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산 수덕사 경내에 있는 푯말
수덕사 일주문에서 약 400~500m 정도 가면 길옆에 이런 푯말이 보이는데 곧 바로 가면 대웅전과 여
승방인 견성암이 나오고 왼쪽 샛길로 접어들면 일엽스님이 삭발하고 수도 했다는 환희대(歡喜臺)가
나온다
환희대(歡喜臺) 와 마주보고 있는 원통보전(圓通寶殿)
원통보전은 건축한지 얼마되지 않는 수덕사 부속건물인데 현세의 부처님인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전
각이다. 앞에 검은 돌에는 '환희대'라고 새겨져 있고 바로 그 앞으로는 일엽스님이 삭발 수도 했다는
환희대가 자리잡고 있다
환희대와 마주보고 있는 원통보전
원통보전앞에서 바라 본 환희대
견성암에서 환희대로 내려왔을때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비가 다시 갑작스레 퍼붓기 시작했다. 저
앞에 원두막처럼 생긴 정자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들어갈수 있는곳인데 마음을 비우
는 장소이다
일엽스님이 출가당시 머리를 깍았다는 견성암 - 환희대(歡喜臺)
일엽스님은 1928년 33세 되던해에 불가에 들어 1933년 38세 되던 해에 만공스님을 만나 저곳에서 삭
발하고 수도 생활을 했었다고 전해진다
1928년 33세에 출가를 했다고는 하나 수덕사 견성암에서 본격적인 수도생활을 하기 시작한것은
1933년인 38세때의 일이었던것으로 보인다
요즘의 38세라고 하면 새로운 출발을 해도 될 나이겠지만 70년전 당시의 38세라면 할머니란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는 나이다. 여튼 당시의 상황에선 일엽스님의 출가는 아주 늦은 시기 였었다
일엽스님이 처음 입산했을 당시가 33세라면 만공스님의 세수는 58세였고
삭발했던 해가 38세 였다면 당시 만공스님의 세수는 63세가 되었을 것이다
일엽스님과 나혜석 이야기가 담겨 있는 에세이집 - 1980년 문학창조사 초판 발행본
김팔봉(김말봉?)이 본 일엽스님 이야기 - 1980년 문학창조사 초판 발행본
1980년 문학 창조사 초판 발행본에 소개된 김팔봉(김말봉?)씨 약력
한국 최초의 여성 장로(長老). 소설가. 1901년 음력 4월3일 부산 출생. 부산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박순천 여사와 동창) 서울 정신여학교 졸업. 황해도 명신학교 교사로 재직후 일본에 유학하여 1927년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과 졸. 이때 시인 정지용과 함께 수학. 1929년 중앙일보 기자. 1933년에 중앙일
보(구) 신춘문예 단편 망명녀(亡命女)가 당선 문단 데뷔....이하 생략
1962년 초판 발행본, 김일엽 스님의 '청춘을 불사르고'
이 책은 당시 김일엽의 대표적 저서이자 그 당시 베스트 셀러였던 초판 발행 원본이다
이 책은 내가 아는 어느 집의 이삿일을 도와 주고서 창고에서 굴러 다니는것을 가져온것인데
사진에서 보듯이 이 책은 문선각에서 발행을 했고 이중 케이스로 되어 있다
김일엽 스님 출가 당시 수덕사 대웅전에서 찍은 사진
이 사진도 1962년도에 발행된 '청춘은 불사르고'의 책자에서 디카로 찍은 사진이다
신여성 일엽은 당시 사회적 국민윤리에 도발하는 대담한 글과 처신으로
세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숱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 당시 일엽은 구 시대의 낡은 관습에서 억압받고 주눅들었던 여성들을 대변하여
투철한 자기정신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사람이다
그런 치열한 정신으로 구시대의 낡은 관습의 벽을 허물고자 안간힘을 다 하였으나
여자라는 인간적인 한계와 당시의 완고했던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고뇌할수 밖에 없었다
활화산처럼 활활 뜨겁게 타오르던 정열이 다 소진되어 허탈해 하고 있을때
수덕사의 만공선사라고 하는 선지식을 만나게 되었고 만공선사로부터
영원히 꺼지지 않고 사는 큰 가르침을 얻게 되어 불가에 입문하게 된다
일엽스님이 출가당시 머리를 깍았다는 견성암 - 환희대(歡喜臺)
한국 최초의 비구니 선방인 견성암(見性庵)이 누가, 언제, 무엇때문에 환희대(歡喜臺)로 슬그머니 이
름을 바꾸었는지 그 내력은 알 수는 없지만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연애끝에 훗날 자신이 쓴 인생
회고록처럼 청춘을 불사르다 간 곳이었으니 어쩌면 환희대란 이름이 더 어울렸었을른지도 모르는
일이다
환희대(歡嬉臺)에서 바라본 원통보전(圓通寶殿)과 마음 비우는 원두막
환희대 옆의 해우소
수덕사 견성암
견성암은 1900년대 초 만공스님 당시 덕숭산 중턱의 정혜사 오른편 작은 산채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그 초가집이 비구니 선방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주로 비구니들의 수행처가 되었다는데 김일엽스님도 그곳에서 수도를 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니까 수덕사 산내의 견성암(見性庵)이 창건될 당시에는 초가집에서부터 시작해 함석집, 기와집
으로 증, 개축을 거듭해 오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같이 지하 1층, 지상 2층
의 석조건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1900년대 초 만공스님 당시 창건한 이래 6십 몇년만의 일이다
한데 저기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부속건물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다
출처 : 비단장수 왕서방 이야기
글쓴이 : 나먹통아님 원글보기
메모 : 수덕사 견성암(환희대) 일엽스님 그는 누구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