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니란다.☆

하늘의 뜻을 묻고자 첨성대에 올랐을 것이란다.

그럴듯하다.

꼭대기에서 천문을 관측하기에는 좁은 공간이기 때문이란다.

그럴듯하다.

 
돌대가리가 아닌 이상 그 높은 곳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가는 현기증으로 땅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나 같은 돌대가리는 7.8년간 매일 겨울 밤하늘을 올려보다가 풍치가 생겨 어금니가 왕창 날라 갔다.

고개를 젖히고 밤하늘을 한참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입은 저절로 벌어지고 치아에 겨울 찬바람이 그대로 엄습한다. 풍치는 당연한 것이니 내가 돌대가리였음은 분명하다.


 

첨성대는 천문관측을 할 만한 구조가 아니란다.

明명대가리들은 고대에 어떤 천문관측 방법이 있었는지 알고나 하는 말 일까.

옛날 돌대가리들은 높은데 올라가지도 않고도 천문 관측을 했다.

그렇지. 

춥고 바람 부는데 높은 데는 왜 올라가?

요것이 첨성대의 비밀이다.

 

옛날 돌대가리 별 바라기들의 천문 이야기


고대 문자는 천문을 기록하기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천문과 문자의 기원이라는 뜻인 其字의 의미를 보자.

갑골문자의 其字이다.

그릇에 별을 담아 놓았다.

한밤중 굳이 하늘을 올려 보지 않아도 물그릇에 투영된 별을 미리 만들어 놓은 좌표로 읽어 들이면 된다.

마찬가지로 첨성대에서도 물그릇 하나 있으면 어금니가 빠질 일은 없다.

높은 데는 왜 올라가!

물그릇에 투영된 별자리는 635년 1월 1일 0시에는 쌍둥이 별자리의 알파성 Castor카스트로별과 Pollux플룩스별이 물결위에 떠 있었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서 경주 밤하늘에 남중하는 별자리이다. 
첨성대좌표북위N35°.49‘50 동경E129°12'39


바로 잔잔한 물결이 밤바다海요 그곳에 떠있는 별이 좌표가 되어 山된다.

그래서 山海經산해경이라는 역사천문 책을 만든 것이다.  -줄임(천문해자 其部)-


물그릇을 통해서 관측하면 더 정확한 색상을 관찰 할 수 있다.

물결이 망원경과 오목 거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려서 동지 달 보름밤이 되면 누님들과 동내 처녀들이 모여서

물동이에 물을 떠다놓고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칼을 입에 물고서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면 미래의 신랑감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소름끼치는 장난들을 했었다.

동지 달 보름달은 그냥 보아도 늑대가 나타날 것같이 찬 빛을 띤다.

물동이의 물이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면 달은 물결을 따라 크게 또는 작게 보인다.

그리고 빛의 산란으로 인해 일곱 가지 무지개 색상이 나타난다.

이를 이용하면 물결에 비춰진 각별의 고유 색상을 더 정확하게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가끔 이 장난을 한다.

 

★☆

첨성대에 사다리를 놓고 오르면 사각의 들어가는 입구기 있다.

단지 天祭천제를 들이려고 들어가는 입구에 불과 한 곳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곳 이야말로 簡儀간의 渾天儀혼천의 역할을 한 천문 도구이다.


첨성대 안으로 들어간 관측자는 창문틀에다 모눈종이와 같은 틀을 끼워두고는 그 선분을 통해 별을 관측한다.

눈을 창문틀의 각이 15°에 맞춘 위치에 두고서

왼쪽 벽면에 나타난 별이 잠시 후 오른 쪽에 와 있다면 한 시간이 지난 것이다.

적경 값을 측정하는데 이용한 것이다.

창문 상하 틀은 적위 값을 측정 한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별자리의 위도를 확인한 것이다.

천문대 밖으로 나가면 대낮에는 첨성대 그림자 자체가 규표이다.

천문대의 모든 기능을 갖추었지 않은가.

이제 첨성대는 천문 관측할만한 구조가 아니라는 말은 하지 마시길 바란다.

 

★☆

첨성대에서 천문관측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렇다고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도 없다.

공정을 기하자면 단지 문자의 의미로 판결할 수밖에....................

瞻星臺

瞻星

瞻볼 첨:보다, 쳐다보다 바라보다 우러러보다 비추어 보다 살피다, 관찰하다(觀察--)

星별 성: 별 별 이름 해, 세월(歲月) 천문, 천체의 현상 점(占) 울의 눈금 순도(純度) 화폐.


문자의 의미를 봐도 내 눈에는 별은 보여도 천신은 보이지 않는다.

별을 보는 누대 아닌가. 

틀림없이 별이 보인다.

왜 들 이러시나?

 

★☆★

첨성대 위쪽 우물 井

우물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성조황고(聖祖皇姑) 선덕여왕의 성스러운 조상의 탄생"이란다.

첨성대 우물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탄생을 의미하는 우물이라는 것이다.


첨성대와 우물의 의미는 내가 일찍이 올린 글이 있다.

첨성대 주변이 못井이었다는 이론이다.

바로 물그릇에서 별을 관측 했듯이 첨성대를 규표삼아 해를 관측 했다는 말이다.

 



 

잔잔한 물은 수평면을 이루므로 측정시 오차가 없다.

첨성대 맨 위에 있는 우물 정(井) 자는 밤하늘의 우물이요

그에 응하는 땅에 우물정(井)을 만든 것이니 첨성대 주변이 못이 될 가능성이다.

위 내용을 지난 2005년경 첨성대를 연구 조사한 당시 배재대 모 교수를 찾아가 밝히고 주변의 못이 있을 가능성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 바 있다. 

그리고 첨성대에 못이 있는 꿈을 가끔 꾼다.

 


★☆★

고대 모든 규표에는 수평면을 이용했다.

청주 용두사 철당간이 규표의 역할을 했다면 주변이 연못이었을 가능성 또한 크다.

이 때문에 서너 달 청주에서 머물렀었다.


그 옛날에는 현재의 무심천은 철당간 주변으로 흘렀다 한다. 한전의 지중화 공사시 철당간 주변에서 석축과  몇몇 유물들이 발굴됐다. 그림의 석축을 중심으로 물이 흐르던 곳에서는 고운 강모래가 나오고 철당간의 주변은 벌흙과 같은 진흙이 나온다고 한다. 강의 위쪽에서 진흙이 나온다는 의미는 물을 가둬 두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연못이 있었을 가능성이다.

 


★☆★☆

실로 웃긴다. 웬만하면 고대의 훌륭한 과학을 귀신에다 접목 시킨다.

첨성대에서 천문적 의미를 밝힐만한 것은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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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足烏와 뽕나무

? 삼족오는 발이 세 개이고

뽕나무는 세 닢일까?

 

동지 시각을 측정하는 방법

동지시각은 금방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계산에 의해서 찾게 된다.

수직막대 . 圭表. 등을 세워 그림자 길이를 측정한다.

 

 

 

동지일시 s에 가까워졌다고 생각되는 날 쯤 일남중 때인 날짜 a에서 규표그림자 길이 p를 측정해둔다.

이후 그림자 길이가 점점 길어졌다가 다시 짧아져 갈 때 1일 차이를 두고 각각 일남중 때의 그림자 길이 qr을 측정하는데 p>q>r이 되는 날짜 b.c를 택한다.

b.c사이에서 그림자 길이가 p가되는 날짜를 x라고 할 때

B.C를 직선이라고 보면 동지일시는 다음 식에서 구해진다.

q-p/p-r = x-b/c-x x = b(p-r) + c(q-p)/q-r

만일 시각을 일 단위로 표시하면 c = b+1이므로

x = b + q-p/p-r

그림자 길이를 나타내는 곡선 ABC가 동지점 M을 중앙에 두고

좌우 대칭이라고 하면 동지 일시 Sa x 와의 상가 평균이 된다.

s = 1/2[ a + b + (q-p/q-r)이 된다.

- 이은성. 역법의 원리 분석 - 중에서

 

A.M.B 점 좌표의 측정이 우선 정확해야한다.

이를 정확히 하기위해서는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일남중 그림자를 찾아야한다.

이때 세 개의 발이 필요하다.

규표의 꼭대기에 삼지창처럼 세 발을 正東쪽을 향해 펼쳐 놓는다.

동쪽에 떠오를 때의 해 그림자는 세 개의 발모양이지만

남중 했을 때의 세 발은 일직선상의 그림자를 그리게 된다.

이 때가 정남의 방향이 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세발의 기능이요.

삼족오의 기능이요. 자의 본래 기능이다.

즉 고대 삼족오의 기능과 자의 쓰임새는 천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扶桑

論衡 說日中 왕충의 논형 해이야기 중에서

儒者說 선비들의 말에 의하면

在海外東方有湯谷 바다 밖의 동쪽에는 탕곡이 있어

上有扶桑 위로는 부상이 있다 한다.

十日浴沐水中 해가 열흘 물속에서 목욕을 하는데

有大木九日居下枝 큰 나무가 있으니 9일은 아래가지에 머물고

一日居上枝 하루는 윗가지에 머문다고 한다.

 

여기서 十日은 열 개의 해가 아니라. 十日 = 열흘로 해석 되어야한다.

 

해가 떠오르는 扶桑나무는 규표를 의미한다.

 

 

 

 

 

 

 

湯谷이란 규표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부어놓은 관측기 아래 물을 말한 것이다.

十日浴沐水中 이 말은 10일 간격마다 규표를 측정한다는 말이다.

은허의 갑골판에 每旬 10일마다 관측한 기록이 있다.

一日居上枝 태양이 그 담당하는 일자에 관측기 꼭대기 까지 올라온다는 말이다.

 

뽕나무자의 나무위에 있는 3좌표가 일직선상에 놓일 때 남중이 된다는 의미이다.

 

 

곧 부상나무는 관측기구 圭表의 또 다른 이름이요.

삼족오의 기능이다.

 

日中三足烏 태양 속에 三足세발이 있으면 검다는 뜻이다.

태양을 향해 동전을 들고 보면 밝은 빛 때문에 동전이 검게 보인다.

인간의 육안으로 태양사이에 놓고 보면 모든 사물은 검게 보인다.

일식은 달이 검게 보이는 것이며 三足 세 발이 검은 이유이다.

日中桑烏 또한 그럴러니 ......

 

 

 

 

 

 

 

 

 

 

 

마치 세 개의 솟대 같습니다..

 

1. 오른 쪽의 까마귀 주변으로 펼쳐진 부채살 모양은 마치 고대 천문도의 28수 방위각을 펼쳐놓은 듯 합니다.

2. 중앙의 솟대 맨 위에 삼족이 보이고 그 아래는  거북의 등 모양이고, 그 아래 주렁주렁, 풍경이 매달린 듯 한, 그 옛날의 결승을 매달아 놓은 것 같네요. 잉카 유물에서도 그와 비슷한 결승(結繩)을 보았습니다.

3.왼쪽은 달을 상징한 문양입니다.

4. 좌우 솟대에 둥근  고리모양의 보륜(寶輪)이 층층이 배치된 것은  솟대를 통해 하늘을 볼 때, 赤緯의  위치를 찾는 天文기구의 역할을 했을 듯 합니다.

5. 까마귀가 세 발을 가지고 있고  태양과 연관지여지는 것을 아래 그림에서 상상해 봅니다.

 

명치천황어즉위식도병풍(明治天皇御卽位式圖屛風)그림 내용의 실체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삼지창을 삼족오의 발로 본다면 말입니다.

 

 

 

당간의 그림자는 저 들녁에 시간표를 그리고  대대로 이어온 들녁의 농부는 아마. 그림자의 위치만 보아도  새참 먹을 시간을  알았을 것입니다.
 
천문도의 상징

 

明治天皇御卽位式圖屛風



 그림의 전체적 의미를 살피면

 
멘 위쪽은 새의 모양이고 그 다음 거북의 모양과 아래로 여인들의 노리개와 같은 수술이 달려있는 모양이다.
 

1. 새: 은하수의 상징의 의미
 
장자의 소요유 천문적 해석에서 한 여름밤의 은하수는 물고기에서 붕이라는 새로 변한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찬란한 은하수의 모양을 상징한 것이다.
우리의 은하는 태양계를 감싸안고 있고 우리육안으로 가장 높이 하늘 전체에 펼쳐진다.
그 상징은 맨 윗자리의 鵬이라는 새로 자리하게된다.      --  참고: 장자는 천문학자 --
 
2. 거북: 천문도의 상징
 
바다거북의 네 다리로 四極을 세웠다는 말은 천문도를 작성했다는 말이다.
현무도의 그림이 그렇고, 고문자의 龜字의 의미가 그러하며,  갑골문자의 점복이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천문의 의미를 갖는다.

 
3. 노리개: 천문 좌표의 의미
고대 문자의 기원에서는 結繩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문자의 기원은 천문에 있고 결승은 천문도의 좌표를 표시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참고: 설문해자의 천문적 이해

 
노리개의 모양은 各宿별로 별자리의 모양을 결승으로 나타낸 모양이다.
천상열차분야도의 둥근 원의 모양은 거북으로 360도의 방위를 그리고, 은하수는 U자형의  새로 그려지고, 노리개로써 각각의 별자리를 나타낸 상징물이다.
 
明治天皇御卽位式圖屛風의 가운데 그림은 천문도를 의미하는 천문행위의 상징적 그림이다

위 병풍도의 삼족오의 형상은 솟대나 당간위에 올려져 정남북을 향해있으면, 태양이 뜰 때 서쪽으로 그림자를 만들면 삼족오의 세개의 발을 볼 수있다.

한낮이되면 태양이 정남을 향할 때는 일직선상에 놓이게된다. 태양이 까마귀를 삼킨 모양이 된다. 점심식사 시간이다.

 

 



 

 

 

 

 


 

 

 

 

 

 

                                                                                      작업중

                                                                      烏

 

 

 

 

 

 <태평어람 권3>의 내용 중
春秋元命包曰陽數起於一故日中有三足烏。
<춘추원명포>라는 책에 이르기를  

"양수는 1로부터 시작되어 3에서 완성된다. 그러므로 해 안에는 삼족오가 있다.” 
일반적인 해석 내용이다.
양수는 1에서 시작해서 3에서 이루진다면 5,7,9는 어떤 數일까? 
숫자의 음양 중에 홀수가 陽이되고 짝수가 陰이되는 원리를 설명한 것일까? 
1과 3이라는 양수 때문에 삼족오가 해 가운데 있어야할 이유는? 
數에관련된 문헌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 본의를 찾을 수 없다. 

 
1. 天文을 도입해서 새로운 해석을 한다. 


 

陽數於一成於三故日中有三足烏 
陽數양수란 태양의 수치다. 

태양의 수치란: 해 빛이 규표를 통해 그려내는 그림자의 길이를 수치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즉, 규표의 그림자 길이를 말한다. 


陽數起於一: 양수를 하나로 세운다는 말은 위 그림에서 보듯
규표의 위쪽에 있는 三足烏 세 개의 발그림자가 하나가되도록 한다는 말이고 
남중시간에 가장 짧은 해 그림자를 만든 것이다. 
成於三: 3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은 세 개의 발그림자가 이루는 아침때의 그림자모양이다   
故日中有三足烏: 그것을 이르러  태양 가운데에 세발 까마귀가 버티고 서있다고 하는 것이다. 

2. 文字的검토 
본문 내용중 “”字의 의미부터 살펴본다. 
문자의 천문적인 해석과 천상열차분야도를 통해 그 년대를 추론한다. 

漢字字典내용의 의문 

《廣雅‧釋詁四》:起立也。 
《玉篇》:巳起也。晉《樂志》巳起也。라 하고 
《白虎通‧五行篇》:故太陽見於巳 巳者物必起律中。라는 대목이다. 
그 옛날  태양을 巳의 자리에서 보았다. 란  법칙의 중앙에 세울 때 필요한 물건이다. 
起律中: 律中이란 천문의 법칙에서 중심점 즉 관측시의 가장 정확한 지점을 뜻하는 말이다. 
巳者物: 巳의 하지점에서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른 순간에 맞춰놓은 천문 관측기구를 이르는 말이다. 

《韻補‧紙韻》:“古巳午之巳亦讀如已矣之已 
그 옛날 巳가 午의 자리였다고 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상의 古午의 시기는 BC2333년
古巳의 시기 는  고사의 시기 는 BC4484년경이다. 

 


12간지를 집대성한 五行大義에 三禮義宗云 
<巳起也物至此時皆畢盡而起.> 
畢은 28宿의 황소자리ε 별이다. 
“巳起也. 이때에 이르러 황소자리 모두가 일어나 보인다.”는 뜻으로 
사유환의 지침이 巳方에 오는 하지 때의 밤하늘에 畢方의 별자리가 똑바로 보인다는 말이다.  


 

《爾雅‧釋天》:“太歲在巳曰大荒落 
巳名大荒落.荒.大也.言萬物熾盛而大出.落落而布散也 

巳名大荒落의 뜻 
太歲在巳曰大荒落: 歲數를 계산할 때 巳의 위치에 있을 때를 大荒落이라한다. 
大荒이란 黃道를 이르는 말이다. 밤하늘에 해가 지나간 자리를 大荒이라한다. 
大荒落이란: 위 그림에서 보 듯 황도의 자리가 지평선 쪽으로 내려앉았다는 말이다.  
山海經에 大荒四經이 있다. 황도주변에 이뤄진 별자리의 설명서이다. 
《釋名》巳巳也 陽氣畢布巳也 於易爲巽 巽散也 物皆生布散也 

巽(동남쪽)에서 펼쳐진 物(밤하늘 별자리)이 돌아가면 巳에서 陽氣(여름의 기운)인 황소자리가 
펼쳐진다는 뜻이다. 
字와 字에 관련된 문헌 기록은 무수히 많다. 
천문상의 용어로 그 쓰임새만을 간략한다.  

                                              끝

박혁거세가 태어난 우물을 보면

 

天地振動日月淸明因名赫居世王蓋鄕言也或作弗矩內王言光明理世也


天地振動, 日月淸明, :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고 밝게 빛났다.


因名赫居世王 : 그래서 혁거세 왕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蓋鄕言也, : 순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면


或作弗矩內王, : “ 弗矩內버얼거내 ” (붉다) 불그스레한 왕이라 하는데.


言光明理世也 : 이 말은 "이치를 밝혀서 세상을 밝게 개화 했다는 말이다."


  즉 천문을 통하여 5행성의 운행의 이치를 밝히고 달력을 만들어


      삶의 질을 한 수준 높혔다는 뜻이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우물 蘿井나정의 발굴현장 사진을 보는 순간 부터


"천문도"라는 생각을 지울 수없어. 함께 토론코져 여기 올립니다.

 

 

 

 

 


  

 

 

  


그림3 나정 복원도

 

 


1. 그림의 지붕을 걷어내고 목책들을 천문대의 규포로 삼아 천문관측을 하지 않았을까.


2. 하늘의 별자리를 모두 땅에 표시한 천문도로써 우물을 지구의 중심으로(천문도 =북극) 삼아 


    신성시 한 곳은 아닐까.

 

3, 우물과 도랑에 물을 채우는 것은 천문관측시 垂平을 유지하기위한  방편


4. 우물의 위치는 북극


    도랑은 은하수


    돌무더기를 28宿 삼아.....


 그림4 

1. 8각형의 돌담은 적위0
2. 도랑의 아래부분이 8각의 틀을 벗어난 것은 우리가 볼 수없는 은하수 부분

3. 다양한 모양의  목책 구멍들은  혹 천문도구를 설치한 기단부분 아닐까? 


 

마치 천문도와 흡사하다.

 

 

 

 

천문으로 왕권 쟁취 !

신라에서는 훌륭한 천문이 성행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당시대 신라의 박혁거세는 연오랑과 같은 케이스로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가설이 나온다.

 

 

중원의 땅 저 어디에선가 변란이 일자 첨단 기술을 가진 과학자들이 신라 땅으로 대거 망명을 떠나온다.

천문학자들이다.

신라초기 토착민들이 그리도 바라던 정확한 달력을 만들어줄 혁거세가 나타났다면 

이 또한 왕으로 맞이하지 못 할 이유가 없다.  

                                          

어째든 연오랑과 세오녀는 까마귀烏자로써 천문학자로 변신을 시켰다.

혁거세도 가능한가?


《삼국사기》에 따르면,

일찍이 고조선의 유민(遺民)이 지금의 경상도 지방 산곡간(山谷間)에 흩어져 살면서, 양산촌(楊山村) ·고허촌(高墟村) ·진지촌(珍支村) ·대수촌(大樹村) ·가리촌(加利村) ·고야촌(高耶村) 등 여섯 마을을 형성하였다. 고허촌장 소벌공(蘇伐公)이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 곁에서 말이 알려준 큰 알을 얻었는데, 깨 보니 그 속에 어린아이가 있었다. 알이 매우 커서 박과 같다 하여 성을 박(朴)이라 하였다. 고 한다.


10년 前 쯤에

고대인들의 천문 방법에 관해 글을 쓴 기억이 난다.

其기자의 상형을 풀이하면서 밝힌 내용을 여기 다시 한번 올린다.


其(기)


甲骨文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문자이다. 상형은 그릇 모양이고,

위쪽에 손잡이 모양의 꼭지가 있다.

평범한 그릇의 의미보다는 조금 색다른 의미이다.

그릇 속에는 x 자형의 상형이 있다.

x 자형의 의미는 "별"을 나타낸 것이고 그릇은 별을 담아놓은 것인데 "그릇 속에 별을 담아놓았다."는 의미는

다름 아닌 ⽧천문 관측기구로 그릇을 의미한다.

하늘의 별을 어떻게 그릇에 담는다는 말인가?


고대에 천문 관측을 그냥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 본 것만이 아니라, 숫한 관측기구가 동원되었다.

桂(계), 圭(규),車(차), 頊(욱), 垣(구)자 등은 천문기구를 의미하는 문자이다.

其(기)자는 그릇에 물을 받아놓고 물위에 비치는 별을 관측한 것이며,

상형에서 보이는 그릇의 손잡이와 같은 곳에는 관측기구를 매달아 놓고 편안하게 관측을 한 것이다.

천문관측의 기초이며, 모든 천문관측의 시작은 바로 이 其(그릇)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其는 기초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즉 모든 천문은 其(기)에서 "비롯된다"의 의미 引伸(인신)이다.


 

 

 

가득 채운 물동이 위에 물이 넘치듯이 언제나 수평을 유지하고 나타난 별의 좌표는 별빛의 입사각과 반사각으로 좌표를 확인한다,

한겨울 추운 날에도 관측대 높은 곳에서 직접 찬바람을 맞지 않고도 별의 좌표 관측을 할 수 있는 것이며,

물의 표면은 항상 수평을 유지하므로 물동이 위에 모눈종이만 올려놓으면 씨줄과 날줄의 좌표점을 구할 수 있다.

其(기)자의 뜻은 ⽧천문 관측기구이며, 天文圖를 의미한다.


천문에서의 "별통"은 땅을 파고 웅덩이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은허의 甲骨文字(갑골문자)발굴 터의 웅덩이는 "별통"이 아닌가? 다시 보아야 한다.

甲骨文字(갑골문자)는 천문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천문의 기록이 있다면 天文臺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고, 알 수 없는 유물 또한 천문도구 쓰였을 가능성 또한 濃厚하다.


신라시대의 첨성대의 맨 위쪽의 觀測臺(관측대)에서도 물그릇을 이용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 높고 좁은 곳에서 장시간 고개를 젖히고 별을 관측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유물의 그림 중에 [물그릇과 하늘의 별과 기다란 장대를 들고 서있는 사람]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복잡한 관측기구 없이도 가능한 천문 좌표를 읽는 방법이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우물이 바로 其자를 이용한 천문관측을 한 우물이다.

우물 이름이 蘿井나정 이라했으니 우물井은 其자로 대치한다.

이제 우물위에 모눈종이같이 자오선만 올려놓고 별을 보면 된다.


蘿 나: 자의 의미를 보자.

 

 

 


 
  


그물 나 자에 풀 艹자가  더해진 글자이다.  소나무 겨우살이란 토사를 말한다.

토사菟絲의 의미는 구책열전에 밝혔듯이 천문도를 그릴 때 씨줄과 날줄을 만드는 실의 기능을 한다고 밝혔다.   

                                                                                           - 구책열전 바로가기-

위에 거론한 가득 찬 우물위에 씨줄과 날줄을 늘어놓았다는 의미가 바로 蘿井나정이라는 단어다.

혁거세가 蘿井나정 우물에서 천문을 함으로써 달력을 얻게 된 여섯 마을 촌장들이 뿅가서 임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赫居世의의미를 보자.

赫혁: 붉다. 빛나다. 성하다.

居거: 살다. 살게 하다. 앉다.

世세: 인간. 세상. 역대.

몸담고 있는 세상을 빛나게 해다는 의미이다.

居: 어딘가에서 와서 슬쩍 엉덩이를 들이 밀은 세상을

    밝게 해준다는 말이다. 천문으로?


삼국유사에 보면 혁거세가 태어난 날

天地振動日月淸明因名赫居世王蓋鄕言也或作弗矩內王言光明理世也  


天地振動, 日月淸明, :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고 밝게 빛났다.

因名赫居世王           : 그래서 혁거세 왕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蓋鄕言也,                 : 순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면

或作弗矩內王,          :  “ 버 얼 것 테이 ” (붉다) 불그스레한 왕이라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

言光明理世也           : 이치를 따져서 세상을 밝게 개화 했다는 말이다. 라고 주석했다.


구석구석 천문의 의미를 찾으려 애를 써봤다.

그러고 보니 왜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풀린다.

혁거세는 분명 이방인으로 신라 땅에 도래했다.

       ( 아무리 봐도 흉노에서 온듯한데 뭐라고 말을 못 하겠네 ! )

이방인이 와서 자신들의 임금이 됐다면 토착민으로써는 무척 자존심 상한 예기다.

그러니 이왕 만드는 예기니까.

“알에서 나왔다고 하자.”

6부촌장하고 혁거세하고 타협을 봐서 각서 날인한 건국 신화인 것 같다.

알에서 태어난 시조는 한둘이 아니다. 그들 모두 그런 식으로.......

물론 연오랑과 세오녀가 건너간 것이 사실이라면 일본 기록에는 알에서 나왔다고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아.

                                                                                                                                                - 끝 -


                                  혹시 !     朴박씨들의 피부는 조금 불르스레한가?

 

 

                                                                               뱍혁거세가 천문하자였을 가능성은? 바로가기

 

 


蘿나: 莪也。人人艸,羅聲。

   釋義《廣韻》魯何切,平歌來。歌部。

   1)莪蒿。《爾雅‧釋草》:“莪,蘿。”郭璞注:“今莪蒿也,亦曰示蒿。”

   2)某些蔓生植物。如:女蘿;藤蘿;蔦蘿。《玉篇‧艸部》:“蘿,女蘿,托松而生。”《詩‧小雅‧頍弁》:“蔦與女蘿,施于松柏。”毛傳:“女蘿,菟絲,松蘿也。”《文選‧木華〈海賦〉》:“輕塵不飛,纖蘿不動。”李注引《爾雅》曰:“唐蒙,女蘿。”唐杜甫《佳人》:“侍婢賣珠迴,牽蘿補茅屋。”


 

연오랑과 세오녀

三國遺事

延烏郎  細烏女

第八阿達羅王卽位四年丁酉 東海濱有延烏郎 細烏女 夫婦而居 一日延烏歸海採藻 忽有一巖 《一云一魚》 負歸日本 國人見之曰 此非常人也 乃立爲王 《按日本帝記 前後無新羅人爲王者 此乃邊邑小王而非眞王也》 細烏怪夫不來 歸尋之 見夫脫鞋 亦上其巖 巖亦負歸如前 其國人驚訝 奏獻於王 夫婦相會 立爲貴妃 是時新羅日月無光 日者奏云 日月之精 降在我國 今去日本 故致斯怪 王遣使求二人 延烏曰 我到此國 天使然也 今何歸乎 雖然朕之妃有所織細綃 以此祭天可矣 仍賜其綃 使人來奏 依其言而祭之 然後日月如舊 藏其綃於御庫爲國寶 名其庫爲貴妃庫 祭天所名迎日縣 又都祈野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157) 동해변에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살았다.

하루는 연오가 바닷가에서 해조(海藻)를 따고 있던 중 갑자기 바위가 연오를 싣고 일본 땅으로 건너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남편 연오가 돌아오지 않자 찾아 나섰다가 남편이 벗어 둔 신을 보고 그 바위에 오르니 바위가 또 세오를 일본으로 실어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놀라 이 사실을 왕께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나 세오를 귀비로 삼았다.

이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일월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버려 괴변이 생겼다고 하였다.

이에 국왕은 사자를 일본에 보내어 이들 부부를 찾게 되었다.

연오는 그들의 이동이 하늘의 시킴임을 말하고 세오가 짠 세초(細錞)로 하늘에 제사하면 다시 일월이 밝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사자가 가지고 돌아온 그 비단을 모셔 놓고 제사를 드렸더니 해와 달이 옛날같이 다시 밝아졌다.

비단을 창고에 모셔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였으며,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하였다.

연오는 태양 속에 까마귀가 산다는 양오전설(陽烏傳說)의 변음으로 볼 수 있고, 세오도 쇠오, 즉 금오(金烏)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연오와 세오의 이동으로 일월이 빛을 잃었다가 세오의 비단 제사로 다시 광명을 회복하였다는 일월지(日月池)의 전설과 자취는 지금도 영일만에 남아 있다.

 

두 부부의 이름에는 까마귀 烏자가 들어 있다.

까마귀를 "천문"의 의미로 해석하면  

 

부부 천문 학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처음으로 천문을 시행하여 천자의 자리에 앉았다는 의미가 된다.

고대 천문은 곧 왕권의 의미였으니까.

빛을 잃었다는 말은

신라에는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가 없어짐으로 정확한 천문을 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고

뒤에 세오녀가 짠 비단에 천문도를 그려 보냄으써

그 천문도로 정확한 관측을 할 수 있었기에 해를 돼찾을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하다. 

비단 제사로 다시 광명을 회복하였다는 말은 곧

봉선의 의미요. 제사를 올려 천문으로써 하늘의 달력을 얻는 일을 말한다.

양오陽烏. 세오도. 쇠오, 즉 금오金烏. 삼족오의 까마귀 烏는 천문의 상징이다.

 

일본의 여러 神寺에 세발 까마귀가 등장하는 것은 종교적 의미 보다도

天子라는 권력 숭배의식이 농후하다.

그들이 숭배하는 삼족오는 神의 상징이아닌

고대 천자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옛날 아무리 칼을 잘쓰고 막강한 권력을 쥐고있어도

백성들에게 나눠줄 달력을 못 만들면 

만호의 대접은 받아도 왕의 대접은 받지 못한다.

대륙의 정세에 눈을 뜬 일본 권력자들이

얼마나 천문이 절실했을까.

하다못해 연오랑을 바지 임금으로라도 모셔가야할 판 아니었겠나.

 

 

까마귀

우리는 찬란한 고구려 천자의 상징을 불길한 새라며 버리려한다.

영토는 중국으로 상징은 일본으로 .....

그러고 우리는 비둘기를 찬양한다. 구 구 구 구 

중국 삼족오의 부활

 

 三足烏를 차지하는 자가 天子다.

 

 

 

 

 

 

 

고대 天文은 천자의 전유물이었고

 

삼족오는 天文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삼족오가 天文의 상징인 것을 우리만 모르고 있다.

 

 

 

 

 

 

 

 

중국은 이미 삼족오 해시계를 부활 시켰다.

 

산해경에 그 기록이 보이는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이었기에 

 

중국도 어찌하지못하고

 

金烏 === 金鷄  == 삼족오라 칭해서 대충 얼버무린다. 

 

日本 咫烏오 = 삼족오라고 우기듯...... 

 

 

金雞日晷(時間之鳥)----- 라는 명칭으로 공원에 해시계를 설치 했다. 

 

 

 

 

 

 

 

 

 

 

이미 그들은 삼족오가 해시계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만 모른다.

三足烏를 차지하는 자가 天子다.

 

 

 

 

 

고대 天文은 천자의 전유물이었고

 

삼족오는 天文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삼족오가 天文의 상징인 것을 우리만 모르고 있다.

 

 

 

일본 八咫烏팔지오의 다리는 과연 3개 인가?
 

오로모르후” 논고   (オロモルフの論考) 중에서 간략했음

 

 일본 특유의 석연찮은 표현이 문제다.


 

◆◆◆ 일본 축구 협회에의 항의 ◆◆◆

 

 

 

한일 공동개최의 월드컵축구  준비가 나아가고 있었을 무렵,

일본 축구 협회의 심볼 마크가 화제가 되어 논의가 일어났습니다.

이 마크는  디자인도 꽤 멋지고 문제는 없을 것 같게 보입니다만

이것에 대해 하물며

일부 보수파의 사람들까지 엄격한 항의를 했습니다.

 

 

그 심볼 마크는 일본 신화의 〈八咫烏팔지오〉인데 일본 신화의 설명이 없는 것은 이상하다라고 하는 항의였습니다 .

이 항의는 신문에도 다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축구 협회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 저자의 의문과 추리 ◆◆◆


저자는 이 건에 대해서 두 가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1)  일본 축구 협회에의 의문

        왜 일본의 협회인데 일부러  シナ지나”중국 전설의 까마귀등을 가져왔는지?

 

 

2)   항의하는 보수파에의 의문

          그 항의는 〈八咫烏팔지오=〈삼족오>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정말로 그런가?

                                                                                                       <三足烏>  “산조크우”라고 읽습니다.


 

 

 

저자는 「고사기」나 「일본 서기」를 읽어도

八咫烏팔지오 = 삼족오 라고는 써 있지 않기 때문에

보수파의 항의에 의문을 가져 이것저것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로 해서 적어도 고대에 있어서는 八咫烏팔지오 = 삼족오라는 추리를 했습니다.

왜 그러한 추리를 했는가 하면  이하에 설명하는 몇 개의 문헌이 있기 때문입니다.


 

 


 

- 八咫烏팔지오에 대한 일본 최고의 문헌-

 

 1. 古事記고사기(712년)      2.日本書紀일본 서기720년)   先代旧事本紀선대구사본기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이러한 고전 안에


神武天皇진무덴노”가 ‘大和다이와’에 진출하는 도중의 험한 곳의 “熊野쿠마노”에서 길을 잃었을 때

(天照大神)대신이〈八咫烏팔지오를 파견해 길안내를 시킵니다.
그 결과 ‘카미타케’일행은 무사하게 우다(나라현 우다군)에 도착합니다.

그 후의 전쟁에서도〈八咫烏팔지오는 천황의 지시에 의해서 활약합니다.

 

그런 애착으로 동정이 완료했을 때

천황은〈八咫烏에 은상을 줍니다만

그 자손이 “카모 아가타누시” 일족(쿄토의 카모사를 둘러싸는 호족)이 되었습니다.

일본 서기가 가장 자세합니다만 다른  두 책에도 모순된 기술은 없습니다.


 

여기서 짐작가는 것은

 일본 최고의 사서에는〈八咫烏>가 3개의 발<三本足>이라는 기술은 전혀 없습니다.

만약 그러한 구전이  710년 나라시대보다 전부터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큰 특징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쓰여지지 않은 것은  그러한 구전이 없었다고 하겠지요.

 

 


중국전설의 <三足烏>그 자체는   玉虫厨子 다마무시노즈시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

고분벽화에도 있다고 하기 때문에

꽤 옛부터 알려져 있어 태양에서 까마귀라고 하는 전설이

〈八咫烏>신화에 영향을 준 것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八咫烏>의 다리가 실제로 3 개였다고 하는 전승이 옛부터 있었으면

반드시「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그렇게 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의 사서에도〈八咫烏> 天皇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부하로서 쓰여 있습니다.

만약<三足烏>였다면 태양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천황보다 상위로서

神武天皇을 도운 鵄鴙금치나 “ 神剣布都御魂신검포도어혼”과 같이

더 신비적으로 쓰여 질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한 일은 없었습니다.

 

天照大神이 태양신으로 되어 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게다가 전쟁이 끝난 뒤 천황이〈八咫烏>에 은상을 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  천황의 부하로서의 취급한 것입니다.

 

 

 八咫烏는 賀茂県主라고하는 호족의 선조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고대인도 집필자는 학자이기 때문에 까마귀로부터 사람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호족의 선조 집단의 활약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덧붙여서 저자가 배웠을 무렵의 초등학교 국사의 교과서에 있는〈八咫烏>의 다리는 그려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八咫烏>의 다리가 3 개라고 하는 인식이 전쟁(2차대전) 전의 역사학자에게 있었으면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일본 서기등 최고의 사서에는

〈八咫烏>의 다리를 3 개로 하는 기술이 전혀 없는 것을 알았으므로

 다음은  오래된 신사의 전승에 대해서 조사해 보겠습니다.

 

 

- 八咫烏神社由緒書8지오신사 유서서(705년 창건) -

 

이 신사는『続日本紀속일본기에 의하면 몬무 덴노의 교운2년 9월(서기 705년)에 창건 되었습니다.

서기 705년 이라고 하여『古事記고사기의 성립보다 전으로 아주 오랜 신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正史의 「속일본기」에 기록되고 있는〈八咫烏>가 활약한 “奈良県宇陀郡나라현우다군” 입니다.

이 신사의 유서서에, 개략 다음과 같이 있습니다.

토지의 호족 “武角身命무각신명”이, 검은 옷을 입어 나무로부터 나무로 뛰어 이동하면서 神武天皇을 안내했다.

천황은 그 모습을 보시고,〈八咫烏>라고 하는 칭호를 내리게 되었다.

 

 

 

 

 

八咫烏神社 의 제신은 이 “무각신명”이며  그 자손은 “賀茂県主카모아가타누시”이라고한다.

        신사의 도안에는<三足烏>를 사용하고 있다.

                                                                                                             “현마츠코의 기억”

 

즉〈八咫烏>란  검은 옷을 입어 길안내를 한 호족이  마치 큰 까마귀와 같이 보였으므로

 천황이 내린 칭호(작명)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물론 인간으로 한편 神武天皇의 부하입니다. 그리고

그 고사와는 관련 없는 <三足烏>를 신사의 마크로 하고 있습니다.


 다음 〈八咫烏>나 <三足烏>에 관계 깊은 “카모사”와 “ 熊野三山쿠마노미야마”의 자료를 간단하게 적어 둡니다.

 심볼 마크는 모두<三足烏>입니다만
賀茂社카모사는 앞의 「八咫烏神社」의 안내글에 써있었듯이

八咫烏>그 사람의 세력권이 “京都쿄토”까지 이어졌던 오래된 신사입니다.

이 신사는 아래와 위의 2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신은 “賀茂別雷大神”으로 “玉依媛命옥의원명”의 자로 되어 있습니다.

즉 “建角身命건각신명” =八咫烏의 손자에 해당합니다.

 이 두 개의 賀茂社의 심볼 마크는모두<三足烏>입니다만 그러나

전해지는 由緒譚에는 선조의 다리가 3 개였다고 하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마크로서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다음에는  神武天皇東征伝説동정전설로 알려져〈8지오〉가 활약한

和歌山県와카야마현”의 “熊野쿠마노”에 있는

세 개의 “著名神社저명신사” “”熊野三山쿠마노산야마에 대해서 적습니다.

 

합계 13 기둥의 제신이 모셔지고 있습니다.

주제신은 “家津御子大神(素戔嗚尊가진자대신(소전오존)”으로 그 밖에 신화로 유명한 신들이 죽 줄지어 있습니다.

축제는 많이 있습니다만  특히 유명한 것이 1월7일의 〈八咫烏>제사입니다.

 신사의 심볼 마크 또한 <三足烏>입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八咫烏>제사의   牛王神符우왕부적에 있는 많은 까마귀는 3 발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 일본 축구 협회에의 항의 ◆◆◆

 

 

 

한일 공동개최의 월드컵축구  준비가 나아가고 있었을 무렵,

일본 축구 협회의 심볼 마크가 화제가 되어 논의가 일어났습니다.

이 마크는  디자인도 꽤 멋지고 문제는 없을 것 같게 보입니다만

이것에 대해 하물며

일부 보수파의 사람들까지 엄격한 항의를 했습니다.

 

 

그 심볼 마크는 일본 신화의 〈八咫烏팔지오〉인데 일본 신화의 설명이 없는 것은 이상하다라고 하는 항의였습니다 .

이 항의는 신문에도 다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축구 협회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 저자의 의문과 추리 ◆◆◆


저자는 이 건에 대해서 두 가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1)  일본 축구 협회에의 의문

        왜 일본의 협회인데 일부러  シナ지나”중국 전설의 까마귀등을 가져왔는지?

 

 

2)   항의하는 보수파에의 의문

          그 항의는 〈八咫烏팔지오=〈삼족오>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정말로 그런가?

                                                                                                       <三足烏>  “산조크우”라고 읽습니다.


 

 

 

저자는 「고사기」나 「일본 서기」를 읽어도

八咫烏팔지오 = 삼족오 라고는 써 있지 않기 때문에

보수파의 항의에 의문을 가져 이것저것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로 해서 적어도 고대에 있어서는 八咫烏팔지오 = 삼족오라는 추리를 했습니다.

왜 그러한 추리를 했는가 하면  이하에 설명하는 몇 개의 문헌이 있기 때문입니다.


 

 


 

- 八咫烏팔지오에 대한 일본 최고의 문헌-

 

 1. 古事記고사기(712년)      2.日本書紀일본 서기720년)   先代旧事本紀선대구사본기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이러한 고전 안에


神武天皇진무덴노”가 ‘大和다이와’에 진출하는 도중의 험한 곳의 “熊野쿠마노”에서 길을 잃었을 때

(天照大神)대신이〈八咫烏팔지오를 파견해 길안내를 시킵니다.
그 결과 ‘카미타케’일행은 무사하게 우다(나라현 우다군)에 도착합니다.

그 후의 전쟁에서도〈八咫烏팔지오는 천황의 지시에 의해서 활약합니다.

 

그런 애착으로 동정이 완료했을 때

천황은〈八咫烏에 은상을 줍니다만

그 자손이 “카모 아가타누시” 일족(쿄토의 카모사를 둘러싸는 호족)이 되었습니다.

일본 서기가 가장 자세합니다만 다른  두 책에도 모순된 기술은 없습니다.


 

여기서 짐작가는 것은

 일본 최고의 사서에는〈八咫烏>가 3개의 발<三本足>이라는 기술은 전혀 없습니다.

만약 그러한 구전이  710년 나라시대보다 전부터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큰 특징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쓰여지지 않은 것은  그러한 구전이 없었다고 하겠지요.

 

 


중국전설의 <三足烏>그 자체는   玉虫厨子 다마무시노즈시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

고분벽화에도 있다고 하기 때문에

꽤 옛부터 알려져 있어 태양에서 까마귀라고 하는 전설이

〈八咫烏>신화에 영향을 준 것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八咫烏>의 다리가 실제로 3 개였다고 하는 전승이 옛부터 있었으면

반드시「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그렇게 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의 사서에도〈八咫烏> 天皇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부하로서 쓰여 있습니다.

만약<三足烏>였다면 태양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천황보다 상위로서

神武天皇을 도운 鵄鴙금치나 “ 神剣布都御魂신검포도어혼”과 같이

더 신비적으로 쓰여 질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한 일은 없었습니다.

 

天照大神이 태양신으로 되어 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게다가 전쟁이 끝난 뒤 천황이〈八咫烏>에 은상을 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  천황의 부하로서의 취급한 것입니다.

 

 

 八咫烏는 賀茂県主라고하는 호족의 선조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고대인도 집필자는 학자이기 때문에 까마귀로부터 사람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호족의 선조 집단의 활약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덧붙여서 저자가 배웠을 무렵의 초등학교 국사의 교과서에 있는〈八咫烏>의 다리는 그려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八咫烏>의 다리가 3 개라고 하는 인식이 전쟁(2차대전) 전의 역사학자에게 있었으면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일본 서기등 최고의 사서에는

〈八咫烏>의 다리를 3 개로 하는 기술이 전혀 없는 것을 알았으므로

 다음은  오래된 신사의 전승에 대해서 조사해 보겠습니다.

 

 

- 八咫烏神社由緒書8지오신사 유서서(705년 창건) -

 

이 신사는『続日本紀속일본기에 의하면 몬무 덴노의 교운2년 9월(서기 705년)에 창건 되었습니다.

서기 705년 이라고 하여『古事記고사기의 성립보다 전으로 아주 오랜 신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正史의 「속일본기」에 기록되고 있는〈八咫烏>가 활약한 “奈良県宇陀郡나라현우다군” 입니다.

이 신사의 유서서에, 개략 다음과 같이 있습니다.

토지의 호족 “武角身命무각신명”이, 검은 옷을 입어 나무로부터 나무로 뛰어 이동하면서 神武天皇을 안내했다.

천황은 그 모습을 보시고,〈八咫烏>라고 하는 칭호를 내리게 되었다.

 

八咫烏神社 의 제신은 이 “무각신명”이며  그 자손은 “賀茂県主카모아가타누시”이라고한다.

        신사의 도안에는<三足烏>를 사용하고 있다.

                                                                                                             “현마츠코의 기억”

 

즉〈八咫烏>란  검은 옷을 입어 길안내를 한 호족이  마치 큰 까마귀와 같이 보였으므로

 천황이 내린 칭호(작명)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물론 인간으로 한편 神武天皇의 부하입니다. 그리고

그 고사와는 관련 없는 <三足烏>를 신사의 마크로 하고 있습니다.


 다음 〈八咫烏>나 <三足烏>에 관계 깊은 “카모사”와 “ 熊野三山쿠마노미야마”의 자료를 간단하게 적어 둡니다.

 심볼 마크는 모두<三足烏>입니다만
賀茂社카모사는 앞의 「八咫烏神社」의 안내글에 써있었듯이

八咫烏>그 사람의 세력권이 “京都쿄토”까지 이어졌던 오래된 신사입니다.

이 신사는 아래와 위의 2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신은 “賀茂別雷大神”으로 “玉依媛命옥의원명”의 자로 되어 있습니다.

즉 “建角身命건각신명” =八咫烏의 손자에 해당합니다.

 이 두 개의 賀茂社의 심볼 마크는모두<三足烏>입니다만 그러나

전해지는 由緒譚에는 선조의 다리가 3 개였다고 하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마크로서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다음에는  神武天皇東征伝説동정전설로 알려져〈8지오〉가 활약한

和歌山県와카야마현”의 “熊野쿠마노”에 있는

세 개의 “著名神社저명신사” “”熊野三山쿠마노산야마에 대해서 적습니다.

 

합계 13 기둥의 제신이 모셔지고 있습니다.

주제신은 “家津御子大神(素戔嗚尊가진자대신(소전오존)”으로 그 밖에 신화로 유명한 신들이 죽 줄지어 있습니다.

축제는 많이 있습니다만  특히 유명한 것이 1월7일의 〈八咫烏>제사입니다.

 신사의 심볼 마크 또한 <三足烏>입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八咫烏>제사의   牛王神符우왕부적에 있는 많은 까마귀는 3 발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熊野速玉大社   (별칭 熊野新宮/和歌山県新宮市)

합계 14 기둥의 제신이 모셔지고 있습니다.

社格사격은 역시 관 폐타이샤에서, 국보나 중요문화재가 많이 있습니다.

 


 

 

熊野那智大社쿠마노나치타이샤(和歌山県東牟婁郡那智勝浦町)

합계 18 기둥의 제신이 모셔지고 있습니다.

주 제신은 熊野夫須美大神쿠마노남편스미대신(伊弉冉尊이장염존)입니다.

 심볼 마크는 같이<三足烏>입니다.

 

 

 

熊野三山쿠마노미야마”의  까마귀의 그림(세 발이 아님)이 유명하게 된 것은

“鎌倉時代1200년 가마쿠라시대” 이후 무사가 활발하게 되고 나서부터라는 것입니다.


「고지기와 일본서기」이후에 쓰여진, 남북조 시대까지의 문헌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新撰姓氏録신선성씨록」(만다황태자등/815년)

이것은 저명한 씨족들의 유래등을 모은 방대한 자료집으로, 서기815년에 생겼습니다.

편자의 일가 “萬多親王만다황태자”는 “桓武天皇간무천황”의 황태자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이 초본입니다만 그런데도 방대합니다.

예외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이 자료집의 본문(逸文전해지지 않는 글)안에

 “賀茂県主카모아가타누시”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鴨縣主、賀茂縣主同祖、神日本磐余彦天皇欲向中洲之時、山中嶮絶、跋渉失路、於是神魂命孫鴨武津之身命、化如大鳥翔飛、奉導遂達中洲、時天皇喜其有功、特厚褒賞、天八咫烏之號、從此始也。

이 문장도 八咫烏가  神武天皇를 도운 호족에게 줄 수 있었던 칭호인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特厚褒賞특후포상으로 밝혀지도록 천황으로부터 특별한 포상이 주어진 부하이고

물론 다리가 3 개라고 하는 기술은 없습니다.

8지오신사의 유래를 닮아 있습니다.


 

 

-   倭名類聚抄왜명유취초」(源順미나모토노시타고/930년대)  -

 저자가 찾아낸「八咫烏=三足烏〉」설의 최고의 문헌이 이것입니다.

平安中期 900년에 편찬 되어 세계적으로 봐도 매우 오랜 백과사전으로서 유명합니다.

거기에 이하와 같은 기술이 있습니다.


歴天記云、日中有三足烏、赤色、今案文選謂之陽烏、日本紀謂之頭八咫烏、云、夜太加良須、・・・

歴天記력천기」안에 태양에 적색의 三足烏라고 쓰여져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문선」으로 말하는 양오일 것이다.

또 「일본 서기」에 있는〈8지오〉일 것이다.

여기에 사상 처음〈八咫烏=三足烏〉 라는 설이 쓰여져 있는 것입니다만

그 문장은「倭名類聚抄왜명유취초」보다 전의 책이나 구전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안(지금 생각건대)」.....로

편자인 “源順미나모토노시타고”의 생각으로는 三足烏는八咫烏일 것이다」라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源順의 개인적인 의견으로서 기록되고 있을 뿐입니다.                                      

本居宣長는 에도기 최고의 국학자로 여겨지는 인물입니다.

古事記伝고사기전」1798년경  「고사기전」의 18지권에 대해  

倭名類聚抄왜명유취초 중에서 源順〈八咫烏〉=〈三足烏>로 하고 있는 개소를 그대로 인용하고

그 말은 납득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 대학자가

〈八咫烏〉=〈三足烏〉라고 하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  倭名類聚抄箋注왜명유취초 전주」(狩谷エキ斎/江戸時代後半카리야역금기/ 에도시대 후반)  -

狩谷エキ斎의 <八咫烏〉의 크기에 대한 고증등도 유명합니다.

 

陽烏(太陽に住む三足烏)』에 대한 긴 해설이 있습니다만

거기서〈三足烏〉〈八咫烏〉의 관계에 대해서 “狩谷카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즉, 「왜명유취초」에 쓰여진 미나모토노시타고의 「〈8지오〉=〈삼족오〉」설은 잘못이다--라고 명기해 있습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에 필적할 정도의 고증학자가 역시 〈8지오〉는〈삼족오〉가 아니다. 라고


 

 - 보충과 저자의 결론 -

 

이상과 같이 저명한 학자가 부정되어 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八咫烏〉의 다리는 3 개라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古舘씨가 사회를 하는 인기가 높은 텔레비전의 퀴즈 프로그램에서도  그렇게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견문한 범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상과 같은 문헌 조사를 한 다음 그러한 견해에 이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막연히 믿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럼 그러한 설이 언제쯤부터 어떻게 해 되어있어 왔는가--입니다만

 아마 鎌倉時代1200년가마쿠라 시대 이후는 아닐까요.

적어도  일반적으로 그러한 생각이 펼쳐진 것은

鎌倉時代시대 이후일거라고 추측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三足烏〉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2차대전 이후로부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로서는〈八咫烏〉=〈三足烏〉鎌倉時代시대 이후의 신앙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그래서 존중하고 싶습니다만 

훨씬 더  단순하게 결정하고 있는 것이 많은 듯 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본장과 같은 검토를 해 본 나름입니다.


 

 

일본의 축구 협회는 

일본 신화의 八咫烏의 이야기를 합나다만

 그 것과 三足烏가 동일하다고는 쓰지 않고

그것과는 별도로 八咫烏의 이야기가 신화에 있다--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기까지의 저자의 문헌 조사와 모순되지 않도록  썼습니다만 무엇인가 석연치 않습니다.

변명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자로서는

일본 축구 협회에의 항의는 일본 신화도 쓸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축구 협회인데 왜 외국의 전설을 채용하는 것인가 ――의 일점에 좁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항의한다면, 말입니다)

 

일본 축구 협회의 창시자가 熊野出身쿠마노 출신이었으므로 삼족오를 협회의 마크로 했다는 일인 것 같습니다만

일본다운 마크는 그 밖에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끝

 

까마귀와 세계의 신화

 

 

 

 

 


 노아의 방주
노아의 방주에서 풀려나 것은 먼저 헤레부라는 이름의 까마귀이었습니다. 이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7 일 후 노아는 이오나는 비둘기를 내고 있습니다. 비둘기는 올리브 가지를 물고 되돌아옵니다. 이제 비둘기는 일약 영웅이되어 버립니다 까마귀는 도대체 어디로 간 버린 것일까요?

 
아폴론과 코로니스
오우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는 까마귀는 눈과 같은 날개를 가진 은빛 새로 아폴론 좋아하는 새이었습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아폴론의 연인 코로니스가 해안에있는 젊은이의 팔을 것을 아폴론에게 고자질합니다. 이성을 잃은 아폴론은 코로니스을 죽여 버리지만, 질투에 미쳐, 정을 모르는 고자질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빌려준 것을 후회하고, 까마귀를 검게 바꾸어 버립니다. 이 이야기에서 "까마귀는 서명의 밀고 자"의 대명사라고도합니다.

 
이누이트 신화 (이전 에스키모라고 사람들의 신화)
생물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의 단단한 껍질이있었습니다. 그것은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있는 거룩한 생명력이며 "아버지 오오 유리"라고 불리게되었습니다. 첫째 그것은 사람의 모양을하고 있으며, 자신의 모양을 모방하여 땅속에서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적극 난폭하고 せわしなく 흙을 파고 계속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심연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귀신이되어, 지상의 모든 악마의 바탕이되어 버립니다.
"아버지 오오 유리"는 심연 아래에 흥미를 갖고, 참새를 사용을 내면, 참새는 할 수 막 육지가 있음을보고합니다. 그가 참새를 흉내 내고, 나뭇가지를 어깨에 붙이면, 진짜의 날개입니다, 이마에있는 덩어리는 성장하고 까마귀의 부리가되었습니다. 그는 참새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 황량한 땅에 많은 식물을 설치하면 그 꽃 중의 일부 사야에서 아름답고 성숙한 인간이 태어났다. 그 후 그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대지에서 날아오르과 어두운 하늘에 올라 火打ち石을 통해 별을 건설하고 나머지를 하늘로 던지면, 그것은 큰 빛을 대지에 붓고 있습니다.

 
시베리아 챠쿠찌 족의 신화
까마귀 아내의 배가 갑자기 커지고, 인간의 남자와 여자를 창조와 까마귀의 남편은 "너 인간을 만들었다, 오레와 대지를 만든다"라고 말하고, 날아가 똥을하면 물의 의 배설물은 순식간에 커져 대지가되었습니다. = 세계는 까마귀 부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 까마귀가 두꺼운 얼음 천국에 부리로 구멍을 뚫어 어둠에 잠긴 땅에 광명이 있고, 정상 계에 날아 아이의 볼을 빼앗아 태양이나 달과 별을 만들었다.

 
북아메리카 북서 해안 Haida 족의 신화
홍수로 모든 생물이 멸망한 후, 까마귀만이 살아남아 현재의 생물의 조상이되어 그 자손을 위해 불을 훔쳐 주었다는 신화가있다.


중국 신화 (태양 정 까마귀)
중국 동방의 천제이다 일제 토시는 3 명의 아내가 있고, 그 한 사람이 10 명의 아들 = 태양을 낳았습니다. 10 개의 태양은 1 일 단위로 나오는 순서가임에 틀림없다 있으며 수천년 계속 과정과 순서를 지켜 왔지만, 조금 피곤 문턱 어느 날 큰 소리를 내며 일제히 하늘에 뛰어갑니다 했습니다.
작열과 기아에 노출된 지상의 사람들을 연일 고통에 천제 일제 토시도 아이를 억제하지 못하고, 신국에서 활과 화살에 뛰어난 텐진를 지상에 보냈습니다. 지상에 내려선 텐진은 하늘 붉은 구슬을 겨냥해 화살을 날려했습니다. 그러자 하늘 불덩어리 소리없이 파열, 흐름 불이 튀어 금빛 날개가 산산조각하면 새빨간 것이 떨어져 왔습니다.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그것은 화살에 射抜か됐다 "세 개의 다리 까마귀"입니다.
까마귀는 태양의 심혈의 화신이었습니다. 계속해서 태양은 射抜か되고 지상에는 황금 날개와 세 개의 다리의 까마귀가 떨어졌습니다. 태양은 이렇게하여 하나만 남겨지고 지상은 작열 지옥에서 벗어날 수있었습니다.

 
중세 독일의 "까마귀 바위"전설
까마귀가 그 존재를 알고있다는 마법의 돌 "까마귀 바위"는 그것을 손에 넣는 모습이 사라지고 입에 넣으면 새 말을 이해할 수 있고 반지하고 끼우는과 어떤 열쇠도 열 수 전해지는 이상한 바위에 있었다고한다.

 
영국의 전설
아서왕은 마법은 한 마리의 오오가라스로 변신시킨과 전설이 있기 때문에 오오가라스을 죽이면, 불길한 일이있을 것이라고 믿고있다.

 
○ 아일랜드 "운이 까마귀"전설
까마귀는 "블랑"라고 아일랜드의 전쟁의 여신의 동행이다. 이 여신의 이름은 "바도부"라고 암컷 까마귀이다. 이 까마귀는 "행운의 까마귀"으로, 옛 아일랜드의 항해자의 수호신이다

 

 

 

 

일본의 까마귀 신화

○ 일본에서 처음 책에 나온 여덟 咫烏 (또는 たがら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 "고사기"에서 까마귀는 태양을 관장하는 신의 사자로 はなばなしい 무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와레비코 (진무 천황)가 천하 통치를위한 세기의 국가 (와카야마현)의 구마에 상륙했을 때, 타카 하나님의 생명에서 "균열 すさぶ 하나님이 많기 때문에, 이와레비코을 앞으로 안쪽으로 들어 가게 해 없다. 지금 하늘에서 여덟 咫烏을 가거라, 그러면 그 여덟 咫烏가 길 안내를하는 것이다, 그 날가는 나중에 관하여 가고십시오 "라고하는 훈계가있었습니다. 그렇게 요시노 하류에 도착했습니다.

 ○ · 하구 로산의 "three - legged 까마귀"전설
· 하구 로산의 개조 기능 동 선이 · 하구 로산 산 깊이 思いわずらっ 경우, three - legged 까마귀 (여덟 咫烏 설도)가 길안내를 하였다는 전설. <시험 대비 (강낭콩 비교)>라는 수도자를 수행하여 얻은 시험 (표적)를 겨루는 행사 중에 <까마귀 건너뛰고>라는 것이 있는데, 수도자가 烏帽子 (에보)에 지팡이를 짚고 걷는 모습 "세 다리의 까마귀 "라고 となえる 설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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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서기의 "까마귀 날개 표"
고구려가 일본의 문화 수준을 측정 까마귀의 깃털에 먹으로 반전 문자를 써서 사자를 보내주었다. 천황은 역사 (후 사람)에 読み解か 시켰지만, 3 일이 지나도 해독하지 못했다. 당시 임금 타츠 노르가 중국의 고사에 댄, 이것을 수증기에 대고 絹布에 복사하기 読み解い했다. 임금 타츠 노르는 학식을 높이 평가되고 殿中에 近侍하는 것을 허락했다고한다

 

 

 三足烏 brand 化

 

 

 

 

 

 http://nakara.shokokai-tochigi.or.jp/karasubook/karasubook.html

カラスと世界の神話


○ノアの方舟
ノアの方舟から放たれたのは、先ずヘレブという名のカラスでした。このカラスは帰って来ませんでした。その7日後、ノアはイオナという鳩を放ちます。鳩はオリーブの枝をくわえて戻ってきます。これで鳩は一躍ヒーローとなってしまうのですが、カラスはいったいどこへいってしまったので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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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ポロンとコロニス
オウディウスの「変身物語」では、カラスは雪のような羽根をもつ銀色の鳥でアポロンのお気に入りの鳥でした。しかしカラスは、アポロンの愛人コロニスが海岸である若者の腕にあることをアポロンに告げ口します。逆上したアポロンはコロニスを殺してしまいますが、嫉妬に狂い、情を知らぬ密告者の言葉に耳を貸したことを後悔し、カラスを黒く変えてしまいます。この物語から「カラスは無署名の密告者」の代名詞とも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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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ヌイット神話(かつてエスキモーと呼ばれた人々の神話)
生物が生まれる前、一つの堅い殻がありました。それはこの世界に存在するあらゆるものの内にある聖なる生命力であり「父なるおおガラス」と呼ば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最初それは人の形をしており、自分の形に似せて土の中から人間を創りだしました。しかしそれはおこりっぽく乱暴でせわしなく土を掘り続けるので、かれはそれを深淵に投げ込んでしまいました。これが後に悪霊となり、地上のすべての悪魔の元となってしまいます。
「父なるおおガラス」は深淵の下に興味をもち、スズメを使いに出すと、スズメは出来たばかりの陸地があることを報告します。彼がスズメを真似て、木の枝を肩につけると、それは本物の翼となり、額にある塊は伸びてカラスのクチバシとなりました。彼はスズメとともに地上に降り、荒涼とした地上にたくさんの植物を植えると、その花の中のいくつかのサヤから、美しく成熟した人間が生まれた。そのあと彼はすべての物を創造し、大地から飛び立つと暗い天に昇り、火打ち石を使って星を造り、残りを空に投げると、それは大きな光を大地にそそぎ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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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ベリアのチャクチ族の神話
カラスの妻のお腹がみるみる大きくなって、人間の男と女を創ると、カラスの夫は「おまえは人間を創った、おれは大地を創る」と言って、飛び立って糞をすると、水の上の糞はみるみる大きくなり大地となりました。=世界はワタリガラスの夫婦によって創られた。
:ワタリガラスが厚い氷の天にクチバシで穴をあけ、闇に閉ざされた地上に光明をもたらし、上界に飛んでゆき、子供のボールをうばって太陽や月や星を創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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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アメリカ北西海岸のハイダ族の神話
大洪水ですべての生物が滅んだ後、ワタリガラスだけが生き残り、現在の生物の祖先となり、その子孫のために火を盗んで与えたという神話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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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の神話(太陽の精カラス)
中国の東方の天帝である帝俊には3人の妻があり、その一人が10人の息子=太陽を生みました。10個の太陽は、1日ごとに出る順番がきまっており、何千年も続けてコースと順番を守ってきましたが、いささかうんざりしきて、ある日大きな音を立てて一斉に天空に飛び出してゆきました。
灼熱と飢餓にさらされた地上の人々の連日の苦しみに、天帝帝俊も子供たちを抑えることが出来ず、神国から弓矢に秀でた天神を地上におくりました。地上に降り立った天神は、天空の赤い玉をめがけて矢を放ちました。すると天空の火の玉は音もなく破裂し、流れ火が飛び散り、金色の羽が四散すると、真っ赤なものが落ちてきました。人々が駆け寄ってみると、それは矢に射抜かれた「三本の足の烏」でした。
烏は太陽の精魂の化身だったのです。次々に太陽は射抜かれ、地上には金色の羽と三本の足の烏が落とされました。太陽はこのようにして一つだけ残され、地上は灼熱地獄から脱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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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世ドイツの「カラス石」伝説
カラスがそのありかを知っているという魔法の石「カラス石」とは、それを手にすると姿が消え、口に入れると鳥の言葉が理解でき、指輪にしてはめるとどんな鍵も開けられると伝えられる不思議な石であったとい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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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ギリスの伝説
アーサー王は魔法により一羽のオオガラスに変身させられたとの伝説があるため、オオガラスを殺せば、不吉なことが起こると信じら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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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イルランドの「幸運のカラス」伝説
カラスは「ブラン」と呼ばれ、アイルランドの戦争の女神のお供である。この女神の名は「バドブ」といい、雌烏のことである。この烏は「幸運の烏」とされ、昔のアイルランドの船乗りの守護神である。
 

      삼족오三足烏 서양으로 날다.



三足의 의미

三足이란 해 그림자를 이용해서 시간을 측정하는 규표의 영침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한 목표물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위해서는 좌우 양쪽의 물체를 비교해 봄으로써 더 정확

한 중심점을 찾을 수 있다.

곧 총열의 끝에 있는 가늠쇠, 당간위의 삼지창 모양이 그 기능을 한다.

三足의 의미다.


당간 꼭대기의 삼지창을 동쪽을 향해 정면을 향하게 설치해놓으면

아침 해가 떠오를 때에는 서쪽으로 긴 삼지창의 그림자가 보이다가

정오가 돼서 태양이 남중하면 삼지창의 세 발은 겹쳐져서 일직선의 해 그림자를 만든다.

일직선으로 보이는 때가 정확히 남중 때이며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짧게 나타난다.

곧 日中三足烏일중삼족오 = 삼족오의 세발이 해 가운데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세 개의 좌표가 태양과 규표사이에 일직선으로 정렬됐을 때를 말하는 것이니

삼족오三足烏의 세 발은 규표의 영침과 같은 의미다.


三足烏는 고대의 영물이 아니다.

본디 三足烏라는 말은 천문용어요.

천문을 감춰둔 언어의 마술이다.

숨겨진 찬란한 천문의 표상인 것이다.


烏의 검다는 의미는 곧 태양의 그림자를 의미한다.

三足烏를 따라 서양으로 가보자.


외국어가 되지 않음으로 까마귀crow의 어원을 파악하지 못했다.

우선 대략 영어사전에서 삼족오에 관련 될만한 내용만을 간추려 올린다.



crow


crow´s feet:   눈꼬리 잔주름

crowbar:       쇠 지렛대. 노루발못뽑이.

crow´s nest:   돛대 꼭대기의 망대. 檣樓장루

crow flies:     최단 거리. 까마귀 날아가는

crow line.      일직선

white crow:    진귀한 것

eat crow:      수모를 당하다.



crow´s feet:   눈꼬리 잔주름


말 그대로 삼족오의 발이 떠오른다.

 

 

crow flies: 최단거리 까마귀가날아간 거리

crow line:  일직선


삼족오가 날아간 거리는 해 그림자의 길이이다.

세 발의 좌표가 태양과 일직선으로 드리워질 때

가장 짧은 그림자가  日中三足烏일중삼족오 이다.

 


 

crowbar: 쇠 지렛대. 노루발못뽑이.


흔히 일본말로 빠루라고 한다.

항상 양 발 사이 중심점에 못이 놓인다.

 


crow´s nest:   돛대 꼭대기의 망대. 檣樓장루


아래로 쪽으로 무수한 밧줄이 내려졌다.

천문도에서 360°의 28수 각거리를 표시해 넣은 듯 하다. 
 

crowded: 붐비는, 복잡한, 빡빡한   crop: 작물, 수확량, 무리, 집단


숱한 각선분線分角이 모여 있다.

 

 




crow의 의미는

살펴 본 바와 같이

한 정점으로부터 부채 살처럼 퍼져나가는 선분의 의미를 인신할 수 있으며

각도. 좌표의 이동. 좌표의 중심점 등

각 좌표의 이동에 따른 변화된 모양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위 모든 숙어의 이미지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규표를 세워두고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행위에서 유추되는 단어 들이다.

서양에서도 태양관측에 관련된 고대 언어는 “crow”라는 단어였을 가능성이다.


이 글은 보신 분 중에

각국 외국어가 가능 하신 분은

각 언어의 “까마귀” 어원과 전설.

까마귀와 관련된 숙어등을 알려주시길 기대하며

댓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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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오. 고대한류를 밝히다

http://www.youtube.com/watch?v=QnzoGYxziwk

 




포항MBC 특집HD 다큐멘터리 1부. 삼족오. 한민족의 코드로 부활하다 -삼족오를 통해 단절된 고대사를 조명하다. -민족 상징의 재발견, 삼족오 -고대의 한류의 비밀을 밝히는 DNA,삼족오 -역사는 미래를 만든다. 독창적인 삼족오를 통한 민족의 뿌리밝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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