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金裕貞)

ㅡ소설체(小說體)로 쓴 김유정론(金裕貞論) 

    암만해도 성을 안낼 뿐만 아니라 누구를 대(對)할 때든지 늘 좋은 낯으로 해야 쓰느니 하는 타입의 우수(優秀)한 견본(見本)이 김기림(金起林)이라.

   좋은 낯을 하기는 해도 적(敵)이 비례(非禮)를 했다거나 끔찍이 못난소리를 했다거나 하면 잠자코 속으로만 꿀꺽 업신여기고 그만두는 그러기 때문에 근시안경(近視眼鏡)을 쓴 위험인물(危險人物)이 박태원(朴泰遠)이다.

   업신여겨야 할 경우(境遇)에 「이놈! 네까진 놈이 뭘 아느냐」라든가 성을 내면 「여! 어디 뎀벼봐라」쯤 할 줄 아는, 하되, 그저 그럴 줄 알다뿐이지 그만큼 해두고 주저않는 파(派)에, 고만 이유(理由)로 코밑에 수염을 저축(貯蓄)한 정지용(鄭芝溶)이 있다.

   모자(帽子)를 홱 벗어던지고 두루마기도 마고자도 민첩(敏捷)하게 턱 벗어던지고 두 팔 훌떡 부르걷고 주먹으로는 적(敵)의 벌마구니를 발길로는 적(敵)의 사타구니를 격파(擊破)하고도 오히려 행유여력(行有餘力)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그치는 희유(稀有)의 투사(鬪士)가 있으니 김유정(金裕貞)이다.

    누구든지 속지 마라. 이 시인(詩人) 가운데 쌍벽(雙壁)과 소설가(小說家) 중(中) 쌍벽(雙壁)은 약속(約束)하고 분만(分娩)된 듯이 교만(驕慢)하다. 이들이 무슨 경우(境遇)에 어떤 얼굴을 했댔자 기실(其實)은 그 교만(○慢)에서 기출(箕出)된 표정(表情)의 떼풀메이션 외(外)의 아무것도 아니니까 참 위험(危險)하기 짝이 없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이분들을 설복(說服)할 아무런 학설(學說)도 이 천하(天下)에는 없다. 이렇게들 또 고집이 세다.

   나는 자고(自古)로 이렇게 교만(驕慢)하고 고집센 예술가(藝術家)를 좋아한다. 큰 예술가(藝術家)는 그저 누구보다도 교만(驕慢)해야 한다는 일이 내 지론(持論)이다.

   다행(多幸)히 이 네 분은 서로들 친(親)하다. 서로 친(親)한 이분들과 친(親)한 나 불초(不肖) 이상(李箱)이 보니까 여상(如上)의 성격(性格)의 순차적(順次的) 차이(差異)가 있는 것은 재미 있다. 이것온 흑(或) 불행(不幸)히 나 혼자의 재미에 그칠는지 우려(憂慮)지만 그래도 좀 재미있어야 되겠다.

   작품(作品) 이외(以外)의 이분들의 일을 적확(的確)히 묘파(描破)해서 써 내 비교교우학(比較交友學)을 결정적(決定的)으로 여실(如實)히 하겠다는 비장(悲壯)한 복안(腹案)이어늘,

   소설(小說)을 쓸 작정(作定)이다. 네 분을 각각(各各) 주인(主人)으로 하는 네 편(篇)의 소설(小說)이다.

   그런데 족보(族譜)에 없는 비평가(批評家) 김문집(金文輯) 선생(先生)이 내 소설(小說)에 오십구점(五十九點)이라는 좀 참담(慘憺)한 채점(採點)을 해 놓셨다. 오십구점(五十九點)이면 낙제(落弟)다. 한 끝만 더 했더면ㅡ 그러니까 서울말로 「낙째 첫찌」다. 나는 참 낙담(落膽)했읍니다. 다시는 소설(小說)을 안 쓸 작정(作定)입니다ㅡ는 즉 거짓말이고, 이 경우(境遇)에 내 어쭙잖은 글이 네분의 심사(心思)를 건드린다거나 읽는 이들의 조소(嘲笑)를 산다거나 하지나 않을까 생각을 하니 아닌게아니라 등어리가 꽤 서늘하다.

   그렇거든 오십구점(五十九點)짜리가 그럼 그렇지 하고 그저 눌러 덮어주어야겠고 뜻밖에 제법 되었거든 네 분이 선봉(先鋒)을 서서 김문집(金文輯) 선생(先生)께 좀 잘 좀 말해 주셔서 부디 급제(及第)좀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김유정(金裕貞) 편(篇)

   이 유정(裕貞)은 겨울이면 모자(帽子)를 쓰지 않는다. 그러면 탈모(脫帽)ㄴ가? 그의 그 더벅머리 위에는 참 우글쭈글한 벙거지가 얹혀있는 것이다. 나는 걸핏하면
   「김형(金兄)! 그 김형(金兄)이 쓰신 모자(帽子)는 모자(帽子)가 아닙니다」
   「김형(金兄)! (이 김형[金兄]이라는 호칭[呼稱]인즉은 이상[李箱]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 어떡하시는 말씀입니까」
   「거 벙거지, 벙거지지요」
   「벙거지! 벙거지! 옳습니다」

   태원(泰遠) 회남(懷南)도 유정(裕貞)의 모자(帽子) 자격(資格)을 인정(認定)하지 않는다. 벙거지라고밖에!

   엔간해서 술이 잘 안 취(醉)하는데 취(醉)하기만 하면 딴 사람이 되고 만다. 그것은 무엇을 보고 아느냐 하면ㅡ

   보통(普通)으로 주먹을 쥐이고 쓱 둘째 손가락만 쪽 펴면 사람가리키는 신호(信號)가 되는데 이래 가지고는 그 벙거지 차양(遮陽) 밑을 우벼파면서 나사못 박는 흉내를 내는 것이다. 허릴없이 젖먹이 곤지곤지 형용(形容)에 틀림없다.

    창문사(彰文社)에서 내가 집무(執務)랍시고 하는 중(中)에 떠억 나를 찾아 온다. 와서는 내 집무(執務) 책상 앞에 마주앉는다. 앉아서는 바윗덩어리처럼 말이 없다. 낸들 또 무슨 그리 신통한 이야기가 있으리요. 그저 서로 벙벙히 앉았는 동안에 나는 나대로 교정등속(校正等屬) 일을 한다. 가지가지 부호(符號)를 써서 내가 교정(校正)을 보고 있노라면 그는 불쑥

   「김형(金兄)! 거 지금 그 표는 어떡하라는 표구요」
이런다. 그럼 나는 기가 막혀서
   「이거요, 글짜가 곤두섰으니 바루 놓으란 표지요」

하고 나서는 또 그만이다. 이렇게 평소(平素)의 유정(裕貞)은 뚱보다. 이런 양반이 그 곤지곤지만 시작되면 통성(通姓) 다시 해야 한다.

    그날 나도 초(初)저녁에 술을 좀 먹고 곤(困)해서 한참 자는데 별안간 대문을 뚜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한시(時)나 가까왔는데ㅡ하고 눈을 비비며 나가보니까 유정(裕貞)이 B군(君)과 S군(君)과 작반(作伴)해 와서 이 야단이 아닌가. 유정(裕貞)은 연해 성(盛)히 곤지곤지중(中)이다. 나는 일견(一見)에 「익키! 이건 곤지곤지구나」하고 내심(內心) 벌써 각오(覺悟)한 바가 있자니까 나가잔다.

   「김형(金兄)! 이 유정(裕貞)이가 오늘 술, 좀, 먹었읍니다. 김형(金型)! 우리 또 한잔허십시다」

   「아따 그러십시다그려」

   이래서 나도 내 벙거지를 쓰고 나섰다.

   나는 단박에 취(醉)해 버려서 역시(亦是) 그 비장(秘藏)의 가요(歌謠)를 기탄(忌憚)없이 내뽑은가 싶다. 이렇게 밤이 늦었는데 가무음곡(歌舞音曲)으로써 가구(街衢)를 소란(騷亂)케 하는 것은 법규상(法規上) 안 된다. 그래 주파(酒婆)가 이러니 저러니 좀 했더니 S군(君)과 B군(君)은 불온(不穩)하기 짝이 없는 언사(言辭)로 주파(酒婆)를 탄압(彈壓)하면, 유정(裕貞)은 또 주파(酒婆)를 의미(意味)깊게 흘낏, 한 번 흘겨보더니

   「김형(金兄)! 우리 소리합시다」

하고 그 척 척 붙어 올라을 것 같은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강원도(江原道)아리랑 팔만구암자(八萬九庵子)를 내쁩는다. 이 유정(裕貞)의 강원도(江原道)아리랑은 바야흐로 천하일품(天下一品)의 경지다.

   나는 소독젓(消毒著)까락으로 사기 추탕(鰍湯) 보시깃전을 갈기면서 장단(長短)을 맞춰 좋아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한쪽에서 S군(君)과 B군(君)이 불화(不和)다. 취중(醉中) 문학담(文學談)이 자연(自然) 아마 그리된 모양인데 부전부전하게 유정(裕貞)이 또 거기가 한몫 끼이는 것이다. 나는 술들이나 먹지 저 왜들 저러누, 하고 서서 보고만 있자니까 유정(裕貞)이 예(例)의 그 벙거지를 떡 벗어 던지더니 두루마기 마고자 저고리를 차례로 벗어 젖히고는 S군(君)과 맞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싸움의 테마는 아마 춘원(春園)의 문학적(文學的) 가치(價値) 운운(云云)이던 모양인데 어쨌든 피차(彼此) 어지간히들 취중(醉中)이라 문학(文學)은 저리 집어치우고 인제 문제(問題)는 체력(體力)이다. 뺨도 치고 제법 태껸도들 한다. S군(君)은 이리 비철 저리 비철 하면서 유정(裕貞)의 착의일식(着衣一式)을 주워들고 바ㅡ로 뜯어말린답시고 한가운데 가 끼여서 꾸기적 꾸기적 하는데 가는 발길 오는 발길에 이래저래 피해(被害)가 많은 꼴이다.

   놀란 것은 주파(酒婆)와 나다.

   주파(酒婆)는 술은 더 못 팔아도 좋으니 이 분들을 좀 밖으로 모셔 내라는 애원(哀願)이다. 나는 B군(君)과 협력(協力)해서 가까스로 용사(勇士)들을 밖으로 끌고 나오기는 나왔으나 이번에는 자동차(自動車)가 줄다서 왕래(往來)하는 대로(大路) 한복판에서들 활약(活躍)이다. 구경군이 금시로 뫃여든다. 용사(勇士)들의 사기(士氣)는 백열화(白熱化)한다.

   나는 섣불리 좀 뜯어말리는 체하다가 얼떨결에 벙거지 벗어진 것이 당장 용사(勇士)들의 군용화(軍用靴)에 유린(蹂躪)을 당하고 말았다. 그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전선주(電線柱)에 가 기대서서 이 만화(漫畵)를 서서(徐徐)히 감상(鑑償)하자니까ㅡ

   B군(君)은 이건 또 언제 어디서 획득(獲得)했는지 모를 오합(五合)들이 술병을 거꾸로 쥐고 육(六)모방망이 내휘두르듯 하면서 중재중(仲裁中)인데 여전히 피해(被害)가 많다. B군(君)은 이윽고 그 술병을 한 번 허공(虛空)에 한층(層) 높이 내휘두르더니 그 우렁찬 목소리로 산명곡응(山鳴谷應)하라고 최후(最後)의 대갈일성(大喝一聲)을 시험(試驗)해도 전황(戰況)은 여전(如前)하다.

   B군(君)은 그만 화가 벌컥 난 모양이다. 그 술병을 지면(地面) 위에다 내던지고 가로대

   「네놈들을 내 한꺼번에 쥐기겠다」

고 결의(決意)의 빛을 표시(表示)하더니 좌충우돌(左衝右突)로 동(東)에 번쩍 서(西)에 번쩍 S군(君), 유정(裕貞)의 분간(分間)이 없이 막 구타(毆打)하기 시작이다.

   이 광경(光景)을 본 나도 놀랐거니와 더욱 놀란 것은 전사(戰士) 두 사람이다. 여태껏 싸움 말리는 역할(役割)을 하느라고 하던 B군(君)이 별안간 이처럼 태도(態度)를 표변(豹變)하니 교전(交戰)하던 양인(兩人)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B군(君)은 위선 유정(裕貞)의 턱 밑을 주먹으로 공격(攻擊)했다. 경악(驚愕)한 유정(裕貞)은 방어(防禦)의 자세(姿勢)를 취(取)하면서 한쪽으로 비키니까 B군(君)은 이번에는 S군(君)을 걷어찼다. S군(君)은 눈이 뚱그래서 이 역(亦) 한켠으로 비키면서 이건 또 무슨 생각으로

   「너! 유정(裕貞)이! 뎀벼라」

   「오냐! S! 너! 나헌테 좀 맞어봐라」

하면서 원래(元來)의 적(敵)이 다시금 달라붙으니까 B군(君)은 그냥 두 사람을 얼러서 걷어차면서 주먹 비를 내리우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일제(一齊)히 공격(攻擊)을 B군(君)에게로 모아가지고 쉽사리 B군(君)을 격퇴(擊退)한 다음 이어 본전(本戰)을 계속중(繼續中)에 B군(君)은 이번에는 S군(君)의 불두덩을 걷어찼다. 노발대발(怒發大發)한 S군(君)은 B군(君)을 향(向)하여 맹렬(猛烈)한 일축(一蹴)을 수행(遂行)하니까 이 틈을 타서 유정(裕貞)은 S군(君)에게 이 또한 그만 못지않은 일축(一蹴)을 결행(決行)한다. 이러면 B군(君)은 또 선수(船首)를 돌려 유정(裕貞)을 겨누어 거룩한 일축(一蹴)을 발사(發射)한다. 유정(裕貞)은 S군(君)을, S군(君)은 B군(君)을, B군(君)은 유정(裕貞)을, 유정(裕貞)은 S군(君)을, S군(君)은ㅡ

   이것은 그냥 상상(想像)만으로도 족(足)히 포복절도(抱腹絶倒)할 절경(絶景)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만 내 벙거지가 여지없이 파멸(破滅)한 것은 활연(豁然)히 잊어버리고 웃음보가 곧 터질 지경인 것을 억지로 참고 있자니까 사람은 점점 꼬여드는데 이 진무류(珍無類)의 혼전(混戰)은 언제나 끝날는지 자못 묘연(杳然)하다.

   이때 옆골목으로부터 순행(巡行)하던 경관(警官)이 칼소리를 내이면서 나왔다. 나와서 가만히 보니까 이건 싸움은 싸움인 모양인데 대체(大體) 누가 누구하고 싸우는 것인지 종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경관(警官)도 기가 막혀서

   「이게 날이 너무 춥드니 실진(失眞)들을 한게로군」

하는 모양으로 됫짐을 지고 서서 한참이나 원망(遠望)한 끝에 대갈일성(大喝一聲)

   「가에렛!」

   나는 이 추운 날 유치장(留置場)에를 들어갔다가는 큰일이겠으므로

   「곧 집으로 데리구 가겠읍니다. 용서하십쇼. 술들이 몹시 취해 그렇습니다」

하고 고두백배(叩頭白拜)한 것이다.

   경관(競官)의 두번째 「가에렛」 소리에 겨우 이 삼국지(三國誌)는 아마 종식(終熄)하였던가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태원(泰遠)이 「거 횡광이일(橫光利一)이 기계(機械) 같소 그려」 하였다. (물론[勿論] 이 세 동무는 그 이튿날은 언제 그런 일 있었더냐는 듯이 계속[繼續]하여 정[情]다왔다)

    유정(裕貞)은 폐(肺)가 거의 결단이 나다시피 못쓰게 되었다. 그가 웃퉁 벗은 것을 보았는데 기구(崎嶇)한 수신(瘦身)이 나와 비슷하다. 늘

   「김형(金兄)이 그저 두 달만 약주를 끊었으면 건강(健康)해지실 텐데」

해도 막 무가내하(無可奈何)더니, 지난 칠월(七月)달부터 마음을 돌려 정릉리(貞陵里) 어느 절간에 숨어 정양중(靜養中)이라니, 추풍(秋風)이 점기(漸起)에 건강(健康)한 유정(裕貞)을 맞을 생각을 하면 나도 독자(讀者)도 함께 기쁘다.


《청색지》(1939.5)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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