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제8권 제12호 | |
발행일 | 1936년 12월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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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僧이되고십지안흔가, 文士心境 |
기사형태 | 설문 |
僧이되고십지안흔가, 文士心境
先生서는 그 貧困과「靈의 苦悶」문에 차라리 山속에 드러가 僧이되고 십흔가 업슴니까 자살이라도 해버릴생각을 가진 적이 엇스심니까
春園
입산 수도하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 있었읍니다. 온갖 世屢를 깨끗히 떠러버리고 이 몸이 이 세상에 태나든 그때와 같은 청정한 육신과 사념 없는 영을 안고서 깊은 산 암자 속에, 맑은 하늘, 닷는 구름, 흐르는 물껼소리로 더부러 다만 몃해라도 사라 보고 싶었읍니다. 수년전 내가 朝鮮日報社를 나와서 금강산으로 내다른것도 오직 이뜻에서 웨다. 그때 생각에는 그저 백날만, 다만 석달열흘만이라도 峯아래 조고마한 절깐속에 있어진다면 내 생명은 정말 오른 길로 드러서, 마치 따뜻한 일광을 만난 봄날의 나무와 같이 싱싱커질것같았읍니다.
그러나 세속의 世屢가 이것조차 이루게 못합니다. 자살은 지금은 생각한 적이 없읍니다만은 칠팔년전에는 그러한 생각을 하여본 적이 있섯고, 그리고 그 자살의 방법까지 내 마음으로 작정한 일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제와 서는 제손으로 제생명을 끗는다는 것은 이以上 하늘에 큰죄 짓는일이없고, 인류와 동포에 송구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혹 세인들은 병고때문에 이런 생각을 가지는 줄 알것이외다만은 나는 병에 대하여는 아무런 두러움과 실증을 가지지 않고 있읍니다. 육체의 병은 초월한 셈이지요.
岸 曙
산 속에 들어간다고 고민이 없어질 것이 아니니까 바로 생명을 끊어서 모두 허무에다 파뭇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나는 이보다? 보살것없는 生이나마 그대로 끓어 가면서 돌모양으로 無言不語속에서 혼자 외로이 회색의 世相을 들어다 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답지 아니한 나의 自嘲외다.<199>
朴英熙
그런 생각 한일은 없오.
想 沙
問或은 자살을 생각도 해보는 일이 없지 않지만, 정신에 이상이 생긴다든지 비상한 타격이나 밧기전에는 실행에까지는 客易치 않을 것입니다. 빈곤과 「靈의苦悶」에 상관적 연락도 없겠지마는, 빈곤 때문에 자살은 빈곤이 허영심을 상케하는 이상으로 수치라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실행않될것같습니다. 靈의 고민이 자살의 원인 되는 경우는 별문제일 것이외다.
宋 影
결코 遁世니 혹은 壓世같은 소극적 敗北은 가지고 있는 일이없음니다.
한없는 靈의 고민보다는 貧의 희농을 바들 때에도 적극적 반발적 태도를 가젓섯슴니다. 태도보다도 자연한 생리적 현상이여슴니다.
竹林七賢이나 五柳居士같은 고대의 淸廉慷慨한 기풍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님니다마는 이것은 너무 敗頹적이였슴니다. 괴로울사록 더―살어서 스스로 괴로움을 물니치고싶은 것이 생활태도이며 철학임니다.
全武吉
빈곤은 면한 생활이나 영의 고민이라고 할 자는 항상 몸을 떠나지 않는 문제로서 일시산간의 은거생활이나 자살을 생각해 본 감상기도 있었으나 그것이 한 것 약자의 일임을 알면서 붙어서는 고민에서 얻는 인생의 맛을 초연히 苦笑하면서 대함이 한 快味를 줌니다. 주제넘은 말로 달관 비슷한 무엇이 나섬니다.
李軒求
사람인 이상 더군다나 그늘의 현실에 암담히 생활하는 자로서 이런 衝擊을 강열히 또 그리고 不絶히 느끼지 안는다면 그는 분명코 「超人」이거나 「非人」일까 합니다.
梁柱東
종종 無常感 때문에 佛說에 끄을려 圓覺經을 보기도하고 입산수도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럿은 빈곤 때문이 아니오 배가 불럿기 때문이니 貴問에 이른바 靈의 고민인가 합니다. 이러한 정도의 善知識이기고<200> 보니 자살은 물론 생각한 적이 없고 입산은 이즈음 산중에 맛츰 절이 없기 때문에 단념하고 있습니다.
徐光霽
예술가는 樂天家래야 될 줄 생각한다. 어구나 朝鮮과 같은 환경에서는...그럼으로 나는 요사히 점점 체중이 느러가 14貫이나 되였다. 그렇다고 잠보다 음식을 더 먹는 것은 않이다. 식물의 영양보다 마음의 영양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李一
빈곤은 밧보지안을 特恩種이 있습데다만 靈의 고민은 누구나 면치못하듯 한 는대 그러나 靈이라는 놈도 그 육신에 물질적 편리를 잘 공급하면 그만 취해서 즐거워 하지만 이것 버리기 위하야 僧이 된다는 생각은 안이함니다. 僧도 非僧과 同色 同種이 있슴이외다. 자살! 그놈한번 해보고 십은 것인 대 해보고 십흔때와 하지못하는때가 동급수로 진행함니다. 자살도 용기 있는 사람의 작품인가 하나이다.
李孝石
산 속에서 적적해 엇더케 지냄니까. 이기든 지든 간에 세속에서 싸워야죠.
洪曉民
선생께서는 빈곤과 「靈의 고민」 때문에 차라리 산 속에 드러가 僧이 되고 싶은 때가 없읍니까? 자살이라도 해버릴생각을 가진 적이 없으심니까 하는 질문이다. 허나 이 질문은 심각하것만은 사실이나 그라지 僧되고 자살이라고까지 붓치도록 내가 빈곤과 「靈의 고민」을 느끼엇을까 생각해 보니 별로히 그런 것이 없다. 나는 오늘까지 이런 소극적인 고민은 해본 일이 없다. 이런 소극적인 고민을 하랴고 할진댄 차라리 예술 도에 아니 드러슬 것이다.
方仁根
그러한 때가 순간적으로 날 때도 있지마는 역시 참고 견듸려합니다.
崔貞熙
僧도 안되고 자살도 안 하기로 단단히 작정을 해놓았읍니다.
金恍燮
현실을 떠나지안을랴고 하면서도 혹시는 산 속이나 들어가고 십흔때가 있슴니다. 자살이라도 하여스면 하기도 해본 적이 있슴니다.
咸大勳
때때로 한가히 전원생할을 하면서 창작에 열중하고 싶옵니니다. 자살이나 僧侶생활은 넘우도 퇴영적이니 그만줄가 합니다.
李無影
한동안(이십사오세까지는) 빈곤이 염세관을 이르키게했읍니다마는 최근에 와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나는 항상 나는 정당한 죽엄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마는 자살은 하게 된다면 작가로서의 자아의 무능을 깨닷는때 그때일 까지 합니다. 현재의 생활이란 자아의 무능을 깨달으면서도 이른 캄프라쥬하에 시일은 느리고보는것에 불과합니다.
李石薰
지금까지 그만치 심각한 고민을 경험하지않엇으나 세상에 무엇을 못해서 산중의 僧을 원하겠소?
蔡萬植
도를닥는 僧이 되자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어려우니까 어느 절이고 밥을 먹여 준다면 가서있어보고싶은 생각이 각끔남니다. 자살하고 싶은 때도 많습니다. 단 그것은 말하신 바 「靈의 고민」류는 아님니다. 대체 인생이란 것이 이따우로 살어도 사는 것이냐 하는 치사스럽나는(그런 까닭으로)너무도 동물적 본능만에 억매어 생명을 지지만 하려는 내자신이 입살 머리스러워서 그래 자살을 해바리고 싶은 생각이 시방 당장에도 무럭무럭 남니다.
韓仁澤
2, 그런 피난적압세적 생각을 갖인적이 없읍니다.
李北鳴
僧은 비현실적 존재이오 자살은 敗北者의 향락으로 생각되니 차라리 전사가 거륵한 행동이라고 봅니다. 靈의 고민이 극도에 달한다면 이마에 수건동이고 밀구구마를 미나 목도군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인력거를 끌지오.
李甲基
2, 자살하고 십든 시절을 지난 지는 벌서 한3년 되는가 보이다.
僧侶까지는 아직 되고 싶지는 아니하나 여하튼 냉혹한 世事現實에서 도피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번민히 안 되는 줄 알고 보니 다만 사라 가는 대로 사라 가자 할 뿐이지요.
安含光
「靈의 고민」 때문에 때로 자살이라도 해 버릴 생각은 한두 번 가저섯고 그때마다 양심을 살니려는 자는 모름직이 자살의」길밖엔 업다 는 역리적인 생각에도 지배되여섰스니 세상이란 원체「자기를 기만할 수 있는 인간」만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오 하나 산 속에 드러가 僧되고 싶은 생각은 한번도 없슨가함니다.
閔丙徽
가을의 細雨가 쏘할 때 그 계절의 終幕을 고하는 쌀쌀한 바람 불때면 곳없는 슬픔이 마음속에 기여드는때가 만타.
인간은 웨나면서 죽는 것인고? 끝없는 인간의 적막을 느끼면서! 죽엄을 생각한때 한두 번이 아니였고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더욱히 내 자신이 타고난 운명 남의 집의 자식으로 이해 없는 사랑을 받을 때―되지 않은 무리들의 비인간적 橫行을 볼 때 아닌게 아니라 僧이 되고 싶흔때 많엇다.
親志들은 나를 말해 낙천적인 인간으로 본다. 그러나 비록 내스사로 사람들의 앞헤서 간교스럽게 감상적으로 보히고 싶허하지 않으며 염세적인 푸념을 내놓으려고 하지안는만큼 속깊은 애수―靈적 고민을 느끼는 때 그 누구에게 지지않을것이다.
嚴興燮
그런새각을 한때는 해보왔음니다. 그렇나 그것도 벌서 피가 용솟음치든 10년 전에 기분시대의 일임니다.
지금은 다만 沈*한 분위기 가운데서 야생초처럼 참고 버틔고 살감니어다.
―僧? 自殺? 이것은 결국 敗北者의 소아병적 자위수단에 지나지 안음니다.
柳完熙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가저본일도 없고 또한 가지려고도 하지안슴니다. 한번 현실 우에 등장한 이상 끝까지 싸어서 너머지는 깨끗한 전몰자는 될지언정 스사로 패퇴자의 치욕은 남기고 싶지 않은 때문임니다.
崔永秀
특별히 「빈곤」이라든가 「靈의고민」이라고 지적하긴 어려우나 때로 僧을 그리고 때로 죽엄을 새각한일이 많으오.<203>
<199-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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