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01.2.6
장르
소설 베스트셀러보기
책 속으로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연수의 세 번째 장편소설. 천재시인 이상(李箱)의 유품인 '데드마스크'에 대한 진위를 중심으로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고 있다. 1부 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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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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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전기적 사실을 끌어모은다 해도 이상의 이문장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상이 결코 가난하고 허전해지지 않는 한, 모든 전기는 이상이 쳐놓은 비밀의 그물에 걸려들 뿐이다.
-p 121
 


현기증이 나는 정오의 싸이렌 소리에 문득 겨드랑이의 날개를 발견하고 날기를 소망하였으나 끝끝내 날지 못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흔적을 남긴 천재 작가.  이상은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초현실, 추상주의의 유행속에서 총독부의 잘나가는 기수직을 때려치우고 기생 금홍과 다방 '제비'를 차린 모던보이 이상, 건축가로 화가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그의 삶이 영원히 비밀과 신비로 감싸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활동하던 작가들이 모두 실종되거나 납북,월북되었기 때문이다.  김연수의 소설 '꾿빠이, 이상'(문학동네,2001)은 바로 그런 이상의 삶과 문학, 죽음의 비밀로 연관된 작품을 둘러싸고 있다. 
 

어느것이 가짜인가 진짜인가?  진짜로 믿으면 진짜이고 가짜로 믿으면 가짜인가?  작품을 이끄는 것은 이른바 가짜와 진짜의 '진위 논란'인데 그 대상은 모호하면서도 퍽 흥미롭다.  자연인 김해경과 이상이라는 인공인의 대결, 죽은 후에 한 친구가 떴다는 데드마스크의 분실과 가짜 데드마스크의 출현에 한 출판사의 김연(화) 기자가 연루되면서 아마추어 이상연구자가 쓴 이상의 오감도 제 16호 시에 대한 진위논란, 이상 문학을 연구하고 학술 발표차 한국에 온 재미국문학자 피터 주의 정체성(자신이 미국인이냐,한국인이냐,대만인이냐)이 실타래처럼 엉켜 진실게임의 진실을 찾아간다.
 

작가도 말미에 밝혔듯 김윤식의 이상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소설의 뼈대를 잡아갔기 때문에 잡지사 기자 김연의 시각으로 풀어가는 '데드마스크'에는 이상의 전기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실제 인물들의 이름과 사건들이 나온다. 실제와 허구속 이상의 발자취가 미궁에 싸여있어 독자를 아득한 심연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정체-이상의 데드마스크.  잡지사 기자인 김연(화)에게 걸려 온 한통의 전화로 데드마스크의 출현과 가짜라는 판명, 그로 인해 그를 이루고 있는 상황들이 모두 의심받게 되는데, 어떤 시인의 아내(인터뷰기자)와의 사랑마저도 그 진위를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가짜 데드마스크의 헤프닝속에 김연 기자에게 한 아마츄어 이상연구자의 수기가 전해지는데,  '잃어버린 꽃'에서는 이상의 삶을 그대로 쫓다가 결국 73세의 나이로 이상과 같이 도쿄의 한 병원에서 자살을 하는 서혁민의 시각으로 전개된다.  이상의 삶과 그의 작품과 같은 삶을 살려고 했던 이상이 도쿄로 유학가서 그곳에서 자연인 김해경을 벗어던지고 영원히 우리의 이상으로 남게 되는 순간을 비교적 꼼꼼하게 수기로 옮기고 있다. 또한 유실된 오감도 제 16호의 작품과 비슷한 작품을 본인이 직접 쓰면서 다시한번 이상의 작품이냐 아니냐로 진위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미친놈의 개수작이냐' 또는 '다시는 태워날 수 없는 천재작가냐' 어느쪽을 믿느냐에 따라 그 믿는 쪽이 진실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 거짓이라도 믿으면 진실이 되는 것일까?  작가는 이미 유실된 데드마스크의 출현과 분실된 나머지 오감도 작품, 피터주의 출생등을 영원히 해결못한 비밀로 처리함으로써 이상의 삶과 작품을 신비화하는데 한몫한다.  동료작가들과는 다르게 일찍 멜론을 외치며 도쿄의 한 병원에서 죽어간 그의 삶을 따라가는 비현실적인 소설 속 장치인 가공인물, 서혁민처럼 이상의 작품과 삶앞에서 그의 비밀에 걸려들어 허우적 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란 무릇 안이한 일상을 담보받은 우리들과는 달라야 하는 법. '새'에서는 미국에서 '이상'연구 논문 발표차 피터 주가 한국에 오면서 기자 김연이 건네주는 서혁민의 시를 이상의 유작으로 발표하지만 결국 학술발표에서의 진짜라고 발표되었던 작품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품도 거짓임을 알게 된다.  그 부분은 자신이 미국에서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확인하며 느꼈던 절망감과 함께 옥상에서 뛰어내리게 된다.  결국 뛰어내린 곳이 백화점 옥상, 안전한 곳에 미치자 그는 드디어 말하게 된다.  '꾿빠이, 이상'. 이 분분이 작가의 기품이 숨어있는 곳.  결국 패배했지만 뛰어내렸던(삶의 참된 가치를 찾아) 그 짧은 순간이 주인공 피터주에겐 진정으로 죽어서 산 이상이 쳐 놓은 그물에서 벗어나는 사건이기도 하다. 
 
'꾿빠이 이상' 은 이상의 전기적 사실에서 벗어나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세사람의 주인공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문학의 환원성을 보여준다.  작품속에 이상이 있고 그와 한 시대를 살았던 동료작가들, 연인들, 평론가들이 있고 기자가 있고 아마추어 연구자가 있고 박사가 있어 범접할 수 없는 이상문학의 위대성을, 그로 인해 현재의 우리의 삶에 어떤 연관성이 있나 보여주는 순도높은 작품이다.  소설을 읽는 궁극적인 이유가 우리 인식을 공고히 하였던 제도나 사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사고를 더 확장시키는 것에 있다면 세 사람의 주인공이 실패할 줄 알면서도 갈 수 밖에 없는 여행지를 만나보시라. 
 
그래, 이쯤에 고백부터 하나 하자.  글쓰기가 이렇게 더이상 더 막연해지기 전에, 어느 작가의 말마따나
나도 딱 이상의 나이까지만 살자고 해놓고선 부끄럽게도 몇년을 더 살고 있다.(아마도 별일이 없는 한 그 의 삶의 기간의 세배는 더 살게 되겠지.) 내게도 다른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이상문학과의 만남은 말할 수 없이 강렬한 것이었고 그 낯섦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나도 당장 무엇인가 어떤 일탈을 감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불안한 현실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찌 이 타락한 세계를 그냥 그대로 두고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거부할 수 없다면 껴안자. 힘껏.

 

 

by  귀리

 

 

* <무브온21블로거기자단>이란 : 무브온21에서 활동하는 논객들이 모여 구성한 기자단입니다. 무브온21의 주요 칼럼과 무브온21 논객들이 기획한 기사와 인터뷰를 내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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