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제8권 제12호 | |
발행일 | 1936년 12월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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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藝術」이냐 「死」냐, 文士心境 |
기사형태 | 설문 |
「藝術」이냐「死」냐, 文士心境
父母妻子는 饑死할망정 先生서는 藝術(文學, 音樂, 繪畫)를 위하야 貧困(우리現象에 비추어 압흐로도 가난과病苦는 藝術家에게 不離할것이니)과 싸우면서라도 一生을 바치겟다는 情熱과 覺悟가 잇사오니까
春園
나는 이미 「藝術」을 위하야 이몸을 바치기로 盟誓하였읍니다. 내가 과거 30년 동안 거러온 길도 이「藝術」을 위한 길이요, 앞으로 거러갈 길도 오직 이 한길밖에 없읍니다. 이미 이렇게 엄숙하고도 굳센 盟誓를 하고는 이상 내몸에 닥처오는 빈곤쯤에야 내거름을 멈출 까닭이 있사 오리까
나는 내마음가운데 한가지의 믿음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것은 천재 基督이 그경전가운데 「空中에 나는 새를 보라. 심으시고 거두지도 아니한데 하늘이 길러주시니 너이들은 입을가 먹을가 근심말고 오직 의를 구하라 하신 말슴이 있읍니다. 자긔만 오른 길로, 의의 길로 거러간다면 생물인 이상 하늘은 그 입을 옷과 먹을 양식쯤은 던저주시줄 압니다. 이 믿음 밑에서 오직 내 정성과 내 재조를 다가고저 할 뿐이외다. 이 의욕과 정열은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조금도 물너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192>
廉尙섭
그토록 한 정열도 각오도 없읍니다. 원체 빈곤과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나 純一히 예술을 위하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처째 살기위하야 싸우는 것입니다.
朴英熙
饑死할 정도에 무슨 예술이 있겠오. 사람의 정열이라는 것이 초자연의 힘은 아니요. 생명이 없데 무슨 창작이 있겠오. 정열 없이 엇지 예술이 있겠오.
金岸曙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맘이외다. 이 변하는 맘을 못잡아놓고서 이렀읍니다, 하는 것은 결국 그림자를 잡는 것이요, 물우에 뜬 달을 움킨 것에 지나지 아니하는 것이외다. 그런지라, 혼자로서 打診하는 나의 심경에는 적지 아니한 誤謬이 있을 것이외다. 웨 그런고하니, 감정이라는 것이 언제든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외다. 어떤 때에는 세상을 뚜다려 보고싶기도하고 어떤 적에는 어린양모양으로 純實하게 아모 願望도 미움도 없이 지내고싶기도하고 또 가다가는 자기로서 자기의 가슴을 쾅쾅 치고싶기도하고 때로는 꿈이런 듯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싶기도 하니, 어느 것을 내 감정의 진정이라 할 것입니까. 그렇다고 이것들이 나의 감정의 진정한 한 조각인 이상, 나는 그것을 거즛이라고도 할 수는 없슴니다. 요새 나의 심경의 打診이 오진인 동시에 또한 진정 심경은 아니외다. 일즉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에 지내지 않는 것이외다.
아무것에든지 깊은 신념을 가젔으면 그것을 위하야 전심신을 다하는 것이 옳은 일이외다. 그러나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경우라 하면 자기의 제움¼ 좋와하는 예술과같치 하는 것이 좋겠으나, 그러나 결국으로 보면 부모처자가 죽을 지경이면 예술도 죽을 것이니, 두 가지가 다같이 없어지는 동시에 내 자신도 죽어지지 아니할 수 없는 일이외다. 그렇거든 씨우기는 무엇과 싸우며, 정열은 무엇에다 바칠 수가 있겠읍니까. 가난이라도 정도문제요, 부모처자가 굶어 죽을 지경이면 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외다.
梁柱東
풀, 베들레인詩集 첫머리(Francois CoPPee)의 서문중 그가 不朽의 저작을 하기위하야 팡없은 날과<193> 잘곳없는 밤을 달게 받앗다는 일절이 있든 것을 기억합니다. 여기에 비로소 숭고한 예술가의 경지가 있는 줄을 짐작하겠으나 나는 아즉도 그러한 정열과 각오를 가지지 못하였으니 무릇 나의 예술은 부모처자 이상이라기보다 실로 처자에게도 부끄러운 재분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黃梅泉의 白雲臺詩 일구를 조끔 고처서 다음과 같이 불러 봅니다.
牙涯竟是人間客. 縱愛名文亦愛身.
崔貞熙
열정도 각도도 없서졌읍니다. 그래도 어느 때고 글로 내마음을 모조리 이야기하리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읍니다. 하나 나는 아직 무척 어립니다. 그래서 내마음을 숨김없이 터러노키를 무서워합니다.
金恍燮
나는 일즉이 饑死할망정 예술의 道만을 직히고저 생각해본적은 업습니다. 하나 나의 마음속에 예술의 생명이 살고 있는 한까지는 그 표현을 위하야 정진코저 함니다.
全武吉
부모처자를 救할 다른 길로 나가면서 餘業으로 할 일
嚴興燮
있음니다.
있기에 지금까지 빈곤과 병고와 싸워감니다.
-첫재 예술의 길로 나가지 않으면 나에게는 더넓고 더밝고 탄탄한 깃이 없을 것 같은음니다―
閔丙徽
추억의 아름운꿈이 조용한 가을 달 밝은 밤에 젊은 날개를 펼 때면 엇전지 옛날의 예술가적정열이 식어가는듯도 싶어진다. 나 어린 시인이 문학적정역에 날을 밝이며 글을 읽고 앞날을 꿈꾸든 시절이 나의게는 있섯다.
그러나 그는 지난날의 문학청년시대!
오날의 한 개 젊은 인테리인 내 쓸쓸한 그림자를 종로네거리에서 발견할 때면 나도 모를 쓸쓸한 애수에 길다란 한숨을 내여뿜는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곳은 반도! 이곳의 예술가의 그림자여 그 얼마나 열벗든고? 그러나 그것도 예술가로서 자기를<194> 보는 까닭이다.
明日의 食代가 없다. 그것도 잘 알고 있다. 「티룸」의 한편 의자에 앉어 그는 외로히 누구를 기다리는고? 홍차의 香薰을 맡으면서 원고써줄 동무를 기다리는 잡지편집兼문인! 稿料(변변치도 못한)를 어드러 터벅이며 잡지사나 신문사의 문을 두다리는 예술가! 이곳의 한 개의 비극이 아니면 무었이랴?
그들의 얼골은 「메랑코리」하다! 그들은 묘지를 찾는 미망인과 같은 얼골을 가지고 종로 네거리를 그래도 예술을 위해서 무엇인지 머릿속에 담어가지고 정신없이 것다가 「꼬, 스톱」 의 경종에 비로소! 자기를 찾는 때 만타!
그들은 빈곤하나 그들은 부모도 있고 처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고료는 그들의 수입은 늙은 부모의게 식료를 버테들일 아모럴 사히도 업섯거니와 젊고 어린 안해와 자식의 몸동아리에 한님의 의복도 입혀 보지 못했다. 아니 자긔몸이나 가려보앗스며 자기의 口腹이나 채워 보앗든고? 이곳에서 환멸을 느낀 몇몇 사람은 결국! 돈을 찾으려 하기는 했으나 찻지 못하고 예술을 버리지않엇다.
굶주리면서도 인생을 위하야 마터가지고있는 자기소임을 다하기위하야 예술을 바리지 않엇다. 이것이 정열이다. 가난과 싸호며 위대한 예술을 남겨 놓으려는 각오다.
전차가 끈허진 밤 자동차도 타지 못하고 달빛이 유란히 밝은 서울의 밤거리를 거르때 병든 낙엽이 시름없이 떠러질때면 시와 같은 感傷의 인간인 나를 찾는다. 내 호주머니에는 오전 짜리 전차표가 두 장 남어있다. 明日의 전등료와 기한 지나는 質扎이 생각난다. 나무도 떠러젓스리라?
그러나 오날아침 부탁 바든 원고를 쓰기에 이 밤을 밝힌다. 한달 뒤에 드러올 돈 생각하면서 이것이 이곳에 사는 예술가들의 빈곤과 싸오며 행하는 예술적 정열이 아니랴. 그리고 일생을 이같이 싸 오려는 각오가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安含光
존귀하든 한때의 그 정열과 각오도 일상적인 생활의 장벽 앞에서는 그 자신의 순수성을 보전할수업는 비애만이 계속되는 듯 하오며 앞으로도 그 정열의 순수성을 어느 정도까지나 달성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은 한 개의 크다란 의문이 아닌가 함이다. <195>
柳完熙
생활과 예술의 兩全을 꾀할 수 있다면 다시 더 말할 것 없거니와 그렇지 못한 경우라 할지라도 생활 내지 가정을 무시하고 예술을 위하야 종생할 수는 사실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함이다. 왜그러냐하면 생활과 인생 인생과 예술이 불가분의 계열에 서 있고 따아서 생활이나 가정에 대한 연계에서 오는 고통이 예술에 대한 애착이나 정열을 멸살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것임으로써!
宋 影
물론 그 같은 정열과 각오가 있음이다. 이 같은 정열이란 것은 나의 생명임니다. 생명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것과 같이 이 정열 없이는 차라리 안살녀고 함니다.
李甲基
아직 그렇한 심각한 일에까지 부닥처보지못하여서 엇지할는지 모르겠읍니다. 다만 史上에 날아 난 그렇한 고결한 정열을 가젓든 예술가를 누구보담도 존경할 줄은 압니다마는!
韓仁澤
1,문학도로 일생을 마출 결심을 가넛스니까 물질적으로 오는 위협이 제 의지에까지는 침입을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李北鳴
오늘까지 饑死보다 못지 않은 가시의 길을 해염처 나온 몸이니 이 앞으로도 예술에 대한 정열과 각오에는 변함이 없으리라고 생각함니다. 萬雖을 물니치면서 예술의 길로 나아가랴는것도 불행 없는 건설을 위함이니 一意傳心 그 길로 나아가다가 饑死한들 누구를 원망하리오.
蔡萬植
그만한 각오와 (문학에 대한)열정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첫재 부모처자가 饑死한다면 낸들 발바닥을 할터먹고 사는 곰이라고 饑死를 免하겠습니까?
다음 내가 현재 가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내가 문학하기를 고집한다고 부모 처자 밋 내가 饑死한대도 그것은 문학을 하는 罪가<196> 아님니다.
그 다음 지금 정세로 보면 가난이 문학인에게 敵이 아닌 것은 아니나 가난에 못지아니하게 여러 가지 난점이 있읍니다. 쩌나리슴이나 朱筆의......
李一
부모처자의 饑死와 대등 예술이 있으면 한번 모험해 보겠슴니다. 그러나 제이 삼차적 문자유희―惡戱에 불과하니 그런 열정은 암만해도 絞出치 못하나이다.
李石薰
나로서는 지금까지 문학을 한 餘技로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애당초에 그런 餘技를 갖이고 처자를 멕여가리란 비위좋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소!
徐光霽
朝鮮청년의 대다수가 갖이고 있는 늙은 부모를 보양할 그러한 부채는 다행히 갖지 않게 되였다. 그것으로 자식된 도리와 의무라고도 할 수 있으나 나는 어려서 가정의 반역자가 되여 집에서 뛰여나왔고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들이 饑死할지경은 않이며 두분이 다 노령이며 더구나 족하가 벌고 있으니 그러한 지경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妻라는 사람은 내가 없어도 혼자 활동하야 버러먹을 사람 求하였으니 걱정 없으나 나의 길을 닥거나가는데 나의 자식을 갖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럼으로 나는 10여년동안 내가 발버온 그 길을 일생것겠다고 생각한다.
李軒求
목전에 부모처자의 饑死를 빤히 내다보면서 예술경에 도취하는 심경! 불사조의 이상과 가트면서 그 이해가 곤란합니다. 살사 이해야한다기로니 그 신념에 살 수 있을는지 그 무서운 현실에 다닥처보아야겠지요. 樂貧, 鬪貧도 정도문제가 아닐까요?
李孝石
갸록한 정열과 각오이기는 하나 무릇 비현대적임니다. 생활을 벗어나 무엇이 있겠슴니까. 빈곤속에서 걸작이 난다로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중세적 낭만주의랄가요.<197>
李無影
그것은 이미 각오한 바이라. 이제 새삼스러이 생각하지도 않슴니다.
咸大勳
내가 만일 예술에 대한 불타는 욕망이 없었다면 지금쯤은 50,000만원부자는 되였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니 이제 그건긔회 다노치고 다시 돈벌러 떠나지는 못하겠읍니다. 빈곤과 싸우면서도 일생을 문학으로 마치렵니다.
方仁根
과거와 현재에 그러한 정열과 각오로 싸워 왔고 장래도 최후까지 싸워 보려고 합니다.
洪曉民
三千里에서 설문이란 흔히는 「쩌낼이슴」을 基調로 하고 물어 오는 것이 恒列이었는데 이번 설문은 나에게 진실로 뭉클한 무엇을 주엇다. 그것은
첫재 부모처자는 饑死할망정 선생게서는 예술을 위하야 빈곤과 싸우면서라도 일생을 바치겠다는 정열과 각오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얼는 대답하기 힘든 그것인 동시에 또한 이러한 정열과 각오가 없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곧 심각한 질문임과 아울러 심각한 대답을 하자면 「나는 나의 예술을 위하야는 死而後己할 각오가있오」하고 말합니다.
崔永秀
두손을 가슴에 얹고 打診의 묵상을 해보았오. 「藝術」의 경지는 아득하고 「饑死境」은 아직 濛濃한지라 하기 어려우오. 빈곤까지는 몰라도 饑死之境까지는 장담 못하겠오.<198>
<19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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