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漢書天文解釋本 -2-
三皇邁化協神醇朴謂五星如連珠日月若合璧化由
신농(神農)복희(伏羲)여와(女?)의 교화로 신을 도와 세상이 순박해지니 이르길
하늘의 5성이 마치 한 줄에 꿴 구슬과 같으니 해와 달이 꼭 들어맞게 됨으로 하여
自然民不犯慝至於書契之興
이로부터 백성들은 혼란스런 재앙을 당하지 않게 되고 글자를 적게 되니 나라가 흥성하게 되었다.
五帝是作軒轅始受河圖?苞授規日月星辰之象
5황제가 이를 만든 것이다. 헌원이 河圖하도를 얻으면서부터
마주보고 싸여있는 것의 운행 규칙을 전수받았으니 그것이 해와 달과 별들의 모양이다.
故星官之書自黃帝始至高陽氏使南正重司天北正黎司地
그리하여 별을 관측하는 관리가 글로 적은 것이다.
황제로부터 고양에 이르기까지 남쪽은 重중이 하늘의 정남쪽을 정확하게 살피도록하고
북쪽은 黎려를 시켜 땅의 출지(북극)를 정확하게 살피도록 한 것이다.
唐虞之時羲仲和仲夏有昆吾湯則巫咸周之史佚?弘宋之子韋楚之唐蔑魯之梓?鄭之裨?魏石申夫齊國甘公皆掌天文之官
唐虞당우 때는 희중 화중 두 아들이
夏하시절에는 곤오가
湯탕 때에는 무함이었으며
周주나라 때에 사일과 장홍이,
宋송나라 때 자위.
楚초나라 때 당멸이.
魯노나라 때 재신이.
鄭정나라 때에 비조가.
魏위나라 때 석신부가.
齊제나라 때에 국감공. 이모두가 천문을 관장하는 관리였다.
仰占俯視以佐時政步變?微通洞密至採禍福之原睹成敗之勢
하늘을 우러러 좌표를 맞추고 아래쪽(천문도)를 보고 시간값을 추산해
그 지나간 미세한 값까지 들춰내 찾는 것이니
지나가는 것을 촘촘하게 찾아내는 것이
재앙이 될 것인가 이로움이 될 것인가의 원천이니 분별 해내는 것이 성패의 관건인 것이다.
-해설-
三皇邁化協神醇朴謂五星如連珠日月若合璧化由
신농(神農)복희(伏羲)여와(女?)의 교화로 신을 도와 세상이 순박해지니 이르길
하늘의 5성이 마치 한 줄에 꿴 구슬과 같으니 해와 달이 꼭 들어맞게 됨으로 하여
삼황의 교화가 있기 전에는 해와 달. 별들이 중구남방 혼돈의 시기였던가?
아니다.
그 때도 해와 달은 지금과 같이 공전 자전을 하고 있었다.
목성과 수성 달 등의 행성에 어떤 때는 높이 떴다가 낮게 뜨고
어떤 때는 역행을 하고 어떤 때는 동쪽에서 보이다가 서쪽에서 보이고
도저히 그 질서를 알지 못했던 것인데
신농.복희.여와가 천문을 하면서부터 그 질서를 파악 했다는 말이다.
하늘의 5성이 마치 한 줄에 꿴 구슬과 같고 해와 달이 꼭 들어맞게 다는 말은
하늘의 달과 오성이 해의 길을 따라 돌아가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다.
즉 천문 상 黃道황도의 의미를 알게 됐다는 말이다.
황도란 하늘에서 해가 한 해 동안 지나는 길로, 지구의 공전에 의해 생긴다.
달과 오성은 각기 궤도 이심율에 따라 황도의 위아래를 지나며 운행한다.
천문 관측을 통해 밤하늘 행성의 운행법칙을 알고 보니
모두가 해의 길을 따라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구술을 꿰듯이......
그림1
自然民不犯慝至於書契之興
이로부터 백성들은 혼란스런 재앙을 당하지 않게 되고 글을 적게 되니 나라가 흥성하게 되었다.
운행의 법칙을 알았으니 계산에 의해 일식과 월식을 미리 백성들에게 알리고 춘분 하지등의 절기를 알려주니
당연 백성들은 안정되고 천자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書契에 관한 자세한 내역은 추후 올림
五帝是作軒轅始受河圖?苞授規日月星辰之象
5황제가 이를 만든 것이다. 헌원이 河圖하도를 얻으면서부터 마주보고 싸여있는 것의 운행 규칙을 전수받았으니
그것이 해와 달과 별들의 모양이다.
여기 분명히 하도는 해와 달과 별이 그려진 천문도라 적고 있다.
지금 전해지는 하도로 일월성진의 모양을 찾아볼 수 있는가?
1-10까지의 숫자배열에 불과하다. 그 숫자 배열로 무슨 법칙을 전수 받은 것인가?
그림2
하도는 마방진의 그림이다.
마방진의 합해진 숫자가 15가 되는 의문점이 우리를 요상한 세계로 이끌 뿐이다.
요상한 것과 과학은 다른 것이니 河圖는 天文圖다.
河圖를 문자적으로 세밀히 탐구한다면 銀輕度은경도이다.
고대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천문이 시작 됐으니까.
그때 이미 은하의 구조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늘을 9야로 나눌 때 은하의 북극을 중앙 균천으로 1야를 삼아 8등분 한 것이다.
故星官之書自黃帝始至高陽氏使南正重司天北正黎司地
그리하여 별을 관측하는 관리가 글로 적은 것이다.
황제로부터 고양에 이르기까지 남쪽은 重중이 하늘의 정남쪽을 정확하게 살피도록하고
북쪽은 黎려를 시켜 땅의 출지(북극)를 정확하게 살피도록 한 것이다.
이때부터 일기 형식의 천문서를 작성 했다는 말이다.
또한 관리를 두어 천문 관측기를 정확히 다루기 위해 각각의 임무를 부여했다는 말이다.
그림4
重중과 黎려는 고양 때의 두 인물이다.
그런데 사마천 사기에는 고양씨는 황제의 손자이며 창의 아들이고. 고양씨가 칭을 낳고 칭은 권장을 낳았다.
권장의 아들 중려(重黎)가 있는데, 제곡 고신씨를 위해 큰공을 세워서 그로 인하여 천하가 밝게 빛나게 되었다고 한다.
제곡이 명하여 중려를, 세상을 밝게 빛냈다는 뜻의 축융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했는데 시대차가 있어 보인다.
이 글을 보면 重黎중려라는 사람은 없다. 중과 려 두 사람이 있다.
仰占俯視以佐時政步變?微通洞密至採禍福之原睹成敗之勢
하늘을 우러러 좌표를 맞추고 아래쪽(천문도)를 보고 시간값을 추산해
그 지나간 미세한 값까지 들춰내 찾는 것이니
지나가는 것을 촘촘하게 찾아내는 것이 재앙이 될 것인가 이로움이 될 것인가의 원천이니 분별 해내는 것이 성패의 관건인 것이다.
占:좌표를 맞추다.
佐時政: 시간값을 추산하다.
步變: 별자리가 이동한 거리
관측하는 별의 좌표가 천문도상의 별자리에 나타난 적경 적위 값이 정확한가에 따라 관측의 성패가 결정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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