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民族의 뿌리를 찾아서

 

왜 한국의 솟대 위의 새들은 모두 北向하고 있나? 그들의 고향이 추운 북쪽지방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지나기 위하여 잠시 越冬하러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새들에게 한국인의 간절한 소원을 실어 보내는 과정이 솟대로 표현되는 것이다

金 秉 模
1940년 서울 출생. 서울大 고고인류학과 졸업. 이탈리아 국제문화재연구소 및 영국 런던고고학연구소 수학. 영국 옥스퍼드大 철학 박사. 안면도 고남리 패총, 二聖山城 발굴작업 주관. 1993~1995년 한국 고고학회 회장. 前 한국 전통문화학교 총장. 現 한양大 문화인류학과 교수. 「금관의 비밀」, 「김수로왕비 혼인길」의 저자

 

 

 

 

한국문화의 原形을 찾아서

<야쿠티아 여인이 盛裝한 모습. 쓰고 있는 모자는 원주민 샤먼의 모자와 같은 디자인이고, 신라 서봉총 금관의 內帽(내모)와 같은 구조이다. 한국 민속에서 여자아기들에게 씌우던 모자인 굴레도 같은 모양이다.>
 러시아 바이칼 지방의 원주민들은 한국사람의 모습과 똑같은 북방계 몽골로이드(Mongoloid)이다. 브리야트族과 에벵키族이 주력 인구이다. 지금은 舊러시아와 소련시대를 거치면서 슬라브族들이 많이 이주해 와서 동양인들과 서양인들이 섞여서 살고 있고 간혹 코사크族도 만날 수 있지만 역시 원주민들은 유목과 수렵에 의존하여 살던 동양계 인종들이다.
 
  이 지역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샤먼(薩滿, Shaman)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샤먼, 즉 무당은 원래 에벵키族의 말이다. 야쿠티아에서 남자 무당은 「어윤」이라고 부르고, 여자 무당은 「우다간」이라고 발음한다. 하늘세계와 지하세계를 모두 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을 뜻한다.
 
  바이칼과 북쪽의 야쿠티아 지방의 토착문화에 관하여 기초지식을 얻으려면 우선 노보시비르스크를 찾아가야 한다. 우랄지방에 있는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러시아 아카데미 시베리아 지부는 박사급 학자들 수백 명이 연구하고 있는 대규모 연구 센터이다. 여기서 우랄 동쪽의 시베리아 전역과 극동까지의 인문학과 자연과학연구를 관장하고 있다. 알타이, 바이칼은 물론 북극지방까지 모두 이곳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기 때문에 나도 우선 여기에 들러 기존의 연구성과와 현지조사에 대한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고고학 민족학 연구소를 방문하여 소장인 안드레이 데레비안코 박사와 해후를 하고 민족학자를 소개받았다. 이스마일 게누에브라는 중년의 학자가 친절하게 시베리아 문화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나의 관심은 첫째, 알타이 고원부터 바이칼, 북극지방의 야쿠트까지의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청동기시대 이래로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왔는지 살펴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역사시대에 들어와 중국 세력, 특히 漢(한:BC 202~AD 220)나라의 세력확대가 변변한 왕조를 갖지 못했던 북쪽 초원에 살던 여러 민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유물이나 풍습의 변화로 읽어내고 싶은 것이었다. 그 기간이 바로 한반도에 고대 왕국들이 태동하고 주민의 유입이 왕성하던 기간과 겹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에서 알타이지역부터 바이칼을 지나 북쪽 툰드라까지 퍼져 있던 민족들의 토착문화를 통칭하여 알타이 문화라고 편의상 부르기로 한다. 그 이유는 거창한 것이 아니고 이 지역의 모든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광의의 개념으로 알타이語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알타이 語群에 속한다는 얘기는 앞서 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문화의 原形(원형)이랄까 文化因子(문화인자)랄까 하는 것들을 찾아내려면 우선 연구해야 하는 지역이 바로 이 넓고 추운 초원지대(Steppe)와 자작나무로 하늘이 가려있는 삼림지대(Taiga)의 토착문화일 수밖에 없다는 중간결론에 도달한다.
 
 
  年代-地域 가설
 
  게누에브 박사는 민족학자이지만 고고학에도 조예가 깊어 내게 많은 정보를 주었다. 원래 러시아의 고고학은 민속학 또는 민족학과 따로 떼어 연구하지 않는 전통이 있다. 그 이유는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현재의 문화가 고고학 시대의 문화에서 별로 발전하지 못한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고고학 연구의 한 방법론에 의하면 과거인의 생활을 유추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원시사회(Modern Primitive Society)의 생활상을 관찰한다. 문명과 떨어져 살고 있는 원시사회의 모습이 과거 인류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론으로 언어학에서는 年代 地域(연대 지역) 가설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문화의 핵심 어휘가 인간의 이동에 따라 고향으로부터 멀리 퍼져나가고 나서 세월이 흐르면 고향의 어휘는 바뀌었는데 퍼져나간 지역에서는 옛날 어휘가 그대로 살아 있다는 이론이다.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나갔지만 한국고대사의 여러 문화양상을 해석하려면 한국인과 비슷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는 현대의 원시사회 주민들을 만나 보아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현대문명에 덜 오염된 시베리아 오지에 살고 있는 알타이 諸族(제족)들의 현대의 사회상을 관찰하다 보면 의외로 고대 한국인들이 남겨놓은 문물을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다.
 
  게누에브 박사는 나에게 오브(Ob)江 유역에 사는 한티族에 관한 영화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샤먼」이라는 다큐멘터리였다.
 
  <江의 精靈은 여인이다. 그 여인을 위로하는 굿을 강변에서 한다. 나무로 깎은 인형들과 사슴모양의 조각들에게 절을 하고 통나무집에 잘 보관한다. 소나무에 헝겊을 주렁주렁 달고 샤먼이 무수하게 절을 한다. 백색 천은 물(水), 적색 천은 불(火)을 의미한다. 공물로 빵을 놓는다.
 
  사슴을 잡아 제물로 쓴다. 그리고 나무에 여러 번 허리 굽혀 절을 한다. 나무 위에 밧줄을 던져 올려 천신(가족신)과 교감한다. 최후에 사슴고기를 삶아 공물로 바친다>
 
  이 영화 내용 중 우리 민속에서도 흔하게 보이는 堂木(당목)과 幣帛(폐백)이 특별하게 나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나라에서 무당이 제를 지내려면 당목 아래서 향을 피우고 기복행위를 하는데 이때 주민들이 폐백을 바친다. 부자는 옷감을 匹(필)로 낼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옷감을 조금씩밖에 내지 못한다. 그래서 다양한 색깔의 옷감이 당목에 걸리게 된다. 시베리아에서 당목은 檀君神話에서 단군이 탄생하는 神檀樹 같은 것이고 신라 金閼知의 탄생장소인 鷄林과 같이 지도자의 탄생과 관계 있는 宇宙木이다.
 
  한국 무당들의 옷이 알록달록한 이유는 당목에 바쳐진 여러 색깔의 옷감을 꿰매서 옷을 만들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민속학자 김광언 교수의 해석이다. 그럴 듯하다. 하지만 조선시대 포도대장의 제복도 붉은색, 노랑색, 검은색 천을 섞어서 알록달록하게 만들었고 어린이들의 색동 저고리도 여러 가지 색의 천으로 만들었는데 그 이유가 당목에 걸렸던 여러 색의 폐백과 관련이 있을까. 이 문제는 나중에 또 고민하기로 하자.
 
  차르 황제 시절의 舊러시아는 정력적으로 시베리아를 개척해 나갔다.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땅인데다가 일년의 절반이상이 눈으로 덮여 있는 땅이니까 기본적으로 농업인들이었던 슬라브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쓸모 없는 땅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지리상의 발견과 기계문명 발달은 광업자원의 필요를 낳았다. 따라서 제국주의 시대의 영토확장의 추세에 따라 버려졌던 시베리아도 정복의 대상이 되었다.
 
 
  시비르 汗國(한국)에서 시베리아 유래
 
  시비르는 원래 종족의 이름이다. 투르크 몽골계의 민족으로 元나라 때 기록으로는 昔必兒(석필아)이다. 15세기에 망할 때까지 말 타고 날이 휜 장검을 휘두르던 민족으로 동유럽의 여러 나라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던 민족이다.
 
  시비르族이 휘두르던 칼의 이름을 따라 시비르 劍이 생겼고 혹시 추측이지만 펜싱경기의 사브르(Sabre)도 여기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실제로 시비르 族의 직계 후손이라고 믿고 있는 헝가리 사람들은 부다페스트 국립박물관에 시비르 검을 잘 보관하고 있었다.
 
  舊러시아가 제일 먼저 개척한 땅은 바이칼 지방의 이르쿠츠크였다. 강인한 코사크인들을 시켜 눈과 자작나무로 덮인 땅을 개척하고 통나무로 성곽을 둘러막고 도시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1661년의 일이다. 원주민인 브리야트族과 에벵키族들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겠지만 농경민족들의 토지 사랑과는 달리 유목민족들의 이동생활의 전통은 금세 이르쿠츠크를 그들에게 내어주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음직하다.
 
  露日 전쟁 때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이르쿠츠크까지만 연결되어 있었다. 급하게 병력과 무기를 극동까지 수송해야 했다. 남북으로 기다란 바이칼 호수를 우회하여 철도를 건설할 시간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호수 위에 배를 띄워 연결해 舟艇橋(주정교)를 놓고 철도를 연결하였다. 겨울에는 얼음 위로 임시 철로를 깔고 人馬를 수송하다가 얼음이 깨어지는 바람에 크게 낭패를 당한 사건을 영화를 통해 본적이 있다.
 
  바이칼의 명칭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어떤 원로 한국학자는 白卵(백란), 즉 백알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라는 그럴 듯한 해석을 하였지만 역시 아마추어 수준이다. 바이칼은 브리야트 말로는 물고기가 가득 찬 호수라는 뜻이고, 알타이語로는 榮光(영광)의 바다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영광의 바다 또는 영혼의 바다쯤으로 해석하는 게 이 지역 주변 여러 민족들의 바이칼에 대한 경외심에 합당한 해석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바이칼 지역의 두 개의 중심 민족인 브리야트族과 에벵키族의 샤먼 복장은 그대로 신라 왕족들의 祭服(제복)의 원형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여 충분히 시간을 잡고 사진촬영과 스케치를 하였다. 특히 등과 가슴에 달려 있는 새들과 물고기의 수까지도 꼼꼼히 적었고, 화살촉이나, 낚시바늘이 달려 있는 위치까지도 기록하느라고 여러 날이 소모되었다.
 
  게다가 고고학 유물의 사진 자료를 팔지 않아서 일일이 유리창을 통하여 사진을 찍느라고 촬영 비용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물관을 떠나기 전에 뮤지엄 숍에서 팔고 있는 에벵키族의 샤먼 인형을 샀다. 소련 시절로서는 아주 비싼 가격을 요구하였지만 연구 자료라서 거금을 쾌척해야 했다.
 
 
  툰드라에 흐르는 강
 
  이르쿠츠크를 떠난 비행기가 거의 2시간을 북쪽으로 날아가야 야쿠티아에 도착한다. 완전히 북극지방이다. 저녁 때였는데도 白夜(백야) 현상으로 한낮처럼 환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땅에는 산도 나무도 없는 평지에 개울과 늪지뿐이다 강들은 초가을부터 얼어붙어 글자 그대로 凍土(동토)가 되었다가 다음해 여름이 되어야 녹는다. 녹은 개울물들은 북쪽으로 흐르는 레나江에 합쳐진다
 
  수도인 야쿠츠크를 중심으로 100만 명의 인구가 310만km2에 흩어져 살고 있으니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겠다.
 
  국토의 60%는 타이가(森林)이고 40%가 툰드라이다. 내가 도착한 7월에는 짧은 여름을 한껏 즐기려는 듯이 강물이 소리를 내어 흐르고 풀밭에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도시라고는 페인트도 칠하지 않은 목조건물들이 모여 있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야쿠티아는 나에게는 오랫동안의 매력의 땅이었다. 나는 이 곳에서 인문학 연구의 황금 鑛脈(광맥)을 찾으러 온 사람이 되었다. 왜냐하면 산업화하지 않은 원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땅이고 그 원주민들이 따지고 보면 한민족과 유전인자가 가장 비슷한 브리야트族에서 파생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991년에 조선일보가 기획한 대륙탐사 일원으로 바이칼에 왔을 때도 야쿠티아까지 가고 싶었지만 일행이 여럿이어서 모두 관심이 달랐다. 그래서 나 혼자만 야쿠티아를 보러 가겠다고 주장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야쿠티아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하였다. 1970년대에 영어로 출판된 알렉시에브 교수의 야쿠티아 보고서를 런던에서 사게 되었다. 철의 장막 속에 꽁꽁 숨어있던 정보를 보여준 귀한 내용이었다.
 
  고고학 시대의 유물이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민속품이나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考古 민속적인 내용이었다. 그 후 일본 학자들의 체질인류학적 연구에 한국인과 유전인자가 가장 가까운 종족이 바이칼 지방의 브리야트族이라는 내용에 접하게 되었다.
 
  내용인즉, 혈액 속에 GM 유전자 중 AB3 FD라는 유전자는 몽골로이드의 특징인데 브리야트族이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쿠트族이 바로 브리야트族의 일파라는 것이다.
 
  러시아 시절의 황제에게 대항하던 수많은 젊은 귀족들이 바이칼 지방으로 강제 流刑 당한 이래 슬라브族들의 바이칼 이주가 시작되었고, 바이칼 원주민들의 문화는 급속히 슬라브 문화에 동화되고 말았다. 게다가 공산주의 통치에 대항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는 토착문화의 중심인물인 샤먼들을 모조리 학살하고부터 원주민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모래 속에 물 스며들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역사시대에도 있었다. 기원 전 3세기부터 중국의 秦(진)나라와 漢(한)나라가 중원 땅을 제패하고 흉노, 즉 몽골족들을 위협하였을 때 몽골인들은 미련 없이 다른 草地(초지)를 찾아 이동하고 말았다. 이때 흉노의 일파가 서쪽으로 옮겨가서 박트리아 세력과 합쳤고, 동쪽으로는 辰韓(진한) 땅으로 내려와서 신라를 형성하는 중심 세력이 되기도 하였다. 이 문제는 후에 따로 말하겠다.
 
  10세기 때 중국의 唐(당)이 천하를 제패하고 제국을 세워 주변민족을 압도하자 돌궐族들이 서쪽으로 이동하여 오늘날 소아시아의 아나톨리아(터키)로 들어갈 때쯤 브리야트族의 일파가 북쪽으로 이민하여 야쿠티아 지방까지 밀려 나가게 되었다.
 
 
  白馬 전설
 
  야쿠티아는 러시아式 이름이다. 이 지역 토착주민들은 자신들을 사하(Caxa) 族이라고 부른다. 공화국 이름도 사하공화국이다. 사하라는 말 의 뜻은 해 돋는 땅이다. 아마도 사하族이 동쪽으로부터 이민해 온 모양이다.
 
  이곳 사람들의 인상은 몽골계로 검은 눈에 매부리코를 한 사람들이 섞여 있어서 동양인들과 서양계통 사람들의 혼혈이 있었음이 보인다. 사하 언어는 터키語 계통이고 말과 소를 기르며 산다. 북극지방에서는 순록의 사육과 어로, 수렵을 병행하고 있었다. 러시아 이후로 점차 농업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다.
 
  먼저 박물관으로 갔다. 옛날 교회 건물이었던 목조 건물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다. 역시 소련의 영향으로 考古品(고고품)과 민속품이 함께 어우러져 토착민의 과거생활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박제된 白馬(백마) 한 마리가 있었다. 다리가 짧은 몽골마 계통이었다. 성스러운 장소를 표시하는 禁(금)줄을 띄우고 줄에는 색깔 있는 헝겊을 달아 놓았다. 마치 우리 민속에 聖所(성소)나 잡인의 출입을 금하는 곳에 금줄을 쳐놓은 것을 연상시켰다.
 
  고고학적인 증거에 의하면 야생의 말이 사람에게 사육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말이란 사람에게 사냥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스페인에 있는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후기 구석기 시대의 古代馬(고대마·Bison)는 飼育馬(사육마)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몽골인들이 말을 사육하면서 멋대로 달아나는 말을 목동이 말을 타고 뒤따라 가면서 장대 끝에 달린 올가미로 잡아채어 쓰러뜨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광경은 세월이 흘러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명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목동의 능숙한 기마술과 올가미를 거는 순간이 스톱 모션처럼 살아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자.
 
  여기서 白馬는 정의로운 통치자가 타는 말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성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날개 달린 말이 가뭄에 우물을 찾아주는 페가수스(Pegasus)가 있고, 페르시아 신화에서 善神(선신)은 白馬를 타고 惡神(악신)은 黑馬(흑마)를 탄다. 즉 하얀색은 善(선)이고 正義(정의)라는 생각이다. 카자흐스탄의 이씩 지방에서 발굴된 스키타이 말기 때(BC 3세기) 고분의 주인공은 흰말을 타고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카자흐스탄 국립박물관이 복원한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다.
 
  신라의 박혁거세도 白馬가 羅井(나정)에 놓고 간 커다란 알에서 태어났다. 그 말은 박혁거세를 땅에다 내려주고 홀연히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경주 신라왕의 무덤에서는 白馬가 구름을 가르며 힘차게 뛰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障泥(장니)가 발견되었다. 그래서 그 고분을 天馬塚(천마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白馬는 이렇게 정통성을 갖춘 통치자를 상징하는 기마민족들의 善神이다.
 
 
  솟대 새의 北向
 
  말과 白樺(백화)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곳에 여러 개의 솟대들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었다. 어느 솟대 위에는 까마귀가 한 마리 앉아 있고, 어느 솟대 위에는 여러 마리의 새가 앉아 있었다. 까마귀는 큰 몸집이고 여러 마리의 새들은 몸집이 작은 잡새들이었다. 솟대는 중앙아시아로부터 北아시아를 거쳐 한반도와 일본에 걸치는 실로 광범위한 지역에서 골고루 발견되는 민속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강릉 端午祭(단오제) 때 만들어 세우는 솟대 위에는 세 마리의 새가 앉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고, 신라 서봉총 北墳(북분)에서 발견된 여인의 금관 위에도 세 마리의 새가 장식되어 있다는 것은 앞서도 이야기하였다.
 
  솟대는 나무(宇宙木 또는 生命木)이고 솟대 위에 앉아있는 새는 인간의 생명 또는 영혼을 인도하는 파일럿이다. 아시아 원주민들에게는 새가 사람의 생명을 하늘로부터 가져오고 사람이 죽으면 영혼을 다시 하늘나라로 가져간다는 믿음이 있어 왔다.
 
  즉 영특한 인물은 신성한 나무 밑에서 기도하는 여인에게 하늘의 절대자가 새를 통하여 보내는 정령으로 인해 탄생한다는 이야기는 月刊朝鮮 9월호에서도 이야기하였다.
 
  신라의 김알지가 계림에서 童子로 발견되었을 때도 새들이 지저귀었다고 하며, 毗處王(비처왕, 일명 炤智王) 때인 488년 왕을 시해하려던 사람과 궁녀가 간통하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도록 인도하는 까마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三國遺事 射琴匣).
 
  경남 진주 옥전리의 가야고분에서 발견된 금속장식에도 여러 마리의 새가 앉아 있어서 통치자의 탄생과 죽음에 새가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시아인들의 새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고고학 유물로 가장 큰 새는 인도네시아의 가루다(Garuda)일 것이다. 상상의 새이지만 얼마나 큰지 날개를 펴면 태양을 가려 세계가 암흑이 된다는 神鳥(신조)이다. 그래서 발리 섬에 있는 아주 오래된 힌두교 사원의 정문은 가루다가 날개를 편 모양으로 두 기둥을 삼고 있다.
 
  이 조각은 현대의 여러 조각가들이 모방하여 자카르타의 중심부에도 雄姿(웅자)를 보이고 있고, 그것을 본딴 듯한 조각이 우리나라 천안의 독립기념관에도 서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마음속의 새는 태양 속에 사는 까마귀인 三足烏(삼족오)에서부터 솟대 위의 새들인 오리, 원앙, 기러기 등이다.
 
  四神圖(사신도)에서 북방을 상징하는 玄武(현무)에 대칭되는 남방의 새는 朱雀(주작)이다. 그러나 주작은 미안하게도 한국인의 솟대 위에 앉는 새가 아니다. 솟대 위의 새들은 모두 철새이고 北向하여 앉아 있다.
 
  왜 한국의 솟대 위의 새들은 모두 北向하고 있나? 그들의 고향이 추운 북쪽지방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지나기 위하여 잠시 越冬(월동)하러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새들에게 간절한 소원을 실어 보내는 과정이 솟대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 기복행위를 하는 한국사람들 중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北國(북국)이 마음의 고향인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여기서 북국은 어디일까? 아마도 少昊國(소호국)일 가능성이 있다.
 
 
  신라·가야·倭의 조상은 어디서 왔나?
 
  少昊國. 즉 작은 하늘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少昊는 중국 고전인 山海經(산해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西方(서방)의 神이다. 소호는 皇娥(황아)라는 선녀의 아들이다. 황아는 베를 짜는 여인으로 뗏목을 타고 은하를 저어나가 窮桑(궁상)이라는 뽕나무 밑에서 白帝(백제)라는 소년을 만나 사귀었다. 이때 그들이 타고 놀던 뗏목의 돛대 위에 옥으로 깎은 비둘기를 달아놓아 방향을 잃지 않게 하였다.
 
  황아와 백제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인물이 바로 소호이다. 뽕나무 아래서 태어났다고 하여 일명 窮桑氏(궁상씨)라고도 한다. 소호는 장성하여 고향을 떠나 동방의 바다 밖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소호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호국에서는 모든 公卿大夫(공경대부)가 각종의 새(鳥)였다. 즉 소호국은 새의 왕국이었다.
 
  조금 긴 이야기를 소개한 이유는 이 내용에서 한국 고대사의 주인공들의 탄생신화와 한국인들의 민속을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신라 金씨의 조상인 김알지는 계림이라는 나무에서 발견되고 알지의 탄생을 기뻐하여 새들이 노래하고 동물들이 뛰놀았다고 한다(삼국유사).
 
  또 황아의 배의 돛대 위에 달린 玉鳥(옥새)는 앞서 말한 가야시대의 玉田(옥전)고분에서 발굴된 철제 무기에 조각되어 있는 새들의 바로 그 모티브가 신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 나라의 후지노키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관에서 돛단배 위에 앉아 있는 새들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통치자의 탄생장면 배경에는 나무와 새가 기본적으로 등장하고 때로는 돛단배도 등장하는 내용은 山海經의 소호의 탄생을 설명하는 것이다. 신라, 가야, 倭(왜)의 지배층의 마음속에 왜 서방신인 소호의 탄생신화가 깊이 뿌리 박고 있을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신라, 가야, 倭의 지배층들이 北아시아의 주민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었고,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신라, 가야, 倭의 지배층들의 조상이 소호의 신화가 생겨난 중국 서북방 어느 곳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하면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교수의 기마민족 일본 정복설의 내용이 신화와 민속으로도 증명되는 것이다. 東京대학의 에가미 교수는 일본이 패전하여 의기 소침해 있을 때 기원 전 3세기부터 아시아 대륙에 살던 기마민족이 일본열도를 침입하였다는 학설을 내놓아 일본을 충격으로 몰아간 사건을 일으켰다.
 
  기마민족의 이동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며 기마 민족들의 신화가 한국의 신라와 가야를 거쳐 일본으로 간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알타이에서 발굴된 얼음 공주라는 귀족여인의 미라가 있다. 2000년이 넘었지만 얼음으로 싸여 있었기 때문에 원상을 복원해 볼 수 있었다. 이 여인은 머리카락을 높게 빗어 솟대 모양을 하고 거기에다 13마리의 금제 새(鳥)를 장식하고 있었다. 이 새들도 황아의 뗏목에 달렸던 새나, 서봉총 금관에 달렸던 새들과 마찬가지로 유목민족의 민속신앙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백화나무가 백마의 흰 빛깔과 어울리게 배치해 놓았는데 단풍든 백화나무의 잎새가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 빛깔은 황금색이었다.
 
  그 잎새의 모양은 신라금관에 달려 있는 瓔珞(영락)과 똑 같았다. 개 눈에는 무엇만 보인다고, 고고학자의 눈에는 황금색의 백화나무 잎새가 순금제 영락으로 보이는 걸 어찌하랴. 사실 신라와 가야에서 발견되는 금관이나 금동관 디자인의 모티브는 나무이다. 그러니 당연하게 잎새가 달린 것이고 때로는 열매인 曲玉(곡옥)도 매달리게 되는 게 무엇이 이상한가. 신라의 國名도 일본어로는 「하얀 나무」(白木·시라기)가 될 만큼 신라인의 마음속의 토템으로 굳어 있는 백화나무의 잎새가 금관에 달리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이 이야기는 따로 자세하게 하겠다.
 
 
  신라·가야에서만 나오는 角杯
 
  솟대가 군집한 바로 옆에 특이한 솟대가 있었다. 기둥 하나 위에 가로로 올려놓은 나무 위에 새들 대신 여러 개의 술잔이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 술잔들은 모두 밑이 뾰족한 모양으로 동물의 뿔처럼 생겼다. 이 술잔이 바로 기마민족들의 角杯(각배)였다. 각배는 그리스語로 「Rhyton」이라는 제사용 술잔인데 이스라엘 민족, 스키타이族에서부터 아시아의 기마민족 문화가 퍼진 全지역에서 유행한 술잔이다.
 
  한국에서는 신라와 가야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것이다. 부산 福泉洞(복천동) 가야고분에서 발굴된 馬頭(마두) 장식 각배는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말머리와 角杯가 어우러진 걸작품이다. 그런 角杯가 솟대 위에 꽂혀 있었다.
 
  내가 지코프 미하일로비라는 박물관 직원에게 묻기도 전에 그가 설명하였다.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쿠무스(Kymus·馬乳酒)를 따라 놓는 잔들입니다』
 
  마유주는 말의 젖을 발효시켜서 만드는 유목민들의 독특한 술로서 막걸리 빛깔에 맛도 쉰 막걸리와 비슷하다. 기마민족이 사는 곳에는 어디라도 쿠무스가 준비되어있어서 나도 몽골에서 처음 마셨을 때는 약간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카자흐스탄과 알타이를 답사하면서 여러 번 마시게 되어 점점 익숙해졌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쿠무스가 생각보다 독해서 막걸리 마시듯이 벌떡 벌떡 받아 마셨다가는 다음날 고생하게 된다. 乳製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조심스럽지만 나는 한 두어 사발까지는 견딜 만했다.
 
  다시 야쿠티아의 박물관을 살펴보자. 솟대 위의 새들은 크기가 달랐다. 커다란 까마귀는 한 개의 솟대 위에 한 마리가 앉아 있고 작은 새들은 한 솟대 위에 여러 마리가 줄지어 앉아 있었다. 소호국에 있었다는 공경대부의 모습이었다.
 
  ―까마귀를 야쿠트語로 무어라고 발음합니까.
 
  내 질문에 지코프는 안경을 고쳐 쓰더니 내 수첩에 영어로 적어 주었다.
 
  그는 「Sol」이라고 쓰고 발음은 「소르」라고 하였다. 솔은 라틴어로 태양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태양 속에 세 발 달린 검은 까마귀가 살고 있다고 믿는다. 즉 까마귀와 태양은 동서양 모두 同義語인 셈이다. 그리고 소르는 샤먼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야쿠트 사람들은 절대로 까마귀를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
 
  까마귀는 장수와 지혜의 상징이라고 한다. 까마귀가 새들 중에 제왕적인 대접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人肉(인육)을 먹기 때문이다. 알타이 문화권에는 아직도 鳥葬(조장)의 민속이 있다. 鳥葬은 글자 그대로 사람의 시신을 새를 통하여 하늘나라로 보내는 엄숙한 의식이다. 까마귀 또는 독수리가 내려와 쪼아먹는다. 특히 전통적인 샤먼의 주검이나 후대에 유행하는 라마교 승려의 주검은 철저하게 鳥葬으로 처리되는 전통이 계속되고 있다.
 
  토착인들의 믿음으론 원래 인간의 생명은 하늘에서 새를 통하여 내려온 것이다. 그러니 육신이 죽고 나면 영혼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새들을 이용하여 영혼을 고향인 하늘나라로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서기 3세기 때 사람인 陳壽(진수)가 쓴 三國志(삼국지)에 弁辰(변진), 즉 伽倻(가야)에서 대가(大家·족장)가 죽으면 집 앞에 커다란 새의 날개를 건다.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라는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 왕족 여인의 무덤인 서봉총에서 발굴된 금관의 굴레모자(內帽)의 정수리에 앉아 있는 세 마리의 새도 주인공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파일럿이 아니고 무엇인가.
 
 
  『까마귀 神이여!』
 
  鳥葬이 현대인들의 의식으로는 끔찍하게 여겨질 것이지만 막상 그런 민족들의 입장이 되어 관찰한다면 死者의 영혼을 하늘로 귀환시키는 의식의 극치이다. 오래 전 몽골의 새벽 안개 속에서 라마승의 鳥葬을 목격하고 나도 한 두어 시간쯤 식욕을 잃은 적이 있지만 인류학적 체험의 최고 경지였다.
 
  까마귀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다. 다음날 까마귀와 白馬가 어우러지는 장면을 만났다. 짧은 여름을 한껏 즐기고 있는 북극지방의 우윳빛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원주민의 무당춤이 實演(실연)되었다. 사하族 무당춤의 인간문화재 격인 포드로프 아프나시 세묘노비치(63)라는 이름의 무용수가 보여주었다. 이 사람은 전통적인 무당춤 기능 보유자로서 한국으로 친다면 人間文化財에 해당되는 인물로 세계 여러 나라의 민속축제 때에 초대받는 유명한 인사였다.
 
  무용수가 가죽 두루마기를 입고 늙은 당목 밑에 섰다. 그는 왼손에 가죽 북, 오른손에 북채를 들고 있었다. 무당은 성냥을 꺼내 마른나무 가지로 불을 피웠다.
 
  그 불길 위에다 동물의 털을 태웠다. 白馬의 꼬리털이라고 하였다. 독특한 냄새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주위로 퍼져나갔다. 타오르는 불길 위에 술을 한 잔 뿌리자 술 향기와 말의 꼬리 털이 타는 냄새가 섞여 묘한 향기가 되었다. 무당이 움직일 때마다 가죽 두루마기에 달려 있는 금속제 장식들이 소리를 냈다. 가슴에는 오리 모양의 새와 창(槍)들이 달렸고 등에는 여러 개의 방울이 달렸다. 두루마기의 소매에는 가죽끈을 여러 줄 달아매어 팔을 벌리면 새가 날개를 편 모양이 되게 하였다.
 
  이윽고 무당이 노래를 시작하였다. 주문인지 단순한 소리인지 불분명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1930년대부터 舊소련이 자행한 무당 말살 정책 때문에 무당의 주문을 암송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니 무용수가 주문을 확실하게 전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무당이 북을 치며 하늘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아, 아, 아, 두둥, 두둥, 으암, 으암』
 
  그리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냈다. 몸을 세차게 흔들며 새가 날아오르는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까악, 까악하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냈다.
 
  우리나라의 鶴舞(학춤)처럼 겅중겅중 뛰면서 주문을 말하였다. 사하族의 말이 아니라 러시아語였다. 동행하던 카자흐스탄 출신 게르만 김씨가 알아듣고 통역해 주었다.
 
  『외국인들이 왔다 이 땅에 처음 왔다. 木神(목신)은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까마귀 神이여, 여행자들의 신변을 보살펴다오』
 
  무당춤은 약 한 시간 가량 계속되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무용수의 모습은 엑스타시(Ecstasy)에 몰입한 경지로 보였다. 춤을 끝낸 무당이 허리를 숙여 사방에 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절실한 무당의 기도가 정말 하늘에 전달되었는지 실제로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가 우리가 있던 당목 위를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다. 말의 꼬리털이 타는 냄새를 맡고 날아온 모양이었다.
 
  말과 까마귀와 사람이 높은 나무를 통하여 交感(교감)하는 순간이었다.
 
  5세기 때 신라에서는 금관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허리띠에도 순금제 장식을 10여 가지 정도 다는 게 유행하였다. 바로 그때 인물인 鳥生夫人(조생부인)은 자비왕(慈悲麻立干)의 여동생이고 지증왕(智證麻立干)의 生母(생모)이다. 鳥生은 祭官(제관)이었다. 5세기 신라 제관의 복장은 분명하게도 사하族의 두루마기 차림에 曲玉, 물고기, 칼, 숫돌, 매미 등 온갖 장식을 주렁주렁 달고 있지 않았나.
 
  鳥生부인이 환생하여 그 여러 가지 장식들의 의미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속시원하게 설명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계속)●

출처 : HyangHee.Lee
글쓴이 : 향희 원글보기
메모 :

 

 

고대 최초의 상형 문자는 별자리 그림이다.

 

벽화속 짐승들의 상형은 각각의 별자리를 그린 것이다.

 

 

 

그 옛날의 진실은 얼마나 정확히 전해지고있을까.

-----세상에서 귀중히 여기는 道(도)가 담긴 글이 있다.                
글이란 말에 불과한 것이니 말이 귀중한 것이 된다.
말이 귀중한 것은 뜻이 있기 때문인데, 뜻이란 추구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뜻의 추구함을 말로는 전할 수가 없다.
이를 세상에서는 말만을 귀중히 여겨 글로 전해진다. 세상에서 비록 귀중히 여기는 것이나.
나에게는 오로지 귀중하지는 않다.
그것들을 귀중히 여기지만, 그 글 자체가 귀중한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형체와 색깔이다.
귀로들을 수 있는 것은 이름과 소리이다.
슬픈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 형체와 색깔과 이름과 소리로써 그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체와 색깔과 명칭과 소리로는 그것들의 진실을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진실을 알 수 있겠는가?
                                           
莊子 天道第十三 ...末尾에서
世之所貴道者書也書不過語語有貴也語之所貴者意也意有所隨意之所隨者不可以言傳也世因貴言傳書世雖貴之我猶不足貴也爲其貴非其貴也故視而可見者形與色也聽而可聞者名與聲也悲夫 世人以形色名聲爲足以得彼之情夫形色名聲果不足以得彼之情則知者不言言者不知而世豈識之哉 
                                     
   
 

                        문자의 기원
 
설문해자를 쓴  허신이 그 서문에 문자의 기원에대해 밝혀놓은 내용입니다.

통상 알려진 문자기원설이 요약되있습니다. 

우선 내용을 검토한 후, 그 기원이 천문에 있음을 함께 연구해 보기로 합니다.


 
설문해자서                                                                                                                                              
                                                                     허신


--옛날 복희씨가 세상을 다스릴 때, 우러러 하늘의 모양을 관찰하고 아래로 
땅에서 그 이치를 살펴 새와 짐승의 무늬가 지리와 서로 알맞게 어울리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는 사람의 몸에서 그것을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법을 취하였는데
이에  팔괘를 짓기 시작하였고, 그것으로써 역법으로 정한 도형으로 나타내었다. 

신농씨 때에 이르러 매듭으로 다스리고 그 일들을 통솔하였다.
많은 일들이 매우 번잡해지며 거짓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황제의 사관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나눠진 무늬가 서로 구별되
어질 수 있음을 알고 처음으로 서계를 만들었다. 
백관이 그것으로 다스리고 만물이 그것으로 살펴졌다 
대체로 쾌의 괘에서 그것을 취하였는데, “쾌는 왕의 조정에서 펼친다” 하니
 
문자란 왕의 조정에서 가르침을 펼치고 교화를 밝히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군자는 그것으로 아랫사람에게 복을 베풀고, 덕을 쌓으니 곧 경계할 바를 알게 된다.
 
창힐이 처음 글자를 만들 때 대체로 종류에 따라 형태를 본떴으니 그러므로이를 文이라 하고,

그 뒤에 형태와 소리가 서로 더해서 이를 곧 字라 한다. 
문이란 사물의 본래 모습이고, 자란 말이 파생되어 차츰 많아진 것이다. 
 죽간이나 비단에 쓴 것을 서라 하는데, 서는 모양과 같다는 뜻이다.
 
                                                                                            ----줄임  원문은 뒤쪽

 
잠시 그림여행을 떠납니다.

 

                                           함안층의새발자국화석

 


반구대 암각화 http://my.dreamwiz.com/synoria/         
 

 

http://art21.com.ne.kr/yullin/amgakha.htm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동물상 암각화의 대표이다.
 
암각화를 그린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후손들에게 삶의 수단으로 고래잡이(漁勞),사냥(獸獵), 목축(牧蓄) 의 방법등을 계절별로 나타나는 별자리로 알리기 위한 교육을 목적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그 옛날 통치는 결승을 통해 다스렸다고 한다.

결승? 노끈으로 세상을 다스렸다.?

결승의 의미는 다른데 있다. 천문을 통하여 일식을 알아마추고 달력을 만드는 신기로 천자행세를  한 것이다.

결승은 곧 별자리의 위치를 표시하는 천문도 역할을 한 것이다.

 

잉카유물  결승

잉카의 결승 유물인데  무당 주술적 행위에 사용된 것 정도로 그 의미를 모른다고

 

그런데  고대천문도 같다..........................

원형으로 펼치면 가운데 하얀점들이 천문도상의 황도와 적위를 그린듯한데,,,,,

 

 

 

잉카제국에는  훌륭한 천문이 있었기에
어디엔가  어떤 방법으로든, 
천문도가 존재했으리라 생각된다. 저 그림이 아닐까?
          
 

                                                                                                              플레이아 데스성단  //astronote           


 

說文解字天文解  설문해자천문해
                                                                             2003 .6   -gapgol1-
 
說文解字敍.허신의 설문해저서의 내용 중 천문학적 용어로 새롭게 해석되는 부분을 정리합니다.

 
古者庖羲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視鳥獸之文與地之宜 近取諸身 遠取諸物 於是始作易八卦以垂憲象
옛날 복희씨가 세상을 다스림에, 우러러 하늘의 생긴 모양을 관측하고,
아래로는 땅에서 법칙으로 관찰하였다. 관찰된 새와 짐승의 문양을 보고, 
땅에서도 똑같이 맞춘 것이다.
가까이 취한 것을 자신의 위치이고,
멀리 있는 것에서 취한 사물로 易역의 팔괘를 만들기 시작하여 
<垂憲象> 평면도형모양으로 나타내었다. 
 
위 글의 일부는 주역의  계사전에 있는 글이기도 하다. 

복희씨가 하늘을 올려다  본  觀象於天하늘에선 무었을 본 것인가?
땅에서 법칙을 관찰했다는 의미는  무었인가.
복희 씨가 신선이라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져 스스로 그 이치를 깨달아 땅에 법을 세웠단 말인가. 
 
"하늘의 모양을 보고, 땅에 그 법칙을 세웠다"라는  말은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천문법칙을 알아냈다는 말이다.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의  진정한 의미는  땅에사는 인간이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그질서로움을 파악해서 땅에 그 일련의 법칙을 세워 천문을 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복희의 신선적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과학으로 나아가는,
최초의 천문을 했다는 말이다.
 
 <視鳥獸之文與地之宜>
 관찰된 새와 짐승의 문양을 보고,  땅에서도 똑같이 맞춘 것이다.
 
視鳥獸之文란 하늘의 별자리 문양을 말한다.

즉 서양의 별자리 이름으로 말하자면 -백조, 독수리, 사자, 고래,- 등이며

白羊宮, 獅子宮, 雙女宮등의 동양 별자리 문양을 의미한다.

 

다른 글에는 새와 짐승의 발자국이라고 표현되있다.

하늘에서 나타나는 짐승과 짐승의 발자국은, 여러별의 형태를 모양이 비슷한 짐승의 이름으로 만든 것이 별자리이름이다.

하루 한 번씩 돌아가는 별자리 운행의 자취를 짐승의 발자국으로 표현한 것이다.

 
<文與地之宜>의 의미는 위에 거론된 鳥獸(백조, 독수리, 사자)등 하늘의 별자리를 땅에서 천문도상 에서 똑같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文이란 모양이라는 뜻이있다.
宜자의 뜻은 똑같이 맞춘다는 뜻이다. 宣자의 옥편 내용과 천문적 고문자해석을 보자.


 宜:[베플 선 ] 安. 適理當然. 和順. 祭名. 好也. 儀通. 

옥편의 뜻풀이 <適理當然>란 응당 똑같은 이치로 맞춘다는 말이다.

 

고문자의 그림에서도  適理當然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다.

그림 속에 위아래로 두개의 ㅂ 모양은 발의 의미이다.

그림의 표현은 위아래 내용물이 서로 같다는 뜻을 상형화 했다.

하늘의 별자리를 땅위에서 천문도상 똑같이 맞춰 그렸다는 의미이다.

 

ㅡ 가까이는 사람의 몸에서 그것을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법을 취하였는데 ㅡ라고 해석되어지고있다.

이말은 자신을 중심으로하여 멀리있는 사물을 균일하게 취했다는 말이다.

레이더로" swing"하는 모양을 연상하면된다.

 

近取諸身 가깝게 취한 것이 자신이라는 말은 도면의 위치상 자신의 위치를 0점으로 하여.

遠取諸物 자신의 위치로부터 멀리 보이는 (物)별자리 모양까지를 아우른다는 말이다.

 

즉 천문도상에서 관측자가 북위 35도에서 관측한다면 천문도상의 좌표점 적위 35도를 자신의 위치로 한다.

近取諸身은 관측자가 하늘을 우러러 볼 때 천장의 좌표이다.

遠取諸物은 관측자의 천장의 위치로부터 멀리 지평선 쪽으로 위치하는 천문도상의 가장자리 쪽의 별들을 遠物원물이라 한 것이다.

 

고대의 천문 이야기는 복희의 이름을 빌려 수천년 수만년 하늘을 관찰하고 멀고 가까움과  하늘의 별자리의 이동을 한눈에 볼 수있는 천문도 만들고  북극을 축으로 돌고있는 하늘을 그려낸 것이다.

복희 는 정확히 어느시대의 인물인가.

인류는 눈을 가지면서부터 밤하늘을 보있다.

 

복희 여와의 그림에서 보듯

여와의 콤파스로 천문도의 원을 그리고 복희 의 곱자로 적경적위의 정확한 값을 확인해 좌표상 그려낸다는 말이다.

 

하늘의 좌표가 확인되면 천문도에서는 원의 중심을 身으로 하여 각각의 별자리를 그려 넣게된다.

천문도상의 身은 北極북극을 의미한다.

다시말하면 古書에서 身字는 "사물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읽혀질 수있다는 말이다.

                                                                                                                 -줄임-

 
<是始作易八卦以垂憲象>

易이란 변화를 이르는 말이다.

정연한 질서로 쉬지 않고 움직이는 별자리의 좌표를 이용해 四時의 변화를 관찰하고 자연의 질서를 파악해서 인간과 우주가 하나라는 신념은 八卦를 만들었고 인간이 하늘의 섭리를 따르려는 점성술로 이어졌다.

易八卦는 고대 천문 상수에 그 뿌리를 둔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하늘의 운행을 <以垂憲象>평면에 천문도로 나타낸 모양 이라는 뜻이다.

垂수:[ ]自上縋下. 將及. 邊方. 殘.

 自上縋下: 위부터 아래로 매달다. 


憲헌:[ ] . 敏也. 明也. 縣法示人. 悅貌.

  表也: 표시하다 明也: 밝히다. 悅貌:딸려있는 모양

 憲象은 사전적 의미에 :法象. "역법으로 정한 도형"이라 한다.          -- 줄임 : 결승 천문도 에서--

 

及神農氏 結繩爲治 而統其事 庶業其繁 飾僞萌生

신농씨 때 결승으로 다스리고 그 일을 통솔하였다. 일들이 다양해지고 번잡해짐으로 틀린 부분이 나타나게 되었다.


結繩爲治신농씨 때 매듭으로 다스렸다 한다.

고대의 결승은 실과 끈을 이용해서 매듭을 만들고 그 모양으로 의사의 전달 수단으로 사용하였으며 동서양 모든 고대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매듭의 의미를 확대 해석해 본다.

매듭을 짖는 끈의 숫자를 하루에 하나 씩 365개의 매듭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것을 펼쳐서 360도의 둥근 원을 이루게되면 이는 곧 천문도의 모양을 만들게된다.

별자리의 날짜별 위치에 따라 매듭을 지어 놓으면 그대로 별자리그림이 된다.

365개의 끈은 적경의 역활을 하고 높낮이에 따라 적위의 위치를 표시하게된다.

매듭을 이용한 천문도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而統其事 庶業其繁 飾僞萌生

다스림에 그일들이 다양해지고 번잡해짐으로 틀린 부분이 나타나게 되었다.


庶業其繁: 번잡 다양해졌다는 말은 천문행위를 함에있어서 발전과정에서 복잡다양해 간다는 말이며.

 飾僞萌生: 거짖과 허위가 싹트기 시작했다는 말은 천문기술이 발전해 갈 때마다.기존의 역법 산술이 틀렸음을 알게됐다는 말이다.

역법에 있어서 지금도 윤달을 넣어야하고, 크게 보면 지구의 세차운동에의해 지구의 북극점이 바뀌어가는 잘못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고대 천문은 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역법이 시행됐고, 왕권의 상징이었기에 그 시대 최고의 과학이며 권력의 핵심 중 핵심들에의해 이뤄진 것이다.

그들은 구테타로 왕조를 무너트리고도  전복의 정당성을 천문에서 찾을 많큼 천문을 중요시하였기에 연구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다양 번잡해짐에따라 기존 역법의 잘못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黃帝史官倉頡 見鳥獸蹄迒之跡 知分理之可相別異也 初造書契

황제의 사관 창힐이 鳥獸의 발자국의 자취를 따라가 보며 나눠진 무늬가 서로 구별될 수 있음을 깨닫고 처음으로 서계를 만들었다. 


하늘의 별자리모양의 움직임을 세세히 분석하여 매듭이 아닌 글자로  서계에 기록했다는 말이다.
신농 시대에 매듭으로 만든 천문에서는 부정확한 별자리를 표시하였으나. 창힐 시대에 와서는 각 별마다 고유의 이름을  부여하고 서계에 조목조목 세분하여 순서대로 나누어 기록했다는 말이다.

 

문자를 만든사람으로 알려진 창힐 또한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 갔다.

위 내용에서 본바와 같이  별자리를 짐승의모양으로 그려낸 상형으로부터 최초의 글자를 만드는 상형 문자를 만들어 기록했다는 말이다.

창힐 시대에 와서는 각 별마다 고유의 이름을  부여하고 서계에 조목조목 세분하여 순서대로 나누어 기록했다는 의미이다.

천문의 발전과 아울러  

知分理之可相別異 세분화된 각각의 별 이름을 그림이 아닌 문자 상형으로 간략화하여 

造書契 서계로 만들 수있었던 것이다.

또한 서계는 종이가 없는 시대에 목간이나 대죽등에 마치 팔만대장경의 목판과 같이 부분별 별자리를 표시해 적은 것이다.

 

 

 

별자리의 위치를 노끈에 표시 -------벽화에 별자리 모양을 그림 ---   거북의 등 껍질 또는 목간. 서계에 별자리를 상형화하여 세분함

 

 

<百工以乂 萬品以察> 백관이 서계를 떼여내다 만물을 그것으로 살펴졌다.

백공이 만물을 살피는 것은 천문행위를 이르는 말이며 이때 필요한 천문도는 대장경판과 같은 당일 그 시간에 필요한 별자리 판을 가져다가 하늘의 별자리와 대조해 살펴보았다는 말이다.

 

문자를 만든 창힐은 눈이 4개이다.

두 개의 눈은 하늘의 별을 보고

나머지 두 눈은 땅에 천문도를 보고 있는 것이다.

 

蓋取諸夬夬揚王庭言文者宣敎明化於王者朝庭君子所以施祿及下居德則忌也

대체로 주역의 夬쾌에서 취하였는데 -쾌-는 조정에서 편다는 말이다.

文을 말함은 왕의 조정에서 변화를 밝히고 가르침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군자는 그것으로 아랫사람에게 복을 베푼다.

木星이 머물면 유심히 살핀다.

 

 蓋取諸夬

대체로 주역의 夬쾌에서  취했다 ?

지금까지 거론된 문자기원설의  복희 창힐등의 이야기가 주역의 夬(쾌)에서  취했다는 말이다.

문자의 기원설이 주역에서 나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周易주역의  夬쾌 내용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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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 

夬 
夬 揚于王庭 孚號有厲. 告自邑不利卽戎利有攸往. 彖曰夬決也剛決柔也健而說決而和. 揚于王庭柔乘五剛也. 孚號有厲其危乃光也. 告自邑不利卽所尙乃窮也. 利有攸往剛長乃終也. 象曰澤上於天夬君子以施祿及下居德則忌.

 

 夬揚於王庭

 夬(쾌) 는 왕의 뜨락에서 펼친다는 말이다.

알듯 말듯한 어려운 글이다.

왕의 뜰 그러니까 궁정에서 무었을 펼친다는 말인가?

 

다름아닌 천문을 한다는 말이다.

고대 천문이 왕권의 전유물 이었기에 어전의 뜰 앞에서 펼칠 수있는 것이었다.

 

言文者 宣敎明化於王者朝庭

文을 말함은  왕의 조정에서 변화를 밝히고(하늘의 별자리의 변화) 가르침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君子所以施祿及下

군자는 그것으로 아랫사람에게 복을 베푼다.

역법을 이용하여 연호와 절기,달력, 시간을 정확히 알림으로써, 왕권의 위엄을 세우고 아래에 복을 베푸는 형식의 통치를 한 것이다.

 

夬(쾌):자의 갑골문자를 통해 천문의 의미를 본다.

갑골문자 상형은 하늘의 별자리를 향해 양손을 펼친 듯도하고, 

                            천문기구를 들고 밤하늘을 보고있는 천문학자의 모습 같기도 하다.


 

 

 

居德則忌也  木星이 머물면 유심히 살핀다.

居德의 일반적 해석이 석연치 않아 德을  木星으로 해석한다.


木星:목성은 고대부터 世數를 따지는 별이다. 

세성(歲星)이라고 불렀는데, 목성의 공전궤도를 12등분하여 놓고, 목성의 위치에 따라 해[年]의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

이를 세성기년법(歲星紀年法)이라 하였다.     

                                

倉頡之初作書也,蓋依類象形,故謂之文。其後形聲相益,卽謂之字。文者,物象之本;字者, 言孶乳而寖多也。著於竹帛謂之書。書者,如也。

창힐이 처음 문자를 만들 때에 대게는 종류에 따라 형태를 본떴으므로 文문양이라 한다.

그후 소리와 형태가 더해진 것을 字글자라 한다.

文문양이란 사물의 본래 모양이고, 字글자란 말이 파생되어 많아진 것이다.

죽간과 비단에 쓰여진 것을 書라 하는데 書는 같다는 뜻이다.


以迄五帝三王之改易殊體封於泰山者七十有二代靡有同焉

五帝三王시대에 와서 다른 모양으로 바뀌었다.

태산을 이어받아 72대 동안 같은 것이 없다.

                                                               --중략--

 

이상 허신의 설문해자서에서 문자기원은 천문에서 기인했음을  새로운 해석으로 간략한다.

추기: 주역의 내용에도 더 많은  문자기원설이있으나 차후 -주역천문--편에서 공개합니다.

허신이 문자의 기원을 밝히면서 주역의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허신의 시대에도 이미 문자의 기원을 밝힐만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는 말과 다름 없다.

 

공자는 주역의 책 끈이 닳도록 읽었다고 한다.

공자의 능력이라면  주역전체를 암기하여 책을 볼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런대 그 책을 평생을 수십권이 닳도록 읽은 것으로 되어있다.

공자가 평생 주역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인가?

공자는 주역속의 천문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것인가?

공자는 천문을 알고 있었는가?

의문이 간다.

 
고대 천문은 위글 夬쾌의 내용과 같이 왕의 측근에서만 은밀히 진행된 사항이라면, 공자는 권력의 변방에서만 머물렀다. 그렇다면 공자는 천문을 알지 못한 것은 아닌가?

공자가 천문을 이해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밝히는 것도 공자와, 주역, 고대의 문자. 고대의 천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끝    -백화점앞 꽃신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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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좀 많은 자료입니다.

고사나 어휘에 관한 좋은자료같아 올립니다.

출처는 잘 모르겠으나 좋은자료인것은 틀림없지요.

한문공부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中齋 申允九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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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4-’98 보라매 수련원 연수부장(4년)

      - ‘99-’04 공군대학 고급지휘참모처 군사관리교관(리더십)(‘04.8전역)

      - ‘96-’03 민간 데일카네기 코스 수료, 피닉스 및 크리스토퍼 리더십코스 강사

      - ‘04-    국사찾기협의회 부회장, 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자문위원

     

    3. 강연 경력

  • (제목 : 한민족의 저력, 민족 자긍심 고취 특강 전문 강사)

      - 공군 사관후보생 81-112기 약 9000여명 대상(‘86-’04)

      - 공군 보라매 수련원 대령이하 전과정 4년

      - 공군사관학교, 간호사관학교, 해군교육사령부, 육군탄약사령부, 공군방공포병사령부,
       육군중앙군사학교(ROTC), 대전고, 대천고, 성남고 강사

      - 삼성종합연수원 21세기 지도자(부장)과정, (주) 공간사랑 임직원

      - 청주대학교 행정대학원 최고지도자과정(3학기 특강)

      - 한국은행 대전지점 전직원, 충남·북 교원연수원 중등교사 및 초등교감 대상

      - 충북 공무원 교육원, 논산시 교육청, 지방의회(시, 도) 의원, 해군충무공수련원 등

      ※ 19년간 민·관·군 약 12만명 대상 강연

      ※ 중국(백두산, 국내성, 만리장성, 북경 등) 고구려사 관련 답사(‘94)

      ※ KBS 국군방송 “안녕하십니까 전정환입니다” : 한민족의 저력 강의

     

    4. 한힘(한민족의 저력)연구소 및

  •                      크리스토퍼 리더십 센타 개업(‘04.10.4 대전 유성)

      - 크리스토퍼 리더십 교육(대전, 충남, 충북 대상)

      - 민족의 얼을 기둥삼아 선진 리더십 기법 연마, 유능한 지도자 양성 전념

□ 청주크리스토퍼      

 

□ 대전크리스토퍼
                                                      

 

 

 



이 사건의 주체 추종자들과 ㅇㄴ터넷상에서 어지간히 다투었다.



                                               국새(國璽)



                                                                                  대의 사기꾼   민홍규 作


 

 ‘대한민국’ 4자의 마지막 ‘국’자의 받침 ‘ㄱ’을 두 획으로 나눠 쓴 것이 심사위원 10명

전원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통 동양사상에서

20획은 ‘파괴’ ‘파멸’을 뜻하고, 

21획은 ‘만물이 평안히 자라남’을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1.  한글의 劃數로 오행상의 숫자로 길흉을 판단하는 동양사상의 출발은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 된 전통사상인가?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이다.


2.  ‘대한민국’ 획수가 20획이라 파멸의 의미가 있다고? 억지로 국새에 21획을 만들어 놓으면

     국운이 평안해지겠는가?


3.  본질적으로 동양사상을 도입한다면 20획인 ‘대한민국’ 국호 자체를 “만물이

평안해지는”21획으로 바꿔야 할 것 아닌가?

 

 

                         (    21획  ----   태한민국. 대한만국? ㅎㅎ   )


4.   세종대왕 이후로 “ㄱ"자가 2획이 되는 꼴은 前代未聞이다.

                                                                  예술적 가치를 모른다 할 것인가? 


5.   이시대의 “전통 동양사상가들”은 모두 휴가 중인가?

                                                                        아니면 그들 또한 같은 생각일까?


 

6.   새로운 “한글 作名學”의 시대가 ? 열리려나보다.

 

 

7.조금이라도 솟은 부분이 보인다면

 

 

 

보도내용에 따르면 당선작의 “국”자의 “ㄱ”자는 발표당시 동양사상 운운하며 분명 2획으로 충 21획으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대미문의 "ㄱ"자를 2획 만든 제작의도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자

행자부는 해명에 나섰는데

작가는 마지막 글자인 '국'자에 힘을 받쳐주기 위하여 한 것이나 2획이라는 논란의 소지가 있으므로, 작가의 창작성도 존중하고 2획으로 보이는 점도 보완하기 위하여, '국'자의 받침 'ㄱ'부분의 약간 솟아있는 부분을 보다 완화하여 일부 수정하기로 하였으며, 향후 국새의 글자 획수에 대한 문제는 논의하지 않기로 하였음


“'ㄱ'부분의 약간 솟아있는 부분을 보다 완화하여 일부 수정하기로 했다”지만

끊어짐이 없이 각지게 제작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솟은 부분이 보인다면 

제작자가 의도한 2획 說의 미봉책에 불과하고  불난의 여지는 계속 될 것이다.

또한

“작가는 마지막 국자의 힘을 받쳐주기 위하여 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아무리 미술, 전각, 도형, 건축등의 문외한이라도 첫눈에 잘 못된 이론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도형상 힘을 받쳐주는 것은 안정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래


왼쪽 그림을 자세히 보면 “국”자의 “ㄱ"모양은 대들보 역할을 하는 가로획이

기둥의 옆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여서 힘을 느끼기는커녕 “국”자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불안한 그림으로 보인다.

 



 

그   후




21획은 ‘만물이 평안히 자라남’을 상징하는 전통 동양사상이라구?

으 ! ㅎㅎㅎ

                         21세기 박쥐 이빨 가는 소리

                                                            강은 썩고 

                                                                  뒤집히고

                                                                         백조는 날아갔다.



혁대 조이기는 배고플 때 하는 행동이다.  어떤 다짐의 의미이다.   

                          よし요시 =   よし 오냐 !.   よし니들 두고보자 !

혁대의 의미는 여기서도 보인다.


밥공기 혁대 그리고  J e s u s 예수 이니셜일까?


                                  장노님  쿼바디스 도미네요!



                                         https://youtu.be/I5s-Efu0unQ?t=17m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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