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09.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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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 연호
(韓中日)
독립운동 및 대외관계 일본·세계 동향
1893 癸巳
高宗30
光緖19
明治26
1 日公使, 일본 상인에게도 미·영·청 등 諸國人과 같이 상점·가옥 등 소유 인정 요청
1.22 상해영국회풍은행에서 은 5만원 차관
1.17 하와이, 쿠데타 성공→왕정 폐지, 임시정부 수립
*교조신원운동은 민심을 현혹시킨다는 죄로 억울하게 죽은 동학교조 최제우의 죄를 사면시키기 위해 동학교도들이 전개한 운동이다. 동학교조 최제우는 1864년 ‘좌도혹민’의 죄명으로 처형하였다. 2세 교주 최시형의 지도로 1892년(고종 29) 1월에 열린 ‘삼례집회’에서 억울하게 죽은 최제우의 죄를 벗기기 위한 제1차 교조신원운동이 전개하였다. 이어 1893년 3월 동학교도 40여 명이 서울에서 복합상소(伏閤上疏)를 하였다. 이어 3월 10일 충북 보은 장내리 집회에서는 교조신원의 구호를 넘어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의 정치적 구호까지 제기되었다. 이 시기 전라도 금구에서도 동학교인들이 집회를 갖고 ‘부패정권 타도, 외세 배격’의 구호가 전면에 내세워졌다. 처음에는 순수한 동학의 운동으로서 종교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출발하였으나, 점점 체제개혁을 지향하는 운동으로 발전해갔다
2.12 동학교도 40여 명이 교조신원을 위해 광화문에서 3일간 복합상소
2 척왜척양을 주장하는 동학교도들의 벽보가 외국공관과 서울시내에 붙자 각국 외교관들이 본국 정부에 군함 증파를 요청. 정부, 방곡령에 따른 일본의 거듭되는 배상 요구를 거절. 평안도 함증(증산) 농민들이 봉기
3.10 동학교도 2만여 명이 충청도 보은군 속리면 장내에서 척왜양의 기치로 농성시위(보은취회)→선무사 어윤중의 설득으로 해산(4.3)
3 동학교도 전라도 금구에서 척왜양 농성→어윤중의 설득으로 해산(4.22)
4.11 일본공사, 동학교도 진압 위해 군함 1척 파견을 일본정부에 제기
4.16 일본공사 오오이시 마사미(大石正己) 이임
4 일본과의 방곡령 배상문제 11만원에 해결
   
5.5 영국, 공황 발생
5.21 日, 방곡령에 대한 朝日담판 종료. 일본에 배상금 지불
5.22 日, 戰時大本營條例 공포
6.18 방곡령사건 배상금 1차분 상환 위해 청으로부터 은 3만 5천원을 차관
6 인천에서 백성들과 병사들이 관청을 습격
   
8 영국인 브라운을 해관총세무사에 임명 / 한오통상조약 비준 교환 / 황해도 재령과 충청도 청풍·황간지방에서 농민 봉기
8.12 日 문부성, 기미가요를 국가로 제정
9.9 외무독판 남정철, 각국 주재 공사에게 흉년으로 인한 방곡령 실시 통고→일본공사 항의
9.28 일본 특명전권공사 大鳥圭介 착임(1894.10.17까지 재임)
   
10.24 부산·원산 두 항구에서 방곡령 실시(~1894.2.1)
10.1 日, 대일본협회 설립. 대외강경론
10.3 프랑스·타이 조약 조인:타이 메콩강 동쪽의 영유권 포기와 300만 프랑의 배상 지불에 합의
10.20 日 조선정부, 방곡령 재발령
11 황주·중화·강계·철도·회령·종성·통영·운산·금부·양주 등 전국 각지에서 민란 계속
11.30 趙秉稷, 일본공사의 황해도 방곡령으로 인한 손해배상 요구를 반박
11.6 日, 재발령 해제에 관한 朝日담판 종료
11.28 日, 제5회 제국의회 개회
   
12.17 프랑스, 라오스를 보호령화함
12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농민폭동 발발 / 淸, 북경-산해관 간의 철도 완성
서력 연호
(韓中日)
독립운동 및 대외관계 일본·세계 동향
1894 甲午
高宗31
光緖20
明治27
1.10 전라도 고부 군민,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하여 전봉준 영도하에 고부관아 점령→이용태를 안핵사로 임명하여 민란 수습 지시(2.15)
   
2.22 金玉均이 상해 공동조계 내의 일본여관 동화양행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됨
   
3.21 전봉준, 동학교도와 농민군을 끌고 고부 백산 봉기 : 4대 강령 발표 → 홍계훈이 양호초토사에 임명. 북접동학교도들도 최시형의 통문으로 청산에 집결(4.2) → 동학군, 부안·금구 점령(4.4) → 동학 포고문 발표(4.11) → 동학군의 전주 점령(4.27) → 충청도 동학군 봉기. 동학군 진압을 위해 청국에 원병 요청(4.28) → 청군 제독 섭지초가 1,500명을 이끌고 인천 도착(5.2) → 일본 해군중장 이토 스케유키(伊東祐亨)이 군함 2척을 인솔하고 인천 상륙(5.6) → 전주화약 성립(5.7) → 동학군, 전라도관찰사에게 13조의 시정책을 건의 → 전국에 집강소 조직(6.) → 동학군 재차 봉기(9.3) → 최시형도 무력 봉기 선언(9.18) → 목천 세성산전투에서 동학군 패배(10.21) → 우금치전투에서 일군에 대패(10.22~11.12) → 전봉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12.2, 양 12.28) → 북접주력부대는 충주에서 해산(12.24) → 동학군 진압 완료(12.27)
3.1 日, 임시중의원총선거
3.6 日 神宮, 승려들의 정치활동을 금지
   
4.1 日 제3회 임시 총선거
5.7(양 6.9) 일본군 혼성여단 선발대대 800명이 인천에 상륙, 오오도리 공사가 특전대를 끌고 서울 침입→5.23 일본공사 왕에게 내정개혁을 건의
5.5 영국·이탈리아, 동아프리카에 관한 영이협정 조인
5.15 日, 제6회 제국의회 개회
5.22 인도,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나탈인 인도국민회의 결성
5.31 日 중의원, 내각탄핵상주안 결의, 중의원 해산(6.2)
6 일본공사 내정개혁안 5개조 제시(6.1) → 내정개혁에 대한 국왕의 윤음 공포(6) → 일본 독단으로 경인 경부간 군용전선공사 착공(8) → 내정개혁을 담당할 교정청 설치(11) → 갑오변란(일본군의 경복궁 침입, 왕궁의 보물 약탈, 대원군 집권, 민씨일파 축출 21) → 청일전쟁 도발(23) → 군국기무처 창설(25, 양 7.27~12.17) → 군국기무처에서 의정부 관제안과 12개조의 사회정치적 개혁안 심의채택(28, ‘갑오경장’ 시작) →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가 2차 내정개혁신안 20조 제의(10.23) → 제2차 김홍집 내각 성립(중추원 신설)(11.21)
6.23 일본군함이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군함을 격침 → 청일양국선전포고(7.1) : 청일전쟁의 시작 → 청군이 평양에서 일군에 대패(8.17)
6.4 日, 한국에 출병
6.7 淸·日 한국에 출병
6.8 日 상비함대사령관 해군중장 이토 유코(伊東祐亨), 군함 松島·千代田 2척 인솔하고 인천에 도착
6.15 日 내각회의, 청나라와 협상이 파괴되는 경우에도 군대 철회할 수 없다는 방침을 결정. 조선에 내정개혁을 추진시킬 대책 강구
6.24 프랑스 대통령 카르노, 이탈리아인 아나키스트에게 암살됨
7.16 일본공사 大鳥 강요로 정부가 공문으로 내정개혁에 대한 회답, 공문에서 일본군 철수를 요구하고 개혁은 스스로 진행할 것임을 통보
7.20 조일잠정합동조관 체결
7.25 지방군제 개혁 : 각도의 병영·수영 폐지
7 군국기무처가 신식화폐발행장정을 채택, 은본위체 실시하고 전환국에서 새 화폐를 발행하고 금납제 결정 / 4건의 전선 절단투쟁이 『東京朝日新聞』에 나타남(~8) : 경성-마포(7.8), 용산 부근(7.15), 용산-양화진(7.18), 대구근방(8.18~19) / 안동에서 서상철의 의병이 거의(갑오의병, 25) → 태봉에서 일본군과 전투(음력 9.1) → 정부-일본 연합군과 교전(10.15) → 청풍 곤지암에서 교전(10.18) → 계속된 패배로 곤지암 부근에 피신 / 安承禹, 지평에서 의병모집(여름) / 영해에서 농민 봉기
7.4 하와이 임시정부, 하와이 공화국 성립 선언(8.7. 영국 승인)
7.16 英·日개정통상항해조약 조인
7.23 淸日兵, 서울부근에서 충돌
7.29 일본군 혼성여단장 오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청국 聶士城 부대와 成歡에서 접전, 청국군대를 격파하고 아산에 진격
8 경북 영해와 영천에서 농민 봉기. 경북 용궁과 석문에서 농민군이 일본군과 격전. 일본군이 평양전투에서 청군을 격파
8.1 日, 淸에 선전포고(청일전쟁)
8.7 영국, 청일전쟁에 중립 선언
8.9 러시아, 중립선언
8 아르메니아, 반 투르크 봉기
9.7 외무아문, 일본공사의 요청에 의해 경기·충청·경상 3도에 공문을 보내 일본 군용전선의 절단행위를 엄금
9.19 張元石, 전신선 절단죄로 황해 감영에서 사형 집행됨
9.1 日, 임시중의원 총선거
9.15 일본군, 평양전투에서 승리
9.17 日, 黃海大海戰
10.11 일본 서원사의 내한 답례로 의화군 堈을 일본보빙사로 파견
10 군국기무처, 새도량형법 실시 결정
   
유성의병장 문석봉
10.6 영국, 독·불·러·미에 극동에 대한 공동간섭 제안. 미·독의 반대로 실패
10.15 프랑스 유대계 불군참모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 스파이 혐의로 체포됨
10.18 日 제7회 제국의회 廣島에서 소집
10.19 日 중의원, 임시군사비예산안전원일치로 가결
11.20 보호청상규칙 반포 시행
11.21(양 12.17) 일제의 강요로 군국기무처 해산되고 제2차 金弘集내각 성립
11 文錫鳳, 양호소모사에 임명됨
   
사발통문
   
전봉준
11.1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 죽음. 니콜라이 2세 즉위
11.4 淸, 恭親王이 영·미·독·불·러의 공사에게 청일전쟁의 휴전조정을 요청
11.8 연합함대, 대련 점령
11.12 주일미공사가 청국의 요청으로 강화조건을 이론에 제의
11.21 日本軍, 청의 旅順 점령
11.22 日, 美日개정통상항해조약 조인
   
   
   
   
   
12.2(양12.28)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 변절자의 밀고로 전라도 순창 피로리에서 체포됨
12.3 일본공사, 일본군대 철회 통고
12.12 고종이 홍범14조와 독립서고문을 종묘에 고함
12.27 김홍집-박영효 연립내각 출범, 2차 김홍집 내각-2차 갑오개혁(12.27)
12 지평의 안승우가 모병활동 펼침 / 홍범도, 철원에서 의병 계획
   
이해 開國紀元을 사용 / 李濟馬가 四象醫學을 체계화하여 『東醫壽世保 元』을 씀
12 淸, 쑨원(孫文)이 하와이에서 홍중회(興中會) 조직

https://search.i815.or.kr/Degae/DegaeView.jsp?nid=2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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