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경은 동이족의 경전이라 전해진다.
그 근원을 알 수 없을 많큼 오래된 경전이다.
지리서라고하기 도하고 소설류로 분류하기도 한다.
문자는 상형과 더불어 그 의미까지도 숱한 변화를 가지게된다.
장자는 당시대 이전의 시기에도 벌써 문자의 뜻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숱한 변란과 자료의 유실로인해 그 본의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힐 것이다.
가장 커다란 피해가 허신이 설문해자를 쓰면서 6국의 문자를 팽겨친 사건이라 할 것이다.
정체성이 없던 정복자가 고대의 역사를 날조하기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문자의 모양과 뜻을 바꾼 것이니
그나마 남겨진 흐릿한 옛자취 속에서 한알 한알 주서모아
산해경을 천문기록으로 해석해 나간다.
고대의 천문학은 동서양이 똑 같다.
동서양의 신화는 일맥상통하고
그 내용이 탈색을 했을 지언정
완전 변모하지는 않았다.
산해경의 내용 속에서
그 자취를 보게 된다.
山海經은 天文記錄이라는 황당한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산해경을 해석한 <곽박>이 쓴 서문의 글 입니다.
그는 본글 속에 산해경을 천문 기록으로 보라는 비밀스러운 말을 적고있습니다.
특히나 글 내용 중 司馬遷(사마천)의 大宛傳을 인용하면서 빠뜨린 -- 故言九州山川 尙書近之矣 --의 부분을 유의깊게 보시기바랍니다.
본인이 생각으로는 사마천 사기의 해석부터 잘 못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입니다.
해석에 따라 반전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의 탈락되면 해석상 많은 차이가 생기게됩니다.
山海經敍
郭璞
世之覽山海經者 皆以其閎誕迂誇 多奇怪俶儻之言 莫不疑焉 嘗試論之曰 莊生有云 人之所知 莫若其所不知 吾於山海經見之矣 夫以宇宙之寥廓 群生之紛 陰陽之煦 蒸 萬殊之區分 精氣渾淆 自相濆薄 遊魂靈怪 觸象而構 流形於山川 麗狀於木石者 惡可勝言乎 然則總其所以 鼓之於一響 成其所以變 混之於一象 世之所謂異 未知其所以異 世之所謂不異 未知其所以不異 何者 物不自異 待我而後異 異果在我 非物異也 故胡人見布而疑黂 越人見 而駭毳 夫翫所習見而奇所希聞 此人情之常蔽也 今略擧可以明之者 陽火出於氷水 陰鼠生於炎山 而俗之論者 莫之或怪 及談山海經 所載 而咸怪之 是不怪所可怪而怪所不可怪也 不怪所可怪 則幾於無怪矣 怪所不可怪 則未始有可怪也 夫能然所不可 不可所不可然 則理無不然矣 案汲郡竹書及穆天子傳 穆王西征見西王母 執璧帛之好 獻錦組之屬 穆王享王母於瑤池之上 賦詩往來 辭義可觀 遂襲昆侖之丘 遊軒轅之宮 眺鍾山之嶺 玩帝者之寶 勒石王母之山 紀跡玄 圃之上 乃取其嘉木豔草奇鳥怪獸玉石珍瑰之器 金膏燭銀之寶 歸而殖養之於中國 穆王駕八駿之乘 右服盜驪 左驂䱚耳 造父爲御 奔?(犇)戎鳥右 萬里長騖 以周歷四荒 名山大川 靡不登濟 東升大人之堂 西燕王母之廬 南轢黿鼉之梁 北躡積羽之衢 窮歡極娛 然後旋歸 案史記說 穆王得盜驪騄耳驊騮之驥 使造父御之 以西巡狩 見西王母 樂而忘歸 亦與竹書同 左傳曰 穆王欲肆其心 使天下皆有車轍馬跡焉 竹書所載 則是其事也 而礁周之徒 足爲通識瑰儒 而雅不平此 驗之史考 以著其妄 司馬遷敍大宛傳亦云..自張騫使大夏之後 窮河源 惡睹本紀所謂崑崙者乎 至禹本紀山海經所有怪物 余不敢言 不亦悲乎 若竹書不潛出於千載 以作徵於今日者 則山海之言 其幾乎廢矣 若乃東方生曉畢方之名 劉子政辨盜械之尸 王頎訪兩面之客 海民獲長臂之衣 精驗潛效 絶代顯符 於群惑者其可以少寤乎 是故聖皇原化以極變 象物以應怪 鑒無滯賾 曲盡幽情 神焉庾哉 神焉庾哉 皆此書跨世七代 歷載三千 踓暫顯於漢而尋廢 其山川名號 所在多有舛謬 與今不同 師訓莫傳 遂將湮泯 道之所存 俗之喪悲夫 余有懼焉 故爲之創傳 疏其壅閡 闢其茀蕪 領其玄致 標其洞涉 庶幾令逸文 不墜於世 奇言不 絶於今 夏后之跡 靡栞於將來 八荒之事 有聞於後裔 不亦可乎 夫蘙薈之翔 叵以論垂天之凌夫之翔 蹏涔之遊 無以知絳虯之騰 鈞天之庭 豈伶人之所躡 無航之津豈蒼兕之所涉 非天下之至通 難與言山海之義矣 嗚呼 達觀博物之客 其鑒之哉
山海經敍解(산해경서해)
1.<世之覽山海經者 皆以其閎誕迂誇 多奇怪俶儻之言 莫不疑焉 嘗試論之曰 >
山海經(산해경)을 읽는 사람이면 모두 그 책이 황당무계하며 유별난 말이 많기 때문에 의혹을 품지 않는 이가 없다.
먼저 이 점에 대해 논의하자면,
2.<莊生有云 人之所知 莫若其所不知 吾於山海經見之矣 夫以宇宙之寥廓 群生之紛 (紜) 陰陽之煦蒸 萬殊之區分 精氣渾淆 自相濆薄 遊魂靈怪 觸象而構 流形於山川 麗狀於木石者 惡可勝言乎 然則總其所以 ?(乘)>
장자의 말에 “사람이 아는 것은 모르는 것에 앞서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산해경에서 그 것을 볼 수 있다.
대저로 광활한 우주에 뭇 생명이 어지럽게? 나뉘어있으며 陰陽(음양) 작용의 빛을 받아 일어나면
만물이 나누어 자리를 정하고,
정과 기가 뒤섞여서 서로 휘감아 가벼워지면 떠돌기 시작하여
(혼.령.괴)가 맞닿아 모양을 이뤄 내는데 떠도는 모양새가 산과 물길이고,
빛나는 자태가 나무와 돌이라는 것을 어찌 더 덧붙여 말하겠는가.
그런 즉 산해경에 쓰여있는 있는 것 전부가 그렇다.
莊子(장자):莊生(장생) 周(주)나라 말기 BC 368-321 춘추전국시대 楚(초)나라사람 노자학설 이어 받음
人之所知........: 莊子(장자)外篇/秋水 내용 중에 나오는 말
若(약): 만일(如), 혹은(或), 미치다, 너, 젊을 등의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 若(약)의 의미는 앞서다, 먼저, 의 뜻을 가진다.
--先聖周公若孔子(禮記) 知子莫若父(管子) 若乃東方生曉畢方之名(山海經敍. 郭璞)
魂.靈.怪(혼.령.괴): 魂은 시간의 변화로 나타남. 靈은 공간의 위치 변화로 나타남. 怪는 물질의 형태의 변화로 나타나는 형상을 뜻함
<然則總其所以 ?(乘) >에서 은 乘자로 읽고 “올라있는, 적혀있는”으로 해석
“<總其所以乘>산해경에 쓰여있는 글 내용 모두가 그렇다”는 뜻
敍의 내용 중에는 장자莊子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 많이 있다.
산해경과 장자의 관계는 차후 면밀히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위 글의 대체적인 내용은 산해경 책 속에서 우주 ,밤하늘의 별자리 모양새를 만들고 표현해내는 방법의 설명이다.
산해경 속의 모든 별자리들에 관한 표현은 山, 川, 木, 石, 등의 이름으로 적었다는 말이다.
즉 산해경 속의 산천이름. 물길이름. 나무이름. 돌이름.등등의 용어는 별자리에 관한 내용의 기술이라는 말이다.
3.<鼓之於一響成其所以變混之於一象 世之所謂異 未知其所以異 世之所謂不異 未知其所以不異 何者 物不自異 待我而後異 異果在我 非物異也>
북이란 하나의 소리를 이뤄 내는 것인데,
그것이 변화하고 뒤섞여서 하나의 象으로 이뤄지면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다 이르는데,
그 이상한 바는 알지 못한다.
세상의 이상하지 않다는 것도 그 이상하지 않은 바를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물은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나의 생각을 거쳐서 이상해지는 것이다.
이상하다는 것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지 사물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一象 : 소리가 어우러지면 하나의 상을 이룬다는 말은 소리를 눈으로 본다는 말이다.
소리를 하나의 象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현대의 "오실로 스코프" 정도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은 없었다.
" 북 소리가 象을 이루어 낸다는 말은 산해경 속의 별자리의 위치를 말하는 좌표값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산해경 내용의 "북소리. 종소리. 其音如"등이 그 것이다.
북소리의 파동의 퍼짐은 둥근 원을 그리며 퍼지고,
그 북소리를 내는 위치에 따라 천문도상의 좌표값 구실을 하는 곳이다.
이런 말을 하면 이상하다 할 것이다.
이상하다는 것은 결국 편협한 생각을 하는 나에게 있는 것이지
본디 사물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4.<故胡人見布而疑黂 越人見 而駭毳 夫翫所習見而奇所希聞 此人情之常蔽也 今略擧可以明之者 陽火出於氷水 陰鼠生於炎山 而俗之論者 莫之或怪 及談山海經所載 而咸怪之 是不怪所可怪而怪所不可怪也 >
따라서 북방의 胡人(호인)은 광목을 보면 배인가 의심하고
남방의 越人(월인)은 담요를 보면 모피라 하여 놀랜다.
무릇 자주 보아온 것은 그대로 믿고 새로운 것은 기이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의 일상적인 생각이다.
예를 들어 간단히 증명하면,
氷水(빙수)에서 陽火(양화)가 나오고 (염산)에 陰鼠(음서)가 산다는 세속의 이야기는괴이하게 여기지 않고,
산해경에 그런 말이 써있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괴이하게 여긴다.
이것은 괴이할만한 것은 괴이하지 않다 하고,
괴이하지 않은 것을 것은 괴이하다 라고 하는 것이다.
5.<不怪所可怪 則幾於無怪矣 怪所不可怪 則未始有可怪也 夫能然所不可 不可所不可然 則理無不然矣>
괴이할만한 것을 괴이하지 않게 여긴다면 그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는 태도이며,
괴이하게 여길만하지 않은 것을 괴이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의심할 것도 없는 것을 가지고 그러는 것이다.
무릇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면 응당, 그렇지 않은 것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 이치에 어긋남이 없다.
6.<案汲郡竹書及穆天子傳 穆王西征見西王母 執璧帛之好 獻錦組之屬 穆王享王母於瑤池之上 賦詩往來 辭義可觀 遂襲昆侖之丘 遊軒轅之宮 眺鍾山之嶺 玩帝者之寶 勒石王母之山 紀跡玄圃之上 乃取其嘉木豔草奇鳥怪獸玉石珍瑰之器 金膏燭銀之寶 歸而殖養之於中國 >
(급군죽서, 목천자전)을 보면 (목왕)은 서쪽으로 정벌을 가서 서왕모를 만나
가지고 간 아름다운 비단을 짝을 맞춰 바쳤다.
목왕은 瑤池(요지)의 못 가에서 서왕모와 즐겁게 시를 주고받았는데 그 표현과 뜻이 볼만하였다.
마침내는 곤륜 언덕에 올라 헌원궁에서 노닐며 종산의 봉우리를 보고 천제의 보물을 갖고 놀며
왕모산의 돌에 글을 새기고 玄圃(현포)의 꼭대기에 발자취를 남겼다.
또한 그곳의 아름다운 나무와 고운 풀과 기이한 새, 괴상한 짐승, 옥돌과 보석,
기물, 금고 촉은의 보물을 얻어 돌아와 그 것을 도심에 심고 가꾸었다.
7.<穆王駕八駿之乘 右服盜驪 左驂䱚耳 造父爲御 奔?(犇)戎鳥右 萬里長騖 以周歷四荒 名山大川 靡不登濟 東升大人之堂 西燕王母之廬 南轢黿鼉之梁 北躡積羽之衢 窮歡極娛 然後旋歸 >
목왕은 여덟 마리의 준마가 끄는 수레를 탔다.
오른쪽으로 도려를 가운데에 부리고 왼쪽으로는 녹이를 바깥에 부리고,
조보를 마부로 삼아 분융을 오른쪽에 태워 만리를 쉬지 않고 달려 사방의 끝을 돌아보고
명산대천을 오르고 건너지 않은 곳이 없었다.
동승에는 대인국의 당이고,
서연에는 서왕모의 집이고 남력에는 원타의 다리가 있고,
북섭에는 적과 우의 갈림길이 있다.
기쁨과 즐거움을 모두 누린 후에야 돌아 왔다.
案汲郡竹(급군죽서): 竹書紀年(죽서기년):279년 허난성[河南省]양왕 릉에서 穆天子傳(목천자전) 周語(주어)등과 더불어 출토되었다.
급총기년汲塚紀年(급총기년)이라고도 함. 夏(하), 殷(은), 周(주) 魏(위)襄王(양왕)때까지를 편년체로 엮은 역사서.
穆天子傳(목천자전): 위(魏)나라 무렵의 작품으로 작가 미상.
진(晉)나라의 大康(대강)2년(281) 위나라 국왕의 무덤에서 발굴. 山海經(산해경)과 같이 奇書(기서)로 분류 됨
穆王(목왕): BC1000경 周(주)나라 昭王(소왕) 의 아들
8.<案史記說 穆王得盜驪騄耳驊騮之驥 使造父御之 以西巡狩 見西王母 樂而忘歸 亦與竹書同 左傳曰 穆王欲肆其心 使天下皆有車轍馬跡焉 竹書所載則 是其事也 而礁周之徒 足爲通識瑰儒 而雅不平此 驗之史考 以著其妄>
(사기)를 보면 목왕이 도려 녹이 화류 같은 천리마를 얻어 조부로 하여금 몰게 하여 서쪽을 돌아보고
서왕모를 만나서 즐기느라 돌아올 것을 잊었다고 했는데 역시 (죽서)의 기록과 같다.
(좌전)에서는 목왕이 자신의 뜻한 바를 펼치고자 천하의 모든 곳에 수레의 바퀴와 말의 발자취를 남겼다.라고 했는데
竹書(죽서)에 있는 기록이 바로 이 일이다.
이에 (초주)를 따르는 사람은 식견있는 대학자라 하는데도
평소에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사고를 검토함에 그의 잘못을 들어냈다.
礁周(초주): 250년 三國時代(삼국시대) 蜀(촉)나라.天文(천문) 史家(사가)사마천의 史記(사기)가 正經(정경)에 의하지 않고 쓰였다 하여 舊典(구전)에 의거 <古史考>를 저술
9.<司馬遷敍大宛傳亦云..自張騫使大夏之後 窮河源 惡睹本紀所謂崑崙者乎 至禹本紀山海經所有怪物 余不敢言 不亦悲乎 若竹書不潛出於千載 以作徵於今日者 則山海之言 其幾乎廢矣
(사마천)은 大宛傳(대완전)을 쓰면서 “張騫(장건)이 大夏(대하)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黃河(황하)의 발원지를 탐색해왔지만 어찌 (우본기)에 이르는 이른바 곤륜이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우본기)와 山海經(산해경)에 있는 怪物(괴물)에 대해서 나는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니
이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만약 竹書(죽서)가 감추어진 지 1.000년이 지나 세상에 나와 오늘날에 증거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산해경의 이야기는 거의 폐기되었을 것이다.
大宛傳: 史記卷一百二十三大宛列傳第六十三장건의 서역 여행기록, 自張중국 전한(前漢)한나라 때 여행가.
중국 사상 최초로 서역교통를 개척한 사람.
무제(武帝)의 명을 받고 흉노를 협공하기 위해 일리강(江) 유역에 있던 대월지(大月氏)와 동맹하고자 BC 139년경 장안을 출발하였다.
도중에 흉노에게 붙잡혔으나 탈출하여 대완(大宛) ․강거(康居)를 거쳐 이미 아무다리야 북안으로 옮긴 대월지에 도착하였다(BC 129년경).
그러나 대월지는 흉노를 칠 의사가 없어 동맹에 실패하고 귀국하던 중 다시 흉노의 포로가 되었다가 BC 126년 귀국하였다.
BC 121년 오손(烏孫)으로 파견되었는데, 그 곳에서 그가 파견한 부사(副使)들이 서역 제국의 사절 ․대상(隊商)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의 여행으로 서역의 지리 ․민족 ․산물 등에 관한 지식이 중국으로 유입되어 동서간의 교역과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史記卷一百二十三大宛列傳第六十三 解部
禹本紀(우본기): 史記(사기)중 夏本紀(하본기) 禹의 事蹟(사적)에 관한 글
竹書(죽서): 279년위의 양왕릉에서 《목천자전(穆天子傳)》 《주어(周語)》등과 더불어 출토되었다.
《급총기년(汲塚紀年)》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고대 초에서 하(夏) ․은(殷) ․주(周)를 거쳐 위(魏)의 양왕(襄王:재위 BC 334~BC 319) 때까지를 편년체로 엮은 역사서.
史記 卷一百二十三 <大宛列傳> 末尾
---太史公曰 禹本紀言河出崑崙 崑崙其高二千五百餘里, 日月所相避隱爲光明也. 其上有醴泉瑤池 今自張騫使大夏之後也, 窮河源, 惡睹本紀所謂崑崙者乎 故言九州山川 尙書近之矣 至禹本紀山海經所有怪物 余不敢言之也.---
--- 禹本紀(우본기)에 黃河(황하)의 물은 곤륜산에서 발원하고,
곤륜산은 2.500리에 달하는 높이고, 해와 달이 이 산을 비껴가며 옆에서 비춘다고 한다.
그 위에는 醴泉(예천)과 瑤池(요지)가 있다라고 했다.
이제 張騫(장건)이 大夏(대하)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黃河(황하)의 발원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어찌 禹本紀(우본기)에 이르는 곤륜산이라는 것과 견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九州山川(구주산천)이란 尙書(상서)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禹本紀(우본기)와 山海經(산해경)에 있는 怪物(괴물)에 대해서 나는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 내용 중 <故言九州山川 尙書近之矣 >의 부분이 빠져있다.
한편 많은 주석서들이 <故言九州山川 尙書近之矣> 의 부분은 별 관심 없이 다루고 있다.
내용상 어떤 차이를 가지는가?
땅이름으로 九州山川(구주산천)이라는 말은 尙書(상서)에나가서 알아보라는 뜻인데,,,
故言九州山川 尙書近之矣 : 즉 지명으로써의 九州山川이라는 말은 尙書 지리서에나 어울리는 말이고,
우본기와 산해경에서의 九州山川 과는 다른 뜻이라는 말이다.
즉 산해경에서의 九州山川이란 밤하늘을 통틀어 九州구주라하는 것이고
괴물이란, 하늘의 별자리 모양을 말하는 것이다.
사마천이 怪物(괴물)에 대해서 "나는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天文에 관한 내용이니 감히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천문의 누설은 천기누설이요 곧 죽음을 부르는 일인 것이다.
10.<若乃東方生曉畢方之名 劉子政辨盜械之尸 王頎訪兩面之客 海民獲長臂之衣 精驗潛效 絶代顯符 於戲 群惑者其可以少寤乎 是故聖皇原化以極變 象物以應怪 鑒無滯賾 曲盡幽情 神焉庾哉 神焉庾哉>
앞서 또한, (동방삭)이 필방의 이름을 알아 맞추고,
(유자) 유향이 도계시를 알아 맞춘 말과 왕기가 양면객을 찾아보고 어부가 장비인의 옷을 손에 넣었던 일 같은 예기는
묻힌 것을 찾아 세밀히 찾으면 잊혀진 것들이 나타날 것이다.
아.‼ 의혹을 품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성황)의 “사물의 변화가 이뤄내는 조화의 원리”이고
괴이한 사물의 그런 변화된 모양의 원리를 이치에 막힘이 없이 깊이 살펴 허리가 굽도록 온정을 다하였으니,
신이 어찌 숨기겠는가? 신이 어찌 숨기겠는가?
東方朔(동방삭): BC140 前漢(전한) 武帝(무제)해학에 뛰어나고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함. 神異經(신이경).十洲記(십주기).저술
劉子(유자): BC82~BC6 前漢(전한) 宣帝(선제) 산해경을 교감한 劉秀(유수)의 父
동방삭이 필방의 이름을 알아 맞추고, (유자) 유향이 도계시를 알아 맞춘 말과 왕기가 양면객을 찾아보고 어부가 장비인의 옷을 손에 넣었던 일 ⇒ 산해경유수교상표 내용이다.
11.<皆此書跨世七代 歷載三千 踓暫顯於漢而尋廢 其山川名號 所在多有舛謬 與今不同 師訓莫傳 遂將湮泯 道之所存 俗之喪悲夫 余有懼焉 故爲之創傳 疏其壅閡 闢其茀蕪 領其玄致 標其洞涉>
이 책은 七代를 거쳐 3.000년이 지난 뒤에 비록 漢代(한대)에 잠시 나타났으나 그대로 버려졌다.
그 산천의 이름과 위치는 어긋나고 잘 못된 곳이 많아 지금과는 다르다.
해석하는 방법도 전해지지 않고 마침내 소멸되려 한다.
진리가 담긴 것인데, 세상사람들이 이것을 잊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는 이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런 까닭에 주석을 달아 막힌 곳을 뚫고 황폐한 곳에 길을 내고,
어두운 밤하늘에 다다르는 길목을 세워 건너는 골짜기를 표시한다.
7代: BC2200년--夏(하). 殷(은). 周(주). 秦(진). 漢(한). 魏(위). 晉(진)
어두운 밤하늘에 다다르는 길목을 세워 건너는 골짜기를 표시
하늘의 별자리를 천문도상에 그려 놓았다는 말이다.
12.< 庶幾令逸文 不墜於世 奇言不絶於今 夏后之跡 靡栞於將來 八荒之事 有聞於後裔 不亦可乎>
훌륭한 뜻이 어려있는 많은 글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고,
진기한 이야기가 오늘에도 끊기지 않고夏后 의 발자취가 미래에 사라지지 않고
여덟 개의 들판의 이야기가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면 좋지 않겠는가.
여덟 개의 들판의 이야기
천문도상의 하늘을 여덟 개의 들판(구역)으로 나눠 놓았다는 말이다.
13.<夫蘙薈之翔 叵以論垂天之凌夫之翔 蹏涔之遊 無以知絳虯之騰 鈞天之庭 豈伶人之所躡 無航之津豈蒼兕之所涉 非天下之至通 難與言山海之義矣 嗚呼 達觀博物之客 其鑒之哉 >
무릇 풀숲의 새가 하늘을 나는 경지를 논할 수 없고,
발자국에 고인 물에서 노는 것이 붉은 용이 하늘에 오르는 경지를 알 수 없고,
장엄한 음률이 울려 퍼지는 천상의 뜨락에 속된 악공이 발을 디딜 곳이 아니며,
배 없는 나루터에서 어찌 蒼梧之山과 兕까지 건너 갈 수 있겠는가.
天下를 통달하지 않고는 더불어 山海經의 의미를 말하기 어렵다.
아‼ 天下를 통달한 박식한 後代(후대)사람은 이것을 거울로 삼을 것이다.
夫蘙薈之翔: [莊子(장자) 逍遙遊(소요유)편] 우화 내용
蹏涔之遊: [淮南子(회남자) 俶眞訓(숙진훈)
鈞天: 하늘의 중앙
蒼兕: 별자리 이름⇒ 山海經解(산해경) 海內南經(해내남경)
"아‼ 天下를 통달한 박식한 後代(후대)사람"
그는 다름 아닌 후대의 천문학자를 이르는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