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신바드의 배   세헤라자데- op.35   /

림스키코르사코프 Nikolai Andreevich ~ (1844-1908) ((러시아의 작곡가))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1939년 4월 <여성>

 

하얀 피부에 나비수염 백구두를 신고

주피터가 된 이상,

까마귀가 된 이상,

산 오뚝이가 된 이상,

나비가 된 이상

이상은 흰나비가 되여 쫒기 듯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갔다.

이상의 작품 속에는 여러 번 나비 이야기가 나온다.

 

나비가 의미하는 바는

烏瞰圖 詩第十號 오감도시제10호 "나비"에서 보면

“나비”의 상징은 “조국의 독립 의지를 펼치는 임시정부 레지스탕스”를 이르는 말로 그려지고 있다.

“나비”의 상징은 이상과 김기림, 이태준, 박태원 등이 공유한 Allegory알레고리이다.

 

김기림은 이상과 가장 절친한 사이였으며 이상의 멘토Mentor이기도 했다.

이상의 재능을 보고 프랑스로 같이 유학을 가자고 권유하기도 했고 이상 사후 가장 애석해했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독립투쟁, 레지스탕스 활동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이상이 일본에 건너간 이유는 행동파 독립군이 되어 윤봉길처럼 의거를 하려 했던 것이다.

그 활동 내용은 그의 작품 “종생기” “파첩” “봉별기” “날개” “실화” “황소와 도깨비”등등의 작품 속에 우거지 쓰레기처럼 기록해놓았다.

소설 "날개"속에는 그 계획을 알리는 통지문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상이 일본으로 건너 간 후 독립군 본진에서 작전취소를 통보한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려 했으나 그의 계획은 누설되어 실패하고 만다.

배신자가 있었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1939년 4월 <여성>-

 

그의 작전 개시일은 1937년 3월 3일 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1937년 2월 12일 사상불온자로 경찰에 구속된다.

일경이 어떤 제보도 없이 무작위 불심검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이 비밀을 제보한 것일까?

꿈도 펼치지 못 한 체 3월 16일 죽음 일보직전에 새파란 초생달이 되어 풀려나왔다.

3월 새파란 초생달

병상의 이상을 마지막 방문한 친구도 김기림이었다.

혹? 이상의 허리에 새파란 고문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었던 것일까?

이상의 애처로운 사연을 김기림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글로 남겼다.

 

 

 

이상  1939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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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Coffee / Lacy J Dalton

                





                        카페 프란스   かつふえ・ふらんす        

                                                                -정 지 용-


이국종 종려나무 밑에                                     異國種, 綜櫚
비뚜로 서있는 가로등,               
카페 프란스에 가자.                                       Cafe  Prance

이놈은 루바쉬카                                          루바슈카 러시아 남자 의상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Bohemian tie
비쩍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 눈처럼 가늘은데        
포장도로에 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 프린스에 가자.    

이놈의 머리는  찌그러진 사과
또 한 놈의 심장에  벌래먹은 장미
들개처럼 비에 젖은 놈이 뛰어간다.


   ※               ※ 
[오오 패릍 서방님 ! 굳 이브닝!]                             Parrot(앵무)
[굳 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Good evening!
울금향  아가씨는                                      鬱金香울금향 (튤립 tulip)
오늘 밤에도  경사 커텐 아래서 조시는구료!                 更紗경사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무 것도 아니란다.                    子爵자작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  오!  

이국종  강아지야                                 
         내 발을 빨어다오.                                         
         내 발을 빨어다오.        
                                        
                                  발표  同志社大学予科学生会誌동지사대학여과학생회지   1925.11

 

 

 


이 작품은 정지용이 유학 생활 중 발표한 것으로 그의 데뷔작으로 알려져 있다.
주제는 이국의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지식인의 외로움과 슬픔을 노래했다고 이해하고있다.



                                                                       그러나




                                      꽃신의 감상


카페 프란스 카페 프란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비쩍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카페 프란스 Cafe  Prance는“카프”를 이르는 말이다.


KAPF카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한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조직한 대표적인 문예운동단체이다.
                 계급의식에 입각한 조직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계급혁명운동을 목적으로 삼았다.
                 일본에서 신사상의 세례를 받은 사회주의적 경향의 진보적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단체로써

                 1925년 8월에 결성된다.


이때 저들은 정지용에게 KAPF카프 가입을 권하기 위해 술집으로 불러낸다.


수차례 이어지는 권유

앵무새처럼 반복적인 술집에서의 대화


저들은 예술을 무기로 하여 조선민족의 계급적 해방을 목적으로 한다는 강령으로
일체의 전제세력과 항쟁한다는 무산계급 및 사회운동을 부르짖고 있었다.


[오오 패릍 서방님 ! 굳 이브닝!]              
[굳 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鬱金香울금향  아가씨는                      
오늘 밤에도  경사更紗 커텐 아래서 조시는구료!


술집마담 울금향 아가씨는 귀 따가울 만큼 여러 번 들어본 이야기다.
매상은 올려주지 않고 한소리 또 하고 또 한다.

그제한 말 또 하고 어제한 말 다시하고 그 말 또 하고 아까한 말 또 하고

머리속에 든 것이라고는 그 말 뿐이니  그놈의 골통은 찌그러진 사과 와 같고
나라를 빼앗긴 저놈의 심장은  벌래먹은 장미, 자기 도취에 들개처럼  설레발 친다.

마담은 아예 귀를 막고 커텐 밑에서 졸고있다.


저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동경에 유학 와서 루바쉬카 보헤미안 넥타이를 하고 신지식을 향유한답시고 떠벌이고는 있다만


나는 子爵[자작]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나라를 빼앗긴 놈들이 독립의지는 버리고 사회 대변혁을 외치고 있는 꼴이 볼썽사납다.
정지용의 눈에는 저들의 사회운동은 결국 조국독립을 저해하는 또 하나의 분열 요인으로 보인 것이다.
조국독립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슬플 뿐이다.
민족, 국가관이 배제된 삐뚤어진 전제사상은 마치


이국종異國種 종려綜櫚나무 밑에      
비뚜로 서있는 가로등, 같아 보였다.

저들의 영양가 없는 무산계급 사회운동의 설교를 듣느니 차라리


오!   오! 
이국종  강아지야   
         내 발을 빨어다오.

           내 발을 빨어다오.

 


이국종異國種 : 외국종外國種 - 토종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종자.

 

 

                          원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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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國民文學국민문학 2월호에 발표한 시다.


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정지용에게 친일 혐의를 두는 것은

참으로 졸렬한 문약의 발로라 할 것이다.

 



 

     異土이토                               남의 나라 땅

        -정지용-                                           -꽃신의 풀어 읽기-

    

 

낳아자란 곳 어디거나                        낳아 자란 곳 어디이거나

묻힐데를 밀어나가쟈                             묻힐 데를 밀어나가자.

 

꿈에서처럼 그립다 하랴                      꿈에서처럼 그립다 하랴.

따로짖힌 고양이 미신이리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고양이 미신이려니

 

제비도 설산을 넘고                          제비도 雪山설산을 넘고

적도직하에 병선이 이랑을 갈제                赤道直下적도직하에 兵船병선이 이랑을 갈 때에

 

피였다 꽃처럼 지고보면                      피였다 꽃처럼 지고 보면

물에도 무덤은 선다                          물에도 무덤은 선다.

 

탄환 찔리고 화약 싸아한                     탄환 찔리고 화약 싸아한

충성과 피로 곻아진 흙에                     충성과 피로 곯아진 흙에

 

싸흠은 이겨야만 법이요                     싸움은 이겨야만 법이요

시를 뿌림은 오랜 믿음이라                   시를 뿌림은 오랜 믿음이라.

 

기러기 한형제 높이줄을 마추고              기러기 한 형제 높이 줄을 맞추고

햇살에 일곱식구 호미날을 세우쟈            햇살에 食口식구 호미날을 세우자.


                                                             -국민문학 2월호 1942-

  




 

이 시를 이해하려면 당시 국제정세와 일본군의 전력 증강방안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1940726일 일본 고노에 내각은 서구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아세아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담화를 발표했다.

           1940년 가을, 미일관계는 악화일로에 있었다.

           922일 일본군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진입,

           927,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삼국동맹을 결성했다.

1941년 베트남 남부까지 진출했고 서서히 인도차이나를 노리고 있었다.

           4월 소련과 중립 조약을 체결해 만주지역 안전책을 확보한다.

           127,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 미해군 태평양 함대에 기습 공격한다.

                         이제 조선인 징병제도를 시행하려합니다. 

 

 

 

                                       감상

 

 

    異土이토                                         남의 나라 땅

            -정지용-                                     -꽃신의 풀어 읽기-

    

 

낳아자란 곳 어디거나                              낳아 자란 곳 어디이거나

묻힐데를 밀어나가쟈                               묻힐 데를 밀어나가자.


   

.                                                                                           김원봉 홍범도 남자현


異土이토 남의 나라 땅

일본의 억압과 착취로 많은 조선인이 외국으로 탈출했다.

만주 상해 몽골 미국 프랑스 그리고 저 먼 동토의 땅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 당해 고려인으로 살아남았다.

그들은 고난 속에서도 首邱初心수구초심: 여우 죽을 때면 머리를 제가 살던 언덕 쪽으로 향하여

고향 그리워 조국을 잊지 않는다.

내가 죽어 묻힐 곳은 오직 조선 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어디서 낳아 어디에 있든 독립운동은 계속 밀어붙여야한다고.

 

꿈에서처럼 그립다 하랴                           꿈에서처럼 그립다 하랴.

따로짖힌 고양이 미신이리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고양이 미신이려니

      

따로짖힌 고양이 미신이란 우리 조선의 미신이 아니라

일본의 사람 꼬시는 고양이 미신을 말한다.

마네키네코 まねきねこは()라는 고양이 미신

일본의 모든 상점 유리진열대에서 손짓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이 고양이 전설은

폭풍이 불어 닥치는 날 어느 영주가 나무아래에 서있을 때 절간 문 밖에 앉아있는 고양이가

절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합니다.

이상하여 절 쪽으로 걸음을 떼는 순간 번개가 정확히 그가 서있던 곳을 내리쳤습니다.

고양이가 영주의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입니다.

상점에 마네키네코 고양이를 진열하면 장사가 잘된다는 미신이다.

                                                       

자유와 평화 꿈에서처럼 그립다 하랴

공갈과 회유로 사탕발림을 하는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고양이 미신을 꿈꾸어야하나?

대동아 공영권이 자유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이 고양이 미신을 믿을 것인가?

조선인이여 꿈에서 깨어나라! 외치고 있습니다.


제비도 설산을 넘고                                  제비도 雪山설산을 넘고

적도직하에 병선이 이랑을 갈제                  赤道直下적도직하에 兵船병선이 이랑을 갈 때에


   


조선인은 동토의 설산을 넘어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집시가 되었고

이제 또 젊은이는 일본 군함을 타고 남태평양으로 죽음의 길을 떠나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피였다 꽃처럼 지고보면                           피였다 꽃처럼 지고 보면

물에도 무덤은 선다                                 물에도 무덤은 선다.

 

수 척의 항공모함을 구비한 일본의 대함대

초기 전세는 승리할지 몰라도 이미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 된 이상

 피었다 지는 꽃이며

모두가 고기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탄환 찔리고 화약 싸아한                          탄환 찔리고 화약 싸아한

충성과 피로 곻아진 흙에                          충성과 피로 곯아진 흙에

결국 주검과 상처가 남을 뿐인 전쟁

이 땅에서 이뤄지는 전쟁은 꼭 승리해야만합니다.

일본이 ? 아니 ! 우리가!


   


싸흠은 이겨야만 법이요                           싸움은 이겨야만 법이요

시를 뿌림은 오랜 믿음이라                       시를 뿌림은 오랜 믿음이라.

 

꼭 우리가 이겨야만하기에

나의 시 속에 은밀한 언어로

오랜 동안 바라오던 나의 진정한 기대와 믿음을 뿌려 놓았습니다.

 

기러기 한형제 높이줄을 마추고                기러기 한 형제 높이 줄을 맞추고

햇살에 일곱식구 호미날을 세우쟈             햇살에 食口식구 호미날을 세우자.

    


기러기 한 줄로 날아 고향을 찾아가듯이

분열하지 말고 한 뜻으로 뭉쳐야합니다.

햇살에 일곱식구 = 日射七食口 = 일사에 칠식구 = 일본을 칠 식구 = 독립군

일본을 칠 식구들  호미날을 세우자. 밀어나가자


이제 미국의 참전과 합께 적절한 기회가 오면 일본에 총 공세를 가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 형제 높이 줄을 맞추고 호미 날을 세웁시다.



햇살 =日射일사  = 일본에 총을 쏘다.라는 음어

             射사: 쏘다. 발사하다.



당시 저항문학가들의 語음어  구인회.  카프등...


까마귀 : 항일투쟁가.  독립군

나비    : 독립군 비밀연락책

금붕어 : 조선에 진출해있는 일본군

어항    : 친일 콜라보

사과    : 일본놈보다 더 악날한 조선놈

다알리아 : 내놓고 친일하는 者

자위행위 : 일본의 수탈



                                                  정지용은 친일하지 않았다.

                                                                   끝 - 꽃신의 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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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e - Effacer le passé '과거는 잊어요'

 

 



                                                불쌍한 정월아 

 

 

 




당시의 금수저요. 아이돌. 14살 때의 작품이 잡지 개벽에 실렸다.3.1 운동과 의열단 사건에도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정동예배당에서 결혼식 소식과 25세 때 모친사망 소식이 신문에 오를 만큼 유명세를 탔다.

 

남편 김우영이 일본영사관 부영사로 만주 안동에 부임하여 6년간의 업적으로 휴가를 받아 총독부의 지원으로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한다.6년간의 업적은 무엇이었을까?

 




19210925일 김우영이 일본의 외교관인 만주 안동 부영사

 

당시 일제국주의자들은 만주 침탈을 계획하고 철저한 전략을 수립 중이었다.주변의 정확한 정보 수집과 이주해온 조선인들의 내정을 상세히 지득할 필요가 있었고 독립군들의 동향 파악 등을 위해서는 조선말을 하는 조선인 조력자가 절실했던 만큼 김우영을 안동현 부영사로 임명한다. 이제 서서히 동조세력을 구축하고 곳곳에 정보원을 양성 침투하는 사전 공략을 실행하는 일련의 작전이 단계별로 치밀하고도 비밀리 진행된다.강연회를 주최하여 청년 동포에게 세계정세의 변화에 맞춰 침탈의 정당성에 동조하는 여론을 조성한다.이때 가장 두려운 것은 독립군의 암살위협이다.특히나 일제의 사냥개 노릇을 하는 조선인 관료는 표적 1호였다.김우영이 6년간 무사히 부영사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나혜석 덕분이었다.아내 나혜석이 독립운동을 후원하는 양면 정책이다.  나혜석은 19223월부터 안동현 태성의원에서 야학당을 열어 조선인 교육에 힘썼다.또한 의열단의 김원봉 등에게 거사 자금을 비밀리에 송금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송금 했다. 비밀리에 의열단과 애국부인회를 도와준 사실이 영사관 경찰에 제보되면서 남편인 김우형에게도 불이익이 돌아가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아내 나혜석이 독립자금 전달의 엄청난 사건에도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독립군 암살단으로 부터 김우영의 목숨을 안전하게 지키는데 일조한 공로 때문이다.그러나 임무를 마치고 조선 땅에 들어서는 순간 아내의 독립운동 후원은 김우영 출세가도의 거침돌이다. 임기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우영은 고집 센 아내를 자유분방하고 저돌적인 마누라를 어찌하지 못해 전전 긍긍한다.

 

토사구팽의 때가 다가왔다.

 


특히 그녀는 조선장안의 톱스타였다.아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잘 나가는 마리앙뚜아네뜨 바이러스가 온몸에 퍼진 중병이 들어 있었다.미술전람회에 수천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고 신문 잡지는 다투어 나혜석의 글과 주변소식을 다룬다.전람회가 끝난 뒤 김우영은 축하에 앞서 여자는 남자의 부속물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에 분개하여 남편과 싸운다. 부부간 앙금이 쌓인다.그렇지 않아도 아내는 여성의 권리신장을 주장하는 여성해방론의 거물급 인사다. 줏대 세고 거침없는 아내는 언제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저것이 치솟는 인기를 틈타 독립운동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날에는 모두가 끝장이다.자신의 출세가도에 걸림돌이다.총독부는 완벽한 친일 부역세력을 원한다.아내를 친일화 하지 못하면 제거하는 방법 외에는 별 도리가 없다.총독부와 친일 세력들은 나혜석을 김활란이나 모윤숙처럼 친일파의 거두로 키울 요량으로 비행기를 태웠다.그러나 고집 센 나혜석에게는 이 작전이 통하지 않자 은밀한 지령이 내려진 것일까?

 

까마귀 죽이기작전

나혜석 김우영 부부는 총독부지원으로 세계여행을 떠난다. 명목상은 6년간 만주 외지에서 근무한 공로에 대한 보상휴가라 한다.한편 총독부지원으로 또 달리 세계여행을 떠나는 또 한 남자가 있었으니
최린崔麟

 

천도교 종법사였던 그는 192610월 만성위장병치료차 일본 동경제국대 입원 중에1년 예정으로 구미 각국의 종교 산업 교육 사회정세 시찰 명목으로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다.일제 치하에서 조선 천도교 종법사가 세계사회정세 시찰을 간다웃기는 소리다. 명목상은 벨기에 부랏셀에서 개최된 반제국주의 및 민족독립기성동맹총위원회에 조선대표로 참석했단다. 민족독립기성동맹총위원회라는 단체는 존재했는가?

유령 단체 아닌가?


실상은 일제의 경비지원으로 유럽여행을 떠나는데 이는 일제의 유화책의 일환이었다. 1927-06-11 그야말로 묻지마 관광을 떠난다.

 

유럽김우영은 독일로 유학을 떠난 뒤 프랑스에 홀로 남겨진 나혜석 앞에 고국향수를 바른 노신사가 나타난다. 최린과의 염문설은 프랑스 교민사회에 널리 알려질 만큼 공개되었다.이미 남편이 이해하고 넘어간 최승규와의 사랑 이광수와의 연애 그리고 자신의 자유연애론 사상에 비춰 볼 때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자유분방 철없는 33세의 뜨거운 마리앙뚜아네뜨였다. 최린과의 불륜이 서서히 장기간 여론화 돼가면서 까마귀 털 뽑기가 시작된다.남편 김우영 전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냥 침묵하는 듯 비춰지고 주변에서는 최린과의 불륜 사진을 공개하는 등 서서히 장안의 화재로 몰고 간다.

 

그런데 이 불륜의 풍문은 최린 측근 사람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기 시작한다.사건화 되자귀국 후 부터 김우영은 딴 살림을 준비 중이었고 최린 역시 매몰차게 돌아섰다.숱한 비난에 당황한 나혜석의 예술 혼은 달아났고 전람회 실패와 언론의 비유적 비난 글이 쏟아져 맨붕에 빠진다.

14세 때부터 주목받던 여인, 일거수일투족이 신문의 취재거리가 됐던 스타최린과의 염문은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편과 정이 두터워지리라 믿었던 바보였다.브레이크 없는 인생열차는 자기도취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 철없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자녀들도 만나지 못하게 한다. 증오심에 모자의 정을 때려한 것일까? 아니면자녀들에게 반일사상을 주입할까봐 두려웠던 것일까?

 

아내를 방기하고 새살림을 꾸린 후에는 변호사업까지 시들해지고 궁핍했다는 것은 하나의 구실이다.김우영은 아내를 내친 후 또다시 총독부의 사냥개 노릇을 한다.1932.2.19 조선총독부관보 : 김우영이 도리사관에 임명되다.

 

 

 

김우영은 자녀들과의 만남을 경찰을 동원해 저지한다.자식들에게서 반일의 기미만 보여도 모두가 끝장이다. ! 이것이 두려운 것이다.

 

김우영 자신의 출세를 위해 친일하지 않는 아내를 버린 걸까?

김우영과 최린은 친근한 사이였다.우연일까?김우영과 최린은 똑같이 일제의 지원으로 같은 시기 같은 장소로 공짜여행을 떠난다.프랑스/ 나혜석. 김우영. 최린 여기서 김우영은 살짝 빠진다. 독일로.....최린은 나혜석을 대리고 보란 듯이 싸돌아다닌다. 물정모르는 나혜석은 프랑스 교민들의 로망이 된 냥 부풀어 그 양산을 펼친 걸까?귀국 후 최린은 나혜석과의 염문설을 측근을 통해 여론화 했다.이 일련의 사건이 계획적인 것이었다면?

 

아 불쌍한 정월아

 

 

이 모두가 남편 따라 고분고분 친일파가 되지 않은 업보입니까?

 


 

 

 

나혜석羅蕙錫 호: 정월(晶月).

 

 

20세기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주요 작품은 <농부>와 <자화상>과 <스페인 해수욕장>.

호는 정월이고 서울 경기에서 태어나 오빠의 권유로 미술을 시작했으며 여권신장을 옹호하는 글을 쓰고,

3.1운동에 참가했다가 투옥되는 등 진보적인 성격을 지녔다.

다양한 국가를 여행하면서 야수파 형식의 그림을 그렸고 귀국 후에는 사회에 저항하는 글을 썼지만 무시당했다.

생활고에 시달려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랑 생활을 하다가

 1946년 서울 자혜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쓸쓸히 인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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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희[ ]

정태희

정태희1898-1952. 목사. 독립운동가.

이칭별칭 계운(), 백양()
유형인물
시대근대/일제강점기
출생 - 사망1898년 ~ 1952년
성격독립운동가, 국가유공자, 종교인
출신지충청북도 충주
성별
대표관직(경력)대한국민총회 평의원, 한국유일당상해촉성회집행위원회 상무위원, 건국훈장 독립장

정의

1898∼1952. 독립운동가·목사.

내용

호는 계운()·백양(). 충청북도 중원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 해 4월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에 호응해 박인관()·정덕생()·박승명()·유만섭()·송병조() 등과 함께 10월평양에서 대한국민총회를 조직하고 평의원에 선출되었다.

12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가담해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1921년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의 참사()가 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정 궁핍을 해소하기 위한 군자금 모금에 힘썼다.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9개국 태평양회의에 우리의 독립문제가 상정되도록 대() 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 제6회 간사회를 열어 그 간사로 활약하였다. 1923년 5월 임시정부의정원 제1분과 상임위원장으로 선임되었고, 1924년 6월에는 재차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부 참사에 임명되어 재정문제 타개에 진력하였다.

1927년 1월 임시의정원 제27차 회의에서 약헌기초위원()에 선임되었다. 1928년 8월 재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중앙집행위원회축소위원이 되었으며, 9월에는 동맹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29년 1월 한국유일당상해촉성회집행위원회에서 상무위원에 선임되었다. 이 때 독립운동의 지리멸렬함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라 규정하고 대독립당()을 조직하면서 군소단체를 해산해 의견 대립과 상호간의 마찰 폐단을 없애자고 호소해 호응을 얻었다.

1929년 8월에는 상해 교민단()의 총무로 단장 김구()를 보필하면서 인성소학교()의 운영 및 교포들의 생활 안정과 권익 옹호에 힘썼다. 1932년 8월 상해 북정거장에서 일본경찰에 잡혀 1934년 6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광복투쟁의 선구자』(이현희, 동방도서, 1990)
  • 『임정과 이동녕연구』(이현희, 일조각, 1989)
  • 『한민족광복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89)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독립운동사자료집』9·1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1978)
  • 『독립운동사』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朝鮮獨立運動』Ⅱ(金正明 編, 原書房, 1967)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정태희 [鄭泰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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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프랑스 1832.1.23 ~ 1883.4.30 인상주의의 아버지

 

요약 프랑스의 화가.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세련된 도시적 감각의 소유자로 주위의 활기 있는 현실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필력은 유례 없는 화가였다.

종래의 어두운 화면에 밝음을 도입하는 등 전통과 혁신을 연결하는 중개역을 수행한 점에서 공적이 크다.

 

파리 출생.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법관의 아들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화가 지망을 허락하지 않아서 17세 때 남아메리카 항로의 선원견습생이 되었다.

남아메리카를 항해한 1850년 겨우 쿠튀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카데믹한 역사화가인 스승에게 반발하여 자유연구로 나아가 루브르미술관 등에서 고전회화를 모사, F.할스나 벨라스케스 등 네덜란드나 에스파냐화파의 영향을 받았다.

 

살롱에는 1861년 겨우 입선하여 수상한 바 있으나, 처음부터 이색적인 작품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낙선을 거듭하였다.

혁신적인 작품은 1863년 낙선전(落選展)에 전시된 풀밭 위의 점심 Le Déjeuner sur l’herbe, 1865년의 살롱 입선작올랭피아 Olympia로 일약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이 두 작품에 대한 비난은 지나쳤으나 도리어 그의 표현기법의 참신성과 밝음을 결정적으로 인상지어준 결과가 되었다.

이 사건 이래 화단과 문단 일부에서 열렬한 지지자를 얻었고, 자신을 경모(敬慕)하는 C.피사로, C.모네, A.시슬레 등 청년화가들 사이에서 그 후에 대두될 인상주의에의 길을 여는 기연(機緣)을 이루었다.

그러나 마네 자신은 아카데미즘의 공인을 기다려, 인상파그룹의 전람회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고, 그들과 동일시되는 것을 대단히 꺼렸으나 한때는 인상파기법을 채용하여 제작한 적도 있다.

 

만년에는 레지옹 도뇌르훈장을 받았으나, 류머티즘으로 고생하여 육체적 피로도가 비교적 적은 파스텔화()를 그렸다.

그래도 막시밀리안의 처형 L’Exécution de Maximilien(1867),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Le Bar Folies-Bergère(1882) 등 유화의 걸작을 남기고 51세의 생애를 파리에서 마쳤다.

세련된 도시적 감각의 소유자로 주위의 활기 있는 현실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필력에서는 유례 없는 화가였다. 종래의 어두운 화면에 밝음을 도입하는 등 전통과 혁신을 연결하는 중개역을 수행한 점에서 공적이 크다.

 

연보

 

1832년생

1832 1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

1850 선원견습생으로 남아메리카를 항해. 쿠튀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감.

1856 자신의 작업실을 갖추고 작품 활동에 전념.

1861 살롱에서 기타 연주자로 입선.

1862 튈르리 공원의 음악회제작.

1863 낙선전에 풀밭 위의 점심을 전시.

1865 올랭피아로 화단의 주목을 받음.

1867 막시밀리안의 처형제작.

1882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제작.

1883 430일 파리에서 사망.

[Edouard Manet] (두산백과)









A Bar at the Folies-Bergere, 1882






























Jeanne Duval, Baudelaire's Mistress, Reclining (Lady with a Fan) 1862














그림 읽어주는 여자 에두아르 마네 _ 피리부는소년


 


                                                                                         그림출처













































..




 

                                                   

 

                                                           영웅본색 OST

 

 

 

 

 

 

behind back of god, between heaven and earth

 

 

 

 

 

 

질투

 

 

 

 

 

 

전화로 그린 이엠일 EM1 1922년

 

1923 년 전례가 없는 유형의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기계로 제조 된 에나멜 사진"

모홀리 (Moholy)는 간판 공장에 세 장의 그림을  전화로 주문했습니다.

 

완성 된 3 개의 그림은 바우 하우스의 모홀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는 다음 해 베를린의 Der Sturm 갤러리에서 전시했습니다.

동일한 구성을 공유하면서 소규모 (EM 3), 중형 (EM 2) 및 대형 (EM 1)의 점진적 크기로 확장되었습니다.

전화로 그들에게 명령 한 것은 현대 예술가의 급진적 인 개념을 아이디어의 생산자로 제시 한 것이지,

반드시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이 레디 메이드 조각품을 발명 한 것처럼

모홀리의 전화 그림은 '예술'이라고 불릴 수있는 역사를 바꿔 놓았습니다.

전화 영상의 선견지명과 대담성은 제작 된 지 거의 1 세기가 훨씬 더 앞섭니다.

 

 

 

 

모홀리나기 László Moholy-Nagy(1895~1946)

 

라즐로 모홀리나기는 1895년 바치보르쇼드에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부상하여 요양중 회화로 전향하였다.

비엔나를 거쳐 베를린에 온 모홀리나기는 1920-23년에 다다이즘과 구성주의의 중간에 위치하는 콜라쥬와 포토몽타쥬 작품을 제작하였다.

1922년 시인 카사크와 공저로 [새로운 예술가의 책]을 간행했고 이 해부터 1928년까지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초빙되어 예비반과 금속 아틀리에를 담당하였다.

1922년부터 1930년까지 각고 끝에 대형 모빌 '-공간 변조기'를 제작하였다.

바우하우스를 떠난 후, 베를린, 암스테르담을 거쳐 런던에 정착해 2년간 체류하며 '공간의 변조기'를 발표한다.

나치의 압박으로 1937년 도미, 시카고에서 디자인 연구소를 창설하였다.

광선과 조형의 관계를 추구하여 회화, 플렉시글라스 조각, 키네틱 아트의 작품, 디자인, 디스플레이, 영화, 사진 등 다양한 분야에 끊임없는 호기심을 보이며 참구작업을 벌였다.

모홀리나기는 실험적 작품으로 키네틱 아트, 옵 아트의 새로운 연구 방향을 열어 주었다.

저서로는 [새로운 시각](1946), [운동에서의 시각](1947)이 있다. 모홀리나기는 1946년 시카고에서 사망했다.

 

 

behind back of god, between heaven and earth  1925년

 

 

 

 

Olly and Dolly Sisters 1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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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타나 연작 교향시 나의조국  

Ma Vlast("My Country",complete symphonic poem cycle)

스메타나가 1883년 작곡해서 발표한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은 조국의 자연, 전설 및 역사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체코의 음악문화를 세계적으로 드높이는데 있어 크게 기여했다.


블타바 (몰다우)
프라하의 블타바 강.블타바(체코어: Vltava)는 흔히 독일어 명칭 몰다우(Die Moldau)로도 알려진 곡으로, 1874년 11월 20일에서 12월 8일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1875년 4월 4일에 초연되었다. 연주 시간은 대략 12분 정도이며, 조성은 E단조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보헤미아 중앙부를 지나 프라하 시를 흘러가는 블타바 강을 묘사했다.

이 곡에서 스메타나는 보헤미아의 장대한 강의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톤 페인팅(tone painting)을 구사하고 있다. 작곡가 본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곡은 작은 두 샘에서 발원하여 이 차가운 강과 따뜻한 강의 두 줄기가 하나로 모여 숲과 관목들을 지나 농부의 결혼식, 밤에 달빛을 받으며 추는 인어들의 원무, 주변에 바위가 있는 가운데 솟은 성과 궁전과 폐허를 지나가는 블타바 강의 흐름을 나타내었다. 블타바는 성 요한의 급류에서 소용돌이 치다가 프라하를 향해 잔잔히 흘러가며 뷔세흐라트 성을 지나 저 멀리 라베 강(독일어로 엘베 강)과 합류하며 장엄하게 사라진다. ”

 
블타바의 주제.

이 곡에는 스메타나의 곡 중 가장 유명한 곡조가 등장한다. 이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나온 민요 라 만토바나를 차용한 것으로, 이 민요는 이스라엘의 국가 하틱바에도 쓰인다. 이 곡조는 체코의 옛 민요 "고양이는 구멍을 기어다니네"(Ko?ka leze dirou)에도 주요 멜로디로 나온다.

블타바는 두 수원지의 물줄기 흐름, 숲과 강에서 일어나는 사냥, 농민들이 춤추는 모습, 달빛과 요정의 춤, 재현, 급류 총 8개의 부분을 나뉘는데, 본래 두 강이 만나서 하나의 강이 되는 몰다우 강을 플룻과 클라리넷으로 두 줄기를 묘사하는데, 블타바 강이 흐르는 것을 훌륭하게 묘사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2. 가장 유명한 제2곡 '블타바/몰다우(Vltava, Die Moldau)'

 두 개의 수원에서 발원해 그 폭을 점차 넓혀 간 블타바강 양 기슭에서 뿔피리 소리와 시골 춤, 달빛과 요정의 음악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성 요하네에 이르러 파도가 물보라를 튕기며 흩어지는 모습을 묘사했다. 숲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냥을 묘사하는데 C장조로 혼은 뿔피리를, 현은 강이 흐르는 소리를 나타내며 그것이 끝나면서 제3곡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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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Ⅳ [1884~1885] http://blog.naver.com/ohyh45/20129714254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Ⅴ [1885~1886] http://blog.naver.com/ohyh45/20129717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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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Ⅷ [1887②1888①] http://blog.naver.com/ohyh45/220549276809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Ⅸ [1888②]   http://blog.naver.com/ohyh45/220549399319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Ⅹ [1888③1889①] http://blog.naver.com/ohyh45/220550440706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11[1889②] http://blog.naver.com/ohyh45/220551158357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12 [1890①] http://blog.naver.com/ohyh45/220551482799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13 [1890②] http://blog.naver.com/ohyh45/22055152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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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 ]

포

출생 - 사망1809년 ~ 1849년

시인, 소설가, 비평가. 일찍이 고아가 되어 남부 리치먼드의 부유한 상인 앨런 가에서 자랐다. 1833년 신문의 현상 소설에 당선되자 그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의 주선으로 잡지 〈서던 리터러리 메신저(Southern Literary Messenger)〉 편집자의 일원이 되었다. 1835년 13세의 병약한 사촌 누이동생과 결혼하고, 1837년 술버릇 때문에 잡지사도 쫓겨나 아내와 장모를 이끌고 각지로 방랑하며 극빈의 생활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장편소설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1838)와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에 관한 이야기들〉(1840), 〈이야기〉(1845)의 두 단편집을 냈다. 〈호손론〉(1842), 〈시의 원리〉(1850)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평가로서 단편 소설의 이론을 확립하고 시를 효용으로부터 해방하여 순수시의 이론을 세운 그의 공로는 크다. 이렇게 가난에서 허덕이던 그도 〈갈가마귀〉(1845)를 발표함으로써 일약 일류의 시인으로 인정받게 되어 겨우 햇볕을 보았다. 보들레르 · 말라르메 등의 상징주의를 비롯해 유럽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은 크며, 오늘날 대중문학의 왕좌를 차지하는 추리소설도 그를 시조로 삼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2002. 4. 1., 가람기획)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디자인, 삶과 철학을 만나다

<필로디자인>은 삶과 미래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는 디자이너들의 삶과 철학,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살펴보는 책이다. 6년 반 동안의 복직 투쟁과 소송을 거쳐 2005년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로 복직한 김민수 교수가 5년 만에 펴낸 새로운 디자인 책으로, 인간 삶과 미래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면 올컬러로 제작하였으며, 표지에는 트레싱지(반투명 종이)를 입히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였다.

이 책에서는 100여 년 전의 인물부터 동시대의 인물까지, 자신의 철학에 따라 디자인 작업을 하며 시대를 바꾸고 인간 삶에 성찰을 주었던 22인의 디자이너들을 살펴보고 있다. 각각의 디자이너들에 대한 소개를 넘어 그들의 삶과 철학과 디자인 작품의 유기적인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이를 통해 철학과 만난 디자인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힘'을 제시한다.

1부에서는 디자인을 조형적 차원을 넘어 사회 개혁의 차원에서 고민했던 인물들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첨단 기술을 사용하면서 기술 너머의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 디자이너들을 다루고 있다. 3부에서는 역사와 전통에 대한 성찰 속에서 그 너머를 사유해낸 창조자들을 살펴본다.

저자소개

저자 : 김민수

김민수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산업디자인 석사를, 뉴욕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공업디자인학과 교수를 거쳐 1994년부터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중 서울 미대 초창기 원로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거론하고 선배 교수의 작품과 교과 과정을 학문적 입장에서 비평했다는 괘씸죄로 1998년 교수 재임용에 탈락했다. 이후 6년 반 동안 복직 투쟁과 소송을 거쳐 2005년 최종 승소해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로 원직 복직해 현재 재직 중이다. 그동안 쓴 책으로 『21세기 디자인 문화 탐사』(1997년/『월간 디자인』 선정 올해의 디자인상 저술 부문 수상작), 『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1999), 『김민수의 문화디자인』(2002) 등이 있으며, 『디자인 문화 비평』의 공동 편집인 및 YTN 생방송 <김민수의 문화디자인> 진행(2003.3~2004.3), 국악방송 <김민수의 문화사랑방> 진행(2005.3~2006.3) 등의 활동을 한 바 있다.

목차

머리말 우리가 디자이너에 주목하는 이유

prologue
시민 의식과 디자이너

01 'I ♥ Truth': 위대한 시민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
1 911의 혈흔과 진실 | 2 'I ♥ Truth' | 3 위대한 시민 디자이너!

1부 근대의 초입에서 근대 너머를 사유하다
02 근대 디자인과 최초의 자의식 : 윌리엄 모리스
1 모리스의 현대적 의미 | 2 배경 | 3 미술공예운동과 그 이후
03 바우하우스의 성궤를 찾아서 : 발터 그로피우스
1 노을 속의 바우하우스 | 2 절박한 삶, 새로운 예술 | 3 그로피우스의 비애
04 20세기 최초의 총체 예술가 : 라슬로 모호이-너지
1 이미지 문맹의 예견 | 2 삶과 여정 | 3 새로운 시각(The New Vision)
05 신타이포그래피의 창조와 해체 : 얀 치홀트
1 문자의 특권 | 2 생애 | 3 신타이포그래피의 빛과 그림자
06 중국 디자인 문화의 정신 : 루쉰
1 '춤추는 베이징'의 배후 | 2 생애 | 3 사상과 실천 | 4 루쉰의 교훈
07 가상공간에 펼친 날개―최초의 멀티미디어 인간 : 이상
1 매트릭스 속으로 | 2 식민도시 게이조 블루스 | 3 한국 최초의 멀티미디어 디자이너

2부 기술로 기술 너머를 사유하다
08 미국 산업디자이너의 원형 : 헨리 드레이퍼스
1 자존심의 이유 | 2 헨리의 꿈 | 3 스타일링에서 인간공학으로
09 멤피스의 추억 : 에토레 소트사스
1 2인의 슈퍼 스타 | 2 멤피스로 가는 길 | 3 보석의 참뜻
10 그래픽 디자이너의 모던 예술 : 폴 랜드
1 마지막 신간 | 2 라스코에서 브루클린까지 | 3 브루클린에서 예일로 가는 길 | 4 경험 미학의 완성
11 질주하는 조각 : 피닌파리나의 신화
1 와인과 치시탈리아 | 2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 | 3 피닌파리나에서 미토스까지
12 활자는 사랑을 싣고 : 허브 루발린
1 광장의 소음과 일상 | 2 사랑의 이름으로 3 활자의 표정
13 활자의 파가니니 : 데이비드 카슨
1 인쇄의 종말 | 2 활자의 파가니니 3 파가니니 스타일
14 디지털 시대 활자 인간 : 네빌 브로디의 타이포그래피 세계
1 디지털 은하계 | 2 브로디 부기우기 | 3 법을 초월하는 법
15 건축 너머, 건축의 시학 : 장 누벨
1 관용의 미학 | 2 건축의 시학 | 3 건축을 넘어서

3부 역사로 역사 너머를 사유하다
16 참을 수 없는 저항과 발명의 본능 : 필립 스탁
1 스타 스탁 Star Starck | 2 스탁표 유머와 상상 | 3 저항+발명+혁신
17 20세기 미국 건축의 대부 : 필립 존슨의 빛과 그림자
1 건물의 추억 | 2 성공 신화 | 3 모던에서 해체까지
18 일본 문화의 영매(靈媒) : 요코 다다노리의 그래픽 세계
1 롯폰기 부르스 | 2 탄생과 선언 | 3 니시키(銀) 팝(Pop)의 주술사
19 명상의 건축, 북 디자이너 : 스기우라 고헤이
1 껍질에 염증 날 때 | 2 수행자의 길 | 3 우주적 명상의 건축
20 풍경을 담는 그릇 : 건축가 조성룡
1 풍경의 건축 | 2 삶과 건축 사이 | 3 친절한 잠입자
21 한글꼴 디자인의 상상과 운공 : 안상수
1 민화와 한글 | 2 실험의 길 | 3 한글의 상상과 운공
22 중국 북 디자인의 고전적 혁신 : 뤼징런
1 파주 출판 도시에서 본 동아시아 풍경 | 2 인생 공정(人生工程) | 3 뤼징런 스타일

출판사 서평

디자인, 삶과 철학을 만나다!!
삶과 미래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는 위대한 디자이너들의 삶과 철학,
그리고 그들의 작품!

필자는 유행과 욕망이 지배하는 소비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적 스타일이 생명인 디자이너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증의 물질 문명을 치료하기 위한 해독제는 그것을 씨 뿌린 사람들, 즉 디자이너들 속에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의 삶과 철학을 이해함으로써, 타인에 의존하는 소비 성향의 수동성에서 벗어나 끓어오르는 ‘쾌락 명령’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 만일 ... 더보기





















이상평전 모조 근대의 살해자 이상 그의 삶과 예술




책정보

책소개

이상에 관한 단편적인 신화들에 대한 반격!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 이상에 대한 평전『이상평전』. 기하학 용어들과 기호들이 난무하는 그의 난해한 작품들, 수많은 일화를 남긴 27년의 짧은 생애와 이국에서의 요절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연구와 관심의 대상이다. 이러한 관심은 동시에 이상에 대한 정형화된 신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책은 10여 년간 이상의 작품이 지닌 융합예술적인 측면과 혁명성을 연구해 온 김민수 교수가 이상에 대한 여러 신화들을 꼼꼼하게 짚어본다. 또한 그동안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이사의 삶과 작품을 재구성하고 새롭게 해석했다.

먼저 이상이 나고 자란 서촌 일대의 장소성, 이상이 자라면서 겪었을 경복궁 일대 도시경관의 변화 등을 재구성하고, 이런 성장과정에서의 경험들이 이후의 작품들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그동안 단순히 근대 도시의 소비자로 이해되어 왔던 이상이 아니라, 최첨단의 건축이론을 익히고 근대도시를 설계하는 교육을 받은 도시의 생산자로서의 이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로써 문학이라는 좁을 틀에서 벗어나 미술, 건축, 디자인까지를 포괄하는 ‘융합예술’의 측면에서 이상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김민수

저자 : 김민수
저자 김민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산업디자인학 석사(MID), 뉴욕대학교(NYU) 대학원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로 디자인 역사, 이론, 비평에 전념하면서, 대학원 <디자인역사문화 전공>의 주임교수로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했다. 지은 책으로는 『김민수의 문화 사랑방 디자인 사랑방』(2009),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2009), 『필로디자인』(2007), 『김민수의 문화 디자인』(2002), 『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1999), 『21세기 디자인문화 탐사』(1997, 『월간 디자인』 선정 ‘올해의 디자인상’ 저술 부문 수상작)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이상 시의 시공간 의식과 현대디자인적 가상공간」(『한국시학연구』, 2009.12), 「(구)충남도청사 본관 문양도안의 상징성 연구」(『건축역사연구』, 2009.10), 「도시디자인의 공공미학」(인천세계도시인문학대회, 2009.10), 「한국 도시이미지와 정체성」(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2009.9), 「부산의 도시재생과 장소의 미학」(부산광역시, 2009.6), 「한국 화폐의 초상과 기억의 죽음」(『한국근대미술사학』, 2006.12), 「친일 미술의 상처와 문화적 치유」(『내일을 여는 역사』, 2006.12), “MAPPING A GRAPHIC GENOME: A CROSS-CULTURAL COMPARISON BETWEEN KOREAN AND JAPANESE DESIGNERS”(VISIBLE LANGUAGE, VOL.37/2, 2003) 등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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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자화상과 편지]-Vincent van Gogh

[Vincent van Gogh (1853~1890); 후기인상주의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를 더 보시려면 아래 포스트를 클릭하세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Ⅰ [자화상 / 편지] http://blog.naver.com/ohyh45/20099390042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Ⅱ [1873~1882] http://blog.naver.com/ohyh45/20099389187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Ⅲ [1883]    http://blog.naver.com/ohyh45/20129677936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Ⅳ [1884~1885] http://blog.naver.com/ohyh45/20129714254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Ⅴ [1885~1886] http://blog.naver.com/ohyh45/20129717807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Ⅵ [생애-일대기]  http://blog.naver.com/ohyh45/220009319169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Ⅶ [1887①]  http://blog.naver.com/ohyh45/220548924580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Ⅷ [1887②1888①] http://blog.naver.com/ohyh45/220549276809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Ⅸ [1888②]   http://blog.naver.com/ohyh45/220549399319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Ⅹ [1888③1889①] http://blog.naver.com/ohyh45/220550440706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11[1889②] http://blog.naver.com/ohyh45/220551158357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12 [1890①] http://blog.naver.com/ohyh45/220551482799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세계』13 [1890②] http://blog.naver.com/ohyh45/22055152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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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朱永燮 1912년 ~ 미상
생몰년 미상. 극작가, 연출가. 주영섭의 연극.

이칭별칭  주영섭(朱永涉),  松村永涉



성격 :친일반민족행위자
출신지: 평안남도 평양


관련사건 : 평양무궁소년회사건, 동경학생예술좌사건(좌익연극단사건)


저서(작품)  나루, 광야, 창공, 어머니, 해풍, 연출론점묘, 현대극서론, 연극과 영화, 시나리오 문학과 시나리오, 문학과 영화


대표관직(경력) 평양예술문화협회 연극부장


생애 및 활동사항

191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했다. 시인 주요섭의 동생이다.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3월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했다. 광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27년 1월 동아일보 현상공모에 「묵은 일기책」이 당선되었다. 1930년 3월 평양무궁소년회사건으로 검속되어 조사를 받았다. 보성전문학교 시절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산하 극단 신건설의 제1회 공연인 「서부전선 이상 없다」(1933)에 찬조 출연했다. 이후 일본 호세이(法政)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했다. 1934년 마완영(馬完英)·이진순(李眞淳)·박동근(朴東根)·김영화(金永華)와 더불어 동경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를 창단하고 기관지 『막(幕)』의 발간을 주도하면서 그 모임을 이끌었다. ‘조선의 신극 수립은 창작극에서’라는 취지 아래 창단 공연을 준비해, 1935년 6월 4일 축지소극장(築地小劇場)에서 유치진(柳致眞)의 「소」와 함께 자신의 작품인 「나루」를 공연해 좋은 평을 받았다.

1939년에 귀국해 극연좌(劇硏座)를 중심으로 좌익연극을 꾀하였다는 혐의인, 이른바 동경학생예술좌사건(좌익연극단 사건)으로 마완영·박동근·이서향(李曙鄕)과 함께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현대극장에 가입했으며, 부설 국민연극연구소(國民演劇硏究所)에서 배우술(俳優術)을 강의했다. 1940∼1943년 『문장』, 『매일신보』, 『조광』, 『국민문학』 등에 시와 시나리오를 발표하여 침략전쟁과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였으며, 1941∼1945년 『춘추』, 『매일신보』, 『국민문학』, 『문화조선』 등에 산문을 발표하고, 1942년 대동아전 1주년 기념시낭독회에서 자작시를 낭독하는 등 문화부면의 총후봉공을 선전, 선동했다.

현대극장의 창립공연인 유치진의 「흑룡강(黑龍江)」(1941)을 연출했으며, 그 외에도 함세덕(咸世德)의 「추석(秋夕)」(1941), 유치진의 「북진대(北進隊)」(1942)를 연출하는 등 현대극장의 중심 연출가로 활동했다. 연극 외에도 영화 활동에 관심을 기울여 시나리오로 「광야(曠野)」(1940)·「창공(蒼空)」(1941)·「어머니」(1941)·「해풍(海風)」(1941) 등을 남겼다. 평론가로서도 뚜렷한 활동을 펼쳐 「연출론점묘(演出論點描)」(1936)·「현대극서론(現代劇序論)」(1937)·「연극과 영화」(1937)·「시나리오 문학과 시나리오」(1938)·「문학과 영화」 등의 다수의 평론을 발표했다. 해방 직후 월북한 것으로 보이나, 그 후의 활동 사항은 알 수 없다.

주영섭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3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321∼361)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주영섭 [朱永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氣象圖  2. 시민행렬(市民行列)

                                                          

 

 

넥타이를 한 흰 식인종

니그로의 요리가 칠면조보다도 좋답니다

살갈을 희게 하는 검은 고기의 위력

의사 콜베르 의 처방입니다

헬매트를 쓴 피서객들은

난잡한 전쟁경기에 열중했습니다

슲은 독창가인 심판의 호각소리

너무 흥분하였으므로

내복만 입은 파씨스트

그러나 이태리에서는

설사제는 일체 금물이랍니다

필경 양복 입는 법을 배워낸 송미령여사(宋美齡女史)

아메리카에서는

               여자들은 모두 해수욕을 갔으므로

빈 집에서는 망향가를 불으는 니그로와

생쥐가 둘도 없는 동무가 되었읍니다

파리의 남편들은 차라리 오늘도 자살의 위생에 대하여 생각하여야 하고

옆집의 수만이는 석달만에야

아침부터 지배인 영감의 자동차를 불으는

지리한 직업에 취직하였고

독재자는 책상을 따리며 오직

단연히 단연(斷然)한개의 부사(副詞)만 발음하면 그만입니다

동양의 안해들은 사철을 불만이니까

배추장사가 그드르이 군소리를 담어 갖어오기를

어떻게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공원은 수상막도날드가 세계에 자랑하는

여전히 실업자를 위한 국가적 시설이 되었습니다

교도(敎徒)들은 언제든지 치일 수 있도록

가장 간편한 곳에 성경을 언저 두었습니다

기도는 죄를 지을 수 있는 구실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님 한푼만 적선하세요

내 얼골이 요로케 이즈러진 것도

내 팔이 이렇게 부러진 것도

마님과니 말이지 내 어머니의 죄는 아니랍니다

! 무명전사의 기념제행렬(記念祭行列)이다

뚜걱 뚜걱 뚜걱……

                             --- 1936년 김기림의 기상도(氣象圖중에서---


 

 

 

 

Private Worlds(1935)

 

Claudette Colbert

콜베-르: Claudette Colbert 클로데트 콜베르

프라이빗 월드는 1934 년 필리스 보텀의 소설. 돌보는 여성 정신과 의사와 동료가 보수적 인 신임 상사로부터 차별을받는 정신 병원의 직원과 환자의 이야기 -1935 년의 드라마 영화

 

 

 

장제스의 초상화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삼민주의청년단원들.

삼민주의역행사(남의사)의 후신인 삼청단을 이끈 것도 역행사 출신들이었다.

 

 

 

 

 

 

宋美齡송미령: Sung Meiling 1897. 3. 5,출생     타이완 대총통 장개석의 둘째 부인.

1927년 장제스와 결혼한 뒤 그가 서구의 문화·사상을 받아들이도록 도왔고, 한편으로는 그의 대의를 서방에 널리 알리는 데 힘을 기울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MM1b4lzf6yg 

 

 

 

맥도날드 형제는 대대적으로 시스템을 손을 봤다.

중요시한 변화는 바로 속도전이었다. 30분 기다려야 할 것을 30초만에 나오도록 고안한 것이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인근 공원의 테니스코트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가장 효율적인 주방 동선과 기구의 배치를 고안했다. 그리고 실제 크기로 그린 전개도 위로 직원들을 보내 직접 동선을 몸에 익히도록 지시했다.

접시나 식기류를 제공하지 않고 종이 포장으로만 충분한 핑거 푸드를 냄으로써 비품 가격과 품을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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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택鄭人澤

 

성격:   친일반민족행위자. 

박태원()·윤태영()·이상()등과 가깝게 지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조선문인보국회에 관여했으며,

친일적인 작품들을 썼다.

8·15광복 후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다가 6·25전쟁 때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버지는 매일신보』 주필을 지낸 정운복이다.

한일 병합 전부터 일본의 돈을 받는 정탐꾼이라는 세평이 있었다.

서북학회 시절에 한일 병합 성사를 위해 상소를 올린 공을 인정받아 흑룡회가 1934년 건립한 일한합방기념탑에 이름이 새겨졌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 중 학술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도 들어 있다.

 

 

"서시"  바로가기

 

태고 적에 좌우를  난리법석을 치는 멍청한 놈 있더니               

그 불길한 자손이 백 세대를 이어오면서                            

이에 가지가지 문둥병자를 낳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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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클레르René Clair


요약프랑스의 영화감독. 《파리의 지붕 밑》으로 흥행에 성공한 후 《백만장자》, 《파리 축제》등의 걸작을 만들었다.

 이후 《자유를 우리에게》, 《최후의 억만장자》, 《분꽃》외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본명은 René Chomette. 파리 출생.

영화평론을 쓰면서 배우 ·조감독을 거쳐 1923년 《잠자는 파리 Paris qui dort》를 발표하였다.

초기의 그는 다다이즘 ·퓌리슴의 영향을 받아 대담한 카메라 기교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구사하여 전위영화풍의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막간 Entr’acte》(1924) 《물랭루즈의 유령》(1925)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맥고모자 Un Chapeau de paille d’Italie》(1927)부터 점차적으로 희극적 수완을 보이기 시작하여 유성영화 제1작 《파리의 지붕 밑 Sous les toits de Paris》(1930)에서는 훌륭한 음향 처리와 서민적 정서의 표현으로 흥행에 성공하였다.

이어서 《백만장자 Le Million》(1931)는 경묘한 터치로 그린 희극영화의 걸작이고, 《파리 축제 Quatorze Juillet》(1932)에 이르러 그의 명성은 확정적인 것이 되었다. 아름답게 흘러가는 화면, 분위기의 묘사, 싱싱한 정감, 음악 효과 등은 오래도록 역사에 남을 명작이다.

《자유를 우리에게 À Nous 1a liberté》(1931)는 문명비평이고, 《최후의 억만장자 Le Dernier milliardaire》(1934)는 파시즘에 대한 정치풍자였다.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가 미국문명을 비꼬아서 그린 《유령 서쪽으로 가다 The Ghost Goes West》(1935)를 만들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으로 피하여

《부인은 마녀 I Married a Witch》(1942) 등을 연출하였으나 호평을 받지 못하였다. 전후에 귀국하여

《침묵은 금 Le Silence est d’or》(1947)

《악마의 아름다움 La Beauté du diable》(1949) 《

분꽃 Les Belles-de-Nuit》(1952)

《라일락의 문 Porte des Lilas》(1957)

《세계의 모든 황금 Tout l’or du monde》(1961)

《풍아(風雅)한 연회 Les Fêtes galantes》(1965) 등 신경을 쓴 작품을 계속해서 발표했으나 왕년의 생채(生彩)는 기대할 수 없었다.

영화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선정되었다. 저서로 《나의 회상 Reflections on the Cinema》(1951)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르네 클레르 (두산백과)

 

 

박태원 <최후의 억만장자> 박태원 <최후의 억만장자(1)                                                                                                                                                                                               

 

 

 

 

 

 

 

 

 

 

 

 

 

 

 

 

 

 

 

 

쥘 르나르(Jules Renard, 1864년2월 22일 ~ 1910년 5월 22일, 프랑스 출생)

프랑스의 소설가·극작가이다. 살롱출생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집안에서는 그를 파리의 사범학교에 보내려 하였으나, 문학에 이끌린 그는 창작에 열중하여 1894년 <홍당무>를 써냄으로써 문단에서 이름을 얻기 시작하였다.

나이가 들자 고향으로 돌아가 촌장 일을 보면서 농촌을 개혁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주요 작품으로 <일기> <박물지> 등이 있다.

 

 

 

 

 

 

 

 

 

 

 

           

 

 

                                          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야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Nostalghia: 향수. 그리움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표시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19361조선문단종간호

 

 

 

                                    

 

 

구성 및 형식

 

9행의 자유시이다. 19361조선문단종간호에 발표되었다가 그의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1939)에 수록되었다.

 

다른 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작품이 전재되는 과정에서 몇 군데 첨삭이 가해지고 있다. 전체는 9행으로 연이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내용면에서 세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내용

 

첫 번째 단락(13)은 도입부로 깃발의 상징적 이미지를 영원한 세계로 향하는 향수의 몸부림으로 보았고, 두 번째 단락(46)에서는 깃발을 영원히 이룩할 수 없는 꿈과 끊임없는 흐느낌, 향수와 좌절로 보았다. 세 번째 단락(79)에서는 이러한 좌절의 근본적인 요인을 묻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통하여 깃발의 본래의 형태를 자신의 독특한 주관으로 해석하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의 실현을 갈구하는 마음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힘은 깃발의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계속 일으키는 파동감, 즉 상징성이 형성하는 자장(磁場) 같은 것이라고 한 어느 논자의 말과 같이, 그 이미지들이 결합되어 역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도 되고 노스탤지어의 손수건도 된다. 이때 깃발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으로 상징된다. 그리고 순정이 이념의 푯대 끝에서 백로처럼 날개를 펴는 애수로 화할 때, 깃발은 이상향에 집착하는 의지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의지로 발전하다가 결국 좌절의 비애로 귀결된다.

 

의의와 평가

 

시인이 지니고 사는 높은 이념이 외롭고 애달프다는 것은 현실과 이상, 좌절과 염원을 대응시킴으로써 더욱 확연해진다.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의지가 비애와 좌절로 귀결되면서도 생명에 대한 연민과 강한 애착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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