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야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Nostalghia: 향수. 그리움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표시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19361조선문단종간호

 

 

 

                                    

 

 

구성 및 형식

 

9행의 자유시이다. 19361조선문단종간호에 발표되었다가 그의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1939)에 수록되었다.

 

다른 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작품이 전재되는 과정에서 몇 군데 첨삭이 가해지고 있다. 전체는 9행으로 연이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내용면에서 세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내용

 

첫 번째 단락(13)은 도입부로 깃발의 상징적 이미지를 영원한 세계로 향하는 향수의 몸부림으로 보았고, 두 번째 단락(46)에서는 깃발을 영원히 이룩할 수 없는 꿈과 끊임없는 흐느낌, 향수와 좌절로 보았다. 세 번째 단락(79)에서는 이러한 좌절의 근본적인 요인을 묻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통하여 깃발의 본래의 형태를 자신의 독특한 주관으로 해석하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의 실현을 갈구하는 마음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힘은 깃발의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계속 일으키는 파동감, 즉 상징성이 형성하는 자장(磁場) 같은 것이라고 한 어느 논자의 말과 같이, 그 이미지들이 결합되어 역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도 되고 노스탤지어의 손수건도 된다. 이때 깃발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으로 상징된다. 그리고 순정이 이념의 푯대 끝에서 백로처럼 날개를 펴는 애수로 화할 때, 깃발은 이상향에 집착하는 의지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의지로 발전하다가 결국 좌절의 비애로 귀결된다.

 

의의와 평가

 

시인이 지니고 사는 높은 이념이 외롭고 애달프다는 것은 현실과 이상, 좌절과 염원을 대응시킴으로써 더욱 확연해진다.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의지가 비애와 좌절로 귀결되면서도 생명에 대한 연민과 강한 애착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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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유치환을 찾아가서 문우에게 일부러 뺨 맞은 이상


신태범의 부산문화 野史 2001   국제신문

 

왜 맞았을까 ?

                원인은 한 가지.

 

 

 

 

 

 

부산 와서 뺨맞은 李箱

 

 

부산문단의 전설처럼 전해오는 실화다.

1936년 어느 봄날이었다.

오감도」 「날개등의 시와 소설로 화제와 문명을 드날리던 천재작가 이상(1910~1937)이 부산엘 왔다.

역시 당시 주목받는 시인이었던 청마 유치환(靑馬 柳致環 1908~1967)도 만날 겸 부산의 바닷바람도 쐴 겸해서 였다.

청마 유치진은 그 무렵, 부산 초량에 살면서 부청(지금의 시청) 임시고용원, 사진관기사, 백화점 점원 등을 전전하며 문학운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청마는 이상을 만나자 바로 단골 술집을 찾았다.

부산의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동래의 박돈영 주점이었다. 청마가 주도하여 1935년 부산최초로 발간한 문학동인지 생리(生理)동인들도 불러내었다.

박영포 염주용 장하보 등이 그들. 곧 술잔이 오가고 문학적 화제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상은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자 자기를 우러러보는 부산시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나 얼마 전에 생리를 받아 보았는데

어째 시들이 모두 그래요오……?

청마 형의 시나 그런 대로 모양을 갖추었을까…』 이상의 말에 청마는 물론 다른 시인들도 갑자기 긴장했다.

생리동인의 시를 도매금으로 매도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의 태도에는 부산 시인들을 낮추어보는 듯한 우월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다른 시들은 여엉 종이 값이 아까울 정도더란 말이지…』

그때였다.

이상의 맞은편에 앉아 묵묵히 아래만 내려다 보던 박영포(朴永浦)가 벌떡 일어나며 댓바람에 이상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거의 동시에 그의 손이 이상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이 자슥이 여가 어딘데 거드름을 피우고 지랄이고! 일마야, 니만 시인이가 나도 문예춘추 당선시인이다.

알아 묵지도 못할 관념이나 농하는 주제에 좀 잘 나간다 시푼께 오줌똥을 못 가리고 자빠졌네!

박영포는 이상의 멱살을 뒤로 홱 밀치며 술집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얼얼한 뺨을 감싸며 박영포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이상은 술이 확 깨는 모양이었다.

그때야 청마는 얼른 이상을 자리에 앉히고 술을 권하며 대신 사과했다.

박영포는 이미 사라지고만 다음이었다. 기고만장하던 이상은 이미풀이 죽어 있었다.

남은 생리동인들은 미안한 표정 속에서도 쾌재를 불렀다. 박영포가 아니었다면 누가 감히 이상의 따귀를 갈기고 자기들의 자존심을 지켜줬을 것인가.

박영포. 그는 1913년 좌천동에서 태어난 부산 토박이었다.

그는 부산상업학교 2학년이었던 1927년에 광주학생사건 주모자의 일원으로 일경에 검거되어 투옥되었다.

그는 이듬해 폐결핵이 악화되어 가석방되었다.

그는 부산진육영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문학적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1935년일본 문예지 문예춘추에 시 푸른조끼가 당선된 후, 초기 부산시단에 활력을 불어 넣은 시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애주가로 매우 과묵한 편이었으나 경우에 어긋나거나 불의를 보면참지 못하는 전형적인 열혈의 부산남자였다.

그러나 그는 지병인 결핵으로 1939년 스물 여섯의 푸른 나이에 삶을 접고 말았다.

그런데 그에게 뺨을 얻어맞은 이상 또한 서울로 돌아간 이듬해인 1937년 결핵에 발목을 잡혀 그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났으니 묘한 인연이었다.

지금쯤 결핵 없는 하늘에서 다정하게 대포라도 나누고 있을지…       국제신문 신태범의 부산문화 野史: 2001

 

 http://blog.naver.com/joba34/14001941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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