終生記   종생기

                                                                                               - 이상 - 

 

                                                                                                                  검정색 글씨는 본인의 註

 

극유산호(郤遺珊瑚)ㅡ요 다섯 자를 쓰는 동안에 나는 두자 이상의 잘못된 글자를 쓰는 실수를 범한 것 같다.

이것은 나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일이겠으나

사람의 슬기나 지혜가 발달해가는 그 됨됨이가 실로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남이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산호 채찍일랑 꽉 쥐고 죽으리라.

네 찢어진 도포에 찌그러진 갓 위에 볼품없이 사그라지는 해골 위에 봉황이 와서 앉으리라.

 

나는 내 마지막 삶의 기록이 하늘아래 깨우친 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놓기를 애틋이 바라는 일념 아래

이렇게 내용을 축약하여 내 맵시의 절약법을 모조리 털어내어 보인다.

 

 

 

 

 

한 발의 포탄 소리에 부득이 영웅이 되고 말은 군인

누군가 아흔에 귀를 단 94세나 장수를 해서 황송한 일생을 끝막던 날 이렇다는 유언 한 마디를 지껄이지 않고

그 임종의 장면을 (무사히 후-- 한숨이 나올 만큼)곧잘 넘겼다.

 

한 발의 포탄 소리에 부득이 영웅이 되고 말은 군인 (이순신 유언: 나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Lucius Annaeus Seneca 세네카
      1세기 중엽 로마 네로황제의 스승 로마의 실질적 통치자 연설가 철학자

      65년에 적들로부터 고발당하여 자살을 명령받았다. 

      94세나 장수한 웅변가도 특별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음

 

그런데 우리들의 레우오치카(Leo Cheka 교황비밀경찰ㅡ애칭)톨스토이는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나서서

“전쟁과 평화”라는 책속에서 한 방의 총소리로 유명세를 탔다. 거기까지는 기껏 그럴 성싶게 꾸며왔는데

말년에 마지막 5분에 가서 그만 인생 잡쳤다.

자질구레한 유언 나부랭이로 말미암아 칠십년 공든 탑을 무너뜨렸고 허울 좋은 일생에 가실 수 없는 흠집을 하나 내어 놓고 말았다.

李箱선생 왈 톨스토이 별명이 Leo-Cheka 교황비밀경찰이란다.

고놈의 명예 돈 욕심 때문에 자식과 아내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고 사회를 위한다는 깜냥으로 내핍생활을 하며 톨스토이主義敎를 창설해 친히 교황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러시아 정교회에 속하지 않은 4,000명에 달하는 이교도들을 미국에 이주시키기 위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부활'을 발표하였다는데, 그것 이야말로 미국에 스파이를 보내려는 작전이었나 보다. 별명이 Leo-Cheka 교황비밀경찰이라고 한 것을 보면.... Cheka는 훗날 KGB가 된다.

 

세네카 그는 인간은 자연사로 죽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톨스토이를 보니 정말 그렇다.

늙어 공명심은 나를 죽인다. 李箱 철학의 요지이다.

 

나는 일개의 교활한 참관인 자격으로 그런 우매한 성인들의 생애를 방청하여 있으니 내가 그런 따위 실수를 알고도 재범할 리가 없는 것이다.  

거울을 향하여 면도질을 한다. 잘못해서 나는 생채기를 냈다. 나는 골을 벌컥 냈다.

그러나 와글와글 들끓는 여러「나」와 나는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각기 최선을 다하여 제 자신만을 변호하는 때문에

나는 좀처럼 범인을 찾아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체로 어리석은 민중들은「원숭이가 사람 흉내를 내이네」하고 마음을 놓고 지내는 모양이지만

사실 사람이 원숭이 흉내를 내이고 지내는 바 진짜 지당한 옛 선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오호라! 일거수일투족이 이미 아담 이브의 그런 충동적 습관에서는 벗어난 지 오래다.

반사운동과 반사운동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잠시 실로 전광석화만큼 손가락이 자의식의 포로가 되었을 때

나는 모처럼 내 허무한 세월 가운데 무심하게 버려있는 요상한 바위 같은 네 콧잔등을 좀 만지작만지작했다거나,

고귀한 대화와 대화 늘어선 쇠사슬 사이에도 확실히 순간적 타이밍을 허용하는 들창이 있나니

그 서슬 퍼런 칼날이 자의식을 걷잡을 사이도 없이 살을 베는 순간

나는 내 거울같이 맑아야할 지극히 보배인 두 눈에 혹시 눈곱이 끼지나 않았나 하는 듯이

적절하게 주름살 잡힌 손수건을 꺼내어서는 그 두 눈의 만지작만지작 했다거나

ㅡ 내 혼백과 두루 뭉실 점잖은 태만성이 그런 사소한 불똥 같은 것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보고 와서)

 내 총괄되는 처소 뇌세포에 일러바쳐야만 하는 그런 아주 급한 행동을 나는 이루 감당해 낼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내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산호편을 자랑하고 싶다.

 

「쓰레기」「우거지」

이 구질구질한 단어의 분위기를 여러분은 충분히 이해하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이 기독교 감리교식으로 결혼하던 날 교회 식장 통로(웨딩로드nave and aisle)에서

이「쓰레기」「우거지」에 비슷한 감흥을 맛보았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과연 그렇지는 않으십니까.

 

 

나는 그런「쓰레기」나「우거지」같은 오색종이 테이프를 (내 종생기 곳곳에다 가엽게 심어 놓은 자잘한 순서를 따라 진행하기 위하여)

뿌려 보려는 것인데ㅡ 다행히 짝이 맞는다.   以上이상

 

「치사한 소녀는」

「해동기의 시냇가에 서서」

「입술이 꽃이 지듯 좀 파래지면서」

「살얼음 밑으로는 무엇이 저리도 움직이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이 숙이고 있는데」

「봄 운기를 품은 훈풍이 불어와서」

「스커어트」아니 아니,

「너무나」아니, 아니,

「좀」

「슬퍼 보이는 붉은 털을 건드리면」그만. 더 이상 진한 말은 안 된다.

 

나는 한 마디 가련한 어휘를 첨가할 성의를 보이자.

 

「나붓 나붓」

이만하면 완비된 장치에 틀림없으리라. 나는 내 종생기의 첫 장을 꾸밀 그 소문 높은 珊瑚鞭산호편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실체적인 것으로 나로서는 너무나 과감히 치사스럽고 어마어마한 세간살이를 장만한 것이다.

 

그런데ㅡ 혹 지나치지나 않았나?

천하에 똑 소리 나는 관찰력이 없지 않으니까.!

너무 금색 칠을 아니 했다가는 섣불리 들킬 염려가 있다. 그러나ㅡ 그냥, 어디! 이대로 사용해보기로 하자.

 

 

 

 

 

나는 지금 가을바람이 자못 퉁소 소리로 감아드는 내 구중중한 방에 홀로 누워 終生종생하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의 충고에 의하면 나는 추호의 틀림도 없는 만 25세와 11개월「紅顔美少年홍안미소년」이라는 것이다.

 

 

그렇건만 나는 확실히 늙은이다.

 

그날 하루하루가「인생은 짧고 예술은 기다랗다」하는 엄청난 평생이다.

 

나는 날마다 목숨이 끊어졌다.

나는 자던 잠(이 잠이야말로 언제 시작한 잠이더냐.)을 깨이면 내 뼈에 사무치는 생애가 시작되는데 청춘이 여지없이 탕진되는 것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웠지만 역력히 보인다.

 

나는 늙어옴에 가난한 식사를 한다.

12시간 이내에 終生종생을 맞이하고 그리고 할 수 없이 이리 궁리 저리 궁리 유언다운 글이 어디 유실되어 있지 않나 하고 찾고,

찾아서는 그중에 의젓한 놈으로 몇 추린다.

 

그러나 고독한 만년 가운데 한 구절의 짧은 풍자시도 얻지 못하고 그대로 처참히 나는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일생의 하루ㅡ

하루의 일생은 대체(우선) 이렇게 해서 끝나고. 끝나고 하는 것이었다.

자ㅡ보아라.

이런 내 분장은 좀 과하게 치사스럽다는 느낌은 없을까? 없지 않다.

 

그러나 위풍당당하게 일세를 풍미할 만한 새롭고 정갈한 맛이 비교가 안 되는

햄릿Hamlet (妄言多謝잘난체 해서 죄송)을 하나 출세시키기 위해서는 이만한 출자는 아끼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없지 않다.

 

나는 가을이고. 소녀는 봄 해동기

어느 때나 이 두 사람이 만나서 즐거운 소꿉장난을 한 번 해보리까.

 

나는 그해 봄에도ㅡ 부질없는 세상이 스스러워서 눈서리 같은 위엄을 갖춘 몸으로

싸늘한 심정에 불쌍한 나날을 맞고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美文 美文 曖牙애하! 美文

(美文아름다운 글. 美文멋진 문양. 曖牙스케치해 놓은 美文멋진 문양)

 

미문이라는 것은 지극히 조처하기 위험한 수작이니라.

(美文멋진 문양이라는 것은 지극히 관리하기 위험한 손의 작업이다.)

 

나는 내 感傷아픈 마음의 꿀방구리 단지 속에 청산 가던 나비처럼 痲醉昏死 꿀에 너무 취해

혼절하기 자칫 쉬운 것이다. 조심조심 나는 내 맵시를 고쳐야 할 것을 안다.

 

나는 그날 아침에 무슨 생각에서 그랬던지 이를 닦으면서 내 작성 중에 있는 유서 때문에 끙끙 앓았다.

열 세 벌의 유서가 거의 완성해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을 집어 내 보아도 다 같이 서른여섯 살에 자살한 천재 빈센 반 고흐가 머리맡에 놓고 간 蓋世,逸品(세상에 떨칠만한 뛰어난 작품)의 흉내 내기에서도 한 발짝도 나서지 못했다.

 

 

 

( Vincent van Gogh 1853.3.30 ~ 1890.7.29)

 

내게 요만 재주 밖에는 없느냐는 것이 다시 없이 분하고 억울한 사정이었고 또 초조한 마음의 근원이었다.

미간을 찌푸리되 가장 고매한 얼굴은 지속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리고 계속하여 끙끙 앓고 있노라니까.

(나는 일시일각을 허송하지는 않는다. 나는 없는 지혜를 끊이지 않고 쥐어짠다.)

 

속달편지가 왔다.

소녀에게 서다.

 

선생님! 어젯저녁 꿈에도 저는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꿈 가운데 선생님은 참 다정하십니다. 저를 어린애처럼 귀여워해 주십니다.

그러나 白日밝은 햇살아래 정처없이 떠도는 선생님은 저를 부르시지 않습니다.

 

비굴하다 라는 것이 무슨 빛으로 되어 있나 보시려거든 선생님은 거울을 한 번 보아 보십시오.

거기 비치는 선생님의 얼굴빛이 바로 비굴이라는 것의 빛입니다.

 

헤어진 부인과 삼년을 동거하시는 동안에 너 가거라. 소리를 한 마디도 하신 일이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유일의 자만이십니다 그려!

그렇게까지 선생님은 인정에 苟苟구구하신가요.

 

R과도 깨끗이 헤어졌습니다. S와도 절연한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된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믿어 주시는 바지요?

다섯 달 동안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의 청절을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최후까지 더럽히지 않은 것을 선생님께 드리겠습니다.

저의 희멀건 살의 매력이 이렇게 다섯 달 동안이나 놀고 없는 것은 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이 아깝습니다.

 

저의 잔털 나스르르한 목 영한 온도가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선생(先生)님이어!

 

저를 부르십시오. 저더러 영영 오라는 말을 안 하시는 것은 그것 역시 가신적 경우와 똑같은 이론에서 나온

구구한 인생변호의 치사스러운 수법이신가요?

 

영원히 선생님「한 분」만을 사랑하지요.

어서 어서 저를 전적으로 선생님만 의 것을 만들어 주십시오.

선생님의 전용이 되게 하십시오.

 

제가 아주 어수룩한 줄 오산하고 계신 모양인데 오산치고는 좀 어림없는 큰 오산이리다.

네 딴에는 제법 든든한 줄만 믿고 있는 네 그 안전지대라는 것을 너는 아마 하나 가진 모양인데

그까짓 것쯤 내 말 한 마디에 사태가 나고 말리라,

 

이렇게 일러드리고 싶습니다. 또ㅡ 예끼! 구역질나는 인생 같으니 이러고도 싶습니다.

 

삼월삼일 날 오후 두 시에 동소문 뻐스정류장 앞으로 꼭 와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나요.

내 징벌을 안 받지 못하리다.

만19세 2개월 맞이하는 貞姬정희 올림

 

 

李箱선생님께 물론 이것은 죄다 거짓부렁이다.

 

그러나 그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用心法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법 특히

그중에도 結尾마지막 부분의 비견할 데 없는 청초함이 壯,疾風迅雷 굉장히 날쌔고 과격함을 품은 듯한 명문이다.

 

나는 까무러칠 번하면서 혀를 내어둘렀다.

나는 깜빡 속기로 한다. 속고 만다.

 

여기 이 이상선생님이라는 허수아비 같은 나는 지난밤 사이에 내 평생을 經歷경력했다.

나는 드디어 쭈굴쭈굴하게 노쇠해 버렸던 차에 아침(이 온 것)을 보고 이 키!

남들이 보는 데서는 나는 가급적 어쭙지않게 (잠을)자야 되는 것이거늘, 하고 늘 이를 닦고 그리고는 도로 얼른 자버릇 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또 그럴 세음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짐짓 기이하기도 해서 그러는지 驚天動地(하늘이 놀랄 만큼)의 육중한 경륜을 품은 사람인가보다고들 속는다.

그러니까 고렇게 하는 것이 내 시시한 자세나마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의 비결이었다.

즉 나는 남들 좀 보라고 낮에 잔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고 欣喜雀躍(참새가 날아오르듯) 좋아서,

나는 蓋世의 經綸(잘난 채 하는 것이나 체면 같은 것)과 유서를 정리하는 고민을 깨끗이 씻어버리기 위하여 바로 이발소로 갔다.

나는 여간 아닌 호걸답게 입술에다 치분을 허옇게 묻혀가지고는 그 현란한 거울 앞에 가 앉아

이제 화려하게 개막하려 드는 내 終生존생을 유유히 즐기기로 거기 해당하게 내 맵시를 수습하는 것이었다.

 

위선 그 鵲巢雷名(제비집이라는 별명)까지 까지 있는 산발한 머리를 썰어서 상고머리라는 것을 만들었다.

五角鬚(양볼 코 턱수염)은 깨끗이 도태해 버렸다.

귀를 후비고 코털을 다듬었다.

안마도 했다.

그리고 비누세수를 한 다음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니 품있는 데라고는 한 귀퉁이도 없어 보이는 듯 하면서 또한 태생을 어찌 어기리요,

좋도록 말해서 라파엘전파前派 고전파 일원같이 그렇게 淸楚白面書生(말숙한 책만 읽는 사람)이라고도 보아줄 수 있지 하고 실없이 제 얼굴을 미남자거니 고집하고 싶어 하는 구지레한 욕심을 속으로 탄식하였다.

 

아차! 나에게도 모자가 있다. 겨울내 꾸겨박질러 두었던 것을 부득부득 끄집어 내었다.

15분간 세탁소로 가지고 가서 멀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흰 바지저고리에 고동색 다님을 다 치고 차림차림이 제법 특색이 있다.

공단은 못되나마 능직두루마기에 이만하면 古往今來고왕금래 모모한 천재의 풍모에 비겨도 조금도 손색이 없으리라.

나는 내 그런 여간 이만저만하지 않은 풍모를 더욱 더욱 이만저만하지 않게 변화를 주기 위하여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고다지 알맞은 단장을 하나 내 손에 쥐어 주어야 할 것도 때마침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綾織 - 날실과 씨실을 몇 올씩 건너뛰어 만나게 함으로써 빗금무늬가 나타나게 짜는 방법

 

 

별수 없이ㅡ 오늘이 즉 3월 3일인 것이다.

 

나는 점잖게 한 30분쯤 지각해서 동소문 지정받은 자리에 도착하였다.

貞姬정희는 또 정희대로 아주 정희답게 한 30분쯤 일찍 와서 있다.

 

정희의 입상은 제정러시아 때 우표딱지처럼 적잖이 슬프다.

이것은 아직도 얼음을 품은 바람이 땅을 녹이는 머리답게 싸늘해서 말하자면

정희의 모양을 얼마간 침통하게 해 보일 탓이렷다.

 

나는 이런 경우에 천만 뜻밖에도 눈물이 핑 눈에 그뜩 돌아야 하는 것이 꼭 맞는 원칙으로서의 의표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저벅저벅 정희 앞으로 다가갔다.

 

우리 둘은 이 땅을 처음 찾아 온 제비 한 쌍처럼 잘 앙증스럽게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걸어가면서도 나는 내 두루마기에 잡히는 주름살 하나에도 단장을 한 번 휘젓는 곡절에도 세세히 조심한다.

나는 말하자면 내 우연한 終生을 감쪽스럽도록 찬란하게 느껴보기 위하여 내 살얼음을 밟는 듯한 포ㅡ즈를

아차 실수로 무너뜨리거나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굳게굳게 명심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면 맨 처음 발언으로는 나는 어떤 奇絶,慘絶,警句절묘하고 멋진 말을 내어 놓아야 할 것인가,

이것 때문에 또 잠깐 머뭇머뭇하지 않을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대이고 거 어쩌면 그렇게 똑 제정러시아적 우표딱지같이 초초하니 어쩌니 하는 수는 차마 없다.

 

나는 선뜻

「설마가 사람을 죽이느니」

 

하는 소리를 저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그런 가라앉은 목소리에 꽤 명료한 발음을 얹어서 정희 귀 가까이다 대이고 지껄여버렸다.

이만하면 아마 그 경우의 최초의 발성으로는 무던히 성공한 편이리라.

뜻인즉, 네가 오라고 그랬다고 그렇게 내가 불쑥 올 줄은 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는 꼼꼼한 의도다.

 

나는 아침 반찬으로 콩나물을 삼전어치는 안 팔겠다는 것을 교묘히 무사히 삼전어치만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미끈한 쾌감을 맛본다.

내 딴은 다행히 노랑 돈 한 푼도 참 용하게 낭비하지는 않은 듯싶었다.

 

그러나 그런 내 청천에 벽력이 떨어진 것 같은 인사에 대하여 정희는 실로 대답이 없다.

이것은 참 큰일이다.

 

아이들이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하고 노는 그런 암팡진 수단으로 그냥 단번에 나를 어지러뜨려서는 넘어뜨려버릴 작정인 모양이다.

 

정말 그렇다면!

 

이 상쾌한 정희의 確乎(굳굳한 부동자세)야말로 엔간치 않은 출품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내어 놓은바 급소를 찌른 말은 그만 즉석에서 분쇄되어 가엾은 잘못된 작품으로 내려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하고 나는 느꼈다.

 

나는 나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손짓 발짓을 한번 해 보이고 이윽고 낙담하였다는 것을 표시하였다.

일이 여기 이른 바에는 내 포ㅡ즈 여부가 문제 아니다.

표정도 인제 더 써먹을 것이 남아 있을 성싶지도 않고 해서 나는 겸연쩍게 안색을 좀 고쳐가지고 그리고

정희! 그럼 나는 가겠소, 하고 깍듯이 인사하고 그리고?

 

나는 발길을 돌려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 파란만장의 생애가 자잘한 말 한 마디로 하여 그만 타다 남은 재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나는 세상에도 참혹한 풍채 아래서 내 終生을 치른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그럼 그럴 성싶기도 하게 단장도 한두 번 휘두르고 입도 좀 일그적 일그적해 보기도 하고 하면서 행차하는 체해 보인다.

5초 ㅡ10초ㅡ12초 ㅡ30초ㅡ1분 ㅡ결코 뒤를 돌아다보거나 해서는 못쓴다.

어디까지든지 사심 없이 패배한 체하고 걷는 체한다. 실심한 체한다.

 

나는 사실은 좀 어지럽다.

내 쇠약한 심장으로는 이런 자약한 체조를 그렇게 장시간 계속하기가 썩 어려운 것이다.

 

묘지명이라.

일세의 귀재 李箱은 그 일생의 대작「終生期一篇 종생기 1편을 남기고

서력기원후1937년 3월 3일 오후 3시 여기 밝은 태양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하다.

향년 만25세와 11개월

鳴乎 오호라! 상심하리라.

허탈이야 잔존하는 또 하나의 李箱

구천을 우러러 통곡하고 이 북망산의 한 돌판을 세우노라.

애인 정희는 그대의 죽음 후 수삼인의 비첩이 된 바 있고 오히려 장수하니 지하의 李箱아! 바라건댄 편히 눈을 감으시라.

 

그리 칠칠치는 못하나마 이만큼 해 가지고 이꼴저꼴 구지레한 흠집을 살짝 숨기기로 하자.

고만 실수는 여상의 묘기로 겸사겸사 메꾸고 다시 나는 내 반생(半生)의 틀에 후일에 관해 차근차근 고려하기로 한다. 以上

 

역대의 풍자시와 나라가 기울어지는 것과의 관계는 어길 수 없는 굳은 규칙이 모두 내게 있어서는 내 위선을 몰래 감추는 한 스무드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역대의 풍자시는 나라가 위태롭거나 사회가 혼란 할 때 많이 나타나는 하나의 규칙이다.

그러나. 한 두 편의 풍자시로 내가 애국자요 하는 것은 위선을 감추는 하나의 구실일 뿐이다. 행동하는 지식이 필요할 뿐이다.)

 

실로 나는 내 목숨을 잃음의 자리에서도 임종의 합리화를 위하여 프랑스의 화가 Corot

(1796~1875)코로처럼 복숭아색의 팔렛을 볼 수도 없거니와

톨스토이처럼 탄식해 주고 싶은 쥐꼬리만 한 금언의 추억도 가지지 않고 그냥 난데없이 다리를 삐어 넘어지듯이 스르르 죽어 가리라.

 

 

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1875    French

  그는 독신으로 살았다.

"코로처럼 복숭아색의 팔렛을 볼 수도 없거니와"  =  여성과의 교제는 그의 생애에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으며,

                                                                                        그는 전생애를 그림에 바쳤다.

 

 

거룩하다는 칭호를 휴대하고 나를 찾아오는「연애」라는 것을 응수하는데 있어서도

어디서 어떤 노소간의 의뭉스러운 선인들이 발라먹고 내어버린 그런 유훈을 나는 헐값에 걷어 들여다가 제련. 재탕해서 다시 써먹는다.

 

(내가 이런 얄팍한 수법을 써 먹)는 줄로만 알았다가 또 내게 혼나는 경우가 있으리라.

 

나는 찬밥 한 술 냉수 한 모금을 먹고도 넉넉히 일세를 위압할 만한 苦言고언을 가려내어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지혜의 실력을 가졌다.

 

그러나 자의식의 절정 위에 발돋움을 하고 올라선 숨이 끊어질 때 내뱉는 짧은 비명의 소리와 같은 비결을 보통 밤 시장 국수버섯을 팔러 오신 시골 아주머니들에게 서너 푼에 그냥 넘겨주고 그만두는 그렇게까지 자신의 에티켓을 미화시키는 겸허의 방식도 또한 나는 흔들림 없이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탄탄한 틀을 짜놓을지어다. 以上

 

亂麻복잡하게 뒤얽힌 어지러운 세상과 같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얼마간 비극적인 自己探求.

 

이런 흑발 같은 남루한 주제는

문벌이 버젓한 나로서 채택할 신세가 아니거니와

나는 서양의 에티켓으로 차 한 잔을 마실 적의 포ㅡ즈에 대하여도 세심하고 세심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휘파람 한 번을 분다 치더라도 네 극비리에 최선의 선율을 골라서 감춰진 옛 가락을 지켜가야만 한다. 그런 다음이 아니고는 나는 희망 잃은 황혼에서도 휘파람 한 마디를 마음대로 불 수는 없는 것이다.

 

동물에 대한 고결한 지식?

 

사슴, 물오리, 이 밖의 어떤 종류의 동물도 내 동물의 왕국에서는 낙탈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수렵용으로 귀엽게 가엽게 되어먹어 있는 동물 外에 동물에 언제든지 無可奈何막무가내 고집을 부림으로써 지혜가 없다.

 

또ㅡ 그럼 풍경에 대한 방만한 처신법?

 

어떤 풍경을 묻지 않고 풍경의 근원, 중심, 초점이 말하자면 나 하나

 

「도련님」다운 소행에 있어야 할 것을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강조한다.

나는 이 맹목적 신조를 두 눈을 그대로 딱 감고 믿어야 된다.

自進한「愚昧」「歿覺」이 참 어렵다. (스스로 무식한척 하기가 참 어렵다.)

 

보아라. 이 自得자득하는 愚昧우미의 絶技절기를! 歿覺몰각의 絶技절기를

白鷗는 宜白沙하니 莫赴春草碧 하라.

 흰 갈매기는 흰 모래가 제격이다.  프른 풀밭에 앉지마라

 

 

 

 

 

 

李太白이는 전후만고의 으리의리한「華族화족」

나는 이태백을 닮기도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하여 오언절구 한 줄에서도 한 字 가량의 태연자약한 실수를 범해야만 한다.

현란한 문벌이 풍기는 가히 범할 수 없는 기품과 세도가 넉넉히 古詩 한 구절쯤 서슴지 않고 상처를 내어 놓아도 다들 어수룩한 체들 하고 속느니 하는 교만한 미신이다.

 

곱게 빨아서 곱게 다리미질을 해 놓은 한 벌 속옷에 깜박 속는 깨끗한 정조처럼

그렇게 아담하게 나는 어떠한 넘어지고 자빠짐에서도 거뜬하게 얄미운 미소와 함께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니까ㅡ 오늘날 내 한 氏族이 분명치 못한 소녀에게 섣불리 딴죽을 걸려 넘어진하다기로서니 이대로 내 오래 전부터 지니고 있는 희망의 호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終生을 한 방울 하잘 것 없는 오점을 내이는 채 숟가락 집어 던지 듯해서야 어찌 初志처음 품은 꿈의 만분의 일에라도 응답할 수 있는 면목이 족히 서겠는가, 하는 허울 좋은 구실이 긴긴 날의 밤보다도 오히려 한 뼘 짧은 내 앞으로 나가야 할 앞길 맞닥뜨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완만 착실한 서술!

 

나는 과히 눈에 띠울성싶지 않은 한 지점을 재재바르게 붙들어서 거기서 공중 담배를 한 갑 사(주머니에 넣고) 피워 물고 정희의 뻔ㅡ한 걸음을 다시 뒤따랐다.

 

나는 그저 일상의 다반사를 간과하듯이 범연하게 휘파람을 불고, 내, 구두 뒤축이 아스팔트를 디디는 템포 음향, 이런 것들의 귀찮은 조절에도 깔끔히 정신 차리면서 넉넉잡고 삼분3분, 다시 돌친 걸음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부질없는 세상에 제 심각하면 침통하면 또 어쩌겠느냐는 듯싶은 서운한 눈의 위치를 동소문 밖 신개지풍경 어디라고 정하치 않은 한 점에 두어 두었으니 보라는 듯 한 부득부득 지근거리는 자세면서도 또 그렇지도 않을 성싶은 내 묘기 중에도 묘기를 더한층 허겁지겁 연마하기에 골돌하는 것이었다.

 

日暮청산ㅡ날은 저물었다. 아차! 아직 저물지 않은 것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보다.

날은 아직 저물지 않았다.

 

그러면 아까 장만해 둔 세간기구를 내세워 어디 차근차근 살림살이를 한 번 치뤄 볼 천우의 호기가 내 앞으로 다다랐나 보다.

자ㅡ 태생은 어길 수 없어 비천한「타」를 감추지 못하는 딸ㅡ

(앞에서 말한 치사한 소녀 운운 하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이 바보 李箱의 호의에서 나온 곡해이다.

모ㅡ파쌍의「지방 덩어리」를 생각하자.

가족은 14세미성년의 딸에게 매음시켰다.

두 번 째는 19세 미성년의 딸이 스스로 매음했다.

아ㅡ세 번 째는 그 나이 22살이 되던 해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게다 다홍댕기를 들여 늘어뜨려 편발처자를 위조 하여서는

大擧,强行 일을 크게 꾸며서 몸을 팔아먹어 버렸다.)

비천한 뉘 집 딸이 해빙기의 시냇가에 서서 입술이 낙화지듯 좀 파래지면서

살얼음 밑으로는 무엇이 저리도 움직이는 가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이 숙이고 있는데

봄 향기를 품은 훈풍이 불어 와서 스커ㅡ트, 아니 너무나, 슬퍼 보이는,

아니, 좀 슬퍼 보이는 紅髮홍당무우의 잔털을 건드리면ㅡ

좀 슬퍼 보이는 홍당무의 잔털을 나븟나븟 건드리면ㅡ 틀림없다.

 

이 개기름 도는 가소로운 무대를 앞에 두고 나는 나대로 나답게 가문이라는 자잘한「套」명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채석장 희멀건 단층을 건너다보면서 탄식 비슷이                  套 투: 쒸우다. 정해진 일정한 틀

「지구를 저며 내는 사람들은 光是 自然 파괴자리라」는 둥

「개미집이야 말로 과연 정연하구나」라는 둥

 

 

「비가 오면, 아ㅡ천하에 비가 오면 

「작년에 났던 초목이 올해에도 또 돋으려누, 歸不歸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둥ㅡ

치례 잘 하면 제법 의젓스러워도 보일만한 가장 한산한 과제로만 골라서 점잖게 방심해 보여 놓는다.

 

정말일까? 거짓말일까.

정희가 불쑥 말을 한다. 한 소리가「봄이 이렇게 왔군요」하고 웃니는 좀 사이가 벌어져서 보기 흉한 듯하니까

살짝 가리고 곱다고 자처하는 아랫니를 보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내어다 보인 것을 또 어쩝니까.

하는 듯이 가증하게 내어 보이면서 또 여간해서 어림이 서지 않는 어중간한 얼굴을 그 위에 얹어 내세우는 것이었다.

 

좋아, 좋아, 좋아 그만하면 잘 되었어,

나는 고개 대신에 단장을 끄덕끄덕해 보이면서 창졸간에 그만 정희 어깨 위에다 손을 얹고 말았다.

그랬더니 정희는 저으기 해괴해 하노라 는 듯이 잠시는 묵묵하더니ㅡ

정희도 문벌이라든가 혹은 간단히 말해 에티켓이라든가 제법 배워서 짐작하노라고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꿀꺽!

넘어가는 내 지지한 終生, 이렇게도 실수가 허해서야

물질적 전생애를 탕진해 가면서 사수하여 온 珊瑚篇 산호편의 본의가 대체 어디 있느냐?

내내 울화가 복받쳐 혼도할 것 같다.

 

興天寺흥천사 으슥한 구석방에 내 終生의 있는 힘을 다하여 애를 쓴 것이 정희를 이끌어 들이기도 전에 나는 밤 쓸쓸히 거짓말깨나 해 놓았나보다.

 

나는 내가 그윽이 음모한 바 천고에 변함없는 탕아, 李箱의 자잘한 문학의 빈민굴을 교란시키고자 하던 가지가지 진기한 연장이

 어느 겨를에 빼물르기 시작한 것을 여기서 깨단해야 되나보다.

사회는 어떠쿵, 도덕이 어떠쿵, 내면적 성찰 추구 적발, 징벌은 어떠쿵, 자의식과잉이 어떠쿵,

 제 깜냥에 번지레한 칠을 해 내어 걸은 치사스러운 간판들이 미상불 우스꽝스럽기가 그지없다.

 

「毒花독화」

여러분은 이 꼭두각시 같은 어휘 한 마디를 잠시 맡아가지고 계셔보시구료?

 

예술이라는 허망한 아궁이 근처에서 송장 근처에서보다도 한결 더 썰썰 기고 있는

그들 해반주룩한 (死都의血族) 일본 동경에 있는 일족들의 땟국내 나는 틈에 가 끼워 넣어서,

나는 ㅡ 내 계집의 치마 단속곳을 갈가리 찢어 놓았고, 버선켤레를 걸레를 만들어 놓았고,

검던 머리에 곱던 양자, 영악한 곰의 발자국이 질컥 디디고 지나간 것처럼 얼굴을 망가뜨려 놓았고,

아는 친척의 돈을 왕창 떼어 먹었고, 좌수터 유래 깊은 상호를 쑥밭을 만들어 놓았고,

겁쟁이 이사는 고랑때를 먹여 놓았고, 대금업자의 수금인을 졸도시켰고,

사장과 이사들과 사돈과 아범과 애비와 처남과 처제와 또

애비와 애비의 딸과 딸 이 허다중생으로 하여금 서로 서로 이간을 부치고 부치게 하고 얼버무려져 싸움질을 하게 해 놓았고

사글세 방 새 다다미에 잉크와 요강과 팥죽을 엎질렀고, 누구누구를 임포텐스를 만들어놓았고ㅡ

 

「毒花독화」라는 말의 콕 찌르는 맛을 그만하면 어렴풋이나마 어떻게 짐작이 서는가 싶소이까.

 

잘못 빚은 송편 같은 詩 몇 줄 소설 서너 편을 꾀어 차고 조촐하게 등장하는 것을 아 무엇인 줄 알고 깜박 속고

섣불리 손뼉을 한두 번 쳤다는 죄로 제 계집 간음당한 것보다도 더 큰 망신을 일신에 짊어지고 그리고는

 앙탈 비슷이 시치미를 떼지 않으면 안 되는 어디까지든지 치사스러운 예의절차ㅡ

마귀 터주의 소행으로 덧났다라고 돌려 버리자?

 

「독화(毒花)」

물론 나는 내일 새벽에 내 길들은 노상에서 무려 내게 필적하는 한 숨은 탕아를 해후할는지도 마치 모르나,

 나는 신바람이 난 무당처럼 어깨를 치켰다 젖혔다 하면서라도 비와 바람에 갈리고 씻기는 고행을 얼른 그렇게 쉽사리 그만두지는 않는다.

 

아ㅡ어쩐지 전신이 몹시 가렵다.

나는 무연한 중생의 뭇 원한 탓으로 악역의 범함을 입나보다.

나는 은근히 속으로 앓으면서 화장실 깨끗한 대야에다 양손을 정하게 씻은 다음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아

차근차근 나 자신을 반성 회오 ㅡ쉬운 말로 자잘한 계산을 좀 해 보아야겠다.

 

에티켓? 문벌? 良識양식? 番身術끼어드는 기술?

그렇다고 내가 찔끔 정희 어깨 위에 얹었던 손을 뚝 떼인다든지 했다가는 큰 망발이다.

 

일을 잡치리라. 어디까지든지 내 뺨의 홍조만을 조심하면서 좋아, 좋아, 좋아, 그래만 주면 된다.

그리고 나서 피차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어깨에 손은 얹은 채 어깨를 나란히 흥천사경내로 들어갔다.

가서 길을 별안간 잃어버린 것처럼 자분참 산위로 올라가 버린다.

산위에서 이번에는 정말 포ㅡ즈를 할일 없이 무너뜨렸다는 것처럼 정교하게 머뭇머뭇해 준다. 그러나 기실 말짱하다.

 

풍경소리가 똑 알맞다.

이런 경우에는 제법 번듯한 식자가 있는 사람이면ㅡ 아ㅡ 나는 왜 늘 항례에서 비켜서려 드는 것일까?

잊었느냐? 비싼 월사금을 바치고 얻은 고매한 학문과 예절을,

현역 육군중좌에게서 받은 엄하고 권위 있는 가르침의 규율을 왜 나는 이 경우에 버젓하게 내세우지를 못하느냐?

 

창연한 고찰 빈틈없는 장치에서 나는 정신 차려야 한다.

나는 내 쟁쟁한 이력을 솔직하게 써먹어야 한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 도살장에 들어가는 소,

죽기보다 싫은 서투르고 근질근질한 포ㅡ즈 몸가짐의 독특한 연출에 어지간히 성공해야만 한다.

그랬더니 그만두잔다.

당신의 그 어림없는 몸치렐랑 그만 두세요. 저는 어지간히 식상이 되었습니다. 한다.

 

그렇다면

내 꾸준한 노력도 일조일석에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대체 정희라는 가련한「石女석녀」가 제 어떤 재간으로 그런 음흉한 내 간계를 요만큼까지 간파했다는 것이다.

 

일시에 지쳐버린다.

맥은 탁 풀리고는 앞이 팽 돌다 아찔 하는 것이 이러다가 까무러치려나 보다고 힘을 다해 단장을 의지하여 버텨 보노라니까 噫아! 아! 라!

내 기사회생의 終生도 이번만은 회춘하기 장히 어려울 듯싶다.

李箱! 당신은 세상을 경영할 줄 모르는 말하자면 병신이오.

그다지도 「迷惑미혹」하단 말씀이오?

건너다보니 절터지요?

 

그렇다 하더라도「카라마죠프의 형제」나「40년」을 좀 구경삼아 들러 보시지요.

아니지! 정희! 그게 뭐냐 하면 나도 살고 있어야 하겠으니 너도 살자는 사기, 속임수,

일부러 만들어 내어놓은 미신, 중에도 가장 우수한 무서운 주문이오.

 

李箱! 그러지 말고 시험삼아 한발만 한발자국만 저 개흙밭에다 들여놓아 보시지요.

이 악보같이 스무ㅡ드한 담소 속에서 비실비실하노라면

나는 내게 필적하는 극히 자연스러운 탕아가 이 눈빛 사이에 있는 것을 느낀다.

누구나 제 내어 놓았던 헙수룩한 포ㅡ즈를 걷어치우느라고 허겁지겁들 할 것이다.

나도 그때 내 슬하의 이렇게 유산되는 자손을 느끼면서 만재에 드리우는 이 극흉 극비 종가의 부작을 앞에 놓고서

저으기 불안하게 또 한편으로는 저으기 안일하게 운명하는 마지막 육신의 이 내 終生을 오로지 머리발이 깃을 들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 묘자리가 될 만한 조촐한 터전을 찾는 듯 한 그런 서글픈 마음으로 정희를 재촉하여 그 언덕을 내려 왔다.

등 뒤에 들리는 풍경소리는 진실로 내 심통함을 돕는 듯하다고

글씨를 베껴 옮기면서 지금의 상황을 한층 더 반듯하게 매만져 놓는 한 도움이 되리라.

 

그럼 진실로 풍경소리는 내 등 뒤에서

내 마지막 아픈 마음을 한층 더 들볶아 놓는 듯하더라.

 

美文에 견줄 만큼 위태위태한 것이 빼어난 경치에 혹사당한 전체의 풍경이다.

빼어난 경치에 혹사 당한한 풍경을 美文으로 번안 모사해 놓았다면 자칫하다 실족익사하기 쉬운 웅덩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여러분은 아예 가까이 다가서서는 안 된다.

 

도스토예프스키ㅡ나 고리키ㅡ는 美文을 쓰는 버릇이 없는 체했고 또

거칠고 쓸쓸하다거나 아담한 경치를 취급하지 않았으되 이 의뭉스러운 어른들은

오직 美文은 쓸듯 쓸 듯,

빼어난 경치, 자연의 아름다운 현상은 나올 듯 나올 듯, 맛만 보이고

끝끝내 아주 활짝 꼬랑지를 내보이지는 않고 그만둔 구렁이 같은 분들이기 때문에

그 기만술은 한층 더 진보된 것이며, 그런 만큼 효과가 또 절대하여

천년을 두고 만년을 두고 내리 내리

부질없는 위로와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는 속세의 대중들을 잘 속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ㅡ 왜 나는 미끈하게 솟아 있는 근대건축의 위용을 보면서 먼저 철근 철골, 시멘트와 가는 모래, 이것부터 선뜩하니 감응하느냐는 말이다.

씻어 버릴 수 없는, 목 놓아 슬피 울, 숙명의 울음이다.

 

몽고레안푸렉게 Mongolian pratique 蒙古志 몽고인종의 현실적인 의지

 오뚝이처럼 쓰러져도 일어나고 쓰러져도 일어나고 하니 쓰러지나 섰으나 마찬가지 의지할 얄팍한 벽 한 조각 없는 고독, 메마름, 스스로움, 맑음.

 

나는 오늘 크게 깨달은 바 있어 美文을 피하고 빼어난 경치, 자연의 아름다운 현상을 멀리하여 여릿하게 왕생하는 것이며

숙명의 슬픈 투시벽은 깨끗이 벗어 놓고 아담하게 다독거려 외로우나마 따뜻한 그늘 안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이 대수롭지 않은 終生

나는 요절인가보다.

아니 도중하차인가 보다,

이길 수 없는 맞닥트림

눈 멀은 떼 까마귀의 심한 욕설 속에서

탕아 중에도 탕아

꾀쟁이 중에도 꾀쟁이

난공불락의 관문의 허물어짐

구세주의 마지막이 그러했듯 방방곡곡이

남은 독은 스며드는 아름답게 치장하고 꾸미는 것 중에도 겉치레로 내걸은 간판이다.

특출한 색깔의 간판이다.

 

아내가 있는 不義. 아내가 없는 不義, 불의는 즐겁다.

不義의 술값이 갈수록 대범해지는 풍미를 여러분은 아시나이까.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이 옛날 청동거울 같이 결함의 미를 갖춘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을 보라.

7세까지 玉簪花옥잠화 속에 감춰 두었던 장분만을 바르고 그 후 분을 바른 일도 세수를 한 일도 없는 것이 유일의 자랑거리.

정희는 사팔뜨기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대항하기 어렵다.

정희는 근시 6도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대항할 수 없는 선천적 훈장이다. 左亂視右色盲좌난시우색맹

아ㅡ 이는 실로 완벽이 아니면 무엇이랴.

 

속은 후에 또 속았다. 또 속은 후에 또 속았다.

14세미성년에 정희를 그 가족이 강행으로 매춘시켰다.

나는 그런 줄만 알았다.

한 방울 눈물ㅡ 그러나 가족이 강행하였을 때쯤은 정희는 이미 자진하여 매춘한 후 오래 오래 후다.

다홍댕기가 늘 정희 등에서 나부꼈다.

가족들은 불의에 올 재앙을 막아 줄 단 하나 값나가는 다홍댕기를 기탄없이 믿었건만ㅡ 그러나ㅡ 불의는 귀인답고 참 즐겁다.

간음한 처녀ㅡ이는 不義중에도 가장 즐겁지 않을 수 없는 영원의 밀림이다.

 

그럼 정희는 게서 멈추나?

나는 자기소개를 한다.

나는 정희에게 책임지기 싫기 때문에 잔인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다.

 

나는 벼를 본 일이 없다.

자전차를 탈 줄 모른다.

생년월일을 가끔 잊어버린다.

90 노조모가 16살 처녀로 어느 하늘에서 시집온 10대조의 고성을 내 손으로 헐었고

록엽천년의 호도나무 아름드리 근간을 내 손으로 베었다.

은행나무는 원통한 가문을 골수에 지니고 찍혀 넘어간 뒤

장장사년 해마다 봄만 되면 독화살 같은 싹이 엄 돋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나 이 모든 것에 견뎠다.

한 번 석류나무를 휘어잡고 나는 폐허를 나섰다.

 

早熟,爛熟 일찍 익고 푹 익어서 감 썩는 골머리 때리는 내.

생사의 기로에서 씩 웃고 날렵하게 몸을 고쳤다.

음지에 창백한 꽃이 피었다.

 

나는 14살 때 수채화를 그렸다.

수채화와 첫 경험

보아라 나무젓가락같이 야윈 팔목에서는 삼동(三冬)에도 김이 무럭무럭 난다.

김나는 팔목과 잔털 나스르르한 매춘하면서 자라나는 회충같이 매혹적인 살결.

사팔뜨기와 내 흰자위 없는 짝짝이 눈.

옥잠화 속에서 나오는 기술 같은 어제의 화장과 화장 지우는 기술

이에 대항하는 내 자전차 탈 줄 모르는 아슬아슬한 천품

다홍댕기에 불의와 불의를 방임하는 속수무책의 나태

 

심판이여!

정희에 비교하여 내게 부족함이 너무나 많지 않소이까?

비등비등? 나는 최후까지 싸워 보리라.

 

흥천사 으슥한 구석방 한 간 방석 두 개 화로 한 개. 밥상 술상ㅡ 접전, 수십 번 좌충우돌.

정희의 허전한 관문을 나는 죽어가는 늙은이의 힘으로 들이친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발의 흉기는 갈 때보다도 몇 배나 더 큰 힘으로 나 자신의 손을 시켜 나 자신을 살상한다.

 

지느냐. 나는 그럼 지고 그만두느냐.

나는 내 마지막 무장을 전장에 내어세우기로 하였다.

그것은 곧 술주정이다.

한 몸을 건사하기조차 어려웠다.

나는 게울 것만 같았다.

나는 게웠다.

정희 스커트에다.

정희 스타킹에다.

그리고도 오히려 나는 부족했다.

나는 일어나 춤추었다.

그리고 그 방 뒤 쌍창미닫이를 열어 제치고 나는 예서 떨어져 죽는다고 마지막 한 벌 힘만을 아껴 남기고는

나머지 있는 힘을 다하여 난간을 잡아 흔들었다.

정희는 나를 붙들고 말린다.

말리는 데 안 말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정희 스커트를 잡아 제쳤다. 무엇인가 철썩 떨어졌다.

편지다. 내가 집었다. 정희는 모른 체한다.

 

속달 (S와도 절연한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된다는 것은 선생님께서도 믿어주시는 바지요? 하던 S가 보낸 속달이다)

 

『정희! 노하였소 어젯밤 태서관별장의 일! 그것은 결코 내 본의는 아니었소.

나는 그 요구를 하려 정희를 그곳까지 데리고 갔던 것은 아니오.

내 불민을 용서하여 주기 바라오. 그러나 정희가 뜻밖에도 그렇게까지 다소곳한 태도를 보여주었다는 것으로 저으기 마음 놓겠소.

 

정희를 하루라도 바삐 나 혼자만의 것을 만들어 달라는 정희의 열렬한 말을 물론 나는 잊어버리지는 않겠소.

그러나 지금 형편으로는「아내」라는 저 추물을 처치하기가 정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오.

 

오늘(3월3일) 오후 여덟시 정각에 금화장 주택지 그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어제 일을 사과도 하고 싶고 달이 밝을 듯하니 송림을 거닙시다.

거닐면서 우리 두 사람만의 생활)에 대한 설계도 의논하여 봅시다. 3월3일 아침 S』

 

내가 속달을 띄우고 나서 곧 뒤이어 받은 속달이다.

모든 것은 끝났다.

어젯밤에 정희는ㅡ 그 낯으로 오늘 정희는 내게

李箱先生님께 드리는 속달을 띄우고 그 낯으로 또 나를 만났다.

공포에 가까운 번신술이다.

이 황홀한 전율을 즐기기 위하여 정희는 무고의 李箱을 징발했다.

나는 속고 또 속고 또 또 속고 또 또 또 속았다.

 

나는 물론 그 자리에 정신을 잃어 버렸다.

나는 죽었다.

나는 황천을 헤매었다.

죽어서 심판을 받는다는 곳에는 달이 밝다.

나는 또다시 눈을 감았다.

태허에 소리 있어 가로대

너는 몇 살이뇨?

만25세와 11개월이올씨다.

夭死요사로구나. 아니 올씨다.

老死노사올씨다.

눈을 다시 떴을 때는 거기 정희는 없다.

물론 여덟시가 지난 뒤였다.

정희는 그리 갔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은 끝났으되 나의 終生記는 끝나지 않는다. 왜?

 

정희는

지금도 어느 삘딩 걸상 위에서 속옷의 끈을 푸르는 중이오

지금도 어느 서양관 별장 방석을 비이고 속옷의 끈을 푸르는 중이오

지금도 어느 송림 속 잔디 벗어 놓은 외투 위에서 속옷의 끈을 성히 푸르는 중이니까다.

 

이것은 물론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재앙이다.

나는 이를 간다.

나는 걸핏하면 까무러친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철천의 원한에서 슬그머니 좀 비켜서고 싶다.

내 마음의 따뜻한 평화 따위가 다 그리워졌다.

 

즉 나는 시체다.

시체는 생존하여 계신 만물의 영장을 향하여 질투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정희, 간혹 정희의 후툿한 호흡이 내 묘비에 와 슬쩍 부딪는 수가 있다.

그런 때 내 시체는 홍당무처럼 확끈 달으면서 구천을 꿰뚫어 슬피 號哭호곡한다.

 

그동안에 정희는 여러 번 제 (내 때꼽째기도 묻은) 이부자리를 찬란한 일광 아래 널어 말렸을 것이다.

여러 번 내 혼수상태 덕으로 부디 이 내 시체에서도 생전의 슬픈 기억이 창궁높이 훨 훨 날아가나 버렸으면ㅡ

 나는, 지금 이런 불쌍한 생각도 한다.

 

그럼ㅡㅡ만 26세와 30개월 맞이하는 李箱先生님이여! 허수아비여!

자네는 노옹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일세.

以上

 

11월 20일 동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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