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다시 읽는 이상]<3>탈주, 근대의 우울에 맞서다 -20100414,동아일보- 현대문학-작가 / 문학의 세계

2010/04/2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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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건축’ 등의 일본어 잡지에 ‘이상한 가역반응’이나 ‘3차각 설계도’ 등의 난해한 시를 발표했던 무명 시인 이상이 일약 독자들의 시선을 끌게 된 것은 1934년 7월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오감도()’ 15편을 통해서였다. 그로테스크 미학으로 독자들의 기대지평을 산산이 깨뜨린 이 충격적인 시는 “무슨 개수작이냐” “무슨 미친놈의 잠꼬대냐” 등의 비난과 항의가 쏟아져서 학예부장 이태준이 사표를 넣고 다닐 정도였다.
이상은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 떨어지고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라는 회한에 찬 ‘작자의 말’을 쓴다. 랭보의 말처럼 “현대적이어야 한다. 어떻게든 절대적으로 현대적이어야 한다”는 미적 모더니티의 선언이다.

당대 독자들의 항의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감도 시제1호’는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명시일 뿐 아니라 역사성과 보편성을 아울러 갖춘 불멸의 ‘열린 텍스트’다. 제목 ‘오감도’는 건축용어인 ‘조감도’를 변형한 신조어로 “까마귀의 눈으로 인간들의 삶을 굽어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1930년대 초 제비다방을 운영하던 시절의 이상(점선 안). 사진 제공 소명출판

차마 인간의 눈으로 내려다본다고 하지 못할 만큼 무시무시한 시대 풍경이 ‘까마귀의 눈으로 본 세계’라는 낯설게 만들기 기법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당시 일본의 파시즘적 정국 안에서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공포를 이 시는 잘 보여준다.

“13인의가도로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중략)…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막다른 골목을 13인의 아해들이 질주하고 있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그로테스크하다. 13이란 숫자의 의미에 대해서도 ‘최후의 만찬에 합석한 예수+12인의 사도’ ‘당시의 조선 13도’ ‘25시와 같이 시계 이후의 시간’ 등으로 해석이 다양하다. 닫힌 세계를 질주하는 아해들은 무엇을 위해 질주하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면서 무섭다고 하면서 질주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무서운 존재들이며 동시에 서로를 무서워하는 존재들이다. 김홍중은 이 작품을 ‘한국 모더니티의 창세’로 보면서 아해란 ‘근대의 입양아들’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식민지를 통해 폭력적으로 경험된 근대 속에서 식민지인이란 성인이 아닌 아해들이며 이 아해들이 구성하는 사회란 것이 공포스럽다는 것이다. 매우 신선한 지적이다.
또한 이 시는 근대에 대한 절망과 탈근대를 향한 탈주를 보여준다. 근대라는 것 자체가 합리성과 과학정신에 의한 세계의 발전과 계몽적 미래와 역사의 진보를 믿는 목표지향적 질주와 연관된다. 근대의 성격이 바로 닫힌 세계 안을 죽자구나 질주하는 맹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1930년대 초 조선총독부 기사로 일할 때의 이상(왼쪽). 앉아 있는 여성은 금홍인지, 일본 여성인지 알 수 없다. 사진 제공 소명출판

그러나 이상은 닫힌 세계를 질주하는 맹목적 근대를 비판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13인의아해는도로를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것이 ‘오감도 제1호’의 결론이다. 결론 같지 않은 결론이고 장난스러운 그로테스크다. 그로테스크 아이러니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결론이지만 근대의 막다른 골목을 뚫고 탈근대의 자유로 탈주하는 해방의 지점이다. 근대의 이분법적 절벽을 탈근대의 유희로 해체하면서 근대성의 우울과 그 편집증적 공포를 탈근대의 웃음으로 가볍게 뛰어넘는다. 순간 공포가 웃음이 된다. 여기에 이상문학의 약이자 독, 곧 파르마콘이 있다. 그래서 이상의 ‘오감도 시제1호’는 바로 21세기 인(), 우리의 공포의 진단서이면서 동시에 치유의 처방전이 된다. 종말론적 시간 속을 자본의 채찍에 내몰려 달려야만 하고 옆의 친구와 동료를 무서워하며 무한질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막다른 골목을 버리고 뚫린 골목으로 탈주해도 좋다는 하나의 포스트모던한 해방의 처방전을 내밀고 있다. 정말 도로를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은가? 근대성 착취의 벽에 균열의 틈새를 살짝 내도 되는가?

출처 : 시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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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다시 읽는 이상]<4>분열, 자아의 불안을 응시하다 -20100421,동아일보- 현대문학-작가 / 문학의 세계

2010/04/2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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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김옥희의 증언에 따르면 학창시절 해경은 유난히 거울을 좋아하여 방에 엎드려 무엇을 쓰고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을 그리곤 했다. ‘거울’은 이상 문학의 핵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물이자 나르시시즘의 표상이고 자아분열의 도구였고 이상은 ‘거울 애호자’이자 ‘거울 공포자’이기도 했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시 ‘거울’ 중)》



시인은 이렇게 거울의 깨끗하고 조용한 매끄러운 세계에 매혹된다. 거울은 나르키소스의 호수처럼 아름다운 나르시시즘의 매혹적 도구이다. 세상에 거울만, 거울 같은 반영적 존재(어머니)만 나를 에워싸고 있다면 유아적 나르시시즘의 충만, 오인() 속에서 행복한 착각을 이루고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시인은 거울 속의 나는 실제의 나와는 다른 왼손잡이이며,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전도()된 영상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거울 속의 나’가 나의 이상적 자아이자 나르시시즘적 자아라면 그 두 개의 나는 그렇게 불일치하며 분열적이며 불화하는 존재이다. 김해경/이상은 그렇게 악수할 수 없는 불화의, 분열의, 불일치의 관계였다.
‘오감도시제15호’에서 시인은 “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그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라고 거울 속의 나에게 총탄을 발사하여 살해하고자 한다. 그것만이 자아분열의 괴로움을 끝장내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를 죽이는 데도 실패하고 만다. 거울 속의 나를 살해할 수도 없고 거울을 피해 도망칠 수도 없는 나의 삶이란 거울의 지옥이 상영되는 분열의 극장이 된다.
그 거울이 쓰는 시나리오가 자아분열의 질병이다. 거꾸로 된 숫자판이 거울을 통해 보이고 그것을 환자의 용태로 진단하고 있는 시 ‘오감도시제4호’는 바로 ‘환자 김해경/책임의사 이상’의 분열증적 공생관계를 잘 보여주는 ‘카르테-시’이다. 책임의사 이상은 환자의 용태를 0:1로 진단한다. 비합리주의자(뒤집혀진 숫자판)로서의 환자의 용태를 합리주의자인 책임의사 이상이 진단을 내리고 있는, 자아 분열과 그 대립을 보여주는 시각시이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여자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상이다. 이상은 이 사진에 ‘이것은 누구던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것은 이상의 분열된 삶을 지배하는 물음이기도 했다. 사진 제공 소명출판


그렇게 이상은 김해경의 질병을 앓고 그 질병을 노래한다. 또 가문의 아버지들이 있다. 그의 첫 발표작이자 장편소설인 ‘12월 12일’은 이상의 인생을 차압한 것으로 암시되는 백부의 시점으로 쓰인, 친부, 친모, 천재소년 업()이의 욕망들이 뒤얽힌 가족 비극이다. 이목구비가 수려한 천재소년 업이는 바로 가문의 업둥이인 해경 자신을 가리킨다. 유교의 가부장적 욕망과 근대의 자본주의적 욕망이 처절하게 결탁된 이 작품에서 화가가 되고자 하는 천재 미소년 업이는 자기 가족에게 돈을 대주는 백부의 파시즘적 억압으로 정신분열을 일으켜 미쳐서 죽게 된다. 업이야말로 바로 해경 자신이었으며 장손인 김해경 자신에게 내리꽂히는 가족 욕망의 편집증적 압력에 그는 괴로워하였다. “분총에계신백골까지가내게혈청의원가상환을강청하고 있다”(시 ‘문벌’)처럼 무덤 속에 계신 조상들의 빚독촉과 부채의식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극한을걸커미는어머니-기적이다.기침약처럼따끈따끈한화로를한아름담아가지고내체온위에올라서면독서는겁이나서곤두박질을친다”와 같이 불쌍한 어머니의 희생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슬퍼하기도 한다.
마침내 가부장들이 지어준 이름 김해경을 버리고 이상이 된 순간 이상()은 이상()이거나 리상이거나 이상()이거나 그리고 이상()이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나의 나’라는 절대성을 버린 순간 ‘하나 이상의 나’는 분열의 고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해방의 희열이었다. 그는 몇 년간 이상으로서 다다와 초현실주의적 언어의 극치의 퍼포먼스를 화려하게 펼쳤다. 그리고 피난하듯 도쿄로 떠난 그는 1936년 12월 19일 미명에 한국 최고의 명수필인 ‘권태’에서 이렇게 쓴다. “불나비가 날아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렇다. 이 부나비처럼 그는 자신의 파멸을 걸고 죽을힘을 다하여 도쿄의 누추한 한 다다미 방에서 ‘종생기’ ‘권태’ ‘슬픈 이야기’ 등 한국문학 최고의 명편들을 써댔다. 드디어 인간 김해경은 귀재 이상의 불멸의 제단에 바쳐진 불쌍한 먹이, 희생자, 제물이 되었고 하얀 데드마스크가 와서 그 잔혹한 자아분열은 끝을 맺게 되었다.

출처 : 시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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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이상, 식민지 시절 도쿄서 뭘 생각했나 -20100417,중앙일보- 현대문학-작가 / 문학의 세계

2010/04/1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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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분쿄구의 도쿄대학 부속병원 관리·연구동 건물. 문학평론가 서영인씨는 “이상은 1937년 당시 중앙진료동이었던 이 건물에서 진료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워질 수 없는 영구한 공석을 하나 만들어놓고 상은 사라졌다. (…) 시단(詩壇)이 갑자기 반세기 뒤로 물러선 것을 느낀다. 내 공허를 표현하기에는 슬픔을 그린 자전(字典)속의 모-든 형용사가 모두 다 오히려 사치하다. ‘고(故) 이상(李箱)’-내 희망과 기대 위에 부정의 낙인을 사정없이 찍어놓은 세 억울한 상형문자야.’
박제가 돼버린 천재. 극도의 육체적 피로 속에서만 은화(銀貨)처럼 맑아지는 정신으로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부리며 시대와 문학을 조롱했던 전무후무한 실험주의자. 그 자신 빼어난 시인이었던 김기림(1908∼?)조차 이상의 사망 두 달 뒤 월간지 ‘조광’에 실은 추모글에서 한국 현대시가 50년 후퇴했다며 아쉬워했던 이. 시인이자 소설가, 건축가였던 이상(1910∼1937)이 태어난 지 올해로 100주년, 사망한지 73주년이다. 하지만 그의 문학과 생애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서울대 국문과 권영민 교수는 “이상이 남긴 텍스트 전체보다 그에 대한 해설의 분량이 훨씬 많다”고 말한다. 해석의 어려움 때문이다. 시인 장석주씨에 따르면 대표작인 연작시 ‘오감도’ 제1호에 나오는 ‘13인의 아해’를 놓고도 해석이 분분하다. ‘예수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13인’‘일제하의 13도’ 등 사람마다 다르게 읽는다.

이상은 죽기 전 지인들에게 센비키야의 멜론이 먹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센비키야는 19세기에 문을 연 도쿄 긴자의 고급 과일가게다. 사진은 센비키야의 옛 모습.

이상의 생애, 특히 일본에서의 최후는 일화(逸話)를 넘어 거의 전설 수준이다. 우선 그의 일본 행부터 석연치 않다. 이상은 기생 출신 동거녀 금홍이 사납게 굴면 몸을 피해 찾았던 절친한 소설가 박태원 등 친구들의 만류를 극구 뿌리쳤다. 일본 가서는 ‘날개’ ‘오감도’ 같은 실험적 작품 말고 정통적인 시·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훗날 화가 김환기와 결혼해 김향안으로 이름을 바꾼, 이화여전 출신의 자유연애주의자 변동림과 결혼한 지 불과 넉 달만인 1936년 10월의 일이다.
하지만 알려진 대로, 이상은 기대를 품었던 도쿄에서 서양을 베낀 껍데기일 뿐인 이른바 ‘모조(模造)된 현대’를 읽는다. 도쿄역 앞 고층빌딩 ‘마루노우치’에서 환멸을 읽고, 거리에서 몹시 가솔린 냄새가 난다고 투덜댄다. (산문 ‘동경’) 급기야 일본 경찰에 체포돼 한 달간 구금된 후 지병인 폐병이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된다.
17일은 이상의 기일이다. 와세다 대학 교환연구원으로 있는 문학평론가 서영인(39)씨의 도움을 받아 13일 이상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 나섰다. 이상이 입원해 최후를 맞은 분쿄(文京)구의 도쿄대 의학부 부속병원부터 방문했다. 소설가 김연수의 장편 『꾿빠이, 이상』은 이상 매니어인 서혁민의 상상을 통해 이상의 최후를 실감나게 전한다. 환자를 접한 일본인 레지던트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방치했냐’고 나무라자, 한인 학생들이 ‘괜히 왜놈 병원에 왔다’며 흥분하는 대목이다.
당시 병원 건물은 현재 원장실이 있는 관리·연구동으로 쓰이고 있다. 김연수는 이상이 숨진 곳은 병원건물 북쪽 격리병동이었다고 소설에 썼다. 다다미방 물료(물리치료)과 병실도 언급한다. 격리병동이 물료과 병실인지는 분명치 않다. 의대도서관을 찾았다. 옛 사진이 나온 책자 『의학생과 그의 시대』에서 1918∼45년 지금의 도쿄대 남문 왼쪽에 ‘물료내과병실’이라는 건물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연수가 언급한 격리병동과는 반대 방향이다. 이 건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발길을 서쪽으로 돌려 지금은 치요다(千代田)구로 바뀐 간다(神田)구 이상의 하숙집 자리를 찾았다. 의대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다. 권영민 교수가 임종국 편 『이상전집』에 나온 하숙집 주소 ‘101-4번지’가 잘못됐다며 ‘10-1번지 4호’로 바로잡은 곳이다. 역시 흔적도 없다. 센슈대학 7호관 고층 건물이 서 있다. 서영인씨는 “이상은 도쿄에서 급조된 근대에 대한 환멸은 물론 도쿄의 흉내에 불과한 경성의 근대성에 대해서도 반성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병사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작품 해석과 창작에 있어서 넘어야 할 장벽인 이상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김연수씨의 접근 방식이 시사적이다. 김씨는 “이상은 예술은 물론 삶과 죽음까지도 철저히 모더니스트였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문학의 큰 두 조류 중 하나인 모더니즘 계열 작가들은 여전히 이상의 영향 안에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런데도 기인(奇人)적인 측면만 주목해 그의 삶과 문학을 스캔들로 대하면 잘못”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그러면서 이상의 산문 ‘권태’‘산촌여정’ 등을 추천했다. “소설이나 시보다 빼어나다”는 것이다. 읽어보니 빼어난 문장가, 이상이 보인다. 이상은 역시 열린 텍스트다.
출처 : 시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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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箱의 마지막 행적 -20100417,조선일보- 현대문학-작가 / 문학의 세계

2010/04/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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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4월 17일 새벽 4시 일본 도쿄 제국대 부속병원에서 이상(李箱)이 27세로 세상을 떴다. 그는 1936년 10월 새로운 문학을 모색하러 도쿄에 갔다가 죽기 두 달 전 '거동 수상자'라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본명 김해경이 아닌 이름으로 '그리 온건하달 수 없는 글귀'를 적은 공책이 그의 하숙집에서 나왔다. 한 달 동안 조사를 받다가 추운 유치장에서 폐결핵이 악화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성에서 급히 달려온 아내 변동림에게 그는 "멜론이 먹고 싶다"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한 뒤 숨을 거뒀다. 한때 '레몬'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멜론'이 맞다는 게 최근 연구 결과다.

▶올해는 이상(李箱) 탄생 100주년이다. 1910년 9월 23일 경성에서 태어난 이상은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라는 시 '오감도'를 내놓아 천재와 광인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이상과 절친했던 김기림은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라며 "상(箱)이 소속한 20세기 악마의 종족들은 번영하는 위선의 문명을 향해 메마른 찬 웃음을 토할 뿐"이라고 옹호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묻는 소설 '날개'를 쓴 이상의 삶은 196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서 시대를 앞선 천재의 상징으로 꼽혔다. '구속이 없는 자유, 자유로운 감각, 질서에 대한 충동의 우위, 상상력의 해방, 이런 것들이 오늘날까지도 이상 문학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권영민 서울대교수).
▶도쿄 시절 이상은 서양을 흉내낸 일본의 '모조(模造)된 현대'를 비웃었고, 하숙집에서 소설 '종생기' 등 10편을 왕성하게 썼다. 곧 귀국하려던 참에 느닷없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끌려갔다. 이상은 병원에서 "예의 명문(名文)에 계원(係員)도 찬탄하더라"며 우스갯소리도 던졌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상이 경찰서에서 쓴 수기(手記)를 포함한 일본 경찰 기록은 공개된 적이 없다. 지난 8일 일본인들로 구성된 '시인 윤동주 시비 건립위원회'가 옥사한 시인의 재판 기록을 찾아내기 위해 일본 검찰에 조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상 탄생 100년을 맞아 우리 정부나 연구자들이 니시간다 경찰서에서 보낸 이상의 마지막 행적 자료도 일본 관계기관에 요청할 필요가 있다. 오늘 17일은 '박제가 된 천재' 이상이 떠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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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 단편소설 ‘이발소’ 발굴 -20091203,한겨레- 현대문학-작가 / 문학의 세계

2009/12/0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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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풍경'의 작가 구보 박태원(1909-1986)의 알려지지 않은 단편소설 한 편이 새로 발굴됐다.

계간 '작가세계'는 겨울호(통권 83호)에 구보가 1942년 발표한 단편소설 '이발소'를 수록했다. '이발소'는 1942년 8월11일 발행된 '매신사진순보' 294호를 통해 발표된 것으로, 근대서지연구회 회원인 신영수 씨가 작가세계 측에 자료를 제공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에세이 성격이 짙은 이 소설은 화자의 이발 습관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동소문 밖에 있는 자신의 단골 이발소 풍경을 소개하는 것으로 넘어간다.

시설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이 이발소는 샴푸 대신 빨랫비누를 쓰고, 수통도 없는 데다 드라이기도 늘 고장 나 있어 "또 찾고 또 찾고 하는 것이 내 스스로 괴이쩍"은 곳이다.

이곳에는 세 명의 이발사가 있는데 점심때마다 셋이 제비를 뽑아 일등은 공짜로 먹고, 이등은 제 몫만 내고, 삼등은 일등 몫까지 내는 '제도'가 있다.

소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만주 내기 제비뽑기를 하며 가벼운 말다툼도 하는 세 이발사의 모습을 보여준 후 "천하는 태평이엇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문학평론가 홍기돈 씨는 해제에서 "작품의 마지막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그려내고자 했던 세계는 '신체제질서'로 수렴되지 않는 태평하고도 명랑한 세계"라며 "같은 맥락에서 '이발소'는 (친일 성향의) 매신사진순보의 성격으로부터도 미끄러지는 측면이 강하다고 이야기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씨는 "'성문 밖'에서 구보는 '이발소'와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냉혹한 시대를 겉돌고자 하였다"며 "저항으로까지 나서지는 못하였으나 이 정도면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자 어느 정도 노력했다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작품이 몇 편만 더 발굴된다면 비슷한 시기에 쓰인 중국 고전소설의 의미를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친일 여부 논의를 진척시키는 데도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작가세계'는 이번 호에 '박태원 특집'을 마련해 발굴작 외에도 장남 박일영 씨가 쓴 회고문과 신형기 연세대 교수의 비평문, 김미지 서울대 강의교수가 쓴 문학적 연대기 등을 수록했다.

출처 : 시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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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 자른 '아해들' 욕망의 질주를 시작하다 -20100105,조선일보- 현대문학-작가 / 문학의 세계

2010/01/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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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국 문단에 홀연 나타나 모더니즘 문학의 큰 성을 쌓은 천재 시인·소설가 이상(李箱·1910~1937)이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전위적 실험정신과 해체적인 서사를 앞세워 분열된 내면세계를 탐험했던 이상의 문학은 지금도 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창작의 샘물이다. 한국 문학의 영원한 '모던 보이' 이상의 짧은 삶과 문학,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예술가들의 풍경을 시인·문학평론가 장석주씨가 매주 연재한다.

― 편집자

여우털 목도리를 감은‘모던 걸’. 조선일보 1933년 10월 25일자에 실린 안석영의 만문(漫文).

1930년대는 '모던뽀이'와 '모던껄'들의 전성시대였다. 미적 혁신을 표방한 예술의 아방가르드들, 거리로 쏟아져나온 유행과 소비의 첨병들이 '모던'의 시대를 이끌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물결을 타고 조선반도까지 밀려온 '모던'은 낡고 오래된 것을 잘라내는 데서 시작됐다.

'모던(modern)'은 곧 '모단(毛斷)'이다. 상투를 자르는 것은 지난 시대와의 단절, 인습에서의 자유를 뜻한다. 새로운 미학적 규준에 몸을 맞추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문화적 단절에 따른 충격이었다. 수백 년 동안이나 머리에 이고 있던 상투를 자른 '아해들'이 시대의 '막다른 골목'을 향하여 질주를 시작했다(이상, 〈오감도〉시 제1호). 그 막다른 골목은 모더니즘의 도주로였다.

그런데 왜 1930년대일까?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유화정책으로 전환하면서 느슨해진 탓이 컸고, 아울러 카프(KAPF)나 민족주의 진영과는 다른 이념과 미적 규준을 가진 예술가들의 분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기진·박영희 등이 이끌던 카프에 반발한 일군(一群)의 문인들이 1933년에 '구인회(九人會)'를 결성했다. 그 초기 구성원들은 김기림·이효석·이종명·유치진·김유영·조용만·이태준·정지용·이무영 등이었다. 이 중에서 몇이 빠지고 그 자리를 박태원·이상·박팔양·김유정·김환태 등이 채웠다. '구인회'는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시작점이다. 그 모더니즘 대열의 맨 앞자리에 선 인물이 이상이었다.

당시 경성의 상징은 도심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고급백화점들이었다. 백화점은 근대문명의 전시장이자 상품에 대한 소비욕망을 부추기는 카니발의 장소였다. 판탈롱 바지와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를 신고 한껏 멋을 부린 모던 걸과 양복을 걸쳐 입고 중절모를 쓰고 스틱을 든 모던 보이들은 욕망의 각축장인 백화점 옥상정원(屋上庭園)에서 '노골하게 해방된 연애'를 즐겼다.

1930년대 모던 보이, 모던 걸의 사교 공간이있던 미쓰코시(현 신세계)백화점의 옥상 카페./‘사진으로 보는 서울’중에서

1920년대 말부터 경성에는 동아부인상회·화신상회(뒤에 화신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하라다·조지야·미나카이·미쓰코시 같은 백화점들이 들어서며 경쟁을 했다. 특히 미쓰코시 백화점의 옥상정원은 경성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경성 최고의 연애 명소였다. 이곳은 항상 조선인과 일본인 신여성과 여학생들로 차고 넘쳤다.

1930년 일본에서 귀국하여 경성역에 도착한 박태원은 짐꾼을 시켜 짐은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곧바로 미쓰코시 백화점으로 가서 옥상정원 파라솔 아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박태원은 도쿄 유학을 떠난 지 몇 달 만에 병이 재발하고 실연의 상처까지 겹쳐 견딜 재간이 없었다. 간다의 진보초 서점에서 구한 제임스 조이스와 아쿠타가와의 소설들을 끼고 하숙집에 틀어박혀 종일 읽다가 지치면 잠을 청하다가 짐을 쌌던 것이다.

1930년대 경성 인구는 40만에 가까웠고, 거리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달렸다. 이상은 자동차 행렬을 보고 '발광어류(發光魚類)의 군집이동(群集移動)'(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이라고 썼다. 이상이 이태준의 소개로 박태원을 처음 만난 1933년 이후 그들의 우정은 급격하게 깊어졌다. 두 사람이 혼마치(충무로)와 황금정(을지로)을 나란히 걸어가는 걸 목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소공동에 있던 끽다점 '낙랑파라'에 들러 가배차(茶·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레코드를 들었다. 그러다가 유학을 간다는 어느 화가의 '도구유별전(渡歐留別展)'이 열리는 화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들 모던 보이들은 커피 대신 청량음료수 칼피스를 마시기도 했고, 상류층에서는 아지노모도를 넣어 조리한 음식을 먹었다. 신여성들은 미쓰코시나 화신에서 최신 양장을 사서 입거나, 종로2정목 한청빌딩 1층에 있는 수향상회에서 고급 양장을 맞춰 입었다. 금시계와 다이아몬드 반지는 당시 신여성의 첨단 패션에서 빠질 수 없는 품목이었다. 지금부터 이들 '모던 뽀이'들이 걸었던 경성 거리와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자.

출처 : 시와 비평
글쓴이 : 심은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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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이 지구에 온 사나이… -20100112,조선일보- 현대문학-작가 / 문학의 세계

2010/01/1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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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경성(京城), 늦여름 저녁 무렵. 예사롭지 않은 외모의 남자 넷이 황금정(지금의 을지로)을 거쳐 종로를 걷고 있었다. 백구두에 봉두난발, 갈색 나비넥타이, 얼굴의 반쯤을 덮은 구레나룻에 얼굴빛이 창백해서 양인(洋人)인가 싶은 사나이, 그 곁에 중산모를 눌러 쓴 키가 여느 사람의 반밖에 되지 않는 꼽추, 흐느적흐느적 걷는 폼이 마치 인조인간처럼 보이는 사나이,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갓빠'머리(머리 꼭대기를 일자로 깎은 머리) 스타일의 키가 훌쩍 큰 또 다른 사나이.

"어디 곡마단 패가 들어왔나 본데." "아냐. 활동사진 변사 일행이야."

사람들이 이 기묘한 일행을 힐끔거리며 한마디씩 던졌다. 스틱을 들어 공중에서 휘휘 돌려대던 백구두의 사나이가 돌연 "캬캬캬캬…" 하고 웃었다. "이 꼴들을 보게. 참, 정말 곡마단 일행이 왔다구 애들이 또 줄줄 따라오겠어."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 끼어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의 웃음소리는 독특했다. 그 웃음소리의 주인공이 '일세의 귀재(鬼才)'로 불리게 될 이상(李箱·1910~1937)이었다. 그리고 꼽추 화가 구본웅(具本雄·1906~1953), 흐느적거리며 걷는 소설가 겸 번역가 양백화(梁白華·1889~1938), 소설가 구보 박태원(朴泰遠·1909~1986)이 그 일행이었다.

1931년에 개점한 경성 최초의 커피다방 낙랑파라에서 구인회(九人會) 모임을 마친 일행은 근처 골목길에 있는 우고당(友古堂)에 들러 구본웅을 대동하고 한 잔하러 나선 길이었다.

경성역 대합실의 끽다점(喫茶店)과 더불어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였던 낙랑파라의 주인은 일본 동경미술학교 도안과 출신의 화가 이순석이었다. 이순석은 경성부청(府廳)과 마주 선 건물 이층에 화실을 꾸리고, 아래층에는 끽다점을 냈다. 입구는 파초 화분으로 장식하고, 내부 널마루 위에 톱밥을 펴서 사막에 온 듯한 정취를 자아냈다. 낙랑파라는 훗날 배우 김연실이 인수해 이름을 낙랑이라고 바꾸고 해방 후까지 운영했다.

이상의 절친한 벗이었던 화가 구본웅이〈친구의 초상〉 (1935년 작)이라는 제목으로 그린 이상의 초상화.

구본웅이 1935년 3월경 우고당 2층에 마련한 화실에서 그린 〈우인(友人)의 초상〉이란 작품이 있다. 봉두난발에 상아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이상의 초상화다. 파이프 담배는 본디 이상의 것이 아니라 구본웅의 것이었다. '배고픈얼굴을본다./ 반드르르한머리카락밑에어째서배고픈얼굴은있느냐./ 저사내는어데서왔느냐./ 저사내는어데사왔느냐.'(이상의 시 〈얼굴〉)

이상은 거울을 보며 자주 "너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퇴폐와 패륜의 표상으로, 때로는 광인(狂人)으로 오해받으며 냉대와 수모를 당하고, 병고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내면에 은닉된 스캔들의 원소, 존재 그 자체로 시대의 개벽을 예고하는 천둥이며 번개였던 이상! 위트와 패러독스로 무장한 천재는 너무 일찍 이 지구에 온 것인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은 소설 〈날개〉의 첫 문장을 그렇게 시작했다. 물론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이상 자신이었다. 김기림은 이 최초의 모더니스트 시인에게서 해학과 야유와 독설로 '세속에 반항하는 악한 정령(精靈)'을 보았다.

이상은 조선중앙일보 1934년 7월 24일자에서 8월 8일까지 연작시 〈오감도〉를 발표했다. 이때 "이게 무슨 개수작이냐!" "당장 집어치워라!" "이상이라는 작자를 죽이고 말겠다!"는 야유가 쏟아졌다.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결국 연재는 15회로 중단됐다. 그는 항변했다.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년씩 떨어지고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2000점에서 30점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용대가리를 딱 꺼내어 놓고 다들 야단하는 바람에 배암 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 달고 그냥 두니 서운하다."

이상은 시대를 너무나 앞질러갔기에 이해받지 못했다. 세상을 뜬 뒤에야 당대의 냉대와 몰이해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그는 '박제'가 되어버릴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고 〈날개〉를 쓴 것은 아닐까. 이상의 삶은 '전통(친부·親父)'에서 내쳐져 '근대(양부·養父)'로 입양되었다가 그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아해'의 슬픈 종생기(終生記)다.

출처 : 시와 비평
글쓴이 : 심은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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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경은 왜 이상이 되었나 -20100126,조선일보- 현대문학-작가 / 문학의 세계

2010/01/2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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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강릉을 본관으로 하는 김연창(金演昌)이 그의 생부다. 김연창은 얼굴이 얽은 사람으로, 형 김연필(金演弼)의 주선으로 구한말 궁내부(宮內府) 활판소(活版所)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손가락 세 개를 절단당한 뒤 작은 이발소를 개업해서 호구지책을 삼았다.

이상은 〈슬픈 이야기〉라는 글에서 그 사연을 이렇게 적었다. "우리 어머니도 우리 아버지도 다 얽으셨습니다. 그분들은 다 마음이 착하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손톱이 일곱밖에 없습니다. 궁내부 활판소에 다니실 적에 손가락 셋을 두 번에 잘리우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생일도 이름도 모르십니다. 맨처음부터 친정이 없는 까닭입니다. 나는 외가집 있는 사람이 퍽 부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장모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김해경이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 서울 통인동 154번지에서 중인 계급의 가난한 집안 장남으로 태어났을 때, 그의 이름을 지은 이는 조부 김병복(金炳福)이었다. 해경은 집안의 자랑이었고,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세울 희망이었다. 그런 까닭에 조부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경성고등공업학교 시절의 이상. 그림을 좋아하는 청년이었다. /‘뿔’제공

어린 해경은 젖을 떼자마자 총독부 상공과의 하급 관리직에 있던 자식 없는 백부의 양자로 들어갔다. 백모는 해경에 대해 엄격했다. 백부가 안아줄 때도 겁이 난 어린 해경은 늘 울곤 했다. 해경의 내면은 어리광과 유희 본능을 억압당하고 낯선 세계가 주는 공포와 불안에 착색당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상(李箱)'이란 필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혼재한다. 해경이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반 시절 공사장에 감리감독을 나갔을 때, 인부들이 그의 성을 잘못 알고 일본식으로 '리상(李樣)!' 하고 부른 데서 기인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상'이란 필명이 처음 나타난 것은 경성고공(京城高工) 제8회 졸업앨범이다. 조선인 학생 17명이 이름을 올린 그 명부 안에 해경은 이상(李箱)이란 필명을 쓰고 있다. 그러나 1931년에는 김해경이란 본명으로 《조선과 건축》(7·8·10월호)에 〈이상한 가역반응〉 등 21편의 일어(日語) 시를 연이어 내놓는다. 그리고 아홉 달 뒤인 1932년 7월 같은 잡지에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 아래 7편의 시를 내놓으며 비로소 '이상'이란 필명을 쓴다. 전통과 탈전통, 어른과 아이, 혈통적 의무와 예술적 자유 사이에서 공포와 불안의 운명에 주박당한 기호인 김해경은 이상이라는 귀면(鬼面)을 쓰고 탈주한다.

김해경이란 이름은 강릉 김씨라는 핏줄을 잇고,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라는 정언적 명령이자 세속적 가치의 기호라는 함의를 갖는다. 1931년 백부 김연필이 죽고 해경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 그에게 다가온 것은 "젖 떨어져서 나갔다가 23년 만에 돌아와 보았더니 여전히 가난하게들 사십디다"에서 볼 수 있듯 가난의 참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였다.

'해경'은 그의 생식력과 노동력이 온전히 이 가족적 가치의 재생산에 바쳐져야 함을 의미하는 가족명이다. 따라서 '이상'이란 필명의 참칭은 '김해경'의 전면부정이자 그것이 강제하는 일체의 운명으로부터의 탈주와 새로운 주체 탄생, 그리고 근대적 가치에 의한 봉건적 가치의 죽음을 선언하는 셈이다. 시인 김승희는 이 변성명(變姓名) 행위를 '억압과 위기에 대응하는 자아변형과 제의적(祭儀的) 변화의 추구'로 설명한다. 아울러 그것은 자신의 자발적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된 운명으로 주어진 '김해경'의 상징적 죽음과 함께 이루어질 이질적인 삶으로의 분열·분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고, 평론가 신형철의 지적대로 '자연인 김해경에서 문학인 이상으로의 탈출'이다.

이상은 정지용이 주재하던 잡지 《카톨릭청년》(1933.7.)에 한국어로 된 시를 발표하며 자신의 문학을 한국문학의 영토 안으로 편입시켰다. 그중 〈1933, 6, 1〉이라는 시에서 "나는 그날 나의 자서전에 자필의 부고(訃告)를 삽입하였다"라는 표현을 썼고, 이어서 같은 잡지(1933.10.)에 내놓은 〈거울〉이라는 시는 자아가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로 분열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그려낸다.

출처 : 시와 비평
글쓴이 : 심은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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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작품 위키 원문

 

소설[편집]

12월 12일 (1930)

휴업과 사정 (1931)

지도의 암실 (1932)

지팽이 역사 (1934)

지주회시(鼅鼄會豕) (1936)

날개 (1936)

동해(童骸) (1936)

봉별기(逢別記) (1936)

황소와 도깨비 (1937)

• 19세기식 (1937)

공포의 기록 (1937)공포(恐怖)의 기록(記錄) 

종생기 (1937)

권태 (1937)

• 슬픈 이야기(1937)

환시기(幻視記) (1938)

단발(斷髮) (1939)

실화(失花) (1939)

김유정론 (1939)

• 병상 이후 (1939)病床以後_(수필) 

• 동경 (1939)

• 최저낙원 (1939)

 

 

[2][편집]

이상한 가역반응 (1931)

• BOITEUX BOITEUSE (1931)

• 공복 (1931)

• 조감도(1931, 일문)

• 삼차각설계도 (1931, 일문)

건축무한육면각체 (1932)

이런 시 (1933)

꽃나무 (1933)

거울 (1933)

오감도 (1934)

절망(絶望)_ 백석 

2010.10.01

二人····2····  

2010.10.01

二人····1····  

• 소영위제(1934)소영위제 

 

• 지비(紙婢) (1935)지비(紙碑)_이상    紙 碑 (어디갔는지모르는안해)_이상 

• 가외가전 (1936)街外街傳 _이상 

• 여상 (1936)

낙수 (1936)

Epigram (1936)

매상 (1936)

역단 (1936)

    • 且8氏의 出發 (1932)

狂女의 告白 

 

 

 

 

수필[편집]

혈서삼태 (1934)

산촌여정 (1935)

서망률도 (1936)

행복 (1936)

病床以後_(수필) 

2010.09.22

山村餘情_(수필) 
EPIGRAM_(수필) 
藥水_(수필) 

슬픈 이야기_(수필) 

실 락 원 

 

약수 

김유정 

2010.09.28

단발 

2010.09.28

                                   블로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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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원고로 돌아보는 이상의 발자취 

 

 

 

 

 

 

 

 

지은이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01.2.6
장르
소설 베스트셀러보기
책 속으로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연수의 세 번째 장편소설. 천재시인 이상(李箱)의 유품인 '데드마스크'에 대한 진위를 중심으로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고 있다. 1부 데드...
이 책은..
나의 평가
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꽤 괜찮아요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전기적 사실을 끌어모은다 해도 이상의 이문장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상이 결코 가난하고 허전해지지 않는 한, 모든 전기는 이상이 쳐놓은 비밀의 그물에 걸려들 뿐이다.
-p 121
 


현기증이 나는 정오의 싸이렌 소리에 문득 겨드랑이의 날개를 발견하고 날기를 소망하였으나 끝끝내 날지 못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흔적을 남긴 천재 작가.  이상은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초현실, 추상주의의 유행속에서 총독부의 잘나가는 기수직을 때려치우고 기생 금홍과 다방 '제비'를 차린 모던보이 이상, 건축가로 화가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그의 삶이 영원히 비밀과 신비로 감싸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활동하던 작가들이 모두 실종되거나 납북,월북되었기 때문이다.  김연수의 소설 '꾿빠이, 이상'(문학동네,2001)은 바로 그런 이상의 삶과 문학, 죽음의 비밀로 연관된 작품을 둘러싸고 있다. 
 

어느것이 가짜인가 진짜인가?  진짜로 믿으면 진짜이고 가짜로 믿으면 가짜인가?  작품을 이끄는 것은 이른바 가짜와 진짜의 '진위 논란'인데 그 대상은 모호하면서도 퍽 흥미롭다.  자연인 김해경과 이상이라는 인공인의 대결, 죽은 후에 한 친구가 떴다는 데드마스크의 분실과 가짜 데드마스크의 출현에 한 출판사의 김연(화) 기자가 연루되면서 아마추어 이상연구자가 쓴 이상의 오감도 제 16호 시에 대한 진위논란, 이상 문학을 연구하고 학술 발표차 한국에 온 재미국문학자 피터 주의 정체성(자신이 미국인이냐,한국인이냐,대만인이냐)이 실타래처럼 엉켜 진실게임의 진실을 찾아간다.
 

작가도 말미에 밝혔듯 김윤식의 이상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소설의 뼈대를 잡아갔기 때문에 잡지사 기자 김연의 시각으로 풀어가는 '데드마스크'에는 이상의 전기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실제 인물들의 이름과 사건들이 나온다. 실제와 허구속 이상의 발자취가 미궁에 싸여있어 독자를 아득한 심연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정체-이상의 데드마스크.  잡지사 기자인 김연(화)에게 걸려 온 한통의 전화로 데드마스크의 출현과 가짜라는 판명, 그로 인해 그를 이루고 있는 상황들이 모두 의심받게 되는데, 어떤 시인의 아내(인터뷰기자)와의 사랑마저도 그 진위를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가짜 데드마스크의 헤프닝속에 김연 기자에게 한 아마츄어 이상연구자의 수기가 전해지는데,  '잃어버린 꽃'에서는 이상의 삶을 그대로 쫓다가 결국 73세의 나이로 이상과 같이 도쿄의 한 병원에서 자살을 하는 서혁민의 시각으로 전개된다.  이상의 삶과 그의 작품과 같은 삶을 살려고 했던 이상이 도쿄로 유학가서 그곳에서 자연인 김해경을 벗어던지고 영원히 우리의 이상으로 남게 되는 순간을 비교적 꼼꼼하게 수기로 옮기고 있다. 또한 유실된 오감도 제 16호의 작품과 비슷한 작품을 본인이 직접 쓰면서 다시한번 이상의 작품이냐 아니냐로 진위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미친놈의 개수작이냐' 또는 '다시는 태워날 수 없는 천재작가냐' 어느쪽을 믿느냐에 따라 그 믿는 쪽이 진실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 거짓이라도 믿으면 진실이 되는 것일까?  작가는 이미 유실된 데드마스크의 출현과 분실된 나머지 오감도 작품, 피터주의 출생등을 영원히 해결못한 비밀로 처리함으로써 이상의 삶과 작품을 신비화하는데 한몫한다.  동료작가들과는 다르게 일찍 멜론을 외치며 도쿄의 한 병원에서 죽어간 그의 삶을 따라가는 비현실적인 소설 속 장치인 가공인물, 서혁민처럼 이상의 작품과 삶앞에서 그의 비밀에 걸려들어 허우적 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란 무릇 안이한 일상을 담보받은 우리들과는 달라야 하는 법. '새'에서는 미국에서 '이상'연구 논문 발표차 피터 주가 한국에 오면서 기자 김연이 건네주는 서혁민의 시를 이상의 유작으로 발표하지만 결국 학술발표에서의 진짜라고 발표되었던 작품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품도 거짓임을 알게 된다.  그 부분은 자신이 미국에서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확인하며 느꼈던 절망감과 함께 옥상에서 뛰어내리게 된다.  결국 뛰어내린 곳이 백화점 옥상, 안전한 곳에 미치자 그는 드디어 말하게 된다.  '꾿빠이, 이상'. 이 분분이 작가의 기품이 숨어있는 곳.  결국 패배했지만 뛰어내렸던(삶의 참된 가치를 찾아) 그 짧은 순간이 주인공 피터주에겐 진정으로 죽어서 산 이상이 쳐 놓은 그물에서 벗어나는 사건이기도 하다. 
 
'꾿빠이 이상' 은 이상의 전기적 사실에서 벗어나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세사람의 주인공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문학의 환원성을 보여준다.  작품속에 이상이 있고 그와 한 시대를 살았던 동료작가들, 연인들, 평론가들이 있고 기자가 있고 아마추어 연구자가 있고 박사가 있어 범접할 수 없는 이상문학의 위대성을, 그로 인해 현재의 우리의 삶에 어떤 연관성이 있나 보여주는 순도높은 작품이다.  소설을 읽는 궁극적인 이유가 우리 인식을 공고히 하였던 제도나 사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사고를 더 확장시키는 것에 있다면 세 사람의 주인공이 실패할 줄 알면서도 갈 수 밖에 없는 여행지를 만나보시라. 
 
그래, 이쯤에 고백부터 하나 하자.  글쓰기가 이렇게 더이상 더 막연해지기 전에, 어느 작가의 말마따나
나도 딱 이상의 나이까지만 살자고 해놓고선 부끄럽게도 몇년을 더 살고 있다.(아마도 별일이 없는 한 그 의 삶의 기간의 세배는 더 살게 되겠지.) 내게도 다른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이상문학과의 만남은 말할 수 없이 강렬한 것이었고 그 낯섦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나도 당장 무엇인가 어떤 일탈을 감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불안한 현실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찌 이 타락한 세계를 그냥 그대로 두고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거부할 수 없다면 껴안자. 힘껏.

 

 

by  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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