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朝鮮 天文明堂 조선 천문과 명당

 

 

天祭封禪 천제와 봉선

 

천문은 제왕학

고대 제왕들의 투쟁사는 천문학의 논쟁으로부터 발단했다.

새로운 역법과 연호 제정

천하를 통일하면 반드시 태산에 올라 봉선제(封禪祭)를 지냄

관중은 제환공의 봉선을 만류했다. 진시황도 제대로 봉선제(封禪祭)를 올리지 못했다.

중국역사상 최초로 격식을 갖춘 봉선제(封禪祭)를 올린 것은 기원전 110년 한무제다.

무제가 봉선의식을 위해 태산을 방문했을 때,

 

천문역법을 관장하고 황실 전적을 관리하는 태사령(太史令) 벼슬에 있던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봉선 의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를 깊이 한스럽게 여기다 사마담은 세상을 떠났다.

 

봉선(封禪) : 천하를 통일한 사람이 천하통일의 위업을 하늘의 상제에게 보고하는 특별한 제사로서 이 제사를 지낸 사람은 불사등선(不死登仙)을 보장 받는다는 신앙이 있었다.

 

 

 

世宗大王子 胎室세종대왕자 태실 조성 계기 고찰

 

 

世宗大王子胎室세종대왕자태실 - 慶尙北道 星州郡 月恒面 仁村里 국가사적444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조성과 관련한 주변상황

 

조성시기: 1368년 명원의 교체시기

1392太祖즉위

1418년 세종즉위

1938- 1442년간 조성

 

1. 풍수설: 당초 명당이라 하여 성주이씨의 중시조 李長庚의 묘를 옮기고 태실 조성

 

2. 천문설

 

禪石寺선석사

692(효소왕 1)義湘이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여 신광사(神光寺)라 하였으나, 현재보다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1361(공민왕 10)에는 懶翁이 신광사 주지로 부임한 뒤,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런데 당시 새 절터를 닦다가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 닦을자를 넣어 절 이름을 선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李純之이순지

자는 성보(誠甫) 본관양성(陽城)

세종의 명으로 조선의 자주적 역법을 자주적 역법을 이룩하여

1.450년대 조선 천문학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은 천문학자

交食推步法교식추보법21책을 완성

七政算內外篇 칠정산내외편 저술

지명과 별자리 이름

 

   

 

 

 

 

벼리 기 :그물코를 꿴 굵은 줄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

 

 

 

 

 

關聯古史

 

 

 

 

扶桑: 日中 三足烏

金烏:  三足烏

若木: 若扶桑也 上三足烏下昆侖丘 昆山

仁羿: 崑崙之墟方八百里天空曾有十個太陽仁羿射九日 仁村

姮娥: 仁羿請不死之藥於西王母姮娥竊之以奔月 月恒

碧珍: Vega अभिजित् abhijit αLyrae

伽倻: गव- gava -  cow

星州: = + * * *

七谷: 八居里縣.

架山: 斯同火: 구미일부 칠곡 왜관 가산 다부 등 일부 지역의 옛 지명

大邱: 達句火:

龜尾: 九尾

 

八公山: 26.000/ 360 = 72* 100°= 7.200120 *72 = 8,640

西王母: 神仙女靑鳥九尾弧

高靈:

陜川:

  

 

   

張衡靈憲》:月者陰精之宗積而成獸象兔蛤焉

달의 질량은 지구의 1 / 81 = 0.01234567901234570123456790123457

 

 

4. 天符經小考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 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櫃化三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

七八九運三四成環五()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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