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 애사哀詞
박 태 원
여보, 상箱 -
당신이 가난과 병 속에서 끝끝내 죽고 말았다는 그 말이 정말이요 ?
부음을 받은 지 이미 사흘, 이제는 그것이 결코 무를 수 없는 사실인 줄만
알면서도 그래도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이 마음이 섧구려.
재질과 교양이 남에게 뛰어나매, 우리는 모두 당신에게 바라고 기다리든 바
컸거늘, 이제 얻어 이른 곳이, 이 갑작한 죽음이었소 ? 사람이 어찌 욕되게
오래 살기를 구하겠다면 이십 팔년은 너무나 짧소.
여보, 상箱 -
당신이 아직 서울에 있을 때 하롯저녁 술을 나누며 일러주든 그 말 그 생각이
또한 장하고 커서 내 당신의 가는 팔을 잡고 마른 등을 치며 한 가지 감격에
잠겼든 것이 참말 어제 같거든 이제 당신은 이미 없고 내 가슴에 빈 터전은
부질없이 넓어 이 글을 초하면서도 붓을 놓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 여러 차례요.
여보, 상箱 -
이미 지하로 돌아간 당신은 이제 참 마음의 문을 열어, 내게 일러주지 않으려오 ?
당신은 참말 무엇을 위하야, 무엇을 구하야, 내 서울을 버리고 멀리 동경으로 달려
갔던 것이요 ? 모든 어려움을 다 물리치고 모든 벗들의 극진한 만류도 귀 밖에 흘리고
마땅히 하여야 할 많은 일을 이곳에 남겨둔 채 마치 도망꾼이처럼 서울을 떠났든 당신의
참뜻을 나는 이제 있어도 풀어 낼 수가 없구료.
여보, 상 -
그래도 나는 믿었소. 벗에게 마음을 아직 숨겨 두어도 당신의 뜻은 또 한 커서 이제 수히
서울로 돌아올 때 당신은 응당 집안을 돌보아 아들된 이의 도리를 지키고 또 한편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여 마지않든 우리 문학을 위하야 힘을 애끼지 않으리라고.
그러나 그것도 부질없이 만리나 떨어진 곳에 가난하고 외로운 몸이 하롯날 병들어 누우매
이곳에 남은 벗들은 오직 궁금하고 답답하여 할 뿐으로 놀란 가슴을 부등켜안고 달려간
안해의 사랑의 손길도 당신의 아픈 몸을 골고루 어루만지는 수는 없어 그래 드디어 할 일
많은 당신을 다시 돌아오게 못하였나, 하면, 우리가 굳이 당신을 붙들어 서울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못한 것이 이제 새삼스러이 뉘우쳐지는구료.
여보, 상 -
재주가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마땅히 또 총명하여야 할 것으로, 우리는 그것도 당신에게
진작부터 허락하여 왔거든, 어찌 당신은 돌아보아 그 귀한 몸을 애낄 줄 몰랐었소?
병을 남에게 자랑할 줄 모르는 당신, 허약한 몸이 감당해낼 턱없는 줄 알면서도 그 절제
없는 생활을 그대로 경영하여 온 당신 - 그러한 당신의 이번 죽음을 애끼고 서러워하기 전에
먼저 욕하고 나무라고 싶은 이 어리석은 벗의 심사를 상의 영혼은 어떻게 풀어주려 하오 ?
여보, 상 -
그러나 모든 말이 이제는 눈꼽만한 보람도 없는 것이구려. 돌아오면 하리라고 마음 먹었던
많은 사설도, 이제는 영영 찾아갈 곳을 잃은 채 이 결코 충실치 못하였든 벗은 이제 당신의
명복만을 빌려하오.
부디 상은 편안히 잠드시오.
<조선일보> 1938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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