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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墓域)에서 깊어진 세의(世誼)

 

 

 

안계면 소재지의 5거리에서 단밀행 지방도로를 따라서 나가면 곧바로 율리리(栗里里)고개가 도로를 끼고 오른쪽으로 나선다. 동쪽으로는 인가가 밀집하여 들어오고 건너편에는 지호지간에 안계여자 중고등 학교의 위용이 웅장하다.

옛날에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묘역이었으나 지금은 차량의 소음이 크고 안계면 소재지가 번창하여 오니 묘소의 관리도 어려우며 번잡한 공해를 벗어나기도 어렵게 되었다. 5정보 가량의 얼마 되지 않는 양지바른 묘역에는 오랜 세월에 세 문중의 세의가 굳어지는 장소가 되어왔으니 그 사연은 이러하다

 

 


고려 말의 충신으로 이름난 백암 김 제(白巖 金 濟)의 후손이요, 기자전 참봉(箕子殿 參奉)을 지낸 김세정(金世貞)이 이 묘역의 서쪽에 맨 먼저 입산하게 되었다.

그 시기는 그의 생졸년을 기록한 문적이 전하지 않으니 확실히 알 길 없으나 연산조(燕山朝)내지 중종조(中宗朝)의 일일 것으로 추리할 수 있다. 그러니 4백년은 훨씬 넘어서 묘역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보아야 하겠다.

김세정은 진주판관(晋州判官)을 지낸 순천인(順天人) 장일신(張日新)의 아들 숙(叔)으로서 사위를 삼게 되었다. 사위를 사랑하는 정은 워낙이나 깊었기에 장인을 존경하고 따르는 마음 또한 남달랐다고 한다. 드디어는 사위를 의성읍의 본가에서 비안(比安)고을로 데려 와서 같이 살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장숙은 순천 장씨(順天 張氏)의 비안 고을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김 세정은 사위를 가까이 데려와서 출가한 딸도 언제나 쉽사리 만날 수가 있어서 더욱 즐거웠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가족과 측근을 불러 모아두고 더욱 각별한 유언을 하게 되었다.

자기가 죽으면 율현(栗峴)에 묻어 주기를 당부하고 저 세상에 가서도 장 숙과의 정의를 새기고자 하니 뒷날 가서 사위의 일생을 마치거든 자기의 무덤 아래 같이 묻어 달라고 특별히 유언 하였다.

세월이 흘러 1567년(명종 22년 丁印) 7월 15일에 군기시첨정(軍器時僉正)을 역임한다. 장 숙도 78세의 향수로 타계했다. 장인 김 세정의 유언에 따라 그의 묘 아래 바로 붙여 묻어 묘를 이룬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부인 김씨도 합장이 되었다. 이로써 김 세정의 유언에 따라 그의 묘 아래 바로 붙여 묻어 묘를 이룬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부인 김씨도 합장이 되었다. 이로써 김세정의 유언은 실행이 되었고 저 세상에서 만난 옹서(翁胥)간에는 더욱 정이 깊어졌을 것이라 여긴다.

장 숙이 묻혀 입산된 후로 그의 아들 문암공(文巖公) 장문서(張文瑞)도 이어서 그 아래쪽에 묻히게 되었다. 국천 효자로 이름난 문암공이 입산한 것은 1577년(선조 10년 丁丑)이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유언이 남았다. 문암공 역시 그이 사위인 우봉인(牛峰人) 진사(進士) 이 효견(李 孝騫)을 무척이나 사랑하였기에 뒷날에 한 묘역에 묻히기를 당부하였다. 그의 아들 진사 장 해(張 邂)의 묘 옆쪽에 사위인 진사 이 효건도 부인장씨와 더불어 함께 묻혔다. 이렇듯 생시의 정의는 유언으로 남고 유언은 어김없이 실행되어서 선산 김씨, 순천 장씨, 우봉 이씨는 한 묘역을 이루게 된 사연이 밝혀졌다.

그들은 연면 4백년을 내려오면서 선외가(先外家)와의 정의를 새기는 아름다운 전통을 남겼다. 해 마다 서릿발 내리는 가을이 깊으면 묘향을 치르고 자손은 모여들면 고루고루 다같이 어느 묘나 성묘를 하니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기에 한 해에 묘사를 세 번씩이나 지내느냐고 묻기도 하는 모양이다. 묘향의 날짜가 문중 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

먼먼 옛날부터 율현묘역(栗峴墓域)에서 맺어지는 세 문중의 미담가화(美談佳話)는 멀리서 듣기에는 믿기가 어려운 일이다.

여기 우리의 전통을 건전히 세워 나아가는데 모범이 되어지기를 바란다.

 


경상북도 의성군청/ 의성의 인물 중에서 

 

 


명나라 崇禎元年(1628년)

청나라 崇德元年(1636년)

임진왜란   선조 25년 (1592)  정병 20만  소서행장

정유재란   선조 30년 (1597)  정병 14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정묘호란   인조  5년 (1627)  정병  3만   아민

병자호란   인조  14년(1636)  정병 20만   청태종


 

 


 龍 潭  日  記


 

                                                        金啓

 


 

 

 


“龍蛇日記”

一善金氏 白岩公派譜 龍潭金啓先生譜錄

일선김씨 백암공파보 용담 김계선생 보록 내용에/ 집안에 “龍蛇日記”가 전해졌다고 한다.

“龍蛇日記”참으로 아까운 사료다.

의문스러운 것은 송암 이로(李魯:1544∼1598)가 쓴 龍蛇日記《용사일기》가 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62호로써  《용사일기》는 1592년(선조 25)부터 1597년의 정유재란까지 전후 5년간의 기록이 실려 있는데, 임진왜란의 상황을 체험 중심으로 기술하였으며 당시 의병들의 활약상, 전쟁의 진행과정, 전란 속의 민심 동향 등을 생생하게 수록되어있다고 한다.

또한 저자미상의 일사기문(逸史記聞)이라는 책이 전해지고 있는데,

선조(宣祖) 때부터 인조(仁祖) 때까지의 사실을 주로 세간에 들리는 이야기에 따라 기록한 책이다.

이 책 내용의 마지막 기록은 대략 정축년(1637)3월 초3일까지의 기록이 적혀 있다.

그런데 책의 서술방식이 金啓선생의 龍潭錄과  흡사하고

내용 또한 인조시대의 다른 학자들의 일기 내용과는 달리

                            세간에 들리는 政勢이야기를 기록한 유사점이 있다.

묘하게도 金啓선생의 龍潭錄 기록은 정축년(1637) 봄의 사건부터 시작된다.

혹 저 작자미상의 逸史記聞은 龍潭 金啓先生의 “龍蛇日記”가 아니었을까?

 

                       .

                                                                 

          

丁丑年 仁祖15年 1637年  明- 崇禎10년  淸- 崇德二年(당63세) (윤4월 듬)

 

역사보기/ 1월 강화도 함락.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태종에 항복함.

3월 홍익한, 윤집, 오달제가 청에 잡혀가 심양에서 살해됨.

4월 소현세자(昭顯世子) 등이 심양에 볼모로 잡혀감.

 


○冊以給 .....

보태어진 책 ....

 


☞ 龍潭錄 以前의 日記에 보태여 쓴다는 말.  즉“龍蛇日記”와 연결된 日記라는 뜻.

一善金氏 白岩公派譜 龍潭金啓先生譜錄

일선김씨 백암공파보 용담 김계선생 보록 내용에/ 집안에 “龍蛇日記”가 전해졌다고 함.

 


○沈方伯(    )未及謫發拿去李敬輿來代(    )

 심방백이(    )하지 못함을 적발하여 잡아가다. 이경여가 뒤이어 부임했다.(    )

 


沈方伯 = 경상감사 심연(沈演)/  李敬輿 = 후임 경상감사/ 

인조실록/   2월 11일 양력/ 1637년 3월 07일 

경상감사 [심연沈演]이 재임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쌍령(雙嶺)에서 청군의 기습이 있다는 와전(訛傳)을 듣고 도산해 실전에 임해보지도 못했다. 패하자 전라도에 유배되고. 후임 경상감사 [이경여李敬輿]가 부임했다는 기록인 듯함. 

인조 15년 정축(1637, 숭정 10)  4월 5일(갑술)  이경여(李敬輿)를 경상 감사로 삼았다.

 

 

 

戊寅年 仁祖16年 1638, 明 - 崇禎11년  淸 - 崇德三年(당64세)

           

역사보기/   9월 1일(경신)  함경도에 굶주림과 염병으로 사망한 백성이 4천 3백여 명이다. 

            10월 봉림대군(鳳林大君, 후의 효종)이 청태종의 서정(西征)에 동행함.

 


○自春至夏天久不雨兩麥旣損又未移秧七月間暫雨豆太及黍粟頗有可望其西成而八月飛霜大失稔 自初秋至翌年夏橡實松皮苦苦連命老弱多有餓死者

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하늘은 영영 비를 내리지 않았다.

밀과 보리농사는 이미 망쳤고 모내기도 하지 못했다.

7월에 잠시 내린 비로 팥.콩.조를 심었을 뿐이다. 

자못 수확을 기대했지만 거둬들일 무렵인 8월에 서리가 내려 농사를 망쳤다.

초가을부터 내년 여름까지 도토리와 소나무 껍질로 연명해야하는 고통이다. 고통속에 힘들게 연명해가는 노인과 어린이가 늘어나고 굶어 죽는 자가 많다.

 

○牛疫之後不能耕種十家作契耕以人夫或馬耕之或作車推轉而耕之 

高牙大纛鳴鼓吹角大是恠變事也. 

소들이 역질에 걸린 후에는  밭갈이를 할 수가 없다.

열 집이 어울려 “품앗이”로 사람이 직접 밭갈이를 하고,

혹은 말로써  밭갈이하며 혹은 수레바퀴를 끌어서 쟁기를 만들어 밭을 갈았다.

관아에서는 상아로 장식한 깃발 높이 휘날리며 북치고 나발 부니

도대체 이 무슨 괴변이 있냐!

 

○一自兵亂後大小紅疫及染疾大熾死亡過半

정유재란부터 병자호란 이후까지도 크고 작은 홍역에다 장티프스까지 크게 번져 죽은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監司李公在亂時興學設敎勉勵頹風勸課農桑輕徭薄賦而二月辭歸南民不缺然失望 李景曾代來

감사 이경여는 병란 중에도 학문을 세우고 퇴폐한 풍속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가르치고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며 부역과 세금을 가볍게 하였다.

2월에 (모친의 병환으로)사임하고 떠나가니 남쪽의 백성들이 기대가 무너져 실망하였다.

이경증이 후임으로 왔다.      

☞ 이경여:  인조 15 1637,3월,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 1638 1월, 모친의 병환으로 사직하고 扶餘로 돌아감

○都事呂渭老到任數月以無名稱汰尢沈大孚七月到界

도사(종5품) 여위로가 도임한지 여러 달 동안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으니“태왕”이라 불렀다. 七月에 심대부 감사가 부임해왔다.         

 


己卯年 仁祖17年  明- 崇禎12년  淸- 崇德四年 1639년  (당65세)

                             

역사보기/ 4월 20일    감사 이경증(李景曾)의 청을 따라 경상도에 보내 기민을 진휼하게 하다.

          2월 11일    이명웅(李命雄)을 경상 감사로 삼았다.

          4월 18일    최온(崔蘊)을 비안 현감(比安縣監)으로 삼았다.

           5월 1일    청나라에서 정뇌경을 죽이다.

          6월 26일    동양위 신익성이 삼전도 비문을 쓰지 못하겠음을 계하다

          7월 13일    경상 감사 이명웅에게 금오 산성을 쌓게 하다

          9월 28일    선산부사 이각(李恪)에게 금오 산성을 축성한 공로로 通政을 加資하다.

         10월 29일    경상도에 대동법을 시행하다 

          12월 2일    역관 정명수가 병조 좌랑 변호길을 폭행하다

 

○六月胡使自稱中殿冊封而出來到孔詔院宣言中殿親出(    )驕慢使崔鳴吉齊銀千兩往說鄭明時金石伊等得免中殿之親出 鄭明時金石伊乃我國人而投附胡賊作獘一梗者之胡(    )

육월 청나라 사신이 중전책봉을 위하여 나왔다는 구실로 홍제원에서 중전이 친히 나와 받으라며(    )교만스러우니, 최명길이 은 천 냥을 주고 그들을 설득해서 면했다.  정명수. 김돌시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오랑캐에 빌붙어 작당질을 하는 한 무리들이다. 오랑캐(    )

 ☞ :     鄭明時는 = 鄭命壽이고    金石伊는 = 金乭屎 =金突  / 김돌시, 김돌이다.

鄭命壽 金乭屎는 1618(광해군 10)년 청나라의 건주위 정벌 때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갔다가 포로가 된 정명수(鄭命壽)·김돌(金突) 등이 우리나라 사정을 청나라에 알려줌으로써 청나라 황제의 신임을 얻고 양국간에 통역을 담당하면서 임금을 모독하고 조신을 업신여기는 한편, 관직이나 뇌물을 요구하는 등 갖은 행패를 부렸다.

 

六月五日未時汶孫生˚ 

5일 오후 2시 손자 “문”이 태어났다.

○鄭雷卿拿金宗一等以東殿僚屬在瀋陽□鄭明時□作獘謨共誅殺而事泄觸怒汗令東殿殺鄭雷卿等甚急東殿曲陳其必咨禀於國王之由則汗賊令國王促殺之故不淂己送金吾郞斬鄭雷卿拿金宗一㝎罪 

정뇌경을 잡아갔다. 김종일등과 심양에서 세자를 모시면서□,정명시의□ 못된 짓에.. 주살하려 모의하였는데 사실이 누설되어 청나라의 노여움을 촉발하였다. 세자에게 정뇌경등을 죽이라 명하니 사정이 급하여 세자가 간곡하게 사정하였으나, 살펴 보건데 필히 국왕이 연류된 것이라 하는 즉 청나라에서 명하길 국왕은 빨리 죽이라하니 부득이 의금부도사를 보내 정뇌경을 참수하였다. 김종일은 같은 죄로 잡아갔다.

 

 


○春大饑饉移粟藍藿賑恤一匹直數斗米四月成倅以京人田稅坊納事罷去六月金壽昌到任

봄에 큰 기근이 들었다. 곡식을 가져와 콩깍지로 연명하는 곤궁한 백성을 구원하였다.

무명 한 필이 쌀 몇 말 값이다.

4월 고을의 成성원님은 서울사람으로 관할구역의 토지세를 거둬들이지 않고 갔다.  

6월 김수창이 부임하다.

 

○監司李命雄等築山城初使僧軍次以編伍軍次以烟軍無論伇品怨苦沖天城号柒谷置府使˚

감사 이명웅등이 산성을 수축할 때 처음에는 승려들로 조직된 승군 을 쓰고 다음에는 지방 정예군 편오군을 쓰다가 품삯을 받는 민가에서 출역한 인부를 쓰면서 노역인의 품삯에 관해서는 아무 말이 없으니 고통과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성의 이름을 柒谷“칠곡”이라하고 府使“부사”를 설치했다.

☞    왕조실록보다 1년 앞선 기록이다.

아마도 당시 주민들을 독려하기위해 지금의 개발계획을  홍보하듯이 미리 공표한 듯하다.

인조 18년 5월 25일 가산산성(山城)의 읍명(邑名)을 칠곡(漆谷)으로 하고 윤양(尹瀁)을 부사로 삼았다.

 

가을에 풍년이 들다. 목화는 흉작이다. 동지 달 튼튼하던 손자 인간 세상에 왔다가 다섯 살도 않되 한 줌의 재가 됐다.

○淸使帶金累祢名者來請曰近無每日以銀百兩禮端給之則無辞受給其回還之日專數□□□□還出給曰此國甚殘獘以待後人云而去歸告其汗□使臣若無□□□□朝鮮矣云雖夷虜□□□□之邦有人矣   청나라 사신 帶金累祢(대금누니)라는 자가 와서 청하길 요즈음 매일 은 백 냥씩 옳게 지급하는 예의가 없다. 여러번 지급받지 못한 것을 돌려 받고자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지급하라.  말하길 이 나라의 사신접대가 심히 잘못된 폐단이다. 뒷날 귀국하는 사람에게 전해 청태종에 고하여□使臣若無□□□□朝鮮矣云雖夷虜□□□□之邦有人矣

 

 


庚辰年 仁祖18年 1640, 明- 崇禎13년  淸- 崇德5年(당66세) 正1월 윤달

역사보기/

1월 20일  인평 대군에게 권솔을 거느리고 청나라로 가게 하다.

2월 2일   청나라 장수 마부달이 죽다. 그의 형인 만월개(滿月介)에게 위문.

3월 7일   평안 병사 임경업을 심양으로 보내다.

5월 25일  정가 산성(定架山城)의 읍명(邑名)을 칠곡(漆谷)으로 하고 윤양(尹瀁)을 부사로 삼았다.

8월 4일   원손이 심양에서 돌아오다.

10월17일  봉림 대군이 다시 심양으로 가다.

 


○正月无日晩天動○閏正(    )日嫂主別世權庴板項 ○念五六雨土不分遠近○元孫乃橉平大君入送瀋陽東宮受由出還

정월 해가 보이지 않고 늦게는 하늘이 울렸다. 윤달이 든 정월(    )일 형수가 별세하다.  임시로 판항(의성군 봉양면 문흥리)에 모셨다. 25. 6일 흙비가 내려 앞을 분간하기 힘들다. 소현세자의 아들 원손과 인평대군이 심양으로 들어갔다. 소현세자가 청국의 허락을 받아 돌아왔다.

 

 

 


○左右道軍兵咸裂架城大操仍城役民怨沖天

경상 전라도 군병이 두루 나뉘어 가산산성을 크게 쌓으니 거듭되는 성 쌓는 노역에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  강행군으로 많은 노역자들이 죽었다.

     인조실록: 18년 4월 4일 공사를 서두른 이명웅을 파직하라고 헌부가 아뢰다.

 


○金石伊夲國官奴爵賊作奱淸使之行亦來作禮常與主上較倚而堅淸使久留國傷渴沈說夜趋鄭明時金石伊宿處各給銀子萬兩翌朝勸使發遝到義州金也責房妓色醜牧伯林慶業託以絶無美色則金遽怒曰雖入汝之室入不可廢也林大怒曳下庭使人告淸使曰我亦有淸國之職此漢辱我不可不治使曰笞於四十度杖以不祿木杖之如數卽死曳出之人皆快之

김돌시는 본시 관노비로써 벼슬을 도적질하여 바꾸고 청나라 사신을 따라 나와서 매번 사신을 접대하는 예법을 만드니 주상께서 보시기에도 그 폐단이 지나치다.

청나라 사신이 오래 머물고 있어 나라의 재정이 몹시 고갈 된지 오래되었다는 말씀에 밤으로 정명시와 김돌시의 숙소로 달려가 각각 은자 만 냥을 주고 다음날 아침에 떠나가기를 권하였다. 의주로 돌아간 김돌시가 기생이 못생겼다고 책망하며 의주 목사 임경업에게 절세미인을 부탁하였는데 예쁜 곳이란 없는지라 김돌시가 갑자기 화를 내며 말하길 “너 같아도 그 방엔 못 들어갈 것이다. 당장 바꿔주라”하니 임경업이 열을 받아 김돌시를 뜰아래로 끌어내고 청나라 사신에게 항의하니 청나라 사신이 말하길 “나는 청나라의 사람이요 이놈 또한 청나라 벼슬을 하고 있으니 청나라를 욕되게 한 것이다. 그냥 둘 수 없다. 몽둥이로 40 대를 쳐라!.”사정 봐줄 것 없이 몽둥이를 내려치니 몇 대 맞자 쭉 뻗었다. 시체를 밖으로 끌어내니 모두가 쾌자를 불렀다.

 ☞  왕조실록에도 없는 매국노 김돌쇠의 사망기록이다.

 

 

○二月初八午坤方天動俄而天油然作雲抑沛然雨雹交注雷電霹近古所于有(    )竟夜不能安寢大是異事

2월 8일 정오쯤에 남서쪽에 하늘이 요동하더니 머리위에 뭉게뭉게 구름이 일어나 내려앉자 세차게 비가 쏟아지고 우박으로 바뀌어 내리다 천둥번개가 치더니 가까운 곳에 벼락이 떨어졌다. 예전에 (    ) 밤까지 이르니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없다. 커다란 이변이다.

 

○汗請兵我國□□ 以林慶業領兵送之□力入寇中國大敗而還 -557P

청나라에서 우리나라에 군사 조발을 요청하여...  임경업이 통솔하여 출정하였다. ...힘으로  밀어붙여 명나라를 대패시키고 돌아왔다.

 

 

○東宮在瀋陽以皮方席獻詩 

소현세자가 심양에서 가죽방석에 시를 써서 전하께 올리다.

 


身留異域未歸人     몸은 낯선 땅에 있어 못 가는 신세.

家在長安漢水濱     내 집은 서울 장안, 한강 기슭인데.

月白夜心花落泣     달 밟은 밤 내 마음은 꽃잎에 눈물짓네.

靑風池面柳絲新     봄바람 연못 위를 스치니 실버들 새롭고

黃鶴嗅起遼西夢    꾀꼬리 울음소리 고향 꿈을 깨우네.

玄鳥來傳慶會春     제비 찾아와 경회루의 봄을 알리는데.

盡日樓臺歌舞地     온종일 누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곳을.

不堪回首淚沾巾     차마 그려 볼 수 없어 소매에 눈물 적시네.

 


殿下開逢觀之則有待曰  

전하께서 시를 읽고 答詩를 지었는데

 


내가 그립거니,  넌들 그립지 않겠는가.

千里蠻鄕 천 리 오랑캐 땅에서 얼마나 그리느냐.

紗窓 창 밖에 슬피 우는 저 접동새야!

“돌아갈 것 같지 않다”고 말하지 마라.

내 앉을 자리가 없구나!

 


臣民見此歌詩孰不鳴間流涕..?  

 신하와 백성들이 이 시를 보고  

누군들 흐르는 눈물에  소리 내여 읊을 수 있겠는가....

○斥和金尙憲金迬等如尹集縛送瀋陽孰不憤嘆東宮來觀卽還○方伯具鳳瑞専以愛民爲政南中大悅

청나라와 싸워야한다고 주장한 김상헌 김왕 등과 같이 윤집이 심양에 묶여갔으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소현세자가 만나보고 돌아갔다.

도지사 구봉서가 오로지 백성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행정을 펼치니 경기이남 지역에서 인기가 최고다. 

☞  金常憲: 1570~1652 본관: 안동. 인조가 자신의 부친을 왕으로 추존하려는 이른바 추숭논의(追崇論議)가 일어나자 그에 강력히 반대하였고, 찬성한 반정공신 이귀(李貴)와 의견 충돌을 빚어 낙향. 1636년 병자호란 때 선전후화론(先戰後和論)주장. 최명길(崔鳴吉)이 작성한 항복문서를 찢고 자결을 기도하다가 실패 뒤 두문불출. 청나라로부터 위험인물로 지목 1641년 청나라에  끌려가 4년여 동안 청인들의 굴복 요구에 불복하여 끝까지 저항. 1649년 효종 즉위 뒤 대현(大賢)으로 추대 받아 좌의정에 임명. 저서: 《야인담록》《독례수초》《남사록》후인들에 의해 문집 《청음집》간행.

○元孫往瀋陽之日百官送于盤松容拜辭而歸莫不流涕年六世人君度量己成云 二月朝鴨成群相戰而死者正如丙子矣

원손이 심양으로 가는 날 百官이 전송하는데, 반송정에서 차분하고 침착하게 나아가 절하고 돌아가니 어찌 눈물이 아니 흐르겠는가! 나이 여섯 살에 품성과 아량이 이미 인군의 틀을 갖췄다 한다. 2월 아침에 기러기가 때를 지어 서로 싸우다 죽었다. 지난 병자년과 같다.

☞  元孫원손: 소현세자 큰아들. 뒷날 아버지 소현 세자가 죽자. 어머니 강빈은 사약을 받아 죽고 원손은 10살 때 제주도로 귀양 가서 죽는다.


 

○水田不吉旱田亦早霜民不聊生○都事蔡成龜 

논에는 가뭄 들고 밭엔 이른 서리 내려 백성이 편히 살아갈 수가 없다. 도사 채성구가 부임하다.

 ☞  蔡成龜는 = 채성구(蔡聖龜)이다.[1607~1647] 본관 평강. 시조와 필법이 뛰어났다. 

都事도사: 품계는 종5품이었다. 관찰사와 함께 지방을 순력하고 규찰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辛巳年仁祖19年 1641년 明- 崇禎14년 淸-崇德6年 (당67세)

역사보기/   1월 10일   인평 대군이 심양에서 돌아오다. 

1월 18일    임경업이 돌아오다.

3월 22일    경상도에 가뭄이 들다.

4월 26일    낙동강 물이 마르다 경상도의 가뭄으로 낙동강의 물줄기가 끊겼다.

5월  4일    청나라에 원병간 이사룡이 참형당하고 김득평이 장형에 처해지다.

5월 12일    경상도에 지진이 나고 서리가 내리다.  경상도에 황충이 생기다.

6월 18일    심양가는 군병을 위문하다.

7월 10일    광해군이 죽다.

7월 19일    심양에 있는 재신의 상차에 따라 임경업을 소환하다.

 


○自春徂夏不雨移秧尃廃加以正月抄軍六月再( )軍入錦州民間飢況斗米直本一匹若不方伯移粟賑恤靡南民有子遺○七月( )年凶因往嵗前願留明年事會疏一善一道咸進

봄부터 여름에 이르러 비가오지 않아 모내기를 그만둘 판인데 정월에 군사를 선별해 보내고 6월에 또( )금주전투에 보냈다.

백성들은 가뭄과 기근에 허덕이고  쌀과 콩 한 말 값이 면포 한 필이다. 만약 도지사가 곡식을 가져와 기근을 해결하지 못하면 남도의 백성들은 자식을 내버릴 것이다. 7월( )년의 흉사는 그 전 해에 앞서 머뭇거렸든 원인이다. 내년에 일의 기회가 올 때 정리(正理)에 따라 모두 한 길로 나가자.


○ 汗領兵往圍錦州不利再請兵於我國( ) 以砲手( )名六月損( )抄送八月汗與東宮麟坪親領往錦州中國將祖大受不利先運砲手交代回還

청군이 금주를 포위하러 갔다가 불리하자 또다시 우리나라에( ) 지원병을 요청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수( )명을 6월 달에 결원에 맞춰( ) 뽑아 보냈다. 8월에는 청태종과 소현세자와 인평대군도 함께 금주전투에 참가했다. 명나라 장수 조대수가 불리하다. 앞서 출병한 포수부대와 교대를 하여 돌려보냈다.

☞    祖大受는 祖大壽 이다. 명나라 장수 뒷날 청나라에 항복 함

조선군은 정밀한 총을 가지고 있어서 조대수의 군사를 많이 죽였는데, 조대수는 군대에 명하기를 청병의 머리 하나에는 은 50냥을 주고 조선 군사의 머리 하나에는 100냥을 준다고 했다.

조선 군사 중에 경상도 성주 사람으로 이사룡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차마 명군에게 총을 쏠 수가 없어 공중으로 공포만 쏘아 명군을 상하지 않게 하였다. 이는 본국 조선의 속마음을 밝히려 함이었다. 이를 발견한 청의 군사가 사룡의 목을 베어 진중에 높이 내 걸었다. 명나라 군사들은 이것을 보고 모두 크게 울었고 조대수는 깃발에 큰 글씨로 "대명충신 조선의사"라 써서 시영의 군사를 선동했다.

 

이사룡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청나라 장수에게 욕을 퍼부었고 웃으면서 죽었다고 한다. 청태종도 이사룡을 의로운 사람이라 하여 소현세자가 귀국할 때 그의 주검을 운구해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조선 왕 인조는 지나는 길에 감사에게 예를 표하게 하고 고향에 안장하게 하였다. 그 뒤 숙종 때는 고향 사람들이 사당을 지었고, 정조 때는 성주목사에 증직되었으며 정려를 지어 충렬사란 현판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명나라 장수 조대수(祖大壽)가 그의 아우와 함께 금주성(錦州城)에 들어가 수비하였는데 청인(淸人)이 포위하였다. 조대수가 나성(羅城)을 잃자 항복했던 몽고(蒙古) 사람들을 의심하여 한인(漢人)을 시켜 감시하게 하였는데, 몽고인들이 성을 나가 투항하는 자가 매우 많았다. 중국 조정이 10만의 군대를 발동시켜 일곱 명의 총병(摠兵)이 거느리게 하여 금주성을 구원하게 하였다. 우진왕(右眞王)이 대대적으로 원병이 온다는 말을 듣고 우리 나라의 포수(砲手) 4백 명을 선봉으로 삼아 남산(南山)을 굳게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 군대를 두 대(隊)로 나누어 일대는 탑산(塔山)의 귀로를 방비하게 하고 일대는 금주로 들어오는 길을 차단하게 하였으며, 진중(陣中)에 기와집을 지어 오래 머무를 계획임을 보였다. 이때 우리 군대는 이미 여러 달을 노숙(露宿)하여 병들고 부상하지 않은 자가 없었고 죽는 자가 속출하였다. 조정에서 듣고 본도로 하여금 휼전(恤典)을 거행하게 하였다.

 

○自江原山郡由豊基奉化興海至八月初下霜失稔倍往年下道尤甚豆太黍粟稍實木花畓穀専棄市直日蹙所恃者方伯

강원 산골 부락을 비롯하여 풍기, 봉화, 포항에 이르기까지 8월 초부터 서리가 내려 결실을 얻지 못한 것이 지난해의 곱절은 된다. 남쪽지방이 더욱 극심하다. 콩과 팥. 기장. 조(서속)은 끝만 약간 여물었고 목화와 벼는 모두 포기했다. 시장경기는 매일 위축되어  갈수록 급박해지니 기대하는 것은 방백(도지사)뿐이다.  

 

○四月巡相親到洛東左右道文武士咸聚試才入格者四十餘人優數賞賜○責子治第賦長子鈺亦參榜受韻冊一部筆墨壯帋三卷邑卒加賜白帋二卷 -555P

4월 순찰사가 낙동에 왔다. 좌우도의 문무 선비를 모두모아 재주를 시험했다. 경과시에 합격한자가 40여명이었다. 우수한 자들에게 상을 주었다. 責子治第(자식을 타일러 집안을 다스린다.)라는 시제로 큰아들 옥도 합격하여 운책과 필묵을 받았다. 장원한 자에게는 종이 3권을 주고 읍의 수령이 백지 2권을 주었다.

☞   巡相순상: 종2품 임시벼슬 순찰사(巡察使)의 별칭

 

○三月十五日義興孫生女十月十三日山春生男始見曾孫○八月二十五日試年進士試一語嗳回鸚鵡夢賦次子鏡亦參榜于亰一所洪伯昇中東堂壯元 ○鏡造屋始 -554P

3월 15일 의흥에서 외손자 딸을 보았다. 10월 13일 산춘의 아들이 태어났다. 처음으로 증손을 보았다. 8월 25일 과거를 보는 해에 진사시가 있었다. 시험문제는 一語嗳回鸚鵡夢(하던 말 또 하는 멍청한 앵무새)라는 시험문제로 한양의 첫 시험장에서 둘째 아들 경이 합격했다.  동당 시험장에서 홍백승이 장원을 했다. 경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

☞    鏡:1606 -1664년 용담의 둘째 아들 字明仲 號愚軒 1654년 司馬

 


○九月初七日蔚山東面柳浦村海巷中水源半把䖏黃白色石周回七尺三寸自移陸地岩上○又東萊十月十一日地震自南方間午北方聲如天動窓戶戰搖累年失稔民生未復而非常之変不知攸言云

9월 7일(1641년 10월 11일) 울산 동면 유포촌 바닷가 마을 가운데 물길 오목한 곳에서 7척 가량의 황백색의 돌이 빙빙 돌다가 스스로 땅위의 바위 위에  올라앉았다. 또 동래에서는 10월 11일 지진이 남쪽에서 일어났다가 정오에 북쪽에서 하늘이 요동치는 소리가 창문이 난리가 난 듯 흔들린다. 몇 년째 흉년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운데 이변이 일어나 알 수없는 이상한 소문이 번진다.

☞  실록의 기록 있음 仁祖19年 蔚山府 有石自海邊, 移于陸地巖上。울산부에서 바위가 움직이다.

 


○安陰士子通文有曰六月二十二日鄭桐溪捐世非侐邦家之不幸抑亦士林之長慟云

안음(함양군 안의면,거창)에 사는 선비의 아들이 서찰을 가져왔다. 6월 22일(양1641년7월29일) 동계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한 나라를 평온하게 이끌지 못한 불행에 더하여 사림의 영수이었으니 통탄스러울 뿐이다.

☞ 桐溪: 鄭蘊정온의 호[1569~1641]: 본관 초계.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으로서 김상헌과 함께 척화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이루어지자 자결시도. 사직하고 덕유산에 들어가 은거하다가 5년 만에 죽었다. 이조참의,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부제학 등을 역임. 저서《동계문집》<동계 약력>《덕변록》《망북두시》《망백운가》를 지어 애군우국의 뜻을 토로하였다.

 


○都事李以存到任○赴瀋軍運粮事冬前所放爲先爭錬運粮雇馬六百匹定奪後西路不能支勢不得己分定各道八結木一匹式一千九十餘同本道除出贊馬三百匹䮠人則各官屬定送馬三匹色吏一名一道定領將一負木品則如歲幣三十七尺  -554P

관찰사 이이존이 부임해 왔다. 심양에 나가있는 군사의 군량조달은 겨울이 오기 전 훈련에 앞서 준비해야 마음이 놓인다고 운송에 필요한 말 600필을 민간으로부터 징발하는 것을 임금의 재결을 받은 후에 함경, 평안도 지방의 징발이 어려운 지경이라  부득이 각 도에 나누어 정했는데 농지세로 받아들인 8결목 당 한 필씩 정하니 1090필이다. 우리 경상도에서 내놓을 량이 300필이다. 마부는 각 감영의 하인을 보낸다. 말 세 마리당 아전 한 명씩 붙이고, 한 도에 대장 한 명이 담당했는데 해마다 중국에 바치던 무명과 똑같은 품질로 37척이나 된다.

☞  李以存: 본관 여흥 인조 20년 부수찬. 승지

○爲準十二月內上納事卽今錦圍未觧兵連禍銡我軍調送至於再次陣前運粮遂月飛輓關西民力己到蕩渴  -553P

12달을 기준으로 바치는 것인데. 지금은 금주를 포위하고 풀지 않고 있어 병사들이 연이어 화를 입고 술렁이고 있기에 우리병사를 뽑아 보내준 것인데 여기에 또다시 진군하니 앞서 운송을 마친 달에 이어서 군량을 운송하게 되니 평안도 백성은 기력이 다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今此收價雇馬之未誠出於朝廷不得己之計而本道不幸連被灾篰屋懸罄今屆收藏之節方有阻飢許多細木何以辨出言念至此一倍傷心

이번에 민가에서 징발한 말의 수가를 조정에서 성의 없이 지급하니 부득이 상소를 올렸는데 경상도는 불행이도 계속된 재앙에 거적 지붕에는 석가레만 걸려있고 지금은 거두어 들여야 하는 계절에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에게 그 많은 무명을 나누워 주면 어떨까하는 말을 생각해보니 이제 와서는 갑절이나 마음이 상한다.

 

○道方以銀子枝三等物代送一邉報備局一邊議關西若得准欲請則自營間主管以此換貿則設有日後各官隨便收價之事目前可除駄價人情木品高重聽不聽在於朝廷不得祿料爲先卜定爲置將此民間知委以待更分付 -558P

도 방백이 은자와 아울러 세 가지 품목을 대신 보내고. 비국에 보고하는 한편  평안도지방과 같은 법을 적용해주길 바라는 논지를 임금에게 올렸는데 그 논지는,

백성들과 관청사이의 상거래에서 사들이는 환무의 규칙을 만들어 놓으면 설령 뒷날 각 관아에서 이 규칙을 따르면 편리하게 사들일 수 있다. 그 시행규칙은

전에는 물품을 실어 나르는 품삯은 주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 상품의 등급은 인정에 따라 좋든 나쁘든 나라 관리가 정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공무원 봉급은 현지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이 바치는 세금으로써 그 산지의 생산물로 먼저 지급하는 것을 장차 법으로 만들어 백성에게 공지하여 그때그때 현지의 생산품으로 대신해서 분납하도록 하는 것이다.

 

○比安田一千二百二十五結八十九負六束出木一百五十三匹內一同貿馬一匹餘木一百十三匹上納次右(具)巡相行關各邑也

비안(경북 의성군 비안면)의 밭은 1.215결 89부 6속이다. 내놓아야할 무명은 153필을 한 번에 바쳐야한다. 실어 나를 말 한필과 나머지 130필을 상납하고 (구)순찰사가 각 읍 관아에 공문을 보냈다

 

○凶年飢嵗賑活赤子者王政之所先散給官穀穋取資潤屋者救荒之急務是白昆上年段失稔最慘是白良置下道稍實仍于轉販募納之際下于有地是白如乎

흉년과 기근 때는 백성을 구휼하는 것이 임금의 임무인바 먼저 관의 창고를 열고 부자 집의 나락을 거둬 나누어주는 것으로 백성을 구황해야한다. 급한 것은 지난해와 마찬가진데 피해등급을 구분지어 가장 참혹하게 농사를 망친 경상도 지방일지라도 흉년 제반조처에서는 초실등급으로 조치한 것이 최상의 조처라 하고 거듭하여 물건을 사고팔 때 군량미를 거둬들인다. 하나같이 땅이 있는 곳은 이와 같다.

 

 

○今年則莫論上下一樣被灾富者罊渴貧者將死公私倉庫赤立板蕩封債貸穀等事俱無辦得之路而明春種食只憑元穀還上是如乎○開倉之後決難盡捧各邑守令連續來報設有些少之捧

올해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재앙을 당했으니 부자들의 단지도 바닥이 나고 가난한 사람은 장차 죽음뿐이다. 모든 창고는 비어있고 국정이 문란해 쌀로 고리대금업을 한다. 곡식을 빌려주는 등 여러 조처와 변통에도 아무 소용이 없다. 거리에선 내년 봄 종자를 먹고 오직 기대할 것은 나라에서 사환곡제(社還穀制)로 양곡을 빌려주고 가을에 받아들이는 일 뿐이라! 창고를 개방한 후로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어려움이 있자 각 읍 원님이  여러 차례 와서 독촉하나 서령 거두어들인 것도 하찮을 뿐이다.

 

○今年則司僕各島新捉馬厥數甚多年例分養之數比前倍些少元穀消盡於冬春之內是白在如乎○狗彘食人食之嘆年凶可(  )此外國兵曺一時錯料往來分給馬匹於楚軍爲白有如乎馬疲人怨之後分送三南經年留養馬令肥漨爲白乎矣尙無區處之柔又添別樣國馬爲白有置此則處置不甚重難會該曺急速指揮俾無不緊耗損之患事右巡?上達草 -551P

올해에는 또 말을 관장하는 관리가 여러 섬의 새로 잡아갈 말의 산출 수를 많이 늘렸다. 해를 두고 년 년이 나누워 키우는 수가 전보다 배나 된다. 농가에 빌려준 알량한 양곡도 다 없어진 겨울과 봄 동안에 이러니, 짐승이 사람 먹을 것을 먹어 치우는지라! 탄식하나니 흉년에 어찌(  )하랴!  이는 잘못 헤아려 다른 나라 병조에 한꺼번에 오가며 금군에게 마필을 나누워 주었는데 말은 고달프고 그들은 원망하였다.

뒷날 충청,전라,경상도에서 말을 키워서 해를 두고 번갈아가며 나누워 보내야할 것을 당장 살찌우려하니 변통하여 처리할 방법이 아직은 없는 것이다. (청나라에)복종하기를 더하여 나라의 체면을 馬말로써 세우려하는지라 이는 곧 일을 처리함에 있어 신중하지 못하고 담당하는 관료들의 의사가 분분하여 긴요치 않은 것이 없다하고 급히 처리하니, 긁어 부스럼 내는 걱정스런 일이다. 右巡?이 상소하였다.

 

中國鄭軍門上書曰祖大受出敵己久尙無勝否臣請一戰以決勝敗帝以謂鄭也年少之人爲氣所使妄料輕敵不許鄭再請之帝乃許之因給四萬騎貨賣四萬加之自募四萬幷十二萬而出祖將給○汗曰帝以我無功以他將代之我則將難免拿致之誅願投入以啚生汗信聽簡精兵三千直入組城組將閉門盡擊無有漏汗見欺大憤擧兵而行鄭師不意相遇於伊州尉以短兵殊死力戰鄭且戰且上高峯貨賣二萬未及登山爲胡被殺汗自後不敢輕犯相望結陳而己

명나라 정군문이 상소하길 총병 조대수는 적과 대치한지 오래되었으나 아직도 승패를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신이 승패를 가르는 일전을 치르고자 청합니다. 하니 명황제가 홍승주를 총독으로 삼았는데 젊은 혈기로써 망령스럽게 적을 가볍게 여기므로 허락하지 않았으나 다시 간청하므로  허락하여 기병 4만 군사와 용병 4만에 지원병 4만을 합하여 12만이 출병하여 총병 조대수를 지원했다. 청나라 칸이 말하길 “다른 장수로 대신하는 것은 내가 공이 없는 임금이니 내가 즉시 잡아다 주살하여 치욕을 면할 것이다. 하였다. 살기를 바란다면 들어와 항복하기 바란다. 하니

칸이 이글을 곧이듣고 정병 삼천으로 곧바로 조대수의 성으로 진격한 것이다. 조대수는 성문을 굳게 닫고 심한 공격에도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칸이 심히 격분하였다.

12만으로 출병한 홍승주는 의주부에서 생각지 않게 마주쳐서 가까운 거리에서 필사적인 전투를 벌였다. 홍승주는 한편으로 싸우고 한편으론 송산으로 올라갔다.

용병 2만 명이 산에 올라가기 전에 청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칸이 이후로는 감히 가벼이 공격하지 못하고 서로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을 뿐이다.

☞: 당시 明史및 靑史의기록상 이때의 군문은 정군문이 아니고 洪承疇홍승주였음. 鄭崇儉군문은 三月에 하옥되고 洪承疇홍승주가 9월 지원군으로 금주에 출병했음

당시 왕조실록 내용: 仁祖19年月 21日

대명의 군사가 청인과 싸워 전세가 불리하자 기병은 도주하여 송산보로 들어가고 보병은 배를 타고 도주하였는데, 영원과 행탑 등지에서 죽은 자가 즐비하였다. 이 당시 조대수가 금주에서 포위된 지 여러 달이 지남에 중국이 크게 군사를 조발하여 보내 구원하였는데, 군문홍승주가 나이가 어리고 오만하여 여러 사람의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 패배하였다. 대수가 청국의 진영에 사람을 보내, 포위된 지 9개월이 되었으니 빨리 교전하여 승부를 가리자고 말하였으나 청나라 칸이 들어주지 않았다.

 


○宣言先運軍甚精勇使我國得捷爲謝因請軍兵○以我國先運炮手不入戰所優對以送者有意存焉自後例爲交代入送之易胡也其爲謀也巧矣

우리나라에서 임금을 호송하던 포수부대가 싸움에 투입되지 않은 것은 우리가 파병해준 뜻에 부응하여 특별히 대우한 다는 뜻이다. 이후에도 청병과 교대하여 보낼 때에도 선례가 된 것이니 그 계략이 교묘하다. 선언하되 임금을 호송하던 포수부대는 우리나라에서 과거 급제자를 뽑은 최고의 정예부대이니 지원군을 청하면서 사례한 것이다.

☞: 조선군은 정밀한 총을 가지고 있어서 명나라 조대수의 군사를 많이 죽였는데, 조대수는 군대에 명하기를 청병의 머리 하나에는 은 50냥을 주고 조선 군사의 머리 하나에는 100냥을 준다고 했다.

 


○運粮胡差十二名出來道過潛商十二人縶縛問之十二人直招曰我義州人以府尹之命往唐陣云則捉囚義州而到京         

군량미를 운송하는 청나라 사신이 나오다가 비밀리 무역하는 장사꾼 12명을 붙잡아 왔다. 물어보니 12명이 사실대로 고하길, 나는 의주사람인데. 의주부윤(황일호)의 명을 받고 중국 진영으로 가려한다고 하여 의주에서 서울로 붙잡혀왔다. 

 


會百官袛迎廟堂辭避上曰不爲袛迎者罷職勢不得已皆袛迎胡差而義州府尹以黃一元交通中國請拿未定刑卽拿致則胡差列百官回示曰百官中有如此犯誅之其中人鄭明時亦甚作

백관들을 회례하고 묘당에서 왕의 행차를 맞이하는 의식을 거절하며 임금이 말하길 파직을 당한 꼴이니 부득이한 상황에서 모든 의식을 거절하는 것이다.

청나라 사신이 의주부윤 황일원이 명나라와 내통하는데도 아직도 잡아들여 벌주지 않는다며  지시하길 즉각 잡아들이라하면서 또한 줄지어서있는 백관을 둘러보며 말하길 백관 중에 이와 같은 죄를 짓는 자는 주살할 것이다. 하니 그 중에서도 정명수의 작태가 극심했다.

 


遂赴出黃顧語百官曰吾無罪捉給至於此極國史如此願僉眞情之因垂淚曰吾母戒余曰吾欲観榮華吾勉力發身畢竟若此吾無兄弟獨身使先靈絶祀不孝莫大觧宝釖賜斬者曰速斬我母僾遇恃朋執手同與病錄藥各曰吾児重速劑送此藥詳傳我之戒勿學業文武蔵踪畎畒遂被戮聞者莫不下淚焉捉囚十二人盡殺之

이윽고 끌려 나온 황일호가 백관을 둘러보며 말하길 나는 죄 없이 붙잡혀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라 일 또한 이와 같아 여러분에게 (장차 나라 일을)진정 눈물로 호소한다. 나의 어머님이 경계의 말씀하시길 내가 영화를 보고자한다면 애쓰고 힘써서 수신제가하라 하였는데 마침내 이렇게 되니 나는 형제 없이 홀몸으로 선령의 제사가 끊기게 되니 크나큰 불효다. 형리에게 차고있던 보검을 풀어주며 주며 속히 죽여라. 내 어머니께서 그 언젠가 나의 친구를 만나 손을 잡고 부탁하길 같은 병에도 약이 다르다며 말씀하시길 우리아이가 병이 중하고 급하니 속히 약을 지어 보낸 것이라며 꼭 나에게 전해 달라는 약이 있었는데

그 약이란 곧 경계의 말씀이었다. 문무의 학업일랑 밭고랑에 묻어 버리고 시골에 숨어 살라는 말씀이었거늘 마침내 억울하게 죽는다. 소식을 듣고 울지 않는 자가 없다. 잡아온 죄수 12명을 모두 다 죽였다.

☞:  黃一元은  黃一皓황일호 이다. 1588∼1641 본관: 창원 사헌부장령 때 병자호란 시 인조를 호종 독전어사(督戰御史)로 화전(火箭)을 이용하여 적군을 물리쳐 전공을 세웠으며, 척화(斥和)를 적극 주장하였다. 난이 끝난 뒤 호종한 공으로 통정대부에 올라 진주목사에 제수되었다. 七義士

七義士(칠의사) :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 칸을 죽이고 명과 우리나라 국권을 회복하려다가 사전에 그 사실이 청에 발각되어 청의 명으로 할 수 없이 우리 정부에 의해 사형을 당한 황일호 ·최효일, 차충량· 차예량·안극함, 장후건, 차맹윤

 


○胡差十二名不時欲求景南關庙百官齊迎出去之際色正郞以人馬趂未整齊赤脱北結提畒蹄踏其爲困辱不可勝記

청나라 사신 12명이 갑자기 남문 밖에 있는 (중국 촉한의 장수)관우 사당을 보기를 청하여 백관이 나아가 영접하였다. 인마가 뒤좇아 가는데 혼잡을 정리하는 색리가 미처 대치하지 못하여 남쪽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어 발굽으로 밭을 밟아 그 곤욕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義州出身崔孝元當初出際之日見國勢難攴率妻孥懷重寳擧家載舩直抵中原水往之計其慮也深且遠矣卓乎其不可及也

의주출신 최효일이 당초에 (명나라로)나가려고 할 즈음 나라의 어려운 형국을 보고 식솔을 다그치고 가족을 설득하여 가산을 정리해 온 집안이 중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뱃길을 이용해 (명나라로) 들어갈 계책을 세우니 그 뜻이 깊고 원대하니 그 탁월함에 도저히 미칠 수가 없다.

☞:   崔孝元은 최효일(崔孝一)이다.  ?  ~1644  七義士 칠의사 병자호란 때 임경업의 휘하에서 전공을 많이 세웠다. 황호일, 임경업 등과 청나라 태종을 암살할 것을 모의하고 등주로 건너가 명나라 사람들과 함께 심양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하였다. 1644년 명나라가 망하자 의제의 빈소에서 10일 동안 통곡하면서 단식하다가 죽었다. 12월 8일청나라 사신이 의주에 돌아와 최효일(崔孝一)의 족속 12인을 죽이고 갔다.

 


市直木一匹無過米一斗半○十二月十六日鵾變生

시장에서 광목 한필 값이 쌀 한 말 반 밖에 안한다. 12월 16일 곤변이 태어나다.

☞:  鵾變곤변: 큰아들 鈺옥의 셋째 아들 족보에는 鯤變곤변으로 기록돼 있음.

 


○李回寶作詩曰 

(인조임금이 삼전도에서 굴욕적으로 강화하자 이를 보고 은거했던)이회보가 시를 지었다.

憶曾風雨打孤城  비바람 몰아치는 외로운 城의 옛일 생각하니

天柱推顚地軸傾  하늘을 거꾸로 헤아려 땅 지도리 기울어있다.

我忍獨留侄丙子  나는 삼전도 비극을 멍청히 홀로 견디었는데,

君能先逝在崇禎  임금은 명나라를 먼저 버렸네.

人情自古皆衰死 자고로 인정은 모두 메말라,

世事如今孰願生  이런 세상 누가 살길 바라리.

若到雲鄕朝列祖 모여든 구름 속에 열성조 혼이 머문다면,

善爲辭說莫分明 잘했다는 말 분명 않으리.

☞: 崇禎: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 때의 연호(1628~1644).

李回寶 1594~ 1669 본관 진성.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다 항복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김자점(金自點)의 반역을 예견했고 후에 그를 탄핵하여 유배케 했다. 이로 인해 직간(直諫)하는 위국충절이 뛰어나다 하여 사복시정(司僕寺正)에 특진됐다. 저서: 석병집

 


○淸陰答之(汗)言曰臣各爲其主道其志耳口吾口也志吾志也以吾之口告吾志于吾君而吾君不從豈意細微之事播及於他國乎乃斥和事也

김상헌이 (청나라에 잡혀가서) 대답하길 신하는 각자 의지로써 그 주도하는 바를 행할 뿐이다. 그 뜻한 바를 말한 것은 나의 말이요, 본심은 나의 본심이다. 나의 임금께 내가 고한 말이 나의 본심이니 나의 임금을 따르지 않았는데 뭣 때문에 세세히 대답하겠는가. 이와 같은 일이 번져나가니 다른 나라에서 너희나라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 淸陰 = 金尙憲김상헌의 호 1570~1652 본관: 안동. 강직한 성격과 기개로써 심양에 잡혀가 6년 동안 청인들의 굴복 요구에 끝내 굽히지 않고 불복하여 저항. 청나라 사람이 심하게 힐문하니 상헌은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고 말하니, 청인들이 서로 돌아보며 혀를 차고 말하기를,“정말 못 말리는 늙은이다.”하였다. 청인이 의롭게 여기고 칭찬해 말하기를‘김상헌은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하였다.  1645년 소현세자와 함께 귀국했지만, 여전히 척화신(斥和臣)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인조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벼슬을 단념하고 석실(石室)로 나아가 은거하였다. 1649년 효종 즉위 뒤 대현으로 추대 받아 좌의정에 임명되었다. 이후 수차례 은퇴의 뜻을 밝히면서 효종에게 인재를 기르고 대업을 완수할 것을 강조하였다.  저서: 야인담록. 남사록. 청음집

 

 

 

 

by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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爭쟁 = 夬쾌   

 


爭  = 夬
 
위 좌측 그림상형이 갑골문자 爭 자로 알려진 상형이다.
위 상형은 爭자가아닌 夬자의 상형이다. 
                              

 

 

 

                              

위의 상형을 모두 爭쟁자라고 한다. 


 

위 상형이 싸움을 하는 그림이라면 대략 머리위쪽에서 싸우는 모양인데 
시방 공중전을 펼치나!  F15........
夬쾌 자의 그림에서 다른 뜻을 보자.

 

천문적 의미 :남중한 별자리. 당일 좌표. 
 

夬쾌자는 예날 決결자와  같은 글자이다.
고문자의 상형은 위에 보는바와 같이 다르지 않으나.
갑골문자에서 전혀 다른 그림이 되었다.
아래 상형이 夬쾌자의 갑골문 상형이다.


현재 저 자형은 갑골문을 해석할 때 “전쟁을 하다”라는 뜻으로 爭자로 해석된다.
상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위쪽 하늘과 싸움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爭이라고 했나보다.
둥근 반원은 무슨 의미이며 왜 머리 위쪽에서 싸움을 벌이는 그림을 그렸을까.

천문으로 보면 다른 의미가 보인다.
반원은 하늘의 의미이고 아기모양의 X표는 별자리 표시이다.
갑골 문장에서 많이 보이는 글자이다.
저 글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수천 년 전의 역사는 다르게 해석 되어진다.

위 夬자에 관련해 이미 올린 글을 소개한다.

설문해자를 쓴 허신은 문자의 기원에 관련해서
그 기원은 주역의 夬卦에서 취했다고 설명한다.
고대문자의 기원에 관한 내용이 주역에 기술돼 있었다는 말이다.
夬자에 관련된 글을 다시보자.

 


夬자는 하늘에 별을 관측하는 모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아기모양의 X표는 당일 관측하는 별자리의 표시이다.
즉 날자 별로 변하는 별자리중  당일의 관찰 대상의 별자리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당일 子時밤0시에 남중하는 별자리 정도의 의미로 보면 된다.
위 갑골문상형의 의미는
夬: 남중한 별. 관측 대상별. 측정별. 당일 좌표 등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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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적의미 :  천문을 기록하다.    
                              
                   
화를 당한다는 뜻이란다.
우측 붉은색의 상형이 갑골문자전에 보면 禍화 자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저 자형은 무슨 글씨인지 해독할 수없다고 한다.
아마도 갑골학자 동작빈 등이 위 상형을 보고
어떤 기물에 짐승이 해코지를 하는 모양으로 보고 禍화 자라고 해석한 듯하다.
천문학적 해석을 해보자.
위 상형과 유사한 그림들이 갑골문 자전에는 무수히 많다.
상형의 기본이 되는 그림부터 분석해 보기로 한다.


가장 본 바탕이 되는 그림은 네모상자모양으로 시작된다.
ㅂ자 모양으로 위가 좁은 상자의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갑골문자 해석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천문의 눈으로 보면
위 상자모양은 무엇인가를 담아 둔다는 그릇의 의미이다.

 


卜 자를 담았다.
卜자는 “날자”라는 뜻이다.
날짜(day)를 담아두었다는 말이다. 날짜를 담아두었다는 말의 뜻은
일기를 썼다는 말이다. 어떤 일기?
그날의 천문 관측 내용을 적어 두었다는 말이다.
하늘의 별들의 좌표를 살피고 그 관찰한 내용을 적어두었다는 뜻이다.(2번 그림)
3번 그림은 卜자가 위에 그려있다.
그날의 천문내용을 기록한다는 말이다.
4번의 그림은 3번의그림을 통속에 넣어 두었다.
그  의미는 그날의 천문 관측 내용을 기록해서 보관 한다는 뜻이다.
5번 그림은 일년 전의 천문 기록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천문기록을 해놓은 통에 짐승이 올라타고 있나?

본래는 천문기록은 거북의 등껍질에 기록했다.
저 그림은 특이하게도 소뼈나 말의 뼈에 기록했다는 말인 것이다.
牛甲骨우갑골 馬甲骨이 출토된 증거이다. 
 

禍화 자는 재앙의 뜻이 아니라
天文記錄천문기록이라는 뜻이다.

 


갑골문자를 해석하는데 있어 ㅂ자 모양을 바탕으로 그려진 상형은 무수하다.
이 내용만으로도 한권의 책이 될만하다.
여기에서는 산해경. 석명등 고서를 천문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장이므로
갑골문자의 더 세부작인 내용은 갑골학에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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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_PIC2B.gif



X_PIC26.gif 천문적 의미 :  천문관측을 하다.

                                
맨 아래 설명
 
X_PIC2E.gif

 

 

 




貞정 자는 점을 친다는 뜻도 있다.

설문해자에 貞정은 卜問이라했으니 점괘를 묻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저 卜자를 천문해자로 해석하면


卜은 날짜라는 의미이니
卜問복문은 날짜를 묻는다는 말이다.
금문을 보면 볼 見자 위에 卜자가 그려있다.
날짜를 본다는 뜻이다. 그 의미는
시간을 따져 묻는다는 것이며 천문에 관한 이야기다.
규표와 천문 관측기를 통해 행성의 위치로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니
천문학자에게 시간을 묻는다는 말이다.

이제 갑골문자의 貞자 그림을 통해 천문적의미를 고찰한다.

貞자는 솥 정鼎라고도 하는데
방패연 같이 생긴 모양에서 솥의 이미지를 인신해서 貞자라고 해석한 듯하다.
혹자는 問문자라고도 주장한다. 

  자세히 살피면
상형은 갑골문자 丙병자가 아래위로 마주한 모양이다.
丙병의 의미는
“공간”이라는 뜻이 있다.
두 공간을 나란히 맞춰놓은 그림은
하늘과 땅 사이 두공간이 아래위로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이는 밤하늘의 별자리 공간과 천문도상의 공간을 나란히 맞춰놓은 것이니 천문 관측을 위해
1. 관측기구의 수평을 맞추고
2. 북극 축을 맞춰놓은 모양이 갑골문 貞정자의 의미이다.
이런 일련의 준비가 된 연후에야 정확한 관측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갑골문자 貞정자의 의미는
두 공간을 맞춰보다. 즉
貞정: 천문 관측을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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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_PIC3A.gif

 
                             맨 밑에 설명
 
천문적 의미 : 날짜. ....일. day X_PIC26.gif   




갑골문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다.

점쟁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상형은 불쏘시개 감 나뭇가지와 같이 생겼다.
천문으로 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상형의 천문학적 의미를 설명하자면

부상과 탕곡의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다.


 
태양이 목욕하는 탕곡이란
해가 물에 비친 모양을 보고 목욕을 한다고 표현한 것이고
부상나무란
해가 떠오르는 박명시간의 위치를 알려주는 규표 역할을 하는 나무를 말한다.
저 해는 춘분에는 정 동쪽 나무에서 떠오르다가 날이 갈수록 동북쪽에서 떠오른다.
매일 그 자리가 조금씩 바뀐다.
卜자의 상형은
당일 날에 해당하는 나무를 가르키는 모양을 그린 것이다.
즉 “오늘의 해가 떠오르는 나무는 이 나무다”라는 표현이다.
즉 몇 월 며칟날의 나무라는 “일자”를 의미한다. 
 
庚申卜이라 써있다면 경신일이라는 말이다.
현대어로 적어보자면
庚申水卜 경신일 수요일이다. 라고 읽으면 된다.
卜은 날짜. day의 의미이다.  X_PIC26.gif

갑골문자에서 사용된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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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侯乙墓二十八宿漆箱 칠기상자 속의 천문  

 

 

 

曾侯乙墓二十八宿漆箱 칠기상자 속의 천문

 

 

  

 

曾侯乙墓二十八宿漆箱 칠기상자


湖北省隨州市擂鼓부두의 무덤에서  출토

28宿 유물 자료로 가장 초기의 것으로 알려진 증후을묘 칠기 상자의 사진이다.

 

 

 

춘추 전국 시대의 유물이다.


좌측에 서방 백호그림과  우측 동방 창룡의 그림 속에 28宿도가 그려져 있고 가운데 북두칠성의 모양이 보인다.


 

 

유물의 추정 년대는BC 433년 이후로 알려져 있다.

중국학자들은 위 유물 그림내용을 분석하면서 완전하지 못한 그림이라고 질책하고 있다.

1. 남방 주작과 북방 현무의 그림이 없으며 28수의 角분할이 정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2.서방 백호의 그림에는 胃,昴,毕이 자리해야하는데  井,鬼,柳의 별자리가 잘못 그려있고

동방 창룡의 자리 역시 잘못된 별자리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 생각으로는 조금도 틀린 부분이 없는 오히려 BC 433년대의 훌륭한 천문 수준을 나타내보인 완벽한 천문도로 보인다.

고대인들의 천문학 수준이 우리 은하수의 구조까지 이해하고 있었다는 이론으로 접근해 보면 정확한 천문 기록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검토 1. 하늘의 별자리는 동방. 서방. 남방, 북방 현무 등의 그림 속에 묶어 놓을 수 없다.

하늘의 별자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돌고 있다. 돌아가는 별자리를 어떻게 동서남북에 고정시켜 놓는다는 말인가 !

단지 별자리를 봄여름 가을겨울 四時의 별자리를 나타내기위해 천문도상의 위치를 동서남북으로 정해졌을 뿐이다.  그러니 위 그림의 별자리는 위치가 잘 못된 것이 아니다.


본인은 28宿도는 은하수의 궤적을 중심으로 분할했다는 이론을 밝혔다.

위 그림 또한 은하수의 궤적을 따라 이동하는 별자리의 현재진행형 그림이다.

남방 주작 북방 현무의 그림을 그려 넣지 않은 이유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우리 은하의 궤적은 훌라후프와 같은 단면으로 나타나 보인다. 따라서 동서남북의 4방위 방향을 설정할 수없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방향만을 표현할 수 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하는 양 방향만 존재한다.

따라서 위 칠기그림은 이동중인 은하수의 현재진행형의 한 순간을 나타내보인 그림인 것이다. 동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은하수의 모습이니 당연히 남방의 주작그림과 북방의 현무그림은 그려 넣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검토 2. 고문자 斗字

그림 중앙의 북두칠성 모양의 상형은 고문자 斗字의 상형이다. 그런데 문자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여기에서도 천문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천구의 북극과 지구의 기울기 그리고 밖으로 둘러친 은하수의 궤적 등의 표현한 것이다.  우주 밖에서 바라본 우리은하와 지구의 모양이다.


 


 

 

훗날 斗字는 十자와 두개의 점으로 만들어졌다.

十자는 건건히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지구가 건건히 돌아가는 하늘의 두 점은 북극과 천구의 북극점의 표현이다.

斗字가 만들어진 천문적  문자의 기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줄임 상세내역 / -天文解字-




검토 2. 현재 시간의 확인

 

상자의 좌측 백호의 복부 아래쪽에 초생 달과도 흡사하고 두툼한 버섯모양의 山자의 상형이 그려있다.

고대 문양에서나 갑골문자에서 보이는 상형이다.

중국학자들은 이 문양을 서방 백호그림 아래 그려있으므로 해 그림자의 의미로 해석하거나 또는 불 火자로보고 동방청룡七心宿의 별자리인 전갈σ“안타레스”별을 그려놓은 것이라고 한다.


본인의 天文解字에서는 위 상형을 占字로 해석했다.

占의 의미는 표시한다는 의미이다. 방향(方向)과 사각(射角)을 겨냥해서 그 좌표를 표시한다는 의미이다.

칠기상자의 그림으로 되돌아 가보면 위 상형이 가리키는 방향은 參宿의(오리온ζ) 별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즉 서방백호의 복부아래에 있음으로 서쪽하늘에 參宿오리온별이 떠있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왜 서쪽하늘에 오리온 별자리가 떠오르는 천문도를 그려놓은 것일까?

무덤의 주인공이 사망당시 서쪽하늘에 오리온 별자리가 떠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아직 정확한 사망일시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대략적이나마 그 날짜를 추정해 본다.

자료에 의하면

“執徐歲”七月(楚惠王五拾六年子正月)亢星與歲星晨出東方,甲寅朔初三丙寅日曾侯乙逝世;

“執徐歲”八月(楚惠王五拾六年子正二月),心星與歲星晨出東方,此月曾侯乙下葬。

曾侯乙墓天文星象圖所示曆法與《馬王堆·五星占·木星》的歲星曆法一緻。(見歲星紀年曆譜)


사망일자는 楚惠王五拾六年子正月)亢星與歲星晨出東方,甲寅朔初三丙寅日曾侯乙逝世

            = BC433년 1월3일이다. 양력 -433 2월 7일

이날의 별자리를 보면  -433 2월 7일01:20분에 서쪽에  參宿오리온별이 떠있다.


 

                                                 BC433.02.07 01:20  E/108.20.00  N/30.33.48


이 날짜가 정확하다면 무덤 주인공의 사망시간은 01:20분이다.

본인으로써는 위자료 내용을 정확히 파하지 못한다.

우선 “甲寅朔初三丙寅日曾侯乙逝世” 정확한 日辰의 의미를 알 수없고 당시의 역법으로 歲首의 시작이 10월인지 동지인지 춘분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수준이므로 정확한 내용은 고천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다만 위와 같은 방법으로 꼭 밝힐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검토 3.   문자의 의미 1.


자료에 의하면

甲寅三日”與星象圖錶示的時間相差一個月,不是衕一時間;

星象圖中“亢,甲寅三日”和整體圖象錶示:

執徐歲”七月(楚惠王五拾六年子正月),亢星與歲星晨出東方,

그림속의 28宿 문자 모양 중에 亢宿 字아래 “甲寅三日”이라 적혀있다.


글의 의미를 천문도에서 찾아본다.

亢宿의 별자리는 서양벌자리 “처녀κ(κ Vir)”의 위치이다. 

당시의 추분점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亢宿의 별자리는 추분점으로부터 3일의 시간적 차이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BC433년 추분점의 좌표이다.  亢宿의 위치와는 2.957도의 시간 값을 갖는다.

황도와 적위의 교차점이 추분점이다.


그림은 추분점이 정남의 위치에 있는 그림이다.

하루에 0.985‘씩 오른쪽으로 별자리가 이동해가면 3일 뒤에 亢宿의 별은 정남 한다는 말이다.

 

 

 

                                           BC433.02.07 04:20      E/108.20.00  N/30.33.48

이좌표의 표시야말로 천문상 가장 정확한 시간 값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다.

세차운동으로 인해 -433년 이후에는 다시는 볼 수없는 좌표인 것이다.

현재의 추분점은 사자자리와 처녀자리로 이동해 있다.

위 유물의 년대 추정은 -433년이 정확하다.

문제는 위 문양 중 甲寅三日이라는 글씨의 해독이다.

三日이라는 글씨는 확인 할 수 있으나 위 두 글자가 甲寅이라는데는 아무리 보아도 甲寅이라는 글자는 아닌 듯하다. 실물을 보지 못했으니 더 이상 논할 수 없다.

그림 해석상으로 보면 “추분”이라는 의미가 보여야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寅자가아닌  秋자로보이는 것을 어쩌랴!


검토3. 문자의 의미 2.

그림의 28宿 문자 중 斗宿과 牛宿 사이이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s자형이 옆으로 누워있는 상태이다.

중국학자들은陰陽魚太極圖 음양어태극도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상형은 申,神자의 고문자이다.


   


천문도 상에서는 斗宿과 牛宿사이에 있으면서 牛宿쪽으로 점이 찍혀있다.

이 의미는 동지점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니까  고대 甲자의 천문적 의미는 최대값, 극에 달한 상태의 의미이다. 

천문에서 극에 달한 상태 夏至, 冬至라는 말이다.

고문자상형에서 두 陰陽이 맞물려서 돌아가는 太極의 모양을 하고 있다.

건건히 변하는 음양의 변화를 천문에서보자.

천문상의 음양이 변화가 태극의 기원을 만든 것이다.

陰으로써 땅이 23.5도 기울어 돌아 갈 때 하늘의 천구의 極또한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궤도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모양 즉 태극이다.



 



 

S자 모양으로 건건히 돌던 모양이 어느 순간 나란히 정열되는 상태

 

甲자의 古文字 속에 그려져 있다.

천문상 나란히 정렬된 상태는 어느 때인가.

하지. 동지 때의 좌표는 천구의 북극과 지구의 북극이 나란히 일직선상에 나타나 보이는 때이다.


지구의 축을 고정시키면 천구의 極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천구의 極을 고정시키면 지구의 축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끊임없는 변화는 천문도구 간의를 돌려보면 그 형태가 보인다.

날짜에 맞춰서 사유환을 돌려보면 아래쪽 하지점은 6개월 후 위쪽으로 올라가서 동지점과 그 위치가 바뀐다.

한 지점의 일련의 운동 변화는  s자형의 곡선을 그린다. 높낮이와 좌우의 변화가 일련으로  이뤄지는 뭬비우스 띠와 같은 변화를 평면상의 도형으로 나타낸 것이 곧 太極의 모양인 것이다.



위 칠기상자의 그림 속에 "s"申자는 斗숙과 牛宿사이의 동지점이 위치해있다.

   



이 그림 또한 -433년임을 증명하는 좌표인 것이다.


검토4. 옆면 그림


그림속의 발을 유심히 보면 여름에는 벌리고 있고  봄에는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다.

관측도구의 적도환과 황도환사이가  계절에 따라 벌려졌다 좁혀지는 모양의 표현이다.

   

아직도 여러 곳 꼼꼼히 살펴보아야할 곳이 많이 있다.

                                                    -- 줄임 --




 

 

 

 

 

( 2009년 03월 02일 21시 02분   조회:746 )   
이태수 2009-06-11 05:15:56
“執徐歲”七月(楚惠王五拾六年子正月)亢星與歲星晨出東方,甲寅朔初三丙寅日曾侯乙逝世;
번역: 집서세(執徐歲) 7월 즉 초혜왕 56년 子 정월(음력1월)에 亢星(항성)과 歲星(세성)이 새벽에 동방으로 떠오르는 때에, 갑인월(음력 1월) 초3일 병인(丙寅)일에 증훌(曾侯乙)이 세상을 떠났다.

해설: 집서세 7월은 초나라 달력으로 정월이다.
曾侯乙은 이두식 표기로 "증훌"로 읽는다(확신하는 것은 아님).
항성과 세성이 동방에 동시에 떠오르는 날짜를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초혜왕56년은 기원전 몇 년인지 확인 필요.

현재 음력 1월은 입춘일에 맞추어져 있는데, 초나라 때에 음력 1월은 어느 달에 맞추어져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이태수 2009-06-11 05:45:48
甲寅朔初三은 갑인월 초3일이라는 뜻입니다. 갑인월은 입춘일부터 경칩일까지를 뜻합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갑인월을 태음력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대략 양력으로 2월달입니다.

 

 

 

 

 

 

 

 

 

 

 

 

 

 

 

 

 

 

 

 

 

 

 

 

 

 

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자축 순서대로 1월부터 12월로 그 시작은 입춘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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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과 수컷 컴퍼스와 곱자

 



牝牡빈모 : 날짐승의 암컷과 수컷은 자웅(雌雄)이라 하고 禽曰雌雄 獸曰牝牡
           네발 달린 짐승의 암컷과 수컷을 牝牡빈모라 칭한다. 



천문적 의미 :   컴퍼스와 곱자의 축          
                      천문도상 적위와 적경선분 J_PIC40.gif

牝牡빈모는 컴퍼스와 곱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위 고문자에서 화살이 아래로 꽂힌 듯한 牛소우 자의 의미는
천문관측도구를 통해 정확한 좌표 값을 읽어내는 천문 행위의 의미라고 밝혔다.
즉 牝빈 자는 천문도구이 컴퍼스를 돌려 원을 그리는 상형이고
   牡모 자는 천문도구인 곱자를 통해 땅과의 높이를 계산하는 상형이다.
 

따라서  牝빈 자는 둥근 圓원의 중심을 의미하며 赤緯적위 선분의 중심축을 말하는 것이다.
        牡모 方방향의 축을   赤經적경 선분의 꼭지점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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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谷神곡신
 



 

 

 

 


谷神은 천문적 의미로 해석하면 원의 중심 즉

天文圖상의 北極북극이라는 뜻이다.

 


谷神이라는 단어는 老子노자와 列子열자의 글에서 보인다.

列子열자에 의하면 아래 글은 黃帝書황제서 라는 책의 내용에서 인용했다하는데

그 책은 현존하지 않는다.

 


老子 제6장 -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도는 텅 빈 산골짜기의 신과 같고 그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근본이라 한다.

그 뿌리는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 같고 천지만물이 아무리 써도 지쳐 없어지지 않는다.

 

 

 

천문적 의미

 

谷神不死:   북극부근의 주극성 별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是謂玄牝:   이를 일러서 玄牝현빈이라 한다.

 

玄牝之門:   현빈은 문인데

 

是謂天地根: 이를 일러서 하늘과 땅의 근본이라고 한다.

 

綿綿若存:   한없이 끝없이 그렇게 있기는 있는데 

 

用之不勤:   쓰고 또 써도 움직이지 않는다.

 


기존의 해석과 천문적 해석의 차이는 몇몇 글자의 뜻을 달리한 것인데 이미 밝힌 자형에 대한 부언 설명으로 마무리한다.

 


谷神不死:  북극부근의 주극성 별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谷곡:      天文圖 상 둥근 원의 적위를 말한다.

 

神신:      가장 높이 떠있다는 뜻이다.

 

谷神곡신:  天文圖 상 둥근 원이 북극 좌표로 높이 갈수록 줄어들어

           북극에 이르러서는 작은 점으로 표시된다.  

           바로 이곳이 谷神곡신이다. “북극 점

 


不死:      죽지 않는다는 뜻은 週極星주극성을 이르는 말이다.

           북극 주변의 별들은 땅 아래로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밤하늘에 빛난다.

 

           不死불사는 “週極星”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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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북쪽하늘의 주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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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謂玄牝:   주극성을 일러서 玄牝현빈이라고 했는데


玄현:       북극과 황극을 이르는 말이다.


牝빈:       컴퍼스의 중심축을 말한다. 즉 원의 중심 極點극점의 의미이기도하다.


            황극은 북극과 23.5° 떨어져서 북극 주변을 하루 한 바퀴 맴돈다.

            이 두개의 極이 현빈이요. 곧 주극성이다.

 


玄牝之門:   현빈은 문이라 했다.

            그렇다. 하늘의 문은 時間이다.

            저 두 극이 마주보고 돌아갈 때

            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是謂天地根: 이를 일러서 하늘과 땅의 근본이라고 한다.

            지구와 태양의 두 축을 이르는 말이니 더 이상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綿綿若存:   한없이 끝없이 그렇게 있기는 있는데 

用之不勤:   쓰고 또 써도 움직이지 않는다.



            매일 밤하늘별은 돌도 돌아도

            북극점은 영원히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북극점도 이동을 한다.


            아마도 저 글을 쓸 당시는 지구세차운동을 모르고 있었나보다.


            아니면 그냥 일상적인 표현이었거나.....


   

위 글은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현학자들이 심오한 철학의 의미를 부여한 내용이다.
 

천문해자로 새로운 해석을 하면서 기존의 해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 수학자와 천문학자들이 철학을 했다.


하나의 문자로 두개이상의 다른 해석이 가능한 것은 자연의 이치와 인륜의 이치를 동일하게 본 자연 순응의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천문학자가 하늘에 높이 떠있는 존재를 神이라 했다면 땅에 사는 인간은 그 최상의 것을 神이라 칭한 것 차이일 뿐이다.



따라서 고대의 이중적 언어로 이해해 주시길 기대하며.... J_PIC40.gif    

                                                         - 계속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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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은 물이 흘러내리는 모양이라고 한다.

층층이 볏짚을 쌓는 모양이다.


천문적 의미 : 층층이. 단계별 J_PIC40.gif


고대문자의 이해는 어린아이 눈으로 볼 때 가장 빨리 영감이 떠오른다.
천문적 의미로는 층층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물론 층층이란 수직적이 표현이다.
수평적인 표현으로는 불 파장이 퍼져나가는 모양을 연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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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고서에서 층층이라는 의미를 적용할 수 있는지 보자.
《前漢·律歷志》에 보면 黃帝使伶倫取竹之解谷
황제가 령륜이라는 음악작곡가를 시켜 대나무로 층층이 해결했다고 한다.
여기서 층층이란 음의 높낮이를 말한다. 도래미파솔....
대나무 피리로 음의 기준 주파수를 정했다는 말이다.
《爾雅·釋水》에는 水注谿曰谷: 물이 흐르는 계곡은 층이 진다.
《易·井卦》에는 井谷射鮒 우물 물결이 퍼진다. 붕어가 휘저어서
용례는 많으나  차후에 자세히 밝히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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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이 단계를 짓고 음률의 높낮이가 정해지고 물결의 파장이 겹겹이 생기는 현상을
谷곡이라한다.
천문에서는 층층이 둥근 원으로 이뤄지는 적위 선분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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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는 '칼'의 모양을 본뜬 글자. 그 쓰임에서 '자르다', '베다'의 뜻으로도 쓰임. 旁(방)으로 쓰일 때는 刂의 자형(字形)으로 되고, 사람의 성질(性質)이나 상태(狀態) 등을 나타냈다하고
회의문자로
勿(물)은 여기에서는 쟁기와 흙을 나타내는 모양이며 논을 갈아엎는 모양이라 하는데
禾 + 刀자로 구성되어 벼를 칼로 벤다는 의미가 더 확실한 설명 같다. 
禾자의 상형은 벼가 익어서 고개를 숙인 모양이라고 한다.
그런대 저 모양은 천문적으로 보면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천문적 의미 : 지나는 길목. 경로.       
禾자의 상형은 별과 행성이 각자의 길을 따라 높이 떴다가 내려앉는 모양을 그리고 있다.
그 지나는 길목에서 칼을 들이댄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利자이다.
이 말은 천문도상에서 칼날같이 정확한 좌표를 찾기 위한 준비단계라는 의미이다. 
 



利자가 별이 지나는 길목. 경로. 라는 의미를 자원 해설에서 찾아본다.

說文解字:利銛也人人刀和然後利人人和省라했다.
利銛也:         별이 지나가는 길목은 날카롭다.
                별자리의운행하는 좌표는 섬세하다는 의미이다.
人人刀和然後:   칼刀자가 더해져서 화합한 연후에   
利人人和省:     지나가는 길목에 더해 똑같이 맞춰서 자세히 살피는 것이다.
칼刀자가 더해진다는 말은 관측 장비의 측정기준점(적위 적경등)을 정확히 정렬한 연후에
별이 지나가는 길목에 고정시키고 정 위치에 왔을 때 자세히 살핀다는 말이다. 

《易》曰:利者義之和也라 했다.
          별이 지나가는 길목은 그 뜻이 화합한 것이다.
여기서 뜻이 화합한다는 말은 천문도상 계산된 예상 좌표와 실측정한 별의 좌표가 같은 값이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을 아래 글로 부언하자면   


《說文》引《乾‧文言》利者義之和也荀爽注云‘陰陽相和各得其宜然後利
利者義之和也: 별이 지나가는 길목은 그 뜻이 화합한 것이다.
荀爽注云:     순상(AD128~190)이 주석한 내용을 보면
陰陽相和:     음양이 서로 화합한 것이고
各得其宜:     각각이 얻은 것(좌표값)을 거기에 맞춘 것이다. (宜의: 똑 같이 맞추다.)
然後利;       그런 연후에 별이 지나가는 길목을 찾는다는 말이다.

천문관측을 하자면 관측도구의 밑에 물을 채워서 수평을 잡은 연후 실을 내려 천정과 수직선을 맞추고 북극에 정조준 한 연후에 북극 출지 값이 정해지고 황도와 적위. 적경 값을 미리 계산한 후에 별자리가 떠오르는 길목에 맞혔을 때 모두가 화합한 것이라는 말이다.

아래에 利자의 상형에 관해 명쾌한 주장을 했는데.V_PIC10.gif        
문제는 주장을 한 屈翼鵬굴익붕이라는 학자는 1961年대 사람이라는 점이다.
갑골문을 해석하며 내놓을 주장이다.

屈翼鵬《殷虛文字甲編考釋 》按: 利當是牛之初文從禾從刀其小點當象牛出之土凵也
利當是牛之:       利자는 당연히 소牛우자였다.
初文從禾從刀:     처음 문양에이어서 벼禾화자가 쓰였고 칼刀도자가 붙었다.
其小點當象牛出之: 그 작은 점들은 당연히 소 우자에서 나온 것인데
土凵也 :          土凵토감: 땅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다. 

 

 

 

 



본디 利자의 상형은 그림2의 모양인데 뒤에 그림1자의 모양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갑골문자 이후에 문자의 변천을 이야기 하는 듯한데
그 문양이 土凵토감: 땅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라고 주장 했다.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땅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土凵토감:은 천문도 모양을 말한다. 
 
천문도의 가장자리는 수평선이거나 지평선을 말한다.
원의 안쪽은 밤하늘이고 원 밖은 땅 밑쪽이라 우리는 볼 수 없는 곳이다. 
 
利이: 별이 지나는 길목. 경로.

利이:  천문상 시간값의 계산 ------  牛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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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字通정자통에 어원을 설명하면서

乾元萬物資始至哉坤元萬物資生至哉이라하여

 

건은 만물의 시작점이고

 

곤은 만물이 생기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또 정월 초하루를 元日이라하는데 기록에는 정월 초하루 朔旦삭단을 말하는 것이다.

 

左傳좌전에 註주하기를 임금이 즉위하고자 할 때

 

그 시작을 元으로써 확실하게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元을 1년이니 1월이니 하는 것은 元자의 본의와는 다른 것이다.

 

년호로 元자가 쓰인 것은 후대의 일로서

 

元年이라는 말은 사마천이 사기에 쓰면서 그리된 것이다.

 

古代帝王紀年無號 고대 제왕들의 연호는 없었다.

 

唐虞당우 (요순)시대는 載재. 夏하 시대는 歲세 商시대는 紀기 周시대는 年년을 사용했다.

 

따라서 元은 숫자로써의 1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문적 의미 : 易의 시작

 


설문해자에 보면

易역이라는 것은 元원의 기운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원의 기운이란 어떤 것인가?

 

 

 

 

 

 


爾雅<釋詁第一>에 元자의 용례를 보면

初哉首基肇祖元胎俶落權輿始也.라 했다.

위 나열된 初.哉.首.基.肇..13자 모두가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천문적 해석을 해본다.

처음이구나. 첫머리 정수리가 나오기 시작하여 천지가 혼돈스럽게 열리니 저울대와 수레바퀴의 바탕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初哉초재: 처음이구나.

首基수기: 머리의 기단이
 

肇祖조조: 나오기 시작한다는데. 謂始出也

元胎원태: 천지를 이해하기 이전의 혼돈 상태로 未有天地之先的混沌狀態.

俶落숙낙:  열리기 시작하니 開始也.

權輿권여:  저울대와 수레 바탕을 만든다.

처음 머리의 기단을 밀고 나온다는 말은 오성과 별들이 동쪽하늘에 떠오른다는 뜻이다.

저울대란 측정을 정확히 하는 기구이고

수레바퀴란 혼천의 간의 등의 천문 도구를 의미한다.

천문도 또한 수레바퀴이다.

 


기존의 해석은 權輿권여의 의미 또한 시작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저울대와 수레 바탕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시초를 이르는 말로써

저울을 만들 때는 저울대부터 만들고

수레를 만들 때는 수레 바탕부터 만든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최초 인간이 우주를 이해할 때 계량에 의해 수치를 따지는 것에서 비롯했다는 말이다.

즉 과학적인 접근을 했다는 말이다.

易역이라는 것은 元원의 기운으로 시작했다고 하는 말은 곧

易의 출발점은 과학이요 수학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周易에서 元원의 의미는 “易의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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亨자의 상형문자는 돼지해머리(亠☞머리 부분, 위)部+口+曰로 이루어진 글자로 거리를 둘러싼 성벽위의 높은 건물을 나타냈다하고 후에 형통하다의 뜻에 빌어 쓰였다고 한다.
 

饗(향)과 同字라고 한다.

 


천문적 의미 : 天文圖천문도라는 뜻이다.

 


고문자 상형의 ㅅ자형 모양은 밤하늘을 의미한다.

밤하늘 모두를 손안에 담고 있는 모양이다.

둥근 원안의 천문도에 밤하늘 모두를 그려 넣었다는 뜻이다. 

 

 

 

 

 


亨자의 字源해설 내용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자.

 

說文解字설문해자에 亨獻也 高省曰像進孰物形이라했다. 

받들어 올린다는 뜻으로 높은 곳을 살피는 것인데 나아가는 모양이 오래 동안 머물러있는 물체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높은 곳 하늘에서 움직이는 별들이 천문도안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천문도는 항상 하늘을 우러러 마주보게 된다. 獻헌의 의미이다.

이제 형자가 천문도라는 의미로 쓰이는 내용을 검토해 보자.

 


康熙字典

《易·乾·文言》亨者,嘉之會也《易·大有》公用亨于天子《詩·豳風》七月亨葵及菽

 


者,嘉之會也: 천문도란 즐겁게 모여 있는 것이다. 이 뜻은

                천문도상에 하늘의 별자리들이 각각의 위치에 다정히 자리한다는 뜻이다.

公用于天子:   公務공무로 쓰이는 천문도는 천자가 가지고 있다. 왕권의 상징이니까.

七月葵及菽:   7월의 천문도는 해바라기에 콩이 있는 듯하다.

                해바라기란 위 그림에서 보듯

                은하수 모양을 말하고 콩이란 그 사이사이에 빛나는 별들을 말한다.

                이때부터 은하수는 밤하늘에 일직선으로 떠올라

                찬란한 은모래 밭을 만드는 것이다.

 

新唐書‧回鶻下:
 

日入亨羊胛熟東方已明이라했다.

日入:    하늘의 태양이 천문도 속으로 들어가

羊胛熟:    양의 어깨에 오래 머무는 사이에
 

東方已明:  동쪽하늘은 이미 밝아오고 있다.

 


이 글의 뜻은 천문도상에서 보이는 白羊宮백양궁 자리에 태양이 머물고 있다는 말인데
 

다시 말하면

태양이 천문도 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밤이 되었다는 말이다.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간 후에는 땅 밑을 돌아서 밤새 머물러 있다가

동쪽으로 떠오르게 되는 순간

그 동쪽 부근에는 白羊宮백양궁이 위치해있다는 천문도 상의 설명이다.

공자가 살던 시기쯤에는(-500년) 白羊宮백양궁이 정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황도12궁 중 첫 번째가  白羊宮백양궁이고 당시대의 춘분점이다.

해가 다시 떠오르는 시점이 양의 어깨라고 했는데 정확한 표현인지 아래 그림을 보자.

 

 

 


일부러 꿰맞춘 그림이 아니다.  고래로 전해지는 천문도의 방위그림 그대로다.

당시 양자리에 있던 춘분점은 지구 세차운동에 의해 현재는 물고기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더 많은 용례가 있으나 이만 줄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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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그림  11111111111111111.jpg보기

 

 

                                               기존배열 번호             2진수      2진수배열            기존 번호 

 

 

본래 64괘를 원문의 순서에 따라 배열번호를 붙여놓은 그림이다.

 

2진법의 수치를 넣고 비교 검토해 보았다.

붉은색 수가 2진 값이다.

 

정확한 규칙성을 가진 배열이다.

상하로 음양수가 나누어 배열되었다.

위쪽은 홀수 아래쪽이 짝수이다.

 

대각의 합은 63이다.

 

수평으로 3괘의 수치를 분석해보면

두 괘의 합을 2로 나눈 수가 나타난다.

상단의 3괘를 일예로 보면 7. 39. 23의 배열이다.

( 7+39)/2=23이 된다는 말이다.

이 또한 모든 열에서 동일한 계산 값이 나온다.

 

모든 방향에서 64괘의 합을 구해보았다.

 

좌측의 수직1열은 기본의 시작 수 0-7의 합은 28이다.

수직열의 합계는 공차가 64인 수로 이루어 졌다.

28. 92. 156.......

수평열의 합계는 상단열280........하단열 224가 된다.

각 열의 합계수치와 상단열 280과 의 차이 값을 보면

32. 16. 48. 8.......등의 값은

맨 아래쪽 열의 수 배열과 동일하다.

좌우 대각선으로의 합은 공히 252이다.

28의 최초 수를 더하면 280이 된다.

 

이외에도 많은 규칙성이 내재한 듯하다.

만일 저 배열이 평면이 아닌 球面구면에 적용하면 또 어떤 규칙을 발견할 수 있을까?

수직11+2+3+4+5+6+7=28

28 28 주역천문의 의미심장한 수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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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비산경의 해제는 생략함

기존 해석과는 차이가 있음

 

周脾算經 卷上之一

주비산경 권상 -1-

 

 

包犠立周天歷度        포희씨가 하늘의 돌아가는 역법의 度數를 만들었다.

昔者周公問于商高曰  옛날 (bc 1.100년 경)주공이 상고에게 묻기를

竊聞乎大夫善數也     내 듣기로는 대부께서 계산을 좀 할 줄 안다면서?

請問古者                 하나 물어보겠는데

夫天不可階而升        무릇 하늘은 차례로 계단을 쌓아 올라가 볼 수도 없는데

地不可得尺寸而度     땅에서 몇m cm라고 도수로 값을 얻어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請問數安從出           물어보자 그 계산된 숫자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이냐?

商高曰

數之法出于圓方       수의 계산법은 둥근 원의 방향에서 얻어집니다.

圓出于方方出于矩    둥근 원은 방향에서 얻어지고 방향은 측정된 에서 얻어집니다.

 

상고는 이 물음에 대답할 때 천문도를 펼쳐놓고

하늘의 모양을 평면상 둥근 원으로 설정하고 의 활용을 설명한 과정이다.

 

주비산경에서는 

天圓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다 하고 말하지 않았다.

天圓方의 진정한 의미는 

천문도상 하늘을 설명할 때  

하늘은 둥근모양의 삿갓과 같고  땅은 천문도상에 그릴 수 없으니 방햫으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方의 의미는 네모가 아닌 方向의  뜻이다

 

 

矩出于九九八十一       측정된 9 * 9 = 81의 제곱수에서 얻어집니다.

故折矩以爲句廣三       그러므로 측정된 각은 바닥의 으로써(句廣)밑변3으로 하고

股修四                      정강이를 세워서(股修 90°) 높이4라 하면

徑隅五                      직선 모퉁이는(徑隅) 빗변5가 됩니다.

旣方其外半之一矩       이미 정해진 방향의 그 바깥쪽도 하나의 각입니다.

環而共盤得成三四五    한 바퀴 빙 돌아간 전체의 길이는 3 + 4 + 5입니다.

 

 

旣方其外半之一矩 이미 정해진 방향의 그 바깥쪽도 하나의 각입니다.

한 각이 생기면 선분을 따라 밖으로도 또 하나의 각이 생겨서 두각의 합이 360°를 이루게 된다.

 

兩矩共長二十有五是謂積矩

양쪽의 측정된 각의 합한 길이는 25인데 이것은(길이를)제곱한 각이라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積矩)피타고라스 정리라고 합니다.)32 +42 = 52

故禹之所以治天下者此數之所生也

그리하여 우임금이 이것으로 천하를 다스렸는데 積矩피타고라스 정리 개념은 바로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周公曰大哉言數      수학이란 것이 대단하구나!

請問用矩之道        分度器의 측정된 ()의 활용 방법은 어떠한 것이냐?

商高曰

平矩以正繩偃矩以望高 평행선에 分度器로 직선 먹줄을 띠우면 分度器의 측정된 (으로는 높이를 알게 되고

覆矩以測深臥矩以知遠 엎어진 각으로는 깊이를, 누워진 각으로는 거리를 압니다.

環矩以爲圓           둥글게 돌아가는 각은 원이 되고

 

 

合矩以爲方         합해진 分度器으로 방향이 생겨납니다.

方屬地圓屬天      방향은 땅에 속해있고 하늘은 원에 속해있습니다.

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方數爲典以方出圓 (동서남북)여러 방향을 겹쳐 그리면 방향으로써 원이 나타납니다.

笠以寫天            삿갓과 같은 모양이 하늘입니다.

 

: 여기서 삿갓이란 고대천문도구 또는 천문도의 명칭으로 해석된다.

 

혼천의渾天儀

 

 

 

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方數爲典以方出圓 (동서남북)방향을 겹쳐쌓아 그리면 방향으로써 원이 나타납니다.

이 말은 천문도를 놓고 주공에게 설명하는 과정이다.

천문도에는 하늘을 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천문도에는 땅을 그릴 수 없다.

천문도상에서 오직 땅을 알 수 있는 것은 적경 선분 즉 방위 밖에는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天圓地方 천원지방의 진정한 의미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는 말이 아니고

 

天圓地方: 천문도상 하늘은 둥근 원으로, 땅은 방향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천문도의 둥근 원 가장자리는 (방향값)적경값을 메겨놓은 지평선이 된다.

천문도상에서 땅은 방향으로써만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天靑黑地黃赤     (천문도에)하늘은 청색과 흑색으로 그리고 땅은 황색과 붉은색으로 그려있습니다.

天數之爲笠也     하늘에는 여러 개의 삿갓모양(적위선분)을 그립니다.

靑黑爲表丹黃爲裏以象天地之位

청흑색으로 표시하고 붉은색 선분이 황색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양이 하늘과 땅의 위치입니다.

是故知地者智知天者   이런 연고로 땅을 안다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고 하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聖智出于句           천문관측의 지혜에서 구부리는 각이 나왔고

句出于矩              구부리는 각은 分度器의 측정된 ()에서 나옵니다.

夫矩之于數           무릇 分度器는 숫자로 나타냅니다.

其裁制萬物           거기에 잘 정돈해서 실어 놓은 것이 萬物(하늘의 별자리)

惟所爲耳              펼쳐 있을 뿐입니다.

周公曰善哉           대단하구나!

 

 고대 천문도를 그릴 때

하늘의 赤緯度를 나타내는 둥근 원을 흑색으로 그렸다.

태양이 가는 길 황도는 청색으로 나타냈다.

별자리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많은 적위값을  圓으로 그렸다.

천문에서 天圓의 의미이다.

둥근 원의 가징자리는  땅이다. 땅은 황색으로 그리고

땅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방향과 시간값을 나타내는 적경은 붉은 선으로 그었다.

중앙의 붉은 원은 赤道이다. 천문에서 븍극과 수직 90도가 되는 선분 적경0°의 위치이다.

方向. 방향 시간값을 赤經으로 나타낸다.

 地方의 의미이다.

그 바탕위에 하늘의 만물인 별자리를 자리를 잡아 그려 넣었다는 예기이다.

 

용어 정리

:   구부린 각. 임의의

:   고대천문도구 또는 천문도의 명칭

:   측정된 . 분도기로 측정된

句廣: 밑변

股修: 높이

徑隅: 빗변

積矩: 피타고라스 정리

天圓地方 천문도상 하늘은 둥글게 땅은 방향으로 나타남.

:   천문관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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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髀算經卷上之二 - 1

 

 

 

昔者

榮方問于陳子             영방이 진자에게 묻기를

曰今者竊聞夫子之       내가 듣기로는 선생께서

知日之高大                태양의 높이와 크기를 알고

光之所照一日所行       빛나는 태양의 하루 운행과

遠近之數                   멀고 가까움을 계산하고

人所望見四極之窮       사람이 바라보는 곳에서 동서남북의 끝과

列星之宿                   줄지어가는 별들의 위치

天地之廣袤                천지의 폭과 길이를

夫子之道皆能知之       선생께서 모두 알고 있다고 하니

其信有之乎                그게 사실입니까?

陳子曰然                   그렇다.

榮方曰

方雖不省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서

願夫子幸而說之         선생께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今若方者可敎此道耶   지금 이 자리에서 저에게 그런 이유를 가르쳐줄 수 있겠습니까?

陳子曰然                  그러지.

此皆算術之所及         이건 모두 계산에서 밝혀지는 것이다.

子之于算足以知此矣   그대가 수학 실력만 충분하다면 알 수 있다.

若誠累思之于是         이에 대해 성실하게 생각하고 생각하면

榮方歸而思之            영방이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고

數日不能得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復見陳子曰               다시 진자를 찾아가서

方思之不能得敢請問之저는 도저히 이해가 않되서 감히 다시 묻습니다.

陳子曰

思之未熟                   아직 생각이 미치지 못했으니

此亦望遠起高之術而    이 또한 먼 곳을 보기위해 높이 올라가는 기술인데

子不能得                   그대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則子之於數未能通類    왜냐면 그대는 수학의 여러 가지계산법을 통달하지 못했다.

是智有所不及而          이는 지혜롭다고 해서 돼는 일이 아니니

神有所窮                   엉뚱한데다 정신이 팔려있는 것이다.

夫道術言約而             수학 계산의 비법을 요약하자면

用博者智                   여러 방법을 대입하는 것은 지혜요.

 

類之明                       비견하여 밝혀지는 것이다.

問一                          하나의 의문점에

類而以萬事達者           여러 가지를 비견함으로써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니

謂之知道                    일컬어 도통했다 할 것이다.

                                                                                                  類;比肩),견주다, 비기다,

今子所學                    지금 그대가 배우고자하는 바

算數之術                    계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是用智矣                    이를 이용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而尙有所難                 이는 오히려 어려움을 겪게도 되는데

是子之智類單              지금 그대는 한가지로만 계산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夫道術所以難通者        무릇 수학계산에 있어 도통하는 길이란 힘든 일이다.

旣學矣患其不博           공부는 했다하지만 (공식을)두루 이용할 줄 모를까 걱정되고

旣博矣患其不習           두루 이용할 줄 안다지만 계속 복습을 하지 않을까 걱정되고

旣習矣患其不能知        복습을 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지 걱정된다.

故同術相學                 따라서 같은 기술이라도 배움의 자세에 따라 상대적이고

同事相觀                    같은 사건이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다.

此列士之                    여기서 학생들의

愚智賢不肖之所分        어리석음 지혜로움 현명함이 있느냐 없느냐 갈려진다.

是故能類以合類           따라서 비견의 능력으로 여러 가지를 비교할 줄 알면

此賢者                       이는 현명한 사람이다.

業精習智之質也           세세히 배우고 복습하는 것이 지혜의 본질이다.

夫學同業而                 무릇 같은 공부를 했는데도

不能入神者此不肖        입신하지 못하는 것은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다.

                                                   (세세히 배우고 복습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이다.)

無智而業不能精習        지혜가 없으면 세세히 공부하고 복습할 능력이 없다.

是故算不能精習           이런 연고로 계산을 세세하게 복습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吾豈以道隱子哉           내 어찌 그대에게 뭔 큰 도법이라도 숨긴 줄 아는가?

固復熟思之                 오직 다시 한 번 숙고해 보게나.

榮方復歸思之數日        영방 집에 돌아와 며칠 생각해 봤는데

不能得復見陳子曰        답이 않나와 다시 진자를 찾아 같다.

方思之以精熟矣           제가 생각을 정말 올인 해봤는데요.

智有所不及而              지혜가 있어도 미치지 못하고

神有所窮知不能得        정신 줄을 끝까지 놓지 않았는데도 답이 않나오네요.

願終請說之                  마지막으로 한 번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陳子曰復坐                  거기 앉아라.

 

 

榮方復坐而請             앉아도 되겠습니까?

陳子之說曰                진자가 설명하는데

夏至南萬六千里          하지에는 남쪽 16.000에 있고

冬至南十三萬五千里   동지에는 남쪽으로 135.000리에 있다.

日中立竿測影            해가 남중 할 때 규표 막대를 세워 그림자로 측량하는 것이다.

此一者天道之數         이것이 제일 먼저 확인 하는 천도수이다.

 

夏至南萬六千里의 뜻은 하지 때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른 남중 때의 위치를 말한다.

하지 때 관측자의 천정 좌표에서 에서 16.000남쪽에 떠있다는 말이다.

동지 때는 지평선 쪽으로 지축의 기울기만큼 지평선 쪽으로 내려앉는다.

이곳의 거리가 135.000라 했다.

태양의 위치는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적도에서는 바로 천정위에서 떠 있고 북극 에서는 발아래 지평선 쪽에서 떠오른다.

위 글에서 관측자의 위치를 구해보자.

 

천정에서부터 하지에는 남쪽 16.000, 동지에는 남쪽으로 135.000리라 했으니

135.000 - 16.000 = 119000리이다.

이 값은 태양이 47°(-23.5°+23.5°)°이동한 거리이다.

따라서 의 값은 119000/47°= 2.531.9이다.

 

이제 천정과의 사이 각을 계산해보자.

16.000 / 2.531.9= 6.319°가 된다.

이 값으로 관측자의 위치를 산정해보면

적위 0 °에서 하지좌표 23.5+6.319= 29.819°관측자의 위치,

즉 북극출지 값이 된다.

 

동지 때 135.000리는 관측자와의 사이각이다.

6.319°+23.5°+23.5°=53.319°이다.

 

53.319°*2.531= 134.950리의 계산 값이 된다.

134.950리의 값이 135.000리로 두리 뭉실 값이다.

 

π, pi 파이 값을 3.14가아닌 3으로 계산한다.

그러나 전해지는 고서들의 내용들은 거개가 수학논리의 개괄적槪括的 서술이고 실전에서는 정확한 3.14값으로 계산 했으리라 추정된다.

 

 

책 내용이 실측을 한 내용이라면 관측자는 북위29.819°선상 저곳 어디에선가 태양을 관측한 것이다.

 

周髀長八尺夏至之日晷一尺六寸

                                규표의 길이가 8자인데 하지 때 해 그림자는 16치이다.

髀者股也正晷者句也

                                髀비는 높이이고 남중 때 해 그림자는 밑면을 말하다.

正南千里句一尺五寸     정남쪽으로 천리 밖에서 해 그림자는 15치이다.

正北千里句一尺七寸    정북쪽으로 천리 밖에서 해 그림자는 17치가 된다.

해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서 남쪽 지방과 북쪽 지방의 추녀 길이도 달라진다.

여기서의 북극출지 값을 구해보자.

tan 8 / 1.6 = 78.69°밑각

90°- 78.69°= 11.31+23.5 = n34.81°이번 관측지는 산동성 부근 어디쯤 된다.

 

日益表南晷日益長          날이 가면서 해 그림자는 점점 길어진다.

候句六尺                      그림자 길이가 6자가 될 때를 기다렸다가.

卽取竹空徑一寸長八尺    직경이 1촌 되는 구멍이 빈 대나무 8자짜리를 구해서

捕影而視之空正掩日而日應空之孔

 태양빛을 포착해(강한 빛을 가리고)보아 구멍에 바르게 감쌓 들이면 태양은 구멍에 꽉 들어차게 된다.

 

由此觀之率80而得徑一寸

             이렇게 보게 되면 80촌의 길이에서 직경1촌이 구해진 것이다.

故以句爲首以髀爲股

             이것을 가지고 밑변이 1이고 높이가 80인 직각삼각형이 얻어진다.

從髀至日下60.000里而髀無影從此以上至日則80.000里以率率之80里得徑一里100.000里得1250里故曰日晷徑1250

규표의 막대기를 태양 바로 밑으로 가는데 60.000에 가면 해 그림자가 없어진다.(적도까지 가면)

막대기를 따라 태양까지 다다른 거리는 80.000로 계산한 것을 가지고 환산하면 80리에서 1리를 얻은 값은 100.000에서 1250얻은 값과 같다.

그러므로 (1치 구멍 속의)해의 직경이 1250가되는 것이다.

 

 

 

若求邪至日者以日下爲句日高爲股句股各自乘幷而開方除之得邪至日從髀所旁至日所十萬里

하지 때 태양의 기울기를 구하는 것은

태양 아래를 밑변x으로 하고 태양의 높이를y로 하여

밑변x와 높이를y를 제곱하여 더해서 제곱근을 풀어 얻어진 하지 때 태양의 기울기를 따라 규표막대가 다다르는 곳이 100.000가 되는 것이다.

法曰周髀長八尺句之損益寸千里

법칙으로는 규표의 높이 8자 그림자의 장단에 따라 1촌에 1.000리가 된다.

故曰極者天廣袤也 그러므로 극이란 하늘에 너부러지게 그어져있다.

 

삼각비를 이용해 태양의 크기를 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極者天廣袤: 천문상 하늘에서 x y밑변과 높이만 알면 기울기를 그어 좌표를 알 수 있는 극점은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今立表高八尺以望極其句一丈三寸由此觀之則從周北103.000里而至極下

여기에 8자의 규표를 세워놓고 보면 그림자 길이는 13치이다.

이를 미루어 측량하면 주나라 북쪽은 북극에서 103.000에 이다.

여기가 극점의 아래이다.

여기서 북극출지값은

tan8/1.3= 80.77° 태양 기울기는 90-80.77=9.23°이다.

여기에 하지 태양 기울기 23.5°를 더하면 9.23+23.5= 32.73°북극출지 값이다.

북극은 관측자의 머리 위 천정에서 57.27°의 위치에 있다.

북극90°- 32.73° = 57.27°

57.27°를 가는 데는 103.000를 가야하니까.

103.000/2.531.9=40.68°를 더 가야한다.

북극에서 이 거리를 빼면 주나라 북극 경계가 된다.

90°-40.68°= 49.32° 주나라 북쪽 경계는 n49.32°이다.

몽고 울란 바트로 지역까지이다.

 

開方: 제곱근이나 세제곱근을 계산하여 그 답을 구하는 일

句股: 직각 삼각형 세 변의 길이를 구하는 방법.

乘除: 수학의 곱하고 나누는 법

方程: 방정식

: 기울기

: 자오 선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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榮方曰周髀者何 주비가 무엇입니까?

陳子曰

古時天子治 옛날 천자가 세상을 다스림에

周此數望之 우주가 돌아가는 것을 숫자로 계산해 본 것이다.

從周故曰周髀 360도 돌아가는 각을 따라가 보는 것을 周髀라한다.

髀者表也 높이란 圭表막대기를 말한다.

:둘레.주위. 돌다.

周髀주비란 막대기를 세워서 해 그림자 길이로 태양의 운행 도수를 계산하는 것이다.

 

日夏至南16.000하지 때 해는(관측자와) 6.319°떨어져 있다.

日冬至南135.000동지 때 해는53.32°떨어져 있다.

日中無影以此觀之 해 그림자가 없는 위치(북위23.5)에서 이를 보면

從南至夏至之 남쪽으로 하지 때에 이르러

日中119.000해를 중심으로 47°각거리가 된다.

 

동지점135.000-하지점16.000=119000

135000-16000=119000= 47°(동지-23.5°하지+23.5°)

1°=119000/47°= 2.531.9

16000/2531.9= 6.3193649038271653698803270271338

135000/2531.9= 53.319641376041707808365259291441°

 

北至其夜半亦然 북쪽에서는 자정 때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凡徑238.000(낮과 밤 운행의)전체 원의 지름 角距離94°이다.

 

이 내용은 북위 n29.819°의 위치에서 본 아날렘마(analemma)의 설명이다.

태양은 1년 동안 하늘을 가로질러갈 때 매일 같은 시간에 관측하면

태양 위치가 남,북 방향의 축을 따라 태극그림을 그리면서 변하는 모습을

아날렘마(analemma)라고 한다.

태양은 8자형의 싸인 곡선을 따라 큰 원을 그리면서 돌아간다.

마치 뫼뷔우스 띠를 따라 도는 듯하다.

한낮의 태양의 1년간의 운행은 47°의 각도. 119000안에서 계속 된다.

(동지-23.5°하지+23.5°)

그런데 이 각의 변화는 반대쪽 밤에도 똑같은 운행이 진행된다.

따라서 전체의 그림으로 환산하면 47°* 2 = 94°凡徑238.000이 된다.

 

此夏至日道之徑也 이것이 하지 때 태양 운행이 그리는 원의 직경이 된다.

其周714.000둘레는 714.000282°의 각거리이다.

凡徑238.000*3(π)=714.000

714.000/2531.9°= 282°하지 때 태양의 운행 각거기

 

從夏至之日中至 하지에서 해를 따라가서 태양 중심이

冬至之日中119.000동지점에 다다르면 47°의 각거리가 된다.

北至極下亦然則 북쪽에서는 자정 때 역시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從極南至冬至之 남쪽 극점을 따라가면 동지에 이르는데

日中238.000해는 94°각거리 안에 있는 셈이다.

從極北至其夜半亦然 북쪽 극점을 따라가면 자정 때 역시 그러하니

凡徑476.000밤낮 운행의 궤도지름이 188°각거리가 된다.

此冬至日道徑也 이것이 동지일 태양 운행이 그리는 大圓의 직경이다.

其周1.428.000그 둘레는 1.428.000. 376°각거리가 된다.

 

태양이 지구 멀리 있을 때가 하지이고 가까이 있을 때 동지이다.

따뜻하고, 추운 것은 거리 관계가 아니라 지구의 각도와 관계이다.

동지 때 각거리가 376°된다는 의미이다.

동지 때는 이렇게 큰 각을 가지고 지평선 쪽으로 낮게 운행하기 때문에 태양빛을 적게 받아 춥고 넓게 돌아기기 때문에 낯의 길이가 짧은 것이다.

하지와 동지 사이 94°각거리 차이를 보인다. 376-282= 94°

 

 

從春秋分之 춘추분에는

日中北至極下178.500태양이 북극아래까지 70.5°각거리를 기지고

從極下北至其夜半亦然 계속 따라가면 극 아래에서 밤이 되는 곳도 똑같다.

凡徑357.000모두 직경이 각거리로 141°

1.072.000里 大圓의 길이는 423.397°의 각거리를 가진다.

178500/2531.9=70.5°00414708321813657727398396461

1072000/2531.9=423.397°44855642007978198191081796

하지 282°

동지 376°

춘추분 423.397°

故曰

月之道常緣宿 따라서 해와 달의 길은 大圓의 끝자리에 머문다.

日道亦與宿正 태양 또한 28宿의 자리를 정했고

 南至夏至之日中 남쪽에 뜬 하지 때 해의 좌표는

北至冬至之夜半 북쪽에 다다른 동지의 밤중 좌표가 된다.

밤하늘의 태양과 별자리의 이동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별을 보려면 태양의 반대쪽 하늘을 보아야 한다.

하짓날 태양은 하루 종일 쌍둥이자리에 머문다.

 

 

다만 태양의 밝은 빛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동지점은 궁수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397.000지름은 156.79°각거리가 되고

1.071.000大圓의 길이는 423°의 각거리가 된다.

397000/2531.9=156.79°924167621154074015561436076

1071000/2531.9=423.00248824993088194636439037877

계절의 변화에 따라 태양의 고도 차이로 춘추분 때의 운행은 지평거리상

  

春分之日夜分以至 춘분날 절입시각에서

秋分之日夜分極下 추분날 절입시각 까지는 극지방에서는

常有日光 항상 태양을 보게 되고

秋分之日夜分以至 추분 절입시각에서

春分之日夜分極下 춘분 절입시각의 극점에서는

常無日光 태양빛을 못 본다.

하지날 북극에서 66.5°N사이의 지역에서는 하루 종일 해가지지 않으며

남극에서 66.5°S 사이의 지역에는 해가 뜨지 않는다.

동지 날에는 극야와 백야의 위치가 반대다.

 

따라서

春秋分之日夜分之時 춘추 절입시각은 낮과 밤이 나뉘는 시각이다.

日光所照適至極 태양이 비치는 곳이 남북 극점에 맞춰지고

陰陽之分等也 음양이 똑 같이 갈린다.

冬至夏至者 동지와 하지는

日道發斂之所生也 오르고 내려앉는 것에서 생긴다.

至晝夜長短之所極 낮과 밤의 길고 짧음이 있는 극점에 이르면

春秋分者陰陽之 춘추분 점이 음양을 가르는 것이다.

修晝夜之象 낮과 밤을 다스리는 모양이다.

晝者陽夜者陰 晝, 이다.

春分以至秋分晝之象 춘분에서 추분까지의 대낮 모양이고

秋分至春分夜之象 추분에서 춘분까지의 밤의 모양이다.

故春秋分之日中光之所照따라서 춘추분 때 태양이 비취는 곳은

北極下夜半日光之所照 북극의 아래까지 한밤중에도 비췬다.

亦南至極 또한 남극에서도 그러하다.

此日夜分之時也 이것이 낮과 밤을 나누는 시점이다.

故曰

日照四旁各167.000태양은 사방으로 66.5°角距離만큼 비춘다.

人所望見遠近宜如 사람이 바라보는 것의 멀고 가까움은 당연히

日光所照 태양이 비추는 바에 따른다.

從周所望見 한 바퀴 쭉 따라서 돌아보면

北過極64.000북쪽으로는 북극점을 지나 23.5°角距離를 비춘다.

 

빈 하늘도 천문도구를 통해 보면 길과 좌표가 나타난다.

관측 천문도를 작성할 때

적도는 적위북극은 +90°가 된다.

북위 23,5°에 관측자가 서있다면 적위좌표는 +23,5°가 된다.

관측자의 천정위치를 중심으로 사방을 보면

남쪽으로는 +23,5°중앙에서부터 적위점을 지나 지평선이 되는 -66.5°까지 그린다. 23,5°+66.5°= 90°

북쪽으로는 +23,5°중앙에서부터 66.5°를 가면 북극점이 되고

거기서 23,5°를 더 가면 북쪽 지평선이 된다.

 

 

하지 때 태양의 위치는 관측자의 머리위에 남중한다.

이 때 좌표는 23,5°이니까 북극좌표 까지는 66.5°가 된다.

위 글의

照四旁各167.000는 다름 아닌 북극 까지 거리 66.5°를 말한 것이며

北過極64.000북극에서 나머지 지평선까지의 거리 23,5°距離角

로 나타낸 말이다.

각도로 환산하면

167000/2531.9= 65.958°= 65.575 °

64000/2531.9=25.27 = 25.166°이다.

 

계산 값은 66.5°인데 陳子 65.575 °라 했고

23,5°25.166°라고 했으니 다소의 차이가 난다.

167000/2531.9°=65.958°

64000/2531.9=25.277459615308661479521308108535

 

π파이 값을 3.13가 아닌 3으로 계산한 오차로 생긴 것 아닐까가 생각된다.

π파이 값을 3으로 계산하면서도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수학의 묘법이 있었는지?

 

 

南過冬至之日32.000

(태양의 고도가)남쪽을 지나서 동지 때 태양 좌표 쪽으로 12.638°가면

夏至之日中光 하지 때의 남중한 태양이 떠있는 곳이다.

32000/2531.9= 12.638°729807654330739760654054268

N23.5°에서 관측한 하지날 머리 위쪽에 떠있던 태양을 관측하고

또한 남쪽으로 12.638°더 내려가서 관측하면

23.5°- 12.638°= N 10.862°이다.

10.862°의 위치가 천정자리가 된다.

이 위치는 N23.5°좌표에서 하지 때 태양이 남중하는 천정 자리라는 말이다.

 

23.5-12.638=10.862

 

 

南過冬至之日中光48.000

또 남쪽을 지나 18.954°더 동지점 쪽으로 내려가 남중한 태양은

南過人所望見16.000

남쪽으로 가서 바라본 사람과 6.32°의 각거리차이가 있다.

16000/2531.9= 6.319°

48000/2531.9= 18.958°

위 글에서N 10.862°에서 18.958°를 더 남쪽으로 내려갔으니까

10.862-18.958= -8.096

-8.096 °은 북위 N이 아닌 남위 S8.096°가 된다.

적도를 넘어섰다. 인도네시아 남쪽 해변쯤 되는 곳이다.

南過人 주비산경시대에 인도네시아 남쪽 해변까지 간 천문학자일까?

 

北過周151.000북쪽으로 돌아가는 데는 각거리로 59.64°거리이다.

151.000/2531.9°= 59.64°

지금까지 황도상 태양좌표 이동을 설명하고 있다.

천정의 우측에 있던 태양좌표가 북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S8.096 °의 위치에서

더 나아가 북쪽 지평까지 다다르는데 에는 59.64°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산하면

북극90°-23.5°-8.096°= 58.404°가 되어야한다.

59.64°- 58.404°=1.2°1.2°의 차이가 난다.

 

北過極48.000= 관측자가 북극을 지나치는 18.958°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冬至之夜半日光南不至 동지 때 하지좌표가 남쪽까지 이르지 못하는 곳은

人目所見7.000육안으로 보면 2.76°이다.

48000/2531.9= 18.958 094711481496109640981081401

7000/2531.9= 2.764 722145424384849322643074371

 

위 글에서 인도네시아 S8.096°에서 태양을 관측하고 또다시 남쪽으로

18.958°더 내려가서 호주 오스트렐리아 제럴턴시 S27.054°에서 하지 태양을 봤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다.

北過極의 의미는 적도의 반대쪽으로 넘어 왔음으로 남북의 방향이 바뀐다.

 

남방지역이므로 북극은 보이지 않고 대신 남극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북극이 보이지 않는 다는 말이며 이때 보이지 않는 북극 좌표의 각거리가 2.76°가 된다는 말이다.

오스트렐리아 제럴턴시에서 동지날 북극은 북쪽 땅밑 2.76°지점에 있다는 말이다.

계산해 보면 동지점이 북극에서 23.5°이니까

27.054+23.5+18.958+23.5= 93.012 - 90 = 3.012

3.012-2.76 4= 0.248

陳子의 계산과는 0.248°의 차이이다.

不至極下71.000북극점아래 까지 가지 못한 각거리는 28.04°가 된다.

71000/2531.9= 28.04 2181760733046328843951182906

계산해 보면

북쪽 지평에서 북극까지의 각 거리는 23.5+3.012= 26.512°이다.

28.04-26.412= 1.628

陳子의 계산과는 1.628°차이를 보인다.

 

夏至之日中與夜半日光96.000里過極相接

하지 날 태양이 남중할 때와 같이 자정에 태양빛은 37.916°떨어진 극점에서

서로 접해있다.

96000/2531.9=37.916189422962992219281962162803

 

황도좌표의 변화로 보면 호주 제럴턴시 S27.054°하지 남중점에서

37.916°더 가면 밤이 되는 지평선의 극점과 마주친다는 뜻이다.

천정에서 지평선의 각은 90°이 되어야한다.

그런데 27.054°+23.5°+37.916°=88.47°

90°에서1.53°모자라는 각이다.

1.53°는 다름 아닌 우리가 보고 있는 북극을 호주 제럴턴시 S27.054°에서는 땅 밑 1.53°아래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말이다.

1.53°이것이 하지 때 밤과 낮 양단에서 보이지 않는 각이라는 말이며

양단 각 1.53°*2= 3.06 °가된다.

위에서 거론한 북극이 보이지 않는 각 3.012°의 값을 말하는 것인데

0.06°의 차이가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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