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유럽 최대의 몀문 합스브르그 家의 황녀로 태어나

프랑스의 왕비가 된 것은 운명의 우연이었을까?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한 것은 역사의 필연이었을까?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과연 그녀였을까?

참 많은 생각과 의문이 든다.

허영과 음모의 대명사 베르사유의 장미! 마리 앙투아네트! 기오틴 단두대에서는 날 아침 마리 앙투아네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없는 아이들 걱정에 눈물을 쏟으면서 페르센을 그리워했을까?

비극은 슬프다.

마리 앙투아네트! 한 번만 더 생각하고 인생의 방향을 달리 잡았더라면 이렇게 비참한 결말만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인생에는 늘 조언이 필요하다.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통해서, 훌륭한 책들을 통해서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한 번 사는 인생 욕먹지 말고 사랑받으면서 잘 살아야지! 호호호호홍응! 개그우먼 권진영

 





베르사유의 장미  테판 츠바이크(1881~1942)가 1932년 발표한 평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출생: 1755년 11월 2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공주였다.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분방하게 성장한 그녀는 11세부터 미래의 왕비교육을 받는다.

 

14살 : 1770년 5월 16일, 14살 때 루이 16세와 화려한 결혼식을 치른다.

미래의 왕비로써 갖추어야할 기본 법도를 교육받는다.

왕비는 신분이 낮은 자에게 먼저 말을 걸지 말라고 가르친다.

어려서부터 격이 낮은 자들은 모두 천한 것이니 혐오하도록 가르친 것이니 백성의 삶이 어떠한지 알 길이 없다.

19세 : 1774년 남편이 루이 16세로 즉위하자 마리는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고,

                 남편으로부터 베르사유의 프티 트리아농 궁전을 선물 받았다.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귀족부인들이 이를 따라했다. 스타일 장식 로코코 여왕으로 불렸다.

루이 16세는 성불구(뒤에 회복) 18세의 멋쟁이 악셀 페르센 백작과 만나 로맨스 계속된다.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귀족부인들이 이를 따라했다. 스타일 장식 로코코 여왕으로 불렸다.

 

23세 : 1778년 12월 19일 첫 딸 마리 테레즈를 출산했다.

정치놀음에 관심없는 왕비는 무었을 입을까. 머리모양을 어떻게 할까. 액세서리는.., 뭐하고 놀지.....오페라 연극관람 온갖 사치로 빚을 지자 도박에 손을 댄다.

귀족부인들은 돈을 잃어주고 남편의 인사 청탁을 이뤄냈다.

 

가면무도회에서 푸른 눈빛의 폴리니아크 백작부인을 보자마자 반해서 궁정으로 불러들여 어디고 함께 팔짱을 끼고 다닐 만큼 사랑에 빠져있었다.

 

백작부인은 남들이 시샘 할 만큼 총애를 얻자 그의 일족들이 궁내에서 독단적인 전행을 일삼았다.

사치와 파타의 향락에 빠진 왕비는 보석 목걸이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주범인 라모트는 감옥을 탈출했는데 민심은 왕비가 주범이며 라모트의 탈옥 또한 왕비가 주도 했다고 믿게 되었다.

굶주리던 백성들은 결국 거리로 몰려 나와 혁명의 기쁜 함성을 질렀다.

왕은 단두대에 올랐고 왕비는 루이 까페의 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38세: 1793년 10월 16일 그리고 그녀 역시

 앙투아네트




                                                     정월아  정월아 바로가기






'관련인물 > 나혜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우영  (0) 2015.04.04
최린 검색  (0) 2015.04.04
로자 룩셈부르크 (역사다큐)   (0) 2015.03.21
한국근현대잡지자료  (0) 2015.03.18
관련링크  (0) 2015.02.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