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자주 등장하는  스타

매국노의 표상  정명수

또 한 명의 매국노가 그의 뒤를 따른다. 김돌쇠, 김돌시, 김돌이

 

 

己卯年 仁祖17年  明- 崇禎12년  淸- 崇德四年 1639년(당65세)

○六月胡使自稱中殿冊封而出來到孔詔院宣言中殿親出(    )驕慢使崔鳴吉齊銀千兩往說鄭明時金石伊等得免中殿之親出 鄭明時金石伊乃我國人而投附胡賊作獘一梗者之胡(    )

육월 청나라 사신이 중전책봉을 위하여 나왔다는 구실로 홍제원에서 중전이 친히 나와 받으라며(    )교만스러우니,

 최명길이 은 천 냥을 주고 그들을 설득해서 면했다. 

정명수. 김돌시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오랑캐에 빌붙어 작당질을 하는 한 무리들이다. 오랑캐(    )

 ☞ :     鄭明時는 = 鄭命壽이고    金石伊는 = 金乭屎 =金突  / 김돌시, 김돌이다.

 

鄭命壽 金乭屎는 1618(광해군 10)년 청나라의 건주위 정벌 때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갔다가 포로가 된 정명수(鄭命壽)·김돌(金突) 등이우리나라 사정을 청나라에 알려줌으로써 청나라 황제의 신임을 얻고 양국간에 통역을 담당하면서 임금을 모독하고 조신을 업신여기는 한편, 관직이나 뇌물을 요구하고 조정 관료의 수염을 횃불로 지지는 등 갖은 행패를 부렸다.

 

庚辰年 仁祖18年 1640, 明- 崇禎13년  淸- 崇德5年(당66세)

○金石伊夲國官奴爵賊作奱淸使之行亦來作禮常與主上較倚而堅淸使久留國傷渴沈說夜趋鄭明時金石伊宿處各給銀子萬兩翌朝勸使發遝到義州金也責房妓色醜牧伯林慶業託以絶無美色則金遽怒曰雖入汝之室入不可廢也林大怒曳下庭使人告淸使曰我亦有淸國之職此漢辱我不可不治使曰笞於四十度杖以不祿木杖之如數卽死曳出之人皆快之

김돌시는 본시 관노비로써 벼슬을 도적질하여 바꾸고 청나라 사신을 따라 나와서 매번 사신을 접대하는 예법을 만드니 주상께서 보시기에도 그 폐단이 지나치다.

청나라 사신이 오래 머물고 있어 나라의 재정이 몹시 고갈 된지 오래되었다는 말씀에 밤으로 정명와 김돌시의 숙소로 달려가 각각 은자 만 냥을 주고 다음날 아침에 떠나가기를 권하였다.

의주로 돌아간 김돌시가 기생이 못생겼다고 책망하며 의주 목사 임경업에게 절세미인을 부탁하였는데 예쁜 곳이란 없는지라

김돌시가 갑자기 화를 내며 말하길 “너 같아도 그 방엔 못 들어갈 것이다.

당장 바꿔주라”하니

임경업이 열을 받아 김돌시를 뜰아래로 끌어내고 청나라 사신에게 항의하니

청나라 사신이 말하길 “나는 청나라의 사람이요 이놈 또한 청나라 벼슬을 하고 있으니 청나라를 욕되게 한 것이다.

그냥 둘 수 없다.

몽둥이로 40 대를 쳐라!.”사정 봐줄 것 없이 몽둥이를 내려치니 몇 대 맞자 쭉 뻗었다.

시체를 밖으로 끌어내니 모두가 쾌자를 불렀다.

 

 ☞  왕조실록에도 없는 매국노 김돌쇠의 사망기록이다.

 

                                     金啓 龍潭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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