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최영택 2002/10/25(금) | |
갑골문 연구자의 비운(悲運)-나진옥
나진옥은 선배들이 모은 갑골 외에 자기 손으로 많은 갑골을 모아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 당시 청나라는 1911년 신해(辛亥)혁명으로 멸망하였다. 청나라의 관리로서 북경 농과대학 학감(學監)이었던 나진옥은 가족 외에 젊은 제자인 왕국유를 데리고 교또오(京都)대학의 친구를 찾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나진옥이 가지고 온 많은 짐짝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보관한 것은 전력을 다하여 모은 갑골이었다. 운반과 세관 검사 때문에 파손된 것도 많았으나, 나진옥은 교또에 정착하자 그 탁본(拓本)의 정리를 시작하여 1913년 <은허서계전편(殷墟書契前編)>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것은 일본의 크로타이프인쇄를 이용한 것으로서 책도 훌륭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의 연구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계속하여 나진옥은 이 자료집에 낸 갑골문자의 해설서를 써서 이듬해 <은허서계고석(殷墟書契考釋)>으로 출판하였다. 이러한 책들의 출판으로 갑골문자는 처음으로 읽혀지게 되었다. |
'갑골학 연구 > 갑골학은 짝둥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商)․주(周)의 정치와 사회 (0) | 2010.02.11 |
---|---|
은나라 주나라 역사 (0) | 2010.02.11 |
곽말약(郭沫若)【 (0) | 2010.02.11 |
왕국유 (0) | 2010.02.11 |
[스크랩] 42. 갑골문을 가장 많이 수장했던 서예가나진옥 (0) | 2010.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