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사운무>
“비안!”그 이름만으로도 신비스러운 비밀을 간직한 듯 하다.
어쩌면 영어나 불어 인 듯한 어감이기도 하고, 세상을 두루 편안하게 하며 여러 사람들을 서로 아우르게 하는 지명을 가진 그 이름 비안!
이곳이 한때는 의성의 중심지로서 행정을 총괄하고 화려한 문화를 꽃 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지명의 어감에 걸맞게 주변 산천의 지세도 만만찮다. 동으로는 막 피어나는 연꽃 봉오리를 형상하는 화장산이 있고, 서쪽에는 천하를 평정할 듯 청화산이 우뚝 자리해 있으며 북으로는 병풍을 두르듯 백학산과 해망산이 팔 벌려 비안을 안고 있다. 멀리 팔공산에서 발원한 위천의 물줄기를 휘감아 받아들이고, 금성산의 정기가 녹아 흐르는 쌍계천과 의성읍의 오토산 기운을 머금은 남대천 강줄기를 이곳 비안에서 한데 모아서 아우르고 버무려 비안 고을의 들판마다 기름진 젖줄이 된다. 이는 오곡을 풍성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어 아래로 흐르면서 구천 벌판과 안계평야를 적시며 용이 꿈틀대듯 휘감아 굽이굽이 흐른다.
비안은 현재 의성군의 전신인 비안현 이였던 곳으로 당시 비안현은 1423년(세종5년)에 비옥현과 안정현이 흡수되면서 비안현이라 불리어지게 됐다.
17세기 초에 현 의성군 행정 구역 내에 의성현과 비안현으로 나누어져 있다가 1895년(고종32년) 전국 고을이 조정될 때 의성군과 비안군으로 개편되면서 비안군은 한때 상주와 예천까지 관장했던 큰 군세를 이루는 때가 있기도 했다.
당시 번성했던 비안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여러 곳의 흔적을 살펴보면 한때 찬란했던 문화와 역사를 조금은 느낄 수 있다.
먼저 청동기 문화를 읽을 수 있는 고인돌과 선돌, 성혈암이 여러 곳에서 100기가 넘게 볼 수 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부족이 터를 잡고 살았음을 알 수 있고, 17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비안향교가 비안면과 경계지점인 안계면 교촌리에 오랜 세월을 참아온 듯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비안면 동부리에는 굽이치는 위천을 내려다보며 날아갈듯 한, 한 폭의 그림 같은 정자가 절벽위에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병산정이다.
고려 문화시중을 역임하고 벽상공신으로서 병산군에 봉해졌던 박우(朴瑀)의 묘제를 지내던 곳으로 공은 비안(병산)박씨의 일세가 되는 중시조이며 고려 때 비안 호족으로 성세를 누려왔다.
공의 후예로서 조선 세종조에 이조참판 대사헌 안동대도호부사를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 된 박 서생(朴瑞生)은 세종을 도와 화폐경제로 전환을 위한 금납세제와 시장경제 형성을 제창하고 농사를 위한 수차를 손수 제작했고 후생과 실학정치를 실천한 대선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1880년(고종17년)경에 학문과 의로 후학을 가르치고 예의범절을 힘쓰신 지암 김재경 공의 학덕을 기려 후학들이 세운 숭덕사(崇德祠)가 비안면 옥연1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1752년(영조28년)에 후학을 길러내기 위해 창건한 백학 서당이 비안면 이두2리에 소재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전 역사부터 충과 효와 예를 강조한 후학들을 배출한 이유 때문인지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신 인물들이 많다.
임진왜란 때 향병을 인솔하고 용감한 전투를 치루고 많은 공을 세운 박사숙(朴嗣叔)과 임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고 싸움에서 장렬이 전사해 머리는 적이 베어가고 시신만 말가죽에 싸여 돌아와 죽은 후에 나라에서 호조좌랑을 증하게 된 백공 김희공(金喜公)과 이름을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의병활동을 하신 분들이 많다.
이후 일제시대에 와서도 독립운동을 선도한 애국투사 현호 박석홍 선생이 있고 경북도내에서 최초로 3.1 만세운동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당시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현재 비안면 서부리의 목단봉 주변에 3.1독립 만세운동 기념탑과 공원이 조성돼 있다.
비안에는 잘 보존된 문화재를 여러 곳 볼 수 있는데 산제리에 위치한 화장산성은 1592년(선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란 때 의병의 은신처로서 자연지형을 잘 이용한 요새지로서 비안과 안평 신평면의 경계지점에 축조돼 있으며 규모가 크며 아직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화장산성에 인접해 산중턱에 비밀스러운 만장사(卍藏寺)라는 사찰이 구름위에 보일 듯 말 듯 자리하고 있는데 이 사찰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불상을 10년 전 발굴 복원해 경북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갈수록 찾는 사람이 많고 경관이 수려해 명승지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곳 만장사에서 산등성이를 하나 넘으면 4㎞ 거리에 자락리 해망산 정상 절벽에 석굴사원인 석불사(石佛寺)가 있다.
자연 석굴을 법당으로 한 보기 드문 곳으로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산꼭대기에 'ㄱ'자형의 거대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싸여 있어 신비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이밖에도 국도에 인접하고 있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춘리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경북도문화재 304호)이 있고 용천사 사찰과 구연석불, 후천석불, 자락리 석조여래좌상, 구천서원, 백천서원, 병호서원, 경덕사 등 수많은 유적이 있을 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치신 훌륭한 인물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들을 기리기 위한 유적비가 유별나게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비안에 최근에는 굽이쳐 흐르는 위천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찾는 고을 만들기 사업이 한창이다.
우선 봉양을 지나 비안의 경계지점에 들어서면 얼마 전 조성한 항아리 탑과 커다란 장승이 오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곳에서 조금 지나 백사장이 펼쳐진 위천의 고수부지에는 파릇파릇한 기운이 한창인데 곧 봄이면 만발하게될 유채꽃과 청보리를 수만평 식재해 볼거리와 관광거리를 만들고 있다.
또한 면 소재지 앞 고수부지에도 수만평의 청보리를 식재해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 강모래는 오염이 적어 강조개가 많이 서식하는데 여름이면 피서와 조개 잡는 사람들로 비안강을 찾는 이가 많아 또 다른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아직 그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강을 추억하고 조용한 산사에서 마음을 다독이고 싶은 사람이면 이곳 비안이 제격이라 여겨지며 한번쯤 걸음을 권하고 싶다.
정휘영기자 <일간대구경북 2009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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