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력 연호 (韓中日) |
독립운동 및 대외관계 |
일본·세계 동향 |
1897 丁酉 光武1 光緖23 明治30 |
1.5 |
일본불교 정토종 전래 |
1.7 |
민비 시호를 文成, 능호를 홍능으로 함 / 『대조선독립협회회보』 제2호 간행 |
1.11 |
국왕즉위기념일 1월 15일을 慶興節로 함 / 민영환 유럽파견 특명전권공사에 임명 |
1.31 |
韓善會·李根鎔 등, 정부전복기도 발각, 제주도 유배 15년 |
1 |
『독립신문』, 영문판 『The Independent』 분리하여 2종으로 간행 | |
|
2.2 |
아펜젤러, 감리교회 주간신문인 『조선그리스도인회보』 창간 |
2.19 |
김종한 등 한성은행(조흥은행 전신) 발기→1903.12 영업개시 |
2.20 |
고종, 러시아공사관으로부터 경운궁(덕수궁)으로 옮김 | |
2.28 |
프랑스 마다가스카르총독, 메리나왕조를 폐함 | |
3.2 |
민비 시호를 明成으로 바꾸어 올림 |
3.9 |
정부, 베베르·小村각서와 로마노프·山縣의정서를 자주권 침해라고 일본공사에 항의 |
3.23 |
중추원에 校典所 설치 |
3 |
러시아 교관 포티아타에 의해 훈련된 군인으로 시위대 조직 | |
3.2 |
열강, 투르크·그리스에 크레타의 자치와 철병을 요구 | |
4.1 |
언더우드, 장로교회 주간신문인 『그리스도신문』 창간 |
4.6 |
러시아공사, 端川·三水 광산 채굴허가를 외부에 요청, 三水광산만 허가 |
4.7 |
러시아공사, 청국의 朝淸전선조약 초안의 수정을 재차 정부에 요구 |
4.14 |
일본은행 借款 300만원 중 100만원 상환을 통고 | |
4.9 |
日, 하와이일본이민 상륙거절 |
4.17 |
그리스, 터키에 선전포고 |
4.30 |
러시아·오스트리아, 발칸에 있어서의 현상유지에 동의하는 협정 조인 | |
5.1 |
관립 漢語학교 설립 |
5.4 |
日人, 京仁鐵道引受組合 발족 |
5.8 |
미국 모스회사와 京仁鐵道讓受結約 조인 |
5.15 |
일본공사, 함경도 鍾城의 방곡령 철회를 요청 |
5.23 |
황태자, 독립문 현판식 거행. 독립협회, 모화관을 개수하여 협회사무실 (독립관)로 사용 | |
5.19 |
그리스·투르크, 휴전 성립 |
5.29 |
日, 北海道에 區制, 1·2級町村制 공포 | |
6.1 |
일본공사, 전라도지방 방곡령 철회를 요청 |
6.3 |
史禮所 설치 | |
6.15 |
日, 萬國郵便條約에 조인 |
6.22 |
日, 제국대학을 동경제국대학으로 개칭. 경도제국대학 신설 | |
7.3 |
정부, 목포와 진남포를 개항키로 결정(→10.1 개항) |
7.16 |
정부전복과 요인암살을 꾀하던 宋鎭用·洪顯哲 처형됨 |
7.28 |
군대교련교사로 초빙한 러시아 군인 13명이 입국함 | |
7.17 |
주한미국공사대리 알렌, 공사로 승진 |
7 |
우간다 내분. 반영파 므왕가, 도망하여 독일군에 항복 | |
8.12 |
단발령 취소 |
8.13 |
독립협회 주최 개국505주년 기원절 기념식을 독립관에서 거행 |
8.14 |
연호를 光武라고 고침(8.16 시행) / 전 미국공사 서광범, 미국에서 사망 | |
8 |
스위스, 바젤에서 제1회 시오니스트회의 열림. 팔레스타인에 합법적인 유대인 거주지를 건설하기로 결의 | |
9.29 |
金在顯 등 관료 716명 왕께 帝位에 오를 것을 상소 | |
9.1 |
日, 拓植務省 폐지 |
9.2 |
주한러시아공사 스페이에르 부임 | |
10.1 |
舊南別宮에 圜丘壇 축조를 명함 |
10.3 |
국왕, 皇帝에 즉위하라는 신하들의 의견에 따를 것을 선포 |
10.11 |
국호를 大韓帝國으로 결정 |
10.12 |
圜丘壇에서 황제즉위식 거행, 왕후를 황후, 왕태자를 황태자로 칭함 |
10.14 |
정부, 황제즉위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개정했음을 각국 대표에게 통보 |
10.16 |
미국·일본·독일·러시아·프랑스 등 각국 대표와 목포·진남포거류지규칙 조인 |
10.25 |
정부, 러시아인 알렉시예프를 재정고문 겸 해관총세무사에 임명하고 브라운을 해고 | |
10 |
빌라에서 러시아·폴란드·리투아니아의 全유대인사회민주주의동맹 결성 | 환구단 |
11.7 |
탁지부대신 박정양, 알렉시예프를 재정고문에 초빙한 것에 반발하여 사임 |
11.21 |
명성왕후의 국장 거행 |
11 |
독립문, 시공 1년만에 완공 | |
12.2 |
황제즉위일인 10월 12일을 繼天紀元節로 정함 |
12.4 |
일본공사, 충청도 각지의 방곡령 철회를 요구. 정부, 철회를 통고 |
12.13 |
서재필, 중추원 고문직 해임 |
12.20 |
김윤식·李承五, 을미사변 관련혐의로 제주로 종신 유배 |
12.31 |
미국의 스탠다드 석유회사, 인천 월미도에 석유탱크 건립 | |
12.17 |
독일, 華北을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인정하여, 일본진출의 저지에 협력하기로 러시아에 약속 |
12.24 |
日, 제11회 제국의회 개회 |
12.25 |
日, 내각불신임안 상정, 松方正義 내각 총사직(28) |
|
이탈리아, 이슬람교도의 저항으로 수단의 카살라를 이집트에 할양 |
12 |
淸, 康有爲가 독일의 膠州灣 점령에 항의, 變法自疆을 황제에게 요청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