早春點描
李箱 매일신보, 36, 3.3-26
그 날 황혼 천하에 공지(空地) 없음을 한탄하며 뉘 집 이층에서 저물어가는 도회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때 실로 덕수궁 연못 같은,
날만 따뜻해지면 제 출몰에 해소될 엉성한 공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참 훌륭한 공지를 하나 발견하였다.
00보험회사 신축 용지라고 대서특서한 높다란 판장으로 둘러막은 목산 범 천 평 이상의 명실상부의 공지가 아닌가.
잡초가 우거졌다가 우거진 채 말라서 일면이 세피아 빛으로 덮인 실로 황량한 공지인 것이다.
입추의 여지가 가히 없는 이 대도시 한복판에
이런 인외경의 감을 풍기는 적지 않은 공지가 있다는 것은 기적 아닐 수 없다.
인마의 발자취가 끊인 지 - 아니 그건 또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
오랜 이 공지에는 강아지가 서너 마리 모여 석양의 그림자를 끌고 희롱한다.
정말 공지 - 참말이지 이 세상에는 인제는 공지라고는 없다.
아스팔트를 깐 뻔질한 길도 공지가 아니다.
질펀한 논밭, 임야, 석산, 다 아무개의 소유답이요, 아무개 소유의 산이요,
아무개 소유의 광산인 것이다.
생각하면 들에 나는 풀 한 포기가 공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이치대로 하자면 우리는 소유자의 허락이 없이 일 보의 반 보를 어찌 옮겨 놓으리오.
오늘 우리가 제법 교외로 산보도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세상인심이 좋아서 모두들 묵허(默許)를 해 주니까 향유할 수 있는 사치다.
하나도 공지가 없는 이 세상에 어디로 갈까 하던 차에 이런 공지다운 공지를 발견하고
저기 가서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서 담배나 한 대 피웠으면 하고 나서 또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역시 00보험회사가 이윤을 기다리고 있는 건조물인 것을 깨달았다.
다만 이 건조물은 콘크리트로 여러 층을 쌓아 올린 것과 달라 잡초가 우거진 형태를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봄이 왔다.
가난한 방안에 왜꼬아리 분(盆) 하나가 철을 찾아서 요리조리 싹이 튼다.
그 닷곱 한 되도 안 되는 흙 위에다가 늘 잉크병을 올려놓고 하다가 싹트는 것을 보고 잉크병을 치우고
겨우내 그대로 두었던 낙엽을 거두고 맑은 물을 한 주발 주었다.
그리고 천하에 공지라곤 요 분 안에 놓인 땅 한 군데 밖에는 없다고 좋아하였다.
그러나 두 다리를 뻗고 누워서 담배를 피우기에는 이 동글납작한 공지는 너무 좁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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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침략주의자들은 만주까지 침탈하고 내땅이요 하고 말뚝을 박았다.
일제의 토지 수탈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진다.
이상은 건축 기수로써 현장 목격한 증인이다.
주권을 행사할 만한 내 땅은 없다.
화분 속의 흙 한 되가 내 땅의 전부이다.
1936년 임시정부는 윤봉길 폭탄의거 이후 상해에서 嘉興가흥으로 도피해 있었다.
임시정부는 남의 땅에서 전세도 월세도 아닌 노숙자 신세였다.
내 땅을 떠나 허공에 있는 화분 속의 흙 신세다.
이상이 봄을 맞아 내 땅을 그리고 있다.
지도상에 點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내 땅
중국 기흥의 노숙자 임시정부가 딛고 있는 땅이 전부이다.
早春點描---- 이른 봄의 내 땅은 點으로도 그릴 수 없다.
화분 속에서 새싹이 뽀족뽀족 점처럼 올라온다.
봄이 왔건만........ 내 땅은 點으로도 그릴 수 없다.
화분 속에서 새싹이 뽀족뽀족 점처럼 올라온다.
早春點描 일찍 봄이 왔건만........그림은 點으로 밖엔 그릴 수가 그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