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력 연호 (韓中日) |
독립운동 및 대외관계 |
일본·세계 동향 |
1896 丙申 建陽1 光緖22 明治29 |
1.1 |
建陽이라는 연호 사용. 陽曆 사용 |
1.3 |
외부대신 김윤식, 일본판리공사 小村壽太郞에게 친위대 진위대 양성을 위한 일본인 교관 24명 초청 의뢰 |
1.7 |
盧應奎, 경남 安義에서 기병 |
1.8 |
神武門 밖에서 관병식 거행 |
1.11 |
국왕, 단발령의 이행을 강조하는 조칙 발표 |
1.13 |
李春永, 원주에서 의병 봉기 |
1.17 |
김복한 홍주에서 각각 기병(1.18. 체포됨) / 金道和 등, 안동에서 기병 |
1.19 |
노응규 의병, 진주성 점령 |
1.20 |
李昭應, 춘천에서 기병 |
1.25 |
조선에 일본헌병대 창설(1903.12 한국주차헌병대로 개칭) |
1.30 |
閔龍鎬, 강릉에서 창의소 결성 / 이소응 의병, 춘천관찰사 曺寅承 처단 |
1 |
柳麟錫, 제천에서 의병 봉기 | |
1.9 |
日, 중의원에서 遼東還付에 관한 내각탄핵안 부결 |
1.15 |
영국·프랑스, 타이의 독립존중·영토보전에 합의 |
1.16 |
프랑스, 마다가스카르 영유를 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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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한 |
2.1 |
러시아 수병 120명, 인천 군함에서 내려 입경 / 김가진, 주일공사 부임 |
2.3 |
유인석, 제천창의대장에 취임 |
2.11 |
李範晉·李完用 등 친러파, 고종 및 왕자를 俄館播遷 : 세자를 정동 러시아공사관으로 移御케 함. 친러내각 성립(총리 金炳始). 총리대신 김홍집, 농상공부대신 鄭秉夏, 경무청에 의해 체포, 처형됨. 유길준·趙羲淵·張博 등, 일본으로 망명 / 김윤식, 피신 중 체포되어 제주도에 유배됨 |
2.15 |
일본 동경에서 조선유학생 최초의 잡지 『親睦會會報』 창간 |
2.17 |
어윤중, 용인에서 군중에게 피살 |
2.18 |
내부대신 박정양, 단발이 강제가 아님을 알리고 의병해산을 권유 / 고종, 각지 의병에게 해산을 권유하는 조칙 반포 |
2.23 |
국왕, 을미사변·춘생문사건 관계자 재판의 불공정시정 지시 |
2.25 |
일본외무상대리 西園寺, 짜르러시아공사와 조선주재공사에게 조선문제에 관한 러일협상 기본방침을 지시(고종을 왕궁에 돌려보낼 것, 러일 양국이 새정부 조직할 경우 민비살해사건 가담자 극형에 처하지 말 것 등) |
2.28 |
이천의병, 남한산성 점령 |
2.29 |
安承禹 의진의 도영장으로 제천·충주·가흥 전투에서 활약한 羅時雲(평창) 피살 순국 |
2 |
奇宇萬, 광주에서 기병, 光山會盟所 설치 | |
러시아 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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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정부, 일본공사에 의병진압을 위해 각처에 파견된 일병의 철수를 요청 |
3.4 |
친위대 2개 대대 증설을 공포 |
3.9 |
金昌洙(金九), 치하포에서 일본인의 왕후살해보복으로 일본상인 쓰치다(土田讓亮)를 살해 |
3.상 |
제천의병진, 예천군수 柳仁馨과 영덕군수 鄭在寬 처단 |
3.27 |
제천의병진의 선봉장 金伯善(百先, 양평) 처형당함 |
3.29 |
미국인 모스, 경인철도 부설권을 얻음 |
3.30 |
정부, 일본공사에게 개성-서울간 노선 및 북로전선(京元間)의 조속반환 요구 | |
3.1 |
日, 진보당 결성 |
3.14 |
日, 육군 4개사단증설안 공포. |
3.31 |
日, 拓植務省 설치. 대만총독부 조례 공포 | |
4.1 |
러시아특명전권공사 閔泳煥, 尹致昊 등과 러시아로 출발 |
4.2 |
일본군, 안동부에 방화(민가 2천여호 소각) |
4.7 |
서재필, 온건개화파와 함께 『독립신문』 창간 |
4.17 |
관립 러시아학교 개교 / 미국인 모스, 운산금광 채굴권 얻음 |
4.20 |
藥峴 천주교당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신부 임명 |
4.22 |
러시아인 니시겐스키, 함경도 경원 종성의 금광채굴권 얻음 | |
4.6 |
제1회 근대올림픽, 아테네에서 개최(~4.15. 13개국의 285명의 선수 참가) | |
5.1 |
김병시, 국왕이 俄館으로부터 환어토록 상소함 |
5.12 |
日人, 경부철도주식회사 창립발기인대회 구성하고 정부에 경부철도부설권 청구 |
5.20 |
민영환, 러시아 외상 로바노프와 회담(경제·군사원조 등 5개조항 협약) |
5.25 |
제천의병진, 제천 남성 전투에서 中軍將 安承禹(1865~1896), 종사 洪思九(영주, 1896~1896) 전사 |
5 |
한국문제에 관한 일·러협정(小村·베베르각서 : 아관파천 인정) | |
5.14 |
일본·러시아, 서울에서 베베르·고무라 각서 조인(러일협상) |
5.18 |
대만, 臺東에서 劉德杓의 항일거병 | |
6.1 |
경의철도 부설권과 1개처의 광산채굴권 허가를 프랑스측에 통보 |
6.15 |
의병장 李忠應(가평, 1856~1896) 순국 |
6.16 |
조선은행창립발기회 개최 | |
6.3 |
淸·러시아, 李鴻章과 로마노프·비테 조약 조인(露淸密約), 일본의 공격에 대한 공동방위를 밀약 |
6.5 |
淸, 프랑스가 베트남철도를 廣西·龍州까지 연장함을 인정 |
6.9 |
山縣有朋·로바노프협정 성립(한국에 관한 露日協定書) |
6.14 |
臺灣 雲林義·하철, 항일거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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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
7.2 |
서재필·윤치호·안경수 등 30여 명, 독립협회 결성 |
7.3 |
프랑스인 그리유에게 경의철도 부설권 허가 |
7.4 |
『독립신문』 논설을 통해 독립협회의 창립목적을 널리 선전, 국민의 동참을 호소 | |
7.7 |
신임 주조선일본공사 하라 다카시(原敬) 부임 |
7.21 |
日, 淸日통상항해조약 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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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인터내셔널 런던대회 열림(~7.27.) | |
7.13 |
이천의병장 金河洛(의성, 1856~1896), 영덕에서 자결순국 |
7.31 |
학부, 銅峴 安洞에 각각 관립소학교 설립 | |
8.4 |
1895년 반포한 지방제도 관련 제반 칙령 폐지하고, 23부제를 13도제로 변경 |
8.17 |
淸露은행원 포코틸로프 등 재정실태 조사차 내한 |
8.18 |
러시아공사, 정부에 인천 월미도 남단 조차 결약서 제출 |
8.23 |
유인석의병부대, 楚山 도착 |
8.26 |
忠州·洪州·尙州·原州에 地方隊 설치령 공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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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
제천에서 기병, 여주와 강원도 일대에서 활약하던 李範稷 순국 |
9.9 |
러시아에 茂山, 압록강 유역 및 울릉도에 대한 삼림 채벌과 養木權 허가 |
9.18 |
민용호(閔龍鎬)부대, 함흥 점령 |
9.24 |
공주·춘천·강계·충주·홍주·상주·원주 지방대 폐지 내각을 폐지하고 의정부제도 환원 |
9 |
안동의병장 김도화, 의병 해산 | |
9.8 |
日蘭通商航海條約 성립 |
9.18 |
日 제2차 松方正義(松隈)내각 성립 | |
독립문 대조선독립협회회보 |
10.4 |
일본공사 하라(原敬) 귀국하고 가토 마쓰오(加藤增雄)가 대리공사(대리공사)가 됨 |
10.15 |
김도현 의병부대, 영양에서 해산 |
10.19 |
독립협회 임원들 기관지로서 회보를 발간키로 결의 |
10.21 |
러시아특명전권공사 민영환, 귀국하여 국왕께 러시아 사정을 보고 | |
11.1 |
朝露密約案 작성 |
11.19 |
유성에서 기병, 회덕·진잠·공주·원주 등지에서 활약한 의병장 文錫鳳(달성, 1851~1896) 병사 |
11.21 |
독립협회, 迎恩門 자리에 독립문 정초식 거행(1897.11.20 준공) |
11.30 |
독립협회, 『大朝鮮獨立協會會報』 창간호 발행 |
11.30 |
서재필, 배제학당 학생들을 독려하여 協成會 조직, 첫 모임 가짐, 1898년 3월 중순까지 총 42회를 열었음 |
11.30 |
독립협회 「獨立協會輪告」를 채택, 독립문 등의 건립사업에 적극적 참여 호소 | |
12.6 |
고종, 의병진압에 공로가 많은 유공자에게 포상토록 조칙을 내림 | |
12.18 |
日, 고등교육회의규칙 공포 |
12.25 |
日, 제10회 제국의회 개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