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 1926∼1956
1926 강원도 인제 출생
1944 황해도 재령 명신중학교 졸업. 관립 평양의학전문학교 3년제 입학
1945 광복 후 학교를 중단하고 상경. 종로 3가 2번지 낙원동 입구에 서점 마리서사를 개업
1946 12월,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데뷔
1948 입춘을 전후하여 마리서사를 폐업. 김 경린, 양 병식, 김 수영, 임 호권, 김 병욱 등과동인지 <신시론> 제1집을 발간. 자유신문사에 입사
1949 김 경린, 김 수영, 임 호권, 양 병식 등과 5인 합동시집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唱} 발간. 경향신문사에 입사. 동인 그룹 <후반기> 발족
1951 경향신문사 본사가 있는 부산과 대구를 왕래 종군 기자로 활동
1952 경향신문사를 그만두고 대한해운공사에 취직
1953 환도 직전. 부산에서 <후반기>의 해산이 결정됨
1955 화물선 남해호의 사무장으로 미국을 여행. 귀국 후 <조선일보>에 [19일간의 아메리카]를 기고. 대한해운공사 퇴사. {박인환 선시집} 간행
1956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
1986 시집 {木馬와 淑女} 간행

  강원도 인제 출생.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 중퇴(1945).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를 발표하면서 등단. 1959년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기수로 각광을 받았다. 1940년대의 모더니스트로 알려진 이들의 모더니즘 운동은 김기림이 제창한 반자연(反自然), 반서정(反抒情)의 기치에 1940년대 후반의 시대고(苦)가 덧붙여진 것으로 확대되었다. 『후반기』 동인으로 모더니즘 운동을 계속하면서도 도시적인 동시에 인생파적인 비애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기타 동인의 시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박인환선시집』(산호장, 1955), 『목마와 숙녀』(근역서재, 1982)

             박인환의 시세계에 대하여

                                     - 이동하 (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 교수 )

  한국의 근대 시사 가운데서 1945년의 해방으로부터 1960년의 4.19에까지 이르는 시기의 시는 가장 덜 알려지고, 가장 덜 논의된 부분에 속한다. 그 이전의 시, 즉 20년대에 나온 시나 30년대에 나온 시들은 학계와 비평계 양쪽에서 거듭거듭 다루어졌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모은 앤솔러지도 심심찮게 발간되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시인들은 전문적인 연구자들에게나 일반 독자들에게나 똑같이 친숙한 존재가 되어 있다. 그리고 4.19 이후의 시들 역시, 전문적인 연구자들에게나 일반 독자들에게나 똑같이 친숙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20년대 혹은 30년대의 시와 다를 바 없다. 이 시기의 시들은 아직 학술적인 연구의 대상으로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고 있지만, 비평계의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아왔다는 점, 그리고 신작시집이나 시선집의 형태로 일반 독자들에게 거듭거듭 소개되어왔다는 점으로 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친숙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해방에서 4.19에까지 이르는 시기의 시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해방 이전에 이미 등단했던 시인들과 김수영, 김 춘수, 신 동엽 등 몇몇 <스타 시인>의 경우를 제외하고 보면, 이 시기의 시들은 전문적인 연구자들에 의해서나 일반 대중에 의해서나 거의 외면되어 오다시피 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 결과 이 시기의 많은 시와 시인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객관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풍문들만이 막연하게 흘러 다니는 사태가 빚어지게 되었다.

  왜 이 모양이 되고 말았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 해방에서 4.19에 이르는 시기 자체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다소 모호한 위치에 놓인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보수적인 학계의 시각에서 보면, 이 시기는 현재의 시점으로부터 너무 가깝기 때문에 학술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부적당하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런가 하면, 비평계나 일반 독자층의 시각으로 볼 때는, 이 시기는 현재의 시점으로부터 너무 멀기 때문에 동시대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부적당하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또 너무 멀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역설적인 상황 속에 이 시대의 시는 놓여 있는 셈이다.

  둘째, 해방 이전에 이미 등단했던 시인들이나 해방 이후에 등단했다 하더라도 예외적인 위치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던 몇몇 시인들(여기에는 앞서 이름을 들었던 김 수영, 김 춘수, 신 동엽뿐 아니라 그 밖에도 몇 명이 더 추가되어야 마땅하다)의 경우를 제외하고 보면, 이 시기에 나온 시작품들은 오늘날의 전문적 연구자나 일반 독자를 끌어당길 만한 매력을 결여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물론 하필 그 시대에 재주 없는 사람들이 시단으로 많이 몰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 활동한 시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어로 교육을 받고 자라난 까닭에 우리말을 다루는 데는 지극히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 그리고 대체로 성년의 문턱으로 접어들거나 청년기를 끝내갈 무렵에 4.19의 대지진을 만나 심각한 혼란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점, 이 두 가지가 바로 진정한 이유인 것이다.

  셋째, 아무리 위에서 말한 시기상의 모호성과 이 시대 시 자체의 매력 없음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역시 완전히 빼놓을 수는 없는 또 한 가지 원인으로서, 우리 시대 비평가들의 지나친 편식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지금까지 언급한 두 가지 이유란 학계와 일반 독자층을 위한 변명으로는 성립이 가능한 것이지만 비평계를 위한 변명으로는 성립이 불가능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 동시대적인 관심을 촉발하지 않더라도, 또 별다른 매력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일단은 성실하게, 폭넓게 읽고서 올바른 자리매김을 시도하는 것이 비평가의 직분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시기에 활동한 시인들 중 해방 전에 등단한 사람들과 김 수영, 김 춘수, 신 동엽 등 소수만을 주목하고 나머지는 내몰라라 방치해온 대다수 비평가들의 자세는 결코 정당한 것이었다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나는 해방에서부터 4.19까지에 이르는 시기의 우리 시가 다른 시기의 우리 시에 비할 때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밖에 모아오지 못했으며, 그 결과 별다른 객관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풍문들만이 막연하게 부유하는 사태가 현출되었음을 말하고 그렇게 된 이유를 내 나름대로 분석해본 셈이거니와, 박 인환(1926-56)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이야기를 전형적으로 예증해주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그와 같은 판단이 가능하다.

  첫째, 박 인환이 시작 활동을 전개한 시기는 [거리]라는 작품을 {국제신보}에 발표하여 데뷔한 1946년 12월부터 [죽은 아포롱]을 발표한 1956년 3월까지에 걸쳐 있으며, [죽은 아포롱]이 발표된 지 3일 후에는 그 자신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거니와, 이로써 볼 때 그의 시적 생애 전체가 해방에서 4.19까지에 이르는 시기 안에 포함됨을 알 수 있다.즉, 그는 이 시기를 떠나서는 전혀 논의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둘째, 그의 시세계에 대한 본격적 접근이 지금껏 전혀 행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수는 매우 적다. 특히 일관된 프로그램에 근거하여 다수의 시인론을 기획, 청탁, 수록한 논문집 혹은 평론집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덩달아 언급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경우를 제외하고 순전히 그에 대한 연구자 자신의 자발적 관심에 기초하여 논문이나 평론이 씌어진 경우는 극히 희소하다.

  셋째, 그의 시세계에 대한 본격적 접근이 이처럼 희소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에 대한 가십 차원의 풍문은 대단히 풍부하고 또 화려한 편이다. 박 인환은 아마 이 점에 있어서는 1950년대의 많은 시인들 가운데서도 1.2위를 다투는 존재일 것이다. 마리서사 시절의 낭만과 관련된 풍문들, 후반기 동인회를 둘러싼 얘기들, 환도 후 감상적 실존주의와 폐허의식의 물결에 휩싸인 명동을 누비고 다닌 이른바 명동백작 시절의 에피소드들, 박 인환이 시를 쓰고 이진섭이 곡을 붙인 작품 [세월이 가면]에 얽힌 얘기들, 영화광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얘기들, 그리고 그의 불행한 요절에 관련된 얘기들, 이런 풍문 차원의 얘기들이 그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어 정작 그의 시작품 자체는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인 것이다.

  넷째, 그가 남긴 시작품들 가운데 대부분에는 오늘날의 전문적 연구자나 일반 독자를 끌어당길 만한 매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여기서 내가 <전부>라 하지 않고 <대부분>이라한 것은, 예컨대 [木馬와 淑女] 같은 예외적 존재가 있음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木馬와 淑女]는 전문적 연구자들의 경우에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작품이지만, 일반 독자들로부터는 의심할 바 없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런 작품은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존재이다. [木馬와 淑女]나 이진섭에 의해 작곡되어 널리 불리고 있는 [세월이 가면] 정도를 제외하면, 박 인환의 시 가운데서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

  다섯째, 박 인환이 이처럼 상당히 한정된 수준의 성과밖에 남기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일부로서 우리는 그가 일본어로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에 속하며 또한 청년기에 4.19를 겪고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은 세대에 속한다는 사실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그가 일본어로 교육받은 세대에 속한다는 사실은 그가 살아 있는 우리말을 다루는 데 서툴렀다는 사실과 직결되는데, 이것은 사실 시인으로서는 커다란 불행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가 청년기에 4.19를 겪고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은 세대에 속한다는 사실은 그가 세계를 침착하게,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애쓰는 태도를 갖추지 못하고 추상적인 울분과 센티멘털리즘으로 시종했다는 사실과 직결되는데, 이것 역시 시인으로서는 커다란 불행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에서 정리한 다섯 가지 항목을 잘 음미해보면, 박 인환이야말로 해방에서 4.19까지의 시기에 이루어진 우리 시의 전개과정에서 나름대로 하나의 전형성에 도달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으리라. 물론 앞으로 이 시기의 우리 시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질 경우, 어쩌면 이 시기의 우리 시에 대한 지금까지의 일반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며, 그때에는 지금 내가 박인환에게 붙인 전형성의 패찰을 도로 떼어야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의 시점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결론이 가능한 것이다.
                                          출처: 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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