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독일  1864년 - 1949년 독일 낭만파 최후의 대작곡가

 세계 명지휘자. 작곡가  빈 국립 오페라극장 제너럴매니저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普通記念(보통기념)

                           월간매신, 34. 6

 

 

市街(시가)戰火(전화)가일어나기()

亦是(역시)나는뉴우톤이 가리키는 物理學(물리학)에는 퍽無智(무지)하였다.

나는 거리를 걸었고

店頭(점두)苹果山(평과산)을 보며는

每日(매일)같이 物理學(물리학)落第(낙제)하는 腦髓(뇌수)

피가 묻은 것처럼 자그만하다.

 

계집을 信用(신용)치 않는 나를

계집은 絶對(절대)信用(신용)하려들지 않는다

나의 말이 계집에게 落體運動(낙체운동)으로 影響(영향)되는 일이 없었다.

계집은 늘 내말을 눈으로 들었다.

내말한마디가계집의눈자위에 떨어져 본 적이 없다.

期於(기어)市街(시가)에는 戰火(전화)가일어났다

나는 오래 계집을 잊었었다

내가 나를 버렸던 까닭이었다.

 

 

주제도 더러웠다 때 끼인 손톱은 길었다.

無爲(무위)日月(일월)避難所(피난소)에서

이런 일 저런 일 우라까에시(裏返(이반))裁縫(재봉)에 골몰하였느니라.

종이로 만든 푸른 솔닢 가지에 또한 종이로 만든 흰鶴胴體(학동체)한 개가 서있다

쓸쓸하다.

 

 

火爐(화로)가 햇볕같이 밝은데는 熱帶(열대)의 봄처럼 부드럽다.

 

그 한구석에서 나는地球(지구)公轉一週(공전일주)記念(기념)할 줄을 다 알았더라.

                                                                                                                    월간매신, 3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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