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갑골문을 가장 많이 수장했던 서예가
갑골문을 가장 많이 수장했던 서예가는 청나라 말의 나진옥(羅振玉)이다.
나진옥(羅振玉, 1866-1940)의 자는 숙온(叔蘊)ㆍ숙언(叔言)이고, 호는 설당(雪當)ㆍ정송(貞松)이며, 절강성 상우(上虞)사람이다. 후에 회안(淮安)으로 옮겨 살았으며 청나라 말에 학부참사(學部參事)를 지냈다. 그는 평생 학문에 힘써 자신의 키만큼 많은 책은 썼으며 특히 서화 감상과 금석 고고학에 정통했다. 그의 글씨는 꾸밈이 없고 수수하며 예스럽고 전아하면서 정취가 있다. 그는 『은허서결고석(殷墟書契考釋)』ㆍ『유사추간고석(流沙墜簡考釋)』ㆍ『삼대길금문존(三代吉金文存)』 등의 전문서적을 써서 갑골학에 대해 창조적인 공헌을 하였다.
나진옥은 1901년 유악(劉鶚)의 처소에서 갑골문을 본 후 즉시 골동상인을 파견하고 직접 하남성 안양 소둔촌으로 가서 온 힘을 다해 수집하여 1년 안에 만 편 이상을 구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동생인 나진상(羅振常)과 처남인 범조창(范兆昌)을 원양(洹陽)으로 보내어 이를 파게하여 다시 배를 얻었다. 통계에 따르면 그가 구한 갑골은 약 3만여 편인데 많은 정품이 있어 국내외 학술계에서 칭찬을 받았다.
나진옥은 갑골문을 가장 많이 수장했을 뿐만 아니라 최초로 갑골 출토 지점을 고증해서 갑골학의 형성과 발전에 특출한 공헌을 한 중요한 인물이었다. 『철운장귀(鐵雲藏龜)』의 출판은 그가 유악이 소장하고 있는 갑골 탁본을 발표하도록 권한 것이며 아울러 직접 갑골을 탁본하고 서언을 지어 갑골문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하였다. 그는 또 갑골문자 571개를 고증하고 해석하였는데 이 방법은 후에 학자들에게 커다란 깨우침을 주었다. 그와 왕국유(王國維)는 갑골문 전래와 연구에 공헌을 하여 당시 갑골학의 대표가 되었으며 당시 갑골학을 ‘나왕지학(羅王之學)’이라 부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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