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부암동에 가면 환기 미술관이 있습니다

미술관 좋아라 하지만 오늘은 미술관 이야기 할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김환기 님 부인 돼시는 분 이야기 입니다

김환기님 우리나라 추상화에 선구 자적인 분입니다

그럼 그 부인 돼시는 분이야기를 할려고 하는이유는


이상에 날개 라는 소설이 있죠

각자 다른 방을 쓰면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나는 매일 방에서만 빈둥거리며 살아간다.

가끔 아내가 없을 때는 아내의 방에 들어가 불장난을 하거나, 화장품 냄새를 맡기도 하며 논다.

그러나 아내의 방에 손님이 있으면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갈 수 없다.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아내는 내 방으로 들어와 은화를 놓고 간다.

그 돈을 가지고 나는 어느 날 밤에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거리로 나온다. 그러나 돈을 쓸 줄 모르는 나는 그 돈을 가지고 돌아와 아내에게 준다.

그날 밤 아내는 처음으로 아내의 방에다 나를 재워 준다. 나는 매일 밤 외출을 나가고, 어느 날은 늦게까지 비를 맞고 돌아다니다 병이 나고 만다.

그 후로 한 달 가량 앓아누운 나는 아내가 준 아스피린이란 흰 알약을 매일 먹는다.

나는 계속 머리가 어지러웠고, 그 알약이 최면약 아달린이란 사실을 알고는 아내가 자신을 죽이려고 그런 것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집을 나간다.

그러다가 아내를 의심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방에 아내와 한 남자가 같이 있는,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보고 만다. 절망한 채 다시 집에서 나온 나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미쓰꼬시 백화점 옥상에 이르자 문득 날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그리고 "날개야,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이상,<날개>

소설이긴 하지만 이상에 날개에 아내는 

변동림씨입니다


1916년 경성에서 태어나고, 경성여고보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지식인 신여성 변동림(卞東琳) 역시 자유연애론자 중의 하나였다. 변동림은 이상이 단골이었던 커피 다방 낙랑파라에서 자주 마주쳐 알던 당대의 지식인 변동욱(卞東昱)의 동생이자, 이상의 절친한 친구 화가 구본웅의 서모(庶母)와는 이복지간이었다.

이상이 변동림을 '낙랑'에서 처음 만났을 때, 평소의 그답지 않게 얼굴이 벌게지면서 각설탕만 만지작거려 다방 아가씨들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이상은 좌중을 압도할 만큼 위트와 패러독스가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변동림을 만난 자리에서는 변변히 말도 제대로 못했다.

이상은 변동림 주변의 애인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럼에도 변동림이 "당당한 시민이 못 되는 선생님을 저는 따르기로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자, 이상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어떤 여자 앞에서 몸을 비비 꼬면서, 나는 당신 없이 못 사는 몸이오, 하고 얼러 보았더니 얼른 그 여자가 내 아내가 되어버린 데는 실없이 깜짝 놀랐습니다"라는 이상의 훗날 고백으로 미루어보건대 금홍과 헤어진 뒤 의식이 황폐해진 이상이 일종의 도피로써 변동림을 선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소설속에 보면 금홍이에 남자 관계는 그렇게 관대 했던 이상이

변동림을 만났을때는 극도로  민감했던것 같습니다

아이러니 하죠 자유 로운 이상님이 아무튼

그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936년 6월 서둘러 신흥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황금정(黃金町)의 허름한 셋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셋방에서 이상은 종일 누워 지냈다. 햇빛을 보지 못한 이상의 얼굴은 더욱 하얘졌고, 폐결핵은 깊어졌다. 변동림은 이상의 약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본인이 운영하는 바에 나갔다. 두 사람의 신혼살림은 이상이 10월에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파경(破鏡)을 맞았다. 불과 넉 달이 채 못 되는 짧은 결혼생활이었다. 그 해 6월을 전후하여 변동림(卞東琳)과 혼인한 뒤 곧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나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그 해 4월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습니다.
. 아내 변동림이 몇날 며칠 동경으로 가서 시신을 수습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하나 그 후 유실되고 만다.


결국 결혼 생활 얼마 안돼서 변동림 씨는 혼자가 돼었습니다 


==========================================================

p.s 단짝 술친구 이상과 박태원의 술값 스폰서(?)인 화가 구본웅의 계모인 변동숙의 배다른 여동생이 변동림이고, 구본웅의 딸 구근모가 낳은 딸, 그러니까 구본웅의 외손녀 중 하나가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이다. 그러니까 발레리나 강수진은 외할아버지 구본웅을 중심으로 구본웅의 이모인 김향안과 이모부 김환기,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친구인 이상과 연(緣)이 닿는 셈이다. 인연이란 얽히고설켜 짜여지는 법..
==============================================================================================

 

변동림은 1944년 김환기와 재혼하고 수필가로 데뷔하며 김향안(金鄕岸)이란 이름을 썼다. 김향안은 1955년 김환기와 함께 불란서 유학길에 올라 파리에서 미술평론을 공부하였고, 1964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았다. 1974년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남편의 유작과 유품을 돌보는 한편, 1978년에는 환기재단을 설립해 김환기의 예술을 알리는 데 힘썼다. 1992년에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자비로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였는데, 사설 개인 기념미술관으로는 국내 최초이다.

 

2004년 미국 뉴욕에서 작고한 김향안은 1986년 월간 <문학사상>에서, 그녀가 변동림이었을 때 불과 4개월을 같이 산 첫 남편 이상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어 가는 충분한 시간이다. (…) 천재는 또 미완성이다."

 이 부부는 금술이 좋았다고 랍니다



 


김환기 화가님이 부인에게 보낸 옆서












왼쪽부터 이상, 박태원, 수필가 김소운



오늘에 주인공이신 그분 ^.* 변동림은 1944년 김환기와 재혼하고 수필가로 데뷔하며 김향안(金鄕岸)이란 이름을 썼다. 김향안은 1955년 김환기와 함께 불란서 유학길에 올라 파리에서 미술평론을 공부하였고, 1964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았다. 1974년 김환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남편의 유작과 유품을 돌보는 한편, 1978년에는 환기재단을 설립해 김환기의 예술을 알리는 데 힘썼다. 1992년에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자비로 환기미술관을 설립하였는데, 사설 개인 기념미술관으로는 국내 최초이다.


키차이 많이 나시네요
김향안은 1974년 김환기가 죽은 뒤 그의 그림과 유품들을 정리해서 1992년에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했고, 2004년 2월 29일 뉴욕에서 세상을 떴다.





P.S-구본웅의 계모인 변동숙의 배다른 여동생이 변동림이고, 구본웅의 딸 구근모가 낳은 딸, 그러니까 구본웅의 외손녀 중 하나가 세계적 발레리나 강수진이다. 그러니까 발레리나 강수진은 외할아버지 구본웅을 중심으로 구본웅의 이모인 김향안과 이모부 김환기,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친구인 이상과 연(緣)이 닿는 셈이다. 인연이란 얽히고설켜 짜여지는 법...

 

 

 

                                                                  발레리나 강수진


원문  http://poison777.tistory.com/128

'관련인물 > 변동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반한 이 여자   (0) 2016.06.05
변동림 그리고  (0) 2014.12.11
[스크랩] 변동림과의 짧은 결혼생활 -20100209,조선일보  (0) 2014.12.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