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순사에게 끌려가기 전
이상은 이 음악을 감상하며
종생기를 예감 했을까?
1937.2. 12 사상불온자로 경찰에 구속
3. 16 석방(34일간)
4. 17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사망. (27세)
1937년 1월 21일부터 27일까지 히비야공원 공회당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미샤 엘만(1891~1967)이
이상은 끽다점 낙랑파라에서 레코드로 들었던 이 유대계 러시아인의 연주회를 들으러 갔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주로 미국에서 활약한 왕년의 유태계 명바이올리니스트다.
베를린에서 데뷔한 후 1905년의 런던, 08년의 뉴욕 공연 모두 선풍적인 성공을 거두어 이름을 세계에 떨쳤다.
11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23년에 시민권을 얻었다.
한때(26년)는 「엘만 관악 4중주단」을 조직하여 실내악 활동도 했지만 주력했던 것은 물론 솔로이며,
세계를 무대로 화려한 활약을 펼쳐 나갔다.
36년부터 이듬해에 걸쳐서는 카네기 홀에서 연속 5회의 콘서트를 가져 합계 15곡 이상의 협주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카를 플레시가 ‘동양풍의 색조를 띤 벨 칸토의 아름다운 음’이라고 격찬한 독특한 감미로운 음색으로
‘엘만 톤’으로 불리며 일세를 풍미했다.
그 시대에 레코드가 200만 장 이상이나 팔릴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최신 클래식 연주가 사전, 1994. 10. 20., 삼호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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