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Les fluers du mal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의 불우한 생애 (김붕구) (요약)  
     
  <악의 꽃>의 구조와 새 전율의 창시  
   
 

<악의 꽃>은 보들레르가 그의 전 생애를 바쳐 인간의 영과 육의 세계를 잔혹하리만치 예리하게 파헤쳐 그것을 정밀한 구성으로 전개시킨 시다.

이 시는 위고의 평대로 새로운 전율의 창시이며 시의 세계에 있어서는 <새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며, 이 한 권의 시집이 후세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악의 꽃>은 세상에 출간되어 나오기가 무섭게(1857년 6월 25일) 공격, 혹평, 야유의 기사가 빗발치듯 일제 사격을 가했고,

기소되어 법정의 유죄 판결을 받아 그 중 6편이 삭제되고 벌금형을 언도받는 등 수난의 선풍 속에 서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시인은 후세의 명성과 영광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원성과 사분신의 미학  
     
 

이 <악의 꽃>에는 퇴폐적인 미라든가 증오, 고뇌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거룩한 미의 예찬, 현상의 세계로 무한히 상승하는 노래도 있다.

또 <악의 꽃>은 우선 제목부터 하나의 상반성을 지니고 있다.

즉 정正과 사邪의 이원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인 자신이 이원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이원적 성격이 그의 몽상이나 행위에 반영되어 그의 시 속에서 여러가지의 상반된 언령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공유하는 갈등과 상극적인 경향은 정신성, 이상, 천상계를 향하는 상승의 소망과 물질성, 현실의 쾌락, 지옥을 향하는 전락의 유혹으로 격화되고 동시에 매우 도식화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삶의 공포와 황홀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시인 보들레르는 공포 속에서 황홀을, 황홀 속에서 공포를 찾아낼 수가 있었으며 바로 이 점이 <악의 꽃>의 작자다운 면이기도 하다.

 
   
  저주 받은 시인의 예증  
   
 

보들레르의 길지 않은 생애를 보면 그는 삶의 공포를 버리지 못한 나머지 만년에 들어서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그 자체를 혐오하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그는 부채와 온갖 질병 속에서 무엇엔가 쫏기듯이 죽어간 것이다.

이 점으로 볼 때 보들레르야말로 항상 극과 극이 부딪쳐야 하는 저주받은 생애를 살다가 간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정사의 갈등, 고뇌, 불행, 절망, 비운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될 것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시의 마술로 고뇌에서 기쁨을 낚아냈으며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가면서 살아갔던 것이다.

보들레르는 어디까지나 고독한 시인이었다. 항상 고독을 되씹으면서 이상을 추구했고 삶의 공포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고독은 끝내 오늘의 우리에게 <악의 꽃>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겨주었다.

1857년 36세가 되던 해에 보들레르는 첫 시집인 동시에 영원 불멸의 명시 <악의 꽃>을 펴냈다.

이 <악의 꽃> 초판에 수록된 101편의 시 가운데 대부분의 시편은 30세 이전에 씌어진 것들이다.

또 126편의 시를 6부로 나누어 수록한 <악의 꽃> 재판은 1861년에 출간되었는데,

여기서 시집 전체에 걸친 구조에 대한 의도가 아주 뚜렷이 드러나며 절묘한 전개를 보여준다.

 
   
  지상에 유배되어, 운명의 일격을 받다  
   
 

젊은 댄디로서 탐미적 생활 때문에 망부의 막대한 유산을 탕진해버린 보들레르는 일생 동안 그를 따라다닌 그 저주스러운 빚에 쫓기기 시작했으며 마침내는 친족 회의에서 금치산 선고를 받고 사회 낙오자로 인생을 출발하게 되고 만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이 시기에 저명한 시인, 작가, 예술가, 평론가, 젊은 문학 동인들과 교유 관계가 이루어져 불후의 문제작 <악의 꽃>을 잉태한다.

보드레르는 젊었을 때부터 회와 숭배를 "유일의 정열"이라고 생각, 죽을 때까지 이 취향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취향은 <악의 꽃> 중에 많은 시상을 유발했고, 벌써 반비구상화 같은 파리 풍경들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최초의 저서인 미술 평론집 <1854년 미전평>, <1864년 미전평>과 그 밖의 많은 미술평을 발표하여 프랑스 최초의 독창적인 미술 평론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보들레르와 여인들  
   
 

<악의 꽃 >속에는 40여 편의 연애시가 들어 있는데, 잔 뒤발, 사바티에 편과 그밖의 여인들편 등 4군으로 나뉘어져 있다.

보들레르가 잔을 알게 될 무렵 그녀는 극단에서 단역을 맡고 있었다. 흔히 검은 비너스로 불린 이 흑백 혼열녀는 실제로 미인은 아니었으나 그의 시에서는 매우 관능적이고 매력이 넘치며 눈은 검고 크며 물결치듯 숱많고 아름다운 머리를 가진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무식하고 부정하며 일찍부터 술과 방탕으로 건강을 잃은 그녀는 보들레르를 항상 괴롭혔으나 그는 외로울 때마다 그녀에게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 그리하여 그녀와는 동거, 또는 별거하는 생활을 무려 20년 동안이나 이어나갔다.

사바티에 부인은 흰 비너스라 하여 검은 비너스인 잔과 함께 보들레르에게 시적 영감을 주어 그의 시작에 큰 영향을 끼쳤다.

흰 비너스는 미모의 여인이어서 그녀 주변에는 언제나 문학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당시 사교계에서는 그녀에게 여의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돈 많은 은행가의 정부 노릇도 하고, 언제나 염문을 꼬리처럼 몰고 다닌 사바티에 부인이었지만 보들레르는 미의 여신으로 숭배하여 익명의 연애시와 편지를 3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보냈다.

사바티에 부인에게 보낸 연애시와 편지 속에서 그는 그녀를 가리켜 수호 천사라고 할 만큼 그녀를 흠모했으나, 마침내 그녀와 육체적 정열을 불태우게 된 순간(악의 꽃 소송 사건 직후) 오랜 동안 간직했던 그만의 플라토닉 러브의 성이 무너지면서 거꾸로 그녀의 타오르는 정열을 한사코 무마하여 다시 따스한 우정 관계로 돌아간다.

 

이 두 비너스 외에도 그에게는 또 하나의 비너스가 있었다. 푸른 눈의 소유자 마리 도브룅이라는 2류 배우였다.

잔, 사바티에, 마리 등 3사람의 비너스와 시인 보들레르와의 교재는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져 복잡하게 얽혀 나가지만 복합적인 편력의 소유자 보들레레에게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알바트로스 쓰러지다  
   
 

그 명성과 영광을 전취할 그의 천부의 재능을 좀더 일찍 인정해주었던들! 무슨 소린가? 어차피 그는 저주받은 시인이어야만 했던 것이 아닌가! 단네(지옥의 처형된 자)의 모든 요건이 갖추어져야 했던 것이 아닌가!

< 악의 꽃>의 독보적인 고유한 그의 영지에 이르기 위하여는 지상에 유배된 알바트로스(거대한 바닷새)의 온갖 수모와 시련을 헤치고 나가야 했으며, 그밖에 다른 깊이란 없었다.

그리하여 브뤼셀까지 쫓겨가서 2년간을 진구렁 속에 빠져들 듯이 저주받은 시인의 숙명이 남김없이 이루어져, 산 채로 지옥에 갇힌 그에게 남은 유일한 탈출구를 넘어서며 시인은 1867년 8월 31일 46세에 그의 모친의 품에 안긴 채 파란많았던 이승의 삶을 떠나버린다.

 

그의 시에는 조화와 기이, 공포와 황홀, 애정과 증오가 교차되어 그의 어쩔 수 없는 모순, 당착의 이원성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그것이 그의 미학이 되고 철학이 된 것이다.

그의 시에서 엿볼 수 있듯이 하나의 독자적인 미학과 형이상학의 결합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음도 앞에서 말한 바같이 그의 독특한 성향 때문이었다.

보들레르는 고전적 시인이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의외로 현대 성향이 짙다. 특히 미학에 있어서는 단연 서구적이다. 그래서 그를 현대시의 시조라고 하는 것이 오늘날의 구미 문학에서 정평으로 되어 있다.

보들레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도 그의 시를 대했을 때 현대적인 이미지를 공감하게 된다.

그는 대도시의 현대적 삶의 리듬과 생활 조건을 파악한 최초의 시인이다. 한 세기를 앞지른 그의 미감각의 날카로움은 여인의 허스키 목소리에 대한 예찬, '애숭이 여인형'의 매력, 추상화 내지 비구상화의 가능성, 원시 예술의 재발견, 초현실주의 시학, 사진 예술론 등 실로 놀라운 선구적 안목을 보여준다.

최근 미국 학계에서 컴퓨터 통계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에 대한 연구, 해설 등의 문헌은 전세계에 걸쳐 1만 편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의 시인으로서의 세계성과 현대성의 명백한 증명이라 하겠다.

 
   
  보들레르의 시 편을 참조하십시오


 

 

The Flowers of Evil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육체를 괴롭힘은 어리석음, 과실, 죄악, 그리고 탐욕. 거지가 이를 기르듯, 우리들은 서글픈 회한을 키운다"-이러한 구절로 시작되는 〈독자〉라는 서시()가 있고, 전편은 〈우울과 이상〉, 〈악의 꽃〉, 〈반항〉, 〈술〉, 〈죽음〉의 5부로 나뉘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보들레르가 21세 무렵부터 20년 간에 걸쳐서 끊임없이 창작열을 불태운 결과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악의 꽃〉은 관능과 음탕이 어둡게 묘사되어 있는 금단() 시편이며, 〈반항〉은 시인의 저주와 모독, 인류의 절망이 조물주에게 향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보들레르에게 특질적인 역설적 기원()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술〉에서는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이 매춘부의 새하얀 손 안에 있듯이 도취된 색조로 노래 불러졌고, 최후에 〈죽음〉이 잇따른다. 죽음은 허무로서가 아니고 살아가는 용기와 힘을 부여해 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1861년 시집이 재판되었을 때 〈우울과 이상〉 다음에 첨가된 〈파리 소묘〉는 프랑스 시에 있어서 처음으로 군집()을 창조했다. 그것은 낭만주의 시인으로서는 아무도 읊지 않았던 병적이고 질환적인 반자연의 도시 속에서 꿈틀거리는 숲인 것이며, 빈곤과 속됨에 질식된 도시의 인간상이 깊이 있는 회화적 표현 속에 묘사되어 있다.

〈악의 꽃〉은 풍속 교란의 혐의로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으나 세상의 식자들은 이미 이 시집을 걸작으로 인정했으며, 낭만파의 거장이라고 불리던 빅토르 위고는 보들레르에게 서신을 보내어 "하늘과 지옥에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처참한 빛을 그대는 부여했다. 그대는 새로운 전율을 창조한 것이다"라고 격찬했다.

이 새로운 전율이라 함은 지금까지 낭만파도 고답파()도 '미()' 라고 느끼지 않았던 종류의 조화된 아름다움인 것으로, 보들레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의 미의 정의를 찾아냈다. 그것은 강렬하고도 슬픈 그 무엇인 것이다. (···) 신비라든가 회환 같은 것도 미의 특질인 것이다. (···) 그리고 불행이 없는 곳에서는 미의 전형을 거의 인식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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