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때에 東萊郡 開揚學校(현 高等普通學校)를 졸업

1906년 東京으로 유학을 가서 正則豫備學校에서 2년간 공부

1914년 岡山第六高等學校 졸업

1915년 京都帝國大學 법학과

1919년 법학사 학위 취득

1919년 京都帝國大學 英法科 졸업

 

 

1915년 1월 24일 日本 京都帝國大學生 金雨英의 주동: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3권

출전朝鮮人槪況 第4章 內地鮮人の情況

日本 京都帝國大學生 金雨英 의 주동으로 京都朝鮮留學生親睦會가 조직되다.


동아일보 1920-04-01  國家存在의 理由(제1회, 全4回)金雨英

                   04월02일 國家存在의 理由(제2회, 全4回)金雨英

 

國家存在의 理由(제3회, 全4回)金雨英

원문이미지

國家存在의 理由(제4회, 全4回)

원문이미지

國家存在의 理由(제4회, 全4回)金雨英

 

 

 

 

 

1920년 04월10일동아일보

변호사김우영, 라혜석양과 정동례배당에서 결혼식(肖) 

 

 

 

 

1921년 09월25일 동아일보

만주지방에 조선인 부령사로 금우영 양재하 이명임명발표, 재만조선인의 내정을 상세히 지득할 필요로

 

 

1925년 12월01일 개벽 제64호 兩西 五十日 中에서

                                         필자春坡 기행문中에서

新舊義州를 보고 回路에 .....

저녁 후는 安東縣에 가서 국경청년연합웅변대회를 보앗다.

演士들의 語材不足과 청중측의 「야지」 不的中은 外格보다 좀 섭섭하얏다.

그것보다 臂頭 金雨英 군의 「番判에 관한 주의」 云云은 (청중의 투표인고로) 죽인지 밥인지 실로 창피막심이엿다.

폐회가 되고보니 11시엿다. 還國을 재촉햇스나 還客이 못처럼 외국왓다가 그져 가느냐고 친구들은 결국 엇던 요리점으로 끌고간다.

盡蕩히 먹고 또 부족하야 엇던 妓房을 차저 기생구경까지하고 오게되얏다.

아구 망측해라.

열이고 백이고 잇는대로 다 드러와 선을 보인다.

누가 마음에 드느냐고 말을 모르면 손고락으로 꼭 집으라고 한다.

십여명 중에서 한아을 손고락질 하니 其餘落第娘들은 창피한듯이 달아나버린다.

5,6명 이국남성이 1개 이국랑과 酬酌이 열리니 엇지 우습지 안으랴.

或笑 或談 일분 후에 1圓金을 주고 나와 버렷다. 此亦經世라고 할가?

 

1930년 10월01일 별건곤 제33호 吸煙室

변호사 금우영 군은 丸山敬次郞君과 명치정에 공동사무소를 내엿다.

이를 터이면 일한소합병이지.

 

 

 

1932년 03월05일 동광 제31호 辯護士 評判記(1) 東虛子

金雨英 君

변호사로 副領事가 되어 가지고 安東縣 가서 수 년을 지내다가 미술가의 안해 羅惠錫女史와 같이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와서는 돌연히 羅氏와 이혼을 하고 다시 시내에서 변호사업을 시작하엿다.

 

어린 자식 3, 4명이 달린 안혜와 이혼을 한 金君 - 그 중심을 추측하기에 어렵지 아니하거니와 미친 물결같이 뛰노는 감정을 가진 예술가의 안해는 법으로 業을 삼는 이 남편과는 일생을 같이 할 수가 업섯는가.

 

안해 羅氏가 세계일주시 XX發明士 XXX氏와 巴里에서 달큼한 사랑을 속삭이엇다는 풍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것은 모르거니와 金君은 자기의 쓰라린 경험으로 이혼소송을 대리할 때에는 타인이 상상도<67> 못할 名論을 토하야 法官의 머리를 끄덕거리게 하는 때도 잇다고 한다.

 

在野法曹界에 두번재 발을 들어놓는 金君은 무슨 의미로 보던지 甦生의 길을 거러나가는 첫 시련이니 금후의 金君의 辯護士로의 활약은 볼 만한 것인 줄 알앗더니.

 

1932.2.19 朝鮮總督府官報

李聖根이 咸鏡北道參與官에, 姜弼成이 咸鏡南道參與官에, 金雨英 이 道理事官에, 임명되다.

 

1939년 04월01일 동아일보

김우영(총독부도리사관) 승서고등관3등

 

1949년 01월 26일 한성일보

 

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부산에서 반민피의자 金雨英과 河判洛을 체포

 

민족을 좀먹는 친일분자에 대한 반민특위의 메스는 드디어 지방에 확대되었다. 즉 중앙반민위원회 김용희 조사관 일행은 지난 23일 부산에 도착, 행동을 개시하여 동일 하오 9시 반경 부내 芙容洞에서 전 중추원參議 金雨英(64)을 체포하는 한편 이어 24일 상오 9시경에는 부수동에서 전 경남도 고등과 형사 河判洛을 체포하여 모처에 구금하였다 하는 바, 전기 김우영은 京都帝大를 졸업한 후 안동 副領事, 전남산업과장, 충남 參與官, 중추원참의 등을 역임한 친일거두라 하며, 河는 고등과 형사로서 수많은 애국자를 고문학대하여 ‘고문왕’이라는 이름까지 받은 악질분자라 한다.

 

 

 

 

 

나혜석은 6년간 만주에서 무엇을 했나?



동아일보 1920-04-10 03 06 辯護士 金雨英, 羅蕙錫孃과 貞洞禮拜堂에서 結婚式(肖)
10 동아일보 1920-05-20 02 07 朝鮮經濟會主催 講演會: 演士 朴泳孝 李商在 崔鎭 安國善 盧翼根 金雨英
11 동아일보 1921-09-25 02 07 滿洲地方에 朝鮮人 副領事로 金雨英 楊在河 二名任命發表, 在滿朝鮮人의 內情을 詳細히 知得할 必要로
12 동아일보 1922-05-19 03 04 報酬金八千圓 請求訴訟, 이전 변호사 金雨英의 송사
13 동아일보 1922-10-04 04 05 安東縣朝鮮人靑年會主催 강연회: 在外靑年 同胞의 責任(金雨英), 家庭에서 育兒하는 方法(黃天佑)
14 동아일보 1930-03-28 02 03 辯護士 金雨英氏 開業
15 동아일보 1939-04-01 조간 01 10 金雨英(總督府道理事官) 陞敍高等官三等
16 동아일보 1949-01-26 석간 02 05 金雨英 河判洛은 釜山에서 逮捕拘禁
17 동아일보 1949-01-27 석간 02 07 盧璣植(保安課長) 逮捕 金雨英等과 서울로 押送//李九範은 日本에 逃避(釜山)
18 동아일보 1949-02-02 석간 02 03 文明琦, 林昌洙逮捕 徐永出 南學鳳도 被檢//特委各道支部設置 朴興植과 李鍾榮은 問招終了//金雨英 金泰錫問招에 着手
19 동아일보 1949-02-15 석간 02 06 金雨英保釋
20 동아일보 1957-09-17 석간 04 06 民族共同生活과 道義(新生公論冊別) ; 新生公論社刊
21 동아일보 1957-09-17 석간 04 06 金雨英著 民族共同生活과 道義(新生公論冊別) ; 新生公論社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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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유럽 최대의 몀문 합스브르그 家의 황녀로 태어나

프랑스의 왕비가 된 것은 운명의 우연이었을까?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한 것은 역사의 필연이었을까?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과연 그녀였을까?

참 많은 생각과 의문이 든다.

허영과 음모의 대명사 베르사유의 장미! 마리 앙투아네트! 기오틴 단두대에서는 날 아침 마리 앙투아네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없는 아이들 걱정에 눈물을 쏟으면서 페르센을 그리워했을까?

비극은 슬프다.

마리 앙투아네트! 한 번만 더 생각하고 인생의 방향을 달리 잡았더라면 이렇게 비참한 결말만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인생에는 늘 조언이 필요하다.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통해서, 훌륭한 책들을 통해서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한 번 사는 인생 욕먹지 말고 사랑받으면서 잘 살아야지! 호호호호홍응! 개그우먼 권진영

 





베르사유의 장미  테판 츠바이크(1881~1942)가 1932년 발표한 평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출생: 1755년 11월 2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공주였다.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루이 16세와 정략 결혼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분방하게 성장한 그녀는 11세부터 미래의 왕비교육을 받는다.

 

14살 : 1770년 5월 16일, 14살 때 루이 16세와 화려한 결혼식을 치른다.

미래의 왕비로써 갖추어야할 기본 법도를 교육받는다.

왕비는 신분이 낮은 자에게 먼저 말을 걸지 말라고 가르친다.

어려서부터 격이 낮은 자들은 모두 천한 것이니 혐오하도록 가르친 것이니 백성의 삶이 어떠한지 알 길이 없다.

19세 : 1774년 남편이 루이 16세로 즉위하자 마리는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고,

                 남편으로부터 베르사유의 프티 트리아농 궁전을 선물 받았다.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귀족부인들이 이를 따라했다. 스타일 장식 로코코 여왕으로 불렸다.

루이 16세는 성불구(뒤에 회복) 18세의 멋쟁이 악셀 페르센 백작과 만나 로맨스 계속된다.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귀족부인들이 이를 따라했다. 스타일 장식 로코코 여왕으로 불렸다.

 

23세 : 1778년 12월 19일 첫 딸 마리 테레즈를 출산했다.

정치놀음에 관심없는 왕비는 무었을 입을까. 머리모양을 어떻게 할까. 액세서리는.., 뭐하고 놀지.....오페라 연극관람 온갖 사치로 빚을 지자 도박에 손을 댄다.

귀족부인들은 돈을 잃어주고 남편의 인사 청탁을 이뤄냈다.

 

가면무도회에서 푸른 눈빛의 폴리니아크 백작부인을 보자마자 반해서 궁정으로 불러들여 어디고 함께 팔짱을 끼고 다닐 만큼 사랑에 빠져있었다.

 

백작부인은 남들이 시샘 할 만큼 총애를 얻자 그의 일족들이 궁내에서 독단적인 전행을 일삼았다.

사치와 파타의 향락에 빠진 왕비는 보석 목걸이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주범인 라모트는 감옥을 탈출했는데 민심은 왕비가 주범이며 라모트의 탈옥 또한 왕비가 주도 했다고 믿게 되었다.

굶주리던 백성들은 결국 거리로 몰려 나와 혁명의 기쁜 함성을 질렀다.

왕은 단두대에 올랐고 왕비는 루이 까페의 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38세: 1793년 10월 16일 그리고 그녀 역시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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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문해자서를 통해서 본 문자의 기원  바로가기



2.  강상원의 싯담말 바로가기











마누라의 뜻 :지혜있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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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Rosa Luxemburg, Rosalia Luxemburg)

1919년 1월 15일 베를린. 150cm가 넘을까 말까 한 신장에 다리가 불편한 한 40대 여인이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이 휘두른 총의 개머리판에 두개골이 으스러지도록 얻어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녀의 시신은 그대로 다리 위에서 운하로 버려졌다. 독일의 11월 혁명 정국 속에서 우파 의용단에게 살해당한 이 왜소한 중년 여인은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그녀는 20세기 초, 러시아와 독일의 혁명을 주도하며 새로운 자유와 평등 사회를 꿈꾸던 정열의 혁명가이자 마르크스 이래 가장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일컬어지던 탁월한 이론가였다.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이상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 이미지 1

로자 룩셈부르크가 살해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그녀가 몸담았던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획득했던 시기였다. 그녀를 살해한 군인들도 11월 혁명을 이끌어 제정을 무너뜨린 세력이었다. 얼핏 그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노선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세력들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서둘러 체포하고 재판도 없이 무참히 살해한 것은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인물이 가진 타협을 모르는 순수 사회주의 사상과 그녀의 폭발적 행동력 때문이었다.

그녀는 고집스러울 만큼 자신이 이론적으로 알고 있고, 믿고 있는 혁명을 제대로 된 방법으로 100%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이상적 혁명 달성은 공감하지만 과정의 난관을 타파하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라던가, 혹은 시대가 변했으니 그에 맞게 이론을 새롭게 수정해야 된다는 주장에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며 그에 맞서 순정한 혁명정신을 부르짖었다.

그녀는 순수한 국제주의자였으며 평등주의자였고 민주주의자였다. 그러기에 그녀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원하던 그녀의 조국 폴란드의 사회주의자들과는 달리 계급해방의 노선을 택했고, 혁명달성을 위해 직업적 혁명가의 독재를 정당화하던 레닌과 맞섰으며,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사회주의 이론을 수정,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 것을 주장한 베른슈타인과 이론 투쟁을 벌였다. 그녀는 노동자 스스로가 만든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민주적인 세계를 꿈꾸었으며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대다수 그녀의 동료들은 상황과 자기논리에 맞추어 변해갔고 결국,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그녀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게 된다.

결국 그녀가 독일 사회민주당과 결별해 독자적인 급진적 혁명당 스파르타쿠스단을 만들고 봉기를 일으키면서, 사회민주당과 로자 룩셈부르크와의 위태로웠던 공존은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증오하고 두려워한 세력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적들과 동료들이 두려워했던 로자 룩셈부르크, 그녀가 꿈꾼 세상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녀가 옥중에 있으면서 지인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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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  탁현민 -

 

 

 

I WED A TOY BRIDE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 했다.

                                                                       

                                                                                                                       - 이상 - 삼사문학, 1936. 10

 

1 밤

장난감 신부 살결에서 이따금 우유 냄새가 나기도한다.

머지않아 아기를 나으려나보다.

촛불을 끄고 나는 장난감 신부 귀에다 대고 꾸지람처럼 속삭여본다.

「그대는 꼭 갓난 아기와 같다」고……

장난감 신부 는 어둔데도 성을내이고 대답한다.

「목장까지 산보갔다 왔답니다」

장난감 신부는 낮에 색색이 풍경을 암송해 가지고온 것인지도 모른다.

내 수첩처럼 내 가슴 안에서 따근 따근 하다.

이렇게 영양분 냄새를 코로 맡기만 하니까 나는 자꾸 수척해간다.

 

2 밤

장난감 신부에게 내가 바늘을 주면

장난감 신부는 아무것이나 막 찌른다.

日曆일력. 시집. 시계. 또 내 몸 내 경험이 들어앉아 있음직 한 곳.

이것은 장난감 신부 마음속에 가시가 돋아있는 증거다.

즉 장미꽃처럼……

내 가벼운 무장에서 피가 좀 난다.

나는 이 상채기를 고치기위하여

날만 어두워지면 어둠속에서 싱싱한 밀감을 먹는다.

몸에 반지 밖에 가지지 않은 장난감 신부는

어둠을 커―텐 열듯하면서 나를 찾는다.

얼른 나는 들킨다. 반지가 살에 닿는 것을 나는 바늘로 잘못 알고 아파한다.

촉불을 켜고 장난감 신부가 밀감을 찾는다.

나는 아파하지 않고 모른 체한다.

 

                                                               - 끝-



 


 몸에 반지밖에 가지지않은 작난감 新婦신부

 


 

 내手帖수첩처럼 내 가슴 안에서 따근따근하다.


 세상을 바꾼 발명품    콘돔


밀감 맛을 낸 콘돔 1932년  Durex Orange Flavoured Condom

시인 이상은

1936년  서울에서 20세의 변동림과 결혼 한지 4개월 만에 새색시를 두고 홀로 일본에 왔다.

밤이면 하숙집 방에서 저 짓을 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292016001&code=910100#csidxe50e7b873047ce8869afa0e9b7a42c4

 


 


        

 

 

 

 

 







한국근현대잡지자료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ma_016




















                                                                            

 


太一은 한편으로는 천문 상에서는 北極星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관측에서 가장 기준점이 되는 곳의 이름이기도하다.

북극 좌표가 바르지 않으면 모든 관측에서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태극의 발현으로 나타나는 음양의 운동은 太一이라는 8자형의 입체적 고리 형태의 움직임을 평면화한 그림이다.

음양의 합이 빚어내는 그림 太一의 노란 선분을 입체적인 띠로 구성하면 그림과 같다.

 

 

 

 


띠로 하나의 8자형 고리를 만들면 고리의 안과 밖이 존재한다. (그림: 띠1)

이미 음양의 합이 된 것이 太一인데 또다시 음양이 존재한다면 띠1의 모양은 太一의 의미에 부합되지 않는다.

 


음양이 존재하지 않는 띠 는 없는가?

    

 

 

 

음양의 합을 의미한 뫼비우스의 띠에는 음양이 존재하지 않고 그 움직임의 좌표만 나타난다.  완벽한 太一의 모양이다. 

이제  太一의 면을 따라 움직이는 8자형의 모양을 보자. 

 

 

    바로가기

 

뫼비우스의 띠는 음양이 존재하지 않으며 양면을 모두를 아우른다.

뫼비우스의 띠야말로 완벽한 太一의 기본 바탕인 것이다.

 

 

 

앞서 올린 글 1의 내용 중 參天兩地而倚數觀變於陰陽而立卦의 내용은

 

 


數와 幾何, 天文.으로 우주를 이해하려는 부단한 몸부림이었으니

 

태초 하늘을 셋으로 구획하고 하늘의 뜻으로 발현한 음양의 조화로 생긴 太一은 인간 인식의 한계설정이다.

 

셈을 하자면 參天의 하늘을 太一로 이해하려 했다는 말이다.

 

太一 1이 인간의 한계이니 신의 영역인 參天 3은 이해불가능 한 것이기도 하다.

 

삼차원의 인간세라면 천상은 9차원이라는 셈이니까.

 

어쨌든 하늘을 一析三極 셋으로 나누었단다.

 

10진의 9수를 이용해 그나마 오감으로 이해하는 하늘을 구획한 것이니

기왕 본 뫼비우스의 신비로움으로 하늘을 셋으로 나누워 보자.

 


  

 극 나누기바로가기

 


몇 바퀴를 돌리고 몇 번을 자르면 6.7.8.9개의 극이 추가될까.

마치 태양이 행성을 거느리는 모형이 나온다.

천번 만번을 잘라도 그 기본 틀은 변하지 않고 공간 확장을 계속한다.

 


釋子一貫석가모니가 하나로 꿰었다했든가?

서양 사람들이 저 문양을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뜻의 속어로 사용한단다.

 


지금까지의 주절주절은 사실상 天符經이야기를 했다.

 

天符經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나름대로 天符經해석을 다시 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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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繫辭上傳/ 右第十章/

 

是故 易有大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거론된 大極태극. 兩儀양의. 四象사상. 八卦팔괘등의 단어에 관한 정확한 정의는 기술돼 있

지 않다. 그러다보니 숱한 이론이 나타나게 되었다.

여기서는 단지 천문적인 의미로 태극의 정의를 내려 보기로 한다.


周易 說卦傳 右一第章.

昔者聖人之作易也幽贊於神明而生蓍參天兩地而倚數觀變於陰陽而立卦發揮於剛柔而生爻. 

和順於道德而理於義窮理盡性以至於命.

 

      그 옛날

聖人: 천문학자가 역을 만들었다.

幽贊: 그윽이 숨겨진 것을 밝히는데

神明: 가장 높은 곳에서 확실히 나타날 때(南中)

生蓍: 계산 방법이 나오게 된다.

參天: 원둘레를 3으로 하는 하늘의 양단은 땅으로 하여 숫자에 의해 음양으로 괘를 만들고

發揮: 나타나 보이는 강하고 부드러움(높고 낮은 별자리 좌표상의 움직임) 들을

生爻: 효로 만든 것이다.

 
해설

 

聖人: 천문학자라는 뜻은 여러 차례 밝혔다.

神明: “하늘과 땅의 신령”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주역 천문에서는 南中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神字의 의미를 주역에 이르기를 陰陽不測之謂神 음양을 측량할 수 없다고 했다.

고문자를 통해 이 의미를 다시해석하면

태극 문양의  Sin곡선 안에 두 점이 찍혀있다.

Sin곡선은 뜨고 지는 행성의 운행을 의미한다. 自轉자전의 의미이다.

하늘을 향해 돌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가다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정점에 다다라서는 일순간 정지 상태가 된다. 이 순간 음양이 존재하지 않으니 음양을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神明신명: 가장 높은 곳에서 확실히 나타날 때(南中)를 의미한다.

剛柔강유:  강하고 부드러움이란 Sin곡선이 일 년 내내 나타내 보이는 높낮이를 이르는 말이다.

 

生蓍생시: 蓍 산 까치: 숫자를 셈하는 지금의 계산기를 두드리다 정도의 의미이다.

生蓍생시: 운동의 변화량을 수학적 수치로 나타내 보이게 한다는 뜻

원둘레를 3으로 하는 하늘의 양단은 땅이라는 말은 곧 태극의 문양을 이르는 말이다.

둥근 원의 둘레를 3으로 하고 원을 가로지르는 Sin곡선(지름) 양단을 지구로 삼는 다는 말이다.

원둘레를 3으로 삼을 경우 정확한 수학으로는 지름 *?3.14가 되어야할 터이다. 그러나 원을 가로지르는 지름은 직선이 아닌 Sin곡선이다. 따라서 원둘레와 지름은 1:3의 비율인 것이다.

 이를 360도로 표기하게 된다.

태극 문양에서 하늘의 양단은 땅이라면 땅은 왜 Sin곡선을 그린 것인가?

 

Sin곡선은 고대 聖人천문학자가 하늘의 한 좌표를 일 년 동안 뚫어져라 바라보았을 때 나타나는 좌표의 이동 모양이며 하늘의 움직이는 모양이며 지구의 축이 기울어 돌아가는 좌표의 이동이다.


아날램마(analemma) 태양은 일 년 내내 같은 위치에서 같은 시간에 보면 8자형의 좌표 상을 이동한다. 

 
Sin곡선은 하늘의 변화를 그리는 바탕 문양이다.

 


태극을 그리는 원의 의미를 살펴보자.

 

줄에 매인 강아지는 줄 끝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은 동심원을 그리고 만다.

원안은 강아지의 자유로운 영역이다. 원 밖은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인간들의 세상이다.

 


 

또 달리는 둥근 원안에는 인간의 사유계를 포함한 삼라만상이 원안에 갇혀있다.

 

원 밖은 신의 영역이다.

 

둥근 원을 가장 완벽한 바탕 그림으로 우주를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이용한 것이니 곧 도형과 숫자와 이다.

 

10진의 수와 동심원이 그 기본 틀이다.

 

十10이라는 숫자는 완벽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기에 신의 영역에 속한다.

 

동심원 또한 인간이 더 이상 그려 낼 수 없는 완벽한 영역이며 원 밖은 신이 주관하는 영역으로 인간이 어찌하지 못하는 태극이 존재 하는 곳이다.


즉 그림의 Sin곡선으로 분리된 청백색의 공간이 太極이 아니고 그 밖을 둘러쌓고 있는 빈 공간이 신의 영역인 태극 이라는 말이다.

 

청백색의 문양은 태극에서 파생되는 음양의 문양인 것이다.

 
 


흔히 無極與太極, 太極而無生, 無極生太極,大一生四時,太極生兩儀라고 한다.

太極에는 극이 없다고 했다

.

바로 둥근 동심원의 밖을 이르는 말이다. 둥근 원의 밖에는 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며 신의 영역에는 극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太極 신의 영역, 신의 섭리 이며 따라서 인간이 이해 가능한 부분은 신의 섭리인 자연의 질서, 법칙을 이르는 말이다.


大一生四時라는 말에서 太一은 위 글에서 원둘레를 3으로 삼은 太極에서 원을 가로지르는 지름이 1인 Sin곡선을 太一이라고 한 것이다.

 

Sin곡선 太一은 태양의 일 년 간의 좌표를 평면화한 도형이다.

 

太一이 일 회전하면 1년이요. 四時 사계절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Sin곡선의 의미는 우주의 정연한 질서의 의미이며 그 바탕에 음양의 발현으로 생성되는 변화라는 의미를 기지는 것이다.


이제 맨 앞의 글을 천문으로 해석하면 

 

周易/ 繫辭上傳/ 右第十章/

 

是故 易有大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이로써 

 

大極: 변화는 大極(신의 섭리)에 있는 것이다.

 

兩儀: 신의 섭리에 의해 변화는 음양이 발현되고 음양의 발현으로

 

四象: (시간, 거리, 방향, 크기,)의 4가지 현상이 나타나며

 

八卦: 4가지 현상으로 八卦를 지은 것이다.

 


兩儀를 음양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정확한 해석을 하자면 “음양의 발현 ”이라는 뜻이다.

 

兩양 자체가 이미 陰陽을 뜻하는 것이고 儀자는 擧動거동한다는 뜻이니

 

陰陽의 거동 즉 음양의 작용, 운동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은 운동 값으로 이해된다.

 

만물이 운동하지 않는다면 시간과 공간의 의미는 무의미하다.

 

兩儀는 곧 “운동”이라는 뜻으로 비약 해석된다.

 


四象의 의미 또한 四季등과 같은 음양의 성쇠(盛衰)를 나타내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고

노양 소음 소양 등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만물에 작용하는 음양이 어찌 四季에만 극한 될 것인가?

 

춥고 덥고, 붉고 푸른 색깔 등으로 삼라만상을 구획하지는 않았다.

 

최소한 천문학 범주를 아우를 수 있는 물리적 현상을 표현한 것이다.

 

四象: 시간, 거리, 방향, 크기.

 

四象의 의미를 수 천 년 간 자신들의 입맛에 맟게 재단해오다보니 여러 가지 이론이 분분하다.

여기 천문적 이론을 하나 더 추가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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蘿井나정










靈憲영헌   케플러보다 1500년 앞선 천문 이론서이다.



                                                                                                                                                        오길순 천문도


張衡장형 78 ~ 139:후한 하남성 사람. 자는 평자(平子)다.


수력(水力)으로 움직이는 혼천의(渾天儀)와 지진(地震)을 측정하는 후풍지동의(候風地動儀)를 최초로 발명했다
저서에는『영헌(靈憲)』과 『산망론(算罔論)』,『혼천의(渾天儀)』 등이 있다.


靈憲영헌은 天圓地方천원지방이라는 天地觀천지관으로 관념적 천문우주론이 기술돼있다고 막연한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천문학이론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 말은 AD 100년경 張衡장형은 이미 태양계의 구조와 운행질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케플러보다 1500년 앞선 “타원 궤도 법칙” “면적 속도 일정 법칙”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고대의 과학지식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주원인은 天圓地方천원지방이라는 단어의 몰이해에서 출발한다.
天圓地方천원지방의 의미는 하늘은 둥근 데 비해 땅은 평평하고 네모진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전해져왔다.



靈憲영헌에서의 天圓地方천원지방이란
천문도상 하늘을 그릴 때 天圓; 하늘은 둥글게 그리고
                땅을 그릴 때 地方: 땅은 방향으로 표시한다 뜻이다.




天圓地方천원지방의 뜻이 와전된 것은 천문의 비밀을 감추기 위한 고대 위정자들의 술책이었다. 
고대 위정자들은 천문학의 비법을 독식함으로써 천손의 지위를 얻어 天子로 행세했다.


靈憲영헌을 새롭게 해석해본다.



1.     하얀 백지 위에 그린 둥근 원

2.     작업중

3.

4.

5.

6.

7.

 

 

태양은 오늘도 탕곡(湯谷)에서 목욕을 했다.

 

 

 

 

 

 

 

 

 

扶桑과 湯谷   부상과  탕곡

 

 

 어줍잖은 문사는 감히 필설하지 못한 단어가 扶桑과 湯谷이다. 

 

천하를 통달한 당대 학자님의 詩귀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든 이상향의 단어였다.

 

 

  태양 탕곡(湯谷)에서 목욕을 하고, 아침에 동쪽 부상(扶桑)에서 솟아

 

  부상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저녁마다 서쪽 땅속으로 들어간다고 여겼다.

 

 

1. 扶桑부상은 東海동해에 있다는 神木신목이라 한다.

 


                  그림  부상일월도


해가 뜨는 부상 근처에 하늘로 통하는 문이 있다 하는데

 

                                                              그림2. 고구려 부상수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에서 보면 탕곡이 보일까?


동쪽 해뜨는 곳이 탕곡이라면 바로 이곳을 이르는 말인가?













                                                                                         --우리니라 해 뜰때의 모습---

                                                                                                               

 

부상수(扶桑樹) 를 무궁화라고 하기도 하고 요전수 또한 부상수라는데....



                                                                                                        그림. 요전수  

(요전수」(搖錢樹). 성탄수 모양의 요전수는 한조(BC 206∼AD 220)의 청동기 유물로

중국에서도 단 2점밖에 없는 국보급. 중국 유물로는 사 상 최고가격인 250만달러(당시 35억7000여만 원)에 미국인 부호에게 팔렸다. 요전수는 고 대인들이 지하 묘실에서 조명용으로 사용했 던 것으로 가지끝마다 정교한 고대동전 형상 의 꽃잎이 달려있고, 꽃잎 가운데 촛불을 꽂 도록 돼 있다.)

 



부상나무에는 아홉 개의 해가 아래가지에 머물고

 

하나는 윗가지에 머문다고 한다.


 

 .                                                                


 

그곳에 세발까마귀 삼족오가 있었다한다.







 


                                                                                                                     고구려 고분









 


어느 날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라 곡식과 초목이 타죽고 강물이 말라붙자,


요 임금은 예에게 명령하여 화살로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게 했다고 한다.


그림6. 부상수 사천성박물관

 


 

고대에는 태양이 뜨는 곳을 부상국(扶桑國)이라 하였다.

 

해가 뜨는 나라

 

부상국(扶桑国)이 일본을 가리키는 단어라 하고, 삼족오가 자기들 고유 문양이라 주장하는

 

하다 .

 


부상수와 탕곡 삼족오의 의미는 그것 뿐일까?

 

고대 신화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산해경>과 <논형>을 중심으로 분석해본다.

 

 


 

論衡 說日中                      왕충의 논형 해이야기  중에서

 

 

儒者說                             선비들의 말에 의하면

 

日及工伎之家皆以日爲一   해를 관련한 전문가들이 해는 한 개라고 이르는데,

 

禹貢 (益 )山海經言          우와 익은 산해경에서

 

日有十                             해가 열 개나 되며,

 

在海外東方有湯谷             바다 밖의 동쪽에는 탕곡이 있어

 

上有扶桑                          위로는 부상이 있다 한다.

 

十日浴沐水中                    열 개의 해가 물 속에서 목욕을 하고

 

有大木九日居下枝              아홉 개의 해가 아래가지에 머무는 큰 나무가 있으니,

 

一日居上枝                        하나는 윗가지에 머문다고 한다.

 

淮南書又言燭十日              회남자에서는 또  열 개의 해 가 비쳤다하고,

 

堯時十日並出                    요 시대에 열 개의 해가 동시에 나와

 

萬物焦枯                           만물이 그을려 고사하자,

 

堯上射十日                        요가 열 개의 해를 화살을 쏘아 올리니,

 

以故不並一日見也              이로써 한꺼번에 출현하지 않고 하나만을 보게 되었다.

 

世俗又名甲乙爲日              세속에서는 또 해를 甲乙갑을의 이름을 붙여(각기 다른 이름)

 

甲至癸凡十日                     갑에서 해에 이르는 열 개의 해가 있으니,

 

日之有十                           열 개의 해가 있다함이,

 

猶星之有五也                     별이 다섯 개 있는 것과 같다한다.

 

通人談                               도통한사람의 이야기로써,

 

士歸於難知不肯辨明           학자들은 분명히  시비를 가리기 어려운 것으로 귀결지었다. 

 

是以文二傳而不定               이로써 올바른 정설 없이 두 종류의 기록이 전해지니,

 

世兩言而無主                     사람들은 두 이야기에  주관이 없는 것이다.

                                                                                                                   --- 줄임 ---

 

 

해가 목욕하는 탕곡 그리고 그 위에서 자라는 부상나무

 

<왕충>의 말데로 그 뜨거운 태양이 어떻게 물속에 목욕을 할 수있으며.

 

부상나무는  열개의 태양 아래에서도  고사하지 않고 자랄 수 있을까?

 

그 위에 올려진  삼족오는 죽지않는가?

 

天文人의 눈으로 보아야만 그 실체를 볼 수 있다.

 




물 속에서 태양이 목욕을하고 태양이 나무가지 위에 올라 앉은 모양이다.

 

해가 목욕하는 탕곡이란 연못 물 위의  떠있는 해그림자를 이르는 말이며,

 

부상나무란 해가 떠오르는 위치의 좌표를 의미한다.

 

 

신화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부상과 탕곡이란 천문관측 장비 역활을 한 것이다.

 

고대 천문에서 사용된 일출과 일몰 황도의 관측좌표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본디 태양의 강렬한 빛 때문에 눈으로 태양을 관측하기는 불가능하다.

 

관측을 위해 해그림자를 이용하는 것이며 더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

 

즉 부상나무를 통해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 박명시간에 떠오르는 위치를 정확히

 

측정함으로써 당시의 절기와 시각을 측정한 것이다.

 

 

이때에 부상나무는 일출 좌표를 찾는 규표 역활을 하게된다.

 

 

해그림자의 측정오차 를 줄이자면 측정면을 완전한 수평이 되어야 한다.

 

탕곡:  잔잔한 연못의 물의 수면은 그대로  정확한 수평면이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하게 되는 것이다.

 

수천년 전 고대인들이 만든 시간측정의 비법인 것이다.  

 

아니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이제 잔잔한 탕곡의 물 위에서 열 개의 태양을 찾아  저먼 옛날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일년 길이를 재는 방법에 해 떠오름을 관측하는 방법이 있다.

 

동쪽 지평선에서 매일 해가 떠오르는 위치는 변하고 있다.

 

춘분 또는 추분 때 정동쪽 방향이고,

 

가장 동북쪽에 위치한 때가 하지,

 

가장 동남쪽에 위치한 때가 동지때이다. 





위 그림은  10일 간격으로   해가 뜨는 위치를 표시한 그림이다.

              

떠오르는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기준 좌표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규표?   바로 부상나무인 것이다.

 

 


 이 때의 탕곡은 둠벙의 잔잔한  수평면이 된다.

관측의 정확도를 높이기위해 수평면은 필수적이다.


위 내용을 바탕으로 좀더 발전된 부상과 탕곡으로 해오름을 관측해보자.



탕곡 위에 떠있었다는 열 개의 해를 보자.!

 

매일 변하는 일출의 좌표를 열흘 단위로 

 

부상수와 부상수 사이를 10일로 구분지으면

 

한 나무 시이에서 10일을 머무는 셈이 된다.

 

 

 

 

아홉 개의 해는 나무 밑에 있고 하나의 해는 나무위에 있다는 말을 그림으로 보자.

 

첫 날부터 9일 간은 해의 그림자와 부상나무의 그림자가 함께  물위에 비췬다.

 

그러니까 부상나무와 부상나무사이에서 해가 떠오른다는 뜻이다.

 

10일째 정해놓은 좌표점에서는 부상나무에 가려서 해가 보이지 않게 된다.

 

이때의 수면위에는 해가 부상나무 위에 있는 것 처럽 보이게 되는 것이다.

 

9일간 부상나무 아래에 있다는 말의 의미를 왼쪽 위쪽의 그림에서보면

 

수면위의 해그림자는 연못의 가장자리에서 부상수의 아래 쪽에서부터  똑같이  비추기

 

시작한다.

 

해가 부상나무 위 아래를 옮겨가는 천문의 표현이다.

 

천문에 관심을 갖는다면 탕곡과 부상나무는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다.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숱한 우물과 저수조, 연못은 다시 한번 세심히 살펴 볼 일이다.

 

많은 유물들이 천문적으로 이해되길 기대한다.

 









서양의 현대판 탕곡과 부상나무를 보자 !


 


서양 해시계의 그림이다.

 

연못 속에 물고기와 함께 태양이 있고 사람이 부상나무를 대신하고 있다.

 

 

발 밑에 계절별로 위치를 달리하는 부상나무의 좌표를 그리고 있다.



중국 하남 밀현에서 발견된 유물 중 벽돌에 그려진 부상나무의 문양을 자세히 보자.

 

나무라고 하기보다는 도표나 그레프 같은 모양이다.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낸 그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일년 동안  같은시각 태양의 위치를 나타낸 그림이다.









태양이  목욕을하고  올라오는 부상나무


고대  태양이  떠오르는  위치로  시간과  계절을 측정했던  천문관측기구의  역할을 한  둠벙인 것이다.  

 












부상나무의 위에는 삼족오가 있다고 한다.

 

(郭璞注 扶桑在上一日方至日方出皆載于鸟)

 

 (곽박이 해설하기를 "부상나무위에 해가 들어오고  하나는 나가는데 모두 새가 그위에  올려져 있다).

 

 

 

 

 

 

해가 들어오고 나가는 곳에 새가 있다고 한다.

 

부상나무 위에 있는 삼족오의 세 발은 해시계의 영침을 말한다. 

 

해가 들고 날 때마다  새의 모양은 햇빛을 통해 그림자를 만든다.

 

북쪽을 향한 삼족오의 발 그림자는

 

동쪽에 해가 뜰 때는 세 개의 발 모양이 그대로  나타나지만

 

남쪽에 높이 솟아오를 때는  세 개의 발은  태양을 향해 일직선으로 서있음으로

 

일자형의 모양을 취하게 된다. 

 

세 발의 그림자 모양을 통해서 정확한 정오 시각을 알아내는 것이다.

 

태양과 삼족오의 관계는 태양숭배 사상 이전의 천문과학의 상징이 었다.

 

당간의 꼭대기 삼지창 모양 또한 삼족오의 발로써  영침 역활을 하게 된다.

 

 

                                                                                      

논형중 에서

 


世俗又名甲乙爲日              세속에서는 또 해를 甲乙갑을의 이름을 붙여(각기 다른 이름)

 

甲至癸凡十日                     갑에서 해에 이르는 열 개의 해가 있으니,

 

日之有十                           열 개의 해가 있다함이,

猶星之有五也                     별이 다섯 개 있는 것과 같다한다.

 

<日之有十 猶星之有五也   열 개의 해가 있다함이, 별이 다섯 개 있는 것과 같다한다. >



 

논형의 저자 왕충은 이 글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열개의 해가 별이 다섯개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는

 

천문도 상에서 볼 수있다.

 

천문도 상에서 별자리의 위치를 찍듯이 해의 좌표를 정해놓을 수 없다.

 

따라서 부상나무 규표를 통해 얻어지는 해의 이동 경로를

 

십일 단위의 해의 좌표로 그렸다는 말이다.

 

곧 황도대의 그림으로 별자리처럼 해의 좌표를 그렸다는 말이다.

 

                                            

bc1500년 경 은허시대에

 

은허의 갑골문에는 매 십일째(癸日)되는날 마다 관찰 내용을 기록했다고 적고있다.

 

부상나무를 규표로 삼아 매 십일마다  정확한 천문을 기록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은허의 갑골문자편에는 癸날의 기록이 무수히 많다.
 

최초 열개의 해에 관련해 의심스러운 것은 문구의 해석이었다.

 

十日의 의미는 열개의 해인가? 열흘인가?

 

열개의 해라면 十有日이라 해야되지않을까?

 

 열개의 해라고 해석하고 열흘이라고도 해석이 가능한가?.

 

십일의 의미는 旬이라는 문자가있다.  그래서 旬자가 만들어진 것일까?

 

 

부상,탕곡 10일, 삼족오의 의미는

 

고대 찬란한 천문학의 잔재들이다.

 

 

누군가 고대의 천문과학을  짖밟고 외곡하여 오늘날의 신화로 전략시킨 것이다.

 

왕권이라는 이름 아래............

 

 

 







잔잔한 물은 수평면을 이루므로 측정시 오차가 없다.

첨성대 맨 위에 있는 우물 정(井) 자는 밤하늘의 우물이요

그에 응하는 땅에 우물정(井)을 만든 것이니 첨성대 주변이 연못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   의혹을 품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於? 群惑者其可以少寤乎>  -곽박-

 

 

 

 


부상 , 탕곡, 삼족오 관련글 모음

 

왕충(王充 27∼97) 論衡.      ------ 포스트 논형에 올릴 예정입니다.

 

屈原( BC 343 ? ~ BC 277)

 

天問.

天何所沓十二焉       하늘은 열두겹이 어디에서 겹치는가

分日月安屬              나눠진 해와 달은 어디에 속하였고, 

列星安陳                  펼쳐진 별자리는 어디에 줄지어 서나?

出自湯谷 次于蒙汜    태양은 탕곡에서 나와서 몽수로 간다.

自明及晦 所行幾里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 리나 가나?


九歌 東君

暾將出兮東方照           해가 떠오르나 동쪽 하늘 밝아오네

吾檻今扶桑                 부상에 시간을 맞추고

撫餘馬兮                     여유있게 말을 돌보네

安驅夜蛟蛟兮既明         밤은 달각달각 어디로 달렸기에 아침이 밝아오나



離騷經

朝發軔于蒼梧兮,夕余至乎縣圃;

欲少留此靈瑣兮,日忽忽其將暮;

吾令羲和弭節兮,望崦嵫而匆迫;

路曼曼其修遠兮,吾將上下而求索;

飮余馬于咸池兮,總余轡乎扶桑

折若木以拂日兮,聊逍遙以相羊;

前望舒使先驅兮,后飛廉使奔屬;

鸞皇爲余先戒兮,雷師告余以未具;

吾令鳳鳥飛騰夕,繼之以日夜;



장자 齊物論

故昔者堯問於舜曰..「我欲伐宗..胥敖,南面而不釋然. 其故何也?」 舜曰..「夫三子者,猶存乎蓬艾之間. 若不釋然,何哉? 昔者十日竝出,萬物皆照,而況德之進乎日者乎!」



유안(劉安 BC 122)의 淮南子


天文訓

日出於暘谷浴於鹹池拂於扶桑是謂晨明登於扶桑爰始將行是謂明


地形 訓

若木在建木西末有十日其華照下地 


 


곽박(郭璞276~324)註 山海經

 

海外東經

下有湯谷湯谷上有扶桑 十日所浴在黑齒北居水中有大木九日居下枝 一日居上枝 


大荒東經

大荒之中有山上有扶木柱三百里其葉如芥有谷曰溫源谷湯谷上有扶木

( 郭璞注 扶桑在上一日方至一日方出皆载于鸟)

 

 

東 方 朔의  十 洲 記,(BC 156∼BC 87)

 


扶桑在東海之東岸岸直陸行登岸一萬里東復有碧海海廣狹浩汗與東海等水旣不醎苦正作碧色甘香楣美扶桑在碧海之中地方萬里上有太帝宮太眞東王殳所治處多林水葉皆如桑又有椹樹장자수천장대이천여위수兩 兩 同 根 生양양동근우更 相 依 倚是 以 名 之 扶 桑蓋 神 木 也생갱상의기시이명위부상인식기심이체개작금광색비우공기수융대기엽심고여중하지상야단심희이색역구천세일생실이미절감향미지생자금구옥여중하지 석상진선령관변화만단익무상형역유능분형위백신십장자야

부상 葉 似 桑 樹 , 長 數 千 丈, 大 二 十 圍 ,  ,  ,  ■」

                                                                                 -- 꽃신장사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파이 역사에는 늘 여성이 등장한다. 여성 스파이의 활동은 은밀해 눈치 채기 어렵다.

그들은 여색에 빠진 남성들을 치마폭에 휘감고 쥐락펴락했다.

 

 

 

破帖 (파첩)      자오선, 1937년. 11월


1

優雅(우아)한女賊(여적)이 내뒤를밟는다고 想像(상상)하라 


내門(문) 빗장을 내가지르는 소리는 내心頭(심두)의 凍結(동결)하는 錄音(녹음)이거나 그「겹」이거나......
ㅡ無情(무정)하구나ㅡ
燈(등)불이 침침하니까 女賊(여적) 乳白(유백)의裸體(나체)가 참 魅力(매력)있는 汚穢(오예)가 아니면 乾淨(건정)이다

 


2

市街戰(시가전)이 끝난 都市(도시)步道(보도)에「麻(마)」가어지럽다
黨道(당도)의命(명)을받들고 月光(월광)이이「麻(마)」어지러운위에 먹을즐느리라
(色(색)이여 保護色(보호색)이거라) 나는 이런일을흉내내어 껄껄껄
 

3

人民(인민)이퍽죽은모양인데 거의 亡骸(망해)를남기지않았다 悽慘(처참)한砲火(포화)가 은근히溫氣(온기)를부른다 그런다음에는 世上(세상)것이發芽(발아)치 않는다 그러고 夜陰夜陰(야음야음)이 繼續(계속)된다
猴(후)는 드디어 깊은睡眠(수면)에빠졌다 空氣(공기)는 乳白(유백)으로 化粧(화장)되고
나는?
사람의屍體(시체)를밟고집으로돌아오는 길에 皮膚面(피부면)에털이솟았다 멀리 내뒤에서 내 讀書(독서)소리가들려왔다
 

4

이 首都(수도)의 廢墟(폐허)에 왜遞信(체신)이있나
응? (조용합시다 할머니의 下門(하문)입니다)


5

시ㅡ트위에 내稀薄(희박)한 輪廓(윤곽)이찍혔다 이런頭蓋骨(두개골)에는 解剖圖(해부도)가 參加(참가)하지않는다
내正面(정면)은가을이다 丹楓(단풍)근방에 透明(투명)한 洪水(홍수)가 沈澱(침전)한다
睡眠(수면)뒤에는 손가락끝이 濃黃(농황)의小便(소변)으로 차겁더니 기어 방울이져서 떨어졌다


6

건너다보이는 二層(이층)에서 大陸(대륙)계집이들창을닫아버린다 닫기前(전)에 침을배앝았다
마치 내게射擊(사격)하듯이......
室內(실내)에展開(전개)될생각하고 나는嫉妬(질투)한다 上氣(상기)한四肢(사지)를壁(벽)에기대어 그 침을 들여다보면 淫亂(음란)한 外國語(외국어)가하고많은 細菌(세균)처럼 꿈틀거린다
나는 홀로 閨房(규방)에病身(병신)을기른다 病身(병신)은가끔窒息(질식)하고 血循(혈순)이여기저기서 망설거린다


7

단추를감춘다 남보는데서「싸인」을하지말고......어디 어디 暗殺(암살)이 부엉이처럼 드새는지ㅡ 누구든지모른다


8

......步道(보도)「마이크로폰」은 마지막 發電(발전)을 마쳤다
夜陰(야음)을發掘(발굴)하는月光(월광)ㅡ
死體(사체)는 잃어버린體溫(체온)보다 훨씬차다 灰燼(회신)위에 서리가나렸건만.....

별안간 波狀鐵板(파상철판)이넘어졌다 頑固(완고)한音響(음향)에는 餘韻(여운)도 없다
그밑에서 늙은 議員(의원)과 늙은 敎授(교수)가 번차례로講演(강연)한다
「무엇이 무엇과 와야만되느냐」
이들의상판은 個個(개개) 이들의先輩(선배)상판을닮았다
烏有(오유)된驛區內(역구내)에貨物車(화물차)가 우뚝하다 向(향)하고있다


9

喪章(상장)을붙인暗號(암호)인가 電流(전류)위에올라앉아서 死滅(사멸)의「가나안」을 指示(지시)한다
都市(도시)의 崩落(붕락)은 아ㅡ風說(풍설)보다빠르다


10

市廳(시청)은法典(법전)을감추고 散亂(산란)한 處分(처분)을 拒絶(거절)하였다
「콩크리ㅡ트」田園(전원)에는 草根木皮(초근목피)도없다 物體(물체)의陰影(음영)에生理(생리)가없다
ㅡ孤獨(고독)한奇術師(기술사)「카인」은 都市關門(도시관문)에서 人力車(인력거)를 내리고 항용 이거리를緩步(완보)하리라

                                 - 끝-

 

자오선: 이육사·서정주·김광균·신석초·이상 등이 참여한 동인지다.  1937년 11월  창간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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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男妹 아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社會制度와 道德과 法律과 因習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過度期에 先覺者로 그 運命의 줄에 犧牲된 者이엿더니라.

後日 外交官이 되여 巴里오거든 네 에미에 墓를 차차 꼿 한송이 꼬저 다오.

 

펄펄 날든 저제비
참혹한 사람의손에
두쪽지 두다리
모다 상하엿네
다시 살어날냐고
발버둥치고 허덕이다
끗끗내 못익이고
고만 척느러젓네
그러나 모른다
제비에게는
아직 따듯한긔운잇고
숨쉬는 소리가들닌다
다시 仲天에떠오를
活力과 勇氣와
忍耐와 努力이
다시 잇슬지
뉘 能히 알니가 잇스랴 (舊稿에서)

 

발행일1935년 01월01일   삼천리 제7권 제1호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ma_016_0440_0680

 

 

 

정조는 취미다.

http://ieave0047.tistory.com/144

 

 

 

진정한 선각자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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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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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써의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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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고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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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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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455

 

 

 

The Weeknd - Secrets         https://www.youtube.com/watch?v=eXDU9um19HM

 

 


“혼외정사는 진보된 사람의 행동이다”

 나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면 남편이 질투심으로 더 잘해줄 것으로 믿었답니다.

 자유연애를 부르짖고 여성의 자유와 개방을 추구

조국의 독립에 앞서  여자들이 우선 남자들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

 1930년대 잘나가는 경성  여인내들의 외침이었다.

 


이상의 소설 終生記종생기에 貞姬정희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貞姬정희는 실제인물이었을까요?

누구는 변동림이라고 하고 누구는 최정희라 하는데......... ?

 

 

 

 이 여자가 진짜  정희다. 

정희는 사팔뜨기다.

            근시6도다.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누굴까 ?

차마 말할 수 없다. 간담이 서늘하다.

때는 1936년

 


 

李尙山이상산

 尙山은 퍽 다정한 여자엿스며 그 아름다운 얼골과 풍부한 육체미에는 한 줄기의 애수가 흘으고 잇는 것 갓햇다.

그 미모와 그 풍부한 육체미로 여러 남성들을 惱殺한 것만은 움즉일 수 업는 사실이다

1934년 8월 13일 새벽 4시사망

 

上海異域에 展開된 國際三角愛의 血祭 -李尙山孃의 悲戀의 眞相-


 

 

 

 


정희는 사팔뜨기다.

            근시6도다.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일본이름 아먀기 카쓰란天城活蘭   金活蘭김활란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D%99%9C%EB%9E%80

출생  1899년 1월 18일 인천부 동구 창영동

14세: 1913년 이화학당 고등부 

19세: 1918년 3월 이화학당 졸업 직후부터 모교인 이화학당의 교사 이화학당 고등보통과의 영어 교사와 이화학당 대학예과 영어 교사로 활동

20세  1919년 3.1운동 비밀결사대활동 근거자료 없음

22세: 1921년 전도대를 조직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감리교회 전파

23세: 1922년 10월 미국 오하이오 주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3학년에 편입

24세: 1923년 3월 김필례, 유각경 등과 함께 YWCA창설

25세: 1924년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학사 학위

26세: 1925년 6월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교감겸임

28세: 1927년 5월 근우회 창립 회장취임

29세: 1928년 근우회에서 탈퇴

32세: 1931년 10월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학위

33세: 1932년 이화전문학교 부교장 교복을 입게함 제7대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장

40세: 1939년 유각경, 이숙종(李淑鍾), 임영신, 박순천, 노천명, 모윤숙·황선덕 등과 함께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간부가 되어

                    정신대 참여 선전 독려,

                    학도병 지원을  선전,  독려  강연활동

42세: 1941년 야먀기 카쓰란(天城活蘭)으로 창씨개명

44세: 1943년 12월 학도병 나가라 부추김  뒷일은 우리가 

학도병 출진의 북은 울렸다.

그대들은 여기에 발맞추어 용약(勇躍) 떠나련다!

가라,  마음놓고!

뒷일은 총후(銃後)는 우리 부녀가 지킬 것이다.

남아로 태어나서 오늘같이 생의 참뜻을 느꼈음도 없었으리라.

학병 제군 앞에는 양양한 전도가 열리었다.

몸으로 국가에 순(殉)하는 거룩한 사명이 부여되었다.

조광(*월간종합잡지)

 

 

 

이이제이 121회 김활란 특집 .....50분 부터

http://www.podbbang.com/ch/4362

 

 

 

 

貞姬정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6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康明花강명화

 

 

 

 

 

 

 

 

 

 

 

 

 

 

 

 

 

1920년대 명월관 기생 강명화는 귀가길에 일본인에게 희롱당하는 것을 구해 준 영남 부호의 아들인 도쿄 유학생 장병천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가로놓인 신분상의 벽 때문에 고민하다가 결국 자결하고, 남자도 뒤를 따른다.

http://blog.naver.com/razzoqkr/20179850128

   윤정희,신성일 - 강명화(康明花 1967년)

 

 

 

 

貞姬정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6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금홍이

 

 

이상은1933년,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황해도 백천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운명의 여인인 기생 금홍을 만났다.

그녀를 친한 벗에게 권하는 엽기스런 애정행각.

그러면서도 금홍에 대해 '보들레르의 흑인 혼혈 정부 잔느 뒤발을 닮은데다가,

모든 남자들이 한 번 정도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여자'라 찬사를 늘어놓았다.

열렬히 사랑했던 금홍을 비롯해 이상은 전생애를 통해 여러 여급과 사랑을 나누었다.

 

 

물건이 다른  이상과  손매가 매서운 금홍이로 알려진 사진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권순옥, 이상과 정인택 삼각관계에서 1935년 8월 29일 정인택과 혼인함.

  

 권순옥은 금홍이가 가출했을 때 이상이 사귄 여성이다.

이상은 카페 ‘쓰루(鶴)’를 인수하는데 이 카페의 여급으로 있었던 여성이 권순옥이다.

1930년대에는 카페 여급들 중에 인텔리 여성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를 이상의 친구였던 정인택이 짝사랑하면서 이들은 삼각관계에 빠지게 된다.

권순옥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정인택이 위 대목처럼 자살 기도까지 하게 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권순옥과 정인택이 결혼에 이르게 된 과정을 적은 것이 소설 ‘환시기’다.

이들 결혼의 사회를 이상이 보았다는 것도 당시 화제가 되었다.

이 사실은 이상이 죽은 뒤 정인택이 쓴 ‘불쌍한 이상’(조광, 1939.12)에서

 “이상이 그 야윈 어깨에 명재경각의 저를 걸머지고 밤 깊은 종로거리를 헤매던 일,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

그때 이상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고, 내 아내도 없고…”라고 언급되기도 했다.

권순옥의 문단 남성들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쟁 때 그녀는 정인택과 두 딸과 함께 월북했는데 도중에 정인택은 병사했다.

그 후 그녀는 가족들을 남한에 둔 채 납북된 소설가 박태원과 재혼하게 된다.

http://blog.naver.com/fish20017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卞東琳

 출생 : 1916년

14세 : 1930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

19세 : 1935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졸

20세 : 1936년 6월 이상과 결혼 37년 이상 사망

22세 : 1938년

28세 ; 1944년 42년 첫 부인과 이혼 한 김환기와 재혼

          金鄕岸김향안으로 개명

http://blog.naver.com/fish20017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盧天命노천명

 

 

출생 :1911년 9월 1일

22세 :1932년 밤의 찬마 발표

 

24세 :1934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

28세 :1938년 《산호림》을 발표

                  전사자들을 칭송하는 선동적이고 정치적인 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이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다면 귀한 부르심을 입었을 것을.......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일제의 인적 수탈(강제 징병)을 찬양하는 내용이 포함

http://ko.wikipedia.org/wiki/%EB%85%B8%EC%B2%9C%EB%AA%85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崔貞熙최정희 군국의 어머니” 태평양 전쟁지원 연설

출생 :1912년 함북 성진

14세 :1926년

19세 :1931년

22세 :1934년 숙명보통학교졸업 중앙보육학교에 입학 1년 만에 졸업

24세 :1936년 일본에서 학생극예술좌'에 참가. 연출자 김유형과 동거 아들1명 이혼 사별

25세 :1937년 3남1녀를 둔 김동환과 염문 동거

28세 :1940년 카프 제2차 전주사건에 연루 8개월간 실형 1928 숙명여고 졸업.

29세 :1941년 『조광』에 단편 「흉가(凶家)」를 발표하며 문단 데뷔.

48세 :1960년 『현대문학』 추천심사위원으로 피촉.

71세 :1983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

http://ko.wikipedia.org/wiki/%EC%B5%9C%EC%A0%95%ED%9D%AC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許貞淑허정숙사랑 없이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고 사랑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고 주장

  

 

일곱 번 이상으로 남자를 갈아치웠다.  <!--[endif]-->

자유연애주의자로 조선 콜론타이라는 명성 얻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 법관,여성운동가, 사회주의자

일제 강점기 당시 언론 활동과 신간회와 근우회의 조직 등에 참여

 

출생 :1902년 7월 16일

14세 :1916년

16세 :1918년 평양고등여학교를 졸업

17세 :1919년 이화학당 전문부를 졸업 일본 간사이 학원(關西學院)에 입학

18세 :1920년 공개적으로 머리 단발 성리학자들 패륜아라며 공격

19세 :1921년 상하이로 유학 후 귀국

22세 :1924년 모스크바공산대학을 중퇴

조국의 독립에 앞서 여자들이 우선 남자들로부터 독립하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설수 있어야 된다고 주장

임원근과 결혼 임원근은 공산주의 전파를 위해 박헌영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다 검거돼 평양형무소에서 1년 반을 복역하였다.

기독교의 위선과 편협함, 독단성을 신랄하게 비판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 윤심덕, 박인덕 등 3·1 운동을 전후하여 일본 유학을 하고 돌아와 1920년대 중반까지 문화계에서 활동한 신여성의 대표주자. 여성동우회의 주요 멤버

 

34세 :1936년 중국으로 망명, 민족혁명당, 조선독립동맹 활동

1936년 최창익 등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가 조선에서 석방되어 망명한 한빈(韓斌) 등을 만났다.

 이후 허정숙은 최창익, 한빈 등과 함께 난징으로 가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조선의용대에도 가담했으며,

조선청년 전위동맹 부대표로 선출되었다. 한편 그는 최창익, 박효삼, 한빈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려는 김원봉 등의 견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1948년 8월 25일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선거에 당선되어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다.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http://ko.wikipedia.org/wiki/%ED%97%88%EC%A0%95%EC%88%99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金元周김원주여성은 남성을 위한 소모품 아님.  여성은 남성을 위한 장식물 아님.

 

金一葉김일엽

출생 :1896년 진남포 삼숭여학교(三崇女學校) 졸업.서울 이화학당에서 수학.救世學校졸업 일본日新學校졸업.

22세 :1918년 연희전문학교 교수 40세 이노익 22세 때 결혼

24세 :1920년 잡지 『신여자』 창간. 『신민공론』, 『신미공론』 편집 동인.

일본 유학시절 본처가 한국에 있는 시인 노월 임장화와 간통한 사건으로 이혼당함

일본 오따 세이죠의 아들을 낳아 오따에게 넘겨주고 귀국

친구 유덕의 애인 방인근과 삼각관계에 빠져 스캔들

동아일보사 문예부 기자. 정치부 기자 국기열과 동거

재가승 하윤실과 동거

34세 :1928년 滿空禪師만공선사 문하에서 수계

목사의 딸로 태어나 여성은 어머니 아니면 창녀라는 이분법적 기독교 신화에 반기 

나혜석·김명순 등과 함께 자유연애를 부르짖고 여성의 자유와 개방을 추구하며 지위향상운동을 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5034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許英肅허영숙

 허영숙과 나혜석은 자매같다는 느낌이 ?

 

1949년 혁신출판사에서 발간한 친일파 관련 문헌인 민족정기의 심판은

‘이광수도 혁명대열에 참가하여 조국 광복을 위하여 눈부신 활약을 했지만

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丸山)의 밀정으로 상해에 온 허영숙(許英淑)에게 넘어갔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광수와 가까웠던 임정 내무총장 안창호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출신의 여의사 허영숙에게 상해에서 개업할 것을 권유했지만

이광수와 허영숙은 끝내 귀국해 버렸다. 

출생 :1895년

14세 :1909년

19세 :1914년

23세 :1918년 의사시험에 조선 여성으로 처음 합격

25세 :1920년 산부인과 병원 ‘영혜의원’ 개업

이광수는 흥사단 상하이 조계의 임시 반장을 맡기도 하는데, 여름 방학 무렵 일본에서 허영숙이 이광수를 찾아왔다.

허영숙의 상하이 임시정부 방문은 당시 상해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한다.

월탄 박종화는 그의 '일기' 에서 이광수가 이때 허영숙으로 인해 조선총독부에 매수당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기록을 남겼다.

조선총독부의 사주를 받은 허영숙이 이광수에게 '총독부의 신변보장을 언질 받고' 이를 설득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다.

박종화에 의하면 이 소문이 확산되면서 허영숙의 첫 애인 진학문은 충격을 받고 홧김에 일본 여자와 결혼해버렸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들은 허영숙이 이광수를 타락시켰다며 못마땅하게 여겼다.

26세 : 1921년 4월말 이광수 개성으로 귀국, 정식결혼

30세 :1925년 남편 李光洙로 부터 동아일보 학예부장 자리 이어받음

36세 :1931년 미스코리아 “삼쳔리일색” 심사위원 : 이광수,허영숙, 염상섭, 김안서, 안석주, 이承萬, 이청전, , 나혜석, 김일엽, 최승희, 김동환, 최정희 등

 

51세 :1946년 5월 21일에 합의 이혼하였는데,

         서울신문은 이 소식을 전하며“장차 이광수가 전범으로 걸려들 때를 걱정하여,

         자식과 재산의 보호를 위해서 취하는 잇속 빠른 길이 아닌가 보고 있다.”(1946년 6월 13일자)라며 비판하였다.

 이광수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A%B4%91%EC%88%98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羅蕙錫나혜석 “혼외정사는 진보된 사람의 행동이다”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면 남편이 질투심으로 더 잘해줄 것으로 착각

출생 :1896년 4월 18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 291번지

14세 :1910년 삼일여학교 재학 중 단색목판화 '개척자' 제작 월간 '개벽' 13호에 게재

19세 :1915년 일본에서 발간하는 《여자지계(女子之界)》의 창립, 발간에 참여

22세 :1918년 단편소설 '경희' 발표 여자계 제2호 1918년 03월22일 필명: 晶月

              미술 교사, 3.1운동 가담 혐의로 투옥

              한때 춘원 이광수의 애인

              부인까지 있는 최승구와 약혼 최승구 사망 후

24세 :1920년 김우영과 결혼

30세 :1926년 조선 최초로 구미 여행에 오른 여성

        파리에서 외교관으로 주재하고 있던 崔麟최린과 염문

36세 :1932년 이혼당함

38세 :1934년 09월 19일 崔麟최린에게 처권침해 정조유린에 의한 위자료 만이천원 청구

                                   후에 2.000원 받았음

52세 :1948년 12월 10일 시립자제원에서 사망

나혜석 http://ko.wikipedia.org/wiki/%EB%82%98%ED%98%9C%EC%84%9D


 허영숙과 나혜석은 자매같다는 느낌이 ?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姜敬愛강경애

 

 

출생 :1906년 4월 20일

14세 :1920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

18세 :1924년 양주동과 함께 금성사 근처에서 동거

19세 :1925년 숭의여학교에 복학하여 공부중 중퇴

21세 :1927년 신간회, 근우회에 참여

25세 :1931년 張河一과 결혼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함

26세 :1932년 간도로 이주, 사회주의자 김봉환과 내연관계

28세 :1934년 동아일보에 장편 “인간문제” 명성을 얻음‘ 최하층 여성의 삶을 통해 식민현실과 계급차별의 모순을 고발한 장편소설

李康勳이강훈 전 광복회장이 강경애는 김좌진장군 암살을 교사한 金奉煥김봉환과 내연의 관계로, 일본 경찰에 공산주의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된 뒤 변절해 김좌진 장군 암살을 공모했다고 주장

http://ko.wikipedia.org/wiki/%EA%B0%95%EA%B2%BD%EC%95%A0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朴花城박화성

 

출생 :1904년 4월 16일

14세 :1918년 서울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

18세 :1922년 전라남도 영광중학교교원으로 근무

21세 :1925년 추석 전야 발표

22세 :1926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日本女子大學영문과에 입학.

25세 :1929년 3학년 수료후 귀국 金國鎭과 혼인

28세 :1932년 장편소설 <백화 白花>동아일보 연재

32세 :1936년 김국진과 이혼 千篤根과 재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85333&cid=41708&categoryId=41735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毛允淑모윤숙

 

출생  :1910년 3월 5

15세 :1924년개성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18세 :1927년 경성부의 이화여자전문학교

22세 :1931년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   <피로 색인 당신의 얼골을〉 동광에 발표

24세 :1933년 태평양 전쟁 중 각종 친일 단체에 가입 강연 및 저술 활동 전쟁에 협력

26세 :1935년 안호상(安浩相)결혼  곧 이혼 이후 평생  독신으로 생활

32세 :1941년 조선문인협회에 간사로 가담해 친일 강연

33세 :1942년 조선임전보국단 국민의용대 가담 친일 잡지 매일신보에 〈호산나 소남도〉전쟁 찬양시를 발표

                    지원병 참전을 독려 시 〈어린 날개 - 히로오카(廣岡) 소년 학도병에게〉

34세 :1943년〈아가야 너는 - 해군 기념일을 맞아〉 〈내 어머니 한 말씀에〉등을 연달아 발표하는 등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했다.

           이 시기 비슷한 주제의 시들을 창작한 노천명과 함께 문인 중 가장 노골적인 친일파로 분류되고 있

36세 :1945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친일 논설을 기고


http://ko.wikipedia.org/wiki/%EB%AA%A8%EC%9C%A4%EC%88%99

 

貞姬는 사팔뜨기다.

近視六度  근시육도다.

左亂視右色盲  좌난시 우색맹이다.

웃니는 좀 잇새가 벌고 아랫니만이 고운 깜찍스럽게 새치미를 뗄 줄 아는 얼굴이다.

가족이 14살 때 딸에게 賣淫매음시켰다.

          19살 때 자진해서 賣淫매음했다.

          22살 때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편발處子처자를 위조하여 賣喫매끽하여 버렸다.

 

 

尹心悳윤심덕

 

출생 1897 

보통학교 음악선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음악교사 시절 때마침 조선총독부의 관비로 우에노음악학교에 보내는 프로그램에서 한기주와 함께 선발되어 우에노음악학교 사범과를 졸업하면서 소프라노로 두각을 나타냈다.

23세: 1920년 12월 19일 베토벤 탄생 150주년 기념음악회 때 출연했고,

24세: 1921년 귀국 전국순회공연 극작가 김우진과 친교

26세: 1923년 7월 7일 장곡천정공회당에서 성악발표회를 열었다.

1923년 6월 귀국하자마자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짐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로 데뷔하였다.

 

양악이 수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제대로 성악을 공부한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의 풍부한 성량과 당당한 용모 또한 대중을 휘어잡았다.

유부남 김우진과의 사랑은 진보적인 도덕관을 지닌 그녀를 궁지로 몰아갔다.

29세: 1926년 여동생 성진의 유학길 배웅을 위하여 일본에 간 그녀는 닛토레코드회사에서 24곡을 취입한 뒤 먼저 와 있던 김우진과 함께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를 타고 귀국하던 중 두 사람은 현해탄에 투신하였다.

그녀가 남긴 ‘사의 찬미’는 오늘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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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ma_016_0270_0150

http://tvpot.daum.net/mypot/View.do?clipid=71925724&ownerid=mRlSExWR4-Q0



영화 The Sound of MusicEdelweiss

 

 수녀로서의 자질을 의심받는 그녀가 걱정된 원장 수녀는 마리아를 퇴역 장교 폰 트랩가의 가정교사로 보낸다.

폰 트랩 대령은 7남매를 군대식으로 엄격하게 대하고,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은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말썽을 피운다.

마리아는 아이들의 장난에 화내기보다 따뜻하게 포용하고 아이들은 점차 그녀를 따르기 시작한다.

대령은 마리아에게 청혼한다.

그런데 축복 속에 결혼한 마리아와 대령이 신혼여행을 간 사이, 오스트리아는 제3제국(나치 독일)에 합병되고, 대령은 나치로부터 소집 명령을 받는다.

대령은 망명을 결심하고, 친구 맥스의 도움을 받아 폰 트랩 가족 합창단으로 오스트리아 민요대회에 출전해 가족을 감시하는 나치들의 빈틈을 노린다.

다행히 수도원으로 피신한 폰 트랩 가족들은 몇 차례 고비를 맞지만, 수녀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알프스 국경을 넘는다.

 

 이상 또한 망명하듯 일본으로 떠나먼서 발표한 계몽시 이다.




                      


 

 

      絶壁

                                              절벽(危篤 中)   1936년. 10월. 4-9일 조선일보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 향기롭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속에

                                    나는 들어앉는다.

나는 눕는다.

또 꽃이 향기롭다.

꽃은 보이지 않는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잊어버리고

재처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로

나는 꽃을 깜빡 잊어버리고 들어간다.

나는 정말 눕는다.

아아. 꽃이 또 향기롭다.

보이지도 않는 꽃이--

보이지도 않는 꽃이.

 

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꽃도 묘혈도 보지 못했다.

다만 누웠을 뿐이고 허공의 묘혈을 팠을 뿐이다.

보지 못한 것은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았을 뿐이다.

꽃향기를 지각하는 너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

다만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장님에게 지팡이가 없으면 사방이 절벽이다.

눈을 떠라!

너는 장님이 아니다.

이 땅의 겨레여

누워서 묘혈을 파지 마라.

보이지도 않는 묘혈을 찾는 것은 자멸이다.

너는 아직은 숨이 붙어 있다.

눈을 떠라!

이 땅의 겨레여!

눈을 감고 있으면 모두가 절벽이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있으면 모두가 危篤롭다.

보이지도 않는 꽃이 또 향기롭다.

눈을 뜨고 꽃을 보라!

깨어나라 겨레여! (危篤 中에서) 1936년. 10월. 4-9일 조선일보

 

 

絶壁절벽 : 귀가 아주 먹었거나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낮추어 일컫는 말

 

 

 

 

危篤위독5 白畵백주 / 내두루매기깃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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