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시기 幻視記
환시기 幻視記 : 못 볼 것을 본 기록이라는 뜻이다.
정인택 권순옥과 삼각관계의 통속 연애소설 이야기 속에 이상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는 이글의 마지막부분을 의미심장하게 읽어야한다.
이상의 빙의가 들은 것일까? -꼿신장사 -
E lucevan le stelle 별은 빛나고 / 풋치니 오페라 La Tosca 3막에 나오는 아리아.
총살당하는 날 새벽에 잠시 하늘을 보면서 자기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노래
환시기 幻視記
출전: -이상 사후- 1938년 6월 1일 -청색지-
"서시"
태고 적에 좌우를 난리법석 치는 멍청한 놈 있더니 太昔에 左右를 難辨하는 天痴 있더니
그 불길한 자손이 백 세대를 이어오면서 그 不吉한 子孫이 百代를 겪으매
이에 가지가지 문둥병자를 낳았더라. 이에 가지가지 天刑病者를 낳았더라
암만 봐도 여편네 얼굴이 왼쪽으로 좀 삐뚤어진 것 같단 말야.! 싯?
결혼한 지 한 달쯤 해서.
처녀가 아닌 대신에 고리끼 전집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독파했다는 처녀
이상의 보배가 宋송군을 권하게 하였고 지금 송군의 은근한 자랑거리리라.
결혼하였으니 자연 송군의 書架서가와 부인 순영 씨의 서가가 합병할밖에―
(이 순영이라는 이름짜 밑에다 氏씨짜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 내 가엾은 처지가
말하자면 이 소설을 쓰는 동기지)
합병을 하고 보니
송군의 최근에 받은 고리끼 전집과 순영 씨의 고색창연한 고리끼 전집이 어울렸다.
결혼한 지 한 달쯤 해서 송군은 드디어 자기가 받은 신판 고리끼 전집 한 질을 내다 팔았다.
반만 먹세―
반은?
반은 여편네 갖다 주어야지―지난 달에 그 지경을 해 놓아서 이달엔 아주 죽을 지경일세―
난 또 마누라 화장품이나 사다 주는 줄 알았네 그려―
화장품?
암만 봐도 여편네 얼굴이라는 게 왼쪽으로 <약간> 삐뚤어졌다는 감이 없지 않단 말야―
자네 사년 동안이나 쫓아 댕겼다니 삐뚤어진 걸 알고도 그랬나?
끝끝내 모르고 그만두었나?
좋은 하늘에 별까지 똑똑히 잘 백인 밤이 사 년 전 첫여름 어느 날이었던지?
방송국 넘어가는 길 성벽에 가 기대선 순영의 얼굴은 월광 속에 있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모시저고리 성긴 구멍으로 순영의 小麥밀가루 빛 호흡이 드나드는 것을 나는 내 가장 인색한 원근법에 의하여서도 썩 가쁘게 느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민첩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순영의 입술을 건드리나―
나는 약 삼 분 가량의 지도를 설계하였다.
우선 나는 순영의 정면으로 다가서 보는 수밖에―
그 때 나는 참 이상한 것을 느꼈다.
월광 속에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순영의 얼굴이 웬일인지 왼쪽으로 좀 삐뚤어져 보이는 것이다.
나는 큰 범죄나 한 사람처럼 냉큼 바른편으로 비켜섰다.
나의 그런 불손한 시각을 정정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위치의 不利불리로 말미암아서도 나는 순영의 입술을 건드리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실로 사 년 전 첫여름 어느 별빛 좋은 밤).
경관이 무엇 하러 왔는지 왔다.
나는 삼천포읍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순영은 회령읍에 사는 사람이라고 그런다.
내 그 인색한 원근법이 일사천리 지세로 남북 이천 오백리 라는 거리를 급조하여 나와 순영 사이에다 퍼 놓는다.
순영의 얼굴에서 순간 월광이 사라졌다.
아내(금홍이)가 삼천포에서 편지를 했다.
곧 돌아가게 될는지 좀 지체가 될는지 지금 같아서는 도무지 짐작이 서지 않는단다.
내 승낙 없이 한 아내의 외출이다.
고물장사를 불러다가 아내가 벗어놓고 간 버선짝 까지도 모조리 팔아먹으려다가―
아내가 삽중의 다섯은 돌아올 것 같았고 십중의 다섯은 안 돌아올 것 같았고 해서 사실 또 가랬댔자 갈 데가 있는 배 아니고
예라!
자빠져서 어디 오나 안 오나 기다려 보자꾸나―싶어서 나는 저녁이면 윤군을 이용해서는 순영이 있는 바bar 모로코에를 부리나케 드나들었다.
아내가 달아났다는 궁상이 술 먹는 남자에게는 술 먹기 좋은 구실이다.
십중 다섯은 아내가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눈치를 눈곱만치라도 거죽에 나타내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조금도 슬프지 않은 슬픔을 재주껏 과장해서 순영의 동정심을 끌기에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던적스러운 청승이 결국 순영을 어찌할 수도 없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순영은 광주로 갔다.
가던 날 순영은 내게 술을 먹였다.
나는 그의 치맛자락을 잡아 찢고 싶었다.
나는 울었다.
인생은 허무이외다. 그러면서―그랬더니
순영은 이것은 아마 술이 부족해서 그러나 보다고 여기고 맥주 한 병을 더 청하는 것이었다.
반 년 동안 나는 순영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에 십중 다섯으로 아내(금홍이)가 돌아왔다.
나는 이 아내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지 않는 아내를 나는 전의 열 곱절이나 사랑할 수 있었다.
내 순영에게 향하여 잔뜩 곪은 애정이 이에 순영이 돌아오기 전에 터져 버린 것이다.
아내는 이런 나를 넘보기 시작했다.
반 년 만에 돌아온 순영이 돌아서서 침을 탁 뱉는다.
반 년 동안 외출했던 아내를 말 한 마디 없이 도로 맞는 내 얼굴 위에다―
부질없는 세월이 사 년 흘렀다.
아내의 두 번째 외출은 십중 다섯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내 고독을 일금 일 원 사십 전과 바꾸었다.
인쇄 공장 우중충한 속에서 환자처럼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똑같은 생활을 찍어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순영이 그의 일터를 옮기는 대로 어디까지든지 쫓아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일금 일 원 사십 전에 팔아 버린 내 생활에 그래도 얼마간 기꺼운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직 순영 앞에서 술잔을 주무르는 동안뿐이었다.
그러나 한 번 돌아선 순영의 마음은―아니 한 번도 나를 향하지 않은 순영의 마음은 남북 이천 오백리와 같이 차디찬 거리 저편의 것이었다.
그 차디찬 거리 이편에는 늘 나와 나처럼 고독한 송군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이미 순영 앞에서 내 고독을 호소할 수조차 없어졌다.
나는 송군의 고독을 빌어다가 순영 앞에서 울었다.
송군의 양심이 증발해 버린 뒤의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몹시 고민한다.
얼굴이 종이처럼 창백하다.
나는 이런 송(宋)군의 불행을 이용하여 내 슬픔을 입증시켜 보느라고 실로 천만 어의 단어를 허비했다.
순영의 얼굴에는 봄다운 홍조가 돌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틈엔지 나 자신의 위치를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필사의 노력으로 겨우 내 위치를 다시 탈환했을 때에는 이미,
송선생님이세요?
이상(李箱) 씨하구 같이 (이것은 과연 객쩍은 덧붙이게였다)
오늘 밤에 좀 놀러 오세요―네?
이런 전화가 끝난 뒤였다.
송군은 상반기 상여금을 받았노라고 한잔 먹잔다.
먹었다.
취했다.
몽롱한 가운데 나는 이 땅을 떠나리라 생각했다.
멀리 동경으로 가 버리리라,
갈 테야 갈 테야 가 버릴 테야(동경으로).
아이 더 놀다 가세요. 벌써 가시면 주무시나요? 네? 송선생님―
송선생님은 점(을 쳐보나보다.
卦괘는 이상(李箱)에게 <고기>를 대접하라 이렇게 나온 모양이다.
그래서 송군은 나보다도 먼저 일어섰다.
자동차를 타자는 것이다.
나는 한사코 말렸다.
그의 재정을 생각해서도 나는 그를 그의 하숙까지 데려다 주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숙 이층 그의 방에서 그는 몹시 게웠다.
말간 맥주만이 올라왔다.
나는 송군을 청결하기 위하여 한 시간을 진땀을 흘렸다.
그를 눕히고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유월의 밤바람이 아카시아의 향기를 가지고 내 피곤한 피부를 간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멕시코에서 코오피를 마시면서 토하면서 울고 울다가 잠이 든 송군을 생각했다.
순영에게 전화나 걸어 볼까?
순영이?
나 상(李箱)이야
―송군 집에 잘 갖다 두었으니 안심할 일―
오늘은 어쩐지 그냥 울적해서 견딜 수가 없단다.
집으로 가 일찍 잠이나 자리라 했는데 멕시코에―
와두 좋지―할 예기도 좀 있고―
조용히 마주보는 순영의 얼굴에는 사 년 동안에 확실히 피로의 자취가 늘어 보였다.
직업에 대한 극도의 염증을 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호소한다.
나는 정색하고,
송군과 결혼하지 응?
그야말로 송군은 지금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오.
―송군이 가진 양심 그와 배치되는 현실의 박해로 말미암은 갈등 자살하고 싶은 고민을 누가 알아주나―
송선생님이 불현듯이 만나 뵙고 싶군요.
십 분 후 나와 순영이 송군 방 미닫이를 열었을 때 자살하고 싶은 송군의 고민은 사실화하여 우리들 눈앞에 놓여 있었다.
아로나르Allonal(수면유도제) 서른여섯 개의 약 껍질 곁에
이상의 주소와 순영의 주소가 적힌 종이조각이 한 자루 칼보다도 더 냉담한 촉각을 내쏘면서 무엇을 재촉하는 듯이 놓여 있었다.
나는 밤 깊은 거리를 무릎이 척척 접히도록 쏘다녀 보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은 병원을 가진 의사에게 있어서 마작의 패 한 조각 한 컵의 맥주보다도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한 시간 만에 나는 그냥 돌아왔다.
순영은 쩡 쩡 천장이 울리도록 코를 풀며 인사불성이 된 송군 위에 엎드려 입술이 파르스레하다.
Allonal 'Roche' and 'Phytine Ciba', c. 1935년
어쨌든 나는 코고는 <사체>를 업어내려 자동차에 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의전병원으로 달렸다.
한 마리의 세퍼드와 두 사람의 간호부와 한 분의 의사가 세 사람(?)의 환자를 맞아 주었다.
독약은 위에서 아직 얼마밖에 흡수되지 않았다.
생명에는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나
한 시간에 한 번씩 강심제 주사를 맞아야겠고
또 이 밤중에 별달리 어찌할 도리도 없고 해서 입원했다.
시계를 들고 송군의 어지러운 손목을 잡아 맥박을 계산하면서 한 밤을 새라는 의사의 명령이었다.
맥박은 <백삼십>을 드나들면서 곤두박질을 친다.
순영은 자기도 밤을 새우겠다는 것을 나는 굳이 보냈다.
가서 자구 아침에 일찍 와요.
그래야 아침에 내가 좀 자지 둘이 다 지쳐 버리면 큰일 아냐?
동이 훤히 터 왔다.
복도로 유령 같은 입원 환자의 발자취 소리가 잦아 간다.
수도는 쏴―기침은 쿨룩쿨룩―어린애는 으아―
거기는 완연 석탄산수 냄새 나는 활지옥에 틀림없었다.
맥박은 <백>을 조금 넘나보다.
병원 문이 열리면서 순영은 왔다.
조그만 보따리 속에는 송군을 위한 깨끗한 내의 한 벌이 들어 있었다.
나는 소태같이 써 들어오는 입을 수도에 가서 양치질했다.
내가 밥을 먹고 와도 송군은 역시 깨지 않은 채다.
오전 중에 송군 회사에 전화를 걸고
입원 수속도 끝내고 내가 있는 공장에도 전화를 걸고 하느라고 나는 병실에 없었다.
오후 두 시쯤 해서야 겨우 병실로 돌아와 보니 두 사람은 손을 맞붙들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당장 눈에서 불이 번쩍 나면서,
망신―아니
나는 대체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냐
순간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얼마든지 나 자신에 매질하고 싶었고
침뱉으며 조소하여 주고 싶었다.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자네는 미친 놈인가?
그럼 천친가?
그럼 극악무도한
사기한인가?
부처님 허리 토막인가?
이렇게 부르짖는 외에 나는 맵시를 수습하는 도리가 없지 않은가.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았다.
지난밤에 풀린 아랫도리가 덜덜 떨려 들어왔다.
태산이 무너지는 줄만 알고 나는 십년감수를 하다시피 했네―
그래 이 병실 어느 구석에 쥐 한 마리나 있단 말인가 없단 말인가?
순영은 창백한 얼굴을 푹 숙이고 있다.
송군은 우는 것도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미안하이―
나는 이 이상 더 방 안에 머무를 의무도 필요도 없어진 것을 느꼈다.
병실 뒤 종친부(종로구 화동 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청)으로 통하는 곳에 무성한 화단이 있다.
슬리퍼를 이끈 채 나는 그 화단 있는 곳으로 나갔다.
이름 모를 가지가지 서양 화초가 유월 볕 아래 피어 어울어졌다.
하나같이 향기 없는 색채만의 꽃들―그러나
그 남국적인 정열이 애타게 목말라서 벌들과 몇 사람의 환자가 화단 속을 초조히 거니는 것이었다.
어째서 나는 하는 족족 이따위 못난 짓밖에 못 하나―
그렇지만 이 허리가 부러질 희극도 인제 아마 어떻게 종막이 되 왔나보다.
잔디 위에 앉아서 볕을 쬐었다.
피로가 일시에 쏟아지는 것 같다.
눈이 스르르 저절로 감기면서 사지가 노곤해 들어온다.
다리를 쭉 뻗고,
이번에야말로 동경으로 가 버리리라―
잔디 위에는 곳곳이 가제와 붕대 끄트럭이가 널려 있었다.
순간 먹은 것을 당장에라도 게우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극도의 오예(汚穢)감이 오관을 스쳤다.
동시에 그 불붙는 듯 한 열대성 식물들의 풍염한 화변조차가 무서운 독을 품은 요화로 변해 보였다.
건드리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손가락이 썩어 문드러져서 뭉청뭉청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마누라 얼굴이 왼쪽으로 삐뚤어져 보이거든 슬쩍 바른쪽으로 한 번 비켜서 보게나―
흥―
자네 마누라가 회령서 났다는 건 정말이던가―
요샌 또 블라디보스톡에서 났다고 그리데―
내 무슨 수작인지 모르지―
그래 난 동경서 났다고 그랬지―
좀 더 멀찌감치 해 둘 걸 그랬나봐―
블라디보스톡하고 동경이면 남북이 일 만리로구나 굉장한 거리다.
자꾸 삐뚤어졌다고 그랬더니 요샌 곧 화를 내데―
아까 바른쪽으로 비켜서란 소리는 괜한 소리고
비켜서기 전에 자네 시각을 정정( 그 때문에 다른 물건이 모두 바른쪽으로 삐뚤어져 보이더라도
사랑하는 아내 얼굴이 똑바로만 보인다면 시각의 직능은 그만 아닌가―
그러면 자연 그 블라디보스톡 동경 사이 남북 만리 거리도 배제처럼 바싹 맞다가서고 말 테니.
(2월 13일 미명)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나의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산산조각 나고 말았네.
순간은 흘러갔고.
나는 허망하게 죽는다!
허망하게 죽는다!
그리고 나는 나의 짧은 생애를 이렇게 사랑한 적이 없노라!
짧은 생애여! - E lucevan le stelle 가사 중에서 -
패병환자 이상 2월 동경의 경찰서 차거운 구치소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더니
27세의 나이로 조선의 악의 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
罪를 내어버리고 싶다.
罪를 내어던지고 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