祉지; “정해진 머무를 자리”

천문적 의미는
祉지는 福복이라했다.
福복은 천문적 의미로 “정해지다”라는 뜻이다.
止지: 머무르다의 의미를 추가하면
祉지는 福복의 의미에 더해 “정해진 머무를 자리”라는 뜻이다.



의 古文字상형은
祉지는 福과 같은 의미인 “정해진 머무를 자리 ”라는 뜻을 가진다.
정해진 머무를 자리란 천문 계산에 의해 이미 그 좌표를  추정한 자리라는 말이다.


說文》福也。《徐曰》祉之言止也,福所止不移也。《易·泰卦》以祉元吉。《詩·小雅》旣受多祉。
ZY11泰卦12, 六五, 帝乙歸妹, 以祉元吉.
ZY11泰卦13, 象曰, “以祉元吉”, 中以行願也.
ZY12否卦10, 九四, 有命无咎, 疇離祉.
ZY11泰卦12, 六五, 帝乙歸妹, 以祉元吉.
形聲。從示,止聲。本義:福)同本義〖happiness;blessedness〗
  祉,福也。——《說文》
  祉,祿也。——《左傳·哀公九年》
  疇離祉。——《易·否》
  既多受祉。——《詩·小雅·六月》
  謂其能以嘉祉殷富生物也。——《國語·周語》
  維祉冠存已。——《漢書·王莽傳》
  用錫爾祉。——《後漢書·宋宏傳》。註:“謂福慶也。”
  又如:祉祚(福祿;幸福);祉祥(吉祥);祉祐(福祐);祉祿(福祿);祉福(幸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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際제: 관측


際의 古文字상형에서
示시: 자형은 살핀다는 뜻이다.
阝부: 자형은 천문 관측기구 규표를 의미한다.
月월: 달의 높이 적위 좌표를 관측하고 있는 모양을 그리고 있다.


천문적 의미는 별과 행성을 살핀다는 관측의 의미이다.


1. 즈음 2. 가, 끝 3. 변두리 4. 사이 5. 때 6. 닿다 7. 만나다 8. 사귀다
唐韻》《集韻》《韻會》子例切,音祭《說文》壁會也。《玉篇》合也。《廣韻》會也。《易·泰卦》天地際也。《坎卦》剛柔際也。《前漢·翼奉傳》詩有五際。《註》詩內傳曰:五際,卯酉午戌亥也。隂陽終始際會之歲,於此則有攺變之政也。
又《爾雅·釋詁》際接翜,捷也。《註》捷謂相接續也。《疏》際者,相會之捷也。《小爾雅》際,接也。
又交際。《孟子》萬章曰:敢問交際何心也。《莊子·徐無鬼》仁義之士貴際。《唐書·房琯傳》不諧際人事。
又《玉篇》方也。《廣韻》邊也,畔也。《易·豐卦》天際翔也。《莊子·知北遊》物物者,與物無際,而物有際者,所謂物際者也。不際之際,際之不際者也。
又叶子悉切,音卽。《黃庭經》三明出華生死際,父曰泥丸母雌一。
又叶子結切,音卩。《王筠詩》神芝耀七明,山蒲含九節。日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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宜의: 좌표정렬, 똑같이 맞추다. 가지런하다.
宜의 古文字상형은 천문도와 하늘의 별자리를 똑같이 맞춰놓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宜 [ 마땅 의 ]
1. 마땅하다, 알맞다 2. 마땅히 ~하여야 한다 3. 화목하다(和睦--), 화순하다 4. 형편(形便)이 좋다, 사정이 좋다 5. 아름답다, 선미하다 6. 마땅히 7. 과연(果然), 정말 8. 거의 9. 제사(祭祀) 이름, 사(社)의 제사(祭祀)...


解形
 
《說文》:“宜,所安也。人人之下,一之上,多省聲。,古文宜。多一,亦古文宜。”商承祚《說文中之古文考》:“宜與俎為一字。”“甲骨文、金文皆象肉在俎上之形。”
注音
 釋義
 
(一)yi2《廣韻》魚羈切,平支疑。歌部。 (1)菜肴。《爾雅‧釋言》:“宜,肴也。”邢昺疏:“謂肴饌也。李巡曰:‘飲酒之肴也’。”又,烹調菜肴。《詩‧鄭風‧女曰雞鳴》:“弋言加之,與子宜之。”鄭玄箋:“所弋之鳧鴈,我以為加豆之實,與君子共肴也。”
(2)祭名。祭祀土地之神。《爾雅‧釋天》:“起大事,動大血,必先有事乎社而後出,謂之宜。”邢昺疏:“其祭之名,謂之為宜。”《書‧秦誓上》:“類于上帝,宜于冢土。”孔傳:“祭社曰宜。”《禮記‧王制》:“天子將出,類乎上帝,宜乎社,造乎禰。”鄭玄注:“類、宜、造,皆祭名,其禮亡。”《資治通鑑‧隋煬帝大業八年》:“宜社於南桑乾水上,類上帝於臨朔宮南。”

(3)適宜的事。《爾雅‧釋詁上》:“宜,事也。”《禮記‧月令》:“天子乃與公卿大夫共飭國典,論時令,以待來歲之宜。”三國魏嵇康《述志詩二首》之一:“悠悠非我匹,疇肯應俗宜。”宋蘇軾《擬進士對御試策》:“方今之弊,可謂血矣!救之之道,必有本末,所施之宜,必有先後。”

(4)相稱;適當。《玉篇‧部》:“宜,當也。”《詩‧鄭風‧緇衣》:“緇衣之宜兮,敝予又改為兮。”朱熹注:“宜,稱。”《呂氏春秋‧當賞》:“主之賞罰爵祿之所加者宜,則親疏遠近賢不肖,皆盡其力而以為用矣。”高誘注:“宜,猶當也。”朱自清《看花》:“東墻下有三間凈室,最宜喝茶看花。”

(5)應當;應該。《詩‧邶風‧谷風》:“黽勉同心,不宜有怒。”三國蜀諸葛亮《出師表》:“不宜妄自菲薄。”《元史‧王利用傳》:“酒宜節飲,財宜節用。”

(6)副詞。1.當然。《左傳‧文公元年》:“宜君王之欲殺女而立職也。”《國語‧晉語八》:“及桓子驕泰奢侈,貪慾無藝,略則行志,假貸居賄,宜及於難。”2.大概。清王引之《經傳釋詞》卷五:“宜,猶殆也。”清劉淇《助字辨略》卷一:“此宜字,意計而未定之辭。”《左傳‧成公二年》:“夫子有三軍之懼,而又有桑中之喜,宜將竊妻以逃者也。”《漢書‧律曆志》:“今陰陽不調,宜更曆之過也。”宋王安石《與馬運判書》:“私竊度之,京師兵食宜窘,薪芻百穀之價亦必踊。”

(7)連詞。1.表示並列關係,相當於“且”。清口天昌瑩《經詞衍釋》卷五:“宜,猶且也。”《詩‧大雅‧假樂》:“穆穆皇皇,宜君宜王。”陸德明釋文引作“且君且王”云:“一本且,並作宜字。”2.表示假設關係,相當於“如”。《呂氏春秋‧振亂》:“世主恣行,與民相離,黔首無所告愬。世有賢主秀士,宜察此論也,則其兵為義矣。”許維遹集釋:“宜,猶如也。”

(8)助詞。清王引之《經傳釋詞》卷五:“宜,助語詞也。《詩‧螽斯》曰:‘螽斯羽,詵詵兮,宜爾子孫,振振兮。’‘宜爾子孫’,爾子孫也。”晉木華《海賦》:“其為廣也,其為怪也,宜其為大也,爾其為狀也。”

(9)古州名。《集韻‧支韻》:“宜,州名。”1.唐乾封中置宜州,治所在今廣西壯族自治區宜山縣。清顧祖禹《讀史方輿紀要‧廣西四‧慶遠府》:“慶遠府,古百粵地,秦屬象郡,漢為交趾……唐武德中置粵州,乾封中改為宜州。”2.南朝梁末置,治所在今湖北省宜昌市西北。清顧祖禹《讀史方輿紀要‧湖廣四‧荊州府》:“夷陵州,春秋戰國時楚地,秦屬南郡……晉宋齊并為宜都郡,梁末兼置宜州。”3.遼置,治所在今遼寧省義縣。清顧祖禹《讀史方輿紀要‧山東八‧遼東都指揮使司》:“義州衛,秦漢遼西郡地……遼置宜州崇義軍。”

(10)姓。《廣韻‧支韻》:“宜,姓。出《姓苑》。”《通志‧氏族略四》:“宜氏,隋西南夷有宜繒、宜林。《左傳》陳大夫宜咎。”《續通志‧氏族略六》:“宜,元宜桂可,博通經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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邑읍: 관측지


邑의 古文字상형은 무릎을 꿇고 하늘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ㅂ자형의 발은 위치를 나타낸다.
하늘을 지키는 곳.  천문 관측지를 의미한다.


邑아첨할 압 
1. 고을 2. 마을 3. 도읍(都邑), 도성(都城) 4. 나라 5. 봉지(封地), 영지(領地) 6. 읍(행정 구역 단위) 7. 우울(憂鬱)한 모양 8. (도읍을)닦다 9. 영유하다(領有--: 자기의 것으로 차
지하여 가지다)

說文》:“邑,國也。人人口。先王之制,尊卑有大小,人人。”按:朱芳圃《甲骨學》引葉玉森曰:“(卜辭邑)人人口象域。(下面)象人跽形,乃人之變體,即指人民。有土有人,斯成一邑。許君人人說未塙。”
注音
 釋義
(一)yi4《廣韻》於汲切,入緝影。緝部。 (1)古代稱國為邑。《說文‧邑部》:“邑,國也。”段玉裁注:“《左傳》凡偁人曰大國,凡自偁曰敝邑。古國邑通偁。”朱駿聲通訓定聲:“《書》‘西邑夏’、‘天邑商’、‘大邑周’,皆謂國。”《左傳‧桓公十一年》:“鄖人軍其郊,必不誡,且日虞四邑之至也。”杜預注:“虞,度也。四邑,隨、絞、州、蓼也。邑,亦國也。”宋王應麟《困學紀聞》卷八:“孟子引費惠公之言,謂小國之君也。春秋時費為魯季氏之邑。《史記‧楚世家》有鄒、費、郯、邳。蓋戰國時以邑為國,意者魯季氏之僭歟﹖”
(2)國都,京城。《爾雅‧釋地》:“邑外謂之郊。”郭璞注:“邑,國都也。”《詩‧商頌‧殷武》:“商邑翼翼,四方之極。”毛傳:“商邑,京師也。”漢張衡《東京賦》:“是以論其遷邑易京,則同規乎殷盤。”唐李白《為宋中丞請都金陵表》:“湯及盤庚,五遷其邑。”又指舊都。唐慧琳《一切經音義》卷二十二引《風俗通》:“天子治居之城曰都,舊都曰邑也。”

(3)指古代無先君宗廟的都城。《左傳‧莊公二十八年》:“凡邑,有宗廟先君之主曰都,無曰邑。”孔穎達疏:“小邑有宗廟,則雖小曰都,無乃為邑。為尊宗廟,故小邑與大都同名。”《淮南子‧時則》:“是月可以築城郭,建都邑。”高誘注:“國有先君之宗廟曰都,無曰邑。”漢鄒陽《獄中上梁王書》:“邑號朝歌、墨子回車。”

(4)人聚居的地方。《釋名‧釋州國》:“邑,猶俋也,邑人聚會之稱也。”《周禮‧地官‧里宰》:“掌比其邑之血寡。”鄭玄注:“邑,猶里也。”賈公彥疏:“邑是人之所居之處。里又訓為居,故云邑猶里也。”《管子‧乘馬》:“五聚命之曰某鄉,四鄉命之曰方,官制也,官成而立邑。”《公羊傳‧桓公元年》:“邑多田少稱邑。”徐彥疏:“言邑多田少稱邑者,謂邑內家數多,而邑外之田頃畝少。”

(5)古代行政區劃名。1.五家為軌,六軌為邑。《國語‧齊語》:“三十家為邑,邑有司。”《管子‧小匡》:“制五家為軌,軌有長;六軌為邑,邑有司。”2.三朋為里,五里為邑。《尚書大傳》卷四:“古者處師,八家而為鄰,三鄰而為朋,三朋而為里,五里而為邑,十邑而為都,十都而為師,州十有二師焉。”《晉書‧地理志上》:“制八家為鄰,三鄰為朋,三朋為里,五里為邑。”

(6)泛指一般城鎮。大曰都,小曰邑。《荀子‧富國》:“入其境,其田疇穢,都邑露,是貪主已。”《史記‧商君列傳》:“衛鞅既破魏還,秦封之於、商十五邑。號為商君。”郭沫若《念奴嬌‧井岡山巡禮》:“挺立羅霄山脈上,縱跨贛湘六邑。”

(7)舊時縣的別稱。唐柳宗元《封建論》:“秦有天下,裂都會而為之郡邑。”宋王安石《上杜學士言開河書》:“故今之邑民。最獨畏旱而旱車取連年。”葉聖陶《隔膜‧歡迎》:“這都是本邑幾位前輩先生的苦心孤詣,纔成就了這一樁舉。”

(8)分封城邑居住;建築城邑。《左傳‧隱公十一年》:“吾先君新邑於此。”孔穎達疏:“先君新邑於此,謂(鄭)武公始居此也。”《孟子‧梁惠王下》:“(大王)去邠,踰梁山,邑于岐山之下居焉。”《竹書紀年》卷下:“晉桓公邑哀侯于鄭。”

(9)封地。1.古代卿大夫的封地。《周禮‧地官‧載師》:“以家邑之田任稍地。”鄭玄注:“家邑,大夫之采地。”《晏子春秋‧內篇雜下二十》:“景公賜晏子邑,晏子辭。”《新唐書‧房玄齡傳》:“進爵邗國公,食邑千三百戶。”2.皇后、公主的封地。《漢書‧高帝紀下》:“令天下縣邑城。”顏師古注引張晏曰:“皇后、公主所食曰邑。”又《百官公卿表上》:“列侯所食縣曰國,皇太后、皇后、公主所食曰邑。”

(10)古代土地面積單位。四井為邑。《周禮‧地官‧小司徒》:“九夫為井,四井為邑。”鄭玄注:“九夫為井者,方一里,九夫所治之田也。……四井為邑,方二里。”

(11)通“悒”。愁悶不樂貌。清朱駿聲《說文通訓定聲‧臨部》:“邑,借為悒。”《楚辭‧離騷》:“忳鬱邑余侘傺兮,吾獨窮困乎此時也!”《荀子‧解蔽》:“不慕往,不閔來,無邑憐之心。”楊倞注:“邑與悒同。悒,怏也。”宋司馬光《論赦及疏決狀》:“使愿愨之民,憤邑惴恐。”

 
(二)e4 《集韻》遏合切,入合影。〔阿邑〕迎合;曲從。《漢書‧酷吏傳贊》:“張湯以知阿邑人主,與俱上下。”王念孫雜志:“邑當音烏合反。阿邑人主,謂曲人人人主之意也。阿邑又又聲,字或作阿匼。”《新唐書‧王世充傳》:“世充伺帝顏色,阿邑順旨。”
 

관측지集韻》於汲切《集韻》《韻會》乙及切《正韻》一入切,音浥。《說文》國也。《正韻》都邑也。《釋名》邑,人聚會之稱也。《史記·五帝紀》舜一年而所居成聚,二年成邑。《周禮·地官·小司徒》四井爲邑,四邑爲丘。
又《載師》以公邑之田任甸地,以家邑之田任稍地。《註》公邑,謂六遂之餘地。家邑,謂大夫之采地。
又王畿亦稱邑。《書·湯誓》率割夏邑。《詩·商頌》商邑翼翼。
又侯國亦稱邑。《書·武成》用附我大邑周。《詩·大雅》作邑于豐。
又於邑,氣逆結不下也。《楚辭·九章》氣於邑而不可止。《前漢·成帝贊》言之可爲於邑。《註》於邑,短氣也。
又邑邑,與悒悒通。《史記·商君傳》安能邑邑待數十百年。
又複姓。《廣韻》漢有邑由氏。
又《集韻》《正韻》遏合切,音姶。阿邑,與阿匼同,諂諛迎合貌。《前漢·張湯傳》以智阿邑人主,與俱上下。
又叶弋灼切,音藥。《後漢·杜篤·論都賦》成周之隆,乃卽中洛。遭時制都,不常厥邑。 《說文》从口,音圍,象四境。卪聲。尊大小有等,故从卪會意。偏旁作阝,俗从口从巴。非。

備考:《篇海類編》同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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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성: 관측대
천문학자는 더 정밀한 관측을 위해 놀은 곳으로 오르고 오른다.
높은 산성의 망우야말로 최상의 관측지 조건을 갖추게 된다.

城성의 천문적 의미는 “관측대”이다.
城뀌면 오차가 커지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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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상: 남중점. peak 점.

 

본래 높다. 높이다의 뜻이 있다.

清代段玉裁『說文解字注』에 曾也。重也。上也。庶幾,이라했다.

曾也。증가하고 重也。두텁고 上也。놉은 庶幾,기미가 보인다는 뜻이다.

천문에서는 별자리가 가장 높이 떠오른 남중점을 의미한다,

 

 

 

1. 오히려 2. 더욱이 3. 또한 4. 아직 5. 풍습(風習) 6. 풍조 7. 숭상하다(崇尙--) 8. 높다 9. 높이다 10. 자랑하다 11. 주관하다(主管--) 12. 장가들다 13. 꾸미다 14. 더하다

 

 

康熙

《唐韻》《集韻》《韻會》時亮切《正韻》時樣切,?音上。《說文》曾也,庶幾也。从八向聲。《爾雅註》郉昺曰:尙,謂心所希望也。《詩·小雅》不尙息焉。《書·大禹謨》爾尙一乃心力。 又《廣韻》加也,飾也。《論語》好仁。 無以尙之。《詩·齊風》充耳以素乎而,尙之以瓊華乎而。 又崇也,貴也。《禮·檀弓》夏后氏尙黑,殷人尙白,周人尙赤。 又主也。  司進御之物者皆曰尙。《漢官儀》尙食,尙醫,尙方等是也。又尙書,主大計。 又《增韻》尊也。《詩·大雅》維師尙父。《註》太公望,太師而尊爲尙父者也。 又猶也。《詩·大雅》雖無老成人,尙有典?。 又娶公主謂之尙。言帝王之女尊,而尙之,不敢言娶。《前漢·王吉傳》娶天子女曰尙公主,娶諸侯女曰承翁主,尙承皆?下之名。一曰配也。《司馬相如傳》卓王孫自以使女得尙司馬長卿晚。《註》尙,配也。義與尙公主同。 又《易·泰卦》得尙乎中行。《註》謂合乎中行之道也。 又奉也。《司馬相如·長門賦》願賜問而自進兮,得尙君之玉音。 又矜伐也。《禮·表記》君子不自尙其功。 又姓。戰國尙靳,唐尙衡。 又與上通。《詩·魏風》上愼旃哉,猶來無止。《註》上猶尙也,言愼之可以來歸,無止於彼也。《尚書序》尚者,上也。言此上代以來書,故曰尚書。 又叶辰羊切,音常。《詩·大雅》肆皇天弗尚。叶亡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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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사: 아날렘마(Analemma)라는 뜻이다.


아날렘마(Analemma)란 같은 시각, 같은 위치에서 1년간 태양의 위치를 촬영하여 기록했을 때 8자 모양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균시차 즉, 황도와 지구의 타원형 공전 궤도의 맞물림으로 인해 생기는데,
이 현상을 기록하는 일은 촬영 각도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오차가 커지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 말을 하고 있는 대목이다.

勿用師  
勿用물용: 돌려가며 이용한다는 뜻이다.
師사:는 아날렘마(Analemma)라는 뜻이다.
師사:의 古文字 상형에도 8자형의 아날렘마 모양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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孚”字의 상형을 보자.

孚부:玉采. 信. 卵. 種子. 卦名. 孵化.

껍질속의 종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상형을 천문적의미로 해석하면

자유롭게 유영하는 어린아이가 꼭 붙잡혀있는 상형이다.

황도상 태양의 위치를 그린 그림이다.

무엇인가에 잡혀있다는 의미는 궤도상의 좌표를 의미하고

즉 태양의 위치 좌표값을 말한다.

 

흐르는 時間上에서는 時刻을 의미한다.

孚는 태양의 위치값. 時刻시각의 뜻이다. -자세한 설명 干支了解 甲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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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부: 천문도상 별자리




富의 古文字상형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땅에 그대로 맞춰 그린 모양이다.


說文解字備也。一曰厚也。从宀畐聲。方副切
廣韻》《集韻》《韻會》方副切,否去聲。《說文》備也。一曰厚也。《廣韻》豐於財也。《書·洪範》五福,二曰富。《周禮·天官·冢宰》二曰祿以馭其富又。《史記·貨殖傳》本富爲上,末富次之,奸富最下。
又《易·繫辭》有之謂大業。《禮·儒行》不祈多積,多文以爲富。《莊子·天地篇》有萬不同之謂富。
又《正字通》年富,謂年幼後來齒歷方久也。《史記·曹相國世家》悼惠王富於春秋。
又《禮·祭義》殷人貴富而尚齒。《註》臣能世祿曰富。
又貨賄也。《書·呂》典獄非訖于威,惟訖于富。《註》主獄之官,非惟得盡法於權勢,亦得盡法於賄賂之人也。
又姓。《左傳》周大夫富辰。
又凡充裕皆曰富。《晉書·夏侯湛傳》文章宏富。《王接傳》左氏辭義贍富。《宋書·謝弘微傳》才辭辨富。《唐書·呂温傳》藻翰精富。《文心雕龍》經籍深富,辭理遐亘。
又叶渠記切,音忌。《詩·大雅》何神不富。叶上刺類瘁。《魯頌》俾爾壽而富。叶上熾下試。
又叶吉切,音必。《詩·小雅》彼昏不知,壹醉日富。叶上克下又。《朱傳》又夷益反。富猶甚也。 《說文》从宀畐聲。畐,古福字。俗作冨。


考證:〔《周禮·天官·冢宰》一曰,爵以馭其富。〕 謹照原文一曰爵改二曰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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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복“딱 들어맞는다”라는 뜻을 가진다.

원래 福복을 받았다는 뜻은 하늘이 그냥 내려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한 업보에 따라 꼭 맞게 내려지는 것이 福이다.
福복“정해진 것”이라는 뜻을 가진다.
古文字상형은
하늘이 본 그대로 그릇에 딱 맞게 채워준 것이 示+ 幅= 福이다.

福복의 천문적 의미는 딱 들어맞는다는 뜻이 있다.

한낮에 남중한 태양의 좌표는 밤 자정의

별자리와 동일한 좌표로 정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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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명:정해진 위치. 별자리


命의 古文字상형에서 A자모양은 하늘을 의미하고 ㅂ자형은 발의 모양이며 위치를 나타낸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그려있다.
천문도의 별자리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命명은 “정해진 자리”.“별자리”라는 의미이다.


ZY06訟卦10, 九四, 不克訟, 復卽命, 渝, 安貞吉.
ZY07師卦07, 象曰, “在師中吉”, 承天寵也, “王三錫命”, 懷萬邦也.
ZY07師卦14, 上六, 大君有命, 開國承家, 小人勿用.
ZY07師卦15, 象曰, “大君有命”, 以正功也, “小人勿用”, 必亂邦也.
ZY11泰卦15, 象曰, 城復于隍, 其命亂也.
ZY12否卦10, 九四, 有命无咎, 疇離祉.
ZY12否卦11, 象曰, 有命无咎, 志行也.
ZY14大有03, 象曰, 火在天上, “大有”, 君子以遏惡揚善, 順天休命.
ZY19臨卦07, 象曰, “咸臨吉无不利”, 未順命也.
ZY25无妄02, 彖曰, 无妄, 剛自外來而爲主於內, 動而健, 剛中而應, 大亨以正, 天之命也.
ZY35晉卦05, 象曰, “晉如摧如”, 獨行正也, “裕无咎”, 未受命.
ZY44姤卦03, 象曰, 天下有風, 姤, 后以施命誥四方.
ZY44姤卦13, 象曰, 九五含章, 中正也, 有隕自天, 志不舍命也.
ZY45萃卦02, 彖曰, “萃”, 聚也, 順以說, 剛中而應, 故聚也. “王假有廟”, 致孝享也, “利見大人亨”, 聚以正也, “用大牲吉, 利有攸往”, 順天命也. 觀其所聚, 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
ZY47困卦03, 象曰, 澤无水, 困, 君子以致命遂志.
ZY49革卦02, 彖曰, 革, 水火相息, 二女同居, 其志不相得, 曰革. 己日乃孚, 革而信之, 文明以說, 大亨以正, 革而當, 其悔乃亡. 天地革而四時成, 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革之時大矣哉!
ZY49革卦11, 象曰, “改命之吉”, 信志也.
ZY50鼎卦03, 象曰, 木上有火, 鼎, 君子以正位凝命.
ZY56旅卦12, 六五, 射雉, 一失亡, 終以譽命.
ZY56旅卦13, 象曰, “終以譽命”, 上逮也.
ZY57巽卦02, 彖曰, 重巽以申命. 剛巽乎中正而志行, 柔皆順乎剛, 是以“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ZY57巽卦03, 象曰, 隨風, 巽, 君子以申命行事.
ZY繫辭上04, 易與天地準, 故能彌綸天地之道. 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 是故知幽明之故,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精氣爲物, 遊魂爲變, 是故知鬼神之情狀. 與天地相似, 故不違, 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 故不過, 旁行而不流, 樂天知命, 故不憂, 安土敦乎仁, 故能愛. 範圍天地之化而不過, 曲成萬物而不遺, 通乎晝夜之道而知, 故神无方而易无體.
ZY繫辭上10, 易有聖人之道四焉, 以言者尙其辭, 以動者尙其變, 以制器者尙其象, 以卜筮者尙其占. 是以君子將有爲也, 將有行也, 問焉而以言, 其受命也如嚮, 无有遠近幽深, 遂知來物. 非天下之至精, 其孰能與於此? 參伍以變, 錯綜其數, 通其變, 遂成天下之文, 極其數, 遂定天下之象. 非天下之至變, 其孰能與於此? 易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 唯深也, 故能通天下之志, 唯幾也, 故能成天下之務, 唯神也, 故不疾而速, 不行而至. 子曰“易有聖人之道四焉”者, 此之謂也.
ZY繫辭下01, 八卦成列, 象在其中矣, 困而重之, 爻在其中矣, 剛柔相推, 變在其中矣, 繫辭焉而의 古文字상형은 之, 動在其中矣. 吉凶悔吝者, 生乎動者也, 剛柔者, 立本者也, 變通者, 趣時者也. 吉凶者, 貞勝者也, 天地之道, 貞觀者也, 日月之道, 貞明者也, 天下之動, 貞夫一者也. 夫乾, 確然示人易矣, 夫坤, 隤然示人簡矣. 爻也者, 效此者也, 象也者, 像此者也. 爻象動乎內, 吉凶見乎外, 功業見乎變, 聖人之情見乎辭. 天地之大德曰生, 聖人之大寶曰位. 何以守位? 曰仁. 何以聚人? 曰財. 理財正辭禁民爲非曰義.
ZY說卦傳01, 昔者聖人之作易也, 幽贊於神明而生蓍, 參天兩地而倚數, 觀變於陰陽而立卦, 發揮於剛柔而生爻, 和順於道德而理於義, 窮理盡性以至於命.
ZY說卦傳02, 昔者聖人之作易也, 將以順性命之理. 是以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兼三才而兩之, 故易六畫而成卦, 分陰分陽, 迭用柔剛, 故易六位而成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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亨형: 보이는 형상
      說文‧解字에 獻也이라 했다.
      獻헌:은 바치다. 올리다. 나타내다. 표현하다. 보이다,라는 뜻이다.



吉亨길형 : 나타나 보이는 형상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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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길: 떠오르다.

大禹謨에 朔日曰吉라했다. 초하루 날이 길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천문으로 이해하면 초하루 날부터 사그라진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고문자 상형을 보면 멀리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상형을 그리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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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계: 관측구역 내. 관측구역. sector


기존의 의미는 경계하다(警戒--), 막아 지키다, 경비이다.
古文字상형은 간의 규표등 천문관측기구로 별자리를 보고 있는 모습이다.

천문적 의미는 관측구역 내. 관측구역. sector의 뜻이다.

1. 경계하다(警戒--), 막아 지키다, 경비하다(警備--) 2. 조심하고 주의하다, 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3. 타이르다, 알리다 4. 이르다, 분부하다(分付ㆍ吩咐--) 5. 재계하다(齋戒--) 6. 이르다




古文〕《唐韻》古拜切《集韻》《韻會》《正韻》居拜切,音介。《說文》警也。《書·大禹謨》警戒無虞。
又諭也。《書·大禹謨》戒之用休。
又告也。《儀禮·士冠禮》主人戒賔。《註》告也。《聘禮》戒上介亦如之。《註》猶命也。
又《廣韻》愼也,具也。
又備也。《易·萃卦》戒不虞。《註》備不虞也。
又《易·繫辭》聖人以此齊戒。《註》洗心曰齊,防患曰戒。《朱子·本義》湛然純一之謂齊,肅然警惕之謂戒。
又守也。《周禮·夏官·掌固》夜三鼜以號戒。《註》謂擊鼓行夜戒守也。
又《司馬法》鼓夜半三通,號爲晨戒。
又通作誡。《易·繫辭》小懲而大誡。《前漢·賈誼傳》前車覆,後車誡。
又與界同。《史記·天官書》星茀於河戒。
又《唐書·天文志》江河爲南北兩戒。
又《韻補》叶居吏切,音記。《六韜》將不常戒,則三軍失其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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健건:   “북극점의 축”
       천문도상 원의 중심 즉 북극점을 의미한다.
       언제나 변함없이 꿋꿋하게 서있는 북극점의 축을 말한다.




康熙字典  꿋꿋하다. 굳세다. 튼튼하다.
《集韻》《韻會》《正韻》渠建切,乾去聲。《說文》伉也。《增韻》强有力也。《易·乾卦》天行健,君子以自强不息。又官健。《唐書·德宗紀》張萬福曰:官健虛費衣糧,無所事。《註》州兵給衣糧者,爲官健。又健兒。天寶十四載,京師召募十萬,號天寶健兒。又姓。宋遺民健武,邯鄲人。又《正韻》巨展切,音件。《廣韻》難也,舉也。

자전
(1)強壯有力。《說文‧人部》:“健,伉也。”《篇海類編‧人物類‧人部》:“健,伉也,強也,

有力也。”《易‧乾》:“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孔穎達疏:“健者,強壯之名。”《晉書‧郭璞傳》:“得健夫二三十人,皆持長竿。”宋蘇軾《立春日小集呈李端叔》:“牛健民聲喜,鴉嬌雪意酣。”又使強壯。如:健胃;健身。
(2)健康。清翟灝《通俗編‧境遇》:“俗以身去疾病為健。相問訊亦曰健否。”《三國志‧魏志‧華佗傳》:“一月可小起,好自將愛,一年便健。”唐白居易《同友人尋澗花》:“且作來歲期,不知身健否﹖”魯迅《書信‧致李秉中
(3)不倦。《字彙‧人部》:“健,不倦也。”
(4)幹練;有作為。《戰國策‧秦策二》:“楚客來使者多健,與寡人爭辭,寡人數窮焉。”《宋史‧李綱傳上》:“朝廷不能正軍法,而一守倅能行之,真健吏也。”清惠周惕《贈維揚顧書宣》:“君才何健詞何恭。”
(5)好;完好。《說苑‧反質》:“陛下之意,方乘青雲飄搖於文章之觀,自賢自健。”宋范成大《雨中集水月》:“下爿木蚤喜衣裳健,出門更覺山川朗。”又《冬舂行》:“篩勻箕健無粞糠,百斛只費三日忙。”
(6)善於;長於。《後漢書‧馮異傳》:“諸將非不健鬥斤,然好虜掠。”唐白居易《偶作寄朗之》:“老來多健忘。”《金史‧崔立傳》:“安國健啖。”
(7)甚;非常。唐李朝威《柳毅傳》:“金陵之士,莫不健仰。”唐元稹《遣病》:“憶作孩稚初,健羨成人列。”
(8)深;濃。宋陸游《秋夕》:“頻約僧棋秋漸健。”明楊慎《詩品‧張安國》:“筆酣興健,頃刻即成。”
(9)盜賊。漢崔寔《政論》:“在位者則犯王法以聚斂,愚民則冒罪戮以為健。”
(10)壯士,軍士。《樂府詩集‧橫吹辭曲‧企喻歌》:“男兒欲作健,結伴不須多。”
(11)通“羨(<現代音>xian4<\/現代音>)”。貪欲。清朱駿聲《說文通訓定聲‧乾部》:“健,借為羨。”《荀子‧哀公》:“孔子對曰:‘無取健,無取詌,無取口哼。健,貪也。詌,亂也。口哼,誕也。’”楊倞注:“健羨之人,多貪欲。鉗忌之人,多悖亂,讒嫉之人多妄誕。”《史記‧太史公自序》:“至於大道之要,去健羨,絀聰明,釋至而任術。”裴駰集解引如淳曰:“知雄守雌,也健也,不見可欲,使心不亂,是去羨也。”
(12)姓。《正字通‧人部》:“健,姓。宋遺民健武,邯鄲人。”二)《字彙》巨展切。
(1)難。《字彙‧人部》:“健,難也。”
(2)舉。《字彙‧人部》:“健,舉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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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은 23세 때 1933년,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황해도 백천온천에 요양을 갔다.

이곳 술집 능라정에서 운명의 여인인 기생 금홍을 만났다.

금홍에 대해 '보들레르의 흑인 혼혈 정부 잔느 뒤발을 닮은데다가,

모든 남자들이 한 번 정도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여자'라 찬사를 늘어놓았다.

차돌같이 뭉친 자그마한 몸집에 바늘 하나 들어갈 빈틈이 없는 새침하고 깜찍한 미인이다.

정말 단순미인이다.

그런데 그녀를 친한 벗에게 권하는 엽기적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재미보고 오라고 내보내기도하고

마음 놓고 즐기라고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한다.

 

금홍이에게 얻어 맞고 엉엉운다.

무서워서 집에도 못들어 간다. 

 

경영하던 다방 제비를 폐업 한 후

금홍이는 바람이 들어 집을 나간다.

 

올래! 안올래! 아프다!.

 

달려 온 금홍이가  팔을 걷어부치고 먹여 살리겠단다.

그도 몇 달

2인용 배게 하나 이별 선물로 남겨두고 금홍이는 떠난다.

 

그후 이상은 변동림과 결혼했다.

뒤늦게 초라해져 돌아온 금홍이를 보고

단편 소설 "봉별기"를 쓴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

 

사진을 볼 때마다 애잔해진다.

 

 

 


 

 

學家  李箱  저항문학가 이상

 

이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시상에 상처를 줄까봐  공개하지 않으려고 망설였었다.

 

금홍이가 가출한 뒤 금홍에게 보낸 편지글이라고 잘 못 알려진 詩이다.

이 시를 발표하던 이상 23세때 1933년 7월은 금홍이와 다방 <제비> 경영하며 깨소금을 복던 시기였다.

李箱이상이 사랑하던 여인은 금홍이. 정희. 권순옥 말고도 또 있었다.

금홍이도 정희도 권순옥도 어느 놈이 업어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진정한 또 하나의 사랑은 조국이었다. 詩 전체 내용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            李箱이상

 

役事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木徒목도들이 그것을 메고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기에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들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變怪변괴로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1933년 7월 <카톨릭청년>

 

이상은 총독부 영선계 건축 기수로 의주통 공사현장 감독으로 근무하면서 땅을 굴착할 때 지하에서 많은 고대유물이 발굴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발굴된 유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1932년 장충단에 博文寺박문사라는 이등박문의 추모사찰을 만든다.

 

이 때 경복궁의 선원전과 경희궁의 흥화문을 옮겨 왔다.

또 정문 옆 돌담은 광화문을 허문 뒤 그 석재를 가져다 사용했으며,

특히 대한제국의 상징인 원구단을 파괴하고 그 부속건물인 석고각을 이곳 종각으로 사용하였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 조선의 문화 유산

물끄러미 쳐다보는  어떤 돌   -- 일제들이 유물을 실어간 뒤 부셔져 남아있는 석재들을 말한다.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치욕의 역사는 내던지고 싶다.

 

 

 

 

일제 침략자들은 고대유물을 수탈의 최상품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전국각지에 유물 도굴꾼들이 마구잡이식 도굴이 자행되고 있던 터이다.

이 시를 쓰기 전 1933년 5월3일 대형사건이 신문에 보도된다.

경주박물관장-모로가 히데오가 금관총 유물 팔아넘긴 사건이다.

거액의 유물들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분노한 이상이 지난 일을 회상하며 쓴 시이다. 

 

 

 

李箱이상 문학 전반이 항일저항의 내용이다.

모두 재해석되어야 한다.

 

 

임종국선생의 친일문제연구는이상의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다른 문학가들의 친일 행적 추적에서 비롯됐다.

 

친일연구의 선구자, 임종국"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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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말고 다른 남자와의 성교는

                           가장 진보된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만 할 감정이라고....

 

충격적 고백수기인 나혜석의 離婚 告白狀-靑邱氏에게

                                     C는 '최린'의 이니셜 (나혜석 33세, 최린 50세


C의 명성은 일찍부터 들어 알고 있었으나 처음 만난 것은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그를 대접하려고 요리를 하고 있는 나에게 “안녕합쇼“ 하는 처음 인사는 유심이도 힘이 잇는 말이었습니다.

이래 남편은 독일로 가있고 C와 나는 불어를 모르는 관계상 통역을 두고 언제든지 3인이 동반하여 식당, 극장, 뱃놀이 시외구경을 다니며 놀았습니다.

그리하여 과거지사, 현시사, 장래지사를 논하는 중에 공명되는 점이 많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태리 구경을 하고 나보다 먼저 파리를 떠나 독일로 갔습니다.

그 왜에 콜논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내가 그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公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남편과 이혼은 아니 할랍니다.

그는 내 등을 뚝,, 두드리며

“과연 당신의 할 말이오.나는 그 말에 만족하오.” 라고 했습니다.

나는 제네바에서 어느 고국 친구에게 다른 남자나 여자와 좋아 지내면 반면으로 자기 남편이나  아내와 더 잘 지낼 수 있지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공감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이 있는 것은 필경 자기가 자기를 속이고 마는 것인 줄은 모르겠으나

나는 결코 내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 즉 C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남편에게 정이 두터워지리라고 믿었습니다.

구미 일반 남녀 부부 사이에 이러한 공연한 비밀이 있는 것을 보고 또 이런 것이 당연한 일이오.

중심돼는 본남편이나 본부인을 어찌하지 않는 범위 내에 행동은 죄도 아니오,

실수도 아니라 가장 진보된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만 할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판명할 때는 웃어두는 것이 대수요.

 일부러 (폐륜적 불륜관계라고 ?)이름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외다.  

 

                                                                                               -이혼 고백장- 청구씨에게- 나혜석 三千里 1934년 8월호 ​

 

​                                                                              

불타는 예술혼과 공명심이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로 만들었다.


                                                                               50 - 33 = 17  

                                                                      


 원문

 

C의 名聲은 일즉붓허 드럿스나 初對面하기는 巴里이엇사외다. 그를 待接하랴고 料理를 하고 잇는 나에게 「안녕합쇼 」하는 初 인사는 有心이도 힘이 잇는 말이엇사외다. 이래 夫君은 獨逸로 가서 잇고 C와 나는 佛語를 모르난 關係上 通辯을 두고 언제든지 三人이 同伴하야 食堂, 劇場, 船遊 市外 求景을 다니며 놀앗사외다. 그리하야 過去之事, 現時事, 將來之事를 論하는 중에 共鳴되는 點이 만핫고 서로 理解하게 되엿사외다. 그는 伊太利 求景을 하고 나보다 몬저 巴里를 떠나 獨逸노 갓사외다. 其 外 콜논에서 다시 만낫사외다. 내가 그때 이런 말을 하엿나이다. 「나는 公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남편과 離婚은 아니 하랍니다」그는 내 등을 뚝,, 뚜뒤리며 「과연 당신의 할 말이오. 나는 그 말에 만족하오.」하엿사외다. 나는 제네바에서 어느 故國 親舊에게 「다른 男子나 女子와 조와 지내면 반면으로 자기 남편이나 안해와 더 잘 지낼 수 잇지요 」하엿슴니다. 그는 共鳴하엿슴니다. 이와갓흔 生覺이 잇는거슨 必竟 自己가 自己를 속이고 마는 거신 줄은 모르나 나는 決코 내 남편을 속이고 다른 男子 卽 C를 사랑하랴고 하는 거슨 아니엇나이다. 오히려 男便에게 情이 두터워지리라고 밋엇사외다. 歐米 一般 男女 夫婦 사이에 이러한 公然한 秘密이 잇는 거슬 보고 또 잇난 거시 當然한 일이오 中心되는 本夫나 本妻를 엇지 안는 範圍 內에 行動은 罪도 아니오 失守도 아니라 가장 進步된 사람에게 맛당히 잇서야만 할 感情이라고 生覺합니다. 그럼으로 이러한 事實을 判明할 때는 우서두는 거시 수요 일부러 일흠을 지을 必要가 업는 거시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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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Star 신문자료



일본 여자 유학생: 나혜석 허영숙 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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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04월10일동아일보

 변호사김우영, 라혜석양과 정동례배당에서 결혼식(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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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천후궁" 특선화보 매일신보

特選畵報 每日申報 1926년 05월 14일

盧壽鉉, 羅惠錫, 金復鎭, 사진

朝鮮魂의 懊惱도 실고 南山에 展開된 美術의 殿堂

新綠에는 美의 旋律 젹막한 속에 새빗을 보는 뎐람회 쳣날의 늣긴 인상

朝鮮美展, 金權洙, 廬壽鉉, 李象範, 李漢福, 李昌鉉, 孫一峰, 羅蕙錫, 姜信鎬, 金復鎭, 金鎭珉, 金振宇




一九三四年의 提議

새해에는 생활부터 개량합시다. 나혜석 (上)  每日申報 1934년 01월 01일




나혜석 모친상  신문게재( 당시 25세)

每日申報  1919년 12월 26일 羅惠錫女史 丁憂

 


좌담 縱論橫議  돈이냐. 지식이냐.

每日申報 1920년 09월 26일



每日申報1925년 03월 21일

物論前과 物論後(6): 시대의 총애를 받던 洋畵家 羅蕙錫 女史

春葉, 李光洙, 金雨英(安東縣 副領事), 동경미술학교 洋畵科, 매일신보 來靑閣, 신여성



나혜석여사의 油畵

每日申報 1921년 03월 17일



양화전 소식

每日申報 1925년 05월 14일




美展 공개의 제2일, 오전 입장자가 일천삼백여명, 매매 예약된 것이 벌써 네 가지, 多數의 朝鮮婦人이 入場

小原武, 佐藤三代治, 羅蕙錫,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





美展 공개의 제2일, 오전 입장자가 일천삼백여명, 매매 예약된 것이 벌써 네 가지, 多數의 朝鮮婦人이 入場

小原武, 佐藤三代治, 羅蕙錫,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






고국의 겨을을 차져



每日申報 1933년 05월 16. 17일 美展의 印象 (1, 2)



每日申報 1922년 06월 03일

齋藤 총독의 감탄사, 오세창씨 전자에 매우 칭찬, 나혜석 여사의 그림에 감탄

齋藤實(총독), 伊藤(비서관), 加藤(촉탁), 吳世昌, 許百鍊, 沈仁燮, 山本梅溪, 加藤卓爾, 趙鳳珍(진명여학교 학생), 飯原, 三戶, 원전운웅, 羅惠錫,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경성부



 

새해에는 生活부터 改良합시다 (五)

每日申報 1934년 01월 11일



30 삼천리 제6권 제5호 1934-05-01 熱情의 西班牙行(世界一周記 續) 羅蕙錫 기행문 원문제공
31 삼천리 제6권 제7호 1934-06-01 人生揭示板 소식 원문제공
32 삼천리 제6권 제7호 1934-06-01 내가 서울 女市長된다면? 羅蕙錫 설문 원문제공
33 삼천리 제6권 제7호 1934-06-01 春園 出家放浪記, 朝鮮日報 副社長 辭任 內面과 山水放浪의 前後 事情記 소식 원문제공
34 삼천리 제6권 제7호 1934-06-01 女人獨居記 羅蕙錫 문예기타 원문제공
35 삼천리 제6권 제8호 1934-08-01 離婚告白狀, 靑邱氏에게 羅蕙錫 문예기타 원문제공
36 삼천리 제7권 제1호 1935-01-01 女流名士의 男便調査狀 잡저 원문제공
37 삼천리 제7권 제1호 1935-01-01 新生活에 들면서 羅蕙錫 문예기타 원문제공
38 삼천리 제7권 제2호 1935-02-01 新生活에 들면서 羅蕙錫 문예기타 원문제공
39 삼천리 제7권 제3호 1935-03-01 三千里機密室(The Korean Black Chamber) 소식 원문제공
40 삼천리 제7권 제3호 1935-03-01 靑春을 앗기는 佳人哀詞 문예기타 원문제공

每日申報1924년 06월 21일

今 1일로 폐막될 조선미술전람회, 20일 동안 대성황을 이루고 명일에 폐막

개벽 신간 제1호 1934년 11월01일

 

百人百話

만주국 육군 中佐 李亮씨는 歸京 중 조선호텔에서 체류하얏다. 전날 XXX勞働宿泊所에서 留宿하던 일을 생각하면 씨도 感慨無量할 듯.

金X仁씨는 저번에 母親喪을 당하니 兪鎭午씨는 요새 또 父親喪을 당하엿다. 今秋는 小說家 蒙喪之.

몸이 瘦瘠하기로 유명하야 瘦身大學교수니 말너스키니하는 別名을 듯고 收監 중에도 가느다런 손목이 명꽁이 時計(手錠의 별칭) 속으로 들낙달낙하야 看守들의 이약이거리가 되던 李箕永은 某사건으로 또 檢擧되엿다. 몸은 비록 不自由나마 손목만은 항시 自由일 듯

文藝評論家 白鐵은 이름이 不吉하야 鐵窓구경을 하게 되엿다. 어떤 친구가 戱言하는 것을 드럿다. 그러나 그 대신 姓이 白이닛가 白放될 수도 잇겟지.

金東煥씨는 羅惠錫 天使仙女로 아는지 뼉다구를 게먹드시 再湯三湯으로 三千里誌 號마다 울거먹는다. 그러다가는 羅씨 死後 白骨까지도 東煥씨가 차지하기 쉬울걸.

三千里誌에는 曙海 崔鶴松씨의 追悼會 비용을 상세 발표하얏다.

 

동광 제31호1932년 03월05일

辯護士 評判記(1) 필자東虛子

金雨英君

변호사로 副領事가 되어 가지고 安東縣 가서 수 년을 지내다가 미술가의 안해 羅惠錫女史와 같이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와서는 돌연히 羅氏와 이혼을 하고 다시 시내에서 변호사업을 시작하엿다.

어린 자식 3, 4명이 달린 안혜와 이혼을 한 金君 - 그 중심을 추측하기에 어렵지 아니하거니와 미친 물결같이 뛰노는 감정을 가진 예술가의 안해는 법으로 業을 삼는 이 남편과는 일생을 같이 할 수가 업섯는가.

안해 羅氏가 세계일주시 XX發明士 XXX氏와 巴里에서 달큼한 사랑을 속삭이엇다는 풍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은 모르거니와 金君은 자기의 쓰라린 경험으로 이혼소송을 대리할 때에는 타인이 상상도<67> 못할 名論을 토하야 法官의 머리를 끄덕거리게 하는 때도 잇다고 한다.

在野法曹界에 두번재 발을 들어놓는 金君은 무슨 의미로 보던지 甦生의 길을 거러나가는 첫 시련이니 금후의 金君의 辯護士로의 활약은 볼 만한 것인 줄 알앗더니.

 

잡지명 삼천리 제6호

 

발행일 1930년 05월01일

諸氏의 聲明 설문

 

諸氏의 聲明

1. 선생은 민족, 사회주의자임니가?

2. 선생은 실행가, 학자가 되겟슴니가?

3. 선생은 사상상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만히 밧엇슴니가?

 

京城 崇三洞 127 李光洙

간단한 말은 오해를 사기 쉬웁니다. 그 중에도 민족주의란 말은 固定 共通한 내용이 적읍니다.

1. 민족주의자입니다.

2. 소설 쓰고 신문기자 되기를 목표로 함니다.

3. 톨스토이, 예수, 佛陀, 島山

 

市內 茶屋町 羅蕙錫

1. 답을 피함니다.

2. 장차 조흔 시기 잇스면 여성운동에 나서려 함니다.

 

삼천리 제6호 1930년 05월01일

喫煙室

羅蕙錫女史 曰=저는 경우만 허락하면 그림공부로 다시 한번 「파리」로 가려고 함니다. 요전 번에 그곳에 갓슬 때는 약 6개월 동안 잇섯는데 파리의 유명한 화가 「빗세이」씨의 화실을 다니며 무엇을 좀 알려고 애를 썻지만은 잘 알려지지 안튼 것이 정작 귀국하여 보니 이것 저것 谿然히 깨닷게 되는 바 잇서 이제야 정말 洋畵에 눈이 떠지는 듯 함니다. 그래서 녯날에는 헛 일을 한 듯 해요. 즉 헛 그림을 그린 듯 후회남니다.

요지음은 친구의 방을 빌어 가지고 전람회에 출품할 풍경화를 그리고 잇는데 아츰 열시부터

저녁 넉점까지 그 화실에 꼭 드러 박이고 잇슴니다. 아마 2주일이나 걸니어야 완성될 듯 한데 녜전 奉天의 풍물을 그린 「天后宮」 이후에 처음 애쓰는 作으로 나는 밋슴니다만은 엇덜는시요.

나의 여학생 시대는 벌서 10여년 전으로 지금은 열살 먹은 아들을 머리로 어린애들 녯을 가진 늙은이람니다. 세월은 참 빠르지요.

 

 

삼천리 제6호 1930년 05월01일

新兩性道德의 提唱

尹聖相, 黃信德, 羅惠錫, 鄭錫泰 대담·좌담

友愛結婚, 試驗結婚

羅蕙錫

日時 4월 2일 오후5시

場所 京城仁寺洞에서 會見

기자=우리들이 결혼하는 목뎍이 사나히면 자긔의 안해를 또 녀자이면 자긔의 지아비를 엇는데 잇슴니까 혹은 자긔의 혈통을 계승하여 줄 아돌 딸을 엇는데 잇슴니까?

羅女史=그야 한 개의 지아비 혹은 안해를 엇는뎨 잇겟지요. 자녀는 부산물에 불과한 것인 줄 압니다.

기자=그러면 「성욕」과 「생식」은 전연히 딴 물건이 되어야 하켓슴니다그러.

羅女史=전연 딴 것이라고 할 수는 업스나 그러케 혼동할 수도 업는 물건이겟지요.

기자 그러면 결혼의 주되는 목적이 이미 저안해를 엇는데 잇다면 만일 그 결혼이 잘못이 되엇든 것이 판명되는 날이면 물론 이혼하여야 할 것이 아니겟슴니까?

羅女史=그래야 하겟지요. 그러나 이혼이란 그러케 쉽사리 되는 것이 아닌 즉 그 결혼이 과연 행복될 것이냐 엇저느냐를 알기 위하야 최근에 구라파에서는 시험결혼이라 것이 제창되는 줄 압니다.

기자=3,4 년동안 살어보다가 실흐면 갈나지고 조흐면 偕老同穴하는?

羅女史=그러치요.

기자= 조선에 그러한 결혼방식이 적합하리까요?

羅女史=일부 처단을 거러가는 새 부부들은 벌서 그를 실행하고 잇지 안어요. 그러케 보이드구만요.

기자=시험결혼의 특색은 무엇임니까?

羅女史=이미 시험이니까 그 결과에 대하야 어느 편이나 절대적의 의무를 지지 안치요. 쉽게 말하면 리혼한다 섬치드래도 慰藉料니 貞操蹂躝이니 하는 문뎨가 붓지 안켓지요. 합의를 전제로 한 결혼은 이혼할 권리를 처음부터 보류하여 조흔 것이니까요.

기자=그러한 새 도덕을 현대의 만흔 여학생들에게 가르치엇스면 조켓슴니다. 성교육이라 하면 교육자들은 생리적 방면만 가르칠 줄 알엇지 사상상 도덕상의 새로운 길은 가르칠 줄 모르는 모양이니까 이것이 현대의 큰 通弊인 줄 압니다.

羅女史=동감임니다. 兩性문제에 잇서서 생리상 방면을 과학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조켓스나 오히려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가령 산아제한이 엇더타든지 시험결혼이란 엇던 것이라든지 하는 도덕상 사상상의 계몽을 식히는 것이 더욱 필요한 일로 교육자의 주력은 그곳에 몰녀와야 올흘 줄 암니다.

기자=그러니 산아제한가튼 방법을 필요로 하는 그 시험결혼은 빈빈한 이혼을 막는 길도 되고 男女性의 離合을 헐신 자유스럽게 하는 효과가 잇슬 것이겟슴니다.

羅女史=그러타 할 것이겟지요.(하략-원문)

 

미스코리아 심사위원

삼천리 제3권 제10호 1931년 10월01일

三千里一色」發表

화려강산 우리 반도가 나은 「삼쳔리일색」은 본사에서 일즉 모집을 개시한 이래 해내해외로부터 삼백이십륙 매의 다수한 응모 사진이 드러왓삽나이다. 그래서 심미계(審美界)의 권위인 李光洙, 廉想涉, 金岸曙, 安碩柱, 李承萬, 李靑田, 許英肅, 羅惠錫, 金一葉, 崔承喜, (本社側 金東煥, 崔貞熙) 등 문사, 화가, 의사, 무용가 여러분께서 여러 날을 두시고 엄숙하고도 공정한 심사를 하시어 이제 아래와 갓치 발표하나이다.

특선 崔貞嫄孃 芳紀 18 현재 충남 대전 여자고등보통학교 수업

 

삼천리 제4권 제1호 1932년 01월01일

아아 自由의 巴里가 그리워, 歐米 漫遊하고 온 후의 나

在東京 羅蕙錫

 

생활정도를 나츠이난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업난 것 갓다. 이상을 품고 그것을 실현 못하난 것처럼 비애스러운 것이 업난 것 갓다. 내 意思를 죽여 남의 意思를 쫏난 것처럼 무의미한 것이 업난 것 갓다. 그러면 나는 이러한 환경을 버서나지 못할 그야말로 무슨 운명에 처하엿는가? 그러치 아니면 일부러 당하고 인난가?

 

歐米 漫遊期 1년 8개월 간의 나의 생활은 이러하얏다. 단발을 하고 양복을 입고 빵이나 차를 먹고 침대에서 자고 스켓치빡스를 들고 연구소를 다니고(아가데미) 책상에서 佛蘭西 말 單字를 외우고 때로난 사랑의 꿈도 뀌여보고 장차 그림大家가 될 공상도 해보앗다. 흥 나면 춤도 추어보고 시간 잇스면 연극장에도 갓다. 왕전하와 각국 대신의 연회석상에도 참가해 보고 혁명가도 차자 보고 여자 참정권론자도 맛나 보앗다. 佛蘭西 가정의 가족도 되여보앗다. 그 기분은 여성이오 학생이오 처녀로써이엇다. 실상 조선여성으로서는 누리지 못할 경제상으로나 기분상 아모 장애되난 일이 하나도 업섯다. 태평양을 건느는 뱃속에서조차 매우 유쾌히 지냇다.

 

그러나 橫濱에 도착되난 때 붓터 가옥은 나무간 갓고 길은 시구렁 갓고 사람들의 얼골은 노라코 등은 새우등 갓치 꼬부러저 잇다. 朝鮮 오니 길에 몬지가 뒤집어 씨우난 거시 자못 불쾌하엿고 송이버섯 갓흔 납작한 집속에서 울녀 나오난 다듬이 소리는 처량하엿고 흰옷을 입고 시름 업시 거러가난 사람은 불상하엿다. 이와 갓치 훨적 피엿든 꼿이 바람에 떠러지듯 푸군하고 늘신하든 기분은 전후좌우로 밧삭밧삭 오그러들기를 시작하엇다.

 

歸國 後의 나의 生活

 

朝鮮 와서의 나의 생활은 엇더하엿나. 깍것든 머리를 부리낫케 기르고 강동한 양복을 벗고 긴 치마를 입엇다. 쌀밥을 먹으니 숨이 갓부고 우럭우럭 취하엇다. 잠자리는 백이고 느러슨 거슨 보기<43> 실혓다. 부억에 드러가 반찬을 맨들고 온돌방에 안저 바누질을 하게 되엇다. 시가친척들은 誼理를 말하고 시어머니는 효도를 말하며 시누이는 돈 모라고 야단일다. 아, 내 귀에난 아해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난 소리가 이상스섭게 들일만치 모든 지난 일은 긔억이 아니나고 지금 당한 일은 귀에 들니지 아니하며 아직 깨지 아니한 꿈속에 사난 것이엇고 그 꿈속에서 깨여보랴고 허덕이난 것은 나 외에 아모도 알 사람이 업섯다.

 

나는 로마시스지나궁전에서 미케란제로의 天井畵 압헤 섯슬 때 西班牙에서 鬼才 고야의 무덤과 밋 그 天井畵 압헤 섯슬 때 나의게 희망 이상이 용출하엿다. 이와 갓치 내가 만흔 그림을 본 후의 감상은 두가지다. 「1은 그림은 좃타」 「2는 그림은 어렵다」 내게 이 감상이 계속되난 동안에는 그림은 늘 수 업스리라고 밋난다. 그 외에 나는 여성인 것을 확실히 깨다랏다. (지금까지는 중성 갓햇든 것이) 그러고 여성은 위대한 것이오 행복된 자인 것을 깨다럿다. 모-든 물정이 이 여성의 지배하에 잇난 것을 보앗고 알앗다. 그리하야 나는 큰 것이 존귀한 동시에 적은 것이 갑잇난 것으로 보고 십고 나 뿐아니라 이것을 모든 조선사람이 알앗스면 십흐다.

 

또 나는 歐米를 漫遊하고 온 후로 곳 1년 동안이나 시집사리를 살게 되고 만흔 친척 가운대로 살게 되엇다. 생각은 따로 두고 행동은 그들에게 좃난 것도 역시 용이한 일이 아니엇다.

 

나는 이 고통, 비애, 무가치를 당하게 된 부득이한 사정이 잇섯나니 조선땅을 밟을 때 임의 腹 중의 8개월 된 임신중이엿다. 이것을 분만하야 왼만치 양육할 동안이 자연 1년이 지나고 만 것이다. 그외에 내 머리속이 뒤범벅이 된 것을 갈피를 차리자면 상당한 휴양과 시일이 걸녀야 햇섯다. 또 나는 사물에 대할 때 마다 이러케 생각한다. 巴里나 조선 지방이 그 인정이나 자연스러운 태도가 일치되난 점이 만타고. 다만 전자는 문명이 극도에 달한 사교술이요, 후자는 미개한 원시적인 差일 뿐이다. 그럼으로 전자보다 후자에게 뜨듯한 맛이 더 잇서 보인다. 識者憂患으로 조곰 아난 것을 잘 소화 못 식힌 나는 점점 偏性으로 다라난다. 이런 결점이 보일 때 마다 늘 반성하난 동시에 후자의게 더욱 친근한 맛을 늣기게 되난 것이다. 또 한가지난 엇지하면 나와 남 사이에 평화하게 살어볼가 하난 것이엇다. 파리인의 사교심이든지 조선농촌의 원시심이 그 요점은 극기다. 사람이 다 각각 개성이 잇난 이상 我만 세울수 업난 것이다. 더욱이 지방부인들의 극기심 즉 부덕이며 만흔 친척 사이에 융화해 가난 포옹성은 수양상 반드시 한번은 보아둘 필요가 잇난 것을 절실히 늣긴다. 이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환경을 버서나지 못하엇다난 것 보다 환경을 이용할 수 잇섯든 것이다.

 

무서운 것 세 가지

 

그러타고 나는 이상과 갓흔 소극적 행동을 조와하지 아니한다. 경우가 흐리고 기운이 실미지근하며 개성이 똑똑지 못한 것이 실혀하고 미워한다. 과도기 사람들은 남의 변한 행동을 보기 조와하면서 자기의 인습적 행동에서 버서나지 못하난 것이다. 그리하야 누가 압서기를 기다리고 껑충 뛰난 자를 비록 입으로난 비난하더라도 몸으로난 존경을 표하난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 인물이 필요타고 생각한다.그러나 조선사람의 환경에서 껑충 뛸 사람이 용이히 생겨날난지?

 

이것저것 주서 모은 결론의 요점이 이것이다. 세상에난 무서운 것이 세가지가 잇다. 1은 사람이 무섭고 2는 돈이 무섭고 3은 세상이 무섭다. 사람이 사람답게 나든지 또 하고저 하면 못할 것이 업다. 돈만 잇스면 못 갈 곳이 업다. 능치 못할 것이 업다. 그러고 세상을 알고 보면 무섭다. 용기가 주러진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랴, 사람이라야 사람이지. 사람 하나 되기에 얼마나한 시일과 경험과 밋 번민 고통이 싸히난지 돈돈, 돈이 귀한 줄 뉘 몰느며 더구나 조선사람의 돈난리는 처처에서 들니난 바 아인가. 돈 잇난 자는 활기가 들고 돈 업난 자는 억개가 축 처진다. 돈 업스면 伊太利니 佛蘭西니 어대어대를 다 엇더케 다녀왓스랴.<44> 세상은 이런 세상도 잇고 저런 세상도 잇서 세계 중에는 형형색색의 세상이 만타. 이 세상에서는 저 세상을 동경하고 저 세상에서는 이 세상을 동경하니 어느 것이 조흐며 어느 것이 나으며 어느것이 올흔지 조곰 아는 지식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도로 제것에 도라가난 수 밧게 업난 것이다. 그럼으로 알고 도로목이나 모르고 도로목이 되기난 일반이다. 이와 갓치 세가지 무서운 것을 알앗다. 또 체험하엿다. 우리가 수양하난 것 활동하난 것이 다 이 세가지 중에 하나를 엇으랴고 하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평면과 입체를 통하야 用機畵에 나타나는 무수한 선이 보이난 것 갓치 눈을 감고 잇스랴면 서양에 잇슬 때는 서양의 입체만 보이고 朝鮮의 평면이 보엿든 것이 朝鮮 오니 조선의 입체가 보이고 서양의 평면이 보인다. 평면과 입체가 합하야 한 물체가된 것 갓치 평면 즉 외면과 입체 즉 내부가 합하야 1사회가 성립된 것이니 어느 것을 따로따로 떼여볼 수가 업다. 잠간잠간 들니난 객에게난 내부를 알 여가가 업고 또 얼는 보이지도 아니하고 한이 업난 것이엇다. 그럼으로 나는 그 외면에 나타난 몃 가지를 취해가지고 왓슬 뿐이다. 그러면 歐米人의 사난 것은 엇더하며 우리 사난 것은 엇더한가. 한말슴 말하면 그들은 꼭꼭 씹어서 단맛, 신맛, 짠맛을 다 알아가지고 생켜서 소화하난 것이오, 우리는 된대로 꿀덕꿀덕 생켜 아모 맛을 모르난 것이다. 결국 大便되기는 일반이나 大便될 동안에 경로가 얼마나 다른가. 그리하야 그들은 생의 맛을 안다. 즉 엇지하면 잘 놀까 하난 것이 걱정거리다. 일할 때는 한껏 일하고 놀때는 흥껏 논다. 감정이 솟을 때는 불이라도 붓흘 듯 하고 理智가 발할 때는 어름과 갓치 차다. 그러나 산뜻하고 다정하고 박애스러운 것이야 아모리 사교술이라 하더라도 유혹 아니될 수 업다. 그러면 우리 사난 것은 엇더한가. 날 가난 줄도 모르게 늘 지지하다. 그러고 감정과 理智를 折衷해서 산다. 또 그들 부녀들은 各自度生으로 의복을 입고 모자를 쓴다. 즉 창작성이 풍부하다. 그리하야 이상한 자태가 보이면 그것을 귀히 역이고 그 사람을 존경하고 그것을 장려한다. 그럼으로 그 사회에난 창작품이 만코 진보가 잇다. 우리난 엇더한가. 좀 이상스러운 것만 보면 욕설과 비방으로 눌느고 비웃난다. 이럼으로 창작물이 잇슬리 만무하다. 개인으로 창작성이 업는 자나 사회로 창작물이 업난 것은 진보가 업다고 볼 수 밧게 업다.

 

무식하나마 세계를 보고 온 머리로 그야말노 원시적이다 십흔 歐米보다 2,3세기 뒤진 조선농촌에서 생활을 하고 잇스랴니 모든 것이 어울니지 아니하고 그 결점이 확실히 눈에 뛰워 다시 외국에 드러슨 감이 생긴다. 그리하야 내 머리로는 딴 생각을 하면서 몸으로난 그들에게 싸이게 하너라고 애를 무한이 쓰게 되고 남보기에난 얼빠진 사람갓치 된다.

 

내가 歐米 갈 때의 目的

 

내가 歐米를 향하야 떠날 때에 나는 무슨 목적으로 가나 하고 생각하엇다. 내게는 안심을 주지 못하는 네가지 문제가 잇섯다. 1은 사람은 엇더케 살아야 조흘가. 2는 남녀간에 엇지하면 평화스럽게 살가. 3은 여자의 지위는 엇더한 것인가. 4는 그림의 요점이 무것인가. 이엇다. 그곳에 가서는 두가지 고려 중에 잇섯다. 즉 한곳에 머물너 巴里살논에 입선이라도 할가, 또 하나는 夫君을 따라 여러나라의 인정풍속을 구경할가 이엇다. 나는 후자를 취하엇다. 그리하야 단시일에 9개국을 주서보고 오니 모다 그것이 그거 갓하야 머리 속이 뒤범벅이 되고 두서를 차릴 수 업게 되엇다. 게다가 곳 해산을 하고 산후의 泄瀉病으로 쇄약해젓다. 마치 무엇을 잡으랴고 허덕허덕 애를 쓰나 잡혀지지 아니하난 것 갓햇다. 이것은 내게 튼튼한 예비지식이 업섯든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가 가고 날이 갈사록 한가지 한가지식 정리가 되여 차차 뒤서를 차리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세월은 速하야 2월 10일. 집에 도착하든 만 1개년이 되고 마렷다. 다만 애처럽고 앗가운 거슨 거대한 금전과 무수한 시간과 무한한 정력을 드려 엇은 歐米에 대한 인상은 점점 희미해지난 것이다. 오즉<45> 꿈속에서 왓다갓다 하다가 새벽잠이 깨여 과거를 回憶하기에 날 새우난 줄 모를 뿐이다. 아, 아 자유, 평등, 박애의 세상 巴里가 그리워...

내게 큰 병이 잇다. 그거슨 무어세든지 化해지지 안는 才操다. 나논 이 才操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나 내게는 잇서지지를 아니한다. 나는 이러한 나를 퍽 미워하고 실혀한다. 그러나 배내병신인데야 엇지하랴. 이는 보난 것, 듯난 것, 배호난 것을 내게 化하려는 고집이 잇는 까닭이다. 즉 내것을 맨든 후에 유쾌함을 늣기난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부득이하야 하고 십지 아니하다. 무어세든지 의미를 부처 즐겨서 하난 거시 되어야 속이 시원한 이상한 心思가 잇다. 그럼으로 내가 지금까지 조선대중의 생활을 떠나, 별천지에서 살앗든 거시 다시 조선인의 생활로 드러슬냐면 농촌생활의 정도로붓터 살어볼 필요가 절실히 잇섯다. 내게 농촌생활이 얼마나 필요하엿섯난지.

나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의 머리가 왜 서울 종로에 달닌 鍾만하지 아니한가. 더구나 조선 신여성의 머리가. 그들의 생활은 얼마나 복잡하며 몃 重 몃 중인지?

폭풍우가 지나갓다. 맑은 하날 빗이 들 때 그에 빗취이는 산천초목은 얼마나 명랑한가.

다시 엄동이 닥처왓다. 백설은 싸혀 은세계가 되고 마럿다. 저 수평선에 덥힌 백설은 얼마나 아름답고 결백하고 평화스러운가. 그러나 그것을 헷치고 빗을 보자 얼마나 만흔 凸凹굴곡이 잇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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