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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삼천리 속 최린
린
삼천리 제4호 |
1930-01-11 |
人材巡禮(第一編), 新聞社側 |
|
소식 |
원문제공 |
82 |
삼천리 제5호 |
1930-04-01 |
全盛時代 |
|
회고·수기 |
원문제공 |
83 |
삼천리 제6호 |
1930-05-01 |
諸氏의 聲明 |
|
설문 |
원문제공 |
84 |
삼천리 제6호 |
1930-05-01 |
나는 웨 僧이 되엇나? |
韓龍雲 |
회고·수기 |
원문제공 |
85 |
삼천리 제7호 |
1930-07-01 |
海外諸氏 在內時代 |
|
회고·수기 |
원문제공 |
86 |
삼천리 제9호 |
1930-10-01 |
現有勢力 總調査, 新幹, 農總, 勞總, 靑總, 槿友, 天道敎, 基督敎, 佛敎 |
|
소식 |
원문제공 |
87 |
삼천리 제9호 |
1930-10-01 |
러부렛타-의 告白 |
|
회고·수기 |
원문제공 |
88 |
삼천리 제10호 |
1930-11-01 |
友邦 巨頭 會見記 |
|
소식 |
원문제공 |
89 |
삼천리 제11호 |
1931-01-01 |
朝鮮 民族的 代表의 選出問題 |
|
설문 |
원문제공 |
90 |
삼천리 제12호 |
1931-02-01 |
朝鮮運動은 協同乎 對立乎, 新幹會「解消運動」批判 |
|
설문 |
원문제공 |
91 |
삼천리 제12호 |
1931-02-01 |
大會 以後의 天道敎經倫 |
心耕學人 |
논설 |
원문제공 |
92 |
삼천리 제14호 |
1931-04-01 |
最近 十年間 筆禍, 舌禍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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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수기 |
원문제공 |
93 |
삼천리 제15호 |
1931-05-01 |
光武隆熙時代의 新女性總觀 |
|
회고·수기 |
원문제공 |
94 |
삼천리 제17호 |
1931-07-01 |
喫煙室 |
|
잡저 |
원문제공 |
95 |
삼천리 제17호 |
1931-07-01 |
交叉點 |
|
소식 |
원문제공 |
96 |
삼천리 제3권 제9호 |
1931-09-01 |
三千里 「壁新聞」 第4號 |
|
소식 |
원문제공 |
동아일보
1 |
동아일보 |
1920-07-12 |
무 |
03 |
10 |
금일 공판 시작되는 朝鮮民族代表 사십팔인의 肖像: 孫秉熙, 崔麟, 權東鎭, 吳世昌, 林禮煥, 權秉悳, 李鍾一, 羅仁協, 洪基兆, 金完圭, 羅龍煥, 李鍾勳, 洪秉箕, 朴準承, 李寅煥, 朴熙道, 崔聖模, 申洪植, 梁甸伯, 李明龍, 吉善宙, 李甲成, 金昌俊, 李弼柱, 吳華英, 朴東完, 鄭春洙, 申錫九, 韓龍雲, 白相奎, 安世桓, 林圭, 金智煥, 崔南善, 咸台永, 宋鎭禹, 鄭魯湜, 玄相允, 李景燮, 韓秉益, 金弘奎, 金道泰, 朴寅浩, 盧憲容, 金世煥, 康基德, 金元璧, 劉如大 |
|
2 |
동아일보 |
1920-07-14 |
무 |
03 |
01 |
展開된 獨立運動의 第一幕; 朝鮮民族代表 四十七人의 公判, 第二日에는 崔麟外 八名만 審問, 公安妨害의 理由로 傍聽은 一時禁止, 極秘密裏에 四人을 審問한 內容은 何?//崔麟부터 審問開始…//傍聽을 禁하고 大審問…//崔麟兩次의 四人會議…//崔南善宣言方法을 討議…崔南善參加始末…//宋鎭禹 李寅煥이 上京하야…//玄相允…//鄭魯湜 金道泰…(寫: 법정으로 들어가는 피고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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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동아일보 |
1920-07-15 |
무 |
03 |
01 |
兩敎同志者의 相呼相應; 朝鮮民族代表 四十七人의 公判, 第三日은 李寅煥外 五名을 審問, 獨立宣言의 計劃과 同志糾合에 奔走, 三月一日以前의 暗中飛躍的大活動…//李寅煥; 耶蘇敎의 同志糾合…兩敎合同의 運動…握手後의 大活動…//崔麟; 金五千圓의 出處…//咸台永; 「舊韓國을 回復할뿐」…//梁甸伯 李明龍 劉如大 三人 參加의 經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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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동아일보 |
1920-07-16 |
무 |
02 |
09 |
宣言動機의 眞實한 告白, 朝鮮民族代表四十七人의 公判; 申洪植 吉善宙; 悶悶難抑의 不平//朴熙道 吳華英 鄭春洙; 宜當許可할 獨立//李甲成 安世桓 金世煥; 熱烈한 獨立論//朴寅浩 盧憲容; 五千圓支出問題//崔南善; 最後의 一人 最後의 一刻//崔麟 權東鎭 吳世昌; 裁判長과 殆히 論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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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동아일보 |
1920-09-21 |
무 |
03 |
01 |
獨立宣言事件의 控訴公判 急轉直下로 事實審問에, 問題의 核心인 「公訴不受理」은 自歸水泡, 공소 불슈리 문뎨는 판결 내일때까지 더퍼둔다고, 생각도 아니하얏던 사실심문부터 드리모라친다, 第一日은 崔麟外 四十名을 訊問//控訴의 理由, 고등법원의 결정은 사건송치를 의미함//又復不受理申立, 제령제칠호는 아무 효력도 없다는 주장; 被告는 上告權을 가젓슨즉 먼저 법문제를 해결할지라; 被告側의 質問, 본안심리는 무엇? 일심판결은 파괴?//崔麟; 「獨立은 世界大勢」//各派의 合同運動//宣言書作成顚末, 최남선의 학식과 인격을 믿고 대세에 순응하여 짓도록 당부//午後엔 十四人 審問, 권동진외 십삼명심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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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동아일보 |
1921-03-01 |
무 |
03 |
04 |
滿二個年의 春을 迎하는 獨立宣言事件 囚人의 生活, 권동진 한사람만 위병이 나고 그 밧게는 모다 별탈은 업다고(寫: 독림션언사건 관계쟈의 구금된 경성감옥; 최린 박희도 오세창 최남선 권동진 오화영의 사진, 그 옆에 쓰인 글씨는 각기 그사람들이 감옥으로부터 최근에 가족에게 부친 편지의 필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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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동아일보 |
1921-12-23 |
무 |
03 |
01 |
獨立宣言한 崔麟 咸台永 吳世昌 權東鎭 李鍾一 金昌俊 韓龍雲등 假出獄, 작 이십이일하오 두시삼십분 돌연히, 同志中 在監者는 李寅煥 吳華英 李甲成등 三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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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동아일보 |
1922-03-07 |
무 |
03 |
05 |
桑港慘事에 鑑하야; 무엇보다도 사랑이 급무, 가장 의미가 심졀한 계획(天道敎庶務課長 崔麟氏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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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동아일보 |
1922-04-01 |
무 |
05 |
01 |
新生을 追求하는 朝鮮人, 現下急務는 果然 何인가//人格이 主, 비판정신의 필요, 中央高普校長崔斗善씨談//團結 敎育 피 공업발달의 필요, 漢城圖書會社 張道斌氏談//自作自給, 방금 가장 큰 문뎨, 韓一銀行頭取 閔大植氏談//經濟 活字 기타는 여개방차, 天道敎庶務課長崔麟氏談//不知是惡, 먼저 알어야 한다, 普成高普校長 鄭大鉉氏談//物質重視, 돈이 잇서야산다, 中央靑年會長 尹致昊氏談//農民救濟, 부자의 생각할일, 佛敎會 理事 朴漢永氏談//道德建設 시긔질투는 금물, 中央靑年會總務 李商在氏談//靈的革新 새로운 종교가 필요, 兪星濬氏談//經濟獨立 뎨일문뎨는 정권, 辯護士 朴勝彬氏談//相互扶扶助 힘을 모아 분투할일, 新生活社長 朴熙道氏談//不眠不休 모든일에 끈기잇게, 京城圖書舘 李範昇氏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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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동아일보 |
1922-04-02 |
무 |
05 |
01 |
新生을 追求하는 朝鮮人, 現下急務는 果然 何인가//人格이 主, 비판정신의 필요, 中央高普校長崔斗善씨談//團結 敎育 피 공업발달의 필요, 漢城圖書會社 張道斌氏談//自作自給, 방금 가장 큰 문뎨, 韓一銀行頭取 閔大植氏談//經濟 活字 기타는 여개방차, 天道敎庶務課長崔麟氏談//不知是惡, 먼저 알어야 한다, 普成高普校長 鄭大鉉氏談//物質重視, 돈이 잇서야산다, 中央靑年會長 尹致昊氏談//農民救濟, 부자의 생각할일, 佛敎會 理事 朴漢永氏談//道德建設 시긔질투는 금물, 中央靑年會總務 李商在氏談//靈的革新 새로운 종교가 필요, 兪星濬氏談//經濟獨立 뎨일문뎨는 정권, 辯護士 朴勝彬氏談//相互扶扶助 힘을 모아 분투할일, 新生活社長 朴熙道氏談//不眠不休 모든일에 끈기잇게, 京城圖書舘 李範昇氏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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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동아일보 |
1922-11-23 |
무 |
04 |
04 |
海州天道敎講演: 事業의 精神(崔麟), 朝鮮人의 將來(李敦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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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동아일보 |
1922-11-26 |
무 |
04 |
03 |
安岳邑天道敎會主催 演會: 朝鮮人의 運命(崔麟), 우리의 主義(李敦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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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동아일보 |
1922-11-29 |
무 |
04 |
04 |
鎭南浦碑石里 天道敎會大講演: 自活의 道(崔麟), 朝鮮의 將來(李敦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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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동아일보 |
1922-12-21 |
무 |
08 |
04 |
博川天道敎區에서 崔麟 李敦化兩氏의 大講演: 力(李敦化), 職業神聖(崔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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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동아일보 |
1922-12-21 |
무 |
08 |
05 |
宣川天道敎區에서 天道敎中央總部 崔麟 李敦化兩氏 巡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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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동아일보 |
1922-12-22 |
무 |
04 |
03 |
龍岩浦敎區에서 崔麟 李敦化兩氏講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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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동아일보 |
1923-01-01 |
무 |
신년 제1호 03 |
01 |
朝鮮及朝鮮人의 煩悶(一) 정치적 경제적의 자유가업는 것이 제일번민, 편당싸홈하는 것도 큰걱정, 최린氏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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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동아일보 |
1923-03-31 |
무 |
03 |
09 |
天道敎靑年會主催 강연: 現下의 日本(崔元淳)現下의 極東(金燦)現下의 朝鮮(崔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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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동아일보 |
1923-04-05 |
무 |
03 |
09 |
朝鮮女子靑年會主催로 강연회: 朝鮮女子(崔麟)最大急務(李載甲), 旣婚男子의 離婚이 可乎아 否乎아(李弼秀)(모임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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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동아일보 |
1923-04-20 |
무 |
03 |
08 |
평양의 교육강연회, 大成敎育會主催로: 演士 宋鎭禹 崔麟 玄相允(모임란) |
|
21 |
동아일보 |
1923-05-09 |
무 |
04 |
09 |
永同靑年會大講演會: 社會進化와 協同運動(金喆壽), 反省(崔麟), 너와나(安信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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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동아일보 |
1923-06-07 |
무 |
04 |
04 |
民大宣傳大講演: 反省(崔麟)(黃州) |
|
23 |
동아일보 |
1923-08-07 |
무 |
04 |
04 |
文化大講演會計劃, 沙里院天道敎會主催 沙里院學友會及本社沙里院支局後援으로(演士 李熟化 崔麟) |
|
24 |
동아일보 |
1923-12-09 |
무 |
02 |
01 |
必勝을 期하는 選手의 勇姿, 신임톄육회장 崔麟씨의 간곡한 식사가 잇고 먼저 텬진이 류로하는 소학단부터 개젼햇다(寫)//小學優勝은 光成에, 결국 한졈으로 輔仁에 패배(寫)//中學優勝은 培材에, 량군의 대젼과 관중의 응원격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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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동아일보 |
1924-01-01 |
무 |
02 |
01 |
生活改善의 第一步로 새해부터 우리朝鮮人이 實行할 새決心; (앙케트)//猜忌, 黨派, 조션민족의고질(李商在談)//悲觀, 不實, 비관하는 것은 멸망으로 드러가는길(崔麟氏談)//無公德心, 사소한일이 우리전톄를 욕되게한다(申興雨)//無勇無氣, 먼저용긔잇자(趙喆鎬氏談)//不潔한 우리의집안, 새해부터는 비와 걸레를 쓰름하기로 하여봅시다(金美理斯女史談)//自尊虛慾은 자긔를 망한다(金昌俊)//身體를 정결히하라(朱永善)//表裡不同 거듭나지안으면, 표리부동을 곳칠수업다(李敦化)//會規不守, 집회시간을 직히지 안는자는 남까지 락심식힘(盧俊鐸)//虛禮濫費, 쓸데업는 절차(兪星濬)//無職業녀자들은 놀고먹는 말을듯도록 하지말라(姜道成女史談)//白色, 不潔, 의복의결점, 염색옷을 검소히 입고 때때로 빨아 입읍시다(申앨버 女史談)//飮食一定, 시간불일과 생식으로 먹는것은 국민위생에 큰방해(申弼浩)//無用한 수고를 덜자(金弼禮)//浪費, 無蓄, 터무니업시 랑비, 돈업는 조선사람들이 쓰기를 예산업시 쓴다(金潤冕)//時間節約에 힘을쓰자(李灌鎔博士)//順序不整, 유시무종은 모다순서와 성산이 튼튼하지 못한까닭(李範昇)//酒와 煙草를 폐지하라, 술과 담배를 먹는것은 사회의 생명을 먹는것(金一善)//料店出入을 삼가하라, 소위 명사네들은 고등부랑자갓다(李鍾駿)//無味乾燥, 우리생활은 너무도 취미업다, 새해부터 잘살자(安錫桂) |
|
26 |
동아일보 |
1924-01-07 |
무 |
02 |
04 |
離婚問題의 可否 (七) 自己犧牲에 同情, 살겟다 안살겟다하는 생각, 자긔를 희생함에 더욱 동졍, 崔麟氏談 |
|
27 |
동아일보 |
1924-02-11 |
무 |
03 |
07 |
天道敎講道會에 崔麟氏參席(安州) |
|
28 |
동아일보 |
1924-10-25 |
무 |
02 |
03 |
天道敎祖 大神師 出生百年紀念式, 이십 팔일 기념관에서 거행(寫: 일반공용에 뎨공할 준공되는 천도교 긔념관)//紀念館無料提供, 엇던단톄 무슨일에든지 무료로 빌릴터, 天道敎崔麟氏談 |
|
29 |
동아일보 |
1924-12-06 |
무 |
03 |
03 |
婦人講座開催, 조선녀자청년회관에서: 自立의 二大條件(崔麟) |
|
30 |
동아일보 |
1925-01-01 |
무 |
03 |
03 |
崔麟(古友)氏 試筆 |
|
31 |
동아일보 |
1925-01-23 |
무 |
02 |
01 |
百鬼遍滿한 昏衢의 明燈//混沌한 思想界의 善後策(二千萬民衆當面한 重大問題其一)//社會改善 爲先生活保障, 崔麟氏談//現實에 立脚 理論보다 實地, 韓龍雲氏談//各自尊重 主義나 思想을, 金得洙氏談//生活安定 此亦根本問題, 萎錫奉氏談//文藝, 宗敎, 健全한 眞正한, 鏡城耶蘇敎牧師 金麟瑞氏談//敎育, 生業, 그리고 宗敎로, 全州靑年會 尹相産氏談//言論廓淸, 敎育과 宗敎로, 咸興基督靑年會 李舜基氏談//惡黨撲滅 무엇보다 上策, 京城 金鍾範氏談//急進捷徑, 自然의 順理로, 京城金若水氏談//國民敎育, 第一物資豊足, 京城女子敎育協會金美理女史談 |
|
32 |
동아일보 |
1925-10-01 |
무 |
02 |
04 |
己未年運動과 朝鮮의 四十八人, 最近消息의 片片 (二) 崔麟, 白相奎, 韓龍雲, 金昌俊, 林禮煥, 羅仁協(讀者와 記者欄) |
|
33 |
동아일보 |
1925-12-05 |
무 |
04 |
07 |
敎理講道와 社會問題講演, 來十日부터 高原天道敎에서: 演士 李敦化 崔麟 |
|
34 |
동아일보 |
1926-06-10 |
무 |
05 |
01 |
新事實 每日 續出, 學生中心의 某運動發覺, 市內 關係의 可驚할 情報, 鍾路署 兩段活動//學生續續檢擧, 일변으로는 경찰부에//主要人物 薛某//鷄龍山을 搜索//各道에서 檢擧護送, 경긔경찰부로//崔麟氏도 同行, 본사댱 金性洙氏도 동행 |
|
35 |
동아일보 |
1926-06-11 |
무 |
01 |
11 |
驛頭에서 또 逮捕, 상해에서 들어온 청년한명 작일 오후 일곱시경에 톄포, 민족적인 사건으로//종로서에 동행되엇든 崔麟氏와 金性洙氏 歸宅 |
|
36 |
동아일보 |
1927-04-21 |
무 |
04 |
06 |
五百戶稅代納, 崔麟容氏가(群山) |
|
37 |
동아일보 |
1927-06-11 |
무 |
02 |
07 |
一年 豫定으로 崔麟氏 洋行, 구미 각국의 졍세시찰 목뎍, 十一日 橫濱出發 |
|
38 |
동아일보 |
1927-10-08 |
무 |
04 |
09 |
兩期戶稅代納, 崔麟容氏(群山) |
|
39 |
동아일보 |
1928-04-01 |
무 |
02 |
09 |
崔麟氏 歸國, 금일 오후 팔시에, 歐米視察마치고 |
|
40 |
동아일보 |
1928-04-03 |
무 |
02 |
04 |
多數人士 歡迎裡 崔麟氏 再昨 歸國, 약 일개년간 세계를 시찰하고 재작일 밤에 무사히 귀국하여, 世界 卄一個國을 周遊 |
|
41 |
동아일보 |
1928-04-14 |
무 |
02 |
08 |
崔麟氏 歡迎 수요구락부 주최로 |
|
42 |
동아일보 |
1929-01-30 |
무 |
05 |
05 |
巨金探索者 崔麟政出發,「지러露皇室」遺産인 金塊가 |
|
43 |
동아일보 |
1929-04-09 |
무 |
04 |
08 |
金百圓을 寄附, 崔麟模氏가 新明學校에(碧潼) |
|
44 |
동아일보 |
1930-01-01 |
무 |
01 |
01 |
創作生活, 天道敎正道領 崔麟氏談 |
|
45 |
동아일보 |
1930-04-04 |
무 |
03 |
01 |
十週年記念號를 通하야 朝鮮에 부치는 付託, 內外各國名士; 近代新聞紙의 偉力은 强大正當한 支配가 必要,「해일삼」卿//文化的 舊邦 배울 것이 만하「쫀넬슨」氏//朝鮮을 代表 極東文化 啓發,「치챠엡」氏//讀者의 信任 十年間의 功績 魚丕信//固有의 文化護持 又는 啓發 崔麟氏 |
|
46 |
동아일보 |
1930-04-09 |
무 |
02 |
06 |
天道敎靑盟이 自治反對決議 결의운운에 대하야 崔麟氏는 絶對로 否認 |
|
47 |
동아일보 |
1930-10-23 |
무 |
02 |
01 |
派爭에서 合同으로, 天道敎의 新舊兩派, 世稱沙里院派도 合同될듯, 交涉委員의 往來頻頻//兩派幹部의 感想 實現은 時間問題 合同을 確信 崔麟氏談//「오히려晩時의 嘆」誠實한 態度로, 李鍾麟氏談 |
|
48 |
동아일보 |
1930-12-19 |
무 |
02 |
06 |
天道敎幹部更迭 大領은 鄭廣朝氏, 合同問題압두고 大變革 權東鎭 崔麟兩氏는 顧問으로 |
|
49 |
동아일보 |
1930-12-21 |
무 |
02 |
09 |
≪取消申請記事≫天道敎幹部更迭 大領은 鄭廣朝氏, 合同問題압두고 大變革 權東鎭 崔麟兩氏는 顧問으로 |
|
50 |
동아일보 |
1930-12-25 |
무 |
03 |
09 |
貧民同胞救濟, 安東縣 崔麟柱氏가 |
|
51 |
동아일보 |
1931-01-16 |
무 |
03 |
08 |
百七十戶에 白米一斗式, 安東 崔麟柱氏 厚意 |
|
52 |
동아일보 |
1931-09-20 |
무 |
03 |
12 |
金浦支局; 崔麟植 韓萬憶 任記者 記者 金鳳基 文善澤 依願解職 |
|
53 |
동아일보 |
1933-01-01 |
부록 |
01 |
08 |
新春을 맞는 우리의 抱負와 希望 ; 崔麟 : 協助精神과 實際的運動[肖]//梁柱三 : 犧牲精神과 實踐的氣魄[肖]//韓龍雲 : 正明한 認識[肖] |
|
54 |
동아일보 |
1934-01-01 |
부록 |
01 |
08 |
新年에 보내는 우리의 새 信號 其一. 中道로 躍進, 中央基靑會長 尹致昊//過去를 淸算, 天道敎大領 崔麟//自主와 自學, 天道敎大宗司長 權東鎭//緊張과 忠實, 延禧專門學監 兪億兼//圓智方品行, 佛敎專門校長 朴漢永 |
|
55 |
동아일보 |
1934-04-09 |
석간 |
02 |
09 |
天道敎記念講談會 講師氏名 : 崔麟 鄭廣朝 李敦化 李根培 |
|
56 |
동아일보 |
1934-04-16 |
석간 |
02 |
05 |
天道敎 大道正 崔麟氏 參議說, 중추원 참의 후보로 내정 |
|
57 |
동아일보 |
1934-04-18 |
석간 |
01 |
08 |
崔麟(勅任官待遇) 朝鮮總督府中樞院參議被仰付 |
|
58 |
동아일보 |
1934-07-27 |
조간 |
02 |
06 |
桂洞崔麟宅 後園地下에서 彈丸五百發 發見 拳銃長銃彈藥과 革帶等, 鍾路署 血眼活動 |
|
59 |
동아일보 |
1934-08-03 |
조간 |
02 |
09 |
崔麟政護送도 中止 連累檢擧再着手 蓮建洞서 老人一名 檢擧取調 舊露皇室 寶物詐欺事件擴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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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
동아일보 |
1934-08-03 |
석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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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島의 七億圓祕寶 싸고도는 世界的獵奇 警視廳刑事隊出張 主役崔麟政 逮捕 蓋平에서 京城護送 東署에 留置 國際的詐欺 朝鮮에 飛火//산사람 喪廳 黃金劇의 클라이막 중국어 능통한 것을 기화로 縣長의 丈人의 行勢//卅萬圓 먹은 崔麟政 被殺假裝코 潛跡, 舊韓國時代露公使通譯 미끼로 寶物採取運動金橫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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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
동아일보 |
1934-08-05 |
석간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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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金等六萬圓 崔麟政押送, 로서아 「로마놉흐」皇室 「寶物」事件 舞臺移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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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1934-08-11 |
조간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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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際詐欺의 關聯者 皮熙承 崔麟政等昨夜押送 「露皇室寶物事件」 後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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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동아일보 |
1934-09-20 |
조간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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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流畫家 羅蕙錫氏 崔麟氏相對提訴 妻權 侵害에 依한 慰藉料萬二千圓 請求, 十九日午後正式手續[肖]//訴狀에 나타난 請求理由의 全文//貞操蹂躝關係는 內容證明으로, 不應하기에 畢竟訴訟提起 辯護士蘇完奎氏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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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1937-10-02 |
석간 |
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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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志家의 寄附로 新明學院에 曙光, 定州 兩崔氏巨金 喜捨, 崔麟瑞, 崔弘瑞씨가(雲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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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1938-05-03 |
석간 |
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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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麟(朝鮮總督府 中樞院參議) 依願總督府中樞院參議被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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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1946-10-10 |
석간 |
01 |
03 |
親日·反逆者들이 擡頭 崔麟, 李光洙, 金大羽, 朱耀翰, 朱耀燮, 桂光淳等이 謀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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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1947-08-19 |
석간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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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中樞院參議 崔麟 留置場에서 斷食 天道敎 靑友黨事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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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1949-03-24 |
석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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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民者 一回公判 三十日 崔麟等에 實施//楊秉一等自首(全州)//金大亨等 서울로 押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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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
동아일보 |
1949-03-30 |
석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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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反民裁判 ; 經濟上의 親日이오 朴興植 政治活動을 否認[寫]//崔麟等은 今日//前高等刑事 李俊聖被逮//愛國志士들에 弑虐 拷問王金泰錫罪相을 陰蔽//눈병을 핑게로 金泰勳保釋申請(仁川)//親日牧師 金仁善逮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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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1949-04-01 |
석간 |
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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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民裁判 民族運動에 큰 汚點 崔麟變節의 動機를 說明//金泰勳 서울 送致(仁川)//朴正純等四名 서울 本部에 送致(大邱)//鄭僑源을 收監 楊載弘刑事는 起訴//李豐漢은 保釋//金秊洙에 拘束取消處分//朴鍾杓, 孫永穆等 反民特檢에 送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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