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Y NEW LIFE, LINE DANCE
어느날 나는 이상과 당시 조선중앙일보에 있든 상허(이태준)와 더부러 자리를 함께하여 그의 시를 중앙일보지 상에 발표할것을 의논하였다.
일반 신문독자가 그 난해한 시를 능히 용납할 것인지 그것은 처음부터 우려할 문제였으나 우리는 이미 그 전에 그러한 예술을 가젔서야만
運動 운동
조선과 건축 1931년 8월 ( 21세 때 쓴 시)
일층(一層)우에 있는
이층(二層)우에 있는
삼층(三層)우에 있는
옥상정원(屋上庭園)에 올라서
남(南)쪽을 보아도 아무 것도 없고
북(北)쪽을 보아도 아무것도 없고해서
옥상정원(屋上庭園)밑에 있는 삼층(三層)밑에 있는
이층(二層)밑에 있는 일층(一層)으로 내려간 즉
동(東)쪽에서 솟아 오른 태양(太陽)이 서(西)쪽에 떨어지고
동(東)쪽에서 솟아 올라서(西)쪽에 떨어지고
동(東)쪽에서 솟아 올라서(西)쪽에 떨어지고
동(東)쪽에서 솟아 올라 하늘한 복판에 와있기 때문에
시계(時計)를 꺼내 본 즉 서기는 했으나 시간(時間)은 맞는 것이지만
시계(時計)는 나 보담도 젊지않으냐 하는 것 보담은
나는 시계(時計)보다는 늙지 아니하였다고 아무리 해도 믿어지는 것은
필시 그럴 것임에 틀림 없는고로
나는 시계(時計)를 내동댕이 쳐버리고 말았다.
-끝-
이상은 방으로 들어가 건축잡지를 두어권 들고나와 몇 수의 시를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슈을,레아리즘'(쉬르 레알리즘초현실주의)에 흥미를 갖고 있지는 않었으나 그의 '운동' 1편은 그자리에서 구미가 당겼다.
항금 그 첫두머리 한토막이 기억에 남어있을뿐이나 그것은
2층우에 2층우에 3층우에 옥상정원에를 올라가서
남쪽을 보아도 아모것도 없고 북쪽을 보아도 아모것도 없길래 다시 옥상정원 아래 3층 아래 2층아래
1층으로 나려와......로 시작되는 시였다.
나는 그와 몇번을 거듭맞나는 사이 차차 그의 재주와 교양에 경의를 표하게 되고
항금 그 첫두머리 한토막이 기억에 남어있을뿐이나 그것은
2층우에 2층우에 3층우에 옥상정원에를 올라가서
남쪽을 보아도 아모것도 없고 북쪽을 보아도 아모것도 없길래 다시 옥상정원 아래 3층 아래 2층아래
1층으로 나려와......로 시작되는 시였다.
나는 그와 몇번을 거듭맞나는 사이 차차 그의 재주와 교양에 경의를 표하게 되고
그의 독특한 화술과 표정과 제스춰는 내게 적지 않은 기쁨을 주었다.
어느날 나는 이상과 당시 조선중앙일보에 있든 상허(이태준)와 더부러 자리를 함께하여 그의 시를 중앙일보지 상에 발표할것을 의논하였다.
일반 신문독자가 그 난해한 시를 능히 용납할 것인지 그것은 처음부터 우려할 문제였으나 우리는 이미 그 전에 그러한 예술을 가젔서야만
옳았 을 것이다.
그의 '오감도'는 나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거의 동시에 중앙일보지상에 발표되었다.
그의 '오감도'는 나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거의 동시에 중앙일보지상에 발표되었다.
나의 소설의 삽화도 '하융'이란 이름아래 이상의 붓으로 그리여졌다.
그러나 예기(豫期)하였든바와 같이 '오감도'의 평판은 좋지 못하였다.
구보 박태원의 "이상편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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