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이후 

                                                                                                                      청색지, 1939. 5

 

그는 의사의 얼굴은 몇 번이나 치어다보았다.

'의사도 인간이다,

나하고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 이렇게 속으로 아무리 부르짖어 보았으나 그는 의사를 한낱 위대한 마법사나 예언자 쳐다보듯이 보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의사는 붙잡았던 그의 팔목을 놓았다 (가만히 ).

그는 그것이 한없이 섭섭하였다. 부족하였다.

'왜 벌써 놓을까, 왜 고만 놓을까? 그만 보아 가지고도 이 묵은 [老] 중병자를 뚫어 들여다볼 수가 있을까.

' 꾸지람 듣는 어린아이가 할아버지의 눈치를 쳐다보듯이

그는 가련(참으로 )한 눈으로 의사의 얼굴을 언제까지라도 치어다보아 그만 두려고는 하지 않았다.

의사는 얼굴을 십장생화 (十長生畵) 붙은 방문 쪽으로 돌이킨 채 눈은 천장에 꽂아 놓고 무엇인지 길이 깊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길게 한숨 하였다.

꽉 다물어져 있는 의사의 입은 그가 아무리 쳐다보아도 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안방에서 들리는 담소 (談笑)의 소리에서 의사의 웃음소리가 누구의 것보다도 가장 큰 것을 그는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눈물날 만큼 분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병이 그다지 중 (重)치는 아니 하기에 저렇지. '하는 생각도 들어, 한편으로는

자그마한 안심을 가져 오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에도 그가 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팔목을 잡았을 때의 의사의 얼굴에서부터 방산 (放散)해 오는 술의 취기 그것이었다.

'술을 마시고도 정확한 진찰을 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을 하여가며

그래도 그는 그의 가슴을 자제하였다. 

 그리고 의사를 믿었다.(그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그는 그렇게도 의사를 태산같이 믿었다.)

그러나 안방에서 나오는 의사의 큰 웃음소리를 그가 누워서 귀에 들을 수 있었을 때에 '내 병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지 !

술을 마시고 와서 장난으로 내 팔목을 잡았지,

그 수심스러운 무엇인가를 숙고 하는 것 같은 얼굴의 표정도 다 - 일종의 도화극 (道化劇)이었지

! 아 - 아 - 중요하지도 않은 인간 -.'

이런 제어할 수 없는 상념이 열에 고조된 그의 머리에 좁은 구멍으로 뽑아 내는 철사처럼 뒤이어 일어났다.

혼자 애썼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 - 고만하세요, 전작이 있어서 이렇게 많이는 못 합니다."

의사가 권하는 술잔을 사양하는 이러한 소리와 함께 술잔이 무엇엔가 부딪히는 쨍그렁하는 금속성 음향까지도 구별해 내며 의식할 수 있을 만큼 그의 머리는 아직도 그다지 냉정을 상실치는 않았다.

의사 믿기를 하느님같이 하는 그가 약을 전혀 먹지 않는 것은 그 무슨 모순인지 알 수 없다. 한밤중에 달여 들여오는 약을 볼 때 우선 그는 '먹기 싫다.' 를 느꼈다.

그의 찌푸려진 지 오래 인 양미간은 더 한 층이나 깊디깊은 홈을 짓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아무리 바라보았으나 그 누르끄레한 액체의 한 탕기가 묵고 묵은 그의 중병 (단지 지금의 형세만으로도 훌륭한 중병환자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을 고칠 수 있을까 믿기는 예수 믿기보다도 그에게는 어려웠다.

묵은 그대로 타 들어온다. 밤이 깊어 갈수록 신열이 점점 더 높아 기고 의식은 상실되어 몽현간 (夢現間)을 왕래하고,바른편 가슴은 펄펄 뛸 만큼 아파 들어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우선 가슴 아픈 것만이라도 나았으면 그래도 살 것 같다. 그의 의식이 상실되는 것도 다만 가슴 아픈데 원인 될 따름이었다. (절어고 그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나의 아프고 고 (苦)로운 것을 하늘이나 땅이나 알지 누가 아나.'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말을 그는 그대로 자신에서 경험하였다. 약물이 머리맡에 놓인 채로 그는 그대로 혼수 상태에 빠져있었다. 얼마 후에 깨어났을 때에는 그의 전신에는 문자 그대로 땀이 눈으로 보는 동안에 커다란 방울을 지어 가며 황백색 피부에서 쏟아져 솟았다. 그는 거의 기능까지도 정지되어 가는 눈을 치어들어 벽에 붙은 시계를 보았다. 약 들여온 지 10 분, 그 동안이 그에게는 마치 장년월 (長年月)의 외국 여행에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약탕기를 들었을 때에 약은 냉수와 마찬가지로 식었다. '나는 이다지도 중요하지 않은 인간이다. 이렇게 약이 식어버리도록 이것을 마시라는 말 한마디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는 그것을 그대로 들이마셨다. 거의 절망적 기분으로, 그러나 말라빠진 그의 목을 그것은 훌륭히 축여주었다.

얼마 동안이나 그의 의식은 분명하였다. 빈약한 등광 (燈光) 밑에 한쪽으로 기울어져 가며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그의 우인 (友人)의 <<몽국풍경 (夢國風景)>>의 불운한 작품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평소 같으면 그 화면 (畵面)이 몹시 눈이 부시어서 (밤에만 )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하여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을 그만하여도 그의 시각은 자극에 대하여 무감각이 되었었다. 몽롱히 떠올라 오는 그 동안 수개월의 기억이 (더욱이 ) 그를 다시 몽현 왕래 (夢現往來)의 혼수 상태로 이끌었다. 그 난의식(亂意識) 가운데서도 그는 동요 (童搖)가 왔다.- 이것을 나는 근본적인 줄만 알았다.

그때에 나는 과연 한때의 참혹한 걸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의 거짓을 버리고 참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 ' 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만 믿었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에 있어서는 근본적은 아니었다. 감정으로만 살아나가는 가엾은 한 곤충의 내적 파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나는 또한 나로서도, 또 나의 주위의 - 모든 것에 대하여 굉장한 무엇을 분명히 창작 (?)하였는데, 그것이 무슨 모양인지 무엇인지 등은 도무지 기억할 길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동안 수개월 - 그는 극도의 절망 속에 살아 왔다 (이런 말이 있을 수 있다면 그는 '죽어 왔다 '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 급기야 그가 병상에 쓰러지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을 순간 - 그는 '죽음은 과연 자연적으로 왔다.' 를 느꼈다. 그러나 하루 이틀 누워 있는 동안 생리적으로 죽음에 가까이 까지에 빠진 그는 타오르는 듯한 희망과 야욕을 가슴 가득히 채웠던 것이다. 의식이 자기로 회복되는 사이사이 그는 이 오래간만에 맛보는 새 힘에 졸리었다 (보채어졌다 ). 나날이 말라 들어가는 그의 체구가 그에게는 마치 강철로 만든 것으로만, 결코 죽거나 할 것이 아닌 것으로만자신 (自信)되었다.

그가 쓰러지던 그 날 밤 (그 전부터 그는 드러누웠었다. 그러나 의식을 잃기 시작하기는 그 날 밤이 첫 밤이었다 ) 그는 그의 우인에게서 길고 긴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글로서 졸렬한 것이겠다 하겠으나 한 순한 인간의 비통을 초 (抄)한 인간 기록이었다. 그는 그것을 다 읽는 동안에 무서운 원시성 (原始性)의 힘을 느꼈다. 그의 가슴속에는 보는 동안에 캄캄한 구름이 전후를 가릴 수도 없이 가득히 엉키어 들었다. '참을 가지고 나를 대하여 주는 이 순한 인간에게 대하여 어째 나는 거짓을 가지고만 밖에는 대할 수 없는 것은 이 무슨 슬퍼할 만한 일이냐.' 그는 그대로 배를 방바닥에 댄 채 엎드리었다. 그의 아픈 몸과 함께 그의 마음도 차츰차츰 아파들어왔다. 그는 더 참을 수는 없었다. 원고지 틈에 낑기어 있는 3030 용지를 꺼내어 한두 자 쓰기를 시작하였다. '그렇다, 나는 확실히 거짓에 살아왔다.- 그때에 나에게는 체험을 반려 (伴侶)한 무서운 동요가 왔다.- 이것을 나는 근본적인 줄만 알았다. 그때에 나는 과연 한때의 참혹한 걸인이었다. 그러나 오늘까지의 거짓을 버리고 참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 '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만 믿었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에 있어서는 근본적은 아니었다. 감정으로만 살아나가는 가엾은 한 곤충의 내적 파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나는 또한 나로서도 또 나의 주위의 모오든 것에게 대하여서도 차라리 여지껏 이상 (以上)의 거짓에서 살지 아니하면 안 되었다.........., 운운.' 이러한 문구를 늘어놓는 동안에 그는 또한 몇 줄의 짧은 시 (詩)를 쓴 것도 기억할 수도 있었다. 펜이 무연 (無聯)히 종이 위를 활주하는 동안에 그의 의식은 차츰차츰 몽롱하여 들어갔다. 어느 때 어느 귀절에서 무슨 말을 쓰다가 펜을 떨어뜨렸는지 그의 기억에서는 전혀 알아낼 길이 없다. 그가 펜을 든 채로,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아버린 것만은 사실이다.

의사도 다녀가고 며칠 후, 의사에게 대한 그의 분노도 식고 그의 의식에 명랑한 시간이 차차로 많아졌을 때, 어느 시간 그는 벌써 알지 못할 (근거 ) 희망에 애태우는 인간으로 나타났다. '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그에게는 단테의 <<신곡 (神曲)>> 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도 아무것도 그의 마음대로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오직 그의 몸이 불 건강한 것이 한 탓으로만 여겨졌다. 그는 그 우인의 기다란 편지를 다시 꺼내어 들었들 때 전날의 어두운 구름을 대신하여 무한히 곧센 '동지 '라는 힘을 느꼈다. '××시 ! 아무쪼록 광명을 보시오 !' 그의 눈은 이러한 구절이 쓰인 곳에까지 다다랐다. 

 그는 모르는 사이에 입 밖에 이런 부르짖음을 내기까지하였다.

 

'오냐, 지금 나는 광명을 보고 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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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

 

                                                                                                               중앙, 1936. 7

 

 

바른 대로 말이지 나는 약수보다도 약주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술 때문에 집을 망치고 해도 술 먹는 사람이면 후회하는 법이 없지만 병이 나으라고 약물을 먹었는데 낫지 않고 죽었다면 사람은 이 트집 저 트집 잡으려 듭니다. 우리 백부께서 몇 해 전에 뇌일혈로 작고하셨는데 평소에 퍽 건강하셔서 피를 어쨌든지 내 짐작으로 화인 한 되는 쏟았건만 일주일을 버티셨습니다. 마지막에 돈과 약을 물 쓰듯 해도 오히려 구할 길이 없는지라 백부께서 나더러 약수를 길어 오라는 것입니다. 그때 친구 한 사람이 악박골 바로 넘어서 살았는데 그저 밥 국 김치숭늉 모두가 약물로 뒤범벅이었건만 그의 가족들은 그리 튼튼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 먼저 해에는 그의 막내 누이를 페환으로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은 미신이구나 하고 병을 들고 악박골로 가서 한 병 얻어 가지고 오는 길에 그 친구 집에 들러서 내일은 우리 집에 초상이 날것 같으니 사퇴 시간에 좀 들러달라고 그래놓고 왔습니다.

백부께서는 혼란 된 의식 가운데서도 이 약물을 아마한 종발이나 잡수셨던가 봅니다.

그리고 이튿날 낮에 운명하셨습니다. 임종을 마치고 나는 뒷곁으로 가서 5 월 속에서 잉잉거리는 벌떼 파리 떼를 보고 있었습니다. 한물 진 작약 꽃이 파리하나 가만히 졌습니다

익키 ! 하고 나는 가만히 깜짝 놀랬습니다. 그래서 또 술이 시작입니다.

백부는 공연히 약물을 잡수시게 해서 그랬느니 마니 하고 자꾸 후회를 하시길래 나는 듣기 싫어서 자꾸 술을 먹었습니다.

"세분 손님 약주 잡수세욧."

소리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그 목로 집 마당을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어우러져서 서성거리는 맛이란 굴비나 암치를 먹어가면서 약물을 퍼먹고 급기야 체하여 배탈이 나고 그만두는 프래그머티즘에 견줄 것이 아닙니다.

나는 술이 거나 -하게 취해서 어떤 여자 앞에서 몸을 비비꼬면서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사는 몸이오.'하고 얼러보았더니 얼른 그 여자가 내 아내가 되어 버린 데는 실없이 깜짝 놀랬습니다. 얘 -이건 참 땡이로구나 하고 삼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그 여자는 삼 년이나 같이 살아도 이 사람은 그저 세계에 제일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 밖에는 모르고 그만둔 모양입니다.

게으르지 않으면 부지런히 술이나 먹으로 다니는 게 또 마음에 안 맞았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병이 나서 신애 - 로 앓으면서 나더러 약물을 더 오라길래 그것은 미신이라고 그랬더니 뾰루퉁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가버린 것은 내가 약물을 안 길어다 주었대서 그런 것 같은데 또 내가 '약주 '만 밤낮 먹으러 다니는 것이 보기 싫어서 그런 것도 같고 하여간 나는 지금 세상이 시들해져서 그날그날이 심심한데 술 따로 안주 따로 판다는 목로 조합 결의가 아주 마음에 안 들어서 못 견디겠습니다.

누가 술만 끊으면 내 위해 주마고 그러지만 세상에 약물 안 먹어도 사람이 살겠거니와 술 안 먹고는 못사는 사람이 많은 것을 모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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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야기

 

― 어떤 두 주일 동안


거기는 참 오래간만에 가본 것입니다.

누가 거기를 가보라고 그랬나 모릅니다.

퍽 변했습디다.

그 전에 사생(寫生)하던 다리 아치가 모색(暮色) 속에 여전하고 시냇물도 그 밑을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양 언덕은 잘 다듬어서 중간중간 연못처럼 물이 괴었고 자그마한 섬들이 아주 세간처럼 조촐하게 놓여 있습니다.

게서 시냇물을 따라 좀 올라가면 졸업기념으로 사진을찍던 목교(木橋)가 있습니다.

그 시절 동무들은 다 뿔뿔이 헤어져서 지금은안부조차 모릅니다.

나는 게까지는 가지 않고 걸상처럼 생긴 어느 나무토막에 가 앉아서

물속으로도 황혼이 오나 안 오나 들여다보고 앉았습니다.

잎새도 다 떨어진 나무들이 거꾸로 물속에 가 비쳤습니다.

또 전신주도 비쳤습니다. 물은 그런 틈바구니로 잘 빠져서 흐르나 봅니다.

그 내려놓은 풍경을 만져 보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바람 없는 저녁입니다.그러더니 물속 전신주에 달린 전등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마치 무슨 요긴한 ‘말씀’ 같습니다 ― ‘밤이 오십니다’ ― 나는 고개를 들어서 땅 위의 전신주를 보았습니다.

얼른 불이 켜집니다.

내가 안보는 동안에 백주(白晝)를 한 병 담아 가지고 놀던 전등이 잠깐 한눈을 판 것도 같습니다.

그래밤이 오나……

그러고 보니까 참 공기가 차갑습니다.

 

두루마기 아궁탱이 속에서 바른손이 왼손을 아귀에 꼭 쥐고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허공에 있거나

물속으로 가라앉았을 동안에도 육신은 육신끼리의 사랑을 잊어버리거나

게을리하지는 않는가 봅니다.

 머리카락은 모자 속에서 헝클어진채 끽소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가난한 모체(母體)를 의지하고저러고 지내는 그 각 부분들이 무한히 측은한 것도 같습니다.

땅으로 치면토박한 불모지 셈일 게니까.

눈도 퀭하니 힘이 없고 귀도 먼지가 잔뜩 앉아서 주접이 들었습니다.

목에서는 소리가 제대로 나기는 나지만 낡은 풍금처럼 다 윤택이 없습니다.

콧속도 그저 늘 도배한 것 낡은 것 모양으로 구중중합니다.

20여 년이나 하나를 믿고 다소곳이 따라 지내온 그네들이 여간가엾고 또 끔찍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그윽한 충성을 지금 그냥 없이 하고모체 나는 망하려 드는 것입니다.

일신의 식구들이(손, 코, 귀, 발, 허리, 종아리, 목 등) 주인의 심사를 무던히 짐작하나 봅니다.

이리 비켜서고 저리 비켜서고 서로서로 쳐다보기도하고

불안스러워 하기도 하고 하는 중에도 서로서로 의지하고

여전히 다소곳이 닥쳐올 일을 기다리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꽤 어두워들어왔습니다. 별이 한 분씩 두 분씩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어디서 오시나굿이브닝 뿔뿔이 이야기꽃이 피나 봅니다. 어떤 별은 좋은 궐련을 피우고어떤 별은 정한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닦기도 하고 또 기념촬영을 하는 패도있나 봅니다. 나는 그런 오붓한 회장(會場)을 고개를 들어 보지 않고 차라리 물속으로 해서 쳐다봅니다. 시각이 거의 되었나 봅니다. 오늘 밤의 프로그램은 참 재미있는 여흥이 가지가지 있나 봅니다. 금단추를 단 순시(巡視)가 여기저기서 들창을 닫는 소리가 납니다. 갑자기 회장이 어두워지더니 모든 인원 얼굴이 활기를 띱니다. 중에는 가벼운 흥분 때문에 잠깐 입술이 떨리는 이도 있고 의미 있는 듯한 미소를 주고받으면서 눈을 끔벅하는 이들도있나 봅니다. 안드로메다, 오리온, 이렇게 좌석을 정하고 궐련들도 다 꺼버렸습니다.그때 누가 급히 회장 뒷문으로 허둥지둥 들어왔나 봅니다. 모든 별의 고개가 한쪽으로 일제히 기울어졌습니다. 근심스러운 체조, 그리고 숨결 죽이는겸허로 하여 장내 넓은 하늘이 더 깊고 멀고 어둡고 멀어진 것 같습니다.무슨 일인고? 넓은 하늘 맨 뒤까지 들리는 그윽하나 결코 거칠지 않은 목소리의 음악처럼 유량한 말씀이 들려옵니다. 여러분, 오늘 저녁에는 모두들일찍 돌아가시라는 전령입니다. 우 ─ 들 일어나나 봅니다. 베레모 검정모자는 참 품(品)이 있어 보이고 또 서반아식 망토 자락도 퍽 보기 좋습니다.에나멜 구두가 부드러운 융전(絨氈)을 딛는 소리가 빠드득빠드득 꽈리 부는소리처럼 납니다. 뿔뿔이 걸어서들 갑니다. 인제는 회장이 텅 빈 것 같고군데군데 전등이 몇 개 남아 있나 봅니다. 늙은 숙직인이 들어오더니 그나마 하나씩 둘씩 꺼들어 갑니다. 삽시간에 등불도 다 꺼지고 어둡고 답답한하늘 넓이에는 추잉껌, 캐러멜 껍데기가 여기저기 헤어져 있습니다.무슨 일이 있으려나. 대궐에 초상이 났나보다. 나는 팔짱을 끼고 오랫동안잊어버렸던 우두 자국을 만져 보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우리 아버지도 다얽으셨습니다. 그분들은 다 마음이 착하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손톱이 일곱밖에 없습니다. 궁내부 활판소에 다니실 적에 손가락 셋을 두 번에 잘리우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생일도 이름도 모르십니다. 맨 처음부터 친정이없는 까닭입니다. 나는 외갓집 있는 사람이 퍽 부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장모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나는 그분들께 돈을갖다 드린 일도 없고 엿을 사다 드린 일도 없고 또 한 번도 절을 해본 일도없습니다. 그분들이 내게 경제화(經濟靴)를 사주시면 나는 그것을 신고 그분들이 모르는 골목길로만 다녀서 다 해뜨려 버렸습니다. 그분들이 월사금을 주시면 나는 그분들이 못 알아보시는 글자만을 골라서 배웠습니다. 그랬건만 한 번도 나를 사살하신 일이 없습니다. 젖 떨어져서 나갔다가 23년 만에 돌아와 보았더니 여전히 가난하게들 사십디다. 어머니는 내 대님과 허리띠를 접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모자와 양복저고리를 걸기 위한 못을박으셨습니다. 동생도 다 자랐고 막내누이도 새악시 꼴이 단단히 박였습니다. 그렇건만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동무도 없어졌습니다. 내게는 어른도 없습니다. 버릇도 없습니다. 뚝심도없습니다. 손이 내 뺨을 만집니다. 남의 손같이 차디차구나. ‘무슨 생각을그렇게 하시나요? 이렇게 야위었는데.’ 모체가 망하려 드는 기색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이내 위문(慰問)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얼 하나 속절없지. 내 마음은 벌써 내 마음 최후의 재산이던 기사(記事)들까지도 몰래다 내다 버렸습니다. 약 한 봉지와 물 한 보시기가 남아 있습니다. 어느 날이고 밤 깊이 너희들이 잠든 틈을 타서 살짝 망하리라. 그 생각이 하나 적혀 있을 뿐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는 고하지 않고 우리 친구들께는전화 걸지 않고 기아(棄兒)하듯이 망하렵니다.하하, 비가 오시기 시작입니다. 살랑살랑 물 위에 파문이 어지럽습니다.고무신 신은 사람처럼 소리가 없습니다. 눈물보다도 고요합니다. 공기는 한층이나 더 차갑습니다. 까치나 한 마리…… 참, 이 스며들 듯 하는 비에 까치집이 새지나 않나 모르겠습니다. 인제는 까치들도 살기가 어려워서 경성근방에서는 다 없어졌나 봅디다. 이렇듯 궂은비가 오는 밤에는 우는 사람이많을 것입니다. 건너편 양옥집 들창이 유달리 환하더니 인제 누가 그 들창을 안으로 닫쳐 버립니다. 따뜻한 방이 눈을 감고 실없는 장난을 하려나 봅니다. 마음대로 하라지요.

 

하지만 한데는 너무 춥고 빗방울은 차차 굵어갑니다. 비가 오네, 비가 오누나. 인제 비가 들기만 하면 날이 득하렷다. 그런 계절에 대한 근심이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때 나는 사람이 불현듯 그리워지나 봅니다. 내 곁에는 내 여인이 그저 벙어리처럼 서 있는 채입니다.나는 가만히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면 참 희고도 애처롭습니다. 여인은 그전에 월광 아래 오래오래 놀던 세월이 있었나 봅니다. 아, 저런 얼굴에……그러나 입 맞출 자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입 맞출 자리란 말하자면 얼굴 중에도 정히 아무것도 아닌 자그마한 빈 터전이어야만 합니다. 그렇건만 이여인의 얼굴에는 그런 공지가 한 군데도 없습니다. 나는 이 태엽을 감아도소리 안 나는 여인을 가만히 가져다가 내 마음에다 놓아 두는 중입니다. 텅텅 빈 내 모체가 망할 때에 나는 이 ‘시몬’과 같은 여인을 체(滯)한 채그러렵니다 이 여인은 . 내 마음의 잃어버린 제목입니다. 그리고 미구에 내다 버릴 내 마음 잠깐 걸어 두는 한 개 못입니다. 육신의 각 부분들도 이모체의 허망한 것을 묵인하고 있나 봅니다. 여인, 내 그대 몸에는 손가락하나 대지 않으리다. 죽읍시다. “더블 플라토닉 슈사이드인가요?” 아니지요, 두 개의 싱글 슈사이드지요. 나는 수첩을 꺼내서 짚었습니다. 오늘이11월 16일이고, 오는 오는 공일날이 12월 1일이고 그렇다고. “두 주일이군요.” 참 그렇군요. 여인의 창호지같이 창백한 얼굴에 금이 가면서 그리로웃음이 가만히 내다보나 봅니다. 여인은 내 그윽한 공책에다 악보처럼 생긴글자로 증서를 하나 쓰고 지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틀림없이 같이 죽어드리기로.” 네, 감사하다 뿐이겠습니까.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생각하고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죄송스러운 일을 잊어버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손수건을 기처럼 흔들었습니다. 패배의 기념입니다. “저기 저 자동차들은 비가 오는데 어디를 저렇게 갑니까?” 네, 그 고개 너머 성모의 시장이 있습니다. “1원짜리가 있다니 정말불을 지르고 싶습니다.” 왜요. 자동차들은 헤드라이트로 물을 튀기면서 언덕 너머로 언덕 너머로 몰려 갑니다. 오늘같이 척척한 밤공기 속에서는 분도 좀더 발라야 하고 향수도 좀더 강렬한 것이 소용될 것 같습니다. 참 척척합니다. 비는 인제 제법 옵니다. 모자 차양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두루마기는 속속들이 젖어서 인제는 저고리가 젖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뉘에다가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나는누구나 만나거든 부끄러워해 드리렵니다. 그러나 그이는 내가 왜 부끄러워해하는지 모릅니다. 내 속에 사는 악마는 고생살이 많이 한 사람 모양으로키가 작습니다. 또 체중도 몇 푼어치 안 되나 봅니다. 악마는 어디 가서 횡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장갑을 벗으면서 초췌하나 즐거운 얼굴을 잠깐 거울 속으로 엿보나 봅니다. 그리고 나서는 깨끗한 도화지 위에 단색으로 풍경화를 한 장 그립니다.

 

거기도 언젠가 한번은 왔다 간 일이 있는 항구입니다. 날이 좀 흐렸습니다. 반찬도 맛이 없습니다. 젊은 사람이 젊은 여인을 곁에 세우고 우체통에편지를 넣습니다. 찰삭, 어둠은 물과 같이 출렁출렁하나 봅니다. 우체통 안으로 꼭두서니 빗물이 차갑게 튀어서 편지가 젖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젊은사람은 입맛을 다시더니 곁에 섰던 여인과 어깨를 나란히 부두를 향하여 걸어갑니다. 몇 시나 되었나…… 4시? 해는 어지간히 서로 기울고 음산한 바람이 밀물 냄새를 품고 불어옵니다. “담배를 다섯 갑만 주십시오. 그리고50전짜리 초콜릿도 하나 주십시오.” 여보 하릴없이 실감개 같지…….자 안녕히 계십시오 “ , .” 골목은 길고 포도(鋪道)에는 귤 껍질이 여기저기헤어졌습니다. 뚜 ─ 부두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가 분명합니다. 뚜 ─ 이뚜 ─ 소리에는 옅은 보라색을 칠해야 합니다. ‘부두요’ 올시다. 에그,여기도 버스가 있구려. 마스트 위에서 깃발이 오늘은 숨이 차서 헐떡헐떡야단입니다. 젊은 사람은 앞가슴 둘째 단추를 빼어 놓습니다. 누가 암살을하면 어떻게 하게? 축항(築港) 물은 그냥 마루젱 처럼 검습니다. 나무토막이 떴습니다. 저놈은 대체 어디서 떨어져나온 놈인구? 참, 갈매기가 나네.오늘은 헌 옷을 입었습니다. 허공 중에도 길이 진가 봅니다. 자, 탑시다.선벽(船壁)은검고 굴딱지가 많이 붙었습니다. 하여간 탑시다. 시간이 된 모양이지. 뚜 ─ 뚜뚜 ─ 떠나나 보오. 나 좀 드러눕겠소. “저도요.” 좀 똥그란 들창으로 좀 내다봐야겠군. 항구에는 불이 들어왔습니다. 여인의 이마를 좀 짚어봅니다. 따끈따끈해요. 팔팔 끓습니다. 어쩌나…… 그러지 마우.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한 개 피우고, 두 개 피우고, 잇대어 세 개 피우고, 네 개, 다섯 개, 이렇게 해서 쉰 개를 피우는 동안에 결심을 하면 됩니다. 여보, 그동안에 당신을랑 초콜릿이나 잡수시오. 선실에도 다 불이 켜졌습니다. 모두들 피곤한가 봅니다. 마흔 개, 마흔한 개…… 이렇게 해서 어느 사이에 마흔아홉 개를 태워 버렸습니다. 혀가 아려서 못 견디겠습니다.초저녁이 흔들립니다. 여보, 이 꽁초 늘어선 것 좀 봐요! 마흔아홉 개요.일어나요. 인제 갑판으로 나갑시다. 여인은 다소곳이 일어나건만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흐렸군. 별도 없이 바다는 그냥 문을 닫은 것처럼 어둡습니다. 소금내 나는 바람이 여인의 치맛자락을 날립니다. 한 개 남은 담배에불을 붙여 물고, 요거 한 대가 다 타는 동안에 마지막 결심을 하면 됩니다.여보 섧지는 않소? 여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다 탔소. 문을 닫아라. 배를 벗어 버리는 미끄러운 소리…… 답답한 야음을 떠미는 힘든 소리…… 바다가 깨어지는 요란한 소리…… 굿바이. 악마는 이 그림 한구석에차근차근히 사인을 하였습니다.두 주일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공일날이 닥쳐왔습니다. 강변 모래 밭을 나는 여인과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침을 합니다. 콜록콜록 ─ 코올록 ─ 감기가 촉생(觸生)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상류를 향하여 인정 없이 불어옵니다. 내 포켓에는 걱정이 하나 가뜩 들어 있습니다. 여인은 오늘 유달리키가 작아 보이고 또 생기가 없어 보입니다. 내 그럴 줄을 알았지요. 당신은 너무 젊습니다. 그렇게 젊은 몸으로 이렇게 자꾸 기일이 천연(遷延)되는데에서 나는 불안이 점점 커갈 뿐입니다. 바람을 띵띵 먹은 돛폭을 둘씩 셋씩 세워서 상가선(商賈船)은 뒤에 뒤이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노래나 한마디 하시구려 하늘은 차고 . 땅은 젖었습니다. 과자보다도 가벼운 여인의 체중이었습니다. 나는 돌아서서 간신히 담배를 붙여 물고 겸사겸사 한숨을 쉬었습니다. 기침이 납니다. 저리 가봅시다. 방풍림 우거진 속으로 철로가 놓여 있습니다. 까치 한 마리도 없이 낙엽은 낙엽대로 쌓여서 이 세상에 이렇게 황량한 데가 또 있겠습니까? 나는 여인의 팔짱을 끼고 질컥질컥하는 낙엽을 디디면서 동으로 동으로 걸었습니다. 자갈 실은 화물차가 자그마한 기적을 울리면서 우리 곁으로 지나갑니다. 우리는 서서 그 동화 같은 풍경을한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가끔 가다가는 낙엽 위로 길도 있습니다. 그러나사람은 하나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어디까지든지 황량한 인외경(人外境)입니다. 나는 야트막한 여인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그 장미처럼 생긴 귀에다대고 부드러운 발음을 하였습니다. 집에 갑시다. “싫어요. 저는 오늘 아주나왔세요.” 닷새만 더 참아요. “참지요…… 그러나 그렇게까지 해서라도꼭 죽어야 되나요?” “그러믄요. 죽은 셈치고 그 영혼을 제게 빌려 주실수는 없나요?” 안 됩니다. “언제든지 죽어 드리겠다는 저당을 붙여도?”네.

 

세상에 이런 일도 또 있습니까? 나는 주머니 속에서 몇 벌 편지를 꺼내서는 그 자리에서 다 찢어 버렸습니다. 군(君)이 이 편지를 받았을 때에는 나는 벌써 아무개와 함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리라는 내 마지막 허영심의 레터 페이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뭐란 말입니까? 과연 지금 나로서는혼자 내 한 명(命)을 끊을 만한 자신이 없습니다. 수양이 못 되었습니다.그러나 힘써 얻어 보오리다. 까치도 오지 않는 이 그윽한 수풀 속에 이 무슨 난데없는 떼 상장(喪章)이 쏟아진 것입니다. 여인은 새파래졌습니다.





















출처:

http://angelic.x-y.net/xe/index.php?mid=text&sort_index=regdate&order_type=desc&listStyle=list&page=3&document_srl=5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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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문학, 60.12











































 

 

 

 

 

어서……

차라리 어두워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벽촌의 여름날은 지루해서 죽겠을 만큼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돼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10여 호씩 있다.

휘청거리는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덩굴,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댑싸리 나무, 오늘도 보는 김 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리쬔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뜨거워하며 견딜 수가 없는 염서 계속이다.

나는 아침을 먹었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널따란 백지 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한다.

그럼 나는 최 서방네 집 사랑 툇마루 장기나 두러 갈까. 그것이 좋다.

최 서방은 들에 나갔다. 최 서방네 사랑에는 아무도 없나 보다.

최 서방의 조카가 낮잠을 잔다.

아하,

내가 아침을 먹은 것은 10시나 지난 후니까 최 서방의 조카로서는 낮잠 잘 시간에 틀림없다.

나는 최 서방의 조카를 깨워 가지고 장기를 한판 벌이기로 한다.

최 서방의 조카로서는 그러니까 나와 장기 둔다는 것 그것부터가 권태다.

 

밤낮 두어야 마찬가질 바에 안 두는 것이 차라리 낫지.

그러나 안 두면 또 무엇을 하나?

둘밖에 없다.

 

지는 것도 권태이거늘 이기는 것이 어찌 권태 아닐 수 있으랴?

열 번 두어서 열 번 내리 이기는 장난이란 열 번 지는 이상으로 싱거운 장난이다.

나는 참 싱거워서 참을 수가 없다.

한번쯤 져주리라. 나는 한참 생각하는 체하다가 슬그머니 위험한 자리에 장기 조각을 갖다 놓는다.

최 서방의 조카는 하품을 쓱 한번 하더니 이윽고 둔다는 것이 딴전이다.

으레 질 것이니까 골치아프게 수를 보고 어쩌고 하기도 싫다는 사상이리라.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장기를 갖다 놓고는 그저 얼른얼른 끝을 내어 져줄 만큼은 져주면

이 상승장군은 이 압도적인 권태를 이기지 못해 제출물에 가버리겠지 하는 사상이리라.

나는 부득이 또 이긴다.

인제 그만 두잔다.

물론 그만 두는 수밖에 없다.

일부러 져준다는 것조차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저 최 서방의 조카처럼 아주 영영 방심 상태가 되어 버릴 수가 없나?

 

이 질식할 것 같은 권태 속에서도 사세한 승부에 구속을 받나?

아주 바보가 되는 수는 없나?

내게 남아 있는 이 치사스러운 인간 이욕이 다시 없이 밉다.

나는 이 마지막 것을 면해야 한다. 권태를 인식하는 신경마저 버리고 완전히 허탈해 버려야 한다.

 

나는 개울가로 간다.

가물로 하여 너무나 빈약한 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뼈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왜 소리를 치지 않나?

너무 덥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하도록 덥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 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나는 그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 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 말기로 하자.

그저 한량없이 넓은 초록색 벌판 지평선,

아무리 변화하여 보았댔자 결국 치열한 곡에의 역을 벗어나지 않는 구름, 이런 것을 건너다본다.

지구 표면적의 100분의 99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

렇다면 지구야말로 너무나 단조 무미한 채색이다.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

나는 처음 여기 표착하였을 때 이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 되어서 이 일망무제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렇나.

하루 온종일 저 푸른 빛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와 같이 만족하면서 푸른 채로 있다.

이윽고 밤이 오면 또 거대한 구렁이처럼 빛을 잃어버리고 소리도 없이 잔다.

이 무슨 거대한 겸손이냐.

이윽고 겨울이 오면 초록은 실색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루를 갈기갈기 찢은 것과 다름없는 추악한 색채로 변하는 것이다.

한겨울을 두고 이 황막하고 추악한 벌판을 바라보고 지내면서 그래도 자살 민절하지 않는 농민들은 불쌍하기도 하려니와 거대한 천치다.

그들의 일생이 또한 이 벌판처럼 단조한 권태 일색으로 도포된 것이리라.

일할 대는 초록 벌판처럼 더워서 숨이 칵칵 막히게 싱거울 것이요,

일하지 않을 때에는 겨울 황원처럼 거칠고 구지레하게 싱거울 것이다.

그들에게는 흥분이 없다.

벌판에 벼락이 떨어져도 그것은 뇌성 끝에 가끔 있는 다반사에 지나지 않는다.

촌동이 범에게 물려가도 그것은 맹수가 사는 산촌에 가끔 있는 신벌에 지나지 않는다.

실로 전신주 하나 없는 벌판에서 그들이 무엇을 대상으로 흥분 할 수 있으랴.

팔봉산 등을 업어 철골 전신주가 늘어섰다.

그러나 그 동선은 이 촌락에 엽서 한 장을 내려뜨리지 않고 섰는 채다.

동선으로는 전류도 통하리라.

그러나 그들의 방이 아직도 송명으로 어두침침한 이상 그 전선주들은 이 마을 동구에 늘어선 포플라 나무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들에게 희망은 있던가?

가을에 곡식이 익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희망은 아니다.

본능이다.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이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흉리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

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댑싸리 나무도 축 늘어졌다.

물은 흐르면서 가끔 웅덩이를 만나면 썩는다.

내가 앉아 있는 데는 그런 웅덩이가 있다.

내 앞에서 물은 조용히 썩는다.

낮닭 우는 소리가 무던히 한가롭다.

어제도 울던 낮닭이 오늘도 또 울었다는 외에 아무 흥미도 없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다.

다만 우연히 귀에 들려왔으니까 그저 들었달 뿐이다.

닭은 그래도 새벽, 낮으로 울기나 한다.

그러나 이 동리의 개들은 짖지를 않는다.

그러면 모두 벙어리 개들인가, 아니다.

그 증거로는 이 동리 사람이 아닌 내가 돌팔매질을 하면서 위협하면 10리나 달아나면서 나를 돌아다보고 짖는다.

그렇건만 내가 아무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천리나 먼 데서 온 외인,

더구나 안면이 이처럼 창백하고 봉발이 작소를 이룬 기이한 풍모를 쳐다보면서도 짖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어째서 여기 개들은 나를 보고 짖지를 않을까?

세상에도 희귀한 겸손한 개들도 다 많다.

이 겁쟁이 개들은 이런 나를 보고도 짖지를 않으니 그럼 대체 무엇을 보아야 짖으랴?

그들은 짖을 일이 없다.

 

여인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도 연변에 있지 않는 이 촌락을 그들은 지나갈 일도 없다.

가끔 이웃 마을의 김 서방이 온다.

러나 그는 여기 최 서방과 똑같은 복장과 피부색과 사투리를 가졌으니 개들이 짖어 무엇하랴.

이 빈촌에는 도둑이 없다.

인정 있는 도둑이면 여기 너무나 빈한한 새악시들을 위하여 훔친 바,

비녀나 반지를 가만히 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되리라.

도둑에게는 이 마을은 도둑의 도심을 도둑맞기 쉬운 위험한 지대리라.

그러니 실로 개들이 무엇을 보고 짖으랴.

개들은 너무나 오랫동안(아마 그 출생 당시부터) 짖는 버릇은 포기한 채 지내 왔다.

몇 대를 두고 짖지 않은 이곳 견족들은 드디어 짖는다는 본능을 상실하고 만 것이리라.

인제는 돌이나 나무토막으로 얻어맞아서 견딜 수 없이 아파야 겨우 짖는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본능은 인간에게도 있으니 특히 개의 특징으로 쳐들 것은 못 되리라.

개들은 대개 제가 길리우고 있는 집 문간에 가 앉아서 밤이면 밤잠, 낮이면 낮잠을 잔다.

왜?

그들은 수위할 아무 대상도 없으니까다.

 

최 서방네 개가 이리로 온다.

그것을 김 서방네 개가 발견하고 일어나서 영접한다.

그러나 영접해 본댔자 할 일이 없다.

양구에 그들은 헤어진다.

설레설레 길을 걸어 본다.

 밤낮 다니던 길,

그 길에는 아무것도 떨어진 것이 없다.

촌민들은 한여름 보리와 조를 먹는다.

반찬은 날된장과 풋고추이다.

그러니 그들의 부엌에조차 남은 것이 없겠거늘 하물며 길가에 무엇이 족히 떨어져 있을 수 있으랴.

길을 걸어 본댔자 소득이 없다.

낮잠이나 자자.

그리하여 개들은 천부의 수위술을 망각하고 탐닉하여 버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타락하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짖을 줄 모르는 벙어리 개,

지킬 줄 모르는 게으름뱅이 개,

이 바보 개들은 복날 개장국을 끓여 먹기 위하여 촌민의 희생이 된다.

그러나 불쌍한 개들은 음력도 모르니 복날은 몇 날이나 남았나 전혀 알 길이 없다.

 

이 마을에는 신문도 오지 않는다.

소위 승합 자동차라는 것도 통과하지 않으니 도회의 소식을 무슨 방법으로 알랴?

오관이 모조리 박탈된 것이나 다름없다.

답답한 하늘, 답답한 지평선, 답답한 풍경 가운데 나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고 싶을 만큼 답답해하고 지내야만 된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병석에서도 생각하는 법이다.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특질이요,

질환인 자의식의 과잉은 이런 권태하지 않을 수 없는 권태 계급의 철저한 권태로 말미암음이다.

육체적 한산, 정신적 권태, 이것을 면할 수 없는 계급이 자의식 과잉의 절정을 표시한다.

그러나 지금 이 개울가에 앉은 나에게는 자의식 과잉조차가 폐쇄되었다.

 

이렇게 한산한데,

이렇게 극도의 권태가 있는데,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기를 주저한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어제까지도 죽는 것을 생각하는 것 하나만은 즐거웠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조차가 귀찮다.

그러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눈뜬 채 졸기로 하자.

더워 죽겠는데 목욕이나 할까?

그러나 웅덩이 물은 썩었다.

 썩지 않은 물을 찾아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고…….

썩지 않은 물이 여기 있다기로서니 나는 목욕하지 않으리라.

옷을 벗기가 귀찮다.

아니!

그보다도 그 창백하고 앙상한 수구를 백일 아래에 널어 말리는 파렴치를 나는 견디기 어렵다.

땀이 옷에 배이면?

배인 채 두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더위는 무슨 더위냐.

나는 일어나서 오던 길을 되돌아서는 도중에서 교미하는 개 한 쌍을 만났다.

그러나 인공의 교미가 없는 축류의 교미는 풍경이 권태 그것인 것같이 권태 그것이다.

동리 동해들에게도 젊은 촌부들에게도 흥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함석 대야는 그 본연의 빛을 일찍이 잃어버리고 그들의 피부색과 같이 붉고 검다.

아마 이 집 주인 아주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것이리라.

세수를 해본다.

물조차가 미지근하다.

물조차가 이 무지한 더위에는 견딜 수 없었나 보다.

그러나 세수의 관례대로 세수를 마친다.

그리고 호박덩굴이 축 늘어진 울타리 밑 호박덩굴의 뿌리 돋친데를 찾아서 그 물을 준다.

너라도 좀 생기를 내라고.

땀내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고 툇마루에 걸터 앉았자니까 내가 세수할 때 내 곁에 늘어섰던 주인집 아이들 넷이 제각기 나를 본받아 그 대야를 사용하여 세수를 한다.

저 애들도 더워서 저러는구나 하였더니 그렇지 않다.

그 애들도 나처럼 일거수일투족을 어찌하였으면 좋을까 당황해하고 있는 권태들이었다.

다만 내가 세수하는 것을 보고 그럼 우리도 저 사람처럼 세수나 해볼까 하고 따라서 세수를 해보았다는 데 지나지 않는다.

 

원숭이가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이 내 눈에는 참 밉다.

어쩌자고 여기 아이들은 내 흉내를 내는 것일까?

귀여운 촌동들을 원숭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개울가로 가본다.

썩은 물 늘어진 댑싸리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거기 앉아서 이번에는 그 썩은 중의 웅덩이 속을 들여다본다.

순간 나는 진기한 현상을 목도한다.

무수한 오점이 방향을 정돈해 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임에 틀림없다. 송사리떼임에 틀림없다.

이 부패한 소택 속에 이런 앙증스러운 어족이 서식하리라고는 나는 참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요리 몰리고 조리 몰리고 역시 먹을 것을 찾음이리라.

무엇을 먹고 사누. 버러지를 먹겠지. 그러나 송사리보다도 더 작은 버러지라는 것이 있을까!

잠시 가만 있지 않는다.

저물도록 움직인다.

대략 같은 동기와 같은 모양으로들 그러는 것 같다.

동기!

역시 송사리의 세계에도 시급한 목적이 있는 모양이다.

차츰차츰 하류를 향하여 군중적으로 이동한다.

저렇게 하류로 하류로만 가다가 또 어쩔 작정인가.

아니 그들은 중로에서 또 상류를 향하여 거슬로 올라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하류로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류로 하류로!

5분 후에는 그들의 모양이 보이지 않을 만큼 그들은 멀리 하류로 내려갔다.

그리고 웅동이는 아까와 같이 도로 썩은 물의 웅덩이로 조용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풀밭으로 가보기로 한다.

풀밭에는 암소 한 마리가 있다.

고 웅덩이 속에 고런 맹랑한 현상이 잠복해 있을 수 있다니, 하고 나는 적잖이 흥분했다.

그러나 그 현상도 소낙비처럼 지나가고 말았으니 잊어버리고 그만두는 수밖에.

소의 뿔은 벌써 소의 무기는 아니다.

소의 뿔은 오직 안경의 재료일 따름이다.

소는 사람에게 얻어맞기로 위주니까 소에게는 무기가 필요 없다.

소의 뿔은 오직 동물학자를 위한 표지이다.

야우시대에는 이것으로 적을 돌격한 일도 있습니다,

하는 마치 폐병의 가슴에 달린 훈장처럼 그 수억성이 애상적이다.

암소의 뿔은 수소의 그것보다도 더한층 겸허하다.

이 애상적인 뿔이 나를 받을 리 없으니 나는 마음놓고 그 곁 풀밭에 가 누워도 좋다.

나는 누워서 우선 소를 본다.

소는 잠시 반추를 그치고 나를 응시한다.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인인가 보다.

내 생명에 위해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이렇게 소는 속으로 나를 심리하였으리라.

그러나 5분 후에는 소는 다시 반추를 계속하였다.

소보다도 내가 마음을 놓는다.

소는 식욕의 즐거움조차를 냉대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권태자다.

얼마나 권태에 지질렀길래 이미 위에 들어간 식물을 다시 게워 그 시금털털한 반소화물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향락하는 체해 보임이리오?

소의 체구가 크면 클수록 그의 권태도 크고 슬프다.

나는 소 앞에 누워 내 세균같이 사소한 고독을 겸손하면서, 나도 사색의 반추는 가능할는지 몰래 좀 생각해 본다.

]

길 복판에서 6, 7인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적발동부의 반라군이다.

그들의 혼탁한 안색, 흘린 콧물, 두른 베두렁이 벗은 웃통만을 가지고는 그들의 성별조차 거의 분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여아가 아니면 남아요 남아가 아니면 여아인, 결국에는 귀여운 5, 6세 내지 7, 8세의 ‘아이들’ 임에는 틀림없다.

이 아이들이 여기 길 한복판을 선택하여 유희하고 있다.

돌멩이를 주워 온다.

여기는 사금파리도 벽돌 조각도 없다.

 이 빠진 그릇을 여기 사람들은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는 풀을 뜯어 온다. 풀, 이처럼 평번한 것이 또 있을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초록빛의 물건이란 어떤 것이고 간에 다시없이 심심한 것이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곡식을 뜯는 것도 금제니까 풀 밖에 없다.

돌멩이로 풀을 짓찧는다.

푸르스레한 물이 돌에 가 염색된다.

그러면 그 돌과 그 풀은 팽개치고 또 다른 풀과 돌멩이를 가져다가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한 10분 동안이나 아무 말도 없이 잠자코 이렇게 놀아 본다.

10분 만이면 권태가 온다.

풀도 싱겁고 돌도 싱겁다.

그러면 그 외에 무엇이 있나? 없다.

그들은 일제히 일어선다. 질서도 없고 충동의 재료도 없다.

다만 그저 앉았기 싫으니까 이번에는 일어서 보았을 뿐이다.

일어서서 두 팔을 높이 하늘을 향하여 쳐든다.

그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 본다. 그러더니 그냥 그 자리에서들 겅중겅중 뛴다.

그러면서 그 비명을 겸한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그만 눈물이 났다.

여북하면 저렇게 놀까. 이들은 놀 줄조차 모른다.

어버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들 귀여운 애기들에게 장난감을 사다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뻗치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는 그들의 유희가 내 눈에는 암만해도 유희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하늘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은 내일도 푸르냐는 조물주에게 대한 저주의 비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들은 짖을 줄조차 모르는 개들과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이 찾느라고 눈이 벌건 닭들과 놀 수도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너무나 바쁘다.

언니 오빠조차 바쁘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노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갖고 어떻게 놀아야 하나, 그들에게는 장난감 하나가 없는 그들에게는 영영 엄두가 나서지를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듯 불행하다.

그 짓도 5분이다.

그 이상 더 길게 이 짓을 하자면 그들은 피로할 것이다.

순진한 그들이 무슨 까닭에 피로해야 되나?

그들은 위선 싱거워서 그 짓을 그만둔다.

그들은 도로 나란히 앉는다.

앉아서 소리가 없다.

무엇을 하나.

무슨 종류의 유희인지,

유희는 유희인 모양인데……

이 권태의 왜소 인간들은 또 무슨 기상천외의 유희를 발명했나.

5분 후에 그들은 비키면서 하나씩 둘씩 일어선다.

 제각각 대변을 한 무더기씩 누어 보았다.

아,

이것도 역시 그들의 유희였다.

속수무책의 그들 최후의 창작 유희였다.

그러나 그중 한 아이가 영 일어나지를 않는다.

그는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 그는 이번 유희의 못난 낙오자임에 틀림없다.

분명히 다른 아이들 눈에 조소의 빛이 보인다.

아, 조물주여! 이들을 위하여 풍경과 완구를 주소서.

 

 

 

 

날이 어두워졌다.

해저와 같은 밤이 오는 것이다.

나는 자못 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배가 고픈 모양이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그럼 나는 어째서 배가 고픈가. 무엇을 했다고 배가 고픈가.

자기 부패 작용이나 하고 있는 웅덩이 속을 실로 송사리떼가 쏘다니고 있더라.

그럼 내 장부 속으로도 나로서 자각할 수 없는 송사리떼가 준동하고 있나 보다. 아무튼 나는 밥을 아니 먹을 수는 없다.

밥상에는 마늘장아찌와 날된장과 풋고추 조림이 관성의 법칙처럼 놓여 있다.

그러나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이 내 입에 내 혀에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까닭을 설명할 수 없다.

마당에서 밥을 먹으면 머리 위에서 그 무수한 별들이 야단이다.

 저것은 또 어쩌라는 것인가.

내게는 별이 천문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렇다고 시상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향기도 촉감도 없는 절대 권태의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피안이다. 별조차가 이렇게 싱겁다.

저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면 집집에서는 모깃불의 연기가 한창이다. 그들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잔다. 별을 쳐다보면서 잔다. 그러나 그들은 별을 보지 않는다. 그 증거로는 그들은 멍석에 눕자마자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눈을 감자마자 쿨쿨 잠이 든다. 별은 그들과 관계없다.

나는 소화를 촉진시키느라고 길을 왔다 갔다 한다.

되돌아설 적마다 멍석 위에 누운 사람의 수가 늘어 간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

나는 이런 실례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

자살의 단서조차를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한 형리처럼…….

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 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큼 심심해해야 되고 기막힐 만큼 답답해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자다가 불행히, 아니 다행히 또 깨거든 최 서방의 조카와 장기나 또 한판 두지.

웅덩이에 가서 송사리를 볼 수도 있고. 몇 가지 안 남은 기억을 소처럼 반추하면서 끝없이 나태를 즐기는 방법도 있지 않으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알고, 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좁은 방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권태 원문

 

https://ko.wikisource.org/wiki/%EA%B6%8C%ED%83%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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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RIEU    TANGO PIAZZOLLA ADIOS NONINO Y LIBERTANGO  작별

앙드레 류          바이올리니스트 1949년 생

            1987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 창단 
            1987 앙드레 류 프로덕션 창립
            1978 림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1978 마스트리히트 살롱 오케스트라 창단












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                                                



                                                         조선중앙일보 19350106

 

기사제목

사회여 문단에도 一顧를 보내라(6) / 우리들에겐 생활이 없다.

작가들은 드디어 전조선에 호소함,

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

 

 

 





지팽이轢死 원문보기  지팽이 역사 

 

단어정리

轢死역사            :차에 치여 죽음

白川溫泉배천온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라듐 온천이다.  깊이 약 50∼190m 정도에서 솟아 나온다.

文武亭문무정        :활터

文會書院문회서원    :황해도 배천군 치악산 기슭에 있는 서원

八先生팔선생        :이 고을 출신으로서 학덕이 높았던 안당(安瑭)·신응시(辛應時)오억령(吳億齡)김덕함(金德諴)을 동사(東祠)     

                     그리고  이 고을과 관련이 있는 국가적 명현 이이(李珥)·성혼(成渾)·조헌(趙憲)을 서사(西祠)에 배향

起雲亭기운정        :기암절경의 바위 틈에서 용출된는 맑은 물과 봄에 피는 앵두나무의 꽃이 구름과 어울려서 절경을 이루는 명소

에하가끼えはがき    :그림 엽서.

세에루セール        ;sale 세일상품

황새선              ;黃海線황해선은 조선철도가 건설한 황해도 지역의 협궤 철도 몇 개를 부르던 통칭이다.

크롯싱              :crossing 건널목, 횡단 지점

갸꾸비끼            ;きゃくびき 역전에서 자기 여관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
괴불주머니          : 색 헝겊을 세모나게 접어서 속에 솜을 통통하게 두고 가장자리에 상침수를 놓으며,

                      삼각형의 양 꼭지에 술을 달았다. 일반사회의 부녀자나 어린아이들이 주머니끈 끝에 차고 다녔는데, 주로 빨강·                    노랑·파랑 한 벌을 포개어 찼다. 괴불은 오래된 연(蓮)뿌리에 서식하는 열매의 이름인데, 벽사(辟邪)를 뜻한다. 
 씨그낼             :signal 시그널: 신호

간즐리우는           :간지럼을 타다.

꾸르몽 시모오느      :꾸르몽의 시 <낙엽>

시인  이상은 담뱃대 떠는 것을 보고 왜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을까?

 

해설 작업중-----

 

 

 


Mantovani & His Orchestra - E Lucevan Le Stelle (from "Tosca")

 

 

 

每日申報매일신보   1936년 3월 24일 문예1면                      소장처:연세대학교중앙도서관

 

 

 

 

 

골동벽骨董癖

 

 

 

가령 신라(新羅)나 고려(高麗)적 사람들이 밥상에다 콩나물도 좀 담고 또 장조림도 담고,

또 약주(藥酒)도 좀 따르고 해서 조석으로 올려놓고 쓰던 식기(食器)나부랭이가 분묘(墳墓) 등지에서 발굴되었다고 해서 떠들썩하나,

대체 어쨌다는 일인지 알 수 없다.

 

그게 무엇이 그리 큰일이며, 그 사금파리 조작이 무엇이 그리 가치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냐는 말이다.

 

 

항차 그렇지도 못한 이조(李朝)항아리 나부랭이를 가지고 어쩌니, 어쩌니 하는 것들을 보면 알 수 없는 심사(心事)이다.

 

우리는 선조(先祖)의 장한 일들을 잊어버려서는 못쓴다.

그러나 오늘 눈으로 보아서 그리 값도 나가지 않는 것을 놓고 얼싸안고 혀로 핧고 하는 꼴은 진보(進步)한 커트글라스 그릇 하나를 만들어내는 부지런함에 비하여 그 태타(怠惰)의 극(極)을 타기(唾棄)하고 싶다.

 

가끔 아는 이에게서 자랑을 받는다.

내 이조항아리 좋은 것 우연히 싸게 샀으니, 와 보시오― 다. 싸다는 그 값이 결코 싸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보면 대개는 아무 예술적 가치도 없는 태작(駄作)인 경우가 많다.

그야 오늘 우리가 삼월백화점(三越百貨店) 식기부(食器部)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이니, 볼 점(點)이야 있겠지― 하지만 그 볼 점이라는 게 실로 하찮은 것이다.

 항아리 나부랭이는, 말할 것 없이 그 시대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미술품(美術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간혹 꽤 미술적인 요소가 풍부히 섞인 것이 있기는 있으되, 역시 여기(餘技) 정도요, 하다 못 해 꽃을 꽂으려는 실용(實用)이라도 실용을 목적으로 된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오랜 세월을 지하(地下)에 묻혔다가 시대도 풍속도 영 딴판인 세상인(世上人) 눈에 띄니 위선(爲先) 역설적(逆說的)으로 신기해서 얼른 보기에 교묘한 미술품 같아 보인다.

이것을 순수한 미술품으로 알고 왁자지껄들 하는 것은 가경(可驚)할 무지(無知)다.

어느 박물관에서 허다한 점수의 출토품(出土品)을 연대순으로 진열해 놓고 또 경향이며, 여러 가지 분류 방법을 적확히 구분해서 일목요연토록 해 놓은 것을 구경하고 처음으로 그런 출토품의 아름다움과 가치 있음을 느꼈다.

                                                                                                                             

  - 7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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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申報매일신보  1936년 3월 25일  문예면  3

소장처:연세대학교중앙도서관

 

7 골동벽 骨董癖 2

 

결국 골동품의 가치는 그런 고고학적(考古學的)인 요구에서 생기는 것일 것이다.

겸하여 느끼는 아름다운 삼정은 즉 선조(先祖)에 대한 그윽한  향수(鄕愁)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역사(歷史)라는 학문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어느 시대의 생활양식ㆍ민속(民俗)ㆍ민속예술 등을 알고자 할 때에 비로소 골동품의 지위가 중대해지는 것이지, 그러니까 골동품은 골동품만을 모아놓는 박물관과 병존(竝存)하지 않고는 그 존재 이유가 소멸(消滅)활 뿐 아니라, 하등의 ‘구실’을 못한다.

같은 시대 갓, 같은 경향(傾向)의 것을 한데 모아놓고 봄으로 해서 과연 구체적인, 역사적인 지식(知識)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 그러니까 물론 많을수록 좋다. ― 그렇지 않고 외따로 떨어진 한 파편(破片)은 원인(原人) 피테칸트로푸스의 단 한 개의 골편(骨片)처럼 너무 짐작을 세울 길에 빈곤(貧困)하다.

그것을 항아리 한 개, 접시 두 조각 해서 자기 침두(枕頭)에 늘어놓고 그 중에 좋은 것은 누가 알까봐 쉬쉬 숨기기까지 하는 당세(當世) 골동인(骨董人) 기질은 우선 아까 말한 고고학적 의ㅡ이에서 가증(可憎)한 일이요,

둘째 그 타기(唾棄)할 수전노적(守錢奴的) 사유관념(私有觀念)이 밉다.

그러나 이 좋은 것을 쉬쉬 하는 패쯤은 양민(良民)이다.

전혀 5전에 사서 백 원에 파는 것으로 큰 미덕(美德)을 삼는 골동가(骨董家)가 있으니, 실로 경탄(驚歎)할 화폐제도(貨幣制度)의 혼란(混亂)이다.

모씨는 하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요컨대 샀던 것 깜빡 속았어. 그러나 5원만 밑지고 겨우 다른 사람한테 넘겼지, 큰일 날 뻔 했는 걸 ―이다. 위조(僞造) 골동품을 모르고 고가(高價)애 샀다가 그것이 위조라는 것을 알자, 산 값에서 5원만 밑지고 딴 사람에게 파라먹었다는 성공미당(成功美談)이다.

 

재떨이로 쓸 수도 없다는 점에 있어서 우선 제로에 가까운 가치밖에 없는 한 개 접시를 위조하는 심사를 상상키 어렵거니와, 그런 귀매망량(鬼魅魍魎)이 이렇게 교묘하게 골동세계를 유영(遊泳)하고 있거니,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일이다.

누구는 수만 원의 명도(名刀)를 샀다가 위조라는 것을 알고 눈물을 머금고 장사를 지내버렸다 한다.

그러나 이 가짜 항아리―접시 나부랭이는 속은 사람ㄴ이 또 속이고 또 속은 사람이 또 속이고 해서 잘 하면 몇 백 년도 견디리라. 하면 그 동안에 선대(先代)에는 이런 위조골동품이 있었답네 ― 하고 그것마저가 유서 깊은 골동품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타기(唾棄)할 괴취미(怪趣味)밖에 가지지 않은 분들엑서 위(僞)졸―랑은 눈에 띄는 대로 때려부수시오―하고 권하기는커녕

골동품―물론 이 경우에 순수한 미술품 말고 항아리 나부랭이를 말함―은 고고학적ㆍ민속학적 요구에서 박물관에 기부하시오, 하고 권하면, 권하는 이더러 천(賤)한 놈이라고 꾸지람을 하실 것이 뻐언하다.     -끝-

 

 

 

-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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