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歿 침몰 (危篤 中)
                                이상


죽고싶은 마음이 칼을 찾는다.
칼은 날이 접혀서 펴지지않으날을 노호하는 초조가 절벽에 끊치려 든다.
억지로 이것을 안에 떠밀어 놓고 간곡히 참으면

어느결에 날이 어디를 건드렸나 보다

내출혈뻑뻑해 온다.
그러나 피부에 상채기를 얻을 길이 없으니 악령이 없다.


가친 자수로하여 체중은 점점무겁다.

                                                                    조선일보, 1936. 10. 6



 

沈歿  (危篤 中)

죽고싶은마음이칼을찾는다.  칼은날이접혀서펴지지않으니날을怒號하는焦燥가絶壁에끊치려든다.  억지로이것을안에떠밀어놓고墾曲히참으면어느결에날이어디를건드렸나보다.  內出血이뻑뻑해온다.  그러나皮膚에傷채기를얻을길이없으니惡靈나갈門이없다.  가친自殊로하여體重은점점무겁다.

 

 

 

 

危篤위독 4    絶壁절망 / 꽃이보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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門閥  (危篤 中) 문벌  (위독 中)

                                                             이상 


 분총에 계신 백골까지가 내게 혈청의 원가상환을 강청하고있다. 

천하에 달이 밝아서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도처에서 들킨다. 

당신의 인감이 이미 실효된지 오랜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으시나요--하고

나는 의젓이 대꾸를 해야겠는데

나는 이렇게 싫은 결산의 함수를 내몸에 지닌 내 도장처럼 쉽사리 끌러버릴 수가 참 없다. 


墳塚에계신白骨까지가내게血淸의原價償還을强請하고있다.  天下에달이밝아서나는오들오들떨면서到處에서들킨다.  당신의印鑑이이미失效된지오랜줄은꿈에도생각하지않으시나요--하고나는의젓이대꾸를해야겠는데나는이렇게싫은決算의*數를내몸에지닌내圖章처럼쉽사리끌러버릴수가참없다. 

 

 

 


  

危篤위독7 位置위치 / 중요한위치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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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  (위독 中) 
                                    이상 

기억을 맡아보는 기관이 염천 아래 생선처럼 상해들어가기 시작이다. 

조삼모사의 싸이폰작용. 

감정의망쇄. 
나를 넘어뜨릴 피로는 오는 족족 피해야겠지만

이런때는 대담하게 나서서 혼자서도 넉넉히 자웅보다 별 것이어야겠다. 

탈신.  신발을 벗어버린 발이 허천에서 실족한다.

 

 

 

 

매춘  (危篤 中) 

                                     이상 
                                


  記憶을맡아보는器官이炎天아래생선처럼傷해들어가기始作이다.  朝三暮四의싸이폰作用.  感情의忙殺. 
  나를넘어뜨릴疲勞는오는족족避해야겠지만이런때는大膽하게나서서혼자서도넉넉히雌雄보다別것이어야겠다. 
  脫身.  신발을벗어버린발이虛天에서失足한다. 

 

 

 

 

 


危篤위독9 生涯생애 / 내두통우에 ...바로가기 

 

 

 

 

 

 

 



 


 

 

 

 

 

생애  (위독 中) 
                      이상 


내 두통위에 신부의 장갑이 정초되면서 내려앉는다. 

써늘한 무게 때문에 내 두통이 비켜설 기력도 없다. 

나는 견디면서 여왕봉처럼 수동적인 맵시를 꾸며보인다. 

나는 기왕 이 주춧돌밑에서 평생이 원한이거니와 

신부의 생애를 침식하는 내 음삼한 손찌거미를 불개아미와 함께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신부는 그날그날 까무러치거나 웅봉처럼 죽고 죽고한다. 

두통은 영원히 비켜서는 수가 없다.

 

 

 

 

 

 

 

 

生涯  (危篤 中)
                        이상 


 내頭痛위에新婦의장갑이定礎되면서내려앉는다.  써늘한무게때문에내頭痛이비켜설氣力도없다.  나는견디면서女王蜂처럼受動的인맵시를꾸며보인다.  나는己往이주춧돌밑에서平生이怨恨이거니와新婦의生涯를浸蝕하는내陰森한손찌거미를불개아미와함께잊어버리지는않는다.  그래서新婦는그날그날까무러치거나雄蜂처럼죽고죽고한다.  頭痛은永遠히비켜서는수가없다. 
  

危篤위독10 內部내부 / 입안에짠맛이  ...바로가기

  


  
 

 Holland's got talent- Amira Willighagen- O mio babbino caro     아미라 빌리하겐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Amira Willighagen  2004생 네덜란드  2014년 1집 앨범 [Amira]

                                                      2013년 홀랜드 갓 탤런트 시즌 6 우승



 

 

 

 

육친  (위독 中) 
                               이상 

크리스트에 혹사한 한 남루한 사나이가 있으니

이이는 그의 종생과 운명까지도 내게 떠맡기려는 사나운마음씨다. 

내 시시각각에 늘어서서 한 시대나 눌변인 트집으로 나를 위협한다. 

은애--나의 착실한 경영이 늘 새파랗게 질린다. 

나는 이 육중한 크리스트의 별신을 암살하지 않고는

내 문벌과 내 음모를 약탈당할까 참걱정이다. 

그러나 내 신선한 도망이 그 끈적끈적한 청각을 벗어버릴 수가 없다.

 

 

 

肉親  (危篤 中) 
                                이상 

크리스트에酷似한한襤褸한사나이가있으니이이는그의終生과殞命까지도내게떠맡기려는사나운마음씨다.  내時時刻刻에늘어서서한時代나訥辯인트집으로나를威脅한다.  恩愛--나의着實한經營이늘새파랗게질린다.  나는이육중한크리스트의別身을暗殺하지않고는내門閥과내陰謀를掠奪당할까참걱정이다.  그러나내新鮮한逃亡이그끈적끈적한聽覺을벗어버릴수가없다. 
  
 



 


危篤위독12 自像자상 / 여기는어느나라의...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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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部  (危篤 中)

                                        이상 

 

입안에 짠맛이 돈다.

혈관으로 임리한 묵흔이 몰려들어 왔나보다.

참회로 벗어놓은 내 구긴 피부는 백지로도 오고

붓지나간 자리에 피가 아롱져 맺혔다.

방대한 묵흔의 분류는 온갖 合音이리니

분간할 길이 없고 다물은 입안에 그득찬 서언이 캄캄하다.

생각하는 무력이 이윽고 입을 뻐겨젖히지 못 하니

심판받으려야 진술할 길이 없고 익애에 잠기면 버언져

멸형하여버린 전고만이 죄업이 되어 이 생리속에 영원히 기절하려나 보다



 

내부  (위독 中)

                                          이상

 
입안에 짠맛이 돈다. 

血管으로 淋漓한 墨痕이 몰려들어 왔나보다. 

懺悔로 벗어놓은 내 구긴 皮膚는 白紙로도 오고

붓지나간 자리에 피가 아롱져 맺혔다. 

 尨大한 墨痕의 奔流는 온갖 合音이리니

分揀할 길이 없고 다물은 입안에 그득찬 序言이 캄캄하다. 

생각하는 無力이 이윽고 입을 뻐겨젖히지 못 하니

審判받으려야 陳述할 길이 없고 溺愛에 잠기면 버언져

滅形하여버린 典故만이 罪業이 되어 이 生理속에 永遠히 氣絶하려나 보다. 
  


 

 

 

 

 危篤위독11 肉親육친 / 크리스트에혹사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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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Gounod: Ave Maria (piano solo)

 




 

 

열하약도 No2(未定稿) - 이상

 

 

1931의 풍운風雲을 적적寂寂하게 말하고 있는 탱크가

한신旱晨의 대무大霧에 적갈색赤褐色으로 녹슬어있다.

객석客席의 기둥의 내부內部.

(실험용實驗用 알콜램프가 등불 노릇을 하고 있다)

벨이 울린다.

아해兒孩가 삼십년전三十年前에 사망死亡

온천溫泉의 재분출再噴出을 보도報導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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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0:1 은 오감도 시제 4호와 동일 함

 

바로가기  http://blog.daum.net/gapgol1/16155462

 

 

 

 

 

 

 

 

 

 

 

 

 

 

 

 

 

 

 

 

 

 

 

 

 

 

 

 

 

 

 

 

 

 

 

 

 

 

 

 

 

 

 

 

 

 

 

 

 

 

 

 

 

 

 

 

 

 

ANDRE RIEU    TANGO PIAZZOLLA ADIOS NONINO Y LIBERTANGO  작별

앙드레 류          바이올리니스트 1949년 생

            1987 요한 스트라우스 오케스트라 창단 
            1987 앙드레 류 프로덕션 창립
            1978 림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1978 마스트리히트 살롱 오케스트라 창단












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                                                



                                                         조선중앙일보 19350106

 

기사제목

사회여 문단에도 一顧를 보내라(6) / 우리들에겐 생활이 없다.

작가들은 드디어 전조선에 호소함,

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

 

 

 

 

 

 

 

四角形의內部의四角形의內部의四角形의內部의四角形의內部의四角形.
四角이난圓運動의四角이난圓運動의四角의난圓.
비누가通過하는血管의비눗내를透視하는사람.
地球를模型으로만들어진地球儀를模型으로만들어진地球.
去勢된洋襪.(그女人의이름은워어즈였다)
貧血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平行四邊形對角線方向을推進하는莫大한重量.
마르세이유의봄을解纜한코티의香水의마지한東洋의가을
快晴의空中에鵬遊하는Z伯號. 蛔蟲良藥이라고씌어져있다.
屋上庭園. 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무아젤.
彎曲된直線을直線으로疾走하는落體公式.
時計文字盤에XII에내리워진一個의侵水된黃昏.
도아-의內部의도아-의內部의鳥籠의內部의카나리야의內部의감殺門戶의內部의인사.
食堂의門깐에方今到達한雌雄과같은朋友가헤어진다.
파랑잉크가옆질러진角雪糖이三輪車에積荷된다.
名銜을짓밟는軍用長靴. 街衢를疾驅하는造花金蓮.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저여자의下半은저남자의上半에恰似하다.(나는哀憐한邂逅에哀憐하는나)
四角이난케-스가걷기始作이다.(소름끼치는일이다)
라지에-타의近傍에서昇天하는굳빠이.
바깥은雨中. 發光魚類의群集移動.

AU MAGASIN DE NOUVEAUTES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의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마지한동양의가을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 회충양약이라고씌어져있다.
옥상정원. 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무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시계문자반에XII에내리워진일개의침수된황혼.
도어의내부의도어의내부의조롱의내부의카나리아의내부의감살문호의내부의인사.
식당의문깐에방금도달한자웅과같은붕우가헤어진다.
파랑잉크가옆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적하된다.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 가구를질구하는조화금련.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저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나는애련한해후에애련하는나)
사각이난케이스가걷기시작이다.(소름끼치는일이다)
라지에이터의근방에서승천하는굿바이.
바깥은우중. 발광어류의군집이동.

 

 

 

 

 

 

 

 

 

 

 

 

 

 

 

 

 

 

 

 

 

 

 

 

 

 

 

 

 

 

 

 

 

 

 

 

 

 

 

 

 

 

 

 

 

 

 

 

 

 

 

 

 

 

 

 

 

 

 

 

 

 

 

 

 

 

 

 

 

 

 

 

 

 

 

 

 

 

 

대낮 -或るESQUISSE

 

ELEVATER FOR AMERICA

세마리의 닭은 사문석蛇紋石의 층계層階이다.

룸펜과 모포毛布

삘딩이 토吐해내는 신문新聞 배달부配達夫의 무리.

도시계획都市計劃의 암시暗示.

둘 쨋 번의 정오正午 사이렌.
비누 거품에 씻기어가지고 있는 닭.

개아미집에 모여서 콩크-리트를 먹고있다.

남자男子를 만나하는 석두石頭
남자男子는 석두石頭를 백정白丁을 싫여하드키 싫여한다.

얼룩고양이와같은 꼴을하고서 태양군太陽郡의 틈사구니를 쏘다니는 시인詩人.
꼭기요-.
순간瞬間  자기磁器와 같은 태양太陽이 다시 또 한 개個 솟아올랐다.

 

 

                                                                                                                      - 1932년 7월 조선과 건축

 

 

 

             출판법

   I
 허위고발이라는죄명이나에게사형을언도하였다. 자취를은닉
한증기속에몸을기입하고서나는아스팔트가마를비예하였다.
 일직에관한 전고일즉일
 

기부양양 기자직지
 나는아아는것을아알며있었던전고로하여아알지못하고그만둔
나에게의집행의중간에서더욱새로운것을아알지아니하면아니되
었다.
 

나는설백으로폭로된골편을주워모으기시작하였다.
 「근육은이따가라도부착할것이니라」
 박락된고혈에대해서나는단념하지아니하면아니된다.

 

II 어느경찰탐정의비밀신문실에있어서
 혐의자로서검거된사나이는지도의인쇄된분뇨를배설하고다시

 

그것을연하한것에대하여경찰탐정은아아는바의하나를아니가진
다. 발각당하는일은없는급수성소화작용. 사람들은이것이야말
로바로요술이라말할것이다.
 「물론너는광부이니라」
 참고남자의근육의단면은흑요석과같이광채나고있었다한다.


 

III 호외
 자석수축을개시
 

원인극히불명하지만대내경제파탄에인한탈옥사건에관련되는
바농후하다고보임사계의요인구수를모아비밀리에연구조사중.
 개방된시험관의열쇠는나의손바닥에전등형의운하를굴착하고
있다. 미구에여과된고혈과같은하수가왕양하게흘러들어왔다.

 IV
 낙엽이창호를삼투하여나의예복의자개단추를엄호한다.



암 살


 지형명세작업의지금도완료가되지아니한이궁벽의지에불가사
의한우체교통은벌써시행되어있다. 나는불안을절망하였다.
 일력의반역적으로나는방향을분실하였다. 나의안정은냉각된
액체를산산으로절단하고낙엽의분망을열심으로방조하고있지아
니하면아니되었다.
 (나의원후류에의진화)

            출판법

 

   I
 虛僞告發이라는罪名이나에게死刑을言渡하였다. 자취를隱匿
한蒸氣속에몸을記入하고서나는아스팔트가마를비예하였다.
 一直에關한 典古一則一


 其父攘羊 其子直之
 나는아아는것을아알며있었던典故로하여아알지못하고그만둔
나에게의執行의中間에서더욱새로운것을아알지아니하면아니되
었다.
 나는雪白으로曝露된骨片을주워모으기始作하였다.
 「筋肉은이따가라도附着할것이니라」
 剝落된膏血에對해서나는斷念하지아니하면아니된다.

 II 어느警察探偵의秘密訊問室에있어서
 嫌疑者로서檢擧된사나이는地圖의印刷된糞尿를排泄하고다시


그것을嚥下한것에對하여警察探偵은아아는바의하나를아니가진
다. 發覺當하는일은없는級數性消化作用. 사람들은이것이야말
로바로妖術이라말할것이다.
 「勿論너는鑛夫이니라」
 參考男子의筋肉의斷面은黑曜石과같이光彩나고있었다한다.

 III 號外
 磁石收縮을開始


 原因極히불명하지만對內經濟破綻에因한脫獄事件에關聯되는
바濃厚하다고보임.斯界의要人鳩首를모아秘密裡에硏究調査中.
 開放된試驗管의열쇠는나의손바닥에全等形의運河를掘鑿하고
있다. 未久에濾過된膏血과같은河水가汪洋하게흘러들어왔다.

 IV
 落葉이窓戶를삼透하여나의禮服의자개단추를掩護한다.



暗 殺


 地形明細作業의至今도完了가되지아니한이窮僻의地에不可思
議한郵遞交通은벌써施行되어있다. 나는不安을絶望하였다.
 日曆의反逆的으로나는方向을紛失하였다. 나의眼睛은冷却된


液體를散散으로切斷하고落葉의奔忙을熱心으로幇助하고있지아
니하면아니되었다.
 (나의猿후類에의進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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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rificé - Sinéad O'Connor     시네이드 오코너    희생

 

 

 

 

禁制금제   <危篤위독 1>

 

내가 치던 개는 튼튼하대서

모조리 실험동물로 공양되고


그 중에서 비타민 E를 지닌 개는

학구의 미급과 생물다운 질투로 해서

박사에게 흠씬 얻어맞는다.


하고 싶은 말을 개 짓듯 배앝아놓던 세월은 숨었다.


의과대학 허전한 마당에 우뚝서서

나는 필사로 금제를 않는(患)다.


논문에 출석한 억울한 촉루에는

천고에 씨명이 없는 법이다.

 

 

                                                                   조선일보, 1936. 10. 4-9

 

 

 

 

 

危篤위독2  追求추구/ 안해를즐겁게 할....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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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과 '문둥이의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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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  (0) 2016.05.30

 

 

 

金素雲

1907∼1981. 시인·수필가·번역문학가. [개설] 본명 김교중(金敎重). 개명은 김소운(金素雲). 호는 소운(巢雲), 필명은 삼오당(三誤堂). 부산 출신

 

1923년 <지상낙원>의 동인으로 일본 시단에서 활동했고, 1929년 귀국하여 <눈>, <호심> 등 생활과 현실에 관한 관념시를 발표했다.

1931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45년 3월 귀국했고, 1934년 조선아동교육회를 설립, <아동세계>를 펴냈다.
1952년 베네치아 국제예술가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귀국하던 중, 도쿄에서 이승만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입국 금지조치 당했다.

그뒤 일본에서 머무는 동안 <코리안 라이브러리>를 펴냈다.

1965년 귀국, 일본인의 우리나라 민족문화에 대한 그른 평가에 대해 격분하여 한국의 민요와 동요·현대시를 일본어로 번역했다.

민족적 항의를 내용으로 한 수필 <목근통신>은 국내의 <대한일보>에 연재된 뒤 일본의 <중앙공론>에 실려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랫동안 일본에 살면서 한국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알리는 데 이바지했다.

본명은 교중. 호는 소운(巢雲). 필명은 삼오당(三誤堂). 옥성(玉成)보통학교를 중퇴한 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이세[開城] 중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했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그만두었다.

1923년 〈지상낙원〉의 동인으로 일본 시단에서 활동했다. 1929년 귀국하여 〈눈〉·〈호심 湖心〉등 생활과 현실에 관한 관념시를 발표했다.

1931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45년 3월 귀국, 주간지 〈청려 靑驪〉를 펴냈으나 발매금지 당했다.

1934년 조선아동교육회를 설립하고, 〈아동세계〉를 펴냈다.

1952년 베네치아 국제예술가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귀국하던 중, 도쿄에서 이승만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입국 금지조치를 당했다.

그뒤 일본에 머무는 동안 〈코리안 라이브러리〉를 펴냈다. 1965년 14년 만에 귀국했다.

일본인의 지나친 우월감과 우리나라 민족문화에 대한 그른 평가에 대해 격분하여 한국의 민요와 동요·현대시를 일본어로 번역했다.

변역시집으로 〈조선민요선〉(1933)·〈조선동요선〉(1933)·〈젖빛 구름〉(1940)·〈조선시집〉(1943) 등이 있다. 1976년에 3년여 동안 번역한 〈현대한국문학선집〉을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출판했다.

 

수필집으로 〈목근통신 木槿通信〉(1951)·〈마이동풍첩 馬耳東風帖〉(1952)·〈김소운수필전집〉(1978) 등이 있다. 특히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모멸과 학대에 대한 민족적 항의를 내용으로 한 수필 〈목근통신〉은 국내의 〈대한일보〉에 연재된 뒤,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개로 일본의 〈중앙공론 中央公論〉에 실려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7년 한국번역문학상을 받았다.

제공처Daum 백과

文壇裏面史(문단이면사) 逸話(일화)로 엮어본 文人(문인)들의 作品(작품)과 生涯...
1983.07.02. 경향신문 7면 생활/문화 기사(칼럼/논단)
金素雲(김소운)과 柳致環(유치환) 文壇裏面史(문단이면사) >22< 逸話(일화)로엮어본 文人(문인)들의 作品(작품)과生涯(생애) 民族魂(민족혼)으로 엮은가난한 友情(우정) "日人(일인)골동품 물려받아 素雲(소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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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6


시계가 뻐꾸기처럼 뻐꾹거리길래 쳐다보니

목조 뻐꾸기 하나가 와서 모으로 앉는다

그럼 저게 울었을리도 없고

제법 울까싶지도 못하고

그럼 아까 운 뻐꾸기

날아갔나.

 

 

 

 

 

 

 

                             正式 정식·5

키가 크고 유쾌한 수목이

키 작은 자식을 낳았다

궤조가 평편한 곳에

풍매식물의 종자가 떨어지지만

냉담한 배척이 한결같아

관목은 초엽으로 쇄약하고

초엽은 하향하고

그 밑에서 청사는 점점 수척하여 가고

이 흐르고

머지 않은 곳에

수은이 흔들리고

숨어 흐르는 수맥에 말뚝 박는 소리가 들렸다.

                                                                              1935년. 4월    카톨릭청년,

 

 

 

 

 

 

 

    1935년. 4월 당시 천재시인 이상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다.

 

 

 

                                    바로가기 대선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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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3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진 표본 두개골에 근육이 없다.

 

 

 

 

 

 

 

 

 

 

 

 

 

 

 

 

 

 

 

 

 

 

 

 

 

 

 

 

 

 

 

 

 

 

 

 

 

 

 

 

 

 

 

 

 

 

 

 

 

 

 

 

 

 

 Helene Rolles - Amour secret

 

 

 

 

 

 

 

 

                                        正式정식 · 2 



     나와 그 알지 못 할 험상궂은 사람과 나란히 앉아 뒤를 보고있으면

     기상은 몰수되어 없고

     선조가 느끼던 시사의 증거가

     최후의 철의 성질로 두 사람의 교제를 금 하고 있고

 

     가졌던 농담의 마지막 순서를 내어버리는
     이 정돈한 암흑 가운데의 분발은 참 비밀이다

     그러나 
     오직

     그 알지 못 할 험상궂은 사람은

     나의 이런 노력의 기색을 어떻게 살펴 알았는지

     그 때문에 그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다하여도

     나는 또

     그 때문에 억지로 근심 하여야 하고

     지상 맨끝 정리인데도 깨끗이 마음 놓기  참어렵다

                                                                                1935. 4    카톨릭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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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 말을 오래 보존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그 나라 문학을 높은 수준에 올리는 것이다.

 

또 하나

 

우리나라 말을 후세에 이어가게 하는 방법은

 

좋은 아동문학 작품을 남기는 길이다.

 



*백석(1912-1995) 누구인가 

 조선일보 [NK리포트] 2001.2.19일자 ☞ 본문 내용중 ? 되있는 부분 날짜 수정 했습니다...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백기행. 오산학교를 다녔고,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그 모와 아들’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그해 조선일보 후원 장학생으로 선발돼 일본 아오야마(청산) 학원 영문과에 유학했다. 193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잡지 ‘여성’ 편집을 맡았으며, 시 ‘정주성’ 등을 발표했다.

1936년 33편의 시가 실린 시집 ‘사슴’을 자비로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면서 순수 서정시인으로 선풍을 불러 일으켰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 등으로 재직하다 만주로 가 방랑생활을 했으며 광복후 고향 정주로 돌아갔다가 북한 체제에 남게 됐다. 북한에서는 번역과 동화시 창작에 주력하다 ( 숙청당한 뒤 196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1995년 )

월북지식인의 행로--백석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발표했을 때(1988년) 시인 백석은 정갈한 옛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는 애초에 북한이라는 '체제'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의 고향이 소월과 같은 평북 정주였고, 그는 귀향했을 뿐이었다. 고향이 그의 시심의 주요한 원천이면서 그곳 언어가 그의 시혼의 모태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념은 없었다. 식민시대를 방랑으로 보낸 그는 광복 후 지친 몸과 마음으로 고향에 깃들었으나 그것이 영원한 구속이 돼버렸다.

백석은 자비로 간행한 시집 '사슴'을 통해 1930년대 후반기 모더니즘 계열의 신인으로 단숨에 한국 문학사에 떠오른다. 한정판 출간인 탓에 문학지망생들에게 이 시집을 필사하는 것은 유행이었고, 윤동주도 이 필사본 시집을 간직했다. ‘사슴’은 당대 '가장 많이 필사된 시집'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의 시는 향토적이고 서정적이었지만 모더니즘 풍의 세련된 언어감각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주착없는 향토주의'와는 구별되었다. '녹두빛 더블 양복에 검은 웨이브(물결 머리)를 날리면서 광화문을 지나는’ 백석의 풍모는 이국적이었다. 백석의 이같은 도회풍 감각과 재주는 조선일보에서 잡지 '녀성'(여성)을 편집할 때 발휘돼 연이어 매진되는 기록을 낳기도 했다.

백석은 1930~40년대를 거의 방랑으로 일관하면서 어둡고 긴 역사의 터널을 빠져 나오고자 했다. 그의 우울과 방랑벽은 체질적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일제시대의 주눅들고 피폐해진 삶을 남도와 만주 등을 유랑하면서 이겨내고자 했고 그것을 빛나는 시적 감수성으로 포착해 낼 수 있었다.

몇 번의 결혼 실패와 잦은 이직, 그리고 만주 등지에서 소작인, 측량보조원, 측량서기, 세관원 등으로 극도로 가난한 생계를 유지하던 방랑의 끝 지점에서 그는 광복을 맞았다. 34세였다. 그러나 오랜 방랑과 생활고로 그는 초로의 사내가 되어 있었다. 내면의 피로함을 안고 그가 깃든 곳은 고향이었다. 아오야먀(청산)학원 시절, 불어 영어 독어 러시아어 등에 뛰어나 동료 학생들로부터 스파이로 오해받을 정도였던 그는 잠시 고당 조만식의 통역비서를 맡기도 했다.

백석의 시가 순수서정적이었던 때문인지 북한에서 시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 같다. 북한 정권 초기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고 하지만 북에서의 그의 삶은 분명하게 밝혀진 게 별로 없다. 문학사 속에서도 1948년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재북파 작가인 허준이 신천지에 발표한 몇 편의 시를 마지막으로 그의 흔적은 사라져 있었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불우했던 삶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의 끈을 지속하고자 했던 흔적들을 남겨놓고 있다. 최근 알려진 백석의 행적은 1950년 전후 주로 번역가로서 활동했다는 것이다.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1949), 빠블렌코의 ‘행복’(1953), ‘이싸꼽프스키시초’(중국길림성 연변교육출판사, 1954) 등이 그가 남긴 번역작품들이다.

그후 그는 동화작가로서 문학적 글쓰기를 지속시켜 나가고 한편으로는 '조선문학'지에 몇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감각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의 동화는 당시 박세영(북한애국가 작사자)이 극찬할 정도로 문장 감각과 우의(우의)성이 빼어났다. 특히 ‘집게네 네 형제’는 당시 아동문학 불모지와 다름 없던 북한에 동물시리즈 동화 유행을 일으켰을 정도다.

'조선문학'에 실린 시들은 내용은 체제 선전과 전후 복구 건설기에 필요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데 바쳐져 있는 듯하지만, 그것은 그가 30년대에 줄기차게 그려갔던 마을 공동체의 신화와 언어에 근거한 것이었다. '갓나물'(1959.6) '동식당'(1959.6) '축복'(1959.6), '눈'(1960.3), '전별'(1960.3) 등의 시가 그러하다.
이용악, 오장환 등 30년대에 같이 활동했던 시인들이 김일성 찬양과 체제 선전을 위해 생경한 구호를 사용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것에 비해서 백석의 시는 서정성과 토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 시인으로서의 존귀함을 잃고 싶지 않았던 탓일까.

결벽증이 있었던 그의 습벽은 그의 시인으로서의 존재감에 깊은 그림자를 남겼고 그것이 북한 체제에서의 현실적 삶에서도 별로 굽혀들지 못했던 모양이다. 여타 장르에 비해 계급적 성향이나 이념적 성향이 희석될 수 있는 번역 작업과 동화 창작에 자신의 마지막 시혼을 불태웠던 것이다. 그는 그같은 내면의 고통을 “유년들의 세계는 주위 사물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외어보는 세계이다. 유희에서 시작하여 유희에서 끝나는 세계이며 꿈에서 시작하여 꿈에서 끝나는 세계이다”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950년 중반 이후 김일성의 권력 투쟁이 강화되면서 이같은 백석의 시적 감각은 북한의 문예정책과 상충될 수밖에 없었고, 60년대 초에는 집필금지를 당하고 결국 숙청에 이르게 된다. ( 그의 사망시기는 52세 되던 1963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 1995년 알고계시죠?)

백석은 엄밀히 말하면 재북파 시인이었지만, 남한에서는 근 40년 동안 그의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다. 북한에서도 그의 순수 서정성과 몰이념적 성향이 문제가 돼 숙청 사실조차 확인할 수 없는 무명의 존재가 되었다. 재북파 문인들의 이같은 운명은 이념인으로서의 자기 선언과는 관계없이 역사의 격랑이 어떻게 한 개인의 운명에 개입해 그 존재를 망각의 늪으로 빠트리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분단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적 장면이다.

/조영복 문학평론가 




바로가기  백석의 시와 사랑

               

         법정스님과 자야 김영한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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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을 것이다

<1938년 3월 ‘녀성’지에 발표>




출출이 : 뱁새
마가리 : 오막살이
고조곤히 : 고요히, 소리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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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3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서  흰나비가 된 이상은 그렇게 갔다.



                                                                                                                    이상

 

故 李箱의 追憶

고 이상의 추억

 

이상은 필시 죽음에 진 것은 아니라,

이상은 제 육체의 마지막 조각까지라도 손수 퍼내여 없애고 사라진 것이리라.

이상은 오늘의 일제 치하의 환경과 조선사회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이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이상의 시에는 언제나 그의 피가 흠뻑 젖어있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부서진 배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조각이었다.

 

다방N, 등의자에 기대 앉아 흐릿한 담배연기 저편에 절반쯤 취해서 몽롱한 상의 얼굴에서 나는 언제고 '현대의 비극'을 느끼고 소름이 돋았다.

약간의 해학과 야유와 독설이 섞여서 더듬더듬 떨어져 나오는 그의 잡담 속에는 오늘의 문명의 깨어진 메커니즘이 엉켜 있었다.

파리에서 문화수호국제작가대회가 있었을 때 내가 만난 작가나 시인 가운데 가장 흥분한 것도 이상이었다.

이상이 우는 것은 나는 본 일이 없다.

그는 세속에 반항하는 한 악한(?) 정령이었다.

악마더러 울 줄을 모른다고 비웃지 마라.

그는 울다 울다 못해서 이제는 눈물샘이 말라버려서 더 울지 못하는 것이다.

이상이 소속한 20세기의 악마의 종족들(순수문학파)은 그러므로 번영하는 위선의 문명에 향해서 메마른 찬웃음을 토할 뿐이다.

흐리고 어지럽고 게으른 詩壇시단의 낡은 풍류에 극도의 증오를 품고 파괴와 부정에서 시작한 그의 시는 드디어 시대의 깊은 상처에 부딪쳐서 참담한 신음소리를 토했다.

그도 또한 세기의 어둠 속에서 불타다가 꺼지고 만 한줄기 첨예한 양심이었다.

그는 그러한 불안 동요 속에서 '動동하는 정신'을 재건하려고해서 새 출발을 계획한 것이다. 이 방대한 설계의 어구에서 그는 그만 불행히 자빠졌다.

상의 죽음은 한 개인의 생리의 비극이 아니다.

축소판으로 인쇄된 한 시대의 비극이다.

詩壇시단과 또 내 우정의 여럿 중에 채워질 수 없는 영구한 빈자리 하나 만들어 놓고 이상은 사라졌다.

이상을 잃고 나는 오늘 시단이 갑자기 반 세게 뒤로 물러선 것을 느낀다.

내 공허를 표현하기에는 슬픔을 그린 자전 속의 모든 형용사가 모두 다 오히려 사치하다. '고 이상'-내 희망과 기대 위에 부정의 도장을 사정없이 찍어놓은 故李箱 세 억울한 상형문자야.

 

반년 만에 이상을 만난 지난 3월 스무날 밤, 동경 거리는 봄비에 젖어 있었다.

그리로 왔다는 이상의 편지를 받고 나는 지난겨울부터 몇 번인가 만나기를 기약했으나 종내 仙臺센다이(동경에서 약350km)를 떠나지 못하다가 이날이야 동경으로 왔던 것이다.

이상의 숙소는 九段구단 아래 꼬부라진 뒷골목 2층 골방이었다.

이 '날개' 돋친 시인과 더불어 동경 거리를 거닐면 얼마나 유쾌하랴 하고 그리던 온갖 꿈과는 딴판으로 상은 '날개'가 아주 부러져서 몸도 바로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었다.

전등불에 가로 비친 그의 얼굴은 상아보다도 더 창백하고 검은 수염이 코 밑과 턱에 참혹하게 무성하다.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의 어두운 표정이 가뜩이나 병들어 약해진 벗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서 나는 애써 명랑을 꾸미면서

"여보, 당신 얼굴이 아주 '피디아스'의 '제우스' 신상 같구려." 하고 웃었더니 이상도 예의 정열 빠진 웃음을 껄껄 웃었다.

사실은 나는 '듀비에'의 '골고다의 예수'의 얼굴을 연상했던 것이다.

 

오늘 와서 생각하면 이상은 실로 현대라는 커다란 모함에 빠져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간 골고다의 시인이었다.

 

암만 누우라고 해도 듣지 않고 이상은 장장 두 시간이나 앉은 채 거의 혼자서 그 동안 쌓인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오스카와일드"위 전기를 쓴 "리차드 엘만(Richard Ellmann)"(1918~1987)을 찬탄하고

침체 속에 빠진 몇몇 벗의 문인으로서의 앞날의 운명을 걱정하다가 말이 그의 작품에 대한 이번 달의 비평에 미치자 그는 몹시 흥분해서 통속적인 비평을 꾸짖는다.

문학평론가 최재서의 모더니티를 찬양하고 또 씨의 '날개' 평은 대체로 승인하나 작자로서 다소 다른 주의가 있다고도 말했다.

나는 벗이 세평에 대해서 너무 신경 과민한 것이 벗의 건강을 더욱 해칠까보아서 시인이면서 왜 독자적인 작품을 쓰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세상이야 알아주든 말든 값있는 일만 정성껏 하다가 가면 그만이 아니냐 하고 어색하게나마 위로해 보았다.

 

이상의 말을 들으면 공교롭게도 책상 위에 몇 권의 상스러운 책자가 있었고 본명 金海卿김해경 외에 李箱이상이라는 별난 이름이 있고 그리고 일기 속에 몇 줄 온전하다고 할 수 없는 글귀를 적었다는 일로 해서 그는 한 달 동안이나ㅇㅇㅇ(유치장?)에 들어가 있다가 아주 건강을 상해 가지고 한주일 전에야 겨우 자동차에 실려서 숙소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상은 그 안에서 다른 ㅇㅇ(공산?, 지하운동?)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수기를 썼는데 예의 명문에 계원도 찬탄하더라고 하면서 웃는다.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 속에조차 애독자를 가졌다고 하는 것은 시인으로서 얼마나 통쾌한 일이냐 하고 나도 같이 웃었다.

 

음식은 그 부근에 계신 허남용씨 내외가 죽을 쑤어다 준다고 하고 마침 素雲(김소운>이 동경에 와 있어서 날마다 찾아주고 극작가 주영섭, 삼사문학 동인인 한천, 여러 친구가 가끔 들러주어서 과히 적막하지는 않다고 한다.

이튿날 낮에 다시 찾아가서야 나는 그 방이 완전히 햇빛이 들지 않는 방인 것을 알았다.

 

지난해 1936년 7월 그믐께다.

아침에 황금정 뒷골목 이상의 신혼 보금자리를 찾았을 때도 방은 역시 햇빛 한줄기 들지 않는 캄캄한 방이었다.

그날 오후 조선일보사 3층 뒷방에서 벗이 애를 써 장정을 해준 졸저 '氣象圖기상도'의 발송을 마치고 둘이서 창에 기대서서 갑자기 거리에 몰려오는 소낙비를 바라보는데 창문 앞에 뱉는 이상의 침에 빨간 피가 섞였었다.

평소부터도 상은 건강이라는 속된 관념은 완전히 초월한 듯이 보였다.

이상의 앞에 설적마다 나는 아침이면 맨손 체조를 잊어버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늘 부끄러웠다.

무릇 현대적인 퇴폐에 대한 진실한 체험이 없는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늘 이상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도 그를 아끼는 까닭에 건강이라는 것을 너무 천대하는 벗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이상은 스스로 형용해서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하면서 모처럼 동경서 만나가지고도 병으로 해서 뜻대로 함께 놀러 다니지 못하는 것을 한탄한다.

미진한 계획은 4월 20일께 동경서 다시 만나는 데로 미루고 그때까지는 꼭 맥주를 마실 정도로라도 건강을 회복하겠노라고, 그리고 햇볕이 드는 옆방으로 이사하겠노라고 하는 이상의 뼈뿐인 손을 놓고 나는 동경을 떠나면서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캄캄했다.

 

이상의 부탁을 부인 변동림에게 알리려 했더니 내가 서울 오기 전날 밤에 벌써 부인께서 동경으로 떠나셨다는 말을 서울 온 이튿날 전차 안에서 영문학자 조용만씨를 만나서 들었다.

그래 일시 안심하고 집에 돌아와서 잡무에 분주하느라고 다시 벗의 병상을 보지도 못하는 사이에 원망스러운 비보가 달려들었다.

"그럼 다녀오오. 내 죽지는 않소." 하고 이상이 마지막 들려준 말이 기억 속에 너무 선명하게 솟아올라서 아프다.

 

이제 우리들 몇몇 남은 벗들이 이상에게 바칠 의무는 이상의 피 엉킨 유고를 모아서 이상이 그처럼 애써 친하려고 하던 새 시대에 선물하는 일이다.

허무 속에서 감을 줄 모르고 뜨고 있을 두 눈동자와 영구히 잠들지 못할 이상의 괴로운 정신을 위해서 한 암담하나마 그윽한 침실로서 그 유고집을 만들어 올리는 일이다.

 

나는 믿는다.

이상은 갔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오늘도 내일도 새 시대와 함께 동행하리라고.

 

-조광 3권 6호, 1937. 6-

                                               

원문http://blog.naver.com/fish20017/10152046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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