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을 잘 부탁한다”
“여보게, 밖에 검정말이 끄는 검정 마차가 와서 검정옷을 입은 마부가 기다리니 어서 가방을 내다주게”
1. 4월 그믐날 밤
2. 귀먹은 집오리
3. 만년 셔츠
4. 까치의 옷
5. 막보의 큰 장사
6. 삼태성
7. 제일 짧은 동화
8. 양초 귀신
9. 어린이 찬미
10. 시골 쥐의 서울 구경
11. 노래주머니
12. 느티나무 신세 이야기
13. 미련이 나라
14. 꼬부랑 할머니
15. 겁쟁이 도둑
16. 삼 부자의 곰 잡기
17. 잘 먹은 값
18. 세숫물
19. 공중의 귀신 신호
20. 난파선
21. 하멜린의 주 난리
22. 두더지의 혼인
23. 이십 년 전 학교 이야기
24. 선물 아닌 선물
25. 방귀 출신 최 덜렁
26. 무서운 두꺼비
27. 과거 시험 문제
28. 셈치르기
29. 설떡, 술떡
30. 옹깃셈
31. 벚꽃 이야기
32. 나비의 꿈
33. 눈어둔 포수
소설[편집]
- 이상한 샘물 (1923년)
- 나비의 꿈 (1923년)
- 금도끼 (1924년)
- 4월 그믐날 밤 (1924년)
- 선물 아닌 선물 (1924년)
- 시골쥐 서울 구경 (1926년)
- 욕심쟁이 땅차지 (1926년)
- 호랑이 형님 (1926년)
- 만년 셔츠 (1927년)
- 꼬부랑할머니 (1929년)
수필[편집]
- 공원정조 (1922년)
- 뭉게구름의 비밀 (1924년)
- 어린이 찬미 (1924년)
- 사라지지 않는 기억 (1925년)
- 없는 이의 행복 (1930년)
희곡[편집]
- 노래 주머니 (1923년)
방정환 [方定煥, 1899.11.9~193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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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아버지
방정환 선생님은 동화작가로서뿐 아니라 어린이날을 만들어내고 색동회를 조직하여 어린이 인권향상을 위해 평생을 몸바친 어린이 문화운동가, 사회활동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지를 만들어 세계 어린이 문학을 번역·소개하고, 이원수, 윤석중 같은 소년작가를 길러 내기도 했으며, 이태준이라는 천재작가를 취직시켜 작품활동을 돕기도 했다. 투고된 원고가 없을 때는 스스로 여러 개의 가명을 쓰며 여러 이야기를 직접 쓰기도 했다. 근대적 의미의 '어린이 문학'이라는 게 거의 없던 시절, 우리 어린이 문학의 씨앗을 뿌린 매우 귀한 분이라 할 수 있다. 방정환 선생님이 쓴 <만년샤쓰> <양초귀신> 등은 초등학교 읽기교과서에도 실려있다. <만년샤쓰>는 제목이 참 특이하다. 내용을 읽어보지 않고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주인공인 창남이와 창남이 어머니는 자신도 입을 옷이 없지만 불이 난 이웃을 위해 자기 옷을 벗어준다. 창남이는 그것도 모자라 추위에 떠는 어머니를 위해 자기 셔츠를 벗어드리고 학교에 온다. 추운 겨울에 저고리만 입고 학교에 온 창남이. 그런데 체육시간에 선생님은 체력을 키우자며 저고리를 모두 벗게 한다. 결국 창남이의 맨살이 드러났고 선생님과 아이들은 뒤늦게 창남이의 사정을 알고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 작품에서 '만년샤쓰'란 맨몸을 의미한다. 우리 몸의 살갗은 평생 동안 우리의 셔츠가 되지 않던가.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현대의 아이들은 창남이의 뜻깊은 행동을 보고 감동하게 된다. 어린이들이 문학작품을 읽고 감동하는 것은 어른들처럼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며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 아름다운 인물에 대해 감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방정환 선생님의 동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어린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현재 출판되어 있는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집 중 <사랑의 선물 1>은 주로 선생님의 창작동화나 옛이야기가 실려있고, <사랑의 선물 2>는 창작동화보다는 외국동화를 번안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방정환 선생님은 뛰어난 동화구연가이기도 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처럼 볼 것이 별로 없던 시절 방정환의 이야기는 큰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이렇듯 재주 많고 할 일 많았던 방정환 선생님은 33살의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방정환 선생님의 못다한 일들은 이후 많은 작가들이 이어받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의 작품에 감동받은 수많은 어린이들이 또다시 그 일을 이어받을 것이다. | |
소파 방정환은 33세로 생을 마치기까지 어린이를 위해 온갖 정성을 쏟은 애국지사로, 위대한 교육자인 동시에 아동문학의 선구자이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를 떠나서 한국의 아동문화, 아동문학의 출발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는 어른의 소유뮬로만 취급받아온 어린이를 인격적인 존재로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고, 어린이들의 마음에 사랑, 눈물, 용기, 기쁨을 키워주기 위한 동화, 소설, 시 등 아동문학을 일으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소파는 1899년 서울 야주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어머니와 누이를 잃고 새어머니가 들어왔으나 정을 못 붙이고, 대신 그림그리기와 글짓기에 재미를 얻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9세 때 종조부의 사업실패로 그의 집이 파산을 맞게 되어 견디기 힘든 불행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소학교 학생인 10세 때 소년 입지회라는 소년회를 조직하여 토론, 연설의 수련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1914년 선린상업학교에 들어갔지만 2년만에 그만두고 열여섯 나이에 벌써 '청춘' 지에 글을 투고했다. 19세에 천도교 교주이며 독립운동가인 손병희의 사위가 되면서 비로소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는 일본에 건너가 도요대학 철학과에 다니며 아동문제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1921년 서울에서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면서부터 어린이에게 존대말을 쓰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소년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전국을 두루 다니면서 강연을 하는 한편 세계명작 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펴내기도 했다. 1923년에는 한국 최초의 아동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그 해 5월 1일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어린이날 운동을 범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한편 어린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쓰였는가는 분명치 않지만 현재까지의 기록으로는 방정환 번역시의 장르소개 명칭으로 처음 소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각종 대회, 강연회, 강습회를 주관하면서도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의 글을 발표하였다. 소년운동이 좌익세력에 의해 자기의 참뜻과 차츰 달라진 1928년부터 일선에서 물러나 오로지 잡지와 동화순례 강연으로 자기 길을 걸었다. 그의 동화는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이와 관련된 여러 일화가 있는데, 그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고무신을 벗어 오줌을 눈 어린이도 있었다고 한다. 1931년 서른세살의 나이로 그는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초지일관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의 미래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방정환의 활동 ♧ 아동잡지 <어린이> ♧ 외국동화의 소개 -- 1922년 <안데르센 동화>, <그림 동화>, <아라비안나이트> 중에서 선정한 몇몇 작품들을 초역하여 세계명작 동화집인 <사랑의 선물>을 번안, 출간하였다. 이 동화집이 우리말로 씌어진 첫 동화집이며 창작동화의 실마리가 되었다.
방정환의 작품세계 -- 그의 유명한 수필 <어린이 찬미>(1924)에서는 어린이를 "죄많은 세상에서 죄를 모르고 더러운 세상에 나서 더러움을 모르고 부처보다도 예수보다도 하늘뜻 그대로의 산 하느님"이라고 하였다. 소위 '동심천사주의문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당시 식민지하의 냉혹한 현실을 바로 보지 못했다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방정환 문학에 대해 영웅주의와 눈물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라고 비판하였지만 그는 우리 아동문학의 어머니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아동문학의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수많은 작가를 길러냈다. 비록 33세의 짧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지만, 방정환과 깊은 인연을 맺고 방정환의 뒤를 이어 방정환 문학의 한계를 극복해낸 작가들이 많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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