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은 화가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던 해에 서울 사직동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였다.
그는, 보통학교(신명학교) 시절 이상은 살색이 희고, 국어보다는 그림을 좋아했고,

체육을 싫어하는 아이, 그리고 담배 '칼표' 껍질에 나오는 도안을 거의 그대로 모방해 그림을 그리고,

길가에 버려진 화투 목단 10끗자리를 그대로 그려 동네에서 자랑이 되기도 한 아이로 알려져 있다.


 

보성고보 당시 동창들의 회고에 따르면 이상은 그림을 매우 잘 그렸고,자주 '난 화가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보성고보 재학 시절에 이상은 교내 미전에서 1등상을 수상했고,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당시 미술 교사 고희동은 이상의 재주를 알고 극진한 사랑을 베풀었다고 한다.

경성고등공업학교을 1929년에 졸업한 이상은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하게 된다.
그는 서대문구 의주통에 있는 전매청 공사를 비롯하여 몇 군데의 설계를 입안, 현장 감독을 맡으며 일하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이상은 1929년 12월에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인 <조선과 건축>의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었고,

1931년에는 <조선과 건축>에 몇 편의 일문시들을 발표했으며, 제9회 조선미전에 서양화 <자화상>으로 입선한다.

                                                                                                    -해피캠퍼스 (88shfwk) 시인 이상의 일대기 중에서-

 

 

이상 문학 특강 / 박남철


나는 부처 팔아먹고 살고, 이승훈이는 이상 팔아먹고 살고,

송 머시기 는 이승훈이  팔아먹고 산다! 라는, 당대의 한 말씀을 남겨주셨다는,

그 어떤 큰스님의 또 다른 한 말씀이,

서기 2011년 11월 8일 저녁 6시 30분
무렵, 신사동의 엠지타워 3층 ‘유심 세미나실’에서 시작된 문학 강연회에서 또다시 터져나오시고야;
말았던, ‘거디었던’, 것이다.

 

 

90년 뒤 육목단 화투 그림으로 이상을 판다.

화려한 지상최대 장례식으로.....

 

 

그래서일까 ?

이상은 자신의 終生記종생기가 아직도 않 끝났다고 외친다.

 

 

    구본웅이 그린         화가   이상

 

 

 

 

제발 그만 좀 팔아 먹어라!

치사한 짓거리 그만 뭠춰라!

 

 

落         張         不        入

 

 

나는 지금 " 딜라일라" 노래가 듣기 싫어지는 아픔을 격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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