있는 면목이 족히 서겠는가, 하는 허울 좋은 구실이 긴긴 날의 밤보다도 오히려 한 뼘 짧은 내 앞으로 나가야 할 앞길에 맞닥뜨리기시작하는 것이었다.
완만 착실한 서술!
나는 과히 눈에 띠울성싶지 않은 한 지점을 재재바르게 붙들어서 거기서 공중 담배를 한 갑 사(주머니에 넣고) 피워 물고 정희의 뻔ㅡ한 걸음을 다시 뒤따랐다.
나는 그저 일상의 다반사를 간과하듯이 범연하게 휘파람을 불고, 내, 구두 뒤축이 아스팔트를 디디는 템포 음향, 이런 것들의 귀찮은 조절에도 깔끔히 정신 차리면서 넉넉잡고 삼분3분, 다시 돌친 걸음은 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부질없는 세상에 제 심각하면 침통하면 또 어쩌겠느냐는 듯싶은 서운한 눈의 위치를 동소문 밖 신개지풍경 어디라고 정하치 않은 한 점에 두어 두었으니 보라는 듯 한 부득부득 지근거리는 자세면서도 또 그렇지도 않을 성싶은 내 묘기 중에도 묘기를 더한층 허겁지겁 연마하기에 골돌하는 것이었다.
日暮청산ㅡ날은 저물었다. 아차! 아직 저물지 않은 것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보다.
날은 아직 저물지 않았다.
그러면 아까 장만해 둔 세간기구를 내세워 어디 차근차근 살림살이를 한 번 치뤄 볼 천우의 호기가 내 앞으로 다다랐나 보다.
자ㅡ 태생은 어길 수 없어 비천한「타」를 감추지 못하는 딸ㅡ
(앞에서 말한 치사한 소녀 운운 하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이 바보 李箱의 호의에서 나온 곡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