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은 23세 때 1933년,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황해도 백천온천에 요양을 갔다.
이곳 술집 능라정에서 운명의 여인인 기생 금홍을 만났다.
금홍에 대해 '보들레르의 흑인 혼혈 정부 잔느 뒤발을 닮은데다가,
모든 남자들이 한 번 정도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여자'라 찬사를 늘어놓았다.
차돌같이 뭉친 자그마한 몸집에 바늘 하나 들어갈 빈틈이 없는 새침하고 깜찍한 미인이다.
정말 단순미인이다.
그런데 그녀를 친한 벗에게 권하는 엽기적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재미보고 오라고 내보내기도하고
마음 놓고 즐기라고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한다.
금홍이에게 얻어 맞고 엉엉운다.
무서워서 집에도 못들어 간다.
경영하던 다방 제비를 폐업 한 후
금홍이는 바람이 들어 집을 나간다.
올래! 안올래! 아프다!.
달려 온 금홍이가 팔을 걷어부치고 먹여 살리겠단다.
그도 몇 달
2인용 배게 하나 이별 선물로 남겨두고 금홍이는 떠난다.
그후 이상은 변동림과 결혼했다.
뒤늦게 초라해져 돌아온 금홍이를 보고
단편 소설 "봉별기"를 쓴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
사진을 볼 때마다 애잔해진다.
低抗文學家 李箱 저항문학가 이상
이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시상에 상처를 줄까봐 공개하지 않으려고 망설였었다.
금홍이가 가출한 뒤 금홍에게 보낸 편지글이라고 잘 못 알려진 詩이다.
이 시를 발표하던 이상 23세때 1933년 7월은 금홍이와 다방 <제비> 경영하며 깨소금을 복던 시기였다.
李箱이상이 사랑하던 여인은 금홍이. 정희. 권순옥 말고도 또 있었다.
금홍이도 정희도 권순옥도 어느 놈이 업어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진정한 또 하나의 사랑은 조국이었다. 詩 전체 내용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 李箱이상
役事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木徒목도들이 그것을 메고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기에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들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變怪변괴로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1933년 7월 <카톨릭청년>
이상은 총독부 영선계 건축 기수로 의주통 공사현장 감독으로 근무하면서 땅을 굴착할 때 지하에서 많은 고대유물이 발굴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발굴된 유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1932년 장충단에 博文寺박문사라는 이등박문의 추모사찰을 만든다.
이 때 경복궁의 선원전과 경희궁의 흥화문을 옮겨 왔다.
또 정문 옆 돌담은 광화문을 허문 뒤 그 석재를 가져다 사용했으며,
특히 대한제국의 상징인 원구단을 파괴하고 그 부속건물인 석고각을 이곳 종각으로 사용하였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 조선의 문화 유산
물끄러미 쳐다보는 어떤 돌 -- 일제들이 유물을 실어간 뒤 부셔져 남아있는 석재들을 말한다.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치욕의 역사는 내던지고 싶다.
일제 침략자들은 고대유물을 수탈의 최상품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전국각지에 유물 도굴꾼들이 마구잡이식 도굴이 자행되고 있던 터이다.
이 시를 쓰기 전 1933년 5월3일 대형사건이 신문에 보도된다.
경주박물관장-모로가 히데오가 금관총 유물 팔아넘긴 사건이다.
거액의 유물들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분노한 이상이 지난 일을 회상하며 쓴 시이다.
李箱이상 문학 전반이 항일저항의 내용이다.
모두 재해석되어야 한다.
임종국선생의 친일문제연구는이상의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다른 문학가들의 친일 행적 추적에서 비롯됐다.
친일연구의 선구자, 임종국"1-3. http://youtu.be/JFpPJYEZS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