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림과의 짧은 결혼생활 -20100209,조선일보- 현대문학-작가 / 문학의 세계

2010/02/0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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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아내 변동림은 수화 김환기 화백과 재혼하고 이름도 김향안으로 바꾼 뒤 수화를 정성스럽게 뒷바라지했다. 사진은 1960년대 초의 김향안 여사.

 

모더니티(modernity)의 본질은 새로운 것, 영원한 것, 덧없음에 대한 추구이다. 그 새로움은 낡은 것과의 단절에서 당위를 얻고, 그 영원함은 찰나의 소멸 속에서 빛을 얻고, 그 덧없음은 사라짐으로써 존재의 견고성을 이끌어낸다. 모더니티가 자주 자신을 드러내는 가시적 표층(表層)은 패션(fashion·유행)이다.

1930년대 '모던' 경성이 보여준 최고 패션은 '자유연애'였다. 자유연애의 대유행을 빼놓고는 이 시기 경성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이때 자유연애의 이념은 신분과 계급의 차이를 넘어서는 사랑, 죽음마저도 불사하는 진실한 사랑이었다.

1916년 경성에서 태어나고, 경성여고보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지식인 신여성 변동림(卞東琳) 역시 자유연애론자 중의 하나였다. 변동림은 이상이 단골이었던 커피 다방 낙랑파라에서 자주 마주쳐 알던 당대의 지식인 변동욱(卞東昱)의 동생이자, 이상의 절친한 친구 화가 구본웅의 서모(庶母)와는 이복지간이었다.

이상이 변동림을 '낙랑'에서 처음 만났을 때, 평소의 그답지 않게 얼굴이 벌게지면서 각설탕만 만지작거려 다방 아가씨들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이상은 좌중을 압도할 만큼 위트와 패러독스가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변동림을 만난 자리에서는 변변히 말도 제대로 못했다.

이상은 변동림 주변의 애인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럼에도 변동림이 "당당한 시민이 못 되는 선생님을 저는 따르기로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자, 이상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어떤 여자 앞에서 몸을 비비 꼬면서, 나는 당신 없이 못 사는 몸이오, 하고 얼러 보았더니 얼른 그 여자가 내 아내가 되어버린 데는 실없이 깜짝 놀랐습니다"라는 이상의 훗날 고백으로 미루어보건대 금홍과 헤어진 뒤 의식이 황폐해진 이상이 일종의 도피로써 변동림을 선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몇 번?" "한번" "정말?" "꼭" 이래도 안 되겠다고 간발을 놓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고문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윤 이외에?" "하나" "예이!" "정말 하나예요" "말 마라" "둘" "잘 헌다" "셋" "잘 헌다, 잘 헌다, 잘 헌다" "넷" "잘 헌다, 잘 헌다, 잘 헌다" "다섯" 속았다. 속아 넘어갔다.〉(소설 〈실화(失花)〉의 한 대목)

이상이 변동림의 남자관계를 캐는 장면이다. 이상은 〈단발〉 〈실화〉 〈동해(童骸)〉 〈종생기(終生記)〉 등에서 변동림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상은 아내가 간음한 경우라면, 특히 자신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이를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앞선 동거녀 금홍의 방종한 남자관계에는 그토록 관대했던 이상이 변동림의 정조(貞操) 관념에 엄격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상은 "20세기를 생활하는데 19세기의 도덕성밖에는 없으니 나는 영원한 절름발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

어쨌든 그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36년 6월 서둘러 신흥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황금정(黃金町)의 허름한 셋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셋방에서 이상은 종일 누워 지냈다. 햇빛을 보지 못한 이상의 얼굴은 더욱 하얘졌고, 폐결핵은 깊어졌다. 변동림은 이상의 약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본인이 운영하는 바에 나갔다. 두 사람의 신혼살림은 이상이 10월에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파경(破鏡)을 맞았다. 불과 넉 달이 채 못 되는 짧은 결혼생활이었다. 변동림은 이상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몇 달 뒤 날아온 것은 이상이 동경제국 부속병원에 입원했는데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신여성 변동림은 1930년대에 돌출한 아방가르드 예술가 이상을 배우자로 선택함으로써 남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추구했지만 그 꿈은 실패했다. 그는 1944년 5월 화가 김환기(1913~1974)와 재혼하고, 프랑스 유학을 거쳐 1964년 이후 뉴욕에 정착해 뉴요커로서의 삶을 살았다. '변동림'에서 '김향안(金鄕岸)'으로 개명함으로써 낡은 봉건 도덕과 낙후된 식민지 조선을 지배하는 구태의연한 것에서 벗어나 첨단의 삶을 향한 주체적 의지를 드러냈다. 

출처 : 시와 비평
글쓴이 : 심은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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