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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삼천리 속  최린

 

 

 

삼천리 제4호 1930-01-11 人材巡禮(第一編), 新聞社側 소식 원문제공
82 삼천리 제5호 1930-04-01 全盛時代 회고·수기 원문제공
83 삼천리 제6호 1930-05-01 諸氏의 聲明 설문 원문제공
84 삼천리 제6호 1930-05-01 나는 웨 僧이 되엇나? 韓龍雲 회고·수기 원문제공
85 삼천리 제7호 1930-07-01 海外諸氏 在內時代 회고·수기 원문제공
86 삼천리 제9호 1930-10-01 現有勢力 總調査, 新幹, 農總, 勞總, 靑總, 槿友, 天道敎, 基督敎, 佛敎 소식 원문제공
87 삼천리 제9호 1930-10-01 러부렛타-의 告白 회고·수기 원문제공
88 삼천리 제10호 1930-11-01 友邦 巨頭 會見記 소식 원문제공
89 삼천리 제11호 1931-01-01 朝鮮 民族的 代表의 選出問題 설문 원문제공
90 삼천리 제12호 1931-02-01 朝鮮運動은 協同乎 對立乎, 新幹會「解消運動」批判 설문 원문제공
91 삼천리 제12호 1931-02-01 大會 以後의 天道敎經倫 心耕學人 논설 원문제공
92 삼천리 제14호 1931-04-01 最近 十年間 筆禍, 舌禍史 회고·수기 원문제공
93 삼천리 제15호 1931-05-01 光武隆熙時代의 新女性總觀 회고·수기 원문제공
94 삼천리 제17호 1931-07-01 喫煙室 잡저 원문제공
95 삼천리 제17호 1931-07-01 交叉點 소식 원문제공
96 삼천리 제3권 제9호 1931-09-01 三千里 「壁新聞」 第4號 소식 원문제공

 

 

 

 

 

동아일보

 

 

1 동아일보 1920-07-12 03 10 금일 공판 시작되는 朝鮮民族代表 사십팔인의 肖像: 孫秉熙, 崔麟, 權東鎭, 吳世昌, 林禮煥, 權秉悳, 李鍾一, 羅仁協, 洪基兆, 金完圭, 羅龍煥, 李鍾勳, 洪秉箕, 朴準承, 李寅煥, 朴熙道, 崔聖模, 申洪植, 梁甸伯, 李明龍, 吉善宙, 李甲成, 金昌俊, 李弼柱, 吳華英, 朴東完, 鄭春洙, 申錫九, 韓龍雲, 白相奎, 安世桓, 林圭, 金智煥, 崔南善, 咸台永, 宋鎭禹, 鄭魯湜, 玄相允, 李景燮, 韓秉益, 金弘奎, 金道泰, 朴寅浩, 盧憲容, 金世煥, 康基德, 金元璧, 劉如大
2 동아일보 1920-07-14 03 01 展開된 獨立運動의 第一幕; 朝鮮民族代表 四十七人의 公判, 第二日에는 崔麟外 八名만 審問, 公安妨害의 理由로 傍聽은 一時禁止, 極秘密裏에 四人을 審問한 內容은 何?//崔麟부터 審問開始…//傍聽을 禁하고 大審問…//崔麟兩次의 四人會議…//崔南善宣言方法을 討議…崔南善參加始末…//宋鎭禹 李寅煥이 上京하야…//玄相允…//鄭魯湜 金道泰…(寫: 법정으로 들어가는 피고들)
3 동아일보 1920-07-15 03 01 兩敎同志者의 相呼相應; 朝鮮民族代表 四十七人의 公判, 第三日은 李寅煥外 五名을 審問, 獨立宣言의 計劃과 同志糾合에 奔走, 三月一日以前의 暗中飛躍的大活動…//李寅煥; 耶蘇敎의 同志糾合…兩敎合同의 運動…握手後의 大活動…//崔麟; 金五千圓의 出處…//咸台永; 「舊韓國을 回復할뿐」…//梁甸伯 李明龍 劉如大 三人 參加의 經過…
4 동아일보 1920-07-16 02 09 宣言動機의 眞實한 告白, 朝鮮民族代表四十七人의 公判; 申洪植 吉善宙; 悶悶難抑의 不平//朴熙道 吳華英 鄭春洙; 宜當許可할 獨立//李甲成 安世桓 金世煥; 熱烈한 獨立論//朴寅浩 盧憲容; 五千圓支出問題//崔南善; 最後의 一人 最後의 一刻//崔麟 權東鎭 吳世昌; 裁判長과 殆히 論戰
5 동아일보 1920-09-21 03 01 獨立宣言事件의 控訴公判 急轉直下로 事實審問에, 問題의 核心인 「公訴不受理」은 自歸水泡, 공소 불슈리 문뎨는 판결 내일때까지 더퍼둔다고, 생각도 아니하얏던 사실심문부터 드리모라친다, 第一日은 崔麟外 四十名을 訊問//控訴의 理由, 고등법원의 결정은 사건송치를 의미함//又復不受理申立, 제령제칠호는 아무 효력도 없다는 주장; 被告는 上告權을 가젓슨즉 먼저 법문제를 해결할지라; 被告側의 質問, 본안심리는 무엇? 일심판결은 파괴?//崔麟; 「獨立은 世界大勢」//各派의 合同運動//宣言書作成顚末, 최남선의 학식과 인격을 믿고 대세에 순응하여 짓도록 당부//午後엔 十四人 審問, 권동진외 십삼명심문
6 동아일보 1921-03-01 03 04 滿二個年의 春을 迎하는 獨立宣言事件 囚人의 生活, 권동진 한사람만 위병이 나고 그 밧게는 모다 별탈은 업다고(寫: 독림션언사건 관계쟈의 구금된 경성감옥; 최린 박희도 오세창 최남선 권동진 오화영의 사진, 그 옆에 쓰인 글씨는 각기 그사람들이 감옥으로부터 최근에 가족에게 부친 편지의 필적)
7 동아일보 1921-12-23 03 01 獨立宣言한 崔麟 咸台永 吳世昌 權東鎭 李鍾一 金昌俊 韓龍雲등 假出獄, 작 이십이일하오 두시삼십분 돌연히, 同志中 在監者는 李寅煥 吳華英 李甲成등 三人
8 동아일보 1922-03-07 03 05 桑港慘事에 鑑하야; 무엇보다도 사랑이 급무, 가장 의미가 심졀한 계획(天道敎庶務課長 崔麟氏談)
9 동아일보 1922-04-01 05 01 新生을 追求하는 朝鮮人, 現下急務는 果然 何인가//人格이 主, 비판정신의 필요, 中央高普校長崔斗善씨談//團結 敎育 피 공업발달의 필요, 漢城圖書會社 張道斌氏談//自作自給, 방금 가장 큰 문뎨, 韓一銀行頭取 閔大植氏談//經濟 活字 기타는 여개방차, 天道敎庶務課長崔麟氏談//不知是惡, 먼저 알어야 한다, 普成高普校長 鄭大鉉氏談//物質重視, 돈이 잇서야산다, 中央靑年會長 尹致昊氏談//農民救濟, 부자의 생각할일, 佛敎會 理事 朴漢永氏談//道德建設 시긔질투는 금물, 中央靑年會總務 李商在氏談//靈的革新 새로운 종교가 필요, 兪星濬氏談//經濟獨立 뎨일문뎨는 정권, 辯護士 朴勝彬氏談//相互扶扶助 힘을 모아 분투할일, 新生活社長 朴熙道氏談//不眠不休 모든일에 끈기잇게, 京城圖書舘 李範昇氏談
10 동아일보 1922-04-02 05 01 新生을 追求하는 朝鮮人, 現下急務는 果然 何인가//人格이 主, 비판정신의 필요, 中央高普校長崔斗善씨談//團結 敎育 피 공업발달의 필요, 漢城圖書會社 張道斌氏談//自作自給, 방금 가장 큰 문뎨, 韓一銀行頭取 閔大植氏談//經濟 活字 기타는 여개방차, 天道敎庶務課長崔麟氏談//不知是惡, 먼저 알어야 한다, 普成高普校長 鄭大鉉氏談//物質重視, 돈이 잇서야산다, 中央靑年會長 尹致昊氏談//農民救濟, 부자의 생각할일, 佛敎會 理事 朴漢永氏談//道德建設 시긔질투는 금물, 中央靑年會總務 李商在氏談//靈的革新 새로운 종교가 필요, 兪星濬氏談//經濟獨立 뎨일문뎨는 정권, 辯護士 朴勝彬氏談//相互扶扶助 힘을 모아 분투할일, 新生活社長 朴熙道氏談//不眠不休 모든일에 끈기잇게, 京城圖書舘 李範昇氏談
11 동아일보 1922-11-23 04 04 海州天道敎講演: 事業의 精神(崔麟), 朝鮮人의 將來(李敦化)
12 동아일보 1922-11-26 04 03 安岳邑天道敎會主催 演會: 朝鮮人의 運命(崔麟), 우리의 主義(李敦化)
13 동아일보 1922-11-29 04 04 鎭南浦碑石里 天道敎會大講演: 自活의 道(崔麟), 朝鮮의 將來(李敦化)
14 동아일보 1922-12-21 08 04 博川天道敎區에서 崔麟 李敦化兩氏의 大講演: 力(李敦化), 職業神聖(崔麟)
15 동아일보 1922-12-21 08 05 宣川天道敎區에서 天道敎中央總部 崔麟 李敦化兩氏 巡講
16 동아일보 1922-12-22 04 03 龍岩浦敎區에서 崔麟 李敦化兩氏講演
17 동아일보 1923-01-01 신년 제1호 03 01 朝鮮及朝鮮人의 煩悶(一) 정치적 경제적의 자유가업는 것이 제일번민, 편당싸홈하는 것도 큰걱정, 최린氏談
18 동아일보 1923-03-31 03 09 天道敎靑年會主催 강연: 現下의 日本(崔元淳)現下의 極東(金燦)現下의 朝鮮(崔麟)
19 동아일보 1923-04-05 03 09 朝鮮女子靑年會主催로 강연회: 朝鮮女子(崔麟)最大急務(李載甲), 旣婚男子의 離婚이 可乎아 否乎아(李弼秀)(모임란)
20 동아일보 1923-04-20 03 08 평양의 교육강연회, 大成敎育會主催로: 演士 宋鎭禹 崔麟 玄相允(모임란)

21 동아일보 1923-05-09 04 09 永同靑年會大講演會: 社會進化와 協同運動(金喆壽), 反省(崔麟), 너와나(安信行)
22 동아일보 1923-06-07 04 04 民大宣傳大講演: 反省(崔麟)(黃州)
23 동아일보 1923-08-07 04 04 文化大講演會計劃, 沙里院天道敎會主催 沙里院學友會及本社沙里院支局後援으로(演士 李熟化 崔麟)
24 동아일보 1923-12-09 02 01 必勝을 期하는 選手의 勇姿, 신임톄육회장 崔麟씨의 간곡한 식사가 잇고 먼저 텬진이 류로하는 소학단부터 개젼햇다(寫)//小學優勝은 光成에, 결국 한졈으로 輔仁에 패배(寫)//中學優勝은 培材에, 량군의 대젼과 관중의 응원격렬
25 동아일보 1924-01-01 02 01 生活改善의 第一步로 새해부터 우리朝鮮人이 實行할 새決心; (앙케트)//猜忌, 黨派, 조션민족의고질(李商在談)//悲觀, 不實, 비관하는 것은 멸망으로 드러가는길(崔麟氏談)//無公德心, 사소한일이 우리전톄를 욕되게한다(申興雨)//無勇無氣, 먼저용긔잇자(趙喆鎬氏談)//不潔한 우리의집안, 새해부터는 비와 걸레를 쓰름하기로 하여봅시다(金美理斯女史談)//自尊虛慾은 자긔를 망한다(金昌俊)//身體를 정결히하라(朱永善)//表裡不同 거듭나지안으면, 표리부동을 곳칠수업다(李敦化)//會規不守, 집회시간을 직히지 안는자는 남까지 락심식힘(盧俊鐸)//虛禮濫費, 쓸데업는 절차(兪星濬)//無職業녀자들은 놀고먹는 말을듯도록 하지말라(姜道成女史談)//白色, 不潔, 의복의결점, 염색옷을 검소히 입고 때때로 빨아 입읍시다(申앨버 女史談)//飮食一定, 시간불일과 생식으로 먹는것은 국민위생에 큰방해(申弼浩)//無用한 수고를 덜자(金弼禮)//浪費, 無蓄, 터무니업시 랑비, 돈업는 조선사람들이 쓰기를 예산업시 쓴다(金潤冕)//時間節約에 힘을쓰자(李灌鎔博士)//順序不整, 유시무종은 모다순서와 성산이 튼튼하지 못한까닭(李範昇)//酒와 煙草를 폐지하라, 술과 담배를 먹는것은 사회의 생명을 먹는것(金一善)//料店出入을 삼가하라, 소위 명사네들은 고등부랑자갓다(李鍾駿)//無味乾燥, 우리생활은 너무도 취미업다, 새해부터 잘살자(安錫桂)
26 동아일보 1924-01-07 02 04 離婚問題의 可否 (七) 自己犧牲에 同情, 살겟다 안살겟다하는 생각, 자긔를 희생함에 더욱 동졍, 崔麟氏談
27 동아일보 1924-02-11 03 07 天道敎講道會에 崔麟氏參席(安州)
28 동아일보 1924-10-25 02 03 天道敎祖 大神師 出生百年紀念式, 이십 팔일 기념관에서 거행(寫: 일반공용에 뎨공할 준공되는 천도교 긔념관)//紀念館無料提供, 엇던단톄 무슨일에든지 무료로 빌릴터, 天道敎崔麟氏談
29 동아일보 1924-12-06 03 03 婦人講座開催, 조선녀자청년회관에서: 自立의 二大條件(崔麟)
30 동아일보 1925-01-01 03 03 崔麟(古友)氏 試筆
31 동아일보 1925-01-23 02 01 百鬼遍滿한 昏衢의 明燈//混沌한 思想界의 善後策(二千萬民衆當面한 重大問題其一)//社會改善 爲先生活保障, 崔麟氏談//現實에 立脚 理論보다 實地, 韓龍雲氏談//各自尊重 主義나 思想을, 金得洙氏談//生活安定 此亦根本問題, 萎錫奉氏談//文藝, 宗敎, 健全한 眞正한, 鏡城耶蘇敎牧師 金麟瑞氏談//敎育, 生業, 그리고 宗敎로, 全州靑年會 尹相産氏談//言論廓淸, 敎育과 宗敎로, 咸興基督靑年會 李舜基氏談//惡黨撲滅 무엇보다 上策, 京城 金鍾範氏談//急進捷徑, 自然의 順理로, 京城金若水氏談//國民敎育, 第一物資豊足, 京城女子敎育協會金美理女史談
32 동아일보 1925-10-01 02 04 己未年運動과 朝鮮의 四十八人, 最近消息의 片片 (二) 崔麟, 白相奎, 韓龍雲, 金昌俊, 林禮煥, 羅仁協(讀者와 記者欄)
33 동아일보 1925-12-05 04 07 敎理講道와 社會問題講演, 來十日부터 高原天道敎에서: 演士 李敦化 崔麟
34 동아일보 1926-06-10 05 01 新事實 每日 續出, 學生中心의 某運動發覺, 市內 關係의 可驚할 情報, 鍾路署 兩段活動//學生續續檢擧, 일변으로는 경찰부에//主要人物 薛某//鷄龍山을 搜索//各道에서 檢擧護送, 경긔경찰부로//崔麟氏도 同行, 본사댱 金性洙氏도 동행
35 동아일보 1926-06-11 01 11 驛頭에서 또 逮捕, 상해에서 들어온 청년한명 작일 오후 일곱시경에 톄포, 민족적인 사건으로//종로서에 동행되엇든 崔麟氏와 金性洙氏 歸宅
36 동아일보 1927-04-21 04 06 五百戶稅代納, 崔麟容氏가(群山)
37 동아일보 1927-06-11 02 07 一年 豫定으로 崔麟氏 洋行, 구미 각국의 졍세시찰 목뎍, 十一日 橫濱出發
38 동아일보 1927-10-08 04 09 兩期戶稅代納, 崔麟容氏(群山)
39 동아일보 1928-04-01 02 09 崔麟氏 歸國, 금일 오후 팔시에, 歐米視察마치고
40 동아일보 1928-04-03 02 04 多數人士 歡迎裡 崔麟氏 再昨 歸國, 약 일개년간 세계를 시찰하고 재작일 밤에 무사히 귀국하여, 世界 卄一個國을 周遊

 

41 동아일보 1928-04-14 02 08 崔麟氏 歡迎 수요구락부 주최로
42 동아일보 1929-01-30 05 05 巨金探索者 崔麟政出發,「지러露皇室」遺産인 金塊가
43 동아일보 1929-04-09 04 08 金百圓을 寄附, 崔麟模氏가 新明學校에(碧潼)
44 동아일보 1930-01-01 01 01 創作生活, 天道敎正道領 崔麟氏談
45 동아일보 1930-04-04 03 01 十週年記念號를 通하야 朝鮮에 부치는 付託, 內外各國名士; 近代新聞紙의 偉力은 强大正當한 支配가 必要,「해일삼」卿//文化的 舊邦 배울 것이 만하「쫀넬슨」氏//朝鮮을 代表 極東文化 啓發,「치챠엡」氏//讀者의 信任 十年間의 功績 魚丕信//固有의 文化護持 又는 啓發 崔麟
46 동아일보 1930-04-09 02 06 天道敎靑盟이 自治反對決議 결의운운에 대하야 崔麟氏는 絶對로 否認
47 동아일보 1930-10-23 02 01 派爭에서 合同으로, 天道敎의 新舊兩派, 世稱沙里院派도 合同될듯, 交涉委員의 往來頻頻//兩派幹部의 感想 實現은 時間問題 合同을 確信 崔麟氏談//「오히려晩時의 嘆」誠實한 態度로, 李鍾麟氏談
48 동아일보 1930-12-19 02 06 天道敎幹部更迭 大領은 鄭廣朝氏, 合同問題압두고 大變革 權東鎭 崔麟兩氏는 顧問으로
49 동아일보 1930-12-21 02 09 ≪取消申請記事≫天道敎幹部更迭 大領은 鄭廣朝氏, 合同問題압두고 大變革 權東鎭 崔麟兩氏는 顧問으로
50 동아일보 1930-12-25 03 09 貧民同胞救濟, 安東縣 崔麟柱氏가
51 동아일보 1931-01-16 03 08 百七十戶에 白米一斗式, 安東 崔麟柱氏 厚意
52 동아일보 1931-09-20 03 12 金浦支局; 崔麟植 韓萬憶 任記者 記者 金鳳基 文善澤 依願解職
53 동아일보 1933-01-01 부록 01 08 新春을 맞는 우리의 抱負와 希望 ; 崔麟 : 協助精神과 實際的運動[肖]//梁柱三 : 犧牲精神과 實踐的氣魄[肖]//韓龍雲 : 正明한 認識[肖]
54 동아일보 1934-01-01 부록 01 08 新年에 보내는 우리의 새 信號 其一. 中道로 躍進, 中央基靑會長 尹致昊//過去를 淸算, 天道敎大領 崔麟//自主와 自學, 天道敎大宗司長 權東鎭//緊張과 忠實, 延禧專門學監 兪億兼//圓智方品行, 佛敎專門校長 朴漢永
55 동아일보 1934-04-09 석간 02 09 天道敎記念講談會 講師氏名 : 崔麟 鄭廣朝 李敦化 李根培
56 동아일보 1934-04-16 석간 02 05 天道敎 大道正 崔麟氏 參議說, 중추원 참의 후보로 내정
57 동아일보 1934-04-18 석간 01 08 崔麟(勅任官待遇) 朝鮮總督府中樞院參議被仰付
58 동아일보 1934-07-27 조간 02 06 桂洞崔麟宅 後園地下에서 彈丸五百發 發見 拳銃長銃彈藥과 革帶等, 鍾路署 血眼活動
59 동아일보 1934-08-03 조간 02 09 崔麟政護送도 中止 連累檢擧再着手 蓮建洞서 老人一名 檢擧取調 舊露皇室 寶物詐欺事件擴大
60 동아일보 1934-08-03 석간 02 01 孤島의 七億圓祕寶 싸고도는 世界的獵奇 警視廳刑事隊出張 主役崔麟政 逮捕 蓋平에서 京城護送 東署에 留置 國際的詐欺 朝鮮에 飛火//산사람 喪廳 黃金劇의 클라이막 중국어 능통한 것을 기화로 縣長의 丈人의 行勢//卅萬圓 먹은 崔麟政 被殺假裝코 潛跡, 舊韓國時代露公使通譯 미끼로 寶物採取運動金橫領

61 동아일보 1934-08-05 석간 02 12 現金等六萬圓 崔麟政押送, 로서아 「로마놉흐」皇室 「寶物」事件 舞臺移動
62 동아일보 1934-08-11 조간 02 11 國際詐欺의 關聯者 皮熙承 崔麟政等昨夜押送 「露皇室寶物事件」 後聞
63 동아일보 1934-09-20 조간 02 01 女流畫家 羅蕙錫氏 崔麟氏相對提訴 妻權 侵害에 依한 慰藉料萬二千圓 請求, 十九日午後正式手續[肖]//訴狀에 나타난 請求理由의 全文//貞操蹂躝關係는 內容證明으로, 不應하기에 畢竟訴訟提起 辯護士蘇完奎氏談
64 동아일보 1937-10-02 석간 04 07 特志家의 寄附로 新明學院에 曙光, 定州 兩崔氏巨金 喜捨, 崔麟瑞, 崔弘瑞씨가(雲田)
65 동아일보 1938-05-03 석간 01 11 崔麟(朝鮮總督府 中樞院參議) 依願總督府中樞院參議被免
66 동아일보 1946-10-10 석간 01 03 親日·反逆者들이 擡頭 崔麟, 李光洙, 金大羽, 朱耀翰, 朱耀燮, 桂光淳等이 謀議
67 동아일보 1947-08-19 석간 02 04 前中樞院參議 崔麟 留置場에서 斷食 天道敎 靑友黨事件?
68 동아일보 1949-03-24 석간 02 07 反民者 一回公判 三十日 崔麟等에 實施//楊秉一等自首(全州)//金大亨等 서울로 押送
69 동아일보 1949-03-30 석간 02 02 反民裁判 ; 經濟上의 親日이오 朴興植 政治活動을 否認[寫]//崔麟等은 今日//前高等刑事 李俊聖被逮//愛國志士들에 弑虐 拷問王金泰錫罪相을 陰蔽//눈병을 핑게로 金泰勳保釋申請(仁川)//親日牧師 金仁善逮捕
70 동아일보 1949-04-01 석간 02 05 反民裁判 民族運動에 큰 汚點 崔麟變節의 動機를 說明//金泰勳 서울 送致(仁川)//朴正純等四名 서울 本部에 送致(大邱)//鄭僑源을 收監 楊載弘刑事는 起訴//李豐漢은 保釋//金秊洙에 拘束取消處分//朴鍾杓, 孫永穆等 反民特檢에 送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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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 위키백과  (0) 201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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